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농독서회
생태시 이야기
정미숙 서울청구초
지난 《나의 위대한 생태 텃밭》 독서회 때 정미숙 님은 아이들과 시를 통해 생태를 이야기하고 함께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는 자신의 교육 활동 사례를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진행했는지 참가자들이 궁금해하며 다음 독서회 때는 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그렇게 해서 마련된 11월 22일 독서회 때 이야기 대강이다. - 편집자 주 |
대강 네 가지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 시의 힘
- 왜 생태시였나
- 생태시 교육 방법
- 좋은 점
생태시 계기, 시의 힘
제가 육아휴직을 하며, 저희 아이들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그때 아마(아빠와 엄마)들 소모임, 시엄니(시 읽는 엄마들을 니들이 알아?)를 만들었어요. 1년 가까이 했는데 이때 시 교육을 생각하게 됐어요. 시의 힘을 경험했거든요. 모임할 때마다 시 한 편씩 외워오기로 했는데, 벌금 같은 건 없었지만 자존심은 걸려 있었죠. 외우다 보니 진심으로 도전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인가 되게 힘든 하루였어요. 하지만 다음 날 시엄니 모임을 가야 돼서 시를 외워야 했죠. 근데 시를 외우면서, 그날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것들이 낫는 듯했어요. 시에는 정말 치유하는 힘이 있구나 느꼈어요.
(이때 외웠던 시가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이었습니다.)
이런 경험도 있어요. 어떤 아마가 김수영의 〈죄와 벌〉이라는 시를 이야기해 주었어요. 자기 아내를 길거리에서 우산대로 때렸다는 이 시 내용에 대해 다들 격해졌어요. 자기 남편들 욕을 했죠. 시 한 편으로 삶을 나누면서 뭔가 연결이 되는 듯한, 소통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시가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는 어떤 매개가 된다는 게 좀 신기했었죠. 그 아마들과는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요.
다음은 서경식 《시의 힘》의 일부예요. 첫 페이지 첫 줄 “얄따란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무게에 절절맨다”가 강하게 와 닿았어요.
얄따란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무게에 절절맨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사고라고 하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사건의 무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황야를 헤매는 우리들 나그넷길 /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미나미소마, 오다카 땅에서」), “그것은 신의 분노일까. 혹은 우리의 죄일까?”(「이날, 오다카에서」)……. 이렇게 많은 시구가 의문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지 7개월 반이 지났을 때, 얼마 전 서거하신 미술품 컬렉터 가와노 야스오 씨에게서 사이토 미쓰구씨를 소개받았다. 그는 오다카 상업고등학교의 선생님이자 시인이라고 했다. 말수 적은 시인은 근무하던 학교의 여학생이 바다로 떠내려갔다가 이튿날 해변으로 밀려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마치 부끄럽다는 듯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와 같은 사건을 이런 태도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었다.
“쓰나미에 휩쓸려. 한밤중의 바다를 열다섯 시간, 떠다녔던 열여섯 살 소녀의 / 암야에 떠밀려가는 바다의 무명(無明)을 생각한다. 바다의 공포를 생각한다.”(「이날 오다카에서」)
- 《시의 힘》, 서경식
먼저 말씀드렸던 두 가지, 소통과 치유가 내 개인적 경험이었다면 이분은 어떤 시의 힘을 얘기하는 걸까. 110쪽과 154쪽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이렇게 패자가 계속 움직이게끔 살아가게끔 하는 게 시가 아니냐” 그러면서 시는 고통받는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를 해야 된다고 하죠. 저항의 의미에서 시가 갖고 있는 걸 얘기하신 것 같아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 이것이 세 번째로 꼽을 시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우학교 교장 선생님 강의를 듣게 됐는데 우리 사회의 슬픔, 우리 세계의 슬픔 다섯 가지를 얘기하시더라고요.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 ▲교육 격차 ▲기후, 환경, 생태계 위기 ▲공동체의 해체와 불안 ▲기술 혁명과 정보 사회. 이래서 우리 아이들은 슬픔 속에 놓여 있다고요. 그래서 교사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그런 강의 내용이었는데 저는 시의 힘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이 다섯 가지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구나, 이런 불합리한 세계 속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시인들이 노래해야 하는 거구나 나름 정리를 할 수가 있었어요.
생태시란?
왜 하필 생태시였냐 말씀드릴게요.
처음에는 윤동주 동시 동요로 1학년 한글교육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코로나를 만나고 2021년에 1학년 아이들을 만났어요. 애들이 계속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체험 학습 등 아무 데도 못 가던 때 윤동주 동시 동요를 확장해서 생태시로 하는 한글 교육을 하기로 했죠. 엄마들이 특히 좋아했어요. 이듬해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1학년 생태시 몇 편과 6학년에 맞는 생태시를 골라 올해 생태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생태시를 고를 때 그 기준이 모호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생태시 정의를 찾아보니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시”로서 “인간은 물론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생물학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다양성을 옹호하며 공존의 법칙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는다”(출처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라고 풀어내고 있어요. 이해는 되죠. 하지만 막상 시를 접할 때는 모호해지는 부분이 계속 생겼어요.
김종철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에서 “시적 사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좋은 시는 다 생명을 다룬다”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 부분을 읽으며 빛이 보였어요. 좋은 시는 생명을 다룬다, 생명력이 느껴지면 좋은 시라는데 굳이 생태시 소재들이 살아있는 생물인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지, 진짜 생태시인지 그런 것 구분하기 보단, ‘생명력이 느껴지면 그냥 생태시로 구분하자’ 나름 나만의 정의가 생겼어요. 그래서 생명력이 느껴지거나 생명을 다루고 있으면 생태시로 분류해 시 모음집에 넣었어요.
생태시 교육 방법
제가 만든 생태시 모음집이에요. 오른쪽 것은 작년에 만든 1학년용, 제 딸이 표지를 그려줬어요. 왼쪽 것은 올해 만든 6학년용인데, 저희 학년부장님이 6학년 전체가 다 했으면 좋겠다 하시며, 표지를 직접 그려주셨어요. 올해는 6학년 전체가 생태시 교육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공동육아 때 시모임 얘기하며, 모임 이름이 ‘시엄니’였다고 했잖아요? 저는 이름 짓는 걸 좋아해요. 재밌더라고요. 오래 고민해, 생태시 자료집 이름을 ‘생그래’라고 지었어요. 생, 생태시를 외워요. 그, 그림을 그려요. 래, 내 느낌과 생각을 말해요.
다음은 6학년 생그래 책의 목차예요.

