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교육농, 5월
지금 하는 일을 자꾸 돌아보게 하는 텃밭 농사
강주희 우장초
5월. 4월에 씨앗을 꺼내고 모종을 내기 위해 이런저런 그릇들을 준비했다면 이제나저제나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중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싹들의 잔치에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기다. 올해도 4월 중순부터 모종 내기를 시작해서 아직도 모종을 내는 중이다. 일찌감치 싹이 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소식이 없어 내내 들여다보는 중이다. (아니면, 무엇을 심을까 탐색하고 이런저런 모종들의 자람을 미리 상상하며 주문하는 즐거운 시기?)

▲이번 4월 15일 씨를 심었다. 모두 6개를 심고 처음 며칠간은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두었다. 3개만 싹이 텄다.

▲같은 날 우유팩에 심은 호박. 지난해 직접 채종해서 애정이 깊다. 역시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 보온을 했다.

▲4월 26일. 발아를 위해 창가에 둔 몇 가지 씨앗들. 교실에 볕이 잘 들어 희망적이다.
대개 학교에서 심는 여름 작물들은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류가 기본이고 조금 더 다양하다면 오이나 가지 정도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기 때문.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오던 해에는 참외와 수박도 있었다. 직전 2월에 퇴임하신 주무관님이 텃밭관리를 어마무시하게 하시면서 기르던 작물 중 하나였기 때문에 늘 주문하던 대로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5월은 바쁜 일과 중에도 아이들과 나가 포슬포슬 갈아놓은 밭 두둑에 줄지어 모종들을 심고 나면 알 수 없는 뿌듯함과 만족감, 기대감에 가슴 부푸는 시기이다.
무엇을 어떤 간격으로 심을지에 대해서 사실 잘 몰라도 된다. 우리는 전문 농사꾼이 아니기도 하지만, 검정 비닐을 두둑 전체에 덮고 일정한 간격으로 한 가지 작물을 줄지어 심는 관행농의 질서를 더 이상 사랑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방울토마토처럼 키가 크게 자라고 지주를 세워야 하는 작물 뒤로 햇볕이 가득 필요한 키 작은 작물을 심는 일은 좌절을 가져온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오는 작물들을 아무것도 모른 채 창의적으로 심는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학교 텃밭이 난생처음이던 첫해, 4~5평 남짓한 텃밭에 방울토마토와 고추, 상추 따위를 빼곡이 심었다. 학교에 오고 가는 어르신들이 ‘밭이 좁아서’ 그렇게 심었겠지만 적당히 거리를 둬야 잘 자란다, 절반은 뽑아내야(솎아줘야) 한다며 한 소리씩 내려놓고 가셨다. 사실, 밭도 좁았지만 농기술센터에서 온 작물을 절반 이상 처분해야 하는 게 너무 아까워서 심으라고 하는 간격의 절반도 지키지 않고 빼곡이 심었다. 어땠을까.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라는 토마토들의 줄기들이 서로 뒤엉키다 못해 정글이 되었다. 그 정글 사이로 모기와 곤충이 들끓었고, 휘어지고 엉키는 줄기들은 텃밭의 경관을 섭섭하게 만들었다. 통풍 문제로 해충(이었을까?)들이 좀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달라진 것은 없다. 작물의 배치를 규격에 맞추어 경관을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도 7월 중순이면 끝이 나는 1학기 학사일정 탓에 여름 텃밭은 정글이 되기 일쑤니까.
무경운, 땅을 갈지 말자
학교의 농사, 교육농은 먹을거리를 근사하게 키워내어 음식을 해 먹는 일을 넘어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난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로’ 밭을 갈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지구 온난화는 석유 에너지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류를 지켜내는 먹거리 농사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두 해 전, 교육농 박형일 농부 조합원의 권유로 보게 된 〈대지에 입맞춤을 (원제 Kiss the ground, 2020)〉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렴풋이 땅을 갈지 않고 작물을 기르는 일에 대하여 호감이 생길 즈음이었다.
땅을 가는 것은 밭일의 시작이자, 밭일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력이 요구되는 행위였다. 나는 허리가 좋지 않았기에 이 힘든 밭갈이를 처음 학교 텃밭을 하던 2년간은 6학년 동아리를 병행하면서, 그리고 이후 3년은 그 동아리를 졸업한 녀석들이 봄, 가을마다 찾아와 도와주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옮기게 되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부르기 힘들어진 이후부터는 밭갈이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지속가능발전교육(ESD) 활동을 하면서 텃밭까지 연결하는 작업은 재미있고 신명 나는 일이었지만 시간도 에너지도 너무 많이 들어 버거웠다. 1년에 두 번씩 땅을 갈아엎고 잘 자라던 작물이나 풀들을 뽑아내고 돈을 들여 다시 심는 일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때 이 영화를 보다니! 유레카! 내가 농사를 그만두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았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싹을 틔우고 작물을 심는 일이 지구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다. 초록 식물을 심는 일은 식목일로부터 이어지는 주술 같은 주문이다. 맑은 공기를 만들어 내는 나무를 심어라, 숲을 가꾸어라, 집 안에 공기 정화를 위한 식물을 들여라 같은 치유의 주문은 유치원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치유의 행위가 진짜였던 것이다. 지구 전체(북반구)를 뒤덮은 시뻘건 온실가스가 초록 식물들이 잎을 피워내고 성장하는 시기에 사라지는 장면(유투브 NASA Climate Change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물을 심는 일은 온실가스로부터 빚어지는 지구 온난화를 가장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봄, 정확히는 3 ~ 5월경의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낙엽을 떨구는 11월부터 새잎이 돋기 전인 3월까지 핏빛으로 퍼지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봄을 맞이하면서 더욱 짙어지다가 5월 중순부터 옅어진다. 영화에서는 이를 경작을 위해서 땅을 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세상에! 땅을 갈지 말라니! 그럼 어떻게 농사를 짓나?




