교실에서 날아온 별똥별

양영희 지음
2015년 3월 3일 처음 펴냄
5000원
ISBN 978-89-6880-017-7 (0337)
차례
책을 펴내며 | 별똥별 탄생 이야기
1부 봄, 여름
아이들과 첫날을 보내고 24
배움이란? 30
학교생활 그리기 33
봄비 그친 뒤 40
장미 선생님 44
때로 사랑은 놓아주는 것 47
노는 만큼 성공한다 54
“안아 주세요!” 60
함께 먹는 밥, 콩나물 비빔밥 64
어느 밤, 촛불을 켜 보았습니다 67
체험학습과 결석 73
가르기와 모으기를 배우며 76
5교시 풍경 80
벼 키우기와 급식 먹으러 가는 길 85
날씨는 흐려도 교실은 늘 맑아요 89
하늘을 향해 쏴라! 95
여름 계절 학교에 쏘~옥 빠지다 99
아이들의 자기평가서 102
2부 가을, 겨울 다시 새봄을 기다리며
뜨거운 여름 잘 지내셨는지요? 106
이웃 공부 110
밤하늘의 별 보기 115
가을 120
다큐 영화 〈엘 시스테마〉 123
벼 베기 127
가을걷이 체험 131
우리가 키운 쌀로 떡을 해 먹다 134
곶감과 단풍 137
구름산 숲 체험을 다녀와서 140
정을 나누는 우리 음식, 비빔밥 143
아이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눈 147
선생님 집에 놀러 가요 150
비밀 친구 152
크리스마스 파티 156
학교가 살아났습니다 159
2학년이 되면 162
한 주 남았네요 171
마지막 편지 173
*이 책은 저자가 2013년 구름산초등학교 1학년 11반 학부모들 에게 보낸 37통의 별똥별(편지)을 엮어 만들었습니다.
책을 펴내며
별똥별 탄생 이야기
어린 시절, “커서 선생이 되어라”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내 인생의 지표가 되어, 평생 학교만 다니는 사람이 돼 버렸다. 내 삶의 대부분을 보낸 학교가 곧 나의 인생이었고, 난 길거리에서도 예쁜 여자보다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어쩔 수 없는 선생이 되었다. 아이들이 내 시선의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태생은 참 중요하다
지리산 자락의 농촌마을에서 자란 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밥 먹었냐”고 묻는 습관이 있다. 어린 시절 늘 배가 고팠던 어른들이 나눈 인사가 내 몸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실에 오시는 특기적성 강사 선생님께도, 아이들에게도 늘 묻게 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놀던 골목,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자고 오던 추억, 학교 운동회가 온 마을의 잔치가 되었던 기억, 밤하늘 가득한 별들, 마루 끝에 앉아 보았던 저녁노을, 개천 둑을 달리던 아이들, 무엇이든 함께 나누던 어른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음을 안다. 이런 배경은 아이들을 만날 때 불쑥 튀어나와 아이들 손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 시절로 함께 손잡고 갈 수는 없지만 옛이야기라도 데려와 가만가만 들려줄 수 있으니, 나는 이런 어린 시절의 자산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마을에서 그렇게 자라지 못했다면 내가 도시의 시멘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갈수록 모래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지만 어떤 끈으로도 서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고 사소한 불이익이 생기면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우는 일이 다반사인 교실에서는 그 무엇도 꿈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극한 경쟁 모드에서 자신만 앞서려고 하고 부모들이 뒤에서 이걸 뒷받침하는 관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간의 작은 문제도 ‘학교폭력’이란 이름으로 삿대질을 하며 목청을 높이는 공간에서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 요즘 아이들은 짝꿍에게 연필 한 자루 빌려주는 것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안내장 한 장을 나눠 줄 때도 서로 먼저 받겠다고 싸운다. 무엇이든 내가 먼저여야 하고 ‘친구들한테 밀리면 안 된다’는 정서가 체화된 채 입학한다. 부모들은 선생을 비교하고 매일매일 교사의 모든 것을 도마 위에 올린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모두가 극도의 피로를 안고 사는 관계가 돼 버렸다. 다른 부모들을 격리시키며 달콤하게 속삭이며 다가오는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만을 중심에 놓아 달라고 하기 일쑤다.