윤동주부터 미야자와 겐지까지 55편으로 구성했어요.

생태시를 외워요. 그림을 그려요. 내 생각과 느낌을 글로 써요, 친구들과 함께해요.
이 틀은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아래 사진은 이 시를 외우고 있는 장면입니다.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땅콩 삶으면서 그 옆에서 시를 외우게 했죠.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잘 외우지 않는, 어려운 시들만 도전해요. 백석의 준치가시, 수라, 메리 올리버의 허리케인,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등. 이런 친구들이 꼭 있어요. 실패해도 긴 시만 외우는.

시 외우기 발표회는 월요일에 해요. 주말에는 시와 함께 보내라고요. 외워왔을 때 짧은 시든 긴 시든 똑같이 칭찬해요.
꼭 참여하지 않아도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외우는 아이들한테는 사탕, 젤리나 스티커를 주는데, ‘시는 달콤한 거야’라고 좀 느끼라고. 때론 학급 전체 보상도 해요. 저도 가끔 외워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애들 앞에서.
한번은 안도현의 〈애기똥풀〉이라는 시를 아이들 앞에서 외웠는데 실패했어요. 애들은 선생님이 실패하면 더 좋아하잖아요. 다음은 이런 경우를 담은 글과 그림이에요.

생그래 활동책을 1년 꾸준히 하다 보면 시들시들해질 때가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독자를 만들어주기로 했어요. 자기가 쓴 글을 친구들이 읽고 짧게 글을 써주는 ‘친구들과 함께해요’. 처음에는 의미를 크게 생각지 않고 만든 칸이었어요. 시에 대한 그림과 글에 대해 친구들이 품앗이처럼 서로 짧게 한 두 문장 글을 써줘요. 그렇게 하니 학생들이 대충대충 안 하더라고요. 내가 한 걸 친구들한테 보여 줘야 하니까.
이 연수를 준비하면서 궁금해졌어요. 과연 우리 반 애들은 생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무기명 설문을 했어요.

“생그래를 할 때, 어느 부분이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니?” 저는 그림 부분일 줄 알았거든요. 가장 쉬우니까. 그런데 애들은 ‘친구들과 함께 해요’가 가장 좋다는 거예요. 내 생각과 느낌을 친구들이 읽어준다는 행복감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 좀 더 친해지는 느낌이다, 이래요. 자기가 그리고 쓴 것을 친구들이 읽고 몇 줄 적어주는 게 아이들한테는 의미가 있구나.
두 번째. 우리 반 온라인 학급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이들 작품을 올려줘요.

교사가 좀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올려서 아이들 작품에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하는 거죠.
다음은 메리 올리버의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를 함께 나눈 한 아이의 그림과 글이에요. 온라인 학급에 올린 거예요. 한번 볼까요.

이렇게 아이들의 그림을 글과 함께 올려주면, 학생들이 보면서 자기 작품이 출판되는 듯한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느끼지 않을까. 나중에 모아서 학급문집에도 넣어줄 예정이에요.

