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 텃밭
생태적 순환을 싹틔우고 견인하는 장소입니다, ‘마침내’
강주희 서울 우장초
선생님들의 텃밭은 안녕하신가요. 비가 퍼붓는 며칠을 견딘 학교 텃밭은 미리 지주를 세운 덕에 무사한 곳도 있지만, 키가 무르팍 아래로 낮기에 방심했던 꽃들은 모두 스러진 채로 쉼 없이 비를 맞아 다 녹아버리기도 했어요. 저는 올해도 수레국화와 딜들을 베어서 눕히는 비극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3일간의 폭우 뒤 텃밭 작물들이 쓰러졌다.
▲ 선생님 따라서 제 손으로 일으켜주고 세워준다. 이 친구는 풀만 세우지 않는다.
▲ 사진으로는 확인이 어렵지만 무릎 높이도 안 되는, 막 개화를 시작한 수레국화들이 다 풀죽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밭을 ‘소비하고 버리는’ 것은 아닐까
6월이 끝날 즈음 감자밭은 빌 것이다. 우리학교 5학년은 매년 감자를 심는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그 넓은 감자밭이 텅 빈다. 아니, 바르게 말하자면 ‘사막’이 된다. 감자를 캐면서 마구 파헤쳐진 두둑은 무너지고, 뿌리까지 뽑힌 감자줄기들은 한쪽으로 버려진다. 그리고 비가 오고 쓸리면서 포실포실하던 흙들은 떠내려 가서 없어지고 남은 것들은 다져지고 단단해진다. 그곳이 작물의 안식처, 침대(영어로 두둑은 베드다)였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다른 (아)이들은 그곳을 마구 밟는다. 풀 한 포기 없는 흙 위를 태양이 달구고, 흙이 머금던 물기를 모조리 앗아 간다. 포실포실 거무튀튀하던 흙은 딱딱하게 굳고 허여멀겋게 창백해진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황무지가 된다. 이 구역은 개학 직전, 다시 힘을 들여 두둑을 올리기 전까지 그대로 방치된다. 밭을 ‘소비하고 버린다’.
나는 그 광경이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해서, 재작년에는 3학년 학생들과 열무를 뿌리고, 작년에는 우리 반 학생들과 콩 벽을 세워 빈 땅을 채웠다. 물론 열무는 절반 이상을 채식곤충(일명 ‘톡톡이’ 벼룩잎벌레)들에게 보시하였다. 콩 벽은 (코로나19로 온전히 나 혼자 소작을 할 수 있었던 덕에) 10월까지 둘 수 있었는데 소출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땅을 소비하지만 않고, 잘 키우고 지켰다. 학생들에게 우리 행동의 의미를 절실히 전하며 보이지 않는 생산과 순환을 하였다는 점에 스스로를 칭찬한다.
▲ 이틀 전만 해도 감자가 심겨 있었던 세 줄의 두둑.
▲ 보름 만에 물과 생명을 품지 못하는 사막이 되었다.
▲ 지난해 감자 두둑이 방치되는 것이 신경쓰여서 채워 놓은 콩 벽. 왼쪽과 같은 자리다.
6월 17일은 UN이 94년 지정한 ‘사막화와 가뭄 방지의 날’이다. 어디 UN이 지정한 국제적 환경 기념일이 한두 날이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유엔의 사막화방지협약(UNCCD)은 우리가 생태 전환 교육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입에 올리는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협약과 더불어 3대 협약이라는 사실이다. 뭐, 그 숱한 기념일을 ‘기념’하는데 급급하자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생태적 교육 활동의 장으로 마주하는 텃밭이 사막이 되는 꼴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무지의 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저 멀리 아프리카가 사막이 되어서 그들의 삶이 고단하고, 몽골이 사막이 되어서 우리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막연한 연결보다 더 가까운 곳을 내가 사막으로 만들거나 일조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더 적극적인 생태적 행동으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
열무, 콩, 팥
7월의 사막화를 막으려면 열무나 콩, 팥을 심으면 된다. 좀 늦게 심으면 소출이 별로다. 그러니 아예 심지 않는 분들도 있다. 어차피 방학이라 아이들이 오지도 않으니 나누지도 못하니까.
하지만 소출이 아니라 땅을 보전하는 일이라면 다르다. 땅을 벗겨진 피부로 남겨 두지 않는 것. 초록의 잎이 탄소를 흡수하고 가둘 수 있도록 하고, 흙 속의 미생물들이 여전히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콩이든 팥이든 열무든 세 알씩 직파를 하면 된다.
올해 나는 교육농 밴드의 민승현 선생님께서 작년에 나눠 주신 검정팥(토종)을 심어 보려고 지난 주 모종을 내어 두었고, 머루콩이랑 부엉다리콩은 감자밭에 직파를 해 보려고 한다. 대부분 10월 중순까지는 키워 내기 때문에 갈아엎지 않고 사이사이 배추까지 심으려면 간격을 일정하게 두고 뿌려야 할 텐데, 다 자란 잎줄기의 범위가 얼마나 될지 검색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어서 고민 중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붉은강낭콩 말고는 심어 본 적이 없다가 코로나19 첫해, 콩 심은 데 난 팥을 목격하고 처음으로 잡곡에 관심을 가져 검정까치콩도 심었다. 유인을 하면 끈을 타고 2층 높이까지 오른다기에 그해 1학년 교사들과 나누었더니 거칠고 단단한 흙 화단에 심어서 1층 꼭대기까지 겨우 올라가는 걸 본 경험이 있다. 작년에는 밭에 심어 2미터짜리 지주를 벽처럼 세워 주었는데, 더 오르지 못해 서로 뒤엉켰다. 교육농 연수 때 노원초 교장 선생님께 받은 갓끈동부는 꼬투리가 내 팔 길이만하게 길어서 땅에 닿고 늘어지는 모습에 놀랐고, 수시로 열리는 팥꼬투리를 수확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채종은 겨우 한 손 가득한 정도였다. 4월 중순, 콩을 관찰하고 나누어 심는데 완두들이랑 호랑이강낭콩이랑 까치콩, 유두콩이 같은 시기에 심겼으니(완두는 늦었고, 강낭콩이나 까치콩은 너무 빨랐다) 참 기가 차다! 학생들이 심은 곳에 싹이 안 나 콩을 찔러 넣어 주고 또 넣어 주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7월에는 갖가지 콩들을 심어도 된다. 어차피 8월 말이면 배추를 심어야 하니 땅을 비워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보자. 밥솥에 들어가는 한 줌 정도의 콩을 밭에 뿌려 두었다가 베어 내면 된다.
빈 땅이나 상자 화분에 뿌릴 수 있는 것이 또 열무만 한 것이 없다. 생육이 빠르다. 직파를 한 후 2, 3일이면 싹이 트고 본잎을 볼 수 있다. 보름이면 한 뼘 이상이 자라서 여린 잎 뽑아 먹을 수 있고 한 달이면 제법 풍성해서 김치도 가능하다. 문제는 3일에 한 번, 방제를 해 주지 않으면 온통 벌레를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화려한 레이스가 된다. 한 동료는 야심차게 한가득 수확한 열무들의 잎 상태에 놀랐는지 “나는 못 먹겠다” 손사래를 치셨다. 먹거리 안전. 열무는 시장의 말끔한 채소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진 건지, 우리는 무엇을 먹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작물이다.
▲ 뿌린 지 보름째 열무(2020.7)
▲ 한 달이 되면 이만큼 풍성하다(2020.8)
▲ 자세히 보면 온통 벌레를 먹어 너덜너덜하다.
이제 학기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정글처럼 엉킨 텃밭에 뭘 새롭게 심는 것이 영 성가시다면 메밀을 뿌려 둔다. 8월 중순이면 배추를 심을 참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두둑을 다시 높이고 축분 퇴비를 섞어 주는 고생보다는 한참 쉽다. 흙을 벗겨낸 시뻘건 피부로 두지 않기 위해서!