어린 시절 가정방문 가시는 예쁜 담임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친구들 집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울퉁불퉁한 흙길을 가시는 선생님 뒤를 따라 나는 신이 나서 달렸다. 그때 친구들의 할머니나 엄마들이 선생님 앞으로 달려 나와 온 마음으로 환대하던 장면을 나는 잊지 못한다. 선생님 또한 얼굴을 단 한 번도 찌푸리지 않았고 마을의 누구도 선생님 뒤에서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의 마음에 선생님은 커다란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위치는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경험한 마을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문만 나오면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믿는 세상을 사는 아이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급 안에서라도 ‘함께 살기’를 꿈꿨다.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을 모든 부모가 서로 외우고 얼굴도 알고 함께 돌보는 공동체를 꿈꿨다. 그런데 이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1학년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몰입하는 시간이나 에너지가 많다는 게 큰 장점이다. 그래서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가져와 마음껏 제안하고 실천에 옮겼다. 우리 반 아이들은 친구 엄마 얼굴을 다 안다. 아이들은 ‘○○ 이모’라며 달려가 안기고 손을 잡는다. 엄마들은 길거리에서 아이들 누구를 만나도 반갑게 대해 주며 아이스크림도 사 준다. 우리 반 아이들 대화 속에 ‘이모들’ 이야기도 늘 들어 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이런 변화를 보며 자신들이 선택하고 실천한 방법이 옳았음을 확인한다. 그들이 참 좋다고 미소 짓는 걸 볼 때마다 내 마음이 환해진다.
4·5·6·4·5·6 …… 1
주로 고학년만 담임하다 어느 날 1학년을 맡게 되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과 많은 이야길 했고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1학년은 소통방식이 달라야 함을 알게 됐다. 내가 하는 말을 아이들 모두가 동시에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아이가 이해한 이야기를 부모가 전해 듣는 방식도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매우 다양한 줄기로 뻗어 가기도 했고 때론 엉뚱한 오해가 되기도 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1학년 학부모는 특히 첫애를 입학시킨 경우 학교 시스템이나 문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모든 걸 궁금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교사들이 아는 상식은 학교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란 사실도 말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에 대한 이미지와 내용들, 그리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경험한 이야기들로 교육에 대한 시각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교사가 자신의 철학이나 학급 운영의 여러 원칙들을 학부모와 공유하지 않으면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 하는 일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됐다.
1학년을 오래 하면서 발견한 학부모의 모습은 교사들이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부모들은 공교육의 거대한 시스템과 교육과정, 시수와 진도를 준수해야 하는 교사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교사에 대한 이해가 생각보다 낮아 아이들이 하교할 때 교사도 집에 가는 줄 알기도 하고, 담임이 교육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분들도 많았다. 또 교사들은 초인적 전문성으로 어떤 부모의 요구도 다 들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행동할 때도 많다. 심지어 어떤 얘길 들어도 교사는 감정의 동요가 없을 거라고 믿는 듯 행동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래서 속으로 ‘나는 신이 아니에요!’라고 외칠 때도 많았다. 반면, 그들은 교사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다가가도 되는지 판단하기 힘들어했고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담임 앞에서 아이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하거나 인정하는 것을 꺼릴 뿐만 아니라 교사에 대한 부모의 생각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늘 아이라는 염려의 대상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음을 알게 됐다. 난 그 아이들에게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아이들 또한 생각보다 진실을 그대로 전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언제나 삭제되었고 다른 친구나 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부풀려지거나 왜곡되곤 했다. 아이들 행동 양식의 밑바닥에 ‘혼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전달 방식에 대한 이해를 요청했다.
그럼에도 말은 언제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웠다. 그래서 어느 날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과 담임의 생각, 느낌들, 그리고 학교와 학급의 여러 일정과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그때그때 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한 사람씩 붙들고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점이 있었다. 또 교사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자주 전할 수 있어 학급 운영과 아이들 생활지도, 수업의 전개에 대한 공유가 쉽게 되었다. 별똥별을 통해 가끔은 학부모들에게 위로도 받고 지지도 받으며 ‘우리’라는 생각이 형성되었다. 어떤 분들은 별똥별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 알림장에 답장을 써 주기도 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별똥별’
오래전 1학년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지은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이름이 ‘별똥별’이다. 아이들은 그날부터 ‘사랑의 우체부’가 되어 부모님께 그 편지를 전하기로 약속했고 해마다 그 약속을 아주 잘 지켜 주었다. 내가 바빠서 별똥별을 써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먼저 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냥 전달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먼저 그걸 다 읽어 보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 어려운 말도 있을 텐데도 한 글자씩 손으로 꼭꼭 누르며 읽는 아이들이 많았다. 편지를 달라고 다그치는 아이들이 고맙고 예뻐서 잊지 않고 기억했다 쓰려고 노력했다.
돌이켜 보면, 연애편지 쓰듯 틈만 나면 별똥별을 썼다. 절대 누가 시켰으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냥 내 안에 아이들 느낌이, 예쁘거나 속상하거나 그것이 뭐든 가득 차면 글을 썼다. 쓰고 싶은 게 많아도 어떨 땐 바쁘고 지쳐 그 느낌이 사라져 버린 경우도 많았지만 자석에 끌리듯 별똥별을 쓰고 나면 마음이 부자가 된 듯했다.
