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 텃밭, 6월
서로에게 힘을 주는 생명들
중광초 김경희
▲앵두나무
하루 나들이 시간 우르르 나선 아이들이 학교 정원과 둘레길 텃밭 사이로 숨는다. 햇살이 따갑다. 5월 내내 뜨거웠던 햇살이 6월이 되니 더욱 기승을 부린다. 꼭꼭 숨은 아이들을 찾는 심정으로 둘레길을 돌다가 놀이터 화단을 지난다. 아이들이 심었던 삼색제비꽃은 바짝 마르고 데이지와 패랭이꽃이 한두 송이 휘청휘청 피었다. 기껏 심었던 바늘꽃도 메마른 봄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들었다.
앵두가 제법 붉게 익었다. 크기도 도톰하니 먹음직스럽다. 하나둘 조심스레 따서 먼지만 털고 한입 먹었더니 상큼하다. 아이가 씨앗은 어떻게 해요 묻길래 심을까 했다. 제법 진지하게 툭 뱉은 씨앗을 조심스레 넣는다. 둘레길 화단에 심었던 튤립은 누렇게 말라 가위로 조금 잘라주고 흙을 두둑하게 덮어 주었다. 5월에 심었던 해바라기는 군데군데 싹을 틔우다 지속적으로 살피지 못한 탓에 비쩍 말라 있다. 마른 땅 위로 삐죽 내민 해바라기 새싹이 애처롭다.
쉼터에 개구쟁이들이 모여 있다.
“텃밭으로 가자. 물도 좀 주고 토마토 곁순도 따 주고 풀도 뽑아 주고 상추도 수확하자”
“파리가 많아요”
아이들은 냉큼 흩어진다. 앗~~ 정확히 똥파리!!! 벌은 보이지 않고 똥파리가 날아다니니 가기 싫단다. 그래도 마음 순한 아이들은 슬쩍 내빼다 나를 따라나선다. 고무다라에서 물을 떠서 종종 걸음으로 텃밭으로 향하는데 진짜 똥냄새가 난다. 학교 고양이들이 똥을 싼 모양이다. 어디에다 싸놓았길래 이렇게 똥냄새가~~ 코를 잡고 싶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거름냄새네 했다. 아이들도 끄덕끄덕한다. 착하다. 너무 착한 아이들이다.
▲학교 텃밭을 거니는 고양이. 새끼도 4마리나 낳았다. 아이들은 멀찍이 떨어져 새끼 고양이들을 구경한다.
정문 앞 ‘꿈빛동산’ 화단 밑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종종 우아한 자태로 텃밭을 거닐기도 하고 ‘깨달음의 정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검은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4마리나 낳았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 보려고 살금살금 가서 먹이를 주기도 하고 멀찍이 떨어져 새끼 고양이들을 구경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상자 텃밭을 살뜰하게 돌봐주시는 맘 좋은 우리 보안관님도 새끼고양이에게 먹이도 챙겨 주시고 눈엔 난 상처에 약도 발라주셨다. 친절한 보안관님의 돌봄 때문인지 고양이 보금자리도 보안관실 곁에 마련 되었다. 맘 좋은 이가 누군지 동물들도 느끼나 보다. 고양이들은 날렵한 사냥꾼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시는 보안관님은 학교 한바퀴를 돌면서 고양이들의 사냥 흔적을 치운다 했다. 고양이가 학교 텃밭에서 쥐가 살지 않도록 지켜주는 보안관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다.
▲튤립 구근을 캐서 말리는 중.
▲라벤더의 보라꽃이 활짝 피니 수레국화와 꽃양귀비 꽃과 함께 더욱 화사하다.
