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망설임의 끝, 선택의 행복

조영옥 지음
2016년 2월 19일 처음 펴냄
값 6000원
ISBN 978-89-6880-024-5 (03650)
차례
책을 펴내면서 | 시간의 흔적
1부 또 다른 나 - 가족, 학교 그리고 이웃
가족 이야기 14
시험은 싫어 28
학교 풍경 36
학교는 공사 중 46
세월을 멈추게 한 세월호 56
자급자족 백원장 67
세상과 소통하는 법 76
2부 스케치와 함께 떠나는 여행
대중교통이 좋아 92
대구 북성로 공구거리 100
놀멍 쉬명 걸으멍 - 제주 105
한없이 펼쳐지는 마음의 넓이- 몽골 114
가고 싶지 않은, 하지만 또 가게 될 미국 120
길 위에서 만난 풍경 130
책을 펴내며
시간의 흔적
나의 어린 시절은 만화방에서 시작되었다. 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오빠를 따라 만화방에 갔다. 산호, 김종래, 박기당 등 여러 만화가들의 책을 섭렵했다. 오빠가 나에게 라이파이와 제비양, 제비기 등을 그려 주었고 나도 따라 그렸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부터 인형 그림을 그렸다. 인형 옷도 예쁘게 그려서 만들어 입히고 다른 친구들에게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이 나에게 “커서 만화가 돼라”고 하면 그려 주었던 옷도 뺏어 찢어버렸다. 왜 만화가 되라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을까?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림에 대한 나의 뚜렷한 기억은 중학교 때부터다.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미술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 주셨다. 별명이 ‘이스탄불의 사나이’였던 멋진 미술 선생님이 좋았고 학교 건물 4층에 있는 미술실이 너무 좋았다. 넓고 아늑한 미술실에는 석고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그중 특히 줄리앙을 좋아해서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1층에서 4층까지 뛰어올라가 줄리앙을 보다가 내려오곤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의 윤곽과 완벽한 비율이 내 마음을 뛰게 했었다. 어쩌면 나의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술 선생님께서는 1학기 동안 미술 시간에 눈여겨 본 신입생들을 뽑아 미술반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그 첫 훈련은 여름방학 내내 미술실에 나와서 석고 데생을 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기분은 방학이 시작될 때 사라졌다. 우리 집은 학교 근처였고 엄마가 조그만 식당을 했는데, 그 집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주인이 집을 고친다며 나가라고 했고 아버지가 새로 구한 집은 부산 동래구의 온천장 부근이었다. 온천장에서 학교가 있는 수정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면 1시간 이상 걸렸다. 더구나 아버지는 버스비도 주지 않으셨다. 나는 처음 하루만 참석하고 방학 내내 데생 연습을 하러 갈 수 없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오니 다른 친구들과 나의 그림은 천양지차가 되었다.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미술반을 할 수가 없어 그만두었다. 그런데 전체조례 시간에 친구들이 미술 대회에 나갔다 와서 상을 받을 때면 정말 괴로웠다. 전국 대회까지 나가 최우수상을 받는 친구들. 그들의 이름이 불리고 단상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묘하게 흔들려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애꿎은 운동장만 발끝으로 긁으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뒤로 나의 그림은 수업 시간 교과서 주변의 낙서로 대신하게 되었고, 미술반 대신 선택한 문예반 활동을 하며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까지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을 썼지만 마음속에는 늘 그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서도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의 장래 희망은 ‘디자이너’였다.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이 이야기는 나의 도덕 수업 시간 ‘삶의 목표 설정’ 단원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다. 삶의 목표만 설정하고 정작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우지 않고 실천도 하지 않는 예로 말이다. 그러나 요즘 나의 이야기가 달라졌다. ‘생각한 것은 언제고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로 바뀐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적절한 나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동안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여행 관련된 글을 쓰면서도 그림에 대한 갈증은 여전했다. 남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으론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이었다. 교사가 되고서는 그래도 찔끔찔끔 그림을 그렸다. 유화를 그려 보기도 했지만, 여러 환경적인 요인들로 꾸준히 그릴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5년 전 우연히 상주문화원이 주최한 무료 누드크로키 강좌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그 후 몇몇 사람들과 함께 누드 크로키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누드 크로키를 하게 되었다. 2년 정도였지만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회를 처음 갖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어떤 대상을 만나면 스케치를 하려고 노력했고, 그러던 중 교육공동체의 벗 카페에서 <이야기 그림> 공방을 만나게 되었다.
