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희망은 사라지지 않고
- 2026년 교육농 여름 연수 별을 노래하는 농부 서정홍 님과 만남 후기
2026년 7월 17일~18일 이틀간 교육농협동조합 여름 연수를 열었습니다. 해마다 공부 중에 찾아가 만나고 싶은 분이 떠오르면 연수로 기획해서 귀한 말씀을 들어왔습니다. 충북 괴산 한살림우리씨앗농장 안상희 님, 경남 사천 흙사랑농장 강기갑 님, 전북 진안 이든농장 배이슬 님, 경기 여주 임덕연 님 그리고 충남 홍동의 박건오, 오도 님 등.
2026년에는 경남 합천 서정홍 님을 찾아 뵀습니다.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독서회를 했기에 더욱 더 말씀을 잘 듣고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눕니다. - 편집자 주
바쁜 농사철이 다가오기 전에 황토 찜질방에 갑니다. 마을 아지매들 모시고 갑니다. 아내가, 마을 아지매들이 걸을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찜질방에 모시고 가고 싶다며 오늘 날짜를 잡았습니다. 아침 9시 30분에 우리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9시가 되기도 전에 거의 다 모였습니다.
한 해 두어 번 찜질방에 갈 때마다 찰밥도 하고, 식혜도 만들고, 떡도 하고, 나물과 미역국까지 끓여 갑니다. 아지매들은 모두 잔칫날처럼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주름진 얼굴마다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산골 마을에 살다 보니, 이런 게 진짜 잔치구나 싶습니다.
“어젯밤엔 이상하게 잠이 안 와야. 오랜만에 찜질방 간다니까 좋아서 그런가. 잠이 와야 잠을 자지.”
“니도 잠이 안 오더나. 나도 마음이 설레서 잠이 안 오더라니까.”
일흔이 넘은 아지매들이 주고받는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내가 저절로 순해지고 착해집니다.
- 서정홍, 끝내 희망은 사라지지 않고, 181~182쪽
학생들과 학교 텃밭과 텃논을 일구며 바삐 보냈던 한 학기를 뒤로 하고 이와 같은 심정(?)으로 기차에 오릅니다.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정홍 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서정홍 님이 살고 있는 마을은 서울(서울역, 수서, 광명 등에서 출발)에서 서대구, 다시 차로 합천 가회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래는 마을의 열매지기공동체에 함께하는 청년 농부 서와 님이 그린 우리 풀과 관련된 게시물입니다. 교실에 오래 걸려 있어 좀 꼬질꼬질 합니다.

가회면 계곡은 지난해 큰 비가 와서 여러 곳이 무너졌는데, 아직도 복구중이라고 합니다. 산골 마을은 복구도 더디네요. 어서 마을이 복구되기를 소망합니다.
경남 합천군 가회면, 내가 사는 나무실 마을(목곡 마을)에 2025년 7월 16일부터 닷새 동안 집중 호우가 쏟아졌습니다(가회면 누적 강수량은 525mm). 여기저기 숱한 산사태로 흙과 돌이 밭을 뒤덮고, 창고가 내려앉고, 전봇대가 넘어지고, 큰 돌과 나무들이 마을 길을 모조리 막아 자동차 한 대 드나들 수 없게 되었습 니다. 며칠째 수돗물과 전기가 끊겼습니다. 조금 낮은 곳인 가회면 소재지는 집이 물에 잠기고, 자동차와 농기계조차 물살에 떠밀려 찾을 길이 없다고 합니다.
비가 그치고 나서 아내와 20년 내내 농사짓던 산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산밭으로 가는 다리와 개울밭이 거센 물살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밭은, 아내랑 묵은 땅을 개간하여 유기농 인증을 받기까지 숱한 땀과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기후 재난 앞에서도 당신과 내가 살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아내는 나를 위로하면서도 속울음을 삼켰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안타깝고 두려운 일은, 앞으로 도시고 농촌이고 세상 어디에서나 이런 기후 재난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하고 나서야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 닥친 우리 모두의 일이란 걸 알았습니다.
-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12~13쪽
(전봇대가 꺾여 쓰러진 곳까지 밭이 있던 자리였다고 합니다. 계곡물에 쓸려가 축대만 일부 남았습니다. 합천군청의 재해 복구 사업 계획을 보니 2026년 3월 공사 입찰을 해 8월 18일까지 공사를 마치도록 했군요. 예산을 약 93억원으로 잡았으나 입찰은 84억여 원. 재해지역 복구를 우선시 해서 즉시 하지 않고 이듬해 처리하는 행정 지원과 절차도 이해 안 되고, 재해 복구에 입찰 가격을 우선시하는 경쟁입찰도 이해가 안 되고. >>>관련 기사)

서정홍 님이 일구는 밭에는 돌담을 세워서 흙의 유실을 막습니다. 돌담을 잘 쌓는 분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쌓았다고 해요. 사진으로는 돌담이 주는 느낌을 얻을 수 없군요! 작은 돌과 큰 돌이 어우러져 서로를 받쳐 주며 뿜어내는 아름다움이란!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돌담을 쌓는 지혜로 아늑하고도 예술적인 밭이 되었어요.


담 안쪽에는 넓은 박하밭이 펼쳐졌어요. 잎을 따서 향기를 맡으니 진하고 오래갑니다. 유기농 박하는 말려서 가공하여 차로 생산됩합니다.

여주와 오이 등이 자라는 넝쿨 터널은 순차적으로 심어서 지속적으로 생산이 될 수 있게 한다고 해요. 학교에서도 땅이 넓으면 이 방법으로 하면 좋겠어요.

옆에는 토마토, 가지 등이 자라고 있었어요. 작물을 공급하는 한살림에서 깐깐하게 유기농 인증을 받으신다고 합니다.

열매지기영농법인의 메인 작물은 생강입니다. 생강차, 생강청 등으로 가공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다고 합니다.