정문 앞 상자텃밭, 5월 햇살 아래 말라 버린 튤립 잎을 자르고 캐놓았다. 제법 둥글둥글 알이 꽉차기도 하고 작은 구근으로 여러 개 분얼하기도 했다. 대충 흙을 털어 말리고 그 자리에 라벤더를 심었다. 라벤더의 보라꽃이 활짝 피니 수레국화와 꽃양귀비 꽃과 함께 더욱 화사하다. 덕분에 정문 앞 꽃밭에 오면 열심히 일하는 꿀벌들을 볼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날아 왔을까 기특하다. 이상 기후로 많던 친구들이 사라져 안타까운 요즘 그나마 꿀벌을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시들한 삼색제비꽃 사이로 허브와 수레국화가 무성하다. 드문드문 빨간 꽃양귀비도 화사하게 피고 완두콩도 제법 잘 자라 초록 코투리가 실하다. 까치콩과 여주도 키가 크면서 넝쿨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작년에 치워뒀던 지줏대를 꺼내 대충 세우고 노끈으로 연결해 놓았다. 올해도 이끈을 타고 잘 뻗어가길 바래본다. 혹시 몰라 유홍초와 제비콩 씨앗도 군데군데 심어 두었다.
▲상자 밀밭은 뜻하지 않게 동네 참새들의 잔칫상이...
작년 벼를 거두고 난 빈 상자논에 보리와 밀을 섞어 뿌려 놓았는데 보리보다 밀만 잘 자랐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5월 햇살에 밀이 누렇게 익을 무렵 참새떼가 모여들었다. 동네 참새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많은 친구들이 상자 밀밭에 모여 맛나게 밀을 쪼아먹었다. 아이들과 밀을 훑어 밀껌을 먹으려고 했건만 모조리 먹어 치웠다. 대신 오랜만에 참새들의 모여 신나게 짹짹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하늘에 이렇게 많은 참새들이 살아가고 있었나 했다. 남은 밀이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들춰보다 몇 알 발견하고 입안에 털어 넣었다. 껌을 만들기엔 부족하나 고소한 밀 향이 입안에 가득했다.
학원에 바쁜 친구들이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밀물처럼 빠지고 학원 없는 친구들은 잠시 놀다 간다고 했다. 재잘거리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보드게임, 구슬치기, 술래잡기도 하며 재미나게 노는데 같이 상자 밀밭 정리하자 했더니 그 마음 착한 아이들이 좋아요 한다. 드디어 상자 밀밭(상자논)을 정리하기로 했다. 가위를 들고 밀 밑둥을 자른다. ○○이는 베트남에서 2학년 때까지 있다가 왔다. 아이가 바짝 마른 밀 지푸라기를 보면서 말한다.
“소가 좋아하겠다”
“소가 좋아해?”
“베트남에서 큰 소를 키웠는데 이런 지푸라기를 주면 잘 먹었어요”
가끔은 소를 타고 밭에 가기도 했는데 소 등 위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다르다고 했다. 가슴이 펑 뚫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나도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는데 바람이 불면서 잘라놓은 지푸라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베트남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새롭다. 망고 농사도 지으셨다는데 너무 귀한 이야기다. 서로 멀지 않는 곳에 함께하는 느낌이다.
▲ 검은색 상자 논에는 모를 심었고, 다른 상자 논에는 볍씨를 뿌릴 것이다.
상자 밀밭을 정리하고 이제 물을 채워 놓는다. 단오가 지나고 많이 늦었지만 작년에 수확한 볍씨를 뿌려 놓을 참이다. 그럼 상자논이 된다. 이렇게 논농사를 하니 너무 쉽다. 상토를 사는 것도 아니고 논흙을 퍼서 뒤집는 것도 아니다. 밀을 수확한 자리에 볍씨를 뿌려 주고 물만 대 주면 끝이다. 문제는 과연 잘 자라줄까인데 지켜봐야지.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4학년 아이들이 보기 좋게 심은 상자 논의 벼가 운동장에서 시원하게 찰랑거린다. 함께 잘 자라 주길 바란다. 상자 논을 지나 ‘꿈빛관’ 통로를 지나면 ‘한마음 텃밭’에 이른다. 쭉정이만 남은 밀은 대충 잘라서 텃밭에 덮어 주었다.