▲출처 https://youtu.be/x1SgmFa0r04 NASA | A Year in the Life of Earth's CO2
혼식, 섞어 심자
학교 텃밭에서 땅을 갈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작물을 섞어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작물만 심으면 그것을 먹이로 하는 해충들의 만찬장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토마토만을 심은 밭에 생긴 특정 해충과 바이러스는 토마토 구역에서 활개를 친단다. 게다가 학교에서 주로 심는 감자와 고추, 토마토, 가지는 모두 가지과다. 같은 식구나 마찬가지이니 양분과 생육 조건뿐 아니라 병해충 문제도 비슷하다. 그러니 병해충들에게는 밭 전체가 커다란 잔칫상과 같다는 이야기다.
섞어짓기는 병해충을 어느 정도 방어해 주는 전략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비용도 줄인다. (유기농 자재인) 방제약들은 2, 3일에 한 번씩 뿌려주어야 한다. 게다가 양도 적고 값도 비싸다. 보기도 좋다. 똑같은 작물을 줄지어 놓은 단조로운 모습에 비해 다양한 작물이 연출하는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섞어 지을 때 참고할 같은 식구들을 소개한다. (아래 자료는 퍼머컬쳐 디자인 코스에서의 배움과 책 《나의 위대한 생태텃밭》, 《가이아의 정원》을 참고하였다)
양파 가족 백합과 | 마늘, 파, 양파, 쪽파, 골파, 아스파라거스 |
호박 가족 박과 | 여주, 조롱박, 오이, 수세미, 멜론, 호박, 동아박, 참외 |
양배추 가족 십자화과 | 양배추/방울양배추, 배추,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케일, 콜라비, 갓, 무, 순무, 청경채, 미나리, 유채 |
콩 가족 콩과 | 강낭콩, 완두콩, 동부, 병아리콩, 녹두, 대두, 잠두, 토끼풀, 자운영, 살갈퀴, 칡, 아카시아 |
과꽃 가족 국화과 | 상추, 치커리, 아티초크, 해바라기 |
토마토 가족 가지과 | 가지, 토마토, 고추, 감자 |
곡물 가족 벼과 | 벼, 밀, 귀리, 보리, 조, 기장, 메밀, 호밀, 옥수수, 수수 |
고구마 가족 근채류 | 고구마, 토란 |
목화 가족 아욱과 | 아욱, 목화, 오크라 |
당근 가족 미나리과 | 당근, 딜, 펜넬, 파슬리 |
시금치 가족 명아주과 | 시금치, 근대, 비트 |
아, 이 많은 작물을 어찌 다 기억할꼬. 사실 나도 섞어짓기를 해 본 경험은 코로나19로 80평의 땅이 오롯이 빈 땅이 되었던 지난 2년뿐이다.
2021년에는 한 두둑에 토마토(혹은 고추)와 상추, 스위트 바질, 보라색 팬지, 프렌치 메리골드, 고수를 섞어 심었었다. (당근과 감자, 몇 가지 콩류도 있었다) 그래서 방충 효과가 뛰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여전히 나는 난각칼슘이나 유기농업을 위한 병충방제약을 사용했는데, 2, 3일마다 밭에 나가지를 않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그 이상(열흘 정도)에 한 번 나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익충인지 해충인지 모를 벌레들은 가득했지만 작물을 해치지는 않았던 것 같았지만(수확 열매와 잎은 깨끗하고 탐스러웠으니까), 토마토에는 그간 없던 탄저병이 왔다는 사실도 고백한다. (탄저병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건지 탐색을 하지 못했지만, 이건 섞어짓기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섞어짓기는 “두세 종류의 식물을 깔끔하고 규칙적으로 섞어 심어놓은” 수준에 불과하여 생태적으로 활력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다채로웠고 아름다웠으며, 각기 다른 다양한 작물들이 뒤섞인 풍경은 저마다 다른 모습의 아이들이 가득한 나의 교실과 같았다. 학교의 텃밭은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고추, 한련화, 프렌치 메리골드, 보라색 페튜니아를 섞어서 심었다. (2021.05.07.)

▲섞어 심은 두둑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모습. 토마토, 바질, 한련화와 메리골드를 심은 곳. (2021.07.08.)

▲틈새마다 이것저것 심었더니 섞인? 두둑. 씨앗이 맺힐 때라 볼품은 없어보이지만 한때 풍성했던 콩(부쉬빈), 고수, 무, 대파, 당근, 당귀, 토란, 수세미, 금화규까지 9종류가 섞여 있다. 이 작물들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을까. (2021.06.)
자, 5월, 고추와 토마토를 심어 보자. ‘같은 식구들은 서로 다른 곳에 다른 식구들과’ 섞어서 심는다. 섞을 때는 다 자란 식물의 키 높이도 고려하고, 뿌리의 깊이까지 생각하면 좋겠지만 너무 복잡한 건 천천히 익혀도 좋다. 고추와 토마토는 같은 식구이니 두둑을 달리한다. 모종의 사이사이에 바질이나 고수, 펜넬(혹은 딜)같은 허브를 심는다. 여기에 한련화나 페튜니아, 프렌치 메리골드(아프리칸은 비추. 키가 토마토만 해져서 햇볕 경쟁을 할 거다), 카렌듈라, 카모마일 등 몇 가지 꽃을 섞으면 색채마저 다채로워진다.
나는 밭 가운데에 기관에서 지원받아 설치한 고정형 텃밭 상자에 코스모스, 수레국화, 금계국, 구절초, 달맞이도 심어 보았는데, 키가 80~100cm로 자라서 휘어지거나 늘어지는 참사를 신경 쓰는 일이 만만치 않고, 다음 해 여기저기 씨앗이 떨어져서 밭 전체에 퍼졌다. 여러 두둑에 퍼진 꽃들이 반갑고 뿌리는 비용을 줄여서 좋지만, 먹을거리를 키우는 곳에 이런 꽃들이 지저분하게 퍼져 있는 것은 싫다고 말하는 분이 있었다. (그래서 역시 뽑아내셨음) 코스모스와 달맞이가 사방에서 피었는데, 군집 위치를 살려서 지지만 잘 해 주었다면 정말 아름다운 밭이 되었을 것 같다.
키가 크게 자라는 꽃들은 5월 중순 이후에 씨앗을 뿌리면 키가 좀 덜 자란다. 해바라기나 접시꽃처럼 처음부터 아예 울타리나 가장자리 쪽으로 배치하는 것도 좋다. 이도 저도 좀 복잡하다 싶으면 쑥갓이나 당근, 루꼴라를 채소와 함께 배치하고 꽃으로 키워도 보기가 참 좋다. 이런 섞어짓기는 경관을 보다 풍성하고 다양하게 해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토양 측면에서도 서로 다른 식구이거나 키 높이가 달라 서로의 양분과 햇빛을 덜 방해하고, 허브/꽃의 향들이 해충을 교란시켜 방충방제의 효과를 가져온단다. [단순히 섞어 짓는 일보다 서로의 성장을 끌어올리는 종류의 식물들을 조합하는 상생재배(인디언의 세 자매로 대표된다)는 교육농 모임을 통해 배우는 중이다] 게다가 한련화, 메리골드나 백일홍, 구절초, 봉숭아들은 가을 이후에 꽃이 더욱 만개하기 때문에 2학기 가을 텃밭을 다시 경운하게 되는 일을 막아준다.