저는 정말 가끔 아이들 앞에서 시를 외웁니다. 하지만 할 때는 엄청나게 생색을 내죠. 선생님도 했다 하면서. 한 학기 한두 번 하나요. 근데 어른이 될수록 참 생각이 딱딱해진다는 걸 느끼는 게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려 하면 생각이 안 나요. 뭘 그려야 되지 싶어요. 그래서 그냥 꽃을 그리게 돼요. 애들은 상상력이 유연한데 저는 나이가 먹을수록 참 머리가 안 굴러가는구나 싶죠.

생그래 활동을 학교 행사로도 했어요. 첫 번째 사진은 지난 4월 6학년 과학 행사 때예요. 이때 생태시 외우기를 종목으로 넣었거든요. 생태 환경도 과학에 속하니까. 6학년 각반 학생들이 우리 반에 와서 시를 외웠어요. 왜 생태시 외우기를 선택했는지 물어보니, 가장 쉬울 것 같았대요. 하지만 시를 끝까지 외우는데는 대부분 다 실패했어요. 시 외우는 게 쉬운게 아니구나 경험했겠죠. 시간을 좀 더 주고, 조금이라도 외웠으면 다 상을 주긴 했어요.
그 아래는 생그래 전시회. 6학년 텃밭 음악회 때, 각반 미술 작품도 전시해야 했는데, 우리 반은 뭘 전시할까 고민하다, ‘가장 우리 반다운 걸 하자’ 생각하고 만든 거예요. 자기가 했던 생그래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다시 한번 그림을 정성스레 그리고, 그 아래 QR을 만들어 붙였어요. 스마트폰으로 QR을 인식하면, 학생이 자기 그림과 글을 설명하는 영상으로 연결돼요.
다음은 작년에 했던 1학년 생그래입니다. 며칠 전에 다시 수정했어요. 뺄 건 빼고 새로 넣을 건 넣고. 애들이 정말 관심 없어 하는 시가 있더라고요. 생태 동시를 감수성별로 다섯 가지로 분류해 맨 처음 칸에 표시했어요. 점자 같아 보이죠?(○ 부분)


이건 제가 분류한 건 아니고, 여러 연구자들이 분류한 기준을 갖다 쓴 거예요.
6학년 양식과 다른 건 ‘생태동시를 위워요’ 부분이에요. 스스로 세 번 읽고, 읽을 때마다 잎사귀에 색칠을 하고, 다 읽으면 친구에게 가서 한 번 읽어주죠. 그럼 친구가 내 잎사귀에 색을 칠해줘요.
시 외우기 발표회 생그래 활동 + 한글 교육
1학년도 6학년처럼 외우기 발표도 똑같이 했고, 생그래 활동도 했어요. 거기에 한글 교육까지 더했어요. ‘동시 짝꿍과 한글을 배워요’ 활동지를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했는데, 할 때마다 새로운 짝을 정해 줬어요.

두 명씩 짝이 되면 서로 생태동시를 각각 한 편씩 고르는 거예요. 스스로 세 번씩 읽고 짝꿍에게 한 번 읽어줍니다. 그리고 생태동시에 나오는 낱말들을 각자 골라 활동지에 씁니다. 10칸 공책에 낱말들을 다시 쓰며 공부해요. 그러고 나면, 친구가 선생님이 되어 문제를 내주는 거예요. 친구가 선생님 역할을 하는 거죠. 1학년 2학기가 되면, 우리 반은 왜 받아쓰기를 안 하지? 엄마들 얘기가 들려올 때잖아요. 그래서 나름 생각해서 만든 거였어요.

이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아이들한테 이해시키기가 쉽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걸 내가 왜 했나 싶었는데, 두 번째부터는 조금 쉬워졌어요. 그리고 세 번째부터는 아주 수월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가만히 돌아다니기만 하면 됐죠.

위 사진 보시면 다 100점이에요. 아이들은 틀려도 다 맞았다고 동그라미를 쳐요. 왼쪽 파란 동그라미 부분을 보세요. ‘벌레’를 ‘벌래’라고 썼는데, 맞았다고 동그라미 쳤어요. 그 아래 느낀 점 쓰기 부분을 보면 “진딧물 할 때 딧 할 때 쌍시옷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시옷이어서 그걸 배웠어요”라고 적었네요. 이 부분이 좋아 사진을 찍어놨어요. 오른쪽에는 “공부가 힘들었다”고 써 놓았어요. 이 아인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였거든요. 학원도 가장 많이 다니고. 근데 선생님이 자꾸 이런 걸 시키니까 싫은 거예요. 그냥 편하게 받아쓰기를 봤으면 좋겠는데. 저는 이렇게 해 봤지만 이 방법을 100% 추천 드리지는 않아요. 단점도 많은 것 같아요.
생태시 교육 좋은 점
좋은 점을 말하라면,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특히 6학년 같은 경우는 자기 얘기를 잘 안 하잖아요. 아이들은 시를 읽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저는 또 그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들의 삶을 볼 수가 있는 거예요. 생그래를 보면서 ‘이 아이한테 이런 면이 있었네’ 하는 거죠.
저는 우리 반 일기 숙제를 안 내주거든요. 대신 학교에서 생그래를 해요. 생그래를 하면서 아이들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의 시는 1학년 생그래에 나오는 윤동주의 병아리라는 시예요. “뾰뾰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꺽꺽 우냐 좀 기다려 엄마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으로 다 들어갔지요” 이 시를 가지고 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요. “우리 보은 할아버지 집에도 병아리가 있었어요. 지금은 없지만 보고 싶습니다.” 옛날얘기를 꺼내 썼더라고요. 읽다가 마음이 따뜻해져서 사진을 찍어 두었어요.
〈쑥〉이라는 시는 1학년에도 넣었고 6학년에도 넣었어요.