돌담 아래엔 토란과 강황밭입니다. 돌담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마을회관을 지나 댁으로 갑니다. 마을회관은 마을 할머니가 땅을 내 주어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어 먹을 곳이 없어 애태우다, 2019년에 마을회관을 지었다 ... 농촌 마을은 몇 가구 이상 모여 살면 나라에서 마을회관을 지어 준다. 그런데 마을회관 지을 터는 마을에서 구해야만 했다 ... 그 터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2017년 어느 날, 마을회관을 지을 수 있는 터를 하동 할머니가 내어 주셨다. “갈수록 마을 사람들이 나이 들고 몸도 불편해지는데 함께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며 그냥 내어 주셨다.
-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298쪽

마을 우물이었던 곳도 지납니다. 예전에는 150여 명이 이 물로 밥을 해 먹고 빨래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여전히 물이 솟고 아주 시원하다고 해요.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죠. 손이라도 담그어 봐야...

가는 길에 녹두를 보았어요. 기르기 어려운 녹두는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고 해요. 알이 작습니다.
오늘도 아내와 나는 녹두밭에 마주 앉아 녹두를 땄습니다. 날마다 두세 시간은 부지런하게 따야 합니다. 마을 길가에 있는 밭이라... 할머니들이 지나가다 까맣게 익은 녹두가 보이면 가만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야, 우짤라고 그라노. 녹두가 까맣게 익었는데 얼릉 가서 따야지. 녹두 농사 지으려면 부지런히야제.” “사람 입에 들어가는기 무섭다니까. 어쨌등가 부지런해야 거둘 게 있어야.” 이런 말씀을 듣고 나면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어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녹두를 땁니다.
-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161쪽

드디어 댁에 도착. 마당과 텃밭이 놀라울 정도로 무척 깔끔합니다.








이 나뭇가지들은 난방용. 틈틈이 가지치기 한 것을 모은다고 해요. 집을 작게 지어 적은 에너지로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정갈하게 준비하신 간식을 먹었습니다. 사모님은 도인이십니다.
당신같이 걱정 없는 사람하고 40년을 넘게 살았으니 나도 이젠 도인이 다 되어 가요.
-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127쪽
잠시 땀을 식힌 후에, 이제 토기장이의 집으로 갑니다. 몇 명은 서정홍 님이 모는 트럭 뒤에 타고 싱싱~


드디어 토기장이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는 담쟁이 인문학 교실도 꾸준히 열린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서와, 수연이(네 분은 가족이십니다) 함께 꾸리는 퍼머컬처 밭입니다.

오늘(김형태 목사)과 하루(박미영 카페지기)는 부부입니다. 교회 목회 일을 해서 받은 퇴직금 2천만원으로 귀농을 시작하셨다고 해요.
(두 분의 인터뷰 글 참조. 글에 나온 곳은 지금 자리로 옮기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글 보기)
유기농 팥으로 정성껏 만든 빙수가 맛있다고 해서 곧 밥을 먹을 거지만 안 먹을 수 없었어요.
이제 서정홍 님 북토크를 할 차례...
이 마을에 들어오신 과정, 살면서 느끼시는 것, 담쟁이 인문학 교실, 청년 농부들과의 공동체 생활, 마을 어르신(서정홍 님이 스승님이라고 부르시는...)들과의 교감과 배움 이런 이야기를 찬찬히 해 주십니다.

담쟁이 인문학 교실에서는 시 창작 수업도 열고 다양한 강연도 하여서 인근 또는 멀리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하는 배움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산골 마을까지 찾도록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북토크가 끝나고 하루 님이 지어준 맛난 밥상으로 배를 채워야 할 시간입니다. 너무 맛있어서(설명 불가) 두 번, 세 번 먹었습니다.

▲노르스름한 것은 죽순볶음, 그 옆은 오이볶음. 우엉인가 싶은 검은색 반찬은... 그럴 거라도 짐작도 못한 마늘쫑으로 만든 정과(마늘쫑 조림?)
귀한 저녁을 배불리 먹고 수연님의 공연을 보러 다시 모였어요. 마침 시간이 된 수연 님의 귀한 연주와 노래 공연을 보게 되다니요. 수연 님은 싱어송 라이터 겸 기타리스트로 이제 음반 기획과 제작도 손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연 님은 서와(누나) 님과 함께 ‘서와콩’이라는 듀엣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서와콩의 플레이리스트
토기장이의 집은 의자와 책상을 재배치하면 미니 공연장으로 변신. 수연 님은 8년 전 전국오월창작가요제 본선에도 오른 실력파 인디 가수입니다.
>>>유튜브 공연 영상
서와콩은 모두 홈스쿨링으로 모든 삶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지혜를 얻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심은 농업과 마을인 것 같았어요.

토기장이 집 곳곳에는 책과 사진집 등이 있어요.
매년 가족과 마을의 활동을 사진집으로 담아내셨는데요 10권이 넘었어요.
공연과 함께 황매산 자락 마을의 밤도 깊어 갑니다.
교육농협동조합 손님들만을 위한 귀한 공연이 끝나고 모두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청년 농부들과 나이 든 농부들이 콜라보로 만들어가는 마을 공동체 응원합니다!


일찍 서울로 가야 하는 분들이 있어 6시에 일어났어요. 산골의 아침 공기가 좋습니다.
이제 서정홍 님과 오늘과 하루 님 가족들 모두 집과 밭이 있으시죠.
저희에게 귀한 배움을 주신 공간입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차를 달려 합천 해인사로 왔습니다. 8만대장경은 문살 틈으로 보았습니다. 계곡을 따라 걷는 해인사 소리길이 유명하다는데, 걷는 분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루는 날을 잡아야 물 소리, 바람 소리 등을 느끼며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인사를 내려와 대구 간송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대구 간송미술관에서는 신윤복의 미인도(올해 12월 말까지 전시), 유덕장의 설죽(올해 8월 말까지 전시)을 전시하고, 간송미술관 소장품들을 디지털로 제작한 영상을 상영중이었습니다. 미술관은 넓고 쾌적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세심한 안내, 단지 한 작품만을 위한 전시 연출. 미술관 자체를 찾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상설전시실의 간송문화재단 소장의 도자, 회화, 서예 전시(12월 13일까지 전시)를 보러 가는 계단 벽면에는 18가지 문장 카드가 꽂혀 있습니다. 맘에 드는 문장을 고르면 뒷면에는 그를 씨앗 삼아 작품으로 이끄는 말이 써 있습니다.
(낭만 찾기, 일상의 쉼표, 작품의 진솔한 이야기 듣기, 오래된 시간 걷기, 교양 충전이 필요한 날, 한 사람이 지킨 가치가 궁금해, 예고 없는 영감을 위해, 예술가 되기, 설렘이 필요해, 소중한 사람과 함께, 아름다움 알려주기, 예술을 핑계로 이야기 나누기, 책에서 보던 작품을 직접 본다면, 내 취향이 궁금해, 평범한 하루 속 특별함, 인식의 문 열기, 나 찾아가기, 굳이 이유는 없어)

카드가 이런 용도였다는 건 후기를 정리하면서야 알게 됐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여유롭게 가서 즐기시면 좋겠네요.



