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농
토종 씨앗, 농업을 지속하는 고리
- 토종 씨앗과 생태, 복지를 함께 모색하는 관계성의 경제를 고민하며
정용주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 서울 탑산초
연수➊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단어는 ‘토종 씨앗’이었다. 교육농을 실천하며 채종, 빗물 활용, 퇴비장을 통해 생태 순환 고리를 회복해 보고자 했던 나에게 ‘토종 씨앗’은 절대적인 언명과도 같았다. 그러나 농부에게는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실천이 초국적 농식품 체계에서 유기농보다 더 지속하기 어려운 일임을 실감했다.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단지 오랫동안 재배해 오던 것을 길러 먹는 차원을 넘어선다. 초국적 농식품 체계를 지역 농식품 체계(지역 순환 경제)로 전환하는, 아니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현재의 농식품 체계는 소수의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들에 의해 지배되는 식품 생산 구조이다. 몬산토, 카길, ADM 등의 거대 기업들이 곡물은 물론 쇠고기, 비료, 사료, 농약, 종자 산업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결과 농업에서 생산 현장과 소비 현장이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균열되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
우리의 식단과 먹거리 문화는 이미 초국적 농식품 체제에 포섭되어 입맛을 포함해 식단이 지역 농식품이 아닌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무엇을 만들어 먹느냐가 무엇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할 때,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었지만, 토종 씨앗 작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브라질산, 인도네시아산 유기농 작물이 음식 재료로 소비되지만 토종 씨앗으로 기른 것의 소비는 드물다. 따라서 토종 씨앗 기반의 지역 농식품 체계를 복원하는 것은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의 지배를 벗어나 대안적 패러다임을 만들고 소비 방식을 바꾸는 것과 같다.
초국적 농식품 체계에서 지역 농식품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토종 씨앗을 복원하여 초국적 종자 기업이 생산하는 씨앗을 대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토종 씨앗을 복원한다고 지역 단위의 자족 경제(지역 순환 경제)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초국적 농식품 체계의 희생자인 소비자의 변화와 함께하지 않으면 토종 씨앗의 복원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연수에서 토종 씨앗 농가와 소비자의 관계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더하게 된 것은 생산자 측과 소비자 측이 서로를 배려하고, 농(農)과 식(食) 사이의 거리와 시간을 줄이면서 관계를 회복하려는 운동을 통해서만 토종 씨앗 기반의 농업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농민, 가공업체, 소비자, 지역 정부 등이 함께 주체로 참여하면서 서로가 관계를 확대ㆍ심화시킬 때에만 토종 씨앗을 중심에 둔 지역 순환 경제가 가능하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농민 시장이 개설되어야 하고, 이를 지원하는 지역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제철 농산물을 중심으로 농민 시장이 운영되면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접근성이 좋아질 수 있다.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이를 위해 지역 정부가 결합하여 지역 내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지역 농산물을 학교 급식에서 활용하면서 서로의 관계성 확대하고 심화시켜야 지역 범위의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학교는 국가, 광역 기반으로 운영되기보다는 기초 자치 단체 기반의 지역성을 가져야 한다.
제철 꾸러미와 같은 지역 사회 지원 농업도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지금도 월회비 방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고 있지만 이보다는 연회비 방식으로 생산자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역 정부에서는 가족 단위에 일정 비율을 지원하고, 생산자는 책임지고 토종 씨앗을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소비자와 직접 책임 있는 거래를 하는 방식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씨앗을 통해 농업이 지속되는 고리
생태와 복지를 함께 모색하는 관계성의 경제에 토종 씨앗이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토종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토종 씨앗은 오래 농사를 지어 그 씨앗으로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 현장에서 보존하고 있고 형질이 고정되어 있는 것, 개량종이 아닌 지역에 적응한 것, 지역의 토양에 토착화된 것, 종묘 회사에서 가공을 거치지 않은 것 등으로 정의된다.
토종에 대한 학술적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 〈농업생명자원의 보존ㆍ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농업생명자원법) 제2조 제5항의 야생종과 재래종으로부터 토종을 정의할 수 있다.