교육농은 농업과 다르다
분명히 달라야 한다. 우리가 농기술에 매일 필요가 없는 이유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큰딸을 사랑하는 나의 아빠는 맨날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딸을 안타까워하신다. 팔다리가 벌레에 뜯겨 울긋불긋, 시커먼 자욱들로 가득하고 땀에 절은 쉰내 나는 셔츠를 입고 퇴근하는 딸을 안쓰럽게 보신다. 제 자식 돌보느라 쉴 겨를도 없으면서 흙을 돌본답시고 토요일마다 학교에 자발적 출근을 하는 딸이 약아빠지지 못했다고 측은하게 여기신다. 비닐을 덮지 않고 톱밥을 덮는다느니, 왕겨를 덮는다느니 하더니, 얼레! 이번에는 시장 골목마다 누비면서 남들이 버리는 마늘대를 이고 지고 낑낑거린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먹고 살지 못한다고 숱하게 말을 했는데도 애들 장난치듯 농사짓는 딸은 아빠에겐 한참 어리기도 하고 한 수 갈르쳐 줘야 하는 풋내기다. 관행농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이들도 한마디씩. 농약까지는 이해한다지만 “어디 비닐 없이 농사가 되겠는가.” 나도 한때는 농사가 ‘본업’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핑계삼아 말한 적이 있었다만, 이제는 그런 핑계가 지루하고 쓸데없다. 나는 이제 학교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순환을 설계하고 짓는 것이며, 학교 텃밭은 학교 ‘농장’이 아니라, 생태적 순환을 싹틔우고 견인하는 장소라는 것을 외치고 싶다.
학교 텃밭을 좀 들여다보자.
4월에 우리는 각종 모종을 산다.
5월 가장 싱싱하고 푸른 푸성귀들을 좀 뜯어 먹다가
6, 7월 벌레가 창궐하고 비에 쓰러지는 이맘때 즈음 놓아 버린다. 굴파리며 진딧물이 생겨 먹을 게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8월 개학을 앞두고 속 시원하게 싹 걷어 낸다.
9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같은 맨땅에 가을맞이 모종들을 또 대거 구입해서 꽂는다. 아이들은 새롭고 어리고 여린 상품을 심으며 작은 희열을 느끼고, 싱그러운 열매들이 달릴라치면 한두 알씩 소유하는 데에 환호하다가, 때깔이 볼품없는 열매들이나 늙고 병들고 스러져가는 잎 줄기들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누군가 싹 걷어 내고 쳐 내고 버리면 다시 거친 흙이 드러난다.
학교, 가장 생태적이라고 자랑하는 공간에서는 늘 싱싱하고 푸르고 아름다운 것들만 보여 준다. 텃밭은 늘 즐겁고 신나(야 한다)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생태적으로 아름다운 것들 사이, 그 사이에는 놓치면 안 되는 연결고리들이 있다. 끈적한 땀과 삐걱거리는 관절, 긁적긁적 계속해서 긁어야만 하는 붉은 상처들. 좀더 나아가 투입되는 노동력의 가치와 수확 산출 결과의 가치까지. 그것들을 최소화시키지 못하면 ‘스마트’하지 못하다. 땀 흘리지 않고 냄새나지 않으며 비바람, 햇볕과도 독립해야 스마트한 농장이라고 연신 떠들어댄다. 스마트한 곳에서 벌레들은 박멸해야 할 존재들이며, 기우제를 지내고 하늘 아래 겸손한 농부는 덜 스마트한 거다.
나는 텃밭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사고, 다시 새로 사들이는 텃밭 소비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텃밭을 막 시작하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작물을 심고 빛 좋은 수확물을 얻는 데에 집중을 하면서 ‘교육농’이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단지 작물을 잘 길러내는 ‘농사’다. 농사 이상,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농과 교육 사이. 다르다는 것을 질문하는 순간 교육농은 시작된다고 위안을 해 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답을 내 놓아야 하는지 사실 나도 탐구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산출물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모든 교육 활동이 산출(결과)로부터의 해방될 때 교육으로서 빛이 나듯, 작물 수확과 소비 중심에서 벗어나서 ‘되돌림’과 ‘순환’을 고민하는 동시에 일렬로 줄지은 작물들의 나열보다 더 세련되게 작동하는 생태계를 학교 안으로 들여 놓는 일을 해야 한다. 동시에 학교 텃밭이 그저 아이들과의 소꿉놀이, 농사를 흉내 내는 얼치기 농사꾼, 나아가 본업이 아닌 이들의 그린워싱, 정원 놀음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해야 비로소 학교 텃밭이 생태,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뽑지 말고 지키자
학교에 고추, 가지, 토마토를 심었다면 한가득 수확의 기쁨이 넘치는 때가 바로 7월이다. 잘 거두고 활용하시면 된다. 이 세 가지 작물은 기왕이면 10월 말 끝까지 두기를 추천한다. 7월보다 8월이 수확이 많아지고 9월까지 그 수확량을 유지한다. 학교에서는 딱 여름까지만 보고 뽑아내는 통에 가을 이후에는 잘 자라지 않는 것인가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가지과는 바람이 적당히 선선해지면 열매가 더 많이 달린다. 나는 지난해에 그걸 경험하고 새삼 감탄했다. 고추와 토마토를 남겨두고 (물론 두둑을 갈아엎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사이에 심은 배추와 무는 잘 자랐다.
▲코로나 19덕에 두둑을 파헤치지 않고 고추를 사이사이에 두고 배추를 심었다.
▲여름에 겨우 한두 개씩 달리던 가지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열린다. 8월 중순이면 갈아엎던 학교 텃밭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9월 중순이지만 고추와 바질, 토마토들이 남아 텃밭을 풍성하게 하고 열매를 계속 이어낸다.
이맘때 가장 많이 하는 수확물 활용 활동은 모히또와 카나페 만들기다. 애플민트만 좀 찢어서 탄산수에 넣고 방울 토마토와 애플민트 새순을 크래커 위에 장식처럼 얹어 먹는다. 어지간한 학교나 단체가 쉽게 하는 먹거리다. 나는 텃밭 앞 탁자에서 선생님들과 모히또를 한잔씩 하며 모기를 쫓는 여름밤을 보내고 싶다.
지난달에 소개한 허브차. 생잎으로 즐기는 차는 절대적으로 진리다. 가진 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을 놓치지 마시라. 불을 쓰지 않는 토마토 바질청이나 바질페스토도 있다. 바질페스토는 바질 1팀, 견과류 1팀으로 나누어 절구에 다져서 올리브유와 다진마늘, 소금, 후추 약간씩으로 간을 맞추는 소스다. 토마토 바질청은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긴 토마토와 잘게 자른 바질, 그리고 레몬 2~3조각을 넣어 설탕에 절이는 건데, 탄산수에 넣어 마시면 그 풍미가 색다르다. 바질을 헹궈서 말리거나 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샤워를 시켜 껍질을 벗기는 것이 일이다. 둘 다 고학년용. 좀 더 품을 팔아 토마토 마리네이드도 즐길 만하다. 이 모두 토마토가 한창 열릴 7, 8월에 가능하다.
지난해 한 연예인이 열풍을 일으킨 레몬딜버터. 5분이면 완성이라고 하도 강조하기에 학생들하고 해 볼 수 있을까 싶어 지난달 학급 모임에서 중1들하고 시도해 봤다. 5분? 노놉. 일단 딜을 수확하고 흐르는 물에 헹구고 말리는 과정부터 1시간. 레몬제스트(껍질가루)를 강판에 갈아 내는 시간 30분, 게다가 손을 다친다. 여기에 레몬을 세척하는 데 걸린 몇 시간은 뺐다. 미끈거리는 버터의 기름기를 정리하는 시간은 또 어떻고! 딜과 레몬제스트와 버터를 섞는 것만 딱 5분이다. 그래도 텃밭의 작물로 뭔가 그럴 듯한 폼나는 것을 만들어 보려면 추천한다. (레몬제스트는 교사가 준비해야 한다) 딜은 이맘때 꽃이 피고 씨앗을 떨궈서 9월에 한창 피어나니, 7월 말쯤 딜 씨앗을 갈지 않는 두둑에 장전해 두시라. 레몬딜버터에 바질을 넣으면 그 또한 환상이다. 바질은 가장 위 꼭대기를 계속 쳐줘야 10월 중순까지, 볕 좋은 곳은 10월 말까지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다. 씨앗이 맺히지 않도록 부지런히 쳐 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불을 사용하지만 감자 삶기보다 간단한 민트 시럽 만들기가 있다. 물과 설탕을 2:1 비율 또는 그 이상으로 끓어오르면 애플/스피아/초코민트를 서너 줄기 넣어 불을 끄고 걸러 내면 끝. 향을 강하게 내고 싶으면 민트 건지는 시간 차를 좀 더 두면 된다. 불 없이 민트와 설탕을 1:1로 담는 것. 이때 레몬이나 라임을 몇 조각 넣어 주면 청이 우러나는 데 도움이 된다. 시원한 향이 강한 애플민트나 스피아민트를 이용한다.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기 위한 토마토 데치기. 텃밭에서 따자마자 가져온 수확물을 곧바로 요리한다는 행위는 (경직된) 학교이기 때문에 더 신 나는 일이다.
