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6호]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오늘의 교육》 76호 특집은 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공론화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마주하는 어려움과 문제점들을 다루었다. 아울러 현재 정부와 국회 등에서 나오고 있는 대책들의 문제점을 짚어 본다.

기획에선 불평등과 혐오, 기후 위기와 생태계 파괴, 전쟁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들 속에서 교육의 고민과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논하는 글들을 모았다. 물신주의와 능력주의가 만든 ‘전쟁 같은 사회’, 과학이라는 간판을 앞세워 핵 오염수 해양 방류가 이루어지고 전쟁의 위험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교육에선 어떤 변화를 꾀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또 다른 기획인 ‘‘특수’라는 벽장을 넘어 교육 보편의 담론으로’는 교육공동체 벗의 여름 연수 내용을 바탕으로 통합교육의 가능성과 의미를 펼쳐 보인다.




특집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지난 7월,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자살한 사건이 알려진 이후 교육계가 들썩이고 있다. 최근 공론화됐던 아동학대 관련 법에 대한 문제 제기에 더해, 교사들이 교실에서 겪고 있는 고통과 슬픔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교육부와 국회는 ‘교권 회복’을 위한 각종 정책들을 쏟아 내고 있다.
《오늘의 교육》 76호는 지금 교사들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여러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심층적으로 묻는다. ‘교권 추락이 문제이니 무너진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학교의 문제들을 조명하려 한다.
첫 번째 글은 발단이 된 사건을 바라보는 동료 교사, 연구자 등의 단상들을 모았다. 초등 교사들이 각자의 경험을 담아 각자도생, 독박 노동의 학교의 모습을 고발한다. 학교가 지옥이 됐다는 절규 앞에 학교공동체를 고민하는 퇴직 교사의 글과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여성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열쇳말로 읽어 내는 노동 연구자의 글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엄기호와 박복선은 교육의 본질과 교육 불가능, 그리고 연대에 관해 이야기한다.
김헌용은 주호민 작가 사건과 이른바 ‘왕의 DNA’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교사와 학생·보호자 간 갈등의 밑바닥에는 학교의 차별적·배제적 구조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지금은 근본적 해결책과 거시적 담론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며, 하나의 대안으로 ‘더 포용적인 학교’를 제안한다.
이윤경은 ‘살인자’, ‘진상’, ‘갑질’이라는 이미지로 묘사되는 학부모들에 대한 다른 접근을 촉구한다. 국민의 1/5에 달하는 학부모들을 교육의 주체로 참여하게 하기 위한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영선의 글은 주로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사들이 교육에 대한 불만을 받아 내는 과녁이 되고 있다고 분석하며, 학생인권조례 후퇴 및 ‘생활지도 고시’를 통한 학생인권 침해 허용 등이 어째서 해법이 될 수 없는지 논한다.
교사의 죽음에 교육계와 사회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고, 어느 때보다도 신속하게 교육 정책들이 입안되고 실시되고 있다. 《오늘의 교육》은 그럼에도 우리가 무엇을 물어야 하고 현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와 힘이 필요한지 사유하고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희망한다.

- 편집부



차례

 

10 이윤엽의 오늘 우리들의 연대 함께 오래 | 이윤엽 PDF
11 읽은 이야기 | 김혜진 web PDF

특집  교실의 슬픔, 교육의 불가능성
23 교사, 노동, 교육 불가능 | 정은경, 현유림, 안준철, 최성용, 엄기호, 박복선 PDF
- 교사들의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각자도생 학교 | 정은경 web 

내가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 현유림 web 

누가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가 | 최성용 web 

교육에는 대화가 있는가 | 엄기호 web 

교사들의 분노는 어디로 갈 것인가 | 박복선  web

55 더 포용적인 학교가 답이다 | 김헌용 web PDF
- 서이초와 주호민, 그리고 ‘왕의 DNA’를 경유하여
67 학부모 ‘탓’이 아니라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다 | 이윤경 web PDF
- 서이초 사건 이후 학부모 비판론의 한계와 대안
75 교사들의 현실,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 조영선 web PDF

기획│위기의 세계, 교육의 역할
101 계속 탐욕적 인간을 길러 낸다면 미래는 잿빛일 것이다 | 서부원 web PDF
- 돈이 전부라는 아이들, 개인의 성공만 가르쳐 온 학교
113 교육, 상승의 사다리를 버리자 | 조형근 web  PDF
- 능력주의가 만드는 전쟁 같은 사회의 모습
124 ‘과학’을 비판하는 과학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 | 정성식 web PDF
- 오염수 방류 논란을 통해 묻는 ‘과학’의 의미
133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준비하는 교육 | 장박가람 web  PDF
- 평화운동의 교육에 대한 제안