글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학원에 많이 다니는 아이인데, 항상 방학처럼 보내는 쑥이 부러워 다음 생에는 쑥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썼네요.

큐브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에요. 대부분의 그림에 큐브가 나와요.

호주에서 온 친구인데 6학년인데도 한글을 많이 틀려요. 근데 자기 경험을 굉장히 많이 표현해요. 생그래에.
함민복의 〈흙〉이라는 시를 가지고는 6학년 아이가 이렇게 그림을 그렸어요.


아빠랑 모래사장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으로 썼는데, 이 아인 지금 아빠랑 떨어져 있어요. 그런데 아빠 얘기를 자주 쓰더라고요. 아련했어요.

두 번째 좋은 점은 말랑말랑한 힘. 아이들의 그림이나 글을 볼 때, 뚱딴지같이 여겨질 때가 있어요. 저의 고정관념 때문이겠죠. 아이들은 유연하고 창의적이에요. 그래서 다양하게 해석해요. 그런 글을 읽을 때 참 재밌어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두루두루 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가 있어요. 함민복의 〈물고기 눈동자〉라는 아주 짧은 한 줄 시거든요.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되게 강렬했어요. 이거 딱이다. 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외우겠구나 싶어서 넣었는데, 역시나 많이 선택해요. 1학년, 6학년 모두. 그런데 아이러니 한 건 가장 어려웠던 시가 이 시였다더군요.

위는 1학년 아이 작품이에요. 보는데 제가 힐링이 되었습니다. 잘 그렸죠?
아래는 6학년 아이 작품인데, 눈을 조그마한 물고기로 표현해서 약육강식을 표현한 것 같아요. 이 친구는 항상 이런 내용의 글을 많이 써요. 기-승-전-양육강식.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다라고요. 이것도 이렇게 해석을 했더라고요.


이오덕의 〈앵두〉라는 시가 있죠. 몰랑몰랑하지만 야무지고 단단한 진실을 앵두 씨에 비유한. 근데 제가 올해 되게 충격이었던 게, 이 시를 읽고 난 아이가 이렇게 표현한 그림이에요.

아이들은 ‘그 야무진 진실’이 사람의 ‘이중인격’이래요. 내면에 이런 악마 같은 게 있다고. 이 시를 이렇게도 해석하는구나 신기했어요. 근데 이 아이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이 아이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그림은 무난하죠. 그런데 글은 이렇게 썼어요.

그 단단한 씨는 2학기가 되니 나오는 아이들의 막말과 비속어래요. 참 다양하게 해석을 하는구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요.
세 번째 생태시의 힘. 아이들 설문할 때 한 문장씩 적어보라고 했어요. 시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제가 시의 힘에 대해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한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낸 게 아닐까.

이 중에 “어떠한 시를 외울 때 시가 갖고 있는 힘은 용기이다”, 이 말이 저는 멋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실 앞에 나와 친구들 앞에서 시를 읊어야 하니 ‘용기’가 필요하다고 아이가 적었겠구나 싶었어요.
아이들한테 “생그래 시 외우기 발표회를 어느 정도 하는 게 좋을까?”도 물어봤어요.

무기명 설문이니까 분명히 한 5명 정도는 ‘안 하고 싶다’라는 솔직한 답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명도 안 나왔어요. 분명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비꽃의 봄〉(강기원)이라는 시는 1학년, 6학년 생그래에 모두 넣은 시예요. 아래 6학년 글은 6학년답습니다.


그런데 다음은 1학년 아이가 그리고 쓴 거예요. 제가 되게 많이 감동을 받았죠. 1학년 아이가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하지?

“목숨이라는 것은 아주 귀하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많다.” 놀라웠어요.
마무리하겠습니다.