▲5분이면 뚝딱이라는 레몬딜버터.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섞기만 하면 그건 키트 수업이다.
▲텃밭에서 채취하고 씻어 말리고 썰고, 다 요리한 후 설거지와 정리까지 꼬박 오전 내내 시간을 함께할 때, 텃밭이 우리의 공간, 나의 공간이 된다.
조합원 조진희 선생님은 천왕초 근무 당시 학생들과 메리골드 꽃을 말려 꽃차를 교내에서 판매하여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학교에 메리골드(7월부터)나 수레국화(6월), 금화규(6월말부터 8월까지), 구절초(9월~10월), 카모마일 저먼(6월~7월, 9월~10월) 등의 꽃을 따서 말린다. 텃밭 일 중에 꽃을 따는 일을 학생들이 가장 좋아했다. 화려한 색감이 상추나 토마토, 콩를 딸 때보다 6학년들의 심신의 안녕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꽃은 바람부는 그늘에서 말린다기에 시도했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꽃 색도 우중충해져서 자연에서 말리기를 포기하고 건조기를 돌렸다. 전기를 쓰는 것이 죄스러워서 연말에는 야심차게 태양광 건조기 수업을 하며 제작한 스티로폼 태양광 건조기 5대까지 구비했는데, 올해 아직 개시하지 못했다. 꽃 따는 시기에 본격적으로 가동해 볼 참이다.
▲채반에 올려 그늘에 말린 꽃들은 비 한 번 맞지 않았는데도 눅눅해져서 형편없어졌다.
▲여름부터 내내 따고 말려둔 꽃차들은 11월 ESD 학급 장터에 소개했다. 달맞이종자, 오레가노, 로즈마리, 레몬버베나, 메리골드, 달맞이꽃, 카렌듈라, 금화규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제한되면서 진행하지 못한 태양광 수업을 한꺼번에 하면서 건조기 5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채종
7월의 농부는 8월 가을 농사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한숨 돌리는 시기라고 했다. 거짓말이다, 적어도 씨앗 갈무리를 하는 이에게는. 봄 작물들은 6월 중순이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씨앗이다. 이 당연한 말을 놓치지 말자. 작물들이 때가 되어 모습이 볼품없어지기 전에 뽑아내지만 않는다면, 씨앗을 만나기는 참 쉽다. 콩 같은 곡물, 고추나 수박, 참외 같은 열매들의 씨앗도 갈무리해 두지만(가장 채종이 쉽다), 꽃과 허브들의 채종도 도전해 보자.
옛말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지만, 요새는 품이 많이 드는 채종은 하지 않는데 학교에서 무슨 채종까지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 씨앗의 다양성이나 유전자 변형, 종자 주권 등의 이야기는 굳이 씨앗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수업이다. 그러면 왜? 나의 씨앗을 가지게 되었더니 내가 뿌리고 싶은 곳에 넉넉히 뿌릴 수가 있더라. 게릴라 가드닝을 프로젝트로 진행할 때, 아니 씨앗 오너먼트를 만드는 수업을 할 때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맘껏 기획하고 쓰는 재미가 좋다. 또 돈 주고 산 씨앗 한 봉을 다 썼는데 싹은 나오지 않을 때 그 애타던 마음을 이제는 자주 갖지 않을 수 있다. 넉넉하다 못해 헤픈 나눔도 마찬가지다. 실패가 두렵지 않는 지점이 많아진다. 그리고 올해 다시 1학년을 하면서 갖가지 씨앗들을 관찰용으로 내어 놓으니 채종해 두기를 잘했구나, 기분이 좋았다. 구매한 씨앗들은 죄다 빨강, 파랑 방충제나 소독약 등으로 코팅을 해 놓아서 본연의 색이나 모양을 관찰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 종자들을 학급이 나누어서 직접 심고 키우고 있다. 우장초에서 채종해서 우장초에 뿌려 키우기를 3년 이상 하면 그게 우장초 종자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토종이 따로 있으랴, 내가 키우고 내가 거두기를 반복하면 그게 토종이지.
▲학생들과 참깨 털기. 넓은 비닐을 깔았는데 이리저리 튀는 참깨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꽃들도 각양각색이지만 씨앗의 모습도 각양각색. 꽃이 다 지고 씨앗 주머니가 보인다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꽃대 줄기째 잘라 말리면 된다. 대부분 꽃대의 1/3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면 미리 잘라 두는 것이 좋다. 물론 1/2정도 이상 꽃대 전체가 바싹 마른 후 바로 잘라 씨앗을 털면 좋겠지만, 우리 사정이 늘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싹 마른 갓과 무, 배추들의 씨앗 주머니는 바람 한 번, 비 한 번에 터지고 흩어져서 시기를 놓치면 얻을 것이 많지 않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참깨랑 갓의 주머니들은 씨앗 크기도 작은데다, 털다가 폭죽처럼 흩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너른 돗자리를 까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학생들하고 같이 해 보는 건 음, 교사들의 선택이다) 갓, 쑥갓, 당귀, 당근, 루꼴라, 바질 등 이듬해에도 심고 싶은 작물, 내가 좋아하는 작물은 꼭 나의 씨앗으로 챙겨 두길 권한다. 씨앗을 발아시켜서 키워 내는 흥과 성취는 모종을 구매해서 심는 성취와는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을 선물한다.
▲딜 씨앗 송이
▲ 바질 꽃대와 씨앗
▲꽃양귀비
▲시금치
▲수레국화
▲루꼴라
▲스냅피
▲갓
▲튤립
▲카렌듈라
▲카모마일
▲팥
▲황하 코스모스
▲무스카리
▲목화
초록을 계속 늘리는 법, 꺾꽂이
물 올림이 좋은 허브들의 줄기를 꺾어 물 꽂이를 해 두면 열흘 이내로 뿌리가 나온다. 이 허브들을 한 그루씩 집으로 챙겨 가는 재미가 좋다. 주로 레몬밤과 애플/초코/스피아 ‘민트’자가 들어가는 허브들이 쉽다. 풀을 키우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도입할 때, 사막화를 이야기한 후 풀이라도 키우자 도모할 때 잘 쓰는 방법이다. 꺾꽂이 방법은 대단히 쉬워서 1학년 아이들도 금세 한다.
로즈마리나 오레가노같은 허브나 레몬버베나, 로즈제라늄처럼 줄기가 단단한 식물들은 물꽂이가 까다롭다. 10줄기를 꽂아 두면 4-5줄기만 뿌리를 내린다. 이런 경우, 흙 종지에(흙 양이 많지 않아도 된다) 줄기를 꽂고 물이 마르지 않게 돌본다. 한여름 빛이 직접 내리 쬐지 않는 시원하고 밝은 창가에 둔다. 묘목들을 온실서 관리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어느 장소가 좋을지 금세 떠오를 것이다. 나는 교실 책상 바로 옆 창가에 두고 매일 아침 들여다보며 물 관리를 한다. 물 올림이 빠른 7월에도 2일에 한 번씩 물을 주면 보름 정도면 뿌리가 잘 내려져 있다. 이 방법은 겨울을 준비하는 데에도 쏠쏠히 쓰고 있다. 매년 봄마다 똑같은 작물 모종을 새롭게 구입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속상해서 10월 전부터 각종 허브들의 줄기를 잘라 교실에서 뿌리내리고 지키다가 봄에 내어 놓는다. 다시 구매하지 않고 다시 늘린 허브가 올봄에 한가득이다.
▲꺾꽂이를 위해 허브나 작물 줄기를 자르는 행위는 초1도 잘한다.
▲빈 요구르트 병을 이용하여 물꽂이를 해 둔다. 보름 정도면 흰 뿌리가 나온다. 한 줄기가 한 그루로 바뀌는 중.
▲허브들의 줄기가 자라고 개수가 늘면 계속 잘라 물꽂이로 수를 늘려 아이들과 나눈다. 책상 옆에 두고 출퇴근 때마다 돌보지 않으면 어김없이 실패한다.