▲ 텃밭 통로에 놓인 파라솔 의자와 농기구함. 구청에서 지원받았다.
광진구청 지원을 받아 ‘한마음 텃밭’ 풍경이 바뀌었다. 텃밭 통로에 파라솔 의자, 농기구함, 거름통과 상자 텃밭도 여러 개 마련되었다. 구청에서 보내온 여러 가지 상추, 고추, 가지가 상자 텃밭에 가득하다. 옮겨 심어 놓은 봄배추, 부추, 오이도 자리를 잘 잡아 풍성하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심었던 모종도 잘 자랐다. 하루나들이 시간마다 틈틈이 옮겨 심었다. 금화규, 딜, 옥수수, 땅콩, 메리골드, 채송화 모종을 옮겨심고 마르쉐 장터에서 얻은 목화와 여러 가지 허브 모종 등도 옮겨 심었다. 수박과 여주도 군데군데 심었다. 일단 심고 나니 마음이 든든하다. 아이들이 텃밭을 자유롭게 오가며 각자 심어 놓은 작물을 돌보는 모습이 정겹다. 이렇게 잘 자라는 데는 당직 기사님과 주무관님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다. 오며가며 물을 주고 돌봐주시기에 가능하다. 참 고맙다.
교실에 들어오니 잎이 누렇게 축 늘어진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온다. 3, 4월은 싱그럽게 커 줘서 볼 때마다 힘이 났는데 5월 해바라기의 키는 창틀까지 컸는데 꽃이 피기도 전에 잎이 누렇게 마르니 아이들이 왜 이래요 한다. 같이 심었던 보리도 이삭이 잘 영글기도 전에 누렇게 시들었다. 보리 빨대는 올해는 그냥 넘겨야 하나 보다. 밀대로 빨대를 만들 수 있을까? 상상하다 그만 둔다. 다시 교실에 누렇게 휘청이는 해바라기와 보리를 두고 보려니 그냥 거둬 다른 식물을 심어볼까 하다가 누렇게 변한 잎을 올라다보면서... 안쓰러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용기를 얻는다. 그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함께 지켜보자구나.
▲교실에서 키우는 식물들. 해바라기는 꽃도 피기 전에 누렇게 마르고, 보리도 이삭이 잘 영글기 전에 누렇게 시들었다.
교실에서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매일매일 아이들을 돌보는 것처럼 어렵다. 며칠 전 교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 적이 있다. 화분에서 마른 가지와 잎을 정리해 두는 양동이가 있는데 그곳에 누가 물까지 버렸나 보다. 썩은 내가 난다. 창가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난감했다. 뚜껑을 닫고 모른 척 식물을 키울 때 나는 거름 냄새야 하니 착한 우리반 친구들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모든 이가 퇴근한 오후에 양동이를 들고 텃밭 구석 거름통에 쏟아 놓았는데... 고약한 냄새가 한동안 내 코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은 순간 기쁨을 발견할 때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심었던 밤에 싹이 텄다. 하나둘 제법 줄기가 알차다. 작고 어린 잎이 매달리고 키가 부쩍 큰 모습에 함께 기뻐했다. 어디에 심어 줄까... 그러고 보니 학교에 밤나무가 있다는 이야긴 못 들어본 것 같다. 감나무, 대추나무는 있는데 밤나무는 없다. 밤송이의 까칠함 때문일까? 일단 싹이 텄으니 적당한 곳에 심어 주어야지. 다음 나들이 때 장소를 살펴봐야겠다.
▲심었던 밤이 싹트고 줄기가 올라 왔다.