쓸 이야기가 많은 건 모두 아이들 때문이다. 예쁜 아이들이 날마다 보여 주는 장면들을 얘기하고 다니는 걸 나는 좋아한다. 연구실에서도 동료 선생님들한테 마구 전달하고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식구들한테 우리 반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귀여운지, 재미있는지 얘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길 편지로 부모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1학년 아이들은 커 가는 속도 차가 많이 나는 편이어서 어떤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일어난 일도 모르거나 기억하길 힘들어하기도 한다. 또 작은 오해가 될 만한 이야기들을 담임이 정리해 주면 부모들도 쉽게 수긍해서 학급 문화에 좋은 영향을 가져온다. 담임이 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를 미리 안내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알려드리면 부모들은 학교에 오지 않아도 마치 교실에 온 것처럼 한마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반은 비밀이 없는 반이 되었다.
아래 내용은 우리 반에서 학부모들과 함께 하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반 모임 - 학기 초 3월 말이나 4월 초에 우리 반 친구들과 가족이 다 모이는 전체 모임을 한다. 아이들이 30여 명이라도 온 가족이 오면 100여 명이 넘을 때도 있다. 교실이 좁아 책걸상을 모두 복도로 내놓고 자리에 앉아 서로 인사하고 가족 소개도 한다. 나는 일 년 동안 아이들과 어떻게 지낼지를 소개한다. 간단한 놀이와 음식 나눠 먹기를 하고 나면 밤 9시가 훌쩍 넘는다. 전체가 모이는 반 모임은 맞벌이 가정을 위해 저녁 7시 30분경에 한다. 반 모임을 하고 나면 어색했던 학부모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인사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되는 시작점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후 반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진행되고 담임이 결합하기도 하고 아이들 공부 시간에 부모들끼리만 만나기도 한다. 반 모임에선 대표 엄마가 선출되어 연락을 담당하고 담임과의 연결을 맡게 된다. 반 모임 시 중요한 사항은 미리 약속해 두고 당부하는 것이 좋다. 우리 반에서는 이런 걸 주문했다.
‘누구도 비교하여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으며 부모들을 비교하지 않고 선생님을 비교하지 않는다. 반 모임의 모든 이야기는 아이들이 들어도 좋은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만 한다. 반모임에서는 어떻게 서로 도울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만 생각한다.’
별똥별 - 별똥별은 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모와 맞벌이 가정의 부모에게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을 챙겨 줘야 하는 부담을 많이 갖는 저학년에서 담임이 수시로 자세한 안내와 아이들 이야기를 전해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민들레 - 민들레는 아이들이 마음에 감동이 가득할 때마다 쓰는 ‘글짝꿍’의 글을 모아 편집해 보내는 학급신문이다. 민들레에는 한 달 동안 있었던 학교의 여러 일들을 정리하고 생일인 친구를 축하하는 코너와 아이들 생각 모음, 글짝꿍 모음, 담임 글 등이 들어 있다. 특히 아이들 글을 통해 부모들은 학교에서의 여러 이야기를 볼 수 있고,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좋아한다. 매월 글을 보면서 아이들이 점점 성장해 가는 걸 느끼는 즐거움 때문인지 인기가 많은 편이다.
학급 밴드(SNS) - 2013년부터 학급 밴드를 통해 학부모들과 빠른 소통을 하고 있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프로젝트, 표현활동, 놀이, 무엇이든 재밌고 예쁜 장면은 다 담아 실시간으로 사진을 올려 준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나 아빠들도 아이들 사진을 보며 학교생활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또 사진을 보며 아이와 학교생활과 친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밴드를 통해 부모들끼리 좋은 정보도 나누고, 힘든 일이 생기면 위로도 하고 전학 오는 친구, 가는 친구들에게 인사도 전한다. 담임은 급한 알림 사항 등을 공지할 때도 참 편하다. 밴드를 운영할 때도 반 모임 시 주문했던 약속은 그대로 확인하여 지키도록 한다.