▲학교 울타리 근처에는 수레국화 양귀비, 카렌듈라, 몇가지 허브들을 심었다. 보이는 곳은 5-6월에 개화하는 꽃들로, 울타리 바깥쪽이다.(2021.06.)

▲안쪽으로는 접시꽃, 코스모스, 황하 코스모스, 수세미는 2학기에 이어서 핀다. (2020.09.)


▲봄에 심었던 고추, 토마토, 메리골드는 가을에도 한가득이다. 학교에서 가을 경운을 하지 않고 뽑지 않는 경험을 지난해 처음 했다. 이렇게 되면 방학과 상관없이 학교라는 공간을 애정하게 된다. (2021.09)


▲수레국화 구절초와 같은 꽃은 벌들을 불러온다. 2년간 보안관 선생님들이 쏠쏠히(?) 벌을 잡으실 정도로. 이번에는 두둑 중간중간 씨앗을 던져 놓는 꽃 테러를 한번 해 볼 생각이다.
우리 학교 주무관 한 분은 두둑이 가지런하고 (잡풀 없이) 깨끗하고, 정돈된 작물의 배열을 선호하신다. 흐드러진 딸기 줄기를 뿌리만 남기고 깨끗이 쳐내기도 하고,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을 넘긴 라벤더와 로즈마리를 뽑아내서 나를 울렸다. 진짜 우는 나를 본 이후로는 내 관할 구역은 손대지 않으려고 조심하는데, 간간이 나의 상자 텃밭에라도 괭이밥이 피어오르면 어김없이 뽑아내셔서 그마저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매일같이 나가 몇 시간을 쭈그리고 앉은 강 선생님이 안쓰러워서 도와드리려고 그랬다는 마음과 토마토가 자라야 하는 자리에서 다른 것이 자리하고 있는 건 도저히 못 보겠다고 고백도 하셨다. 워낙에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하신 양반이라,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무경운과 풀/낙엽 멀칭에 대해 정중히 알려드리기도 했다.
도시를 벗어나지 않아도 깜장 비닐을 덮은 밭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 동네에 담장이 없는 주택 한쪽에 작은 텃밭이 있는데, 베개 2개만 한 공간에도 검은 비닐로 멀칭을 했다. 까만 비닐은 곳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외할머니댁의 마당 밭에도, 이모네 넓은 배추밭에도 검은 비닐이 덮여 있다. 그만큼 검은 비닐로 상징되는 멀칭은 농사의 기본이자 중요한 파트너다. 다행히 나는 농사를 제대로 시작하기 전 교육농협동조합 모임을 통해 검은 비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비닐 쓰레기 문제를 가져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흙의 건강과 작물의 건강으로 이어지는 멀칭 방법을 처음부터 쓸 수 있었다.

▲나무가 있던 밭에 낙엽이 한가득 떨어졌다. 낙엽이 배추 사이로 떨어지는 바람에 묶어 주지 않아도 될 배추를 묶는 수고로움은 있다. (2018.11.)

