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이 하룻밤 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 학교라는 공동의 배움터, 공유 방식 익히기
사라졌다.
관련 작물에 대해 배우고 정성껏 심고 이름표까지 달아 둔 상자텃밭 모종이 하룻밤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분명히 어제 점심시간에도 물과 정성을 듬뿍 주었던 작물이다.
누군가? 새? 어떤 동물? 외계인?
이 내용은 한 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육활동으로 심은 작물이 하룻밤 새 사라진 사건을 두고 조합원들이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 대화를 따라가며 공동의 배움터로서 학교와 교육농 활동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들이 필요할지 고민을 진전시켜 나눌 수 있겠기에 소개한다. 학교가 특정되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부를 수 있어 가명으로 정리한다. - 풀씨
# 1
검은등뻐꾸기
어제까지 멀쩡히 있던 아이들의 상자텃밭 작물들이 다 사라졌어요. 5개 화분만요. 아이들이 2인 1모둠으로 심어 놓은 것인데... 어제 점심시간까지 물 준 화분이 오늘 점심시간에 비어 있었어요.
텃밭 구조물을 경계로 타 학교 텃밭이고, 이렇게 심겨 있는 작물들을 뽑을 순 없을 것 같거든요.


지금 교장교감 선생님이랑 상의하고, 타 학교 교장교감 선생님한테도 상황을 공유했는데, 외계인이 아니고서는... 작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게...
참새
학생들 마음이 안 다치길~~ 정말 나 식물임이 명확하게 드러내는데... 누굴까?
딱새
사라진 작물들이 대략 어떤 것들인가요? 가지나 토마토처럼 큰 것들도 사라졌나요?
검은등뻐꾸기
아이들이 이름표도 붙여 놓고 했는데...


# 2
검은등뻐꾸기
아이들 텃밭을 타 학교 텃밭 선생님이 정리하신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타 교장 선생님과의 소통 과정에서 버려도 되는 상자 텃밭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착각하였다.
그래서 구청에서 받은 모종들의 남은 모종을 심기 위해 정리했고,
정신없는 중이라 아이들 이름 팻말도 보지못했다.”
어제 학교들 교감님 두 분과 당사자 선생님 저 이렇게 넷이 면담을 했는데,
일단 실수했다, 물아보고 했어야 했는데 죄송하다 사과는 하시고
아이들에게 사과, 자신 학교 예산으로 학생들의 이후 계획을 지원하겠다 약속은 하셨으나,
잘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에요.
게다가 버린 토마토는 어디다 두셨는지 알아봐달라 하였는데 하나를 찾았다고 하시며 또 다른 아이들이 씨를 뿌려 싹이 난 텃밭 상자에 싹 가운데 심어두신 것이 오늘 발견되어서.
아이들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작물을 만나고 있는지, - 무엇을 뽑아버리신 것인지 - 말씀은 드렸는데 가 닿았는지는.
아이들은 엽서에다가 잃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있었는지, 마음은 어떤지 써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 텃밭 둘레에 붙여두기로 하였는데 마음이 쉬이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어요.
과정 중입니다. ㅠ
곤줄박이
제 것만 위해 행동했다는 근시안+자신을 방해하는 것은 제거하는 폭력이라는 생각입니다.
비둘기
한편으로 뭉클해지면서 흐뭇해지네요. 선생님이나 관련 샘들이나 특히 아이들 마음밭이...
노자가 그랬다던가? 하농은 작물을 키우고 중논은 흙을 키우고 상농은 사람을 키운다고.
모종은 잃었지만 그 사건을 대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참... 사람을 키우는 농사이지 싶습니다. 학생 사람, 교장 사람 등을 두루 스스로 돌아보고 살펴 성장하게 하는.
흙의 마음으로 사람을 키우는 상농이십니다.
곤줄박이
왜 슬프지. 무지를 가장한 폭력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야 하는가...의 경계에 있는 문제처럼 보여요.
