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농
진안 이든농장에서의 단상
- 2022 교육농 여름 워크숍➊을 다녀와서
지문희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 경기 저현고
농부 배이슬 샘을 만나고 싶었다. 교육농 온라인 연수에서 봤던 씩씩함, 텃밭마녀가 보내 주는 꾸러미 속 아름다운 지침과 보드라운 글들. 그가 그러한 생각들을 실천하는 공간 속에서 직접 그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관찰자의 선망과 오해가 섞여 있을지라도, 그가 움직이는 방향은 참 당당했고 매력적이었다.
▲ 마녀의 계절 꾸러미 속 지침
1. 자연에 기대어 농사를 짓습니다. 가장 위대한 마법은 자연이 하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입니다.
2. 사람의 몸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그 흐름에 맞추어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꾸러미에 제철 농산물을 담습니다.
3. 먹는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사짓는 농부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4.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위해 과한 포장은 하지 않습니다.
5. 잘나고, 못난 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제멋 부리며 자란 농산물을 당당하게(합당한 가격에) 판매합니다.
6. 돈을 주는 사람이 ‘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농부와 소비자가 평등한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7. ‘마녀(여성, 소농, 청년)’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위한 작은 작당을 함께 모의하고 일으킵니다. 재미나고 신명나게!
마령초등학교
알록달록한 단풍색 월남치마에 검정 고무신, 빨강머리 앤이 쓸 법한 모자를 쓴 이슬샘. 그는 마령초등학교 교사들과 워크숍에 참가한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도서관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지역 농부이자 학교 텃밭 강사로도 오래 활동한 그는 유연하게 대화를 이끌고 있었다. 도서관 마루에는 그가 마령초등학교 교사들과 함께한 텃밭 수업 프린트물이 여러 권 놓여 있었다. 두꺼운 프린트물을 살펴보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크고 당당한 목소리에 담긴 보드랍고 신중한 문장들. ‘저 사람이구나.’
이든농장
이슬샘이 풀과 함께 자연농법으로 가꾸는 이든농장. 핀터레스트➋에서만 보던 나무 지주대가 가지런하고, 꽃과 온갖 허브, 채소들이 함께 어울려 자라는 곳. 토종 벼를 키우는 논, 여러 채의 비닐하우스까지 상당히 넓었다. 이 넓은 곳을 할머니와 둘이 짓는다는 게 놀라웠다. 그의 안내를 따라 쪼르륵 농장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말로만 듣던 이슬샘의 할머니께서 나타나셨다. 할머니의 오랜 경험과는 사뭇 다른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손녀. 그 둘의 친밀한 아웅다웅을 아는 우리는 연신 손녀 칭찬에 열을 올렸다. 할머니께서는 여러 칭찬 중, ‘단단하다’에 반응하셨다. “쟈가 참 단단해. 이 큰 땅을 쟈가 다 지어.”
공존
자연농법을 지향하는 이슬샘 텃밭 옆 할머니 텃밭. 비닐 멀칭도 보이고 잡초도 거의 없다. 분명 해가 뜨겁지 않은 새벽에 나오셔서 열심히 풀을 뽑으셨을 것이다. 너무 다른 두 밭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있구나.’ 잠시 후 이슬샘이 안내한 콩밭. 제일 오른쪽 두 이랑과 고랑은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하다. 할머니께서 친구분과 김을 매셨단다. 손녀 몰래 김을 매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하는데, 이슬샘과 할머니의 경계에는 무엇이 필까?
할머니의 고추밭
할머니께서 손녀가 키운 여러 고추 모종을 가져다 심으셔서 고추 크기가 제각각이다. 줄을 매시면서 투덜거리셨다던 할머니. 할머니는 약도 안 치고 키워서 진딧물이 이리 많다며 고춧잎을 따서 보여 주신다. 이를 본 손녀가 “어제 약 쳤어. 식초, 뭐 이런 거”라고 하니 “그런 건 약도 아니여” 하고 냉큼 받아치신다. 진딧물이 많아도 고추는 실하던데...
