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교육농, 9월
가을 내내 나를 늘 반겨 주었다
강주희 서울 우장초
지난달 씨앗에 대한 생각을 좀 한 후로 로열티를 주지 않는 국내 종자 회사의 무와 배추를 골랐다. 불암 3호와 불암 플러스, 황금배추. 무는 천수무와 청운무. 그동안 종자를 사는 일이 못내 불편했는데 이렇게 편안하고 즐겁기는(?) 처음이다.
두근두근! 지난 8월 초, 방학 중임에도 관심을 한껏 불러 일으킨 우리반 아이들과 엄마들이 여럿 모여서 야심차게 배추, 무 모종을 냈다.
결과는? 실패. 배추는 씨앗 둘만 싹이 돋았다... 나머지는 감감 무소식. 무 씨앗은 이틀 만에 싹이 트고 3일째는 제법 떡잎이 보였으나, 3박 4일 여름 휴가를 다녀온 주말 사이 4-5센티나 훌쩍 웃자랐다. 본잎은 아직인데, 줄기만 콩나물처럼 자라 휘어지고 꺾이고 뒤엉켰다. 이제 곧 개학인데... 비가 억세게 퍼붓던 날 교실에 와서 한 알 한 알 씨앗을 넣어 주던 아이들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개학을 이틀 앞두고 모종판에 다시 씨앗을 넣었다. 그 뒤로 무 씨앗은 오늘까지 잘 자라 본잎이 제법 커졌다. 아직 채우지 못한 빈 밭에 심을 것이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8월 8일, 교실에 모인 우리는 토종 종자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한 후 배추와 무를 심었다.
▲딱 일주일만에 길게 웃자란 무 씨앗들은 개학 즈음에는 심을 수 없을 만큼 휘고 꺾이고 엉켰다. 온실없이 모종 내기에 도전한 탓도 있지만 8월 초, 비가 계속 이어져 웃자라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8.16)
▲개학을 이틀 앞두고 다시 심은 천수무, 청운무 종자는 온실 없이도 잘 자라 본잎이 깨끗이 돋았다. 배추는 8월 초에 모종을 내더라도 무는 8월 중순 즈음 모종을 내어도 되겠다.
유기농 배추는 절대 안 먹을 거야
가을밭이 주는 정취가 있다. 한껏 자라던 풀들은 기세가 꺾이고, 작물들도 몇 가지로 정리된다. 봄에 심은 토마토나 가지, 오이를 남겨두었다면 모를까 대부분 김장 채소 중심으로 밭이 달라진다. 배추와 무, 갓, 쪽파, 상추는 학교 농장 지원 사업 물품에서도 대표적이다. 여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작물들이지만 ‘배추’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배추는 모종을 심는 순간부터 청벌레의 잔치 마당이 된다. 배추벌레는 배추의 바깥 본잎이 손바닥만큼 넓어질 때까지 배추들을 초토화시킨다. 약 없이 배추를 키운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걸 좀 아는 분들은 배추를 키우지 않는다.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은 4년 전 학교 배추를 두어 통 받아 그날 저녁 바로 갈라보았다가 시커멓게 싸놓은 애벌레 똥이며 진딧물에 놀라 농약 배추를 먹기로 마음먹었단다. 유기농 배추 속의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만 농약은 안 보이니까 괜찮단다. 벌레 먹은 시꺼먼 배추가 눈 앞에 있는 듯 인상 쓰시는 모습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가을도 배추 키우겠다는 학년이 없다. 어지간하면 어렵다고 고개를 젓는 것이 배추 농사다. 9월 한 달은 진정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이틀에 한 번, 좀 여유를 부린다면 사흘에 한 번 방제를 한다. 방제약은 난각칼슘액비, 난황유(교육농 웹진 6월호 참고). 민달팽이가 사는 곳이라면 교무실에서 나오는 커피가루도 밭에 뿌려 준다. 나는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아이들하고 물주기를 하면서 식초 방제를 하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주말맞이 방제를 한다. 배추는 물도 넉넉히 주는 만큼 눈에 띄게 커지니, 물을 줄 때마다 칼슘액비 물약병을 챙겨 나가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학교 농장 지원 물품으로 알게 된 시중 판매 유기농자재 방충방제약도 몇 가지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면 그만이다. 잊지 말자, 심자마자 물을 주는 순간부터 벌레들의 잔치가 열린다는 것을!