서경식은 ‘시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했어요. 제가 생태시 교육을 하는 것도 ‘잘 보이지 않은 것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연약하고 작은 것들을 좀 잘 바라봐’라는 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도 나름 저항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을 움직이는 힘,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끊임없이 살아가게 만드는 그러한 힘을 보여주며 말이죠. 여기까지입니다._끝
교육농독서회
생태시 이야기
정미숙 서울청구초
지난 《나의 위대한 생태 텃밭》 독서회 때 정미숙 님은 아이들과 시를 통해 생태를 이야기하고 함께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는 자신의 교육 활동 사례를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진행했는지 참가자들이 궁금해하며 다음 독서회 때는 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은 그렇게 해서 마련된 11월 22일 독서회 때 이야기 대강이다. - 편집자 주
대강 네 가지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 시의 힘
- 왜 생태시였나
- 생태시 교육 방법
- 좋은 점
생태시 계기, 시의 힘
제가 육아휴직을 하며, 저희 아이들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그때 아마(아빠와 엄마)들 소모임, 시엄니(시 읽는 엄마들을 니들이 알아?)를 만들었어요. 1년 가까이 했는데 이때 시 교육을 생각하게 됐어요. 시의 힘을 경험했거든요. 모임할 때마다 시 한 편씩 외워오기로 했는데, 벌금 같은 건 없었지만 자존심은 걸려 있었죠. 외우다 보니 진심으로 도전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인가 되게 힘든 하루였어요. 하지만 다음 날 시엄니 모임을 가야 돼서 시를 외워야 했죠. 근데 시를 외우면서, 그날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것들이 낫는 듯했어요. 시에는 정말 치유하는 힘이 있구나 느꼈어요.
(이때 외웠던 시가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이었습니다.)
이런 경험도 있어요. 어떤 아마가 김수영의 〈죄와 벌〉이라는 시를 이야기해 주었어요. 자기 아내를 길거리에서 우산대로 때렸다는 이 시 내용에 대해 다들 격해졌어요. 자기 남편들 욕을 했죠. 시 한 편으로 삶을 나누면서 뭔가 연결이 되는 듯한, 소통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시가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는 어떤 매개가 된다는 게 좀 신기했었죠. 그 아마들과는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요.
다음은 서경식 《시의 힘》의 일부예요. 첫 페이지 첫 줄 “얄따란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무게에 절절맨다”가 강하게 와 닿았어요.
얄따란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무게에 절절맨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사고라고 하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사건의 무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황야를 헤매는 우리들 나그넷길 / 도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미나미소마, 오다카 땅에서」), “그것은 신의 분노일까. 혹은 우리의 죄일까?”(「이날, 오다카에서」)……. 이렇게 많은 시구가 의문형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지 7개월 반이 지났을 때, 얼마 전 서거하신 미술품 컬렉터 가와노 야스오 씨에게서 사이토 미쓰구씨를 소개받았다. 그는 오다카 상업고등학교의 선생님이자 시인이라고 했다. 말수 적은 시인은 근무하던 학교의 여학생이 바다로 떠내려갔다가 이튿날 해변으로 밀려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마치 부끄럽다는 듯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와 같은 사건을 이런 태도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이었다.
“쓰나미에 휩쓸려. 한밤중의 바다를 열다섯 시간, 떠다녔던 열여섯 살 소녀의 / 암야에 떠밀려가는 바다의 무명(無明)을 생각한다. 바다의 공포를 생각한다.”(「이날 오다카에서」)
- 《시의 힘》, 서경식
먼저 말씀드렸던 두 가지, 소통과 치유가 내 개인적 경험이었다면 이분은 어떤 시의 힘을 얘기하는 걸까. 110쪽과 154쪽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이렇게 패자가 계속 움직이게끔 살아가게끔 하는 게 시가 아니냐” 그러면서 시는 고통받는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를 해야 된다고 하죠. 저항의 의미에서 시가 갖고 있는 걸 얘기하신 것 같아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 이것이 세 번째로 꼽을 시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우학교 교장 선생님 강의를 듣게 됐는데 우리 사회의 슬픔, 우리 세계의 슬픔 다섯 가지를 얘기하시더라고요.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 ▲교육 격차 ▲기후, 환경, 생태계 위기 ▲공동체의 해체와 불안 ▲기술 혁명과 정보 사회. 이래서 우리 아이들은 슬픔 속에 놓여 있다고요. 그래서 교사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 그런 강의 내용이었는데 저는 시의 힘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이 다섯 가지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구나, 이런 불합리한 세계 속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시인들이 노래해야 하는 거구나 나름 정리를 할 수가 있었어요.