프로젝트, ‘친구 집에 1박 2일 놀러가요’ -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살려 만들었다. 놀 친구, 놀 시간, 놀 공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끼리 협력하여 방법을 모색하도록 하고 싶었다.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 사고를 확장하여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다.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잘 놀게 해 주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면 멋진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아이들은 시간과 친구, 공간만 있으면 더 필요한 게 없지만 말이다. 프로젝트는 담임이 별똥별을 통해 초대할 사람, 초대받고 싶은 사람을 신청받아 모둠 편성만 해 주면 된다. 이때, 초대하는 친구 집에 서로 친하지 않은 아이들을 우선 배정하여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편성한다. 시간은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점심시간 정도로 하고 자세한 일정은 모둠의 아이와 부모들이 함께 결정하도록 한다.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모든 일정, 놀이 시간의 안전, 먹거리 등도 부모들이 협의하고 함께 차도 마시며 아이들을 지원해 주도록 하면 된다.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학급 밴드에 실시간으로 사진을 올리며 진행하면 참 재미있다. 한 번 진행한 후에는 마음 맞는 학부모들끼리 언제라도 서로 초대할 수 있게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우리 반은 서로 초대하여 함께 자고 아침에 손잡고 함께 등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장면이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
학급 캠프 - 아이들은 밤새 노는 걸 무지 좋아한다. 그것도 학교나 집이 아니라 산이나 바다처럼 밖에 나가 노는 걸 더 좋아한다. 물론 어른도 그렇지만. 그래서 캠핑을 가기도 한다. 시골 마을 회관을 빌려서 가기도 하고 시설을 임대해 가기도 한다. 1박 2일 캠핑은 준비할 사항이 많지만 모두 반 모임에서 주관하도록 위임한다. 그래서 어떤 해에는 추진 동력이 약해 무산되기도 했다. 아주 잘 될 때는 준비위를 꾸려서 학부모들이 장소, 버스, 보험, 예산, 프로그램, 역할 분담까지 모든 걸 알아서 다 했다. 몇 해 전에는 학부모들이 교사들보다 더 능숙하게 행사를 준비해서 놀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반 모임 행사에서 담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멀리 떠날 상황이 되지 않으면 교실에서 1박을 하기도 하고, 그도 힘들면 밤 11시경에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것도 괜찮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한다.
엄마 선생님 - 혁신학교는 아주 왕성하게 교사 아닌 사람들이 교단에 서고 있다. 이 문제로 혁신학교 초기에는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가 많이 힘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가르치는 사람은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공교육 교사들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문화예술분야의 전문성이나 재능을 가진 분뿐만 아니라 책 읽어 주는 엄마 선생님, 놀이마당, 체험학습, 화전 만들기, 쑥 캐기, 송편 만들기, 봉숭아 물들이기, 물총 놀이, 알뜰 시장 등 저학년에는 어른 손이 필요한 활동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시간 되시는 반 모임 어머니들이 오셔서 교사와 팀티칭을 한다.
아이들은 엄마 선생님들이 오시는 걸 무지 좋아한다. 매일 같은 얼굴의 담임만 보다 작은 변화가 있으니 훨씬 신선하고 게다가 내 엄마나 친구 엄마라서 더 친근한 거다. 이미 어머니들께는 내 아이가 아니라 모두의 엄마로 활동하길 요청했으니 자주 올 수 없는 아이의 어머니들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밴드에 남기기도 한다. 엄마 선생님 역할을 해 보신 뒤에는 ‘교사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다. 또 ‘아이들 커 가는 모습을 직접 활동을 통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엄마 선생님을 통해 가르치는 일에 대한 벽을 허무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이들이 누구한테나 배울 점이 있다고 믿게 하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맨 먼저 내가 한 말은 “언제나 너희들 곁에 가까이 있을게”였다. 긴 시간을 아이가 되어 아이처럼 지냈다. 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랑 노는 게 더 재미있을 때도 많다. 그래서 내가 먼저 아이들을 유혹해 바다로 산으로 수영장으로 우리 집으로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바람만 불어도 애들이랑 뭐하고 놀까를 생각한다. 아이들 빼고 ‘내가 노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일어나 걸어 나갈 힘만 있으면 나는 놀 궁리를 한다. 이렇게 오래 아이들과 놀 수 있어서 교직은 참 행복하다. 나중에 학교를 떠나게 되더라도 나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사는 동안은 그리 불행할 것 같지 않다.
2015년 2월
양영희
양영희
전 경기 시흥 하중초 교사
mesochonsa@hanmail.net
내 모든 시선은 아이들을 향해 있지만 교육은 여전히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어 슬플 때가 많다. 아이들을 만나는 게 행복하다는 이유로 선생을 하는 건 날마다 죄를 더해 가는 일인 것 같아 자꾸만 다른 생각을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구름산초의 경험을 동료들과 함께 《혁신학교 보내도 될까요?》(수작걸다)란 책으로 엮었다. 그 밖에 《다시, 혁신 교육을 생각하다 1, 2》(창비교육), 《부모는 어떻게 학부모가 되는가》, 《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 《대안의 길을 찾는 교사들》(이상 민들레) 등의 공저가 있다.