나무를 심어라!
내가 이렇게 무엇을 기르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훨씬 전, 가을 단감을 먹고 나온 씨앗 3개를 호기심에 심어 본 적이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 15년 전쯤인 것으로 기억한다. 3개의 씨앗 중에 2개가 싹을 틔웠다가 한 그루의 풀 줄기만 남아 얼마간 키웠는데, 초록 풀줄기가 어느 사이 나무 줄기가 되는 것을 보며 감탄과 감동의 나날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호들갑을 떠는 내게 아빠는 그거 키워 봤자 땡감밖에 안 열린다, 못 먹는다, 품종 좋은 묘목을 사서 키우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놀랍고 대견했다. 결과는? 이쑤시개 같은 나무 줄기는 한 뼘보다 더 키가 자랄 때까지 크다가 물 주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그만 죽었다. 그 감나무가 지금까지 크고 있다면 참 굵은 나무가 되어 있을텐데. 게다가 매년 감씨를 하나씩만이라도 심어 키워 내었다면 열 다섯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나무가 되는 씨앗을 키워 보려고 한다. 이제 한창 먹게 되는 자두, 복숭아를 반 아이들과 해 보려고 오물오물 한참을 사탕처럼 먹고 깨끗이 나온 씨앗을 씻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우리반 다은이도 한참을 오물거리던 급식 자두 씨앗을 티슈에 말아서 나에게 주었다. 사실 3년 전 우리 반 아이들이 급식에서 씨앗만 나오면 심어 보자고 해서 무작정 우유팩에 심어 보았었다. 포도랑 자두, 참외였는데 포도랑 자두는 실패했고, 참외는 잘 커서 맛있는 참외 몇 알을 얻었지만 나무는 아니었다. 작년에도 레몬 씨앗을 그대로 물에 불렸다가 썩힌 경험이 있다. 다시 도전하면서 찾아 본 씨앗 발아 방법들은 단단한 껍질을 벗겨 내고 속씨를 불려 발아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틔운 레몬나무는 연말 기금 마련 장을 열어 세 그루를 팔았고, 씨앗 틔우기부터 분갈이까지 정성을 다한 현아랑 유민이가 한 그루씩 데려갔다. 졸업한 유민이는 지난주 반 모임에 와서 “큰 화분에 옮겨 주었더니, 선생님 나무들보다 더 크고 굵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말에 나도 미뤄 뒀던 레몬나무들을 대단히 큰 화분으로 옮겨 주었다. 이제 3, 4년은 분갈이 없이 키우면 되겠다. 어떠신가, 3년 뒤 나의 레몬나무들 소식이 궁금하지 않은가!
▲레몬 씨앗을 발아시키려면 껍질을 벗겨야 한다.
▲레몬 싹
▲열다섯 그루를 성공시켜 이리저리 나누고 팔았다.
▲레몬나무를 한 그루씩 옮겨 심었던 유민이는 올해 레몬나무 소식을 들려 주었다.
▲1년 내내 지름 13센티 화분서 키우다가
▲넓은 집으로 이사시켜 주었다.
텃밭을 하면서 늘 마주하는 생명의 탄생과 쇠락 사이클은 나를 겸허하게 한다. 본연의 싱그러움, 독창성. 어머니 자연의 돌봄 안에서 드디어 발휘되는 찬란함과 다양성은 농을 기반으로 살던 시절의 이들이 자연을 숭배할 만큼 겸손한 이유를 깨닫게 한다. 쇠락의 풍경을 걷어내고 생명을 심고 늘리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선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전달한다. 하지만 어느 사이인가 반복되는 농의 패턴이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팔다리를 고단하게 하는 노동의 강도도 그렇지만, 걷어 내고 뽑아내는 행위의 불편함들이 컸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로 우회를 시킬 수 있지만, 여전히 필요 없으면 걷어 내는 풀들부터 나를 두렵게 하는 더듬이 달린 생명들까지 ‘저걸 죽여, 말어?’ ‘이걸 남길까 없앨까’를 결정하는 권력의 자리가 계속 불편하다. 절대 권력의 지팡이(호미)를 휘두르는 순간 나는 생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더 많은 생명을 사그라뜨리고 있다는 의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것은 농의 비극일까 필연일까. 이 비극을 감추기 위해서 기후 위기니 생물 다양성이니, 사막화 방지니 하며 ‘교육’이라는 ‘약’을 타고 있지만, 나는 플라스틱과 비닐을 틈틈이 써 대고, 봄가을마다 가축 분뇨 퇴비를 흙에 섞고, 가뭄에도 수도를 콸콸 틀어 온 밭을 흠뻑 적셔 대고 있으니 이건 교육농이라는 이름의 인류세의 유희가 아닌가, 자조가 들기도 한다.
A4 용지 1장을 생산하는 데 물은 10L가 소비되고, 2.88g의 탄소를 발생시킨다는데, 하루 10장을 쓴다면 1년 36,500L를 소비하고 탄소 1kg을 배출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는 30년 된 원목 1/3그루를 베어 내는 셈이란다. 이건 A4 기준이지, 각종 택배며 상품 포장, 종이컵, 종이봉투, 하다못해 영수증이나 휴지, 종이 타월을 생각하면 1년에 나무 3그루는 족히 베어 내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참 고상하고 평온하게 기후 위기에 대한 참회를 늘어 놓는 이면에는 모르는 척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나는 전세계 1인당 연평균 종이 사용량보다 3배를 쓴단다. 이런 사실을 이제껏 모르고 있었겠지만, 이제 원죄를 알았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단순하다. 자신이 쓴 만큼 나무를 심는 것. 〈자기 나이만큼 나무를 심어라〉는 캠페인처럼 이제 우리는 나무도 심어야 한다. 전쟁 직후의 산림 녹화처럼 절실하게. 실제로 나무가 있는 텃밭은 미기후 생성으로 인해 순환 사이클이 잘 발달하여 작물이 더 건강하고 생산성이 높아진단다. 이 사실을 알기 훨씬 전 운 좋게도 나는 나무가 있는 텃밭을 경험한 적이 있다. 30년된 나무 두 그루가 깊이 뿌리 내린 그늘 자리였던 그곳에서의 풍경을 되짚어 본다. 한여름 그늘이 나의 작물들을 가뭄으로부터 지켜 주고, 더위에 일을 해야 하는 나를 도왔다. 저학년 하교 지도를 마치고 한창 뜨거운 그곳은 두 그루의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작물이 늘어져 있지 않았다. 일하기 좋은 그늘 아래라, 오후 2시 무렵, 그 이글거리는 시각에 하교 지도 이후 휴식 겸 텃밭에 물을 주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자꾸만 발걸음을 돌린다(지금 학교 텃밭은 오후 3시에나 건물 그늘이 진다. 뜨겁지는 않지만 나무 그늘의 청량함과는 다르다).
배추가 한창 차오르는 시월 무렵부터는 나무 두 그루가 떨구는 풍성한 낙엽들이 밭을 빠른 속도로 풍요의 땅으로 바꾸어 주었다. 추위로부터도 막아 주고(누군가 내다 버린 화초를 낙엽으로 묻어 둔 적이 있는데, 겨울을 나고 봄에 그대로 꽃을 피워 내는 기적을 보았다) 흙 속의 생명도 지켜 주었다. 보도블록을 걷어 낸 그 쓰레기 돌밭이 3년도 되지 않아 버섯이 피고 지렁이 똥무덤 천지였다. 지금 텃밭처럼 톱밥을 덮거나 왕겨를 덮거나 따위를 일절 하지 않았던 곳이다. 꽃나무 두 그루는 그렇게 나를 돕고 나는 꽃나무를 도왔다. 혹시 그 나무가 열매가 열리는 과실나무였다면? 추억과 배움은 더 풍성했을 것이다. 뒤늦은 배움이지만 나무도 먹여 살리고, 작물도 먹여 살리면서 숲밭을 만들어야 텃밭으로 기후 위기에 맞설 준비를 좀 한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게다. 나무가 영양분을 다 빼앗아 간다는 말은 틀렸다. 잡초가 영양분을 다 빼앗아 간다는 말도 틀린 것 같다.