전시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홈페이지를 참고하셔요.
>>>대구 간송미술관
도시 삶을 정리하고 작은 산골 마을에 뿌리내리기까지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더구나 천수답(비가 와야만 모를 내고 기를 수 있는 논)을 빌려 농사를 지으려니 여간 힘들고 어려운 게 아니었습 니다. 한 해 쓸 거름조차 마련하지 못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마음이 간절하면 하늘이 돕는다고 하지요. 한번은 내가 거름 걱정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는 듯이, 사천에 사는 흙사랑농장 강기갑 선배님(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큰 짐차에 거름을 가득 싣고 캄캄한 밤에 찾아왔습니다.
“아니, 선배님! 한밤중에 이 먼 곳까지 어인 일인지요?”
“산골에 뿌리를 내렸다기에 어찌 살고 있나 둘러보고, 농사지으려면 거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싣고 왔네그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밤 10시가 넘었는데 피곤한 몸으로 운전하시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시려고요?”
“좋은 일은 생각날 때 바로 해야지. 자꾸 미루다 보면 언제 하게 될지 모르겠더라고.”
“어쨌든 이 고마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야 할지요?”
“어허, 은혜라니! 농사 선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
-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174-175쪽
사람은 다 누구나 남의 도움으로 산다며 강기갑 님의 도움을 받은 얘기를 들려주는 장면입니다. 강기갑 님은 조합에서 지난 2024년 10월에 찾아뵈었습니다. 서정홍 님과 또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강기갑 흙사랑농장 탐방기)
교육농조합원들도 서로 연결하고 도움을 주고 나누며 산다는 것을 배웁니다.
- 이상 조진희 님 글에 풀씨가 약간 더했습니다.
봄날쌤을 만나고
겹겹 둘러싼 산들을 옆에 끼고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달려 황매산 기슭 산골 마을에 다다르면
정자 곁 키 큰 상수리가 펼쳐 둔 그늘과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의 노래가 반가이 맞아줍니다.
길 따라 성큼성큼 햇살을 등에 지고 봄날이 우리를 마중 나옵니다.
지난여름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무너지고 떼 내어져 떠밀려 내려와 어지러이 흩어진 커다란 돌 사이로
시인을 따라 개울을 지나 잠시 올라서면
시인의 산밭이란 아! 어쩜 이토록 아름다운지요. 돌로 엮어 낸 한 편의 시와 마주합니다.
돌 하나에 정성돌 하나에 균형돌 하나에 비움돌 하나에 자족밭 따라 까맣게 반짝이는 돌 돌 돌
비와 바람과 햇살이 드나드는 곳여린 생명들이 오고 가는 곳
농부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산과 강과 마을이 녹아드는 곳
초록빛 토종 박하가 전하는 화~한 향내 길게 솟아오른 보랏빛 맥문동의 우아한 자태
심는 시기를 달리한 오이에서 보는 농부의 지혜
여주, 생강, 토란, 강황, 가지, 방울토마토
이 작은 땅이 선보이는 넉넉한 나눔
교육농이 선사한 여름 연수가 또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풀씨, 늘보, 명숙, 진희, 이은, 모모 덕분에요.
조금씩 천천히 각자가 가진 치명적인 매력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봄날, 오늘, 하루, 수연과의 만남이 참 귀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수연이 선물한 여름밤 콘서트가 더욱 여행이 가진 묘미를 더했습니다.
- 모나
“내가 저절로 순해지고 착해집니다”
1학기, 이런저런 일들로 곤두서 있고 날카로워져 있는 시간들을 통과해 여름 방학을 맞았다.
깜냥에 맞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버거움, 몸이 움직여야 하는 속도를 생각의 속도가 맞추지 못해 내가 알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조바심. 공허함.
연수 내내 환대의 말씀들로 채워 주시는 서정홍 선생님과 (말씀하시는 내내 더 많은 말씀들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선생님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돌을 쌓아올린 시간들이 전해 주는 정직함. 말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고 돌보는 분들과의 만남. 오는 이들을 기다리며 정성을 쏟으셨을 정갈한 밥상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순해져도 좋아, 착한 마음을 먹어도 된다고 말을 건네오는 것 같았다.
뜻밖의 시간들을 누렸다. 연결은 연결을 낳고… 퍼머컬처 기웃하며 이런 분들이 있군 궁금하던 서와 님의 책꽂이를 기웃해 보고, 콩님의 음악을 만나게 되다니. 모든 감각을 깨우는 음악도 아름다웠지만 음악과 음악 사이 콩의 느릿느릿 한 단어씩 내려놓는 듯한 이야기들도 와 닿았다. 진정성. 말과 글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런 흔적들을 엿보기도 하고 선물받기도 했다.
두런두런 교육농 선생님들과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보이는 것보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는데 이번 연수를 다녀오면서는 내 삶에 교육농이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았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뿌리내리기 시작했군.
서와 님의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는 시집을 모셔 왔다. 합천 토기장이의 집에서의 감각을 종종 상기시키고 싶을 때 제격일 듯하다. 응원받은 느낌이었다.
- 모모
좋은 삶을 위해
서정홍 시인을 만났다.