▲심고 나서 방제를 놓친 배추 모종
▲너무 상심하지 말기. 이 상태에서도 부지런히 방제를 하면 된다. (20.9.16)
▲같은 자리의 배추들. 부지런함으로 살렸다! (20.10.5)
배추 벌레와의 전쟁은 딱 3주에서 4주면 끝난다. 시월부터는 물을 충분히 주며 몸통을 키우는 일에 집중한다. 배추는 웃거름 효과를 딱히 잘 모르겠는데, 무는 다르다. 여름내 무성해진 수세미 울타리 바로 옆 무들은 하루 일조량이 무척 좋은데도 크지 못하고 비실거리다 말라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두둑 전체, 40여 개의 무 모종을 심은 곳이 그랬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물이 적어서 그런 줄 알고 물을 흠뻑 주기를 보름 가까이 하다가 뒤늦게 수세미 때문인가 싶어 웃거름을 열심히 넣었지만 소용없었다.
웃거름으로 유박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냄새가 덜 하다는 스테비아** 등이 많이 쓰인다. 봄에 한 번, 가을밭을 조성하면서 한 번 더 밑거름을 후하게 주는 곳은 질소과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봄에 시비를 했다면 가을은 밑거름 대신 1주일에 한번 정도 웃거름을 준다. 지렁이 분변토 퇴비(는 가격이 좀 비싸지만 냄새가 없고 상토와 같은 질감이라 아이들이 맨 손으로 직접 올리는 활동으로 좋다)도 있다.
가을에는 배추와 무 말고도 많아
희한하게도 가을 학교 텃밭에는 김장 채소들이 주를 이룬다. 배추와 무, 쪽파. 하지만 생각해 보면 텃밭의 채소로 김장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을 밭을 배추와 무로 채울까. 시금치도 뿌리고 당근도 뿌리고 갓도 여러 가지 색으로 뿌리자. 아니면 좀 비워 두었다가 마늘도 양파도 심어 보자. 아니면 이듬해 봄볕이 따뜻해지는 4월이면 꽃을 먼저 피울 수 있도록 무와 배추를 거두지 말고 그대로 둔다. 상자 텃밭이 중심인 학교는 더더욱. 10월 말이면 보리랑 밀이랑 구근도 심을 수 있으니 가을을 쉬어 가는 텃밭도 괜찮지 않을까.
매년 가을마다 무, 배추를 심는 일을 빼고 뭘 했는가 골똘히 더듬어 본다. 가을은 여름보다 덜 바빠서 아이들하고 놀았다. 허수아비도 세우고, 춤도 췄다. 노랗게 빛나는 수세미 꽃들과 9월에 더 푸른 수세미 잎 사이에 주렁주렁 열린 수세미 개수를 매일같이 세었다. 막 피어오르는 구절초와 메리골드(여름의 끝을 지나면서 꽃이 만발한다)를 따고 말렸다. 말리는 이야기를 하니, 매워서 먹지 못하는 고추가 빨갛기를 기다렸다가 고추들도 말렸고, 손대면 파드득 터져 흩어지는 참깨도 잘라 세워 말렸다. 일찍 맺혀 바삭하게 익어 가던 수세미 하나가 사라진 이후로 매일같이 수세미를 사수하느라 피(?)도 말린 가을도 기억난다.
▲커다란 허수아비를 만드는 일은 신이 난다. 입던 옷에 그림을 그리는 일, 자기보다 큰 덩치의 허수아비를 완성하는 일은 일종의 형식을 깨뜨리는 쾌감이 있다.
▲아이들하고 수세미를 세면 아이들은 자기가 세면서 눈여겨 본 수세미의 위치를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한다. 그 덕에 어느 자리의 어느 수세미가 그 자리에 온전히 잘 자라고 있는지, 지난 번보다 더 커졌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고추를 말리려고 전기 건조기를 사용하면서 느낀 죄책감이 학년말 태양광 건조기를 만들게 되었다.
▲등교 중지로 아이들과 털지 못해 11월 첫 주까지 교실에 서 있던 참깨. 가을 내내 문을 열면 나를 늘 반겨주었다.