▲가을이 주는 이 색감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텃밭에 꽃이 함께 있을 때 따뜻하고 밝고 풍요로워진다. (이 아름다운 국화는 밭에 꽃이 있으면 다음 해 골치 아프다고 뽑혔다) (2019.10.)
멀칭, 덮어 주기
멀칭의 효과는 작물이 심겨 있는 두둑의 수분을 지키고, 소위 잡초들의 씨앗이 날아와 풀이 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검은 비닐로 두둑을 씌우는 일은 딱 이 두 가지의 효과만 있다.
되려 비가 오면 빗물이 충분히 스며들지 못하고, 비닐 안쪽의 열기로 미생물들을 죽인다. 또 비닐로 가둘 토양은 작물이 자라면서 흡입할 만큼 미리 양분을 넣어야 한다. 그래서 봄에 경작을 시작하기 전 대대적인 경운과 함께 퇴비를 충분히 넣어야 하는 노동력과 에너지 비용이 발생한다. 보통 이 작업은 경운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학교든 아니든 누구나 농사를 지을라치면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여기서 막대한 탄소 비용이 발생하는데, 경운으로 인한 탄소 배출뿐 아니라 투입하는 축분 퇴비(대부분 수입이거나 항생제, GMO 사료 문제를 품은 퇴비)로 인한 탄소 배출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손실이다. 게다가 토양까지 망가뜨린다.
비닐을 대체할 것이 5월에는 아직 없다. 지난 늦가을에 교정에 떨어진 낙엽을 한 장도 버리지 않고 텃밭에 덮어 주었다면(텃밭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 뼘만큼) 이야기는 다르다. 그 낙엽은 5월 모종을 심을 즈음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다. 처음 시작했던 학교의 텃밭은 교실 1/3 크기였는데, 늦가을 다른 곳에서 구해 온 낙엽을 쓸어 담아 둔 마대자루 서너 개 분량과 텃밭에 있던 30년 된 자목련 한 그루가 떨구는 잎으로 이듬해 5월 말까지의 멀칭이 가능했다. 80평 남짓한 지금의 학교 텃밭에는 재작년 가을에 새로 오신(계시던 분은 낙엽이 날려서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하심) 주무관님께 간절히 부탁(낙엽이 날린다는 우려가 깊어서 주저한다)해서 겨우 얻은 10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의 낙엽 예닐곱의 양으로 4월 말 경운 전까지 그득한 낙엽 더미를 확인했다. 그 때문에 작년 봄 경운이 힘들다고 말씀하시던 주무관님은 지난가을 낙엽을 한 봉지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버리셨다. 낙엽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늦가을부터는 떨어지는 낙엽을 고이고이 모아두자.
낙엽이 없다? 배송으로 인한 탄소가 배출되더라도 왕겨를 구입해서 덮자. 왕겨는 누구의 협조나 허락이 필요치 않다. 예산만 있으면 된다. 오라인 쇼핑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100리터(마대자루 하나)에 12,000~15,000원선이다. 왕겨는 물을 흠뻑 뿌려도 쉽게 젖지 않고 뽀송뽀송하다(왕겨를 덮은 토양은 수분이 유지된다).마대자루가 삭아서 가루가 되더라도(삭은 마대자루는 왕겨와 섞여서 골라내기도 어렵다) 왕겨는 상하거나 썩는 일이 없어 1년 이상 장기보관도 상관없다. 그래서 늘 건조된 상태와 같고, 바람에 날리는 단점이 있지만, 흙을 살리고 탄소 배출이 그나마 적은 멀칭재라고 생각한다. 한 해는 교육농 조합원 양재규 선생님의 목공방에서 톱밥을 구해 멀칭을 하기도 했는데, 톱밥은 스펀지처럼 그 자체로 수분을 오래 머금고 있어서 작물 줄기에 닿을 경우 작물 줄기가 녹아 스러진다. 작물 주변을 동그랗게 비우고 덮어 주었어야 하는 것을 몰라서 작물들이 죽어 나가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듬해 텃밭의 이곳저곳에서 버섯이 들불처럼 피어오르는 쾌거를 맞이했다. 그래서 올해는 왕겨로 본 두둑을 덮고 두둑의 가장자리를 톱밥으로 덮어 흠뻑 적셔 주었다. 내심 바랭이 싹들이 톱밥의 수분에 사그러들길 바라면서.

▲지난해 봄 우리 반 아이들이 모종을 심는 밭을 보면 직전 가을에 뿌린 낙엽이 한가득 그대로 보인다. (2021.5.)

▲6개월을 텃밭 한쪽에 두고 방치했던 왕겨는 뽀송뽀송 멀쩡한데, 마대자루가 다 삭아서 옮기는데 고생, 주워내느라 고생했다.(2021.6.)

▲올해는 작물과 가까운 두둑 중앙은 왕겨를, 가장자리는 톱밥을 덮었다. 부디 바랭이 싹들을 녹여 주길(?) 기대한다. (2022.4.30.)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검은 비닐이 아니더라도 죄다 돈과 (배송 이상의) 탄소가 드는 일이다. 또 다른 방법이 있다. 풀을 키우는 것. 텃밭 두둑에 일부러 녹색의 풀을 멀칭재로 키우는데, 이 풀들을 녹비작물(녹색비료)이라고 한다. 대개는 질소를 붙잡아 주는 콩과에 속하는 풀이나 탄소 저장력이 좋은 밀, 보리, 호밀, 메밀 등 벼과 식물을 키운다. 이 중에는 토끼풀이나 자운영 같은 흔한 잡초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은 땅에 바짝 붙어서 자라기 때문에 지피식물(땅 위를 피복해 주는 작물)로 많이들 이용하는가 보다(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학교 텃밭에 토끼풀이나 자운영이 가득하도록 유도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단, 이들의 꽃이 피기 전(땅속에 묶어둘 질소가 꽃이나 열매에 집중되고, 씨앗이 떨어져서 주객이 전도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모두 베어서 그대로 덮어 주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우리 학교 주무관에게 넌지시 건넸더니,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된다고 엄중히 경고하더라.

▲두 그루의 나무가 있던 첫 학교 텃밭 3년째에 버섯이 피었다. 버섯은 밭의 유기물이 풍성하고 미생물들이 활성화 될 때 나타난다. (2018.09.)

▲사막 같았던 거친 땅에 낙엽과 톱밥을 덮은 이듬해, 버섯이 여기저기 피어서 놀랐다. 1년만에도 밭이 좋아질 수 있다. (2021.09.)

▲텃밭은 아니지만 상자 화분에 가득 퍼진 괭이밥. 이 상자의 식물(로즈제라늄과 치자)이 유난히 줄기가 굵고 싱그럽다. 기분 탓일까. 아무것도 뽑지 마시오라고 막대를 세워야겠다. (2022.04.)
밀식. 빽빽이 심기
멀칭은 꼭 필요할까, 아니다. 사실 첫 학교 텃밭 4년 내내 낙엽 멀칭 이외에 다른 멀칭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예산도 없었고, 규모도 작았다. 앞서 말한 대로 땅 크기에 맞지 않는 모종의 양 때문에 심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심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빼곡이 심게 되고, 7, 8월에는 밀림이 되더라도 한 여름에도 멀칭의 걱정은 없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규모가 작은 밭은 멀칭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 작물이 가장 풍성해졌을 때 맨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식을 하면 된다. 그러면 짚, 왕겨나 톱밥, 그리고 그것을 구하고 덮어줘야 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야호!

▲처음 3년을 멀칭없이 농사를 지었다. 나의 첫 학교 텃밭 땅이 좁아 최대한 심는다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2016)
▲위에서 보았을 때 맨 흙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17.6.)