가. 야생종 : 산ㆍ들 또는 강(하천ㆍ댐ㆍ호소ㆍ저수지를 포함한다)이나 바다 등 자연 상태에서 서식하거나 자생하는 종
나. 재래종 : 한 지역 및 수역(이하 “지역”이라 한다)에서 재배ㆍ사육ㆍ양식되어 다른 지역의 품종과 교배되지 아니하고 그 지역의 기후ㆍ풍토 및 수중 환경에 적응된 종
토종은 야생종과 재래종으로서 종자, 농산물, 가공품을 포함하여, 지역의 기후 및 풍토에 적응한 재래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역의 기후 및 풍토에 적응한 풀과 나무부터 재배 사육 양식되어 다른 지역의 품종과 교배되지 않은 농수산물을 토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로부터 토종 씨앗은 농민의 손에 의해 전통적으로 우리의 기후와 풍토에 맞게 적응되어 온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역에 따라 그 품종이 다양하게 유지 및 계승되어 왔다는 역사성도 있다. 그렇기에 세시풍속과 연결되어 식문화를 형성하여 왔다. 토종 씨앗은 지역 고유의 풍토와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금은 거의 단절되었지만 농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씨앗을 유지ㆍ계승해 다양한 씨앗들을 보존해 왔다. 그런데 모든 것이 상품으로 바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농업의 산업화로 토종 씨앗은 사라지고 더 나아가 초국적 기업 등이 종자 시장을 장악하며 ‘씨앗을 통해 농업이 지속되는 고리’는 끊어졌다. 이는 단순히 종자 하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환경 전체와 연계되어 있으며 자립과 순환을 방해한다. 그래서 본디 생태적 농업이 초국적 기업의 상품화되고 육종된 종자, 비료, 농약, 기계에 의존하는 관개농, 다시 말해 반생태적 농업이 되었고, 이에 반대되는 생태 농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토종 씨앗 농사가 어렵지만
모든 것이 상품이 돼 화폐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토종 농산물은 기업의 농산물과 비교할 때 상품성이 떨어진다. 토종이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여 재배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상품성을 위해 시설에서 비료와 농약으로 재배된 것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이러한 상황이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기를 어렵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격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자본주의의 ‘합리적 선택’이란 저가 경쟁을 유발하기 때문인데 저가 경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 때 유리해서 시설과 규모, 국제적, 전국적 유통망과 생산 설비를 갖춘 대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
식생활이 변화한 소비자들에게 요리법과 함께 토종 씨앗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어떻게 가공하여 판매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토종 씨앗 농산물의 판로를 만들고 가격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 정책을 펴는 것과 함께 소비자들의 식문화에 변화를 더하는 노력도 다각적으로 해야 한다. 이는 지역의 정치공동체로서 지역 정부가 그 몫을 해야 한다.
토종 씨앗은 농가와 소비자 사이의 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합리적 선택’의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공생 관계’를 맺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반자본주의적이다.
생협 모델은 농업 생산자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함으로써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고, 소비자는 안전한 먹거리로 농가의 생활을 지켜 주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이러한 유기농으로 연결된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여, 지역 내 자원이 상호 간 돌봄과 책임감이라는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 경제 활성화는 지역의 생태를 보존하면서 지역 자원을 사용케 하고 자기 의존성을 높이는 것으로, 지역 경제의 연결 고리를 이루는 핵심이 토종 씨앗이다. 왜냐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는 유기농의 실천과 함께 지역의 자립과 지역에서 살아 있는 힘의 회복 운동이고, 이러한 자립과 힘의 회복 운동은 토종 씨앗으로부터 시작된 지역 농산물의 유통과 재생산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토종 씨앗을 중심으로 한 유통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을 기초로 하기에 자연적으로 전국적 유통보다는 지역 소비를 지향한다. 이는 소농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가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살아 있는 생명 모두가 활기를 찾는 작업이다. 유기농과 토종 씨앗 기반 농사가 선순환하는 지역 경제를 만드는 과정은 생태전환교육을 가르치면서 교육과정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두 가지 운동이 결합되어야 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한다.