교실에서 날아온 별똥별
양영희 지음
2015년 3월 3일 처음 펴냄
5000원
ISBN 978-89-6880-017-7 (0337)
차례
책을 펴내며 | 별똥별 탄생 이야기
1부 봄, 여름
아이들과 첫날을 보내고 24
배움이란? 30
학교생활 그리기 33
봄비 그친 뒤 40
장미 선생님 44
때로 사랑은 놓아주는 것 47
노는 만큼 성공한다 54
“안아 주세요!” 60
함께 먹는 밥, 콩나물 비빔밥 64
어느 밤, 촛불을 켜 보았습니다 67
체험학습과 결석 73
가르기와 모으기를 배우며 76
5교시 풍경 80
벼 키우기와 급식 먹으러 가는 길 85
날씨는 흐려도 교실은 늘 맑아요 89
하늘을 향해 쏴라! 95
여름 계절 학교에 쏘~옥 빠지다 99
아이들의 자기평가서 102
2부 가을, 겨울 다시 새봄을 기다리며
뜨거운 여름 잘 지내셨는지요? 106
이웃 공부 110
밤하늘의 별 보기 115
가을 120
다큐 영화 〈엘 시스테마〉 123
벼 베기 127
가을걷이 체험 131
우리가 키운 쌀로 떡을 해 먹다 134
곶감과 단풍 137
구름산 숲 체험을 다녀와서 140
정을 나누는 우리 음식, 비빔밥 143
아이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눈 147
선생님 집에 놀러 가요 150
비밀 친구 152
크리스마스 파티 156
학교가 살아났습니다 159
2학년이 되면 162
한 주 남았네요 171
마지막 편지 173
*이 책은 저자가 2013년 구름산초등학교 1학년 11반 학부모들 에게 보낸 37통의 별똥별(편지)을 엮어 만들었습니다.
책을 펴내며
별똥별 탄생 이야기
어린 시절, “커서 선생이 되어라”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내 인생의 지표가 되어, 평생 학교만 다니는 사람이 돼 버렸다. 내 삶의 대부분을 보낸 학교가 곧 나의 인생이었고, 난 길거리에서도 예쁜 여자보다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어쩔 수 없는 선생이 되었다. 아이들이 내 시선의 처음이고 마지막이다.
태생은 참 중요하다
지리산 자락의 농촌마을에서 자란 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밥 먹었냐”고 묻는 습관이 있다. 어린 시절 늘 배가 고팠던 어른들이 나눈 인사가 내 몸에 붙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실에 오시는 특기적성 강사 선생님께도, 아이들에게도 늘 묻게 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놀던 골목,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자고 오던 추억, 학교 운동회가 온 마을의 잔치가 되었던 기억, 밤하늘 가득한 별들, 마루 끝에 앉아 보았던 저녁노을, 개천 둑을 달리던 아이들, 무엇이든 함께 나누던 어른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음을 안다. 이런 배경은 아이들을 만날 때 불쑥 튀어나와 아이들 손을 그런 방향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 시절로 함께 손잡고 갈 수는 없지만 옛이야기라도 데려와 가만가만 들려줄 수 있으니, 나는 이런 어린 시절의 자산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자연 속에서, 마을에서 그렇게 자라지 못했다면 내가 도시의 시멘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갈수록 모래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지만 어떤 끈으로도 서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고 사소한 불이익이 생기면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우는 일이 다반사인 교실에서는 그 무엇도 꿈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극한 경쟁 모드에서 자신만 앞서려고 하고 부모들이 뒤에서 이걸 뒷받침하는 관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간의 작은 문제도 ‘학교폭력’이란 이름으로 삿대질을 하며 목청을 높이는 공간에서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 요즘 아이들은 짝꿍에게 연필 한 자루 빌려주는 것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안내장 한 장을 나눠 줄 때도 서로 먼저 받겠다고 싸운다. 무엇이든 내가 먼저여야 하고 ‘친구들한테 밀리면 안 된다’는 정서가 체화된 채 입학한다. 부모들은 선생을 비교하고 매일매일 교사의 모든 것을 도마 위에 올린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모두가 극도의 피로를 안고 사는 관계가 돼 버렸다. 다른 부모들을 격리시키며 달콤하게 속삭이며 다가오는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만을 중심에 놓아 달라고 하기 일쑤다.