생태시란?
왜 하필 생태시였냐 말씀드릴게요.
처음에는 윤동주 동시 동요로 1학년 한글교육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코로나를 만나고 2021년에 1학년 아이들을 만났어요. 애들이 계속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체험 학습 등 아무 데도 못 가던 때 윤동주 동시 동요를 확장해서 생태시로 하는 한글 교육을 하기로 했죠. 엄마들이 특히 좋아했어요. 이듬해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1학년 생태시 몇 편과 6학년에 맞는 생태시를 골라 올해 생태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생태시를 고를 때 그 기준이 모호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생태시 정의를 찾아보니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지향하는 생태학적 세계관을 담고 있는 시”로서 “인간은 물론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생물학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다양성을 옹호하며 공존의 법칙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는다”(출처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라고 풀어내고 있어요. 이해는 되죠. 하지만 막상 시를 접할 때는 모호해지는 부분이 계속 생겼어요.
김종철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에서 “시적 사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좋은 시는 다 생명을 다룬다”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 부분을 읽으며 빛이 보였어요. 좋은 시는 생명을 다룬다, 생명력이 느껴지면 좋은 시라는데 굳이 생태시 소재들이 살아있는 생물인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지, 진짜 생태시인지 그런 것 구분하기 보단, ‘생명력이 느껴지면 그냥 생태시로 구분하자’ 나름 나만의 정의가 생겼어요. 그래서 생명력이 느껴지거나 생명을 다루고 있으면 생태시로 분류해 시 모음집에 넣었어요.
생태시 교육 방법
제가 만든 생태시 모음집이에요. 오른쪽 것은 작년에 만든 1학년용, 제 딸이 표지를 그려줬어요. 왼쪽 것은 올해 만든 6학년용인데, 저희 학년부장님이 6학년 전체가 다 했으면 좋겠다 하시며, 표지를 직접 그려주셨어요. 올해는 6학년 전체가 생태시 교육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공동육아 때 시모임 얘기하며, 모임 이름이 ‘시엄니’였다고 했잖아요? 저는 이름 짓는 걸 좋아해요. 재밌더라고요. 오래 고민해, 생태시 자료집 이름을 ‘생그래’라고 지었어요. 생, 생태시를 외워요. 그, 그림을 그려요. 래, 내 느낌과 생각을 말해요.
다음은 6학년 생그래 책의 목차예요.
윤동주부터 미야자와 겐지까지 55편으로 구성했어요.
생태시를 외워요. 그림을 그려요. 내 생각과 느낌을 글로 써요, 친구들과 함께해요.
이 틀은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아래 사진은 이 시를 외우고 있는 장면입니다. 학교 텃밭에서 수확한 땅콩 삶으면서 그 옆에서 시를 외우게 했죠.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잘 외우지 않는, 어려운 시들만 도전해요. 백석의 준치가시, 수라, 메리 올리버의 허리케인,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 등. 이런 친구들이 꼭 있어요. 실패해도 긴 시만 외우는.
시 외우기 발표회는 월요일에 해요. 주말에는 시와 함께 보내라고요. 외워왔을 때 짧은 시든 긴 시든 똑같이 칭찬해요.
꼭 참여하지 않아도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외우는 아이들한테는 사탕, 젤리나 스티커를 주는데, ‘시는 달콤한 거야’라고 좀 느끼라고. 때론 학급 전체 보상도 해요. 저도 가끔 외워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애들 앞에서.
한번은 안도현의 〈애기똥풀〉이라는 시를 아이들 앞에서 외웠는데 실패했어요. 애들은 선생님이 실패하면 더 좋아하잖아요. 다음은 이런 경우를 담은 글과 그림이에요.
생그래 활동책을 1년 꾸준히 하다 보면 시들시들해질 때가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독자를 만들어주기로 했어요. 자기가 쓴 글을 친구들이 읽고 짧게 글을 써주는 ‘친구들과 함께해요’. 처음에는 의미를 크게 생각지 않고 만든 칸이었어요. 시에 대한 그림과 글에 대해 친구들이 품앗이처럼 서로 짧게 한 두 문장 글을 써줘요. 그렇게 하니 학생들이 대충대충 안 하더라고요. 내가 한 걸 친구들한테 보여 줘야 하니까.
이 연수를 준비하면서 궁금해졌어요. 과연 우리 반 애들은 생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무기명 설문을 했어요.