2014년 5월 처음 〈이야기 그림〉 공방(교육공동체 벗의 다음 카페에 있는 게시판)의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격려 받고 점점 스케치에 빠져들었다. 여러 면에서 박조건형 벗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더구나 점점 나아진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얼마나 기쁘던지……. 하기야 나아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열심히 그리는 노력만큼 나아지는 것인데…….
내 안의 열정보다 먼저 능력을 생각하고, 남에게 보일 것을 염두에 두어 표현하고 내놓기를 두려워했다. 그런 굴레를 벗어나게 된 것이 참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내놓기 두려워한다. 그 첫발을 딛지 못하여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라도 인생을 접을 때 끝내 하지 못한 것에 이유는 없다. 내가 하지 않은 것이다.
내 삶은 내가 원하는 욕구와 열정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설프고 설익은 그림이지만 감히 내놓으려 한다. 이 책을 무언가 망설이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싶은데 내가 그릴 수 있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과도 함께하고 싶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달라져 있는 내 그림이 그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6년 2월
조영옥
조영옥
전 경북 상주여중
duddhr921@hanmail.net
좋은 선생이 되고 싶어 전교조를 선택했고, 10여 년 동안 해직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 을 배웠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여 쓰고 떠나고 그리며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려 하는 욕심쟁이입니다.
1990년 시집 《해직일기》 발간 후 《멀어지지 않으면 닿지도 않는다》, 《꽃의 황홀》을, 2015년에 《일만칠천 원》(작은숲)을 펴냈다.
*조영옥 선생님은 2024년 11월 18일 별세하셨습니다.
긴 망설임의 끝, 선택의 행복
조영옥 지음
2016년 2월 19일 처음 펴냄
값 6000원
ISBN 978-89-6880-024-5 (03650)
차례
책을 펴내면서 | 시간의 흔적
1부 또 다른 나 - 가족, 학교 그리고 이웃
가족 이야기 14
시험은 싫어 28
학교 풍경 36
학교는 공사 중 46
세월을 멈추게 한 세월호 56
자급자족 백원장 67
세상과 소통하는 법 76
2부 스케치와 함께 떠나는 여행
대중교통이 좋아 92
대구 북성로 공구거리 100
놀멍 쉬명 걸으멍 - 제주 105
한없이 펼쳐지는 마음의 넓이- 몽골 114
가고 싶지 않은, 하지만 또 가게 될 미국 120
길 위에서 만난 풍경 130
책을 펴내며
시간의 흔적
나의 어린 시절은 만화방에서 시작되었다. 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오빠를 따라 만화방에 갔다. 산호, 김종래, 박기당 등 여러 만화가들의 책을 섭렵했다. 오빠가 나에게 라이파이와 제비양, 제비기 등을 그려 주었고 나도 따라 그렸다.