까치콩과 풍선 넝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창틀에 큰 화분을 걸쳐놓고 옮겨심었다. 큰 수조에 대충 심었던 고구마에 줄기가 뻗어나왔다. 줄기 끝에 작은 진딧물이 붙어 있다. 벌레가 또 꼬이기 시작한다. 장갑 낀 손으로 대충 진딧물을 잡아주고 물을 뿌려 주었다. 고구마 줄기를 대충 잘라 나들이 때 심어 봐야지 싶다. 매 해마다 감자 거두고 난 뒤에 고구마와 메주콩, 팥을 심었다. 재작년은 고구마가 제법 컸는데 작년은 잎만 무성하고 고구마가 거의 없어 많이 실망했다. 감자 뒤에 심어서 너무 늦은 탓이려니 했다. 올해는 그냥 감자 사이사이에 심어 볼까. 사실 감자 농사를 지을 때마다 감자를 온통 수확하고 나면 한 이랑을 다 파헤치고 그 위에 다시 고구마 심고 메주콩 심고 하려면 힘들었다. 올해는 감자만 심지 않고 완두콩,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비올라, 한련화, 땅콩 등 아이들이 심고 심은 대로 섞어 심었다. 작년에 심었던 메주콩이랑 허브도 또 고개를 내밀었다. 꼭 하나만 심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감자 거둘 때 감자만 쏙 수확하고 그 사이에 다른 씨앗과 식물을 심어 보자.
▲감자꽃
6월 온 세상이 초록으로 가득 충만한 계절, 우리가 심은 작물보다 풀들이 더욱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그 사이사이에 우리가 심은 작은 작물들이 힘을 얻어 자란다. 영양을 빼먹는 것이 아니라 풀들의 보호 아래 함께 자란다. 흙이 드러난 맨땅에 덩그러니 심겨진 작물이 아니라 초록 친구들과 함께 어우어져 자라는 작은 생명들... 서로에게 힘을 주는 생명의 모습을 아이들과 함께 누리고 싶다. 작은 수확물을 거두어 함께 나누는 방법도 생각해 보자. 조금씩 뜯어온 상추를 나누고 고추를 집에 보내 된장국에 넣어 먹은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과 함께 수확물을 이용할 궁리를 해 본다. 바쁠수록 아이들과 텃밭으로 나가서 함께 숨을 쉬어 볼테다. 그리고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갈 테다.
나의 학교 텃밭, 6월
서로에게 힘을 주는 생명들
중광초 김경희
▲앵두나무
하루 나들이 시간 우르르 나선 아이들이 학교 정원과 둘레길 텃밭 사이로 숨는다. 햇살이 따갑다. 5월 내내 뜨거웠던 햇살이 6월이 되니 더욱 기승을 부린다. 꼭꼭 숨은 아이들을 찾는 심정으로 둘레길을 돌다가 놀이터 화단을 지난다. 아이들이 심었던 삼색제비꽃은 바짝 마르고 데이지와 패랭이꽃이 한두 송이 휘청휘청 피었다. 기껏 심었던 바늘꽃도 메마른 봄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들었다.
앵두가 제법 붉게 익었다. 크기도 도톰하니 먹음직스럽다. 하나둘 조심스레 따서 먼지만 털고 한입 먹었더니 상큼하다. 아이가 씨앗은 어떻게 해요 묻길래 심을까 했다. 제법 진지하게 툭 뱉은 씨앗을 조심스레 넣는다. 둘레길 화단에 심었던 튤립은 누렇게 말라 가위로 조금 잘라주고 흙을 두둑하게 덮어 주었다. 5월에 심었던 해바라기는 군데군데 싹을 틔우다 지속적으로 살피지 못한 탓에 비쩍 말라 있다. 마른 땅 위로 삐죽 내민 해바라기 새싹이 애처롭다.
쉼터에 개구쟁이들이 모여 있다.
“텃밭으로 가자. 물도 좀 주고 토마토 곁순도 따 주고 풀도 뽑아 주고 상추도 수확하자”
“파리가 많아요”
아이들은 냉큼 흩어진다. 앗~~ 정확히 똥파리!!! 벌은 보이지 않고 똥파리가 날아다니니 가기 싫단다. 그래도 마음 순한 아이들은 슬쩍 내빼다 나를 따라나선다. 고무다라에서 물을 떠서 종종 걸음으로 텃밭으로 향하는데 진짜 똥냄새가 난다. 학교 고양이들이 똥을 싼 모양이다. 어디에다 싸놓았길래 이렇게 똥냄새가~~ 코를 잡고 싶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거름냄새네 했다. 아이들도 끄덕끄덕한다. 착하다. 너무 착한 아이들이다.