“생그래를 할 때, 어느 부분이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니?” 저는 그림 부분일 줄 알았거든요. 가장 쉬우니까. 그런데 애들은 ‘친구들과 함께 해요’가 가장 좋다는 거예요. 내 생각과 느낌을 친구들이 읽어준다는 행복감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 좀 더 친해지는 느낌이다, 이래요. 자기가 그리고 쓴 것을 친구들이 읽고 몇 줄 적어주는 게 아이들한테는 의미가 있구나.
두 번째. 우리 반 온라인 학급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이들 작품을 올려줘요.
교사가 좀 수고스럽기는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꼭 올려서 아이들 작품에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하는 거죠.
다음은 메리 올리버의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를 함께 나눈 한 아이의 그림과 글이에요. 온라인 학급에 올린 거예요. 한번 볼까요.
이렇게 아이들의 그림을 글과 함께 올려주면, 학생들이 보면서 자기 작품이 출판되는 듯한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느끼지 않을까. 나중에 모아서 학급문집에도 넣어줄 예정이에요.
저는 정말 가끔 아이들 앞에서 시를 외웁니다. 하지만 할 때는 엄청나게 생색을 내죠. 선생님도 했다 하면서. 한 학기 한두 번 하나요. 근데 어른이 될수록 참 생각이 딱딱해진다는 걸 느끼는 게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려 하면 생각이 안 나요. 뭘 그려야 되지 싶어요. 그래서 그냥 꽃을 그리게 돼요. 애들은 상상력이 유연한데 저는 나이가 먹을수록 참 머리가 안 굴러가는구나 싶죠.
생그래 활동을 학교 행사로도 했어요. 첫 번째 사진은 지난 4월 6학년 과학 행사 때예요. 이때 생태시 외우기를 종목으로 넣었거든요. 생태 환경도 과학에 속하니까. 6학년 각반 학생들이 우리 반에 와서 시를 외웠어요. 왜 생태시 외우기를 선택했는지 물어보니, 가장 쉬울 것 같았대요. 하지만 시를 끝까지 외우는데는 대부분 다 실패했어요. 시 외우는 게 쉬운게 아니구나 경험했겠죠. 시간을 좀 더 주고, 조금이라도 외웠으면 다 상을 주긴 했어요.
그 아래는 생그래 전시회. 6학년 텃밭 음악회 때, 각반 미술 작품도 전시해야 했는데, 우리 반은 뭘 전시할까 고민하다, ‘가장 우리 반다운 걸 하자’ 생각하고 만든 거예요. 자기가 했던 생그래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다시 한번 그림을 정성스레 그리고, 그 아래 QR을 만들어 붙였어요. 스마트폰으로 QR을 인식하면, 학생이 자기 그림과 글을 설명하는 영상으로 연결돼요.
다음은 작년에 했던 1학년 생그래입니다. 며칠 전에 다시 수정했어요. 뺄 건 빼고 새로 넣을 건 넣고. 애들이 정말 관심 없어 하는 시가 있더라고요. 생태 동시를 감수성별로 다섯 가지로 분류해 맨 처음 칸에 표시했어요. 점자 같아 보이죠?(○ 부분)
이건 제가 분류한 건 아니고, 여러 연구자들이 분류한 기준을 갖다 쓴 거예요.
6학년 양식과 다른 건 ‘생태동시를 위워요’ 부분이에요. 스스로 세 번 읽고, 읽을 때마다 잎사귀에 색칠을 하고, 다 읽으면 친구에게 가서 한 번 읽어주죠. 그럼 친구가 내 잎사귀에 색을 칠해줘요.
시 외우기 발표회 생그래 활동 + 한글 교육
1학년도 6학년처럼 외우기 발표도 똑같이 했고, 생그래 활동도 했어요. 거기에 한글 교육까지 더했어요. ‘동시 짝꿍과 한글을 배워요’ 활동지를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했는데, 할 때마다 새로운 짝을 정해 줬어요.
두 명씩 짝이 되면 서로 생태동시를 각각 한 편씩 고르는 거예요. 스스로 세 번씩 읽고 짝꿍에게 한 번 읽어줍니다. 그리고 생태동시에 나오는 낱말들을 각자 골라 활동지에 씁니다. 10칸 공책에 낱말들을 다시 쓰며 공부해요. 그러고 나면, 친구가 선생님이 되어 문제를 내주는 거예요. 친구가 선생님 역할을 하는 거죠. 1학년 2학기가 되면, 우리 반은 왜 받아쓰기를 안 하지? 엄마들 얘기가 들려올 때잖아요. 그래서 나름 생각해서 만든 거였어요.
이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힘들더라고요. 아이들한테 이해시키기가 쉽진 않았어요. 그래서 이걸 내가 왜 했나 싶었는데, 두 번째부터는 조금 쉬워졌어요. 그리고 세 번째부터는 아주 수월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가만히 돌아다니기만 하면 됐죠.
위 사진 보시면 다 100점이에요. 아이들은 틀려도 다 맞았다고 동그라미를 쳐요. 왼쪽 파란 동그라미 부분을 보세요. ‘벌레’를 ‘벌래’라고 썼는데, 맞았다고 동그라미 쳤어요. 그 아래 느낀 점 쓰기 부분을 보면 “진딧물 할 때 딧 할 때 쌍시옷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시옷이어서 그걸 배웠어요”라고 적었네요. 이 부분이 좋아 사진을 찍어놨어요. 오른쪽에는 “공부가 힘들었다”고 써 놓았어요. 이 아인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아이였거든요. 학원도 가장 많이 다니고. 근데 선생님이 자꾸 이런 걸 시키니까 싫은 거예요. 그냥 편하게 받아쓰기를 봤으면 좋겠는데. 저는 이렇게 해 봤지만 이 방법을 100% 추천 드리지는 않아요. 단점도 많은 것 같아요.
생태시 교육 좋은 점
좋은 점을 말하라면,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특히 6학년 같은 경우는 자기 얘기를 잘 안 하잖아요. 아이들은 시를 읽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저는 또 그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들의 삶을 볼 수가 있는 거예요. 생그래를 보면서 ‘이 아이한테 이런 면이 있었네’ 하는 거죠.