나의 학교 텃밭
생태적 순환을 싹틔우고 견인하는 장소입니다, ‘마침내’
강주희 서울 우장초
선생님들의 텃밭은 안녕하신가요. 비가 퍼붓는 며칠을 견딘 학교 텃밭은 미리 지주를 세운 덕에 무사한 곳도 있지만, 키가 무르팍 아래로 낮기에 방심했던 꽃들은 모두 스러진 채로 쉼 없이 비를 맞아 다 녹아버리기도 했어요. 저는 올해도 수레국화와 딜들을 베어서 눕히는 비극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3일간의 폭우 뒤 텃밭 작물들이 쓰러졌다.
▲ 선생님 따라서 제 손으로 일으켜주고 세워준다. 이 친구는 풀만 세우지 않는다.
▲ 사진으로는 확인이 어렵지만 무릎 높이도 안 되는, 막 개화를 시작한 수레국화들이 다 풀죽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밭을 ‘소비하고 버리는’ 것은 아닐까
6월이 끝날 즈음 감자밭은 빌 것이다. 우리학교 5학년은 매년 감자를 심는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그 넓은 감자밭이 텅 빈다. 아니, 바르게 말하자면 ‘사막’이 된다. 감자를 캐면서 마구 파헤쳐진 두둑은 무너지고, 뿌리까지 뽑힌 감자줄기들은 한쪽으로 버려진다. 그리고 비가 오고 쓸리면서 포실포실하던 흙들은 떠내려 가서 없어지고 남은 것들은 다져지고 단단해진다. 그곳이 작물의 안식처, 침대(영어로 두둑은 베드다)였다는 것을 알 수 없는 다른 (아)이들은 그곳을 마구 밟는다. 풀 한 포기 없는 흙 위를 태양이 달구고, 흙이 머금던 물기를 모조리 앗아 간다. 포실포실 거무튀튀하던 흙은 딱딱하게 굳고 허여멀겋게 창백해진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황무지가 된다. 이 구역은 개학 직전, 다시 힘을 들여 두둑을 올리기 전까지 그대로 방치된다. 밭을 ‘소비하고 버린다’.
나는 그 광경이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해서, 재작년에는 3학년 학생들과 열무를 뿌리고, 작년에는 우리 반 학생들과 콩 벽을 세워 빈 땅을 채웠다. 물론 열무는 절반 이상을 채식곤충(일명 ‘톡톡이’ 벼룩잎벌레)들에게 보시하였다. 콩 벽은 (코로나19로 온전히 나 혼자 소작을 할 수 있었던 덕에) 10월까지 둘 수 있었는데 소출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땅을 소비하지만 않고, 잘 키우고 지켰다. 학생들에게 우리 행동의 의미를 절실히 전하며 보이지 않는 생산과 순환을 하였다는 점에 스스로를 칭찬한다.
▲ 이틀 전만 해도 감자가 심겨 있었던 세 줄의 두둑.
▲ 보름 만에 물과 생명을 품지 못하는 사막이 되었다.
▲ 지난해 감자 두둑이 방치되는 것이 신경쓰여서 채워 놓은 콩 벽. 왼쪽과 같은 자리다.
6월 17일은 UN이 94년 지정한 ‘사막화와 가뭄 방지의 날’이다. 어디 UN이 지정한 국제적 환경 기념일이 한두 날이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유엔의 사막화방지협약(UNCCD)은 우리가 생태 전환 교육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입에 올리는 ‘기후변화’협약, ‘생물다양성’협약과 더불어 3대 협약이라는 사실이다. 뭐, 그 숱한 기념일을 ‘기념’하는데 급급하자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생태적 교육 활동의 장으로 마주하는 텃밭이 사막이 되는 꼴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무지의 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저 멀리 아프리카가 사막이 되어서 그들의 삶이 고단하고, 몽골이 사막이 되어서 우리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막연한 연결보다 더 가까운 곳을 내가 사막으로 만들거나 일조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 더 적극적인 생태적 행동으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
열무, 콩, 팥
7월의 사막화를 막으려면 열무나 콩, 팥을 심으면 된다. 좀 늦게 심으면 소출이 별로다. 그러니 아예 심지 않는 분들도 있다. 어차피 방학이라 아이들이 오지도 않으니 나누지도 못하니까.
하지만 소출이 아니라 땅을 보전하는 일이라면 다르다. 땅을 벗겨진 피부로 남겨 두지 않는 것. 초록의 잎이 탄소를 흡수하고 가둘 수 있도록 하고, 흙 속의 미생물들이 여전히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콩이든 팥이든 열무든 세 알씩 직파를 하면 된다.
올해 나는 교육농 밴드의 민승현 선생님께서 작년에 나눠 주신 검정팥(토종)을 심어 보려고 지난 주 모종을 내어 두었고, 머루콩이랑 부엉다리콩은 감자밭에 직파를 해 보려고 한다. 대부분 10월 중순까지는 키워 내기 때문에 갈아엎지 않고 사이사이 배추까지 심으려면 간격을 일정하게 두고 뿌려야 할 텐데, 다 자란 잎줄기의 범위가 얼마나 될지 검색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어서 고민 중이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붉은강낭콩 말고는 심어 본 적이 없다가 코로나19 첫해, 콩 심은 데 난 팥을 목격하고 처음으로 잡곡에 관심을 가져 검정까치콩도 심었다. 유인을 하면 끈을 타고 2층 높이까지 오른다기에 그해 1학년 교사들과 나누었더니 거칠고 단단한 흙 화단에 심어서 1층 꼭대기까지 겨우 올라가는 걸 본 경험이 있다. 작년에는 밭에 심어 2미터짜리 지주를 벽처럼 세워 주었는데, 더 오르지 못해 서로 뒤엉켰다. 교육농 연수 때 노원초 교장 선생님께 받은 갓끈동부는 꼬투리가 내 팔 길이만하게 길어서 땅에 닿고 늘어지는 모습에 놀랐고, 수시로 열리는 팥꼬투리를 수확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채종은 겨우 한 손 가득한 정도였다. 4월 중순, 콩을 관찰하고 나누어 심는데 완두들이랑 호랑이강낭콩이랑 까치콩, 유두콩이 같은 시기에 심겼으니(완두는 늦었고, 강낭콩이나 까치콩은 너무 빨랐다) 참 기가 차다! 학생들이 심은 곳에 싹이 안 나 콩을 찔러 넣어 주고 또 넣어 주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7월에는 갖가지 콩들을 심어도 된다. 어차피 8월 말이면 배추를 심어야 하니 땅을 비워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보자. 밥솥에 들어가는 한 줌 정도의 콩을 밭에 뿌려 두었다가 베어 내면 된다.
빈 땅이나 상자 화분에 뿌릴 수 있는 것이 또 열무만 한 것이 없다. 생육이 빠르다. 직파를 한 후 2, 3일이면 싹이 트고 본잎을 볼 수 있다. 보름이면 한 뼘 이상이 자라서 여린 잎 뽑아 먹을 수 있고 한 달이면 제법 풍성해서 김치도 가능하다. 문제는 3일에 한 번, 방제를 해 주지 않으면 온통 벌레를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화려한 레이스가 된다. 한 동료는 야심차게 한가득 수확한 열무들의 잎 상태에 놀랐는지 “나는 못 먹겠다” 손사래를 치셨다. 먹거리 안전. 열무는 시장의 말끔한 채소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진 건지, 우리는 무엇을 먹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작물이다.
▲ 뿌린 지 보름째 열무(2020.7)
▲ 한 달이 되면 이만큼 풍성하다(2020.8)
▲ 자세히 보면 온통 벌레를 먹어 너덜너덜하다.
이제 학기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정글처럼 엉킨 텃밭에 뭘 새롭게 심는 것이 영 성가시다면 메밀을 뿌려 둔다. 8월 중순이면 배추를 심을 참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두둑을 다시 높이고 축분 퇴비를 섞어 주는 고생보다는 한참 쉽다. 흙을 벗겨낸 시뻘건 피부로 두지 않기 위해서!