비둘기
“ 아이들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작물을 만나고 있는지, - 무엇을 뽑아버리신 것인지- 말씀은 드렸는데 가 닿았는지는.
아이들은 엽서에다가 잃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있었는지, 마음은 어떤지 써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 텃밭 둘레에 붙여두기로 하였는데 마음이 쉬이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어요. 과정중입니다.”
위 대목이 참 좋네요. 회복적 정의도 떠오르고, 실수도 악의도 선악의 구분도 없는 자연생태계의 경계도 한계도 없는 포용력도 떠오르고.
저는 그 타 학교 선생님이 무지를 가장했다는 것도, 그 정도를 폭력이라 칭하는 데도 선뜻 동의가 되질 않네요. 어쩌면 그게 요즘 도시인의 작물에 대한 평균적 상식일 수 있어요. 울 학교 텃밭에서 성체로 자란 감자를 보고도 딸기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더구나 바쁜 현대인들이 당장의 자기 과제에 쫗겨 주변이나 이전 서사를 살피지 못하고 직진하는 것은 저도 흔하게 범하는 악의 없는 실수라.
곤줄박이
‘실수했다’고 사과를 했다는 대목이 ‘무지’를 가장한 것으로 생각되고, 자신의 모종을 심기 위해 (정신줄을 놔서) 아이들의 이름표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예전 학교에서... 딸기가 무성하다고 뿌리만 남기고 몽땅 예초를 해버린 사건도 생각나면서...(그때 저는 엉엉 울었어요. '필요'에 의해서 제거해버리는 그 행위의 폭력성이 너무 서글프고 아파서)
일은 벌어졌고 타인의 물건을 손댔으니 사과는 해야겠지요. 그러니 앞뒤를 맞추어 궁색한 변명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후 학생들의 계획을 돈으로 메꿔주겠다니, 그 팀은 구청 모종을 왜 심는답니까.
회복적 정의를 위해서라면 제거한 식물을 심은 사람들의 마음 앞에서 함께 둘러 앉아 해결 방법을 논해야죠. 피해자가 잃어버린 것을 더듬어 찾아 모으고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한 쪽에서 자신이 무엇을 없앴는지(단순히 돈 주고 사는 식물이 아니잖아요)부터 성찰해야지요.
검은등뻐꾸기
두 분이 나눠 주시는 말씀이 딱 제가 교신 중에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에요.
아이들 이야기도 그렇고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져서,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이고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는 더. 사과를 위한 만남을 글로 해야 할지 아이들과 직접 만나시는 것이 나을지까지도 고민되었거든요. 아이들이 더 속상해지는 건 아닌가 싶고.
타교 교감 선생님께서 제 설명을 들으시고는 학생들이 이런 취지로, 어떤 깊이로 텃밭을 만나는지 처음 알았다. 당신 학교는 구청에서 모종 오면 아이들이 하루 나와 심고 그다음엔 선생님들이나 실무사들이 관리한다. 그리고 심든 뽑든 별로 관심없다. 그런데 어떤 것인지 설명을 들으니 이 일의 무게가 더 절감된다며 죄송하다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학교 텃밭 교육의 내용과 생태교육에 대한 선생님들의 태도와 문화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이었나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러니 악하게 느껴지지만은 않고 비둘기 선생님의 맥락에서 생각하게 된 점도 있었는데... 오늘 토마토 모종이 싹들 사이에 꽂혀 있는 걸 보니... 또 마음이 덜컥... 하하 복잡합니다.