저는 우리 반 일기 숙제를 안 내주거든요. 대신 학교에서 생그래를 해요. 생그래를 하면서 아이들 삶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의 시는 1학년 생그래에 나오는 윤동주의 병아리라는 시예요. “뾰뾰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꺽꺽 우냐 좀 기다려 엄마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으로 다 들어갔지요” 이 시를 가지고 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어요. “우리 보은 할아버지 집에도 병아리가 있었어요. 지금은 없지만 보고 싶습니다.” 옛날얘기를 꺼내 썼더라고요. 읽다가 마음이 따뜻해져서 사진을 찍어 두었어요.
〈쑥〉이라는 시는 1학년에도 넣었고 6학년에도 넣었어요.
글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학원에 많이 다니는 아이인데, 항상 방학처럼 보내는 쑥이 부러워 다음 생에는 쑥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썼네요.
큐브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에요. 대부분의 그림에 큐브가 나와요.
호주에서 온 친구인데 6학년인데도 한글을 많이 틀려요. 근데 자기 경험을 굉장히 많이 표현해요. 생그래에.
함민복의 〈흙〉이라는 시를 가지고는 6학년 아이가 이렇게 그림을 그렸어요.
아빠랑 모래사장에서 있었던 일을 추억으로 썼는데, 이 아인 지금 아빠랑 떨어져 있어요. 그런데 아빠 얘기를 자주 쓰더라고요. 아련했어요.
두 번째 좋은 점은 말랑말랑한 힘. 아이들의 그림이나 글을 볼 때, 뚱딴지같이 여겨질 때가 있어요. 저의 고정관념 때문이겠죠. 아이들은 유연하고 창의적이에요. 그래서 다양하게 해석해요. 그런 글을 읽을 때 참 재밌어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두루두루 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가 있어요. 함민복의 〈물고기 눈동자〉라는 아주 짧은 한 줄 시거든요.
이 시를 처음 보았을 때 되게 강렬했어요. 이거 딱이다. 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외우겠구나 싶어서 넣었는데, 역시나 많이 선택해요. 1학년, 6학년 모두. 그런데 아이러니 한 건 가장 어려웠던 시가 이 시였다더군요.
위는 1학년 아이 작품이에요. 보는데 제가 힐링이 되었습니다. 잘 그렸죠?
아래는 6학년 아이 작품인데, 눈을 조그마한 물고기로 표현해서 약육강식을 표현한 것 같아요. 이 친구는 항상 이런 내용의 글을 많이 써요. 기-승-전-양육강식.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다라고요. 이것도 이렇게 해석을 했더라고요.
이오덕의 〈앵두〉라는 시가 있죠. 몰랑몰랑하지만 야무지고 단단한 진실을 앵두 씨에 비유한. 근데 제가 올해 되게 충격이었던 게, 이 시를 읽고 난 아이가 이렇게 표현한 그림이에요.
아이들은 ‘그 야무진 진실’이 사람의 ‘이중인격’이래요. 내면에 이런 악마 같은 게 있다고. 이 시를 이렇게도 해석하는구나 신기했어요. 근데 이 아이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심지어 이 아이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그림은 무난하죠. 그런데 글은 이렇게 썼어요.
그 단단한 씨는 2학기가 되니 나오는 아이들의 막말과 비속어래요. 참 다양하게 해석을 하는구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나요.
세 번째 생태시의 힘. 아이들 설문할 때 한 문장씩 적어보라고 했어요. 시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제가 시의 힘에 대해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한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낸 게 아닐까.
이 중에 “어떠한 시를 외울 때 시가 갖고 있는 힘은 용기이다”, 이 말이 저는 멋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교실 앞에 나와 친구들 앞에서 시를 읊어야 하니 ‘용기’가 필요하다고 아이가 적었겠구나 싶었어요.
아이들한테 “생그래 시 외우기 발표회를 어느 정도 하는 게 좋을까?”도 물어봤어요.
무기명 설문이니까 분명히 한 5명 정도는 ‘안 하고 싶다’라는 솔직한 답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명도 안 나왔어요. 분명히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비꽃의 봄〉(강기원)이라는 시는 1학년, 6학년 생그래에 모두 넣은 시예요. 아래 6학년 글은 6학년답습니다.
그런데 다음은 1학년 아이가 그리고 쓴 거예요. 제가 되게 많이 감동을 받았죠. 1학년 아이가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하지?
“목숨이라는 것은 아주 귀하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많다.” 놀라웠어요.
마무리하겠습니다.
서경식은 ‘시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했어요. 제가 생태시 교육을 하는 것도 ‘잘 보이지 않은 것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연약하고 작은 것들을 좀 잘 바라봐’라는 걸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도 나름 저항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을 움직이는 힘,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끊임없이 살아가게 만드는 그러한 힘을 보여주며 말이죠. 여기까지입니다.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