교육농은 농업과 다르다
분명히 달라야 한다. 우리가 농기술에 매일 필요가 없는 이유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큰딸을 사랑하는 나의 아빠는 맨날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딸을 안타까워하신다. 팔다리가 벌레에 뜯겨 울긋불긋, 시커먼 자욱들로 가득하고 땀에 절은 쉰내 나는 셔츠를 입고 퇴근하는 딸을 안쓰럽게 보신다. 제 자식 돌보느라 쉴 겨를도 없으면서 흙을 돌본답시고 토요일마다 학교에 자발적 출근을 하는 딸이 약아빠지지 못했다고 측은하게 여기신다. 비닐을 덮지 않고 톱밥을 덮는다느니, 왕겨를 덮는다느니 하더니, 얼레! 이번에는 시장 골목마다 누비면서 남들이 버리는 마늘대를 이고 지고 낑낑거린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먹고 살지 못한다고 숱하게 말을 했는데도 애들 장난치듯 농사짓는 딸은 아빠에겐 한참 어리기도 하고 한 수 갈르쳐 줘야 하는 풋내기다. 관행농을 조금이라도 경험한 이들도 한마디씩. 농약까지는 이해한다지만 “어디 비닐 없이 농사가 되겠는가.” 나도 한때는 농사가 ‘본업’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핑계삼아 말한 적이 있었다만, 이제는 그런 핑계가 지루하고 쓸데없다. 나는 이제 학교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순환을 설계하고 짓는 것이며, 학교 텃밭은 학교 ‘농장’이 아니라, 생태적 순환을 싹틔우고 견인하는 장소라는 것을 외치고 싶다.
학교 텃밭을 좀 들여다보자.
4월에 우리는 각종 모종을 산다.
5월 가장 싱싱하고 푸른 푸성귀들을 좀 뜯어 먹다가
6, 7월 벌레가 창궐하고 비에 쓰러지는 이맘때 즈음 놓아 버린다. 굴파리며 진딧물이 생겨 먹을 게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8월 개학을 앞두고 속 시원하게 싹 걷어 낸다.
9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같은 맨땅에 가을맞이 모종들을 또 대거 구입해서 꽂는다. 아이들은 새롭고 어리고 여린 상품을 심으며 작은 희열을 느끼고, 싱그러운 열매들이 달릴라치면 한두 알씩 소유하는 데에 환호하다가, 때깔이 볼품없는 열매들이나 늙고 병들고 스러져가는 잎 줄기들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누군가 싹 걷어 내고 쳐 내고 버리면 다시 거친 흙이 드러난다.
학교, 가장 생태적이라고 자랑하는 공간에서는 늘 싱싱하고 푸르고 아름다운 것들만 보여 준다. 텃밭은 늘 즐겁고 신나(야 한다)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생태적으로 아름다운 것들 사이, 그 사이에는 놓치면 안 되는 연결고리들이 있다. 끈적한 땀과 삐걱거리는 관절, 긁적긁적 계속해서 긁어야만 하는 붉은 상처들. 좀더 나아가 투입되는 노동력의 가치와 수확 산출 결과의 가치까지. 그것들을 최소화시키지 못하면 ‘스마트’하지 못하다. 땀 흘리지 않고 냄새나지 않으며 비바람, 햇볕과도 독립해야 스마트한 농장이라고 연신 떠들어댄다. 스마트한 곳에서 벌레들은 박멸해야 할 존재들이며, 기우제를 지내고 하늘 아래 겸손한 농부는 덜 스마트한 거다.
나는 텃밭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사고, 다시 새로 사들이는 텃밭 소비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텃밭을 막 시작하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작물을 심고 빛 좋은 수확물을 얻는 데에 집중을 하면서 ‘교육농’이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단지 작물을 잘 길러내는 ‘농사’다. 농사 이상,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농과 교육 사이. 다르다는 것을 질문하는 순간 교육농은 시작된다고 위안을 해 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답을 내 놓아야 하는지 사실 나도 탐구중이다. 하지만 적어도 산출물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모든 교육 활동이 산출(결과)로부터의 해방될 때 교육으로서 빛이 나듯, 작물 수확과 소비 중심에서 벗어나서 ‘되돌림’과 ‘순환’을 고민하는 동시에 일렬로 줄지은 작물들의 나열보다 더 세련되게 작동하는 생태계를 학교 안으로 들여 놓는 일을 해야 한다. 동시에 학교 텃밭이 그저 아이들과의 소꿉놀이, 농사를 흉내 내는 얼치기 농사꾼, 나아가 본업이 아닌 이들의 그린워싱, 정원 놀음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해야 비로소 학교 텃밭이 생태,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뽑지 말고 지키자
학교에 고추, 가지, 토마토를 심었다면 한가득 수확의 기쁨이 넘치는 때가 바로 7월이다. 잘 거두고 활용하시면 된다. 이 세 가지 작물은 기왕이면 10월 말 끝까지 두기를 추천한다. 7월보다 8월이 수확이 많아지고 9월까지 그 수확량을 유지한다. 학교에서는 딱 여름까지만 보고 뽑아내는 통에 가을 이후에는 잘 자라지 않는 것인가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는데, 가지과는 바람이 적당히 선선해지면 열매가 더 많이 달린다. 나는 지난해에 그걸 경험하고 새삼 감탄했다. 고추와 토마토를 남겨두고 (물론 두둑을 갈아엎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사이에 심은 배추와 무는 잘 자랐다.
▲코로나 19덕에 두둑을 파헤치지 않고 고추를 사이사이에 두고 배추를 심었다.
▲여름에 겨우 한두 개씩 달리던 가지가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열린다. 8월 중순이면 갈아엎던 학교 텃밭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9월 중순이지만 고추와 바질, 토마토들이 남아 텃밭을 풍성하게 하고 열매를 계속 이어낸다.
이맘때 가장 많이 하는 수확물 활용 활동은 모히또와 카나페 만들기다. 애플민트만 좀 찢어서 탄산수에 넣고 방울 토마토와 애플민트 새순을 크래커 위에 장식처럼 얹어 먹는다. 어지간한 학교나 단체가 쉽게 하는 먹거리다. 나는 텃밭 앞 탁자에서 선생님들과 모히또를 한잔씩 하며 모기를 쫓는 여름밤을 보내고 싶다.
지난달에 소개한 허브차. 생잎으로 즐기는 차는 절대적으로 진리다. 가진 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을 놓치지 마시라. 불을 쓰지 않는 토마토 바질청이나 바질페스토도 있다. 바질페스토는 바질 1팀, 견과류 1팀으로 나누어 절구에 다져서 올리브유와 다진마늘, 소금, 후추 약간씩으로 간을 맞추는 소스다. 토마토 바질청은 살짝 데쳐 껍질을 벗긴 토마토와 잘게 자른 바질, 그리고 레몬 2~3조각을 넣어 설탕에 절이는 건데, 탄산수에 넣어 마시면 그 풍미가 색다르다. 바질을 헹궈서 말리거나 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샤워를 시켜 껍질을 벗기는 것이 일이다. 둘 다 고학년용. 좀 더 품을 팔아 토마토 마리네이드도 즐길 만하다. 이 모두 토마토가 한창 열릴 7, 8월에 가능하다.
지난해 한 연예인이 열풍을 일으킨 레몬딜버터. 5분이면 완성이라고 하도 강조하기에 학생들하고 해 볼 수 있을까 싶어 지난달 학급 모임에서 중1들하고 시도해 봤다. 5분? 노놉. 일단 딜을 수확하고 흐르는 물에 헹구고 말리는 과정부터 1시간. 레몬제스트(껍질가루)를 강판에 갈아 내는 시간 30분, 게다가 손을 다친다. 여기에 레몬을 세척하는 데 걸린 몇 시간은 뺐다. 미끈거리는 버터의 기름기를 정리하는 시간은 또 어떻고! 딜과 레몬제스트와 버터를 섞는 것만 딱 5분이다. 그래도 텃밭의 작물로 뭔가 그럴 듯한 폼나는 것을 만들어 보려면 추천한다. (레몬제스트는 교사가 준비해야 한다) 딜은 이맘때 꽃이 피고 씨앗을 떨궈서 9월에 한창 피어나니, 7월 말쯤 딜 씨앗을 갈지 않는 두둑에 장전해 두시라. 레몬딜버터에 바질을 넣으면 그 또한 환상이다. 바질은 가장 위 꼭대기를 계속 쳐줘야 10월 중순까지, 볕 좋은 곳은 10월 말까지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다. 씨앗이 맺히지 않도록 부지런히 쳐 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불을 사용하지만 감자 삶기보다 간단한 민트 시럽 만들기가 있다. 물과 설탕을 2:1 비율 또는 그 이상으로 끓어오르면 애플/스피아/초코민트를 서너 줄기 넣어 불을 끄고 걸러 내면 끝. 향을 강하게 내고 싶으면 민트 건지는 시간 차를 좀 더 두면 된다. 불 없이 민트와 설탕을 1:1로 담는 것. 이때 레몬이나 라임을 몇 조각 넣어 주면 청이 우러나는 데 도움이 된다. 시원한 향이 강한 애플민트나 스피아민트를 이용한다.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기 위한 토마토 데치기. 텃밭에서 따자마자 가져온 수확물을 곧바로 요리한다는 행위는 (경직된) 학교이기 때문에 더 신 나는 일이다.