▲학교 텃밭을 거니는 고양이. 새끼도 4마리나 낳았다. 아이들은 멀찍이 떨어져 새끼 고양이들을 구경한다.
정문 앞 ‘꿈빛동산’ 화단 밑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종종 우아한 자태로 텃밭을 거닐기도 하고 ‘깨달음의 정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검은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4마리나 낳았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 보려고 살금살금 가서 먹이를 주기도 하고 멀찍이 떨어져 새끼 고양이들을 구경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상자 텃밭을 살뜰하게 돌봐주시는 맘 좋은 우리 보안관님도 새끼고양이에게 먹이도 챙겨 주시고 눈엔 난 상처에 약도 발라주셨다. 친절한 보안관님의 돌봄 때문인지 고양이 보금자리도 보안관실 곁에 마련 되었다. 맘 좋은 이가 누군지 동물들도 느끼나 보다. 고양이들은 날렵한 사냥꾼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시는 보안관님은 학교 한바퀴를 돌면서 고양이들의 사냥 흔적을 치운다 했다. 고양이가 학교 텃밭에서 쥐가 살지 않도록 지켜주는 보안관 역할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다.
▲튤립 구근을 캐서 말리는 중.
▲라벤더의 보라꽃이 활짝 피니 수레국화와 꽃양귀비 꽃과 함께 더욱 화사하다.
정문 앞 상자텃밭, 5월 햇살 아래 말라 버린 튤립 잎을 자르고 캐놓았다. 제법 둥글둥글 알이 꽉차기도 하고 작은 구근으로 여러 개 분얼하기도 했다. 대충 흙을 털어 말리고 그 자리에 라벤더를 심었다. 라벤더의 보라꽃이 활짝 피니 수레국화와 꽃양귀비 꽃과 함께 더욱 화사하다. 덕분에 정문 앞 꽃밭에 오면 열심히 일하는 꿀벌들을 볼 수 있다.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날아 왔을까 기특하다. 이상 기후로 많던 친구들이 사라져 안타까운 요즘 그나마 꿀벌을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시들한 삼색제비꽃 사이로 허브와 수레국화가 무성하다. 드문드문 빨간 꽃양귀비도 화사하게 피고 완두콩도 제법 잘 자라 초록 코투리가 실하다. 까치콩과 여주도 키가 크면서 넝쿨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작년에 치워뒀던 지줏대를 꺼내 대충 세우고 노끈으로 연결해 놓았다. 올해도 이끈을 타고 잘 뻗어가길 바래본다. 혹시 몰라 유홍초와 제비콩 씨앗도 군데군데 심어 두었다.
▲상자 밀밭은 뜻하지 않게 동네 참새들의 잔칫상이...
작년 벼를 거두고 난 빈 상자논에 보리와 밀을 섞어 뿌려 놓았는데 보리보다 밀만 잘 자랐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5월 햇살에 밀이 누렇게 익을 무렵 참새떼가 모여들었다. 동네 참새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많은 친구들이 상자 밀밭에 모여 맛나게 밀을 쪼아먹었다. 아이들과 밀을 훑어 밀껌을 먹으려고 했건만 모조리 먹어 치웠다. 대신 오랜만에 참새들의 모여 신나게 짹짹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하늘에 이렇게 많은 참새들이 살아가고 있었나 했다. 남은 밀이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들춰보다 몇 알 발견하고 입안에 털어 넣었다. 껌을 만들기엔 부족하나 고소한 밀 향이 입안에 가득했다.