처음 만남은 시집, 내가 가장 착해질 때,를 통해서였다. 농사지으며 쓴 시들이 대부분이라 공감 가는 게 많았다. 친정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어 우리를 키웠기에, 더러는 노동력을 제공했던 시절들이 있었기에 시인이 쓴 시들은 친근하게 다가왔고, 내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히 희망을 피워 올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시들은 도시에서 살면서 잃어버렸던 나의 꿈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서정홍 시인을 만났다.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를 통해 두 번째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산골 농부 시인. 기후 위기로 농사도 재난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농사가 유일한 기후위기 대안이고 희망이라 여긴다. 학교에서 우리가 텃밭을 고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리라.
시인은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시도 짓고, 청년들의 삶도 짓는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단다. 땅에 기대어 서로 도와가며 농사짓는 삶이 참삶이고 이런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글도 써야 한다는 대목에선 이오덕 선생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농부의 삶은 언어로 전환되고, 이를 도시 사람들과도 부지런히 나눈다. 누구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기에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바른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농부들과 연결되는 방법이겠다 싶다.
시인은 30대 후반부터 40대를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밀살리기운동 경남지부에서 일했단다. 오래전부터 농부로 살아갈 터를 닦고 있었던 게다. 성직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직이 농부라고, 그런 생각들이 그를 산골 농부로 거듭나게 했나 보다.
서정홍 시인을 만났다.
세 번째. 합천 황매산 자락에서다. 60은 청춘이고 70부터 장년이란 말이 시인을 보며 실감났다. 건강하셔서 다행이다. 20여 년 농부로서 삶을 가능하게 했던 샘밭, 돌담밭, 개울밭, 박하밭, 생강밭을 둘러보았다. 시인의 이야기가 더해져 더 각별하게 보인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부시인의 삶이 존재하는 곳. 생강, 맥문동, 오이, 여주, 토마토 등 여러 생명들도 니땅 내땅 가리지 않고 어울려 살고 있다. 건강한 농부들과 건강한 땅과 건강한 작물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시인의 집을 잠깐 들렀다. 들어서는 길에 꽃들이 반기고, 마당에 들어서니 가장자리를 따라 정갈한 텃밭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 교육농 연수 부제 '텃밭에서 부엌으로' 가 딱 어울리는 집이다.
트럭을 타고 옮겨간 토기장이의 집에서 열매지기공동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교육농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은 다르지만 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동지’라는 말씀이 뜨겁게 다가왔다.
뜻밖에도 수연의 기타 공연이 우리의 귀를 황홀하게 해 주었다. 조근조근 곡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는데, 참 심지 곧은 청년이구나 싶었다. 홈스쿨링으로 이런 줏대 있는 자녀를 키워 내신 오늘과 하루님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공교육 교사로 나는 어떤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서정홍 시인과 초창기 생명평화운동을 함께 하셨던 선배님 중 한 분이신 천규석 님이 귀농하신 곳이 창녕군 영산면이다. 공교롭게도 친정과 지근 거리에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농촌운동을 펼친 농민운동가가 살고 계셨다니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는지...
더구나 이 분은 이상적 민주주의로서 농본자치 공동체를 상상하셨는데, 1995년 한살림대구공동체 회원들이 내놓은 회비로 창녕군 남지읍 수개리에 ‘공생농 두레농장’을 만들어 15년을 운영하셨단다. 그 수개리는 바로 내 고향 마을이다. 이런 인연에 소름이 돋는다.
생각해 보면 대학시절 가톨릭 학생회 연합 동아리에서 농활을 갔었는데, 그때마다 지역 가톨릭 농민회와 조우하기도 했다. 이쯤이면 교육농을 접한 것도 운명처럼 느껴진다.
지역마다 열매지기공동체와 같은 농촌공동체가 늘어나기를 꿈꾼다. 홍성이 그렇고, 파주가 그렇고, 창녕에서도 이어지길. 청년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며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농촌기본수당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
나도 농부로서 살아갈 날을 상상한다.
- 서명숙
서정홍 시인 부부ᆞ 오늘ᆞ하루ᆞ서와콩의 삶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그 빛 속에 푹 빠져 은혜받고 온 1박2일이었습니다.
농장, 집, 정원, 시, 글, 그림, 음악, 음식 그 모든 것 속에
한 사람의 마음가짐, 삶의 발자국이 오롯이 알알이 담겨 있었습니다.
농사만이 아니라 삶도 어떤 씨앗을 선택해 어떤 땅에 심고 가꾸는가에 따라
그 수고로움ᆞ기쁨이 담겨 고유의 길을 내고 결과물을 냅니다.
내 삶을 되돌아보고
자연과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이고 자신의 빛깔을 지키며
자연과 이웃과 우주의 에너지와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그 기개와 용기에 감동과 위안을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안개 자욱한 아름다운 숲속 숙소에서의 하룻밤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귀한 연수 기획ᆞ진행해 주신 벗 농사학림에 감사드립니다.
- 김이은
말과 삶의 일치
묻어가기 습성으로 따라나선 길
행선지는 합천 어디쯤, 시인 함자 정도 외 사전 정보 거의 없이 어떤 끌림으로 혹은 교육농 연수 습관으로 가던 길
기차에서 내려 갈아탄 랜터카에서 들려오던 이야기 중 귀에 박히는 이야기 하나.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시인이시래”
“언행일치의 삶을 살고 계시는 농부지!”
아~ 생각났다. 내가 이 연수 묻어가 보기로 홀연히 결정했던 이유.
지난 물난리가 할퀴고 간 계곡 너머 제법 익숙한 풍경의 유기농 밭
이를 둘러싼 익숙하지 않은 예술적 돌담.
시멘트 포장 일망정 내 어릴 적 정취가 묻어나던 고샅길 돌아 다다른
시인의 정갈한 집 마당 채소밭과 아궁이와 낮은 담 너머 푸른 대나무 숲.
17평 안으로 갈무리하셨다던 시인의 욕망 우주.