할머니가 내민 고춧잎은 진정 불평인가? 아님 약도 안 치고 건강하게 고추를 키워내는 손녀 자랑인가? 헷갈린다.
안녕!
진안의 넓은 땅, 함께 삶을 꾸리는 가족들. 작물에 대한 깊은 지식과 다양한 활용법에 대한 연구, 무엇보다 자신만의 터전에서 농사를 업으로 삼는 친구들과의 연대.
“생계가... 가능한지 알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고부분 나 할 말 많어요.ㅋㅋㅋ”라고 툭 터놓는 이슬샘. 자립, 생계가 가능한 농부의 삶에 대한 고민은 못 들었지만, 관찰자의 어쭙잖은 단상일 수 있겠지만, 그가 보여 준 마녀의 지침을 담은 삶. 그러한 삶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슬샘, 1박 2일 동안 고마웠어요. 알려준 쇠뜨기차, 풀 음료수는 꼭 만들어 볼게요. 또 봐요!
▲ 왼쪽은 쇠뜨기차 오른쪽은 들판이 여러 가지 풀을 모아서 만든 음료수(코디얼)
➊ 교육농 여름 워크숍이 7월 29일~30일 전북 진안에서 열렸다.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이든농장 배이슬 님의 안내로 교육농을 실천해 온 마령초 교사들을 만나 고민을 나누고 (이때 마령초 선생님들이 나눠 주신 풀 음료수의 단맛이 더위와 갈증을 금세 가시게 해 주었다. 감사드린다) 마령활력센터 김춘자 님과는 토종 씨앗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든농장을 방문해서는 청년 농부로서의 생계와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고민, 종의 다양성을 위해 애쓰는 현장을 목격하며 들판의 풀로 음료수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교육농을 조금은 더 풍부화하는 자리였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주
➋ www.pinterest.co.kr 핀터레스트는 온갖 아이디어들이 공유되는 이미지 기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교육농
진안 이든농장에서의 단상
- 2022 교육농 여름 워크숍➊을 다녀와서
지문희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 경기 저현고
농부 배이슬 샘을 만나고 싶었다. 교육농 온라인 연수에서 봤던 씩씩함, 텃밭마녀가 보내 주는 꾸러미 속 아름다운 지침과 보드라운 글들. 그가 그러한 생각들을 실천하는 공간 속에서 직접 그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관찰자의 선망과 오해가 섞여 있을지라도, 그가 움직이는 방향은 참 당당했고 매력적이었다.
▲ 마녀의 계절 꾸러미 속 지침
1. 자연에 기대어 농사를 짓습니다. 가장 위대한 마법은 자연이 하는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입니다.
2. 사람의 몸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그 흐름에 맞추어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꾸러미에 제철 농산물을 담습니다.
3. 먹는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사짓는 농부가 먼저 행복해야 합니다.
4.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위해 과한 포장은 하지 않습니다.
5. 잘나고, 못난 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연에서 제멋 부리며 자란 농산물을 당당하게(합당한 가격에) 판매합니다.
6. 돈을 주는 사람이 ‘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농부와 소비자가 평등한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7. ‘마녀(여성, 소농, 청년)’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위한 작은 작당을 함께 모의하고 일으킵니다. 재미나고 신명나게!
마령초등학교
알록달록한 단풍색 월남치마에 검정 고무신, 빨강머리 앤이 쓸 법한 모자를 쓴 이슬샘. 그는 마령초등학교 교사들과 워크숍에 참가한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도서관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지역 농부이자 학교 텃밭 강사로도 오래 활동한 그는 유연하게 대화를 이끌고 있었다. 도서관 마루에는 그가 마령초등학교 교사들과 함께한 텃밭 수업 프린트물이 여러 권 놓여 있었다. 두꺼운 프린트물을 살펴보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크고 당당한 목소리에 담긴 보드랍고 신중한 문장들. ‘저 사람이구나.’