학원에 바쁜 친구들이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밀물처럼 빠지고 학원 없는 친구들은 잠시 놀다 간다고 했다. 재잘거리기도 하고 산책도 하고 보드게임, 구슬치기, 술래잡기도 하며 재미나게 노는데 같이 상자 밀밭 정리하자 했더니 그 마음 착한 아이들이 좋아요 한다. 드디어 상자 밀밭(상자논)을 정리하기로 했다. 가위를 들고 밀 밑둥을 자른다. ○○이는 베트남에서 2학년 때까지 있다가 왔다. 아이가 바짝 마른 밀 지푸라기를 보면서 말한다.
“소가 좋아하겠다”
“소가 좋아해?”
“베트남에서 큰 소를 키웠는데 이런 지푸라기를 주면 잘 먹었어요”
가끔은 소를 타고 밭에 가기도 했는데 소 등 위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다르다고 했다. 가슴이 펑 뚫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나도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는데 바람이 불면서 잘라놓은 지푸라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베트남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새롭다. 망고 농사도 지으셨다는데 너무 귀한 이야기다. 서로 멀지 않는 곳에 함께하는 느낌이다.
▲ 검은색 상자 논에는 모를 심었고, 다른 상자 논에는 볍씨를 뿌릴 것이다.
상자 밀밭을 정리하고 이제 물을 채워 놓는다. 단오가 지나고 많이 늦었지만 작년에 수확한 볍씨를 뿌려 놓을 참이다. 그럼 상자논이 된다. 이렇게 논농사를 하니 너무 쉽다. 상토를 사는 것도 아니고 논흙을 퍼서 뒤집는 것도 아니다. 밀을 수확한 자리에 볍씨를 뿌려 주고 물만 대 주면 끝이다. 문제는 과연 잘 자라줄까인데 지켜봐야지.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을 받아 4학년 아이들이 보기 좋게 심은 상자 논의 벼가 운동장에서 시원하게 찰랑거린다. 함께 잘 자라 주길 바란다. 상자 논을 지나 ‘꿈빛관’ 통로를 지나면 ‘한마음 텃밭’에 이른다. 쭉정이만 남은 밀은 대충 잘라서 텃밭에 덮어 주었다.
▲ 텃밭 통로에 놓인 파라솔 의자와 농기구함. 구청에서 지원받았다.
광진구청 지원을 받아 ‘한마음 텃밭’ 풍경이 바뀌었다. 텃밭 통로에 파라솔 의자, 농기구함, 거름통과 상자 텃밭도 여러 개 마련되었다. 구청에서 보내온 여러 가지 상추, 고추, 가지가 상자 텃밭에 가득하다. 옮겨 심어 놓은 봄배추, 부추, 오이도 자리를 잘 잡아 풍성하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심었던 모종도 잘 자랐다. 하루나들이 시간마다 틈틈이 옮겨 심었다. 금화규, 딜, 옥수수, 땅콩, 메리골드, 채송화 모종을 옮겨심고 마르쉐 장터에서 얻은 목화와 여러 가지 허브 모종 등도 옮겨 심었다. 수박과 여주도 군데군데 심었다. 일단 심고 나니 마음이 든든하다. 아이들이 텃밭을 자유롭게 오가며 각자 심어 놓은 작물을 돌보는 모습이 정겹다. 이렇게 잘 자라는 데는 당직 기사님과 주무관님들의 든든한 지원이 있다. 오며가며 물을 주고 돌봐주시기에 가능하다. 참 고맙다.
교실에 들어오니 잎이 누렇게 축 늘어진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온다. 3, 4월은 싱그럽게 커 줘서 볼 때마다 힘이 났는데 5월 해바라기의 키는 창틀까지 컸는데 꽃이 피기도 전에 잎이 누렇게 마르니 아이들이 왜 이래요 한다. 같이 심었던 보리도 이삭이 잘 영글기도 전에 누렇게 시들었다. 보리 빨대는 올해는 그냥 넘겨야 하나 보다. 밀대로 빨대를 만들 수 있을까? 상상하다 그만 둔다. 다시 교실에 누렇게 휘청이는 해바라기와 보리를 두고 보려니 그냥 거둬 다른 식물을 심어볼까 하다가 누렇게 변한 잎을 올라다보면서... 안쓰러워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용기를 얻는다. 그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함께 지켜보자구나.