기획│‘특수’라는 벽장을 넘어 교육 보편의 담론으로 ①
145 우리를 교실에서 배제하지 마세요 | 피플퍼스트서울센터 PDF
154 통합교육, 함께 사는 사회의 축소판 | 이수현 web PDF
- 장애/비장애 학생 모두를 위한 중등 통합교육
167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의 학교 운동 | 윤상원 PDF
- 포용교육 실현을 위한 노르웨이의 특별요구교육

좌담
189 20년간 반복된 모순과 갈라진 운동 | 하인호, 이윤승, 강문식, 허태준 web PDF
- 현장실습 제도와 직업교육의 방향

연재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②
217 반란의 감각 | 서한영교 web PDF
- 문자에 의존하는 교육에 맞선 교육적 반란과 앎의 불가능성

동물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한 교육 ②
241 더 많은 청소년, 교사, 주민들과 동물권으로 만나다 | 박선미 PDF
- 동물권교육 전파를 위한 과정

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③
251 ‘예비 교사 정체성’이 대학에서의 운동에 던지는 질문 | 강석남 PDF
- 전국교육대학생연합 김민아 집행위원장

연속 기획│변방에서 온 편지
276 우리 여기 살고 있어요 | 서와(김예슬) PDF
- 청년 여성 농부가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기고
288 국가 교육과정과 페미니즘 교육의 가능성 | 망건, 두리번 PDF
- 성평등하지도 양성평등하지도 않은 2022 개정 교육과정
298 정치적 중립성이 교육의 자유를 침해하는 순간들 | 정용주 PDF
314 인구는 어떻게 학교를 바꾸고 있나 | 김성원 PDF
- 인구 감소 시대의 학교 건축

리뷰
328 혐오와 체념이 넘쳐흘러도, 우리는 다른 세계를 꿈꾸어야 한다 | 김수영(수엉) web PDF
-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
342 기후 위기 시대, 학교급식의 교육적 가능성 | 장미자 PDF
- 《밥 공부》

350 오늘 읽기 | 이윤승, 공현 PDF
352 세 줄 세 책 PDF
354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 책 | 조현민 PDF
356 내가 밀고 있는 단체 web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 홍주은 PDF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 김나혜(감자) PDF 



책 속에서


늘어난 업무는 학교 안의 약한 고리로 떠밀려 온다. 교장, 교감에서부터 교사에게로 각종 행정 업무와 민원이 떠밀려 온다. 기피 학년과 기피 업무가 신규·저경력 교사나 전입 교사에게 떠밀려 온다. 정규직 교사에게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밀려 온다. 이 업무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업무인지, 누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질문은 지워진 채 그저 각자의 업무에 고립된다. 서로가 업무 말고도 서로를 떠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약한 고리로 밀려 온 업무는 끝내 노동자를 죽음에 잠기게 했다. 하지만 ‘내 담당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 본문 26쪽, 정은경·현유림·박복선 외, 〈교사, 노동, 교육 불가능〉

 

학교와는 꽤 먼 거리에 있어서 뜨문뜨문 보고 듣는 게 다지만, 지금 교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흐름은 이미 10여 년 전에 예견할 수 있었다. 그때쯤 교육공동체 벗에서 ‘교육 불가능’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흔히 교사가 도무지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좋은 삶’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을 상실한, 서열화를 정당화하는 도구로서만 존재하는, 결국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 학교다. 학교는 상층으로 진입하려는 욕망을 채우려는 학생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것도 의미라면 말이다.)

- 본문 50쪽, 정은경·현유림·박복선 외, 〈교사, 노동, 교육 불가능〉

 

상황이 열악하다고 해서 부모의 갑질이 정당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학교에 ADHD 진단을 받은 아이와 부모를 상담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다. 특수 교사와 전문 상담 교사가 제도의 공백을 최대한 메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이러한 문제를 교육의 문제로 인식하는 교사도 많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라도 아이에게 ADHD 진단이 떨어진다면 바로 죄인 모드가 될 것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곳에 가서 아이를 ‘고칠’ 방법을 찾아 헤맬 것이다. 학교에서는 ADHD가 ‘비정상적’ 상태라고 단정 짓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왕의 DNA’는 어떤 미치광이의 창작물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다양성과 포용성을 포기한 대한민국 교실이 만들어 낸 괴물인지도 모른다.