어제 구석에서 버려진 작물을 찾아 헤매던 아이들이 일부 버려진 메리골드와 풀, 마른 가지를 발견했는데요. 이거 ㅇㅇ이가 심은 건지 어떻게 알았냐고 제가 묻자, 이거 저희가 텃밭 꾸며둔 풀과 가지예요. 그리고 여기 보세요. ㅇㅇㅇ선생님이 메리골드 첫 꽃 따 주라 하셔서 두 송이 따 준 부분 여기고요. 거기서 새로운 부분이 자라나는 걸 저희가 보고 있었어요 하더니 조금 이따가 그 메리골드 다시 가서 심어 주고 물 주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더 속상하고 눈물이 나고 했는데, 또 그 와중에 아이들한테 이런 부분 갈쳐 주신 ㅇㅇ샘, ㅇㅇ샘께 감사한 마음도 들고. 말씀대로 회복이란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둘기
곤줄박이 샘이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있었다니 말씀이 좀 더 납득이 되네요. 하지만 타 학교 샘이 변명처럼 보이는 해명이나 예산 지원하겠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나 돈으로 메꾸겠다는 못된 고의이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상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상식적인 최선일 수 있죠. 이쪽에서는 양에 안 찰 수 있지만 그들의 진심을 악의적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제가 회복적 정의를 떠 올린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당한 피해에 대해서 상대를 너무 미워하기보다 작물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일로 인해 지금 자신들이 어떤 심정인지를, 그것도 직접 상대에게 전달하거나 하지 않고 자기들 텃밭에 글로 써서 게시한다는 것에서 써클의 도입 장면이 떠오르고, 그러기 쉽잖은데 좀 감성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아이들 마음이 참 차분하고 평화롭다, 이게 그냥 되기 쉽잖은데 아마 샘이 뭔가 ‘넛지’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남의 일(?)이라고 혼자 흐뭇해하고 그랬습니다.
곤줄박이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과 같이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 행위자들이 악하다는 판단을 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공공의 물건에 대한 인식(사유재산이었다면 그렇게 대했을까), 공공성, 공동체에 대한 얄팍한 행위들이 참으로 아픕니다. 그래서 많이 아프다, 힘들다는 표현은 조심하지 않고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비둘기
그 문제의식 내용에 동의합니다!^^;
# 3
검은등뻐꾸기
곤줄박이 샘, 저는 선생님의 예민함과 까칠함을 무척 좋아합니다. ♡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깨워주시는 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아이들과 두 차례 회의에서 이야기 나눌 때 한 학생이, 엽서에 우리 이야기를 쓰자는 이야기들에 왜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만 써야 하냐. 해당 선생님 또한 경위를 명확히 밝혀 글을 정리하시고, 사과의 뜻을 텃밭에 공개적으로 게시해 주면 좋겠다. 다른 학생들은 제 이야기를 듣고 사과문이 글의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이야기한 반면 이 학생은 선생님을 직접 뵙고 추가 질문을 하고 싶다 했고요.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조금 더 이 학생의 요구가 이해되는 느낌이에요 - 분명히 보고 있는 것이고요.
누가 그랬는지 몰랐던 시점에 저는 전체 메세지를 돌려 상황을 알렸어요. 자초지종을 아는 분들을 찾기 위함이었는데 (물론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선생님들이 저를 만날 때마다 도둑 찾았냐, 말도 안되는 일이다, 고의적이다 등 같이 분개해 주셨고요.
타 학교 선생님이신 거 확인되었을 때 선생님들이 분개하신 만큼 이러다 사람 하나 이상하게 되어버리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조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4자 대면 끝나고 나서는 이후에 선생님들이 물으시면 누가 그랬는지에 이야기가 꽂히게 하진 말아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고요. 그런면에서 관계에 무게를 실은 것도 맞고요.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곤줄박이 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생태전환교육을 넘어 학생인권 등 학교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많은 이슈를 학교 안에서 다룰 때 그 방식 문제로 고민이 확장되는데... 이 부분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래서 상황을 살피면서 시간을 늘려 쓰는 방법을 택해왔던 것 같은데, 때론 그것이 후퇴가 되어버리더라고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기회와 장면을 도모하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변화가 되기를 바라고 있긴 합니다.
제게도 무척 중요한 문제라 교육농 모임에서도 꼭 나눠 보고 싶고요.