토기장이 집에서 옛날 맛 팥빙수에 정성 가득했던 저녁 만찬과
홈스쿨링 청년의 유기농 맛 기타 노래 공연까지 함께 한 시인과의 환담.
입호강, 귀호강, 눈호강이었다.
시인의 산문집을 사서 귀가 후 몇 편 읽어 봤다. 현지에서 하시던 말씀과 같았다.
말과 글도 일치하는 분이시군!
평소에도 찔끔 눈물 헤프지만, 글 꼭지마다 매번 눈물을 짰다.
왜 그랬을까?
내가 또 (예년보다) 더 늙어서일까?
내 유년기 산천과 엄마 아빠와 동네 어르신들과 동무들이 어른거려서였을까?
시인이 글을 맛깔나게 잘 써서일까?
내용이 진솔하고 진정성이 있어서일까?
문득, 난 또 습관처럼 소비만 하고 있군!
- 늘보
서로를 돌보는 삶
교육 현장에 늘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나만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나만 힘들까?
아니, 다른 사람도 힘들까? 그러면 그들에게 내 어려움을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해도 될까?
나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은 기꺼이 도와줄까?
네 문제니까,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고 밀쳐 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신규 교사에게, 비정규직 교사에게 어려운 일을 떠넘기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네이스 담당, 방과후 담당, 학폭 담당... 이들은 누구일까.
업무 중압감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체계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서 개인은 낙관적인 앞날을 꿈꾸기도 하고 냉소로 자기 보호장치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렇지만 어떤 업무를 모두가 ‘기피’한다면 구성원들이 그 업무에 대해 공유하는 ‘부정적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업무는 개인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그룹이 맡아 해결하는 방향이 제안되고 풀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경험은 다수로 확산돼 시스템화되지 못하고 끊어진다.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은 ‘혁신’을 배반하고 단절과 고립을 반복시키고 있다.
여름 연수 후기를 엉뚱하게도 이 얘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들은 따뜻함이
서로를 돌보는 삶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로’가 손을 내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작동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웃을 살리는 손, 자연의 생명을, 생태계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손은 단절과 고립을 벗어나자는 데서 열린다.
- 풀씨