➊ 2022 교육농 여름 워크숍이 7월 29일~30일 전북 진안에서 열렸다.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이든농장 배이슬 님의 안내로 교육농을 실천해 온 마령초 교사들을 만나 고민을 나누고 (이때 마령초 선생님들이 나눠 주신 풀 음료수의 단맛이 더위와 갈증을 금세 가시게 해 주었다. 감사드린다) 마령활력센터 김춘자 님과는 토종 씨앗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든농장을 방문해서는 청년 농부로서의 생계와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고민, 종의 다양성을 위해 애쓰는 현장을 목격하며 들판의 풀로 음료수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교육농을 조금은 더 풍부화하는 자리였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교육농
토종 씨앗, 농업을 지속하는 고리
- 토종 씨앗과 생태, 복지를 함께 모색하는 관계성의 경제를 고민하며
정용주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 서울 탑산초
연수➊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단어는 ‘토종 씨앗’이었다. 교육농을 실천하며 채종, 빗물 활용, 퇴비장을 통해 생태 순환 고리를 회복해 보고자 했던 나에게 ‘토종 씨앗’은 절대적인 언명과도 같았다. 그러나 농부에게는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실천이 초국적 농식품 체계에서 유기농보다 더 지속하기 어려운 일임을 실감했다.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단지 오랫동안 재배해 오던 것을 길러 먹는 차원을 넘어선다. 초국적 농식품 체계를 지역 농식품 체계(지역 순환 경제)로 전환하는, 아니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현재의 농식품 체계는 소수의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들에 의해 지배되는 식품 생산 구조이다. 몬산토, 카길, ADM 등의 거대 기업들이 곡물은 물론 쇠고기, 비료, 사료, 농약, 종자 산업 전체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결과 농업에서 생산 현장과 소비 현장이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균열되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
우리의 식단과 먹거리 문화는 이미 초국적 농식품 체제에 포섭되어 입맛을 포함해 식단이 지역 농식품이 아닌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무엇을 만들어 먹느냐가 무엇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할 때,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었지만, 토종 씨앗 작물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브라질산, 인도네시아산 유기농 작물이 음식 재료로 소비되지만 토종 씨앗으로 기른 것의 소비는 드물다. 따라서 토종 씨앗 기반의 지역 농식품 체계를 복원하는 것은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의 지배를 벗어나 대안적 패러다임을 만들고 소비 방식을 바꾸는 것과 같다.
초국적 농식품 체계에서 지역 농식품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략이 모색되어야 한다. 토종 씨앗을 복원하여 초국적 종자 기업이 생산하는 씨앗을 대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토종 씨앗을 복원한다고 지역 단위의 자족 경제(지역 순환 경제)가 자동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초국적 농식품 체계의 희생자인 소비자의 변화와 함께하지 않으면 토종 씨앗의 복원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연수에서 토종 씨앗 농가와 소비자의 관계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더하게 된 것은 생산자 측과 소비자 측이 서로를 배려하고, 농(農)과 식(食) 사이의 거리와 시간을 줄이면서 관계를 회복하려는 운동을 통해서만 토종 씨앗 기반의 농업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농민, 가공업체, 소비자, 지역 정부 등이 함께 주체로 참여하면서 서로가 관계를 확대ㆍ심화시킬 때에만 토종 씨앗을 중심에 둔 지역 순환 경제가 가능하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농민 시장이 개설되어야 하고, 이를 지원하는 지역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야 제철 농산물을 중심으로 농민 시장이 운영되면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접근성이 좋아질 수 있다.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이를 위해 지역 정부가 결합하여 지역 내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지역 농산물을 학교 급식에서 활용하면서 서로의 관계성 확대하고 심화시켜야 지역 범위의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이 점에서 학교는 국가, 광역 기반으로 운영되기보다는 기초 자치 단체 기반의 지역성을 가져야 한다.
제철 꾸러미와 같은 지역 사회 지원 농업도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지금도 월회비 방식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고 있지만 이보다는 연회비 방식으로 생산자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지역 정부에서는 가족 단위에 일정 비율을 지원하고, 생산자는 책임지고 토종 씨앗을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소비자와 직접 책임 있는 거래를 하는 방식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씨앗을 통해 농업이 지속되는 고리
생태와 복지를 함께 모색하는 관계성의 경제에 토종 씨앗이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토종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토종 씨앗은 오래 농사를 지어 그 씨앗으로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 현장에서 보존하고 있고 형질이 고정되어 있는 것, 개량종이 아닌 지역에 적응한 것, 지역의 토양에 토착화된 것, 종묘 회사에서 가공을 거치지 않은 것 등으로 정의된다.
토종에 대한 학술적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 〈농업생명자원의 보존ㆍ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농업생명자원법) 제2조 제5항의 야생종과 재래종으로부터 토종을 정의할 수 있다.
