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농]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야 한다 (지문희)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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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농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야 한다


지문희 경기 저현고


지난달, 교육농 원고를 고민할 때 떠오른 시가 있었다. 예전부터 문득문득 떠오르는 박남준 시인의 〈흰 부추꽃으로〉. 시 한 편만 소개하기는 어설퍼 여러 시들을 찾았다. 김선우 〈빌려준 몸 한 채〉, 기형도 〈위험한 가계〉, 나희덕 〈뿌리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식물들의 침묵〉 등. 이 시들을 텃밭, 생태로 엮을 생각이었으나 결국 시작도 못했다.


그러다 오늘, 다시 〈흰 부추꽃으로〉가 떠올랐다. 이 시를 처음 만난 건 언제였더라? 2017년 안산,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고1을 담당하게 됐다. 학기 전체를 대학과 삶, 우리 삶 속의 시, 인권과 나, 문학과 세계 등으로 재구성해 각 주제별로 한 달 이상 밀도 있게 수업했다. 학생들과 신나게 수업하던 시기. 그때 동료가 만든 글쓰기 활동지 초안에서 〈흰 부추꽃으로〉를 만났다.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첫 구절에서 이미 심장이 쿵하고 코끝이 찡했다. 나의 연약함을 이해해 주는 단단한 사람을 만난 기분. 학교 텃밭을 시작하기 전이라 부추꽃을 본 적은 없었다. 꼿꼿한 꽃대 위 환하게 돋아나는 부추꽃을 본 적은 없었지만, 삶의 상처가 가벼운 재로 다시 하얀 부추꽃으로 생을 이어가고 마침내 찬란해지기를 바라는 화자의 목소리가 위로가 됐다.


 



흰 부추꽃으로

                                             박남준


몸이 서툴다 사는 일이 늘 그렇다

(이하 생략)




우리는 이 시를 루시드 폴의 〈아직, 있다〉와 엮기로 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안산의 4월은 기억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학생들 각자의 상처와 세월호가 남긴 상처, 무엇이든 자유롭게 풀어내 학생들의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랐다. 그 이후 부추꽃을 볼 때마다 상처의 의미, 세월호, 재생의 희망, 2017년의 동료들이 겹쳐 보였다. 하지만 오늘 이 시를 다시 참사와 함께 생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분명 놀랐고 안타까웠으나 일부러 뉴스와 영상을 멀리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마음이 가라앉고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이 위선이라 여겼을까? 애도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는 걸 열심히 학생들에게 알려준 나지만, 순수한 애도가 아니면 잘못됐다고 여기는 오만한 내가 여전히 있는 건가?


그러다 고인들 대다수가 세월호 사건을 학생 때 접한 20대임을 알게 되었다. 한 세대에서 벌어진 두 번의 참사. 마음속 어딘가 다시 무너졌다. 내 앞에 있는 학생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할 수 있을까? ‘세상은 바뀌지 않아, 그건 운명이야’라고 단정하는 차가운 폭력의 시간은 지나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고인들을 탓하는 날 선 목소리들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탈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평온한 세계. 이 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다시 환한 부추꽃으로 태어날 테니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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