어린 시절 가정방문 가시는 예쁜 담임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친구들 집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울퉁불퉁한 흙길을 가시는 선생님 뒤를 따라 나는 신이 나서 달렸다. 그때 친구들의 할머니나 엄마들이 선생님 앞으로 달려 나와 온 마음으로 환대하던 장면을 나는 잊지 못한다. 선생님 또한 얼굴을 단 한 번도 찌푸리지 않았고 마을의 누구도 선생님 뒤에서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의 마음에 선생님은 커다란 존경의 대상이었다.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위치는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경험한 마을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문만 나오면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믿는 세상을 사는 아이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급 안에서라도 ‘함께 살기’를 꿈꿨다.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 이름을 모든 부모가 서로 외우고 얼굴도 알고 함께 돌보는 공동체를 꿈꿨다. 그런데 이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1학년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몰입하는 시간이나 에너지가 많다는 게 큰 장점이다. 그래서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가져와 마음껏 제안하고 실천에 옮겼다. 우리 반 아이들은 친구 엄마 얼굴을 다 안다. 아이들은 ‘○○ 이모’라며 달려가 안기고 손을 잡는다. 엄마들은 길거리에서 아이들 누구를 만나도 반갑게 대해 주며 아이스크림도 사 준다. 우리 반 아이들 대화 속에 ‘이모들’ 이야기도 늘 들어 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이런 변화를 보며 자신들이 선택하고 실천한 방법이 옳았음을 확인한다. 그들이 참 좋다고 미소 짓는 걸 볼 때마다 내 마음이 환해진다.
4·5·6·4·5·6 …… 1
주로 고학년만 담임하다 어느 날 1학년을 맡게 되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과 많은 이야길 했고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1학년은 소통방식이 달라야 함을 알게 됐다. 내가 하는 말을 아이들 모두가 동시에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아이가 이해한 이야기를 부모가 전해 듣는 방식도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매우 다양한 줄기로 뻗어 가기도 했고 때론 엉뚱한 오해가 되기도 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1학년 학부모는 특히 첫애를 입학시킨 경우 학교 시스템이나 문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모든 걸 궁금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교사들이 아는 상식은 학교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란 사실도 말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에 대한 이미지와 내용들, 그리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경험한 이야기들로 교육에 대한 시각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교사가 자신의 철학이나 학급 운영의 여러 원칙들을 학부모와 공유하지 않으면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 하는 일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됐다.
1학년을 오래 하면서 발견한 학부모의 모습은 교사들이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부모들은 공교육의 거대한 시스템과 교육과정, 시수와 진도를 준수해야 하는 교사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 교사에 대한 이해가 생각보다 낮아 아이들이 하교할 때 교사도 집에 가는 줄 알기도 하고, 담임이 교육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분들도 많았다. 또 교사들은 초인적 전문성으로 어떤 부모의 요구도 다 들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행동할 때도 많다. 심지어 어떤 얘길 들어도 교사는 감정의 동요가 없을 거라고 믿는 듯 행동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래서 속으로 ‘나는 신이 아니에요!’라고 외칠 때도 많았다. 반면, 그들은 교사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다가가도 되는지 판단하기 힘들어했고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담임 앞에서 아이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하거나 인정하는 것을 꺼릴 뿐만 아니라 교사에 대한 부모의 생각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늘 아이라는 염려의 대상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음을 알게 됐다. 난 그 아이들에게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아이들 또한 생각보다 진실을 그대로 전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언제나 삭제되었고 다른 친구나 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부풀려지거나 왜곡되곤 했다. 아이들 행동 양식의 밑바닥에 ‘혼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전달 방식에 대한 이해를 요청했다.
그럼에도 말은 언제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웠다. 그래서 어느 날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과 담임의 생각, 느낌들, 그리고 학교와 학급의 여러 일정과 준비해야 할 사항들을 그때그때 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한 사람씩 붙들고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점이 있었다. 또 교사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자주 전할 수 있어 학급 운영과 아이들 생활지도, 수업의 전개에 대한 공유가 쉽게 되었다. 별똥별을 통해 가끔은 학부모들에게 위로도 받고 지지도 받으며 ‘우리’라는 생각이 형성되었다. 어떤 분들은 별똥별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 알림장에 답장을 써 주기도 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별똥별’
오래전 1학년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지은 ‘학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이름이 ‘별똥별’이다. 아이들은 그날부터 ‘사랑의 우체부’가 되어 부모님께 그 편지를 전하기로 약속했고 해마다 그 약속을 아주 잘 지켜 주었다. 내가 바빠서 별똥별을 써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먼저 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냥 전달만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먼저 그걸 다 읽어 보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 어려운 말도 있을 텐데도 한 글자씩 손으로 꼭꼭 누르며 읽는 아이들이 많았다. 편지를 달라고 다그치는 아이들이 고맙고 예뻐서 잊지 않고 기억했다 쓰려고 노력했다.
돌이켜 보면, 연애편지 쓰듯 틈만 나면 별똥별을 썼다. 절대 누가 시켰으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냥 내 안에 아이들 느낌이, 예쁘거나 속상하거나 그것이 뭐든 가득 차면 글을 썼다. 쓰고 싶은 게 많아도 어떨 땐 바쁘고 지쳐 그 느낌이 사라져 버린 경우도 많았지만 자석에 끌리듯 별똥별을 쓰고 나면 마음이 부자가 된 듯했다.