▲교실에서 키우는 식물들. 해바라기는 꽃도 피기 전에 누렇게 마르고, 보리도 이삭이 잘 영글기 전에 누렇게 시들었다.
교실에서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매일매일 아이들을 돌보는 것처럼 어렵다. 며칠 전 교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 적이 있다. 화분에서 마른 가지와 잎을 정리해 두는 양동이가 있는데 그곳에 누가 물까지 버렸나 보다. 썩은 내가 난다. 창가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난감했다. 뚜껑을 닫고 모른 척 식물을 키울 때 나는 거름 냄새야 하니 착한 우리반 친구들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모든 이가 퇴근한 오후에 양동이를 들고 텃밭 구석 거름통에 쏟아 놓았는데... 고약한 냄새가 한동안 내 코에서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은 순간 기쁨을 발견할 때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심었던 밤에 싹이 텄다. 하나둘 제법 줄기가 알차다. 작고 어린 잎이 매달리고 키가 부쩍 큰 모습에 함께 기뻐했다. 어디에 심어 줄까... 그러고 보니 학교에 밤나무가 있다는 이야긴 못 들어본 것 같다. 감나무, 대추나무는 있는데 밤나무는 없다. 밤송이의 까칠함 때문일까? 일단 싹이 텄으니 적당한 곳에 심어 주어야지. 다음 나들이 때 장소를 살펴봐야겠다.
▲심었던 밤이 싹트고 줄기가 올라 왔다.
까치콩과 풍선 넝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창틀에 큰 화분을 걸쳐놓고 옮겨심었다. 큰 수조에 대충 심었던 고구마에 줄기가 뻗어나왔다. 줄기 끝에 작은 진딧물이 붙어 있다. 벌레가 또 꼬이기 시작한다. 장갑 낀 손으로 대충 진딧물을 잡아주고 물을 뿌려 주었다. 고구마 줄기를 대충 잘라 나들이 때 심어 봐야지 싶다. 매 해마다 감자 거두고 난 뒤에 고구마와 메주콩, 팥을 심었다. 재작년은 고구마가 제법 컸는데 작년은 잎만 무성하고 고구마가 거의 없어 많이 실망했다. 감자 뒤에 심어서 너무 늦은 탓이려니 했다. 올해는 그냥 감자 사이사이에 심어 볼까. 사실 감자 농사를 지을 때마다 감자를 온통 수확하고 나면 한 이랑을 다 파헤치고 그 위에 다시 고구마 심고 메주콩 심고 하려면 힘들었다. 올해는 감자만 심지 않고 완두콩,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비올라, 한련화, 땅콩 등 아이들이 심고 심은 대로 섞어 심었다. 작년에 심었던 메주콩이랑 허브도 또 고개를 내밀었다. 꼭 하나만 심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감자 거둘 때 감자만 쏙 수확하고 그 사이에 다른 씨앗과 식물을 심어 보자.
▲감자꽃
6월 온 세상이 초록으로 가득 충만한 계절, 우리가 심은 작물보다 풀들이 더욱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그 사이사이에 우리가 심은 작은 작물들이 힘을 얻어 자란다. 영양을 빼먹는 것이 아니라 풀들의 보호 아래 함께 자란다. 흙이 드러난 맨땅에 덩그러니 심겨진 작물이 아니라 초록 친구들과 함께 어우어져 자라는 작은 생명들... 서로에게 힘을 주는 생명의 모습을 아이들과 함께 누리고 싶다. 작은 수확물을 거두어 함께 나누는 방법도 생각해 보자. 조금씩 뜯어온 상추를 나누고 고추를 집에 보내 된장국에 넣어 먹은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과 함께 수확물을 이용할 궁리를 해 본다. 바쁠수록 아이들과 텃밭으로 나가서 함께 숨을 쉬어 볼테다. 그리고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