이든농장
이슬샘이 풀과 함께 자연농법으로 가꾸는 이든농장. 핀터레스트➋에서만 보던 나무 지주대가 가지런하고, 꽃과 온갖 허브, 채소들이 함께 어울려 자라는 곳. 토종 벼를 키우는 논, 여러 채의 비닐하우스까지 상당히 넓었다. 이 넓은 곳을 할머니와 둘이 짓는다는 게 놀라웠다. 그의 안내를 따라 쪼르륵 농장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말로만 듣던 이슬샘의 할머니께서 나타나셨다. 할머니의 오랜 경험과는 사뭇 다른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손녀. 그 둘의 친밀한 아웅다웅을 아는 우리는 연신 손녀 칭찬에 열을 올렸다. 할머니께서는 여러 칭찬 중, ‘단단하다’에 반응하셨다. “쟈가 참 단단해. 이 큰 땅을 쟈가 다 지어.”
공존
자연농법을 지향하는 이슬샘 텃밭 옆 할머니 텃밭. 비닐 멀칭도 보이고 잡초도 거의 없다. 분명 해가 뜨겁지 않은 새벽에 나오셔서 열심히 풀을 뽑으셨을 것이다. 너무 다른 두 밭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있구나.’ 잠시 후 이슬샘이 안내한 콩밭. 제일 오른쪽 두 이랑과 고랑은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하다. 할머니께서 친구분과 김을 매셨단다. 손녀 몰래 김을 매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하는데, 이슬샘과 할머니의 경계에는 무엇이 필까?
할머니의 고추밭
할머니께서 손녀가 키운 여러 고추 모종을 가져다 심으셔서 고추 크기가 제각각이다. 줄을 매시면서 투덜거리셨다던 할머니. 할머니는 약도 안 치고 키워서 진딧물이 이리 많다며 고춧잎을 따서 보여 주신다. 이를 본 손녀가 “어제 약 쳤어. 식초, 뭐 이런 거”라고 하니 “그런 건 약도 아니여” 하고 냉큼 받아치신다. 진딧물이 많아도 고추는 실하던데...
할머니가 내민 고춧잎은 진정 불평인가? 아님 약도 안 치고 건강하게 고추를 키워내는 손녀 자랑인가? 헷갈린다.
안녕!
진안의 넓은 땅, 함께 삶을 꾸리는 가족들. 작물에 대한 깊은 지식과 다양한 활용법에 대한 연구, 무엇보다 자신만의 터전에서 농사를 업으로 삼는 친구들과의 연대.
“생계가... 가능한지 알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고부분 나 할 말 많어요.ㅋㅋㅋ”라고 툭 터놓는 이슬샘. 자립, 생계가 가능한 농부의 삶에 대한 고민은 못 들었지만, 관찰자의 어쭙잖은 단상일 수 있겠지만, 그가 보여 준 마녀의 지침을 담은 삶. 그러한 삶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슬샘, 1박 2일 동안 고마웠어요. 알려준 쇠뜨기차, 풀 음료수는 꼭 만들어 볼게요. 또 봐요!
▲ 왼쪽은 쇠뜨기차 오른쪽은 들판이 여러 가지 풀을 모아서 만든 음료수(코디얼)
➊ 교육농 여름 워크숍이 7월 29일~30일 전북 진안에서 열렸다. 교육농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한 이든농장 배이슬 님의 안내로 교육농을 실천해 온 마령초 교사들을 만나 고민을 나누고 (이때 마령초 선생님들이 나눠 주신 풀 음료수의 단맛이 더위와 갈증을 금세 가시게 해 주었다. 감사드린다) 마령활력센터 김춘자 님과는 토종 씨앗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든농장을 방문해서는 청년 농부로서의 생계와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한 고민, 종의 다양성을 위해 애쓰는 현장을 목격하며 들판의 풀로 음료수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교육농을 조금은 더 풍부화하는 자리였기를 기대한다.
– 편집자 주
➋ www.pinterest.co.kr 핀터레스트는 온갖 아이디어들이 공유되는 이미지 기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