쓸 이야기가 많은 건 모두 아이들 때문이다. 예쁜 아이들이 날마다 보여 주는 장면들을 얘기하고 다니는 걸 나는 좋아한다. 연구실에서도 동료 선생님들한테 마구 전달하고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식구들한테 우리 반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귀여운지, 재미있는지 얘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길 편지로 부모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1학년 아이들은 커 가는 속도 차가 많이 나는 편이어서 어떤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일어난 일도 모르거나 기억하길 힘들어하기도 한다. 또 작은 오해가 될 만한 이야기들을 담임이 정리해 주면 부모들도 쉽게 수긍해서 학급 문화에 좋은 영향을 가져온다. 담임이 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를 미리 안내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알려드리면 부모들은 학교에 오지 않아도 마치 교실에 온 것처럼 한마음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반은 비밀이 없는 반이 되었다.
아래 내용은 우리 반에서 학부모들과 함께 하는 대표적인 것들이다.
반 모임 - 학기 초 3월 말이나 4월 초에 우리 반 친구들과 가족이 다 모이는 전체 모임을 한다. 아이들이 30여 명이라도 온 가족이 오면 100여 명이 넘을 때도 있다. 교실이 좁아 책걸상을 모두 복도로 내놓고 자리에 앉아 서로 인사하고 가족 소개도 한다. 나는 일 년 동안 아이들과 어떻게 지낼지를 소개한다. 간단한 놀이와 음식 나눠 먹기를 하고 나면 밤 9시가 훌쩍 넘는다. 전체가 모이는 반 모임은 맞벌이 가정을 위해 저녁 7시 30분경에 한다. 반 모임을 하고 나면 어색했던 학부모들끼리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인사를 나누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되는 시작점이 열린다는 것이다.
이후 반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진행되고 담임이 결합하기도 하고 아이들 공부 시간에 부모들끼리만 만나기도 한다. 반 모임에선 대표 엄마가 선출되어 연락을 담당하고 담임과의 연결을 맡게 된다. 반 모임 시 중요한 사항은 미리 약속해 두고 당부하는 것이 좋다. 우리 반에서는 이런 걸 주문했다.
‘누구도 비교하여 말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으며 부모들을 비교하지 않고 선생님을 비교하지 않는다. 반 모임의 모든 이야기는 아이들이 들어도 좋은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만 한다. 반모임에서는 어떻게 서로 도울지,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만 생각한다.’
별똥별 - 별똥별은 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모와 맞벌이 가정의 부모에게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을 챙겨 줘야 하는 부담을 많이 갖는 저학년에서 담임이 수시로 자세한 안내와 아이들 이야기를 전해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민들레 - 민들레는 아이들이 마음에 감동이 가득할 때마다 쓰는 ‘글짝꿍’의 글을 모아 편집해 보내는 학급신문이다. 민들레에는 한 달 동안 있었던 학교의 여러 일들을 정리하고 생일인 친구를 축하하는 코너와 아이들 생각 모음, 글짝꿍 모음, 담임 글 등이 들어 있다. 특히 아이들 글을 통해 부모들은 학교에서의 여러 이야기를 볼 수 있고,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참 좋아한다. 매월 글을 보면서 아이들이 점점 성장해 가는 걸 느끼는 즐거움 때문인지 인기가 많은 편이다.
학급 밴드(SNS) - 2013년부터 학급 밴드를 통해 학부모들과 빠른 소통을 하고 있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프로젝트, 표현활동, 놀이, 무엇이든 재밌고 예쁜 장면은 다 담아 실시간으로 사진을 올려 준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나 아빠들도 아이들 사진을 보며 학교생활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또 사진을 보며 아이와 학교생활과 친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밴드를 통해 부모들끼리 좋은 정보도 나누고, 힘든 일이 생기면 위로도 하고 전학 오는 친구, 가는 친구들에게 인사도 전한다. 담임은 급한 알림 사항 등을 공지할 때도 참 편하다. 밴드를 운영할 때도 반 모임 시 주문했던 약속은 그대로 확인하여 지키도록 한다.