▲가을이라고 다르지 않다. 좁은 땅은 좁은 대로 살길이 있다. (2018.10.)
월간 교육농, 5월
지금 하는 일을 자꾸 돌아보게 하는 텃밭 농사
강주희 우장초
5월. 4월에 씨앗을 꺼내고 모종을 내기 위해 이런저런 그릇들을 준비했다면 이제나저제나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중에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싹들의 잔치에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기다. 올해도 4월 중순부터 모종 내기를 시작해서 아직도 모종을 내는 중이다. 일찌감치 싹이 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소식이 없어 내내 들여다보는 중이다. (아니면, 무엇을 심을까 탐색하고 이런저런 모종들의 자람을 미리 상상하며 주문하는 즐거운 시기?)
▲이번 4월 15일 씨를 심었다. 모두 6개를 심고 처음 며칠간은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두었다. 3개만 싹이 텄다.
▲같은 날 우유팩에 심은 호박. 지난해 직접 채종해서 애정이 깊다. 역시 스티로폼 상자에 넣어 보온을 했다.
▲4월 26일. 발아를 위해 창가에 둔 몇 가지 씨앗들. 교실에 볕이 잘 들어 희망적이다.
대개 학교에서 심는 여름 작물들은 방울토마토, 고추, 상추류가 기본이고 조금 더 다양하다면 오이나 가지 정도이다. 이유는 어렵지 않기 때문.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오던 해에는 참외와 수박도 있었다. 직전 2월에 퇴임하신 주무관님이 텃밭관리를 어마무시하게 하시면서 기르던 작물 중 하나였기 때문에 늘 주문하던 대로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5월은 바쁜 일과 중에도 아이들과 나가 포슬포슬 갈아놓은 밭 두둑에 줄지어 모종들을 심고 나면 알 수 없는 뿌듯함과 만족감, 기대감에 가슴 부푸는 시기이다.
무엇을 어떤 간격으로 심을지에 대해서 사실 잘 몰라도 된다. 우리는 전문 농사꾼이 아니기도 하지만, 검정 비닐을 두둑 전체에 덮고 일정한 간격으로 한 가지 작물을 줄지어 심는 관행농의 질서를 더 이상 사랑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방울토마토처럼 키가 크게 자라고 지주를 세워야 하는 작물 뒤로 햇볕이 가득 필요한 키 작은 작물을 심는 일은 좌절을 가져온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오는 작물들을 아무것도 모른 채 창의적으로 심는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학교 텃밭이 난생처음이던 첫해, 4~5평 남짓한 텃밭에 방울토마토와 고추, 상추 따위를 빼곡이 심었다. 학교에 오고 가는 어르신들이 ‘밭이 좁아서’ 그렇게 심었겠지만 적당히 거리를 둬야 잘 자란다, 절반은 뽑아내야(솎아줘야) 한다며 한 소리씩 내려놓고 가셨다. 사실, 밭도 좁았지만 농기술센터에서 온 작물을 절반 이상 처분해야 하는 게 너무 아까워서 심으라고 하는 간격의 절반도 지키지 않고 빼곡이 심었다. 어땠을까.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라는 토마토들의 줄기들이 서로 뒤엉키다 못해 정글이 되었다. 그 정글 사이로 모기와 곤충이 들끓었고, 휘어지고 엉키는 줄기들은 텃밭의 경관을 섭섭하게 만들었다. 통풍 문제로 해충(이었을까?)들이 좀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달라진 것은 없다. 작물의 배치를 규격에 맞추어 경관을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도 7월 중순이면 끝이 나는 1학기 학사일정 탓에 여름 텃밭은 정글이 되기 일쑤니까.
무경운, 땅을 갈지 말자
학교의 농사, 교육농은 먹을거리를 근사하게 키워내어 음식을 해 먹는 일을 넘어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난제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로’ 밭을 갈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지구 온난화는 석유 에너지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류를 지켜내는 먹거리 농사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두 해 전, 교육농 박형일 농부 조합원의 권유로 보게 된 〈대지에 입맞춤을 (원제 Kiss the ground, 2020)〉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렴풋이 땅을 갈지 않고 작물을 기르는 일에 대하여 호감이 생길 즈음이었다.
땅을 가는 것은 밭일의 시작이자, 밭일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력이 요구되는 행위였다. 나는 허리가 좋지 않았기에 이 힘든 밭갈이를 처음 학교 텃밭을 하던 2년간은 6학년 동아리를 병행하면서, 그리고 이후 3년은 그 동아리를 졸업한 녀석들이 봄, 가을마다 찾아와 도와주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옮기게 되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부르기 힘들어진 이후부터는 밭갈이가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지속가능발전교육(ESD) 활동을 하면서 텃밭까지 연결하는 작업은 재미있고 신명 나는 일이었지만 시간도 에너지도 너무 많이 들어 버거웠다. 1년에 두 번씩 땅을 갈아엎고 잘 자라던 작물이나 풀들을 뽑아내고 돈을 들여 다시 심는 일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때 이 영화를 보다니! 유레카! 내가 농사를 그만두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았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싹을 틔우고 작물을 심는 일이 지구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다. 