까치
저는, 공유의 비극을 넘어, 저자가 커먼즈가 유지되지 못하는 현장 앞에 마주 섰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숲과 관개수로, 어장과 공동 목초지에서 문제는 늘 자원이 부족해서만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돌보고 있는지, 어디까지가 함께 쓰는 경계인지, 어떤 약속이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보이지 않을 때 커먼즈는 흔들렸습니다. 그 눈으로 학교 텃밭을 바라보면, 이미 한 학년의 손길과 시간이 남아 있는 흙 위에 다른 학년 교사가 학생들과 다시 모종을 심은 일은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악의의 결과라기보다 서로의 돌봄이 보이지 않았던 장면입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질책이 아니라 학교 텃밭을 배움의 커먼즈로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텃밭 구획, 작물명, 담당 학년, 심은 날짜, 관찰 기간을 표시하는 일은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공동자원의 기억 장치입니다. 새로 모종을 심을 때에는 빈 공간을 확인하고, 기존 돌봄 주체에게 묻고, 필요하면 함께 조정하는 짧은 절차가 필요합니다. 텃밭은 어느 한 학년의 소유물이 아니라, 서로의 돌봄이 침범되지 않아야 하는 공동의 배움터입니다. 이 장면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공유와 책임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학교 안의 공유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작은 현장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동고비
내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제거해도 된다는 생각… 이해가 안 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교육적으로 풀어 가시는 과정 함께 지켜볼 수 있는 교육농이 참 좋습니다~
검은등뻐꾸기
까치 말씀 감사합니다. 뒷풀이 자리의 주제로 담겠다는 내용이 결국은 이 사안과 더불어 커먼즈의 문제의식과 깊게 닿아 있네요. 되려 전면으로 이 문제를 끌고 나올 필요성이 느껴졌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커먼즈가 막연한 공유가 아닌 공동의 규칙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 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구획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롭게 배워요. 아이들과 그 이야기도 해 볼 수 있겠어요.
모종이 하룻밤 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 학교라는 공동의 배움터, 공유 방식 익히기
사라졌다.
관련 작물에 대해 배우고 정성껏 심고 이름표까지 달아 둔 상자텃밭 모종이 하룻밤새 감쪽같이 사라졌다.
분명히 어제 점심시간에도 물과 정성을 듬뿍 주었던 작물이다.
누군가? 새? 어떤 동물? 외계인?
이 내용은 한 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육활동으로 심은 작물이 하룻밤 새 사라진 사건을 두고 조합원들이 의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 대화를 따라가며 공동의 배움터로서 학교와 교육농 활동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들이 필요할지 고민을 진전시켜 나눌 수 있겠기에 소개한다. 학교가 특정되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부를 수 있어 가명으로 정리한다. - 풀씨
# 1
검은등뻐꾸기
어제까지 멀쩡히 있던 아이들의 상자텃밭 작물들이 다 사라졌어요. 5개 화분만요. 아이들이 2인 1모둠으로 심어 놓은 것인데... 어제 점심시간까지 물 준 화분이 오늘 점심시간에 비어 있었어요.
텃밭 구조물을 경계로 타 학교 텃밭이고, 이렇게 심겨 있는 작물들을 뽑을 순 없을 것 같거든요.
지금 교장교감 선생님이랑 상의하고, 타 학교 교장교감 선생님한테도 상황을 공유했는데, 외계인이 아니고서는... 작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게...
참새
학생들 마음이 안 다치길~~ 정말 나 식물임이 명확하게 드러내는데... 누굴까?
딱새
사라진 작물들이 대략 어떤 것들인가요? 가지나 토마토처럼 큰 것들도 사라졌나요?
검은등뻐꾸기
아이들이 이름표도 붙여 놓고 했는데...
# 2
검은등뻐꾸기
아이들 텃밭을 타 학교 텃밭 선생님이 정리하신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타 교장 선생님과의 소통 과정에서 버려도 되는 상자 텃밭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착각하였다.
그래서 구청에서 받은 모종들의 남은 모종을 심기 위해 정리했고,
정신없는 중이라 아이들 이름 팻말도 보지못했다.”