프로젝트, ‘친구 집에 1박 2일 놀러가요’ -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살려 만들었다. 놀 친구, 놀 시간, 놀 공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끼리 협력하여 방법을 모색하도록 하고 싶었다.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 사고를 확장하여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다.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잘 놀게 해 주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노력하면 멋진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아이들은 시간과 친구, 공간만 있으면 더 필요한 게 없지만 말이다. 프로젝트는 담임이 별똥별을 통해 초대할 사람, 초대받고 싶은 사람을 신청받아 모둠 편성만 해 주면 된다. 이때, 초대하는 친구 집에 서로 친하지 않은 아이들을 우선 배정하여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편성한다. 시간은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점심시간 정도로 하고 자세한 일정은 모둠의 아이와 부모들이 함께 결정하도록 한다.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모든 일정, 놀이 시간의 안전, 먹거리 등도 부모들이 협의하고 함께 차도 마시며 아이들을 지원해 주도록 하면 된다.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학급 밴드에 실시간으로 사진을 올리며 진행하면 참 재미있다. 한 번 진행한 후에는 마음 맞는 학부모들끼리 언제라도 서로 초대할 수 있게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우리 반은 서로 초대하여 함께 자고 아침에 손잡고 함께 등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장면이 어찌나 예쁜지 모른다.
학급 캠프 - 아이들은 밤새 노는 걸 무지 좋아한다. 그것도 학교나 집이 아니라 산이나 바다처럼 밖에 나가 노는 걸 더 좋아한다. 물론 어른도 그렇지만. 그래서 캠핑을 가기도 한다. 시골 마을 회관을 빌려서 가기도 하고 시설을 임대해 가기도 한다. 1박 2일 캠핑은 준비할 사항이 많지만 모두 반 모임에서 주관하도록 위임한다. 그래서 어떤 해에는 추진 동력이 약해 무산되기도 했다. 아주 잘 될 때는 준비위를 꾸려서 학부모들이 장소, 버스, 보험, 예산, 프로그램, 역할 분담까지 모든 걸 알아서 다 했다. 몇 해 전에는 학부모들이 교사들보다 더 능숙하게 행사를 준비해서 놀란 적도 있었다. 그래서 반 모임 행사에서 담임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멀리 떠날 상황이 되지 않으면 교실에서 1박을 하기도 하고, 그도 힘들면 밤 11시경에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것도 괜찮다. 물론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한다.
엄마 선생님 - 혁신학교는 아주 왕성하게 교사 아닌 사람들이 교단에 서고 있다. 이 문제로 혁신학교 초기에는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가 많이 힘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많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가르치는 사람은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 공교육 교사들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문화예술분야의 전문성이나 재능을 가진 분뿐만 아니라 책 읽어 주는 엄마 선생님, 놀이마당, 체험학습, 화전 만들기, 쑥 캐기, 송편 만들기, 봉숭아 물들이기, 물총 놀이, 알뜰 시장 등 저학년에는 어른 손이 필요한 활동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시간 되시는 반 모임 어머니들이 오셔서 교사와 팀티칭을 한다.
아이들은 엄마 선생님들이 오시는 걸 무지 좋아한다. 매일 같은 얼굴의 담임만 보다 작은 변화가 있으니 훨씬 신선하고 게다가 내 엄마나 친구 엄마라서 더 친근한 거다. 이미 어머니들께는 내 아이가 아니라 모두의 엄마로 활동하길 요청했으니 자주 올 수 없는 아이의 어머니들은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밴드에 남기기도 한다. 엄마 선생님 역할을 해 보신 뒤에는 ‘교사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다. 또 ‘아이들 커 가는 모습을 직접 활동을 통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엄마 선생님을 통해 가르치는 일에 대한 벽을 허무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이들이 누구한테나 배울 점이 있다고 믿게 하는 일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생이 되어 아이들에게 맨 먼저 내가 한 말은 “언제나 너희들 곁에 가까이 있을게”였다. 긴 시간을 아이가 되어 아이처럼 지냈다. 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랑 노는 게 더 재미있을 때도 많다. 그래서 내가 먼저 아이들을 유혹해 바다로 산으로 수영장으로 우리 집으로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바람만 불어도 애들이랑 뭐하고 놀까를 생각한다. 아이들 빼고 ‘내가 노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일어나 걸어 나갈 힘만 있으면 나는 놀 궁리를 한다. 이렇게 오래 아이들과 놀 수 있어서 교직은 참 행복하다. 나중에 학교를 떠나게 되더라도 나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사는 동안은 그리 불행할 것 같지 않다.
2015년 2월
양영희
양영희
전 경기 시흥 하중초 교사
mesochonsa@hanmail.net
내 모든 시선은 아이들을 향해 있지만 교육은 여전히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어 슬플 때가 많다. 아이들을 만나는 게 행복하다는 이유로 선생을 하는 건 날마다 죄를 더해 가는 일인 것 같아 자꾸만 다른 생각을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구름산초의 경험을 동료들과 함께 《혁신학교 보내도 될까요?》(수작걸다)란 책으로 엮었다. 그 밖에 《다시, 혁신 교육을 생각하다 1, 2》(창비교육), 《부모는 어떻게 학부모가 되는가》, 《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 《대안의 길을 찾는 교사들》(이상 민들레) 등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