초록 식물을 심는 일은 식목일로부터 이어지는 주술 같은 주문이다. 맑은 공기를 만들어 내는 나무를 심어라, 숲을 가꾸어라, 집 안에 공기 정화를 위한 식물을 들여라 같은 치유의 주문은 유치원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치유의 행위가 진짜였던 것이다. 지구 전체(북반구)를 뒤덮은 시뻘건 온실가스가 초록 식물들이 잎을 피워내고 성장하는 시기에 사라지는 장면(유투브 NASA Climate Change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물을 심는 일은 온실가스로부터 빚어지는 지구 온난화를 가장 빠르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봄, 정확히는 3 ~ 5월경의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낙엽을 떨구는 11월부터 새잎이 돋기 전인 3월까지 핏빛으로 퍼지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봄을 맞이하면서 더욱 짙어지다가 5월 중순부터 옅어진다. 영화에서는 이를 경작을 위해서 땅을 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세상에! 땅을 갈지 말라니! 그럼 어떻게 농사를 짓나?
▲출처 https://youtu.be/x1SgmFa0r04 NASA | A Year in the Life of Earth's CO2
혼식, 섞어 심자
학교 텃밭에서 땅을 갈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작물을 섞어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작물만 심으면 그것을 먹이로 하는 해충들의 만찬장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토마토만을 심은 밭에 생긴 특정 해충과 바이러스는 토마토 구역에서 활개를 친단다. 게다가 학교에서 주로 심는 감자와 고추, 토마토, 가지는 모두 가지과다. 같은 식구나 마찬가지이니 양분과 생육 조건뿐 아니라 병해충 문제도 비슷하다. 그러니 병해충들에게는 밭 전체가 커다란 잔칫상과 같다는 이야기다.
섞어짓기는 병해충을 어느 정도 방어해 주는 전략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비용도 줄인다. (유기농 자재인) 방제약들은 2, 3일에 한 번씩 뿌려주어야 한다. 게다가 양도 적고 값도 비싸다. 보기도 좋다. 똑같은 작물을 줄지어 놓은 단조로운 모습에 비해 다양한 작물이 연출하는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섞어 지을 때 참고할 같은 식구들을 소개한다. (아래 자료는 퍼머컬쳐 디자인 코스에서의 배움과 책 《나의 위대한 생태텃밭》, 《가이아의 정원》을 참고하였다)
양파 가족
백합과
마늘, 파, 양파, 쪽파, 골파, 아스파라거스
호박 가족
박과
여주, 조롱박, 오이, 수세미, 멜론, 호박, 동아박, 참외
양배추 가족
십자화과
양배추/방울양배추, 배추,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케일, 콜라비, 갓, 무, 순무, 청경채, 미나리, 유채
콩 가족
콩과
강낭콩, 완두콩, 동부, 병아리콩, 녹두, 대두, 잠두, 토끼풀, 자운영, 살갈퀴, 칡, 아카시아
과꽃 가족
국화과
상추, 치커리, 아티초크, 해바라기
토마토 가족
가지과
가지, 토마토, 고추, 감자
곡물 가족
벼과
벼, 밀, 귀리, 보리, 조, 기장, 메밀, 호밀, 옥수수, 수수
고구마 가족
근채류
고구마, 토란
목화 가족
아욱과
아욱, 목화, 오크라
당근 가족
미나리과
당근, 딜, 펜넬, 파슬리
시금치 가족
명아주과
시금치, 근대, 비트
아, 이 많은 작물을 어찌 다 기억할꼬. 사실 나도 섞어짓기를 해 본 경험은 코로나19로 80평의 땅이 오롯이 빈 땅이 되었던 지난 2년뿐이다.
2021년에는 한 두둑에 토마토(혹은 고추)와 상추, 스위트 바질, 보라색 팬지, 프렌치 메리골드, 고수를 섞어 심었었다. (당근과 감자, 몇 가지 콩류도 있었다) 그래서 방충 효과가 뛰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여전히 나는 난각칼슘이나 유기농업을 위한 병충방제약을 사용했는데, 2, 3일마다 밭에 나가지를 않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그 이상(열흘 정도)에 한 번 나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익충인지 해충인지 모를 벌레들은 가득했지만 작물을 해치지는 않았던 것 같았지만(수확 열매와 잎은 깨끗하고 탐스러웠으니까), 토마토에는 그간 없던 탄저병이 왔다는 사실도 고백한다. (탄저병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건지 탐색을 하지 못했지만, 이건 섞어짓기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도의 섞어짓기는 “두세 종류의 식물을 깔끔하고 규칙적으로 섞어 심어놓은” 수준에 불과하여 생태적으로 활력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다채로웠고 아름다웠으며, 각기 다른 다양한 작물들이 뒤섞인 풍경은 저마다 다른 모습의 아이들이 가득한 나의 교실과 같았다. 학교의 텃밭은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고추, 한련화, 프렌치 메리골드, 보라색 페튜니아를 섞어서 심었다. (2021.05.07.)
▲섞어 심은 두둑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모습. 토마토, 바질, 한련화와 메리골드를 심은 곳. (2021.07.08.)
▲틈새마다 이것저것 심었더니 섞인? 두둑. 씨앗이 맺힐 때라 볼품은 없어보이지만 한때 풍성했던 콩(부쉬빈), 고수, 무, 대파, 당근, 당귀, 토란, 수세미, 금화규까지 9종류가 섞여 있다. 이 작물들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을까. (2021.06.)