초등학교 들어가서부터 인형 그림을 그렸다. 인형 옷도 예쁘게 그려서 만들어 입히고 다른 친구들에게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이 나에게 “커서 만화가 돼라”고 하면 그려 주었던 옷도 뺏어 찢어버렸다. 왜 만화가 되라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을까?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림에 대한 나의 뚜렷한 기억은 중학교 때부터다.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미술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 주셨다. 별명이 ‘이스탄불의 사나이’였던 멋진 미술 선생님이 좋았고 학교 건물 4층에 있는 미술실이 너무 좋았다. 넓고 아늑한 미술실에는 석고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그중 특히 줄리앙을 좋아해서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 1층에서 4층까지 뛰어올라가 줄리앙을 보다가 내려오곤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의 윤곽과 완벽한 비율이 내 마음을 뛰게 했었다. 어쩌면 나의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술 선생님께서는 1학기 동안 미술 시간에 눈여겨 본 신입생들을 뽑아 미술반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그 첫 훈련은 여름방학 내내 미술실에 나와서 석고 데생을 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기분은 방학이 시작될 때 사라졌다. 우리 집은 학교 근처였고 엄마가 조그만 식당을 했는데, 그 집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주인이 집을 고친다며 나가라고 했고 아버지가 새로 구한 집은 부산 동래구의 온천장 부근이었다. 온천장에서 학교가 있는 수정동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면 1시간 이상 걸렸다. 더구나 아버지는 버스비도 주지 않으셨다. 나는 처음 하루만 참석하고 방학 내내 데생 연습을 하러 갈 수 없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오니 다른 친구들과 나의 그림은 천양지차가 되었다. 자존심이 상해 더 이상 미술반을 할 수가 없어 그만두었다. 그런데 전체조례 시간에 친구들이 미술 대회에 나갔다 와서 상을 받을 때면 정말 괴로웠다. 전국 대회까지 나가 최우수상을 받는 친구들. 그들의 이름이 불리고 단상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묘하게 흔들려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애꿎은 운동장만 발끝으로 긁으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 뒤로 나의 그림은 수업 시간 교과서 주변의 낙서로 대신하게 되었고, 미술반 대신 선택한 문예반 활동을 하며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까지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을 썼지만 마음속에는 늘 그림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서도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나의 장래 희망은 ‘디자이너’였다.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이 이야기는 나의 도덕 수업 시간 ‘삶의 목표 설정’ 단원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자주 들려주곤 했다. 삶의 목표만 설정하고 정작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우지 않고 실천도 하지 않는 예로 말이다. 그러나 요즘 나의 이야기가 달라졌다. ‘생각한 것은 언제고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로 바뀐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적절한 나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동안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여행 관련된 글을 쓰면서도 그림에 대한 갈증은 여전했다. 남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으론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이었다. 교사가 되고서는 그래도 찔끔찔끔 그림을 그렸다. 유화를 그려 보기도 했지만, 여러 환경적인 요인들로 꾸준히 그릴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5년 전 우연히 상주문화원이 주최한 무료 누드크로키 강좌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그 후 몇몇 사람들과 함께 누드 크로키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누드 크로키를 하게 되었다. 2년 정도였지만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회를 처음 갖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어떤 대상을 만나면 스케치를 하려고 노력했고, 그러던 중 교육공동체의 벗 카페에서 <이야기 그림> 공방을 만나게 되었다.
2014년 5월 처음 〈이야기 그림〉 공방(교육공동체 벗의 다음 카페에 있는 게시판)의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격려 받고 점점 스케치에 빠져들었다. 여러 면에서 박조건형 벗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더구나 점점 나아진다는 소리까지 들으니 얼마나 기쁘던지……. 하기야 나아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열심히 그리는 노력만큼 나아지는 것인데…….
내 안의 열정보다 먼저 능력을 생각하고, 남에게 보일 것을 염두에 두어 표현하고 내놓기를 두려워했다. 그런 굴레를 벗어나게 된 것이 참 다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내놓기 두려워한다. 그 첫발을 딛지 못하여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라도 인생을 접을 때 끝내 하지 못한 것에 이유는 없다. 내가 하지 않은 것이다.
내 삶은 내가 원하는 욕구와 열정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설프고 설익은 그림이지만 감히 내놓으려 한다. 이 책을 무언가 망설이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싶은데 내가 그릴 수 있을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과도 함께하고 싶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달라져 있는 내 그림이 그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6년 2월
조영옥
조영옥
전 경북 상주여중
duddhr921@hanmail.net
좋은 선생이 되고 싶어 전교조를 선택했고, 10여 년 동안 해직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 을 배웠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여 쓰고 떠나고 그리며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려 하는 욕심쟁이입니다.
1990년 시집 《해직일기》 발간 후 《멀어지지 않으면 닿지도 않는다》, 《꽃의 황홀》을, 2015년에 《일만칠천 원》(작은숲)을 펴냈다.
*조영옥 선생님은 2024년 11월 18일 별세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