▲5분이면 뚝딱이라는 레몬딜버터.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섞기만 하면 그건 키트 수업이다.
▲텃밭에서 채취하고 씻어 말리고 썰고, 다 요리한 후 설거지와 정리까지 꼬박 오전 내내 시간을 함께할 때, 텃밭이 우리의 공간, 나의 공간이 된다.
조합원 조진희 선생님은 천왕초 근무 당시 학생들과 메리골드 꽃을 말려 꽃차를 교내에서 판매하여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학교에 메리골드(7월부터)나 수레국화(6월), 금화규(6월말부터 8월까지), 구절초(9월~10월), 카모마일 저먼(6월~7월, 9월~10월) 등의 꽃을 따서 말린다. 텃밭 일 중에 꽃을 따는 일을 학생들이 가장 좋아했다. 화려한 색감이 상추나 토마토, 콩를 딸 때보다 6학년들의 심신의 안녕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꽃은 바람부는 그늘에서 말린다기에 시도했는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꽃 색도 우중충해져서 자연에서 말리기를 포기하고 건조기를 돌렸다. 전기를 쓰는 것이 죄스러워서 연말에는 야심차게 태양광 건조기 수업을 하며 제작한 스티로폼 태양광 건조기 5대까지 구비했는데, 올해 아직 개시하지 못했다. 꽃 따는 시기에 본격적으로 가동해 볼 참이다.
▲채반에 올려 그늘에 말린 꽃들은 비 한 번 맞지 않았는데도 눅눅해져서 형편없어졌다.
▲여름부터 내내 따고 말려둔 꽃차들은 11월 ESD 학급 장터에 소개했다. 달맞이종자, 오레가노, 로즈마리, 레몬버베나, 메리골드, 달맞이꽃, 카렌듈라, 금화규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제한되면서 진행하지 못한 태양광 수업을 한꺼번에 하면서 건조기 5대를 마련했다.
그리고 채종
7월의 농부는 8월 가을 농사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한숨 돌리는 시기라고 했다. 거짓말이다, 적어도 씨앗 갈무리를 하는 이에게는. 봄 작물들은 6월 중순이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씨앗이다. 이 당연한 말을 놓치지 말자. 작물들이 때가 되어 모습이 볼품없어지기 전에 뽑아내지만 않는다면, 씨앗을 만나기는 참 쉽다. 콩 같은 곡물, 고추나 수박, 참외 같은 열매들의 씨앗도 갈무리해 두지만(가장 채종이 쉽다), 꽃과 허브들의 채종도 도전해 보자.
옛말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지만, 요새는 품이 많이 드는 채종은 하지 않는데 학교에서 무슨 채종까지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 씨앗의 다양성이나 유전자 변형, 종자 주권 등의 이야기는 굳이 씨앗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수업이다. 그러면 왜? 나의 씨앗을 가지게 되었더니 내가 뿌리고 싶은 곳에 넉넉히 뿌릴 수가 있더라. 게릴라 가드닝을 프로젝트로 진행할 때, 아니 씨앗 오너먼트를 만드는 수업을 할 때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맘껏 기획하고 쓰는 재미가 좋다. 또 돈 주고 산 씨앗 한 봉을 다 썼는데 싹은 나오지 않을 때 그 애타던 마음을 이제는 자주 갖지 않을 수 있다. 넉넉하다 못해 헤픈 나눔도 마찬가지다. 실패가 두렵지 않는 지점이 많아진다. 그리고 올해 다시 1학년을 하면서 갖가지 씨앗들을 관찰용으로 내어 놓으니 채종해 두기를 잘했구나, 기분이 좋았다. 구매한 씨앗들은 죄다 빨강, 파랑 방충제나 소독약 등으로 코팅을 해 놓아서 본연의 색이나 모양을 관찰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 종자들을 학급이 나누어서 직접 심고 키우고 있다. 우장초에서 채종해서 우장초에 뿌려 키우기를 3년 이상 하면 그게 우장초 종자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토종이 따로 있으랴, 내가 키우고 내가 거두기를 반복하면 그게 토종이지.
▲학생들과 참깨 털기. 넓은 비닐을 깔았는데 이리저리 튀는 참깨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꽃들도 각양각색이지만 씨앗의 모습도 각양각색. 꽃이 다 지고 씨앗 주머니가 보인다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꽃대 줄기째 잘라 말리면 된다. 대부분 꽃대의 1/3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면 미리 잘라 두는 것이 좋다. 물론 1/2정도 이상 꽃대 전체가 바싹 마른 후 바로 잘라 씨앗을 털면 좋겠지만, 우리 사정이 늘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싹 마른 갓과 무, 배추들의 씨앗 주머니는 바람 한 번, 비 한 번에 터지고 흩어져서 시기를 놓치면 얻을 것이 많지 않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참깨랑 갓의 주머니들은 씨앗 크기도 작은데다, 털다가 폭죽처럼 흩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너른 돗자리를 까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학생들하고 같이 해 보는 건 음, 교사들의 선택이다) 갓, 쑥갓, 당귀, 당근, 루꼴라, 바질 등 이듬해에도 심고 싶은 작물, 내가 좋아하는 작물은 꼭 나의 씨앗으로 챙겨 두길 권한다. 씨앗을 발아시켜서 키워 내는 흥과 성취는 모종을 구매해서 심는 성취와는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을 선물한다.
▲딜 씨앗 송이
▲ 바질 꽃대와 씨앗
▲꽃양귀비
▲시금치
▲수레국화
▲루꼴라
▲스냅피
▲갓
▲튤립
▲카렌듈라
▲카모마일
▲팥
▲황하 코스모스
▲무스카리
▲목화
초록을 계속 늘리는 법, 꺾꽂이
물 올림이 좋은 허브들의 줄기를 꺾어 물 꽂이를 해 두면 열흘 이내로 뿌리가 나온다. 이 허브들을 한 그루씩 집으로 챙겨 가는 재미가 좋다. 주로 레몬밤과 애플/초코/스피아 ‘민트’자가 들어가는 허브들이 쉽다. 풀을 키우는 일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도입할 때, 사막화를 이야기한 후 풀이라도 키우자 도모할 때 잘 쓰는 방법이다. 꺾꽂이 방법은 대단히 쉬워서 1학년 아이들도 금세 한다.
로즈마리나 오레가노같은 허브나 레몬버베나, 로즈제라늄처럼 줄기가 단단한 식물들은 물꽂이가 까다롭다. 10줄기를 꽂아 두면 4-5줄기만 뿌리를 내린다. 이런 경우, 흙 종지에(흙 양이 많지 않아도 된다) 줄기를 꽂고 물이 마르지 않게 돌본다. 한여름 빛이 직접 내리 쬐지 않는 시원하고 밝은 창가에 둔다. 묘목들을 온실서 관리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어느 장소가 좋을지 금세 떠오를 것이다. 나는 교실 책상 바로 옆 창가에 두고 매일 아침 들여다보며 물 관리를 한다. 물 올림이 빠른 7월에도 2일에 한 번씩 물을 주면 보름 정도면 뿌리가 잘 내려져 있다. 이 방법은 겨울을 준비하는 데에도 쏠쏠히 쓰고 있다. 매년 봄마다 똑같은 작물 모종을 새롭게 구입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속상해서 10월 전부터 각종 허브들의 줄기를 잘라 교실에서 뿌리내리고 지키다가 봄에 내어 놓는다. 다시 구매하지 않고 다시 늘린 허브가 올봄에 한가득이다.
▲꺾꽂이를 위해 허브나 작물 줄기를 자르는 행위는 초1도 잘한다.
▲빈 요구르트 병을 이용하여 물꽂이를 해 둔다. 보름 정도면 흰 뿌리가 나온다. 한 줄기가 한 그루로 바뀌는 중.