자, 5월, 고추와 토마토를 심어 보자. ‘같은 식구들은 서로 다른 곳에 다른 식구들과’ 섞어서 심는다. 섞을 때는 다 자란 식물의 키 높이도 고려하고, 뿌리의 깊이까지 생각하면 좋겠지만 너무 복잡한 건 천천히 익혀도 좋다. 고추와 토마토는 같은 식구이니 두둑을 달리한다. 모종의 사이사이에 바질이나 고수, 펜넬(혹은 딜)같은 허브를 심는다. 여기에 한련화나 페튜니아, 프렌치 메리골드(아프리칸은 비추. 키가 토마토만 해져서 햇볕 경쟁을 할 거다), 카렌듈라, 카모마일 등 몇 가지 꽃을 섞으면 색채마저 다채로워진다.
나는 밭 가운데에 기관에서 지원받아 설치한 고정형 텃밭 상자에 코스모스, 수레국화, 금계국, 구절초, 달맞이도 심어 보았는데, 키가 80~100cm로 자라서 휘어지거나 늘어지는 참사를 신경 쓰는 일이 만만치 않고, 다음 해 여기저기 씨앗이 떨어져서 밭 전체에 퍼졌다. 여러 두둑에 퍼진 꽃들이 반갑고 뿌리는 비용을 줄여서 좋지만, 먹을거리를 키우는 곳에 이런 꽃들이 지저분하게 퍼져 있는 것은 싫다고 말하는 분이 있었다. (그래서 역시 뽑아내셨음) 코스모스와 달맞이가 사방에서 피었는데, 군집 위치를 살려서 지지만 잘 해 주었다면 정말 아름다운 밭이 되었을 것 같다.
키가 크게 자라는 꽃들은 5월 중순 이후에 씨앗을 뿌리면 키가 좀 덜 자란다. 해바라기나 접시꽃처럼 처음부터 아예 울타리나 가장자리 쪽으로 배치하는 것도 좋다. 이도 저도 좀 복잡하다 싶으면 쑥갓이나 당근, 루꼴라를 채소와 함께 배치하고 꽃으로 키워도 보기가 참 좋다. 이런 섞어짓기는 경관을 보다 풍성하고 다양하게 해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토양 측면에서도 서로 다른 식구이거나 키 높이가 달라 서로의 양분과 햇빛을 덜 방해하고, 허브/꽃의 향들이 해충을 교란시켜 방충방제의 효과를 가져온단다. [단순히 섞어 짓는 일보다 서로의 성장을 끌어올리는 종류의 식물들을 조합하는 상생재배(인디언의 세 자매로 대표된다)는 교육농 모임을 통해 배우는 중이다] 게다가 한련화, 메리골드나 백일홍, 구절초, 봉숭아들은 가을 이후에 꽃이 더욱 만개하기 때문에 2학기 가을 텃밭을 다시 경운하게 되는 일을 막아준다.
▲학교 울타리 근처에는 수레국화 양귀비, 카렌듈라, 몇가지 허브들을 심었다. 보이는 곳은 5-6월에 개화하는 꽃들로, 울타리 바깥쪽이다.(2021.06.)
▲안쪽으로는 접시꽃, 코스모스, 황하 코스모스, 수세미는 2학기에 이어서 핀다. (2020.09.)
▲봄에 심었던 고추, 토마토, 메리골드는 가을에도 한가득이다. 학교에서 가을 경운을 하지 않고 뽑지 않는 경험을 지난해 처음 했다. 이렇게 되면 방학과 상관없이 학교라는 공간을 애정하게 된다. (2021.09)
▲수레국화 구절초와 같은 꽃은 벌들을 불러온다. 2년간 보안관 선생님들이 쏠쏠히(?) 벌을 잡으실 정도로. 이번에는 두둑 중간중간 씨앗을 던져 놓는 꽃 테러를 한번 해 볼 생각이다.
우리 학교 주무관 한 분은 두둑이 가지런하고 (잡풀 없이) 깨끗하고, 정돈된 작물의 배열을 선호하신다. 흐드러진 딸기 줄기를 뿌리만 남기고 깨끗이 쳐내기도 하고,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을 넘긴 라벤더와 로즈마리를 뽑아내서 나를 울렸다. 진짜 우는 나를 본 이후로는 내 관할 구역은 손대지 않으려고 조심하는데, 간간이 나의 상자 텃밭에라도 괭이밥이 피어오르면 어김없이 뽑아내셔서 그마저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매일같이 나가 몇 시간을 쭈그리고 앉은 강 선생님이 안쓰러워서 도와드리려고 그랬다는 마음과 토마토가 자라야 하는 자리에서 다른 것이 자리하고 있는 건 도저히 못 보겠다고 고백도 하셨다. 워낙에 책임감이 강하고 부지런하신 양반이라,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무경운과 풀/낙엽 멀칭에 대해 정중히 알려드리기도 했다.
도시를 벗어나지 않아도 깜장 비닐을 덮은 밭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 동네에 담장이 없는 주택 한쪽에 작은 텃밭이 있는데, 베개 2개만 한 공간에도 검은 비닐로 멀칭을 했다. 까만 비닐은 곳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외할머니댁의 마당 밭에도, 이모네 넓은 배추밭에도 검은 비닐이 덮여 있다. 그만큼 검은 비닐로 상징되는 멀칭은 농사의 기본이자 중요한 파트너다. 다행히 나는 농사를 제대로 시작하기 전 교육농협동조합 모임을 통해 검은 비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비닐 쓰레기 문제를 가져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흙의 건강과 작물의 건강으로 이어지는 멀칭 방법을 처음부터 쓸 수 있었다.
▲나무가 있던 밭에 낙엽이 한가득 떨어졌다. 낙엽이 배추 사이로 떨어지는 바람에 묶어 주지 않아도 될 배추를 묶는 수고로움은 있다. (2018.11.)
▲가을이 주는 이 색감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텃밭에 꽃이 함께 있을 때 따뜻하고 밝고 풍요로워진다. (이 아름다운 국화는 밭에 꽃이 있으면 다음 해 골치 아프다고 뽑혔다) (2019.10.)
멀칭, 덮어 주기
멀칭의 효과는 작물이 심겨 있는 두둑의 수분을 지키고, 소위 잡초들의 씨앗이 날아와 풀이 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검은 비닐로 두둑을 씌우는 일은 딱 이 두 가지의 효과만 있다.
되려 비가 오면 빗물이 충분히 스며들지 못하고, 비닐 안쪽의 열기로 미생물들을 죽인다. 또 비닐로 가둘 토양은 작물이 자라면서 흡입할 만큼 미리 양분을 넣어야 한다. 그래서 봄에 경작을 시작하기 전 대대적인 경운과 함께 퇴비를 충분히 넣어야 하는 노동력과 에너지 비용이 발생한다. 보통 이 작업은 경운과 함께 이루어지는데 학교든 아니든 누구나 농사를 지을라치면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여기서 막대한 탄소 비용이 발생하는데, 경운으로 인한 탄소 배출뿐 아니라 투입하는 축분 퇴비(대부분 수입이거나 항생제, GMO 사료 문제를 품은 퇴비)로 인한 탄소 배출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손실이다. 게다가 토양까지 망가뜨린다.