서정홍 님의 생각을 나누며 연수 후기를 마무리합니다.
몸이 12개라도 모자란다는 농사철에, 마을회관을 지나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농촌 마을회관에,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정규직 청년이 한 사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농민들이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다치면 가까운 보건소에 모셔 가고, 큰일이 생기면 119에 연락도 하고, 아침마다 혼자 사시는 분들 방문도 하고, 농사짓다 등이 굽거나 골병들지 않도록 몸을 살리는 운동도 같이 하고, 농한기에는 영화 상영도 하고, 한글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반도 열고,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친환경농업도 가르쳐 주고, 철마다 나오는 건강한 농산물 판매도 돕고, 새로운 정보도 알려 주고, 해와 바람과 물로 에너지 공급을 늘리고,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도 짜고...
이런 일을 잘하려면 나라에서 관심 있는 청년들을 모아 ‘농촌 마을 정규직 청년학교’를 열어 마땅한 교육을 받게 해야겠지. 졸업하면 자격증도 주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전국에 있는 3만 개가 넘는다는 마을회관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희망이 넘쳐 나지 않을까. 3만 명이 넘는 청년에게 우리 겨레 ‘생명의 텃밭’인 농촌을 살리는 좋은 일자리를 줄 수도 있겠지. 앞으로 닥쳐올 지구 가열화와 기후 위기도 줄일 수 있고 말이야. 너무 지나친 생각은 아니지 싶다.
- 서정홍,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277~278쪽
끝내 희망은 사라지지 않고
- 2026년 교육농 여름 연수 별을 노래하는 농부 서정홍 님과 만남 후기
2026년 7월 17일~18일 이틀간 교육농협동조합 여름 연수를 열었습니다. 해마다 공부 중에 찾아가 만나고 싶은 분이 떠오르면 연수로 기획해서 귀한 말씀을 들어왔습니다. 충북 괴산 한살림우리씨앗농장 안상희 님, 경남 사천 흙사랑농장 강기갑 님, 전북 진안 이든농장 배이슬 님, 경기 여주 임덕연 님 그리고 충남 홍동의 박건오, 오도 님 등.
2026년에는 경남 합천 서정홍 님을 찾아 뵀습니다.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독서회를 했기에 더욱 더 말씀을 잘 듣고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눕니다. - 편집자 주
학생들과 학교 텃밭과 텃논을 일구며 바삐 보냈던 한 학기를 뒤로 하고 이와 같은 심정(?)으로 기차에 오릅니다.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정홍 님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서정홍 님이 살고 있는 마을은 서울(서울역, 수서, 광명 등에서 출발)에서 서대구, 다시 차로 합천 가회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래는 마을의 열매지기공동체에 함께하는 청년 농부 서와 님이 그린 우리 풀과 관련된 게시물입니다. 교실에 오래 걸려 있어 좀 꼬질꼬질 합니다.
가회면 계곡은 지난해 큰 비가 와서 여러 곳이 무너졌는데, 아직도 복구중이라고 합니다. 산골 마을은 복구도 더디네요. 어서 마을이 복구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봇대가 꺾여 쓰러진 곳까지 밭이 있던 자리였다고 합니다. 계곡물에 쓸려가 축대만 일부 남았습니다. 합천군청의 재해 복구 사업 계획을 보니 2026년 3월 공사 입찰을 해 8월 18일까지 공사를 마치도록 했군요. 예산을 약 93억원으로 잡았으나 입찰은 84억여 원. 재해지역 복구를 우선시 해서 즉시 하지 않고 이듬해 처리하는 행정 지원과 절차도 이해 안 되고, 재해 복구에 입찰 가격을 우선시하는 경쟁입찰도 이해가 안 되고. >>>관련 기사)
서정홍 님이 일구는 밭에는 돌담을 세워서 흙의 유실을 막습니다. 돌담을 잘 쌓는 분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쌓았다고 해요. 사진으로는 돌담이 주는 느낌을 얻을 수 없군요! 작은 돌과 큰 돌이 어우러져 서로를 받쳐 주며 뿜어내는 아름다움이란!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돌담을 쌓는 지혜로 아늑하고도 예술적인 밭이 되었어요.
담 안쪽에는 넓은 박하밭이 펼쳐졌어요. 잎을 따서 향기를 맡으니 진하고 오래갑니다. 유기농 박하는 말려서 가공하여 차로 생산됩합니다.
여주와 오이 등이 자라는 넝쿨 터널은 순차적으로 심어서 지속적으로 생산이 될 수 있게 한다고 해요. 학교에서도 땅이 넓으면 이 방법으로 하면 좋겠어요.
옆에는 토마토, 가지 등이 자라고 있었어요. 작물을 공급하는 한살림에서 깐깐하게 유기농 인증을 받으신다고 합니다.
열매지기영농법인의 메인 작물은 생강입니다. 생강차, 생강청 등으로 가공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다고 합니다.
돌담 아래엔 토란과 강황밭입니다. 돌담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마을회관을 지나 댁으로 갑니다. 마을회관은 마을 할머니가 땅을 내 주어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우물이었던 곳도 지납니다. 예전에는 150여 명이 이 물로 밥을 해 먹고 빨래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여전히 물이 솟고 아주 시원하다고 해요.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죠. 손이라도 담그어 봐야...
가는 길에 녹두를 보았어요. 기르기 어려운 녹두는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고 해요. 알이 작습니다.
드디어 댁에 도착. 마당과 텃밭이 놀라울 정도로 무척 깔끔합니다.
이 나뭇가지들은 난방용. 틈틈이 가지치기 한 것을 모은다고 해요. 집을 작게 지어 적은 에너지로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정갈하게 준비하신 간식을 먹었습니다. 사모님은 도인이십니다.
잠시 땀을 식힌 후에, 이제 토기장이의 집으로 갑니다. 몇 명은 서정홍 님이 모는 트럭 뒤에 타고 싱싱~
드디어 토기장이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는 담쟁이 인문학 교실도 꾸준히 열린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서와, 수연이(네 분은 가족이십니다) 함께 꾸리는 퍼머컬처 밭입니다.
오늘(김형태 목사)과 하루(박미영 카페지기)는 부부입니다. 교회 목회 일을 해서 받은 퇴직금 2천만원으로 귀농을 시작하셨다고 해요.
(두 분의 인터뷰 글 참조. 글에 나온 곳은 지금 자리로 옮기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글 보기)
유기농 팥으로 정성껏 만든 빙수가 맛있다고 해서 곧 밥을 먹을 거지만 안 먹을 수 없었어요.
이제 서정홍 님 북토크를 할 차례...
이 마을에 들어오신 과정, 살면서 느끼시는 것, 담쟁이 인문학 교실, 청년 농부들과의 공동체 생활, 마을 어르신(서정홍 님이 스승님이라고 부르시는...)들과의 교감과 배움 이런 이야기를 찬찬히 해 주십니다.
담쟁이 인문학 교실에서는 시 창작 수업도 열고 다양한 강연도 하여서 인근 또는 멀리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하는 배움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굽이굽이 오르락내리락 산골 마을까지 찾도록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북토크가 끝나고 하루 님이 지어준 맛난 밥상으로 배를 채워야 할 시간입니다. 너무 맛있어서(설명 불가) 두 번, 세 번 먹었습니다.
▲노르스름한 것은 죽순볶음, 그 옆은 오이볶음. 우엉인가 싶은 검은색 반찬은... 그럴 거라도 짐작도 못한 마늘쫑으로 만든 정과(마늘쫑 조림?)
귀한 저녁을 배불리 먹고 수연님의 공연을 보러 다시 모였어요. 마침 시간이 된 수연 님의 귀한 연주와 노래 공연을 보게 되다니요. 수연 님은 싱어송 라이터 겸 기타리스트로 이제 음반 기획과 제작도 손수 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연 님은 서와(누나) 님과 함께 ‘서와콩’이라는 듀엣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서와콩의 플레이리스트
토기장이의 집은 의자와 책상을 재배치하면 미니 공연장으로 변신. 수연 님은 8년 전 전국오월창작가요제 본선에도 오른 실력파 인디 가수입니다.
>>>유튜브 공연 영상
서와콩은 모두 홈스쿨링으로 모든 삶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지혜를 얻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심은 농업과 마을인 것 같았어요.