- 본문 62-63쪽, 김헌용, 〈더 포용적인 학교가 답이다〉

 

교육부에는 교원정책과는 있지만 학부모를 담당하는 부서는커녕 업무 담당자도 찾기 힘들다. 교육청에는 유아교육과, 초등교육과, 중등교육과가 나뉘어 있지만 학부모는 별도 부서를 두고 1개 팀에서 유·초·중·고·특수학교 학부모를 한꺼번에 담당한다. 자문 기구인 학부모 정책 자문위원회도 학교 급별 구분 없이 전체 ‘학부모’를 대상으로 논의한다. 학부모를 교육의 한 주체라고 생각한다면 유아, 초등, 중등과에 각각 학부모 담당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 정책 입안부터 학부모가 참여하고 협력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본문 72-73쪽, 이윤경, 〈학부모 ‘탓’이 아니라 연구와 정책이 필요하다〉

 

교육 활동을 성과화하는 교원 평가와 성과급 제도는 이러한 어려움을 동료들과 나눌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교원 평가의 경우엔 모욕적인 서술식 평가를 보며 다 같이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불신을 가지면서도 ‘내가 평균이 안 되는 교사인가’ 하는 자괴감을 갖게 한다. 성과급위원회에서 교사의 어떤 노동이 ‘S등급’을 부여할 만큼 어려운 노동인가를 다투며, 어려움을 겪는 동료에 대한 연대감은 사그라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원 노동조합은 수년에 걸쳐 성과급과 교원 평가 폐지를 외쳤지만,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막혀 있어, 중앙 단위의 단체 협약은 2002년에 맺은 것이 마지막이고 연가 투쟁이나 심지어 주말 집회로도 노조 집행부는 기소되곤 했다.

- 본문 81쪽, 조영선, 〈교사들의 현실,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무너진 공교육과 한국 사회의 양극화 흐름을 비판하다 보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런 반응을 접하게 된다.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진 게 큰 문제지요. 어떻게든 다시 이어야죠.” 이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힘이 빠진다. 특권이 된 능력주의 경쟁을 모두에게 개방하자는 이야기일 것이다. 기껏 이야기한 게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다는 절망감이 엄습하고, 한국 사회의 보수와 자유주의 개혁 담론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절감하게 된다. 포털사이트에서 ‘사다리’와 정치인의 이름을 한번 쳐 보자. 여야 정치인들이 입을 모아 한결같이 사다리를 찬양하고 있다.

- 본문 121쪽, 조형근, 〈교육, 상승의 사다리를 버리자〉

 

경제적 이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자본주의 산업 사회는 위험을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핵 발전 시스템이다. 핵 발전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생명에 극도로 위험한 물질을 대량으로 양산하고 있다. 만약 핵 발전소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한다면 수많은 사람이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와 자본에 포획된 과학은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경시하며 사고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위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사람을 배신하는 과학에 대한 ‘비판적 과학’이다.

- 본문 131쪽, 정성식, 〈‘과학’을 비판하는 과학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

 

학교는 학습을 위해 가는 곳이라 여겼다. 학습할 능력이 없는 아이가 학교에 가면 시간만 낭비하고 온다고 생각했다. 학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 학교에 갈 필요가 없었다. 내가 교사로서 학생들을 보는 관점도 같았다. 평균의 학생에게 목표를 두고 수업을 했고, 중간 정도의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으면 성공한 수업이라 믿었다.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는 학생은 개인의 능력 부족이라고 여겼다. 학습 결손의 누적은 학습자 본인이나 부모의 문제라고 생각했지, 학교나 교사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다수의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의 기준에 맞추어 학습자가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내 아이는 아무리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불안이 강했다.

이런 비장애인 중심이었던 나의 세계관이 두 아이를 양육하며, 또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허물어졌다.

- 본문 158쪽, 이수현, 〈통합교육, 함께 사는 사회의 축소판〉

 

계집애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여성혐오를 동원하듯,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장애혐오를 축적해 왔던 것은 아닐까. 사회적 무의식 속에서 발달장애인을 ‘순진한 바보 아이’거나 ‘예측 불가한 위험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복제하며 지내 왔던 건 아닐까. 보편적 인간성을 축조해 내는 정상성의 건축술에 따라 구축된 ‘인간적인 것’에 대한 나의 감각은 지나치게 왜소한 거 아닌가. 신체 표면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는 무의식적인 장애혐오 감각이 내 안에 아주 오랫동안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에 번개 맞듯 소스라쳤다. 버스 창밖. 거리에서 그들,의 몸짓을 만날 수 없었던 이유가 그들, 이 49년, 39년, 37년, 32년씩 장애인거주시설에 갇혀 있거나 방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번개 맞듯 소스라쳤다.

- 본문 224-225쪽, 서한영교, 〈반란의 감각〉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여러 사회적 조건에 의해 차별을 당하는 피해자이지만, 생식을 제외한 포괄적인 재생산 권리는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아주 좁게 이야기해서) ‘낳지 않을 권리’는 가지지 못하고 ‘낳을 권리’만 가지며, 이로 인해 사회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의무를 가지지만, 결코 비혼 출산과 같은 문제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성 건강에 대해 학습하고 성병을 예방해야 하지만, 자신의 성 정체성을 포함한 섹슈얼리티를 탐색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성애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 성적 실천은 허락되지 않으며 결혼 후에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 건강하게 출산해야 한다니, 이것이 진정으로 ‘2022’라는 연도가 붙은 교육과정에서 도출한 내용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

- 본문 295쪽, 망건·두리번, 〈국가 교육과정과 페미니즘 교육의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