비닐을 대체할 것이 5월에는 아직 없다. 지난 늦가을에 교정에 떨어진 낙엽을 한 장도 버리지 않고 텃밭에 덮어 주었다면(텃밭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 뼘만큼) 이야기는 다르다. 그 낙엽은 5월 모종을 심을 즈음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다. 처음 시작했던 학교의 텃밭은 교실 1/3 크기였는데, 늦가을 다른 곳에서 구해 온 낙엽을 쓸어 담아 둔 마대자루 서너 개 분량과 텃밭에 있던 30년 된 자목련 한 그루가 떨구는 잎으로 이듬해 5월 말까지의 멀칭이 가능했다. 80평 남짓한 지금의 학교 텃밭에는 재작년 가을에 새로 오신(계시던 분은 낙엽이 날려서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하심) 주무관님께 간절히 부탁(낙엽이 날린다는 우려가 깊어서 주저한다)해서 겨우 얻은 10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의 낙엽 예닐곱의 양으로 4월 말 경운 전까지 그득한 낙엽 더미를 확인했다. 그 때문에 작년 봄 경운이 힘들다고 말씀하시던 주무관님은 지난가을 낙엽을 한 봉지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버리셨다. 낙엽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을 수 있겠지만, 늦가을부터는 떨어지는 낙엽을 고이고이 모아두자.
낙엽이 없다? 배송으로 인한 탄소가 배출되더라도 왕겨를 구입해서 덮자. 왕겨는 누구의 협조나 허락이 필요치 않다. 예산만 있으면 된다. 오라인 쇼핑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100리터(마대자루 하나)에 12,000~15,000원선이다. 왕겨는 물을 흠뻑 뿌려도 쉽게 젖지 않고 뽀송뽀송하다(왕겨를 덮은 토양은 수분이 유지된다).마대자루가 삭아서 가루가 되더라도(삭은 마대자루는 왕겨와 섞여서 골라내기도 어렵다) 왕겨는 상하거나 썩는 일이 없어 1년 이상 장기보관도 상관없다. 그래서 늘 건조된 상태와 같고, 바람에 날리는 단점이 있지만, 흙을 살리고 탄소 배출이 그나마 적은 멀칭재라고 생각한다. 한 해는 교육농 조합원 양재규 선생님의 목공방에서 톱밥을 구해 멀칭을 하기도 했는데, 톱밥은 스펀지처럼 그 자체로 수분을 오래 머금고 있어서 작물 줄기에 닿을 경우 작물 줄기가 녹아 스러진다. 작물 주변을 동그랗게 비우고 덮어 주었어야 하는 것을 몰라서 작물들이 죽어 나가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듬해 텃밭의 이곳저곳에서 버섯이 들불처럼 피어오르는 쾌거를 맞이했다. 그래서 올해는 왕겨로 본 두둑을 덮고 두둑의 가장자리를 톱밥으로 덮어 흠뻑 적셔 주었다. 내심 바랭이 싹들이 톱밥의 수분에 사그러들길 바라면서.
▲지난해 봄 우리 반 아이들이 모종을 심는 밭을 보면 직전 가을에 뿌린 낙엽이 한가득 그대로 보인다. (2021.5.)
▲6개월을 텃밭 한쪽에 두고 방치했던 왕겨는 뽀송뽀송 멀쩡한데, 마대자루가 다 삭아서 옮기는데 고생, 주워내느라 고생했다.(2021.6.)
▲올해는 작물과 가까운 두둑 중앙은 왕겨를, 가장자리는 톱밥을 덮었다. 부디 바랭이 싹들을 녹여 주길(?) 기대한다. (2022.4.30.)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검은 비닐이 아니더라도 죄다 돈과 (배송 이상의) 탄소가 드는 일이다. 또 다른 방법이 있다. 풀을 키우는 것. 텃밭 두둑에 일부러 녹색의 풀을 멀칭재로 키우는데, 이 풀들을 녹비작물(녹색비료)이라고 한다. 대개는 질소를 붙잡아 주는 콩과에 속하는 풀이나 탄소 저장력이 좋은 밀, 보리, 호밀, 메밀 등 벼과 식물을 키운다. 이 중에는 토끼풀이나 자운영 같은 흔한 잡초들이 있는데, 이 친구들은 땅에 바짝 붙어서 자라기 때문에 지피식물(땅 위를 피복해 주는 작물)로 많이들 이용하는가 보다(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학교 텃밭에 토끼풀이나 자운영이 가득하도록 유도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단, 이들의 꽃이 피기 전(땅속에 묶어둘 질소가 꽃이나 열매에 집중되고, 씨앗이 떨어져서 주객이 전도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모두 베어서 그대로 덮어 주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우리 학교 주무관에게 넌지시 건넸더니, 절대로 그러시면 안 된다고 엄중히 경고하더라.
▲두 그루의 나무가 있던 첫 학교 텃밭 3년째에 버섯이 피었다. 버섯은 밭의 유기물이 풍성하고 미생물들이 활성화 될 때 나타난다. (2018.09.)
▲사막 같았던 거친 땅에 낙엽과 톱밥을 덮은 이듬해, 버섯이 여기저기 피어서 놀랐다. 1년만에도 밭이 좋아질 수 있다. (2021.09.)
▲텃밭은 아니지만 상자 화분에 가득 퍼진 괭이밥. 이 상자의 식물(로즈제라늄과 치자)이 유난히 줄기가 굵고 싱그럽다. 기분 탓일까. 아무것도 뽑지 마시오라고 막대를 세워야겠다. (2022.04.)
밀식. 빽빽이 심기
멀칭은 꼭 필요할까, 아니다. 사실 첫 학교 텃밭 4년 내내 낙엽 멀칭 이외에 다른 멀칭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특별히 예산도 없었고, 규모도 작았다. 앞서 말한 대로 땅 크기에 맞지 않는 모종의 양 때문에 심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심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빼곡이 심게 되고, 7, 8월에는 밀림이 되더라도 한 여름에도 멀칭의 걱정은 없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규모가 작은 밭은 멀칭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 작물이 가장 풍성해졌을 때 맨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식을 하면 된다. 그러면 짚, 왕겨나 톱밥, 그리고 그것을 구하고 덮어줘야 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야호!
▲가을이라고 다르지 않다. 좁은 땅은 좁은 대로 살길이 있다. (20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