어제 학교들 교감님 두 분과 당사자 선생님 저 이렇게 넷이 면담을 했는데,
일단 실수했다, 물아보고 했어야 했는데 죄송하다 사과는 하시고
아이들에게 사과, 자신 학교 예산으로 학생들의 이후 계획을 지원하겠다 약속은 하셨으나,
잘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에요.
게다가 버린 토마토는 어디다 두셨는지 알아봐달라 하였는데 하나를 찾았다고 하시며 또 다른 아이들이 씨를 뿌려 싹이 난 텃밭 상자에 싹 가운데 심어두신 것이 오늘 발견되어서.
아이들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작물을 만나고 있는지, - 무엇을 뽑아버리신 것인지 - 말씀은 드렸는데 가 닿았는지는.
아이들은 엽서에다가 잃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있었는지, 마음은 어떤지 써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 텃밭 둘레에 붙여두기로 하였는데 마음이 쉬이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어요.
과정 중입니다. ㅠ
곤줄박이
제 것만 위해 행동했다는 근시안+자신을 방해하는 것은 제거하는 폭력이라는 생각입니다.
비둘기
한편으로 뭉클해지면서 흐뭇해지네요. 선생님이나 관련 샘들이나 특히 아이들 마음밭이...
노자가 그랬다던가? 하농은 작물을 키우고 중논은 흙을 키우고 상농은 사람을 키운다고.
모종은 잃었지만 그 사건을 대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참... 사람을 키우는 농사이지 싶습니다. 학생 사람, 교장 사람 등을 두루 스스로 돌아보고 살펴 성장하게 하는.
흙의 마음으로 사람을 키우는 상농이십니다.
곤줄박이
왜 슬프지. 무지를 가장한 폭력을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야 하는가...의 경계에 있는 문제처럼 보여요.
비둘기
“ 아이들이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작물을 만나고 있는지, - 무엇을 뽑아버리신 것인지- 말씀은 드렸는데 가 닿았는지는.
아이들은 엽서에다가 잃게 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있었는지, 마음은 어떤지 써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 텃밭 둘레에 붙여두기로 하였는데 마음이 쉬이 괜찮아질지는 모르겠어요. 과정중입니다.”
위 대목이 참 좋네요. 회복적 정의도 떠오르고, 실수도 악의도 선악의 구분도 없는 자연생태계의 경계도 한계도 없는 포용력도 떠오르고.
저는 그 타 학교 선생님이 무지를 가장했다는 것도, 그 정도를 폭력이라 칭하는 데도 선뜻 동의가 되질 않네요. 어쩌면 그게 요즘 도시인의 작물에 대한 평균적 상식일 수 있어요. 울 학교 텃밭에서 성체로 자란 감자를 보고도 딸기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더구나 바쁜 현대인들이 당장의 자기 과제에 쫗겨 주변이나 이전 서사를 살피지 못하고 직진하는 것은 저도 흔하게 범하는 악의 없는 실수라.
곤줄박이
‘실수했다’고 사과를 했다는 대목이 ‘무지’를 가장한 것으로 생각되고, 자신의 모종을 심기 위해 (정신줄을 놔서) 아이들의 이름표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나 기가 막힙니다. 예전 학교에서... 딸기가 무성하다고 뿌리만 남기고 몽땅 예초를 해버린 사건도 생각나면서...(그때 저는 엉엉 울었어요. '필요'에 의해서 제거해버리는 그 행위의 폭력성이 너무 서글프고 아파서)
일은 벌어졌고 타인의 물건을 손댔으니 사과는 해야겠지요. 그러니 앞뒤를 맞추어 궁색한 변명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후 학생들의 계획을 돈으로 메꿔주겠다니, 그 팀은 구청 모종을 왜 심는답니까.
회복적 정의를 위해서라면 제거한 식물을 심은 사람들의 마음 앞에서 함께 둘러 앉아 해결 방법을 논해야죠. 피해자가 잃어버린 것을 더듬어 찾아 모으고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한 쪽에서 자신이 무엇을 없앴는지(단순히 돈 주고 사는 식물이 아니잖아요)부터 성찰해야지요.