토기장이 집 곳곳에는 책과 사진집 등이 있어요.
매년 가족과 마을의 활동을 사진집으로 담아내셨는데요 10권이 넘었어요.
공연과 함께 황매산 자락 마을의 밤도 깊어 갑니다.
교육농협동조합 손님들만을 위한 귀한 공연이 끝나고 모두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청년 농부들과 나이 든 농부들이 콜라보로 만들어가는 마을 공동체 응원합니다!
일찍 서울로 가야 하는 분들이 있어 6시에 일어났어요. 산골의 아침 공기가 좋습니다.
이제 서정홍 님과 오늘과 하루 님 가족들 모두 집과 밭이 있으시죠.
저희에게 귀한 배움을 주신 공간입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차를 달려 합천 해인사로 왔습니다. 8만대장경은 문살 틈으로 보았습니다. 계곡을 따라 걷는 해인사 소리길이 유명하다는데, 걷는 분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루는 날을 잡아야 물 소리, 바람 소리 등을 느끼며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인사를 내려와 대구 간송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대구 간송미술관에서는 신윤복의 미인도(올해 12월 말까지 전시), 유덕장의 설죽(올해 8월 말까지 전시)을 전시하고, 간송미술관 소장품들을 디지털로 제작한 영상을 상영중이었습니다. 미술관은 넓고 쾌적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세심한 안내, 단지 한 작품만을 위한 전시 연출. 미술관 자체를 찾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상설전시실의 간송문화재단 소장의 도자, 회화, 서예 전시(12월 13일까지 전시)를 보러 가는 계단 벽면에는 18가지 문장 카드가 꽂혀 있습니다. 맘에 드는 문장을 고르면 뒷면에는 그를 씨앗 삼아 작품으로 이끄는 말이 써 있습니다.
(낭만 찾기, 일상의 쉼표, 작품의 진솔한 이야기 듣기, 오래된 시간 걷기, 교양 충전이 필요한 날, 한 사람이 지킨 가치가 궁금해, 예고 없는 영감을 위해, 예술가 되기, 설렘이 필요해, 소중한 사람과 함께, 아름다움 알려주기, 예술을 핑계로 이야기 나누기, 책에서 보던 작품을 직접 본다면, 내 취향이 궁금해, 평범한 하루 속 특별함, 인식의 문 열기, 나 찾아가기, 굳이 이유는 없어)
카드가 이런 용도였다는 건 후기를 정리하면서야 알게 됐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여유롭게 가서 즐기시면 좋겠네요.
전시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홈페이지를 참고하셔요.
>>>대구 간송미술관
사람은 다 누구나 남의 도움으로 산다며 강기갑 님의 도움을 받은 얘기를 들려주는 장면입니다. 강기갑 님은 조합에서 지난 2024년 10월에 찾아뵈었습니다. 서정홍 님과 또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강기갑 흙사랑농장 탐방기)
교육농조합원들도 서로 연결하고 도움을 주고 나누며 산다는 것을 배웁니다.
- 이상 조진희 님 글에 풀씨가 약간 더했습니다.
봄날쌤을 만나고
겹겹 둘러싼 산들을 옆에 끼고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달려 황매산 기슭 산골 마을에 다다르면
정자 곁 키 큰 상수리가 펼쳐 둔 그늘과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의 노래가 반가이 맞아줍니다.
길 따라 성큼성큼 햇살을 등에 지고 봄날이 우리를 마중 나옵니다.
지난여름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무너지고 떼 내어져 떠밀려 내려와 어지러이 흩어진 커다란 돌 사이로
시인을 따라 개울을 지나 잠시 올라서면
시인의 산밭이란 아! 어쩜 이토록 아름다운지요. 돌로 엮어 낸 한 편의 시와 마주합니다.
돌 하나에 정성돌 하나에 균형돌 하나에 비움돌 하나에 자족밭 따라 까맣게 반짝이는 돌 돌 돌
비와 바람과 햇살이 드나드는 곳여린 생명들이 오고 가는 곳
농부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산과 강과 마을이 녹아드는 곳
초록빛 토종 박하가 전하는 화~한 향내 길게 솟아오른 보랏빛 맥문동의 우아한 자태
심는 시기를 달리한 오이에서 보는 농부의 지혜
여주, 생강, 토란, 강황, 가지, 방울토마토
이 작은 땅이 선보이는 넉넉한 나눔
교육농이 선사한 여름 연수가 또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풀씨, 늘보, 명숙, 진희, 이은, 모모 덕분에요.
조금씩 천천히 각자가 가진 치명적인 매력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봄날, 오늘, 하루, 수연과의 만남이 참 귀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수연이 선물한 여름밤 콘서트가 더욱 여행이 가진 묘미를 더했습니다.
- 모나
“내가 저절로 순해지고 착해집니다”
1학기, 이런저런 일들로 곤두서 있고 날카로워져 있는 시간들을 통과해 여름 방학을 맞았다.
깜냥에 맞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는 버거움, 몸이 움직여야 하는 속도를 생각의 속도가 맞추지 못해 내가 알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조바심. 공허함.
연수 내내 환대의 말씀들로 채워 주시는 서정홍 선생님과 (말씀하시는 내내 더 많은 말씀들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선생님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돌을 쌓아올린 시간들이 전해 주는 정직함. 말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서로를 의지하고 돌보는 분들과의 만남. 오는 이들을 기다리며 정성을 쏟으셨을 정갈한 밥상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순해져도 좋아, 착한 마음을 먹어도 된다고 말을 건네오는 것 같았다.
뜻밖의 시간들을 누렸다. 연결은 연결을 낳고… 퍼머컬처 기웃하며 이런 분들이 있군 궁금하던 서와 님의 책꽂이를 기웃해 보고, 콩님의 음악을 만나게 되다니. 모든 감각을 깨우는 음악도 아름다웠지만 음악과 음악 사이 콩의 느릿느릿 한 단어씩 내려놓는 듯한 이야기들도 와 닿았다. 진정성. 말과 글과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런 흔적들을 엿보기도 하고 선물받기도 했다.
두런두런 교육농 선생님들과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보이는 것보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는데 이번 연수를 다녀오면서는 내 삶에 교육농이 뿌리를 내리고 자리 잡았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뿌리내리기 시작했군.
서와 님의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는 시집을 모셔 왔다. 합천 토기장이의 집에서의 감각을 종종 상기시키고 싶을 때 제격일 듯하다. 응원받은 느낌이었다.
- 모모
좋은 삶을 위해
서정홍 시인을 만났다.
처음 만남은 시집, 내가 가장 착해질 때,를 통해서였다. 농사지으며 쓴 시들이 대부분이라 공감 가는 게 많았다. 친정 부모님께서 농사를 지어 우리를 키웠기에, 더러는 노동력을 제공했던 시절들이 있었기에 시인이 쓴 시들은 친근하게 다가왔고, 내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히 희망을 피워 올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시들은 도시에서 살면서 잃어버렸던 나의 꿈들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서정홍 시인을 만났다.
희망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를 통해 두 번째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산골 농부 시인. 기후 위기로 농사도 재난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농사가 유일한 기후위기 대안이고 희망이라 여긴다. 학교에서 우리가 텃밭을 고집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리라.
시인은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시도 짓고, 청년들의 삶도 짓는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단다. 땅에 기대어 서로 도와가며 농사짓는 삶이 참삶이고 이런 삶을 가꾸는 사람들이 글도 써야 한다는 대목에선 이오덕 선생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농부의 삶은 언어로 전환되고, 이를 도시 사람들과도 부지런히 나눈다. 누구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있기에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바른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농부들과 연결되는 방법이겠다 싶다.