가. 야생종 : 산ㆍ들 또는 강(하천ㆍ댐ㆍ호소ㆍ저수지를 포함한다)이나 바다 등 자연 상태에서 서식하거나 자생하는 종
나. 재래종 : 한 지역 및 수역(이하 “지역”이라 한다)에서 재배ㆍ사육ㆍ양식되어 다른 지역의 품종과 교배되지 아니하고 그 지역의 기후ㆍ풍토 및 수중 환경에 적응된 종
토종은 야생종과 재래종으로서 종자, 농산물, 가공품을 포함하여, 지역의 기후 및 풍토에 적응한 재래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역의 기후 및 풍토에 적응한 풀과 나무부터 재배 사육 양식되어 다른 지역의 품종과 교배되지 않은 농수산물을 토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로부터 토종 씨앗은 농민의 손에 의해 전통적으로 우리의 기후와 풍토에 맞게 적응되어 온 씨앗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역에 따라 그 품종이 다양하게 유지 및 계승되어 왔다는 역사성도 있다. 그렇기에 세시풍속과 연결되어 식문화를 형성하여 왔다. 토종 씨앗은 지역 고유의 풍토와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금은 거의 단절되었지만 농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씨앗을 유지ㆍ계승해 다양한 씨앗들을 보존해 왔다. 그런데 모든 것이 상품으로 바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농업의 산업화로 토종 씨앗은 사라지고 더 나아가 초국적 기업 등이 종자 시장을 장악하며 ‘씨앗을 통해 농업이 지속되는 고리’는 끊어졌다. 이는 단순히 종자 하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환경 전체와 연계되어 있으며 자립과 순환을 방해한다. 그래서 본디 생태적 농업이 초국적 기업의 상품화되고 육종된 종자, 비료, 농약, 기계에 의존하는 관개농, 다시 말해 반생태적 농업이 되었고, 이에 반대되는 생태 농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토종 씨앗 농사가 어렵지만
모든 것이 상품이 돼 화폐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토종 농산물은 기업의 농산물과 비교할 때 상품성이 떨어진다. 토종이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여 재배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해도 그렇다. 상품성을 위해 시설에서 비료와 농약으로 재배된 것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이러한 상황이 토종 씨앗으로 농사짓기를 어렵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격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자본주의의 ‘합리적 선택’이란 저가 경쟁을 유발하기 때문인데 저가 경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할 때 유리해서 시설과 규모, 국제적, 전국적 유통망과 생산 설비를 갖춘 대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
식생활이 변화한 소비자들에게 요리법과 함께 토종 씨앗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어떻게 가공하여 판매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토종 씨앗 농산물의 판로를 만들고 가격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 정책을 펴는 것과 함께 소비자들의 식문화에 변화를 더하는 노력도 다각적으로 해야 한다. 이는 지역의 정치공동체로서 지역 정부가 그 몫을 해야 한다.
토종 씨앗은 농가와 소비자 사이의 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합리적 선택’의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공생 관계’를 맺는 핵심 역할을 한다. 이런 점에서 반자본주의적이다.
생협 모델은 농업 생산자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려고 노력함으로써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고, 소비자는 안전한 먹거리로 농가의 생활을 지켜 주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이러한 유기농으로 연결된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여, 지역 내 자원이 상호 간 돌봄과 책임감이라는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 경제 활성화는 지역의 생태를 보존하면서 지역 자원을 사용케 하고 자기 의존성을 높이는 것으로, 지역 경제의 연결 고리를 이루는 핵심이 토종 씨앗이다. 왜냐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는 유기농의 실천과 함께 지역의 자립과 지역에서 살아 있는 힘의 회복 운동이고, 이러한 자립과 힘의 회복 운동은 토종 씨앗으로부터 시작된 지역 농산물의 유통과 재생산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토종 씨앗을 중심으로 한 유통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을 기초로 하기에 자연적으로 전국적 유통보다는 지역 소비를 지향한다. 이는 소농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가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살아 있는 생명 모두가 활기를 찾는 작업이다. 유기농과 토종 씨앗 기반 농사가 선순환하는 지역 경제를 만드는 과정은 생태전환교육을 가르치면서 교육과정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두 가지 운동이 결합되어야 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한다.
➊ 2022 교육농 여름 워크숍이 7월 29일~30일 전북 진안에서 열렸다.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이든농장 배이슬 님의 안내로 교육농을 실천해 온 마령초 교사들을 만나 고민을 나누고 (이때 마령초 선생님들이 나눠 주신 풀 음료수의 단맛이 더위와 갈증을 금세 가시게 해 주었다. 감사드린다) 마령활력센터 김춘자 님과는 토종 씨앗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든농장을 방문해서는 청년 농부로서의 생계와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고민, 종의 다양성을 위해 애쓰는 현장을 목격하며 들판의 풀로 음료수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교육농을 조금은 더 풍부화하는 자리였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