어렵게 가지 말자
“어려운 것을 하거나, 더 쉬운 것을 하거나”라는 제목의 환경부 광고가 있다. 2017년도인가 아이들과 ESD(지속가능발전교육)활동을 하면서 처음 보았을 때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하며 보았다. 전문적인 엔지니어, 디자이너와 디렉터들이 자신들이 발명한 굉장히 참신하고 환경에 절대 해를 끼치지 않는 제품을 설명한다. 차량 사용을 줄이는 장바구니 에어 바스켓, 태양열을 이용한 워터 보일러, 뉴욕스타일의 헤어 스타일러까지 정말 참신한(?) 제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메탄가스를 이용한 미래 재생 에너지 ‘힙 스테이션’은 압권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과학자, 기술자,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모여 ‘최고의 지성’을 발휘하는 일을 유쾌하게 비틀어 버리는 광고다.➊
이 광고를 보는 우리반 아이들은 1학년이거나 3학년, 혹은 6학년이었는데, 어린 학년일수록 광고의 효과가 컸다. 왜 저렇게 어렵냐, 뭔 소린지 모르겠다 하다가 ‘선생님, 그냥 쇼핑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날카롭게 짚어 내는 친구도 있었다. 탄소 중립이니 넷 제로니, 탄소 포집 기술이니 하는 말들이 넘치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하는 최고의 광고다. 그렇게 어렵게 하지 말고, 씨앗 심고 나무 심고, 풀을 키우자. 그러면 된다.
같이 걷자
▲2019년 9월 21일 기후위기비상행동 종로 행진이 있던 날. 사실은 온 가족이 강화도에서 비치코밍을 하고 화석 연료를 태우며 종로로 건너가(?) 참여를 했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아들은 피곤해서인지, 그냥 집에만 있으면 되는데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이런 걸 한다고 엄마를 날카롭게 평가했다. - 그러게, 차 몰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한다고 피곤해하지 말고, 차 쓰지 말고 집에서 가만 있는게 지구를 위한 일이지. 우리는 지금 돈키호테처럼 굴고 있는 게야.(2019.09.21.)
코로나19 직전, 그레타 툰베리의 세계적인 기후행진에 연대하여 시작된 기후행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 각 환경 단체들의 깃발 아래 종로 거리를 걷고 눕고, 소리치거나 환호했다. 페트병 라벨과 병목고리를 잘라내면서(이후 홍수열 쓰레기 박사의 강연을 듣고 하지 않는다) 손을 다치더라도 꼭 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고, 가방에 한가득 텀블러 서너 개를 챙겨서 나가지 않으면 테이크 아웃 음료를 마시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던 시간들을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아직은 뜨끈뜨끈한 아스팔트 위에 누워 지나간 촛불집회의 추억을 떠올렸다. 얼굴을 전혀 모르는 활동가들 사이에서 괜한 동지애를 마음에 담기도 했다. 서너 개 단체에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하면서도 적극적 소속감은 없어서 우리 가족끼리 참여했었다. 행사의 끄트머리에 아이들 티셔츠를 하나씩 받아왔는데, 옷장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오는 9월 24일은 전국적인 ‘기후정의행진’이 예고되어 있다. 펜데믹 직후, 대대적인 홍보와 조직화가 이루어지는 첫 비상 행동이기도 하지만, 교육농의 이름으로 ‘우리’가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2022년의 기후정의행진이 기대된다. 호미들고 엉덩이 의자 장착(?)하고 같이 걷자!
➊ 환경부 Think Difficult 캠페인 시리즈, 어려운 것을 하거나, 더 쉬운 것을 하거나, 총 5편
- 친환경 워터 보일러, 선 팟(SUN POT) https://youtu.be/9NVuzQJjGck
- 친환경 미래 재생 에너지, 힙 스테이션(HIP STATION) https://youtu.be/_J2BWp_5ChY
- 친환경 장바구니, 에어 배스킷(AIR BASKET) https://youtu.be/m_na7QJkFQ8
- 친환경 헤어스타일러, 헤어 헬멧(HAIR HELMET) https://youtu.be/je5nQjrXO-Q
- 혁신적인 휴대용 컵, 카본 킬힐(CARBON KILL HILLS) https://youtu.be/A7tF9VdbU_U
월간 교육농, 9월
가을 내내 나를 늘 반겨 주었다
강주희 서울 우장초
지난달 씨앗에 대한 생각을 좀 한 후로 로열티를 주지 않는 국내 종자 회사의 무와 배추를 골랐다. 불암 3호와 불암 플러스, 황금배추. 무는 천수무와 청운무. 그동안 종자를 사는 일이 못내 불편했는데 이렇게 편안하고 즐겁기는(?) 처음이다.