검은등뻐꾸기
두 분이 나눠 주시는 말씀이 딱 제가 교신 중에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에요.
아이들 이야기도 그렇고 저희 입장에서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느껴져서, 몹시 당황스러운 상황이고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는 더. 사과를 위한 만남을 글로 해야 할지 아이들과 직접 만나시는 것이 나을지까지도 고민되었거든요. 아이들이 더 속상해지는 건 아닌가 싶고.
타교 교감 선생님께서 제 설명을 들으시고는 학생들이 이런 취지로, 어떤 깊이로 텃밭을 만나는지 처음 알았다. 당신 학교는 구청에서 모종 오면 아이들이 하루 나와 심고 그다음엔 선생님들이나 실무사들이 관리한다. 그리고 심든 뽑든 별로 관심없다. 그런데 어떤 것인지 설명을 들으니 이 일의 무게가 더 절감된다며 죄송하다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 사건이 학교 텃밭 교육의 내용과 생태교육에 대한 선생님들의 태도와 문화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이었나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러니 악하게 느껴지지만은 않고 비둘기 선생님의 맥락에서 생각하게 된 점도 있었는데... 오늘 토마토 모종이 싹들 사이에 꽂혀 있는 걸 보니... 또 마음이 덜컥... 하하 복잡합니다.
어제 구석에서 버려진 작물을 찾아 헤매던 아이들이 일부 버려진 메리골드와 풀, 마른 가지를 발견했는데요. 이거 ㅇㅇ이가 심은 건지 어떻게 알았냐고 제가 묻자, 이거 저희가 텃밭 꾸며둔 풀과 가지예요. 그리고 여기 보세요. ㅇㅇㅇ선생님이 메리골드 첫 꽃 따 주라 하셔서 두 송이 따 준 부분 여기고요. 거기서 새로운 부분이 자라나는 걸 저희가 보고 있었어요 하더니 조금 이따가 그 메리골드 다시 가서 심어 주고 물 주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더 속상하고 눈물이 나고 했는데, 또 그 와중에 아이들한테 이런 부분 갈쳐 주신 ㅇㅇ샘, ㅇㅇ샘께 감사한 마음도 들고. 말씀대로 회복이란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둘기
곤줄박이 샘이 그런 개인적인 경험이 있었다니 말씀이 좀 더 납득이 되네요. 하지만 타 학교 샘이 변명처럼 보이는 해명이나 예산 지원하겠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나 돈으로 메꾸겠다는 못된 고의이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상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상식적인 최선일 수 있죠. 이쪽에서는 양에 안 찰 수 있지만 그들의 진심을 악의적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제가 회복적 정의를 떠 올린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당한 피해에 대해서 상대를 너무 미워하기보다 작물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일로 인해 지금 자신들이 어떤 심정인지를, 그것도 직접 상대에게 전달하거나 하지 않고 자기들 텃밭에 글로 써서 게시한다는 것에서 써클의 도입 장면이 떠오르고, 그러기 쉽잖은데 좀 감성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아이들 마음이 참 차분하고 평화롭다, 이게 그냥 되기 쉽잖은데 아마 샘이 뭔가 ‘넛지’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남의 일(?)이라고 혼자 흐뭇해하고 그랬습니다.