시인은 30대 후반부터 40대를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밀살리기운동 경남지부에서 일했단다. 오래전부터 농부로 살아갈 터를 닦고 있었던 게다. 성직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성직이 농부라고, 그런 생각들이 그를 산골 농부로 거듭나게 했나 보다.
서정홍 시인을 만났다.
세 번째. 합천 황매산 자락에서다. 60은 청춘이고 70부터 장년이란 말이 시인을 보며 실감났다. 건강하셔서 다행이다. 20여 년 농부로서 삶을 가능하게 했던 샘밭, 돌담밭, 개울밭, 박하밭, 생강밭을 둘러보았다. 시인의 이야기가 더해져 더 각별하게 보인다.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부시인의 삶이 존재하는 곳. 생강, 맥문동, 오이, 여주, 토마토 등 여러 생명들도 니땅 내땅 가리지 않고 어울려 살고 있다. 건강한 농부들과 건강한 땅과 건강한 작물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시인의 집을 잠깐 들렀다. 들어서는 길에 꽃들이 반기고, 마당에 들어서니 가장자리를 따라 정갈한 텃밭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 교육농 연수 부제 '텃밭에서 부엌으로' 가 딱 어울리는 집이다.
트럭을 타고 옮겨간 토기장이의 집에서 열매지기공동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교육농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은 다르지만 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동지’라는 말씀이 뜨겁게 다가왔다.
뜻밖에도 수연의 기타 공연이 우리의 귀를 황홀하게 해 주었다. 조근조근 곡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는데, 참 심지 곧은 청년이구나 싶었다. 홈스쿨링으로 이런 줏대 있는 자녀를 키워 내신 오늘과 하루님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공교육 교사로 나는 어떤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서정홍 시인과 초창기 생명평화운동을 함께 하셨던 선배님 중 한 분이신 천규석 님이 귀농하신 곳이 창녕군 영산면이다. 공교롭게도 친정과 지근 거리에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농촌운동을 펼친 농민운동가가 살고 계셨다니 얼마나 가슴이 뜨거워지는지...
더구나 이 분은 이상적 민주주의로서 농본자치 공동체를 상상하셨는데, 1995년 한살림대구공동체 회원들이 내놓은 회비로 창녕군 남지읍 수개리에 ‘공생농 두레농장’을 만들어 15년을 운영하셨단다. 그 수개리는 바로 내 고향 마을이다. 이런 인연에 소름이 돋는다.
생각해 보면 대학시절 가톨릭 학생회 연합 동아리에서 농활을 갔었는데, 그때마다 지역 가톨릭 농민회와 조우하기도 했다. 이쯤이면 교육농을 접한 것도 운명처럼 느껴진다.
지역마다 열매지기공동체와 같은 농촌공동체가 늘어나기를 꿈꾼다. 홍성이 그렇고, 파주가 그렇고, 창녕에서도 이어지길. 청년 농부들이 농사를 지으며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농촌기본수당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
나도 농부로서 살아갈 날을 상상한다.
- 서명숙
서정홍 시인 부부ᆞ 오늘ᆞ하루ᆞ서와콩의 삶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그 빛 속에 푹 빠져 은혜받고 온 1박2일이었습니다.
농장, 집, 정원, 시, 글, 그림, 음악, 음식 그 모든 것 속에
한 사람의 마음가짐, 삶의 발자국이 오롯이 알알이 담겨 있었습니다.
농사만이 아니라 삶도 어떤 씨앗을 선택해 어떤 땅에 심고 가꾸는가에 따라
그 수고로움ᆞ기쁨이 담겨 고유의 길을 내고 결과물을 냅니다.
내 삶을 되돌아보고
자연과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이고 자신의 빛깔을 지키며
자연과 이웃과 우주의 에너지와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그 기개와 용기에 감동과 위안을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안개 자욱한 아름다운 숲속 숙소에서의 하룻밤이 한 여름밤의 꿈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귀한 연수 기획ᆞ진행해 주신 벗 농사학림에 감사드립니다.
- 김이은
말과 삶의 일치
묻어가기 습성으로 따라나선 길
행선지는 합천 어디쯤, 시인 함자 정도 외 사전 정보 거의 없이 어떤 끌림으로 혹은 교육농 연수 습관으로 가던 길
기차에서 내려 갈아탄 랜터카에서 들려오던 이야기 중 귀에 박히는 이야기 하나.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시인이시래”
“언행일치의 삶을 살고 계시는 농부지!”
아~ 생각났다. 내가 이 연수 묻어가 보기로 홀연히 결정했던 이유.
지난 물난리가 할퀴고 간 계곡 너머 제법 익숙한 풍경의 유기농 밭
이를 둘러싼 익숙하지 않은 예술적 돌담.
시멘트 포장 일망정 내 어릴 적 정취가 묻어나던 고샅길 돌아 다다른
시인의 정갈한 집 마당 채소밭과 아궁이와 낮은 담 너머 푸른 대나무 숲.
17평 안으로 갈무리하셨다던 시인의 욕망 우주.
토기장이 집에서 옛날 맛 팥빙수에 정성 가득했던 저녁 만찬과
홈스쿨링 청년의 유기농 맛 기타 노래 공연까지 함께 한 시인과의 환담.
입호강, 귀호강, 눈호강이었다.
시인의 산문집을 사서 귀가 후 몇 편 읽어 봤다. 현지에서 하시던 말씀과 같았다.
말과 글도 일치하는 분이시군!
평소에도 찔끔 눈물 헤프지만, 글 꼭지마다 매번 눈물을 짰다.
왜 그랬을까?
내가 또 (예년보다) 더 늙어서일까?
내 유년기 산천과 엄마 아빠와 동네 어르신들과 동무들이 어른거려서였을까?
시인이 글을 맛깔나게 잘 써서일까?
내용이 진솔하고 진정성이 있어서일까?
문득, 난 또 습관처럼 소비만 하고 있군!
- 늘보
서로를 돌보는 삶
교육 현장에 늘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나만 이런 상황에 처하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나만 힘들까?
아니, 다른 사람도 힘들까? 그러면 그들에게 내 어려움을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해도 될까?
나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들은 기꺼이 도와줄까?
네 문제니까,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라고 밀쳐 낼까?
불행하게도, 우리는
신규 교사에게, 비정규직 교사에게 어려운 일을 떠넘기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네이스 담당, 방과후 담당, 학폭 담당... 이들은 누구일까.
업무 중압감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체계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서 개인은 낙관적인 앞날을 꿈꾸기도 하고 냉소로 자기 보호장치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렇지만 어떤 업무를 모두가 ‘기피’한다면 구성원들이 그 업무에 대해 공유하는 ‘부정적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업무는 개인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그룹이 맡아 해결하는 방향이 제안되고 풀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경험은 다수로 확산돼 시스템화되지 못하고 끊어진다.
우리가 놓여 있는 현실은 ‘혁신’을 배반하고 단절과 고립을 반복시키고 있다.
여름 연수 후기를 엉뚱하게도 이 얘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들은 따뜻함이
서로를 돌보는 삶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로’가 손을 내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작동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웃을 살리는 손, 자연의 생명을, 생태계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손은 단절과 고립을 벗어나자는 데서 열린다.
- 풀씨
서정홍 님의 생각을 나누며 연수 후기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