두근두근! 지난 8월 초, 방학 중임에도 관심을 한껏 불러 일으킨 우리반 아이들과 엄마들이 여럿 모여서 야심차게 배추, 무 모종을 냈다.
결과는? 실패. 배추는 씨앗 둘만 싹이 돋았다... 나머지는 감감 무소식. 무 씨앗은 이틀 만에 싹이 트고 3일째는 제법 떡잎이 보였으나, 3박 4일 여름 휴가를 다녀온 주말 사이 4-5센티나 훌쩍 웃자랐다. 본잎은 아직인데, 줄기만 콩나물처럼 자라 휘어지고 꺾이고 뒤엉켰다. 이제 곧 개학인데... 비가 억세게 퍼붓던 날 교실에 와서 한 알 한 알 씨앗을 넣어 주던 아이들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개학을 이틀 앞두고 모종판에 다시 씨앗을 넣었다. 그 뒤로 무 씨앗은 오늘까지 잘 자라 본잎이 제법 커졌다. 아직 채우지 못한 빈 밭에 심을 것이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8월 8일, 교실에 모인 우리는 토종 종자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한 후 배추와 무를 심었다.
▲딱 일주일만에 길게 웃자란 무 씨앗들은 개학 즈음에는 심을 수 없을 만큼 휘고 꺾이고 엉켰다. 온실없이 모종 내기에 도전한 탓도 있지만 8월 초, 비가 계속 이어져 웃자라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8.16)
▲개학을 이틀 앞두고 다시 심은 천수무, 청운무 종자는 온실 없이도 잘 자라 본잎이 깨끗이 돋았다. 배추는 8월 초에 모종을 내더라도 무는 8월 중순 즈음 모종을 내어도 되겠다.
유기농 배추는 절대 안 먹을 거야
가을밭이 주는 정취가 있다. 한껏 자라던 풀들은 기세가 꺾이고, 작물들도 몇 가지로 정리된다. 봄에 심은 토마토나 가지, 오이를 남겨두었다면 모를까 대부분 김장 채소 중심으로 밭이 달라진다. 배추와 무, 갓, 쪽파, 상추는 학교 농장 지원 사업 물품에서도 대표적이다. 여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쉬운 작물들이지만 ‘배추’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배추는 모종을 심는 순간부터 청벌레의 잔치 마당이 된다. 배추벌레는 배추의 바깥 본잎이 손바닥만큼 넓어질 때까지 배추들을 초토화시킨다. 약 없이 배추를 키운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걸 좀 아는 분들은 배추를 키우지 않는다.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은 4년 전 학교 배추를 두어 통 받아 그날 저녁 바로 갈라보았다가 시커멓게 싸놓은 애벌레 똥이며 진딧물에 놀라 농약 배추를 먹기로 마음먹었단다. 유기농 배추 속의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만 농약은 안 보이니까 괜찮단다. 벌레 먹은 시꺼먼 배추가 눈 앞에 있는 듯 인상 쓰시는 모습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가을도 배추 키우겠다는 학년이 없다. 어지간하면 어렵다고 고개를 젓는 것이 배추 농사다. 9월 한 달은 진정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이틀에 한 번, 좀 여유를 부린다면 사흘에 한 번 방제를 한다. 방제약은 난각칼슘액비, 난황유(교육농 웹진 6월호 참고). 민달팽이가 사는 곳이라면 교무실에서 나오는 커피가루도 밭에 뿌려 준다. 나는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아이들하고 물주기를 하면서 식초 방제를 하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주말맞이 방제를 한다. 배추는 물도 넉넉히 주는 만큼 눈에 띄게 커지니, 물을 줄 때마다 칼슘액비 물약병을 챙겨 나가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학교 농장 지원 물품으로 알게 된 시중 판매 유기농자재 방충방제약도 몇 가지 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면 그만이다. 잊지 말자, 심자마자 물을 주는 순간부터 벌레들의 잔치가 열린다는 것을!