곤줄박이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과 같이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 행위자들이 악하다는 판단을 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공공의 물건에 대한 인식(사유재산이었다면 그렇게 대했을까), 공공성, 공동체에 대한 얄팍한 행위들이 참으로 아픕니다. 그래서 많이 아프다, 힘들다는 표현은 조심하지 않고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비둘기
그 문제의식 내용에 동의합니다!^^;
# 3
검은등뻐꾸기
곤줄박이 샘, 저는 선생님의 예민함과 까칠함을 무척 좋아합니다. ♡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깨워주시는 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아이들과 두 차례 회의에서 이야기 나눌 때 한 학생이, 엽서에 우리 이야기를 쓰자는 이야기들에 왜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만 써야 하냐. 해당 선생님 또한 경위를 명확히 밝혀 글을 정리하시고, 사과의 뜻을 텃밭에 공개적으로 게시해 주면 좋겠다. 다른 학생들은 제 이야기를 듣고 사과문이 글의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이야기한 반면 이 학생은 선생님을 직접 뵙고 추가 질문을 하고 싶다 했고요.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조금 더 이 학생의 요구가 이해되는 느낌이에요 - 분명히 보고 있는 것이고요.
누가 그랬는지 몰랐던 시점에 저는 전체 메세지를 돌려 상황을 알렸어요. 자초지종을 아는 분들을 찾기 위함이었는데 (물론 널리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선생님들이 저를 만날 때마다 도둑 찾았냐, 말도 안되는 일이다, 고의적이다 등 같이 분개해 주셨고요.
타 학교 선생님이신 거 확인되었을 때 선생님들이 분개하신 만큼 이러다 사람 하나 이상하게 되어버리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조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4자 대면 끝나고 나서는 이후에 선생님들이 물으시면 누가 그랬는지에 이야기가 꽂히게 하진 말아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고요. 그런면에서 관계에 무게를 실은 것도 맞고요.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곤줄박이 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생태전환교육을 넘어 학생인권 등 학교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많은 이슈를 학교 안에서 다룰 때 그 방식 문제로 고민이 확장되는데... 이 부분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그래서 상황을 살피면서 시간을 늘려 쓰는 방법을 택해왔던 것 같은데, 때론 그것이 후퇴가 되어버리더라고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기회와 장면을 도모하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변화가 되기를 바라고 있긴 합니다.
제게도 무척 중요한 문제라 교육농 모임에서도 꼭 나눠 보고 싶고요.
까치
저는, 공유의 비극을 넘어, 저자가 커먼즈가 유지되지 못하는 현장 앞에 마주 섰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숲과 관개수로, 어장과 공동 목초지에서 문제는 늘 자원이 부족해서만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돌보고 있는지, 어디까지가 함께 쓰는 경계인지, 어떤 약속이 현장에서 작동하는지 보이지 않을 때 커먼즈는 흔들렸습니다. 그 눈으로 학교 텃밭을 바라보면, 이미 한 학년의 손길과 시간이 남아 있는 흙 위에 다른 학년 교사가 학생들과 다시 모종을 심은 일은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악의의 결과라기보다 서로의 돌봄이 보이지 않았던 장면입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질책이 아니라 학교 텃밭을 배움의 커먼즈로 다시 설계하는 일입니다. 텃밭 구획, 작물명, 담당 학년, 심은 날짜, 관찰 기간을 표시하는 일은 단순한 안내가 아니라 공동자원의 기억 장치입니다. 새로 모종을 심을 때에는 빈 공간을 확인하고, 기존 돌봄 주체에게 묻고, 필요하면 함께 조정하는 짧은 절차가 필요합니다. 텃밭은 어느 한 학년의 소유물이 아니라, 서로의 돌봄이 침범되지 않아야 하는 공동의 배움터입니다. 이 장면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공유와 책임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학교 안의 공유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작은 현장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동고비
내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제거해도 된다는 생각… 이해가 안 되지만 이미 벌어진 일, 교육적으로 풀어 가시는 과정 함께 지켜볼 수 있는 교육농이 참 좋습니다~
검은등뻐꾸기
까치 말씀 감사합니다. 뒷풀이 자리의 주제로 담겠다는 내용이 결국은 이 사안과 더불어 커먼즈의 문제의식과 깊게 닿아 있네요. 되려 전면으로 이 문제를 끌고 나올 필요성이 느껴졌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커먼즈가 막연한 공유가 아닌 공동의 규칙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 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구획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롭게 배워요. 아이들과 그 이야기도 해 볼 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