▲허브들의 줄기가 자라고 개수가 늘면 계속 잘라 물꽂이로 수를 늘려 아이들과 나눈다. 책상 옆에 두고 출퇴근 때마다 돌보지 않으면 어김없이 실패한다.
나무를 심어라!
내가 이렇게 무엇을 기르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훨씬 전, 가을 단감을 먹고 나온 씨앗 3개를 호기심에 심어 본 적이 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 15년 전쯤인 것으로 기억한다. 3개의 씨앗 중에 2개가 싹을 틔웠다가 한 그루의 풀 줄기만 남아 얼마간 키웠는데, 초록 풀줄기가 어느 사이 나무 줄기가 되는 것을 보며 감탄과 감동의 나날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호들갑을 떠는 내게 아빠는 그거 키워 봤자 땡감밖에 안 열린다, 못 먹는다, 품종 좋은 묘목을 사서 키우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놀랍고 대견했다. 결과는? 이쑤시개 같은 나무 줄기는 한 뼘보다 더 키가 자랄 때까지 크다가 물 주는 것을 잊어버리면서 그만 죽었다. 그 감나무가 지금까지 크고 있다면 참 굵은 나무가 되어 있을텐데. 게다가 매년 감씨를 하나씩만이라도 심어 키워 내었다면 열 다섯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나무가 되는 씨앗을 키워 보려고 한다. 이제 한창 먹게 되는 자두, 복숭아를 반 아이들과 해 보려고 오물오물 한참을 사탕처럼 먹고 깨끗이 나온 씨앗을 씻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우리반 다은이도 한참을 오물거리던 급식 자두 씨앗을 티슈에 말아서 나에게 주었다. 사실 3년 전 우리 반 아이들이 급식에서 씨앗만 나오면 심어 보자고 해서 무작정 우유팩에 심어 보았었다. 포도랑 자두, 참외였는데 포도랑 자두는 실패했고, 참외는 잘 커서 맛있는 참외 몇 알을 얻었지만 나무는 아니었다. 작년에도 레몬 씨앗을 그대로 물에 불렸다가 썩힌 경험이 있다. 다시 도전하면서 찾아 본 씨앗 발아 방법들은 단단한 껍질을 벗겨 내고 속씨를 불려 발아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틔운 레몬나무는 연말 기금 마련 장을 열어 세 그루를 팔았고, 씨앗 틔우기부터 분갈이까지 정성을 다한 현아랑 유민이가 한 그루씩 데려갔다. 졸업한 유민이는 지난주 반 모임에 와서 “큰 화분에 옮겨 주었더니, 선생님 나무들보다 더 크고 굵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말에 나도 미뤄 뒀던 레몬나무들을 대단히 큰 화분으로 옮겨 주었다. 이제 3, 4년은 분갈이 없이 키우면 되겠다. 어떠신가, 3년 뒤 나의 레몬나무들 소식이 궁금하지 않은가!
▲레몬 씨앗을 발아시키려면 껍질을 벗겨야 한다.
▲레몬 싹
▲열다섯 그루를 성공시켜 이리저리 나누고 팔았다.
▲레몬나무를 한 그루씩 옮겨 심었던 유민이는 올해 레몬나무 소식을 들려 주었다.
▲1년 내내 지름 13센티 화분서 키우다가
▲넓은 집으로 이사시켜 주었다.
텃밭을 하면서 늘 마주하는 생명의 탄생과 쇠락 사이클은 나를 겸허하게 한다. 본연의 싱그러움, 독창성. 어머니 자연의 돌봄 안에서 드디어 발휘되는 찬란함과 다양성은 농을 기반으로 살던 시절의 이들이 자연을 숭배할 만큼 겸손한 이유를 깨닫게 한다. 쇠락의 풍경을 걷어내고 생명을 심고 늘리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선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전달한다. 하지만 어느 사이인가 반복되는 농의 패턴이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팔다리를 고단하게 하는 노동의 강도도 그렇지만, 걷어 내고 뽑아내는 행위의 불편함들이 컸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로 우회를 시킬 수 있지만, 여전히 필요 없으면 걷어 내는 풀들부터 나를 두렵게 하는 더듬이 달린 생명들까지 ‘저걸 죽여, 말어?’ ‘이걸 남길까 없앨까’를 결정하는 권력의 자리가 계속 불편하다. 절대 권력의 지팡이(호미)를 휘두르는 순간 나는 생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더 많은 생명을 사그라뜨리고 있다는 의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것은 농의 비극일까 필연일까. 이 비극을 감추기 위해서 기후 위기니 생물 다양성이니, 사막화 방지니 하며 ‘교육’이라는 ‘약’을 타고 있지만, 나는 플라스틱과 비닐을 틈틈이 써 대고, 봄가을마다 가축 분뇨 퇴비를 흙에 섞고, 가뭄에도 수도를 콸콸 틀어 온 밭을 흠뻑 적셔 대고 있으니 이건 교육농이라는 이름의 인류세의 유희가 아닌가, 자조가 들기도 한다.
A4 용지 1장을 생산하는 데 물은 10L가 소비되고, 2.88g의 탄소를 발생시킨다는데, 하루 10장을 쓴다면 1년 36,500L를 소비하고 탄소 1kg을 배출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는 30년 된 원목 1/3그루를 베어 내는 셈이란다. 이건 A4 기준이지, 각종 택배며 상품 포장, 종이컵, 종이봉투, 하다못해 영수증이나 휴지, 종이 타월을 생각하면 1년에 나무 3그루는 족히 베어 내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참 고상하고 평온하게 기후 위기에 대한 참회를 늘어 놓는 이면에는 모르는 척 기후 위기를 가속화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나는 전세계 1인당 연평균 종이 사용량보다 3배를 쓴단다. 이런 사실을 이제껏 모르고 있었겠지만, 이제 원죄를 알았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단순하다. 자신이 쓴 만큼 나무를 심는 것. 〈자기 나이만큼 나무를 심어라〉는 캠페인처럼 이제 우리는 나무도 심어야 한다. 전쟁 직후의 산림 녹화처럼 절실하게. 실제로 나무가 있는 텃밭은 미기후 생성으로 인해 순환 사이클이 잘 발달하여 작물이 더 건강하고 생산성이 높아진단다. 이 사실을 알기 훨씬 전 운 좋게도 나는 나무가 있는 텃밭을 경험한 적이 있다. 30년된 나무 두 그루가 깊이 뿌리 내린 그늘 자리였던 그곳에서의 풍경을 되짚어 본다. 한여름 그늘이 나의 작물들을 가뭄으로부터 지켜 주고, 더위에 일을 해야 하는 나를 도왔다. 저학년 하교 지도를 마치고 한창 뜨거운 그곳은 두 그루의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작물이 늘어져 있지 않았다. 일하기 좋은 그늘 아래라, 오후 2시 무렵, 그 이글거리는 시각에 하교 지도 이후 휴식 겸 텃밭에 물을 주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자꾸만 발걸음을 돌린다(지금 학교 텃밭은 오후 3시에나 건물 그늘이 진다. 뜨겁지는 않지만 나무 그늘의 청량함과는 다르다).
배추가 한창 차오르는 시월 무렵부터는 나무 두 그루가 떨구는 풍성한 낙엽들이 밭을 빠른 속도로 풍요의 땅으로 바꾸어 주었다. 추위로부터도 막아 주고(누군가 내다 버린 화초를 낙엽으로 묻어 둔 적이 있는데, 겨울을 나고 봄에 그대로 꽃을 피워 내는 기적을 보았다) 흙 속의 생명도 지켜 주었다. 보도블록을 걷어 낸 그 쓰레기 돌밭이 3년도 되지 않아 버섯이 피고 지렁이 똥무덤 천지였다. 지금 텃밭처럼 톱밥을 덮거나 왕겨를 덮거나 따위를 일절 하지 않았던 곳이다. 꽃나무 두 그루는 그렇게 나를 돕고 나는 꽃나무를 도왔다. 혹시 그 나무가 열매가 열리는 과실나무였다면? 추억과 배움은 더 풍성했을 것이다. 뒤늦은 배움이지만 나무도 먹여 살리고, 작물도 먹여 살리면서 숲밭을 만들어야 텃밭으로 기후 위기에 맞설 준비를 좀 한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게다. 나무가 영양분을 다 빼앗아 간다는 말은 틀렸다. 잡초가 영양분을 다 빼앗아 간다는 말도 틀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