▲심고 나서 방제를 놓친 배추 모종
▲너무 상심하지 말기. 이 상태에서도 부지런히 방제를 하면 된다. (20.9.16)
▲같은 자리의 배추들. 부지런함으로 살렸다! (20.10.5)
배추 벌레와의 전쟁은 딱 3주에서 4주면 끝난다. 시월부터는 물을 충분히 주며 몸통을 키우는 일에 집중한다. 배추는 웃거름 효과를 딱히 잘 모르겠는데, 무는 다르다. 여름내 무성해진 수세미 울타리 바로 옆 무들은 하루 일조량이 무척 좋은데도 크지 못하고 비실거리다 말라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두둑 전체, 40여 개의 무 모종을 심은 곳이 그랬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물이 적어서 그런 줄 알고 물을 흠뻑 주기를 보름 가까이 하다가 뒤늦게 수세미 때문인가 싶어 웃거름을 열심히 넣었지만 소용없었다.
웃거름으로 유박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냄새가 덜 하다는 스테비아** 등이 많이 쓰인다. 봄에 한 번, 가을밭을 조성하면서 한 번 더 밑거름을 후하게 주는 곳은 질소과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 봄에 시비를 했다면 가을은 밑거름 대신 1주일에 한번 정도 웃거름을 준다. 지렁이 분변토 퇴비(는 가격이 좀 비싸지만 냄새가 없고 상토와 같은 질감이라 아이들이 맨 손으로 직접 올리는 활동으로 좋다)도 있다.
가을에는 배추와 무 말고도 많아
희한하게도 가을 학교 텃밭에는 김장 채소들이 주를 이룬다. 배추와 무, 쪽파. 하지만 생각해 보면 텃밭의 채소로 김장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을 밭을 배추와 무로 채울까. 시금치도 뿌리고 당근도 뿌리고 갓도 여러 가지 색으로 뿌리자. 아니면 좀 비워 두었다가 마늘도 양파도 심어 보자. 아니면 이듬해 봄볕이 따뜻해지는 4월이면 꽃을 먼저 피울 수 있도록 무와 배추를 거두지 말고 그대로 둔다. 상자 텃밭이 중심인 학교는 더더욱. 10월 말이면 보리랑 밀이랑 구근도 심을 수 있으니 가을을 쉬어 가는 텃밭도 괜찮지 않을까.
매년 가을마다 무, 배추를 심는 일을 빼고 뭘 했는가 골똘히 더듬어 본다. 가을은 여름보다 덜 바빠서 아이들하고 놀았다. 허수아비도 세우고, 춤도 췄다. 노랗게 빛나는 수세미 꽃들과 9월에 더 푸른 수세미 잎 사이에 주렁주렁 열린 수세미 개수를 매일같이 세었다. 막 피어오르는 구절초와 메리골드(여름의 끝을 지나면서 꽃이 만발한다)를 따고 말렸다. 말리는 이야기를 하니, 매워서 먹지 못하는 고추가 빨갛기를 기다렸다가 고추들도 말렸고, 손대면 파드득 터져 흩어지는 참깨도 잘라 세워 말렸다. 일찍 맺혀 바삭하게 익어 가던 수세미 하나가 사라진 이후로 매일같이 수세미를 사수하느라 피(?)도 말린 가을도 기억난다.
▲커다란 허수아비를 만드는 일은 신이 난다. 입던 옷에 그림을 그리는 일, 자기보다 큰 덩치의 허수아비를 완성하는 일은 일종의 형식을 깨뜨리는 쾌감이 있다.
▲아이들하고 수세미를 세면 아이들은 자기가 세면서 눈여겨 본 수세미의 위치를 기가 막히게 잘 기억한다. 그 덕에 어느 자리의 어느 수세미가 그 자리에 온전히 잘 자라고 있는지, 지난 번보다 더 커졌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고추를 말리려고 전기 건조기를 사용하면서 느낀 죄책감이 학년말 태양광 건조기를 만들게 되었다.
▲등교 중지로 아이들과 털지 못해 11월 첫 주까지 교실에 서 있던 참깨. 가을 내내 문을 열면 나를 늘 반겨주었다.
어렵게 가지 말자
“어려운 것을 하거나, 더 쉬운 것을 하거나”라는 제목의 환경부 광고가 있다. 2017년도인가 아이들과 ESD(지속가능발전교육)활동을 하면서 처음 보았을 때 무릎을 치며 감탄을 하며 보았다. 전문적인 엔지니어, 디자이너와 디렉터들이 자신들이 발명한 굉장히 참신하고 환경에 절대 해를 끼치지 않는 제품을 설명한다. 차량 사용을 줄이는 장바구니 에어 바스켓, 태양열을 이용한 워터 보일러, 뉴욕스타일의 헤어 스타일러까지 정말 참신한(?) 제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메탄가스를 이용한 미래 재생 에너지 ‘힙 스테이션’은 압권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과학자, 기술자,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모여 ‘최고의 지성’을 발휘하는 일을 유쾌하게 비틀어 버리는 광고다.➊
이 광고를 보는 우리반 아이들은 1학년이거나 3학년, 혹은 6학년이었는데, 어린 학년일수록 광고의 효과가 컸다. 왜 저렇게 어렵냐, 뭔 소린지 모르겠다 하다가 ‘선생님, 그냥 쇼핑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날카롭게 짚어 내는 친구도 있었다. 탄소 중립이니 넷 제로니, 탄소 포집 기술이니 하는 말들이 넘치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하는 최고의 광고다. 그렇게 어렵게 하지 말고, 씨앗 심고 나무 심고, 풀을 키우자. 그러면 된다.
같이 걷자
▲2019년 9월 21일 기후위기비상행동 종로 행진이 있던 날. 사실은 온 가족이 강화도에서 비치코밍을 하고 화석 연료를 태우며 종로로 건너가(?) 참여를 했었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아들은 피곤해서인지, 그냥 집에만 있으면 되는데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이런 걸 한다고 엄마를 날카롭게 평가했다. - 그러게, 차 몰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한다고 피곤해하지 말고, 차 쓰지 말고 집에서 가만 있는게 지구를 위한 일이지. 우리는 지금 돈키호테처럼 굴고 있는 게야.(2019.09.21.)
코로나19 직전, 그레타 툰베리의 세계적인 기후행진에 연대하여 시작된 기후행진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 각 환경 단체들의 깃발 아래 종로 거리를 걷고 눕고, 소리치거나 환호했다. 페트병 라벨과 병목고리를 잘라내면서(이후 홍수열 쓰레기 박사의 강연을 듣고 하지 않는다) 손을 다치더라도 꼭 하지 않으면 죄인이 되고, 가방에 한가득 텀블러 서너 개를 챙겨서 나가지 않으면 테이크 아웃 음료를 마시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불태우던 시간들을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아직은 뜨끈뜨끈한 아스팔트 위에 누워 지나간 촛불집회의 추억을 떠올렸다. 얼굴을 전혀 모르는 활동가들 사이에서 괜한 동지애를 마음에 담기도 했다. 서너 개 단체에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하면서도 적극적 소속감은 없어서 우리 가족끼리 참여했었다. 행사의 끄트머리에 아이들 티셔츠를 하나씩 받아왔는데, 옷장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오는 9월 24일은 전국적인 ‘기후정의행진’이 예고되어 있다. 펜데믹 직후, 대대적인 홍보와 조직화가 이루어지는 첫 비상 행동이기도 하지만, 교육농의 이름으로 ‘우리’가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2022년의 기후정의행진이 기대된다. 호미들고 엉덩이 의자 장착(?)하고 같이 걷자!
➊ 환경부 Think Difficult 캠페인 시리즈, 어려운 것을 하거나, 더 쉬운 것을 하거나, 총 5편
- 친환경 워터 보일러, 선 팟(SUN POT) https://youtu.be/9NVuzQJjGck
- 친환경 미래 재생 에너지, 힙 스테이션(HIP STATION) https://youtu.be/_J2BWp_5ChY
- 친환경 장바구니, 에어 배스킷(AIR BASKET) https://youtu.be/m_na7QJkFQ8
- 친환경 헤어스타일러, 헤어 헬멧(HAIR HELMET) https://youtu.be/je5nQjrXO-Q
- 혁신적인 휴대용 컵, 카본 킬힐(CARBON KILL HILLS) https://youtu.be/A7tF9VdbU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