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교육》 85호 특집은 「학교폭력예방법」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학생 간 갈등을 학교 밖 법적 절차에 맡기면서 교육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잃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가는 현실을 짚는다. 기획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와 그 해법을 모두 교육에서 찾으려고 하는 교육의 역설을 고민해 본다.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다룬 기고에서는 학교와 교육에 부재한 애도의 윤리를 성찰한다.
특집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수차례 개정을 거치며 누더기가 된 「학교폭력예방법」은 본래 의도와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져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사소한 다툼도 징계와 분쟁으로 이어지며, 교사는 조사와 보고의 부담 속에 교육적 개입의 여지를 잃는다. 학생은 사과 대신 자기변호가 우선이고, 보호자는 맞신고와 소송에 나선다. 학교는 분쟁을 접수하고 분리와 배제를 실행하는 사법 시장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교육공동체 벗은 2025년 2월 ‘학교와 폭력’ 연속 포럼의 첫 번째 자리를 열어, 「학교폭력예방법」의 폐해를 공유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이번 《오늘의 교육》 특집은 그 연장선에서 문제투성이 법과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해 본다.
김성보는 생활부장으로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법이 학생 간 갈등을 법적인 사안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학생은 관계 속에서 성장할 기회를 잃고, 교사는 교육적으로 개입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과 맞물려 강화되었으며, 학교가 교육공동체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윤경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으로서 경험한 현실을 통해, 「학교폭력예방법」이 학생과 학부모를 제도적 위협 속에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사안의 상당수는 일상적인 갈등이지만 ‘감금’이나 ‘강요’ 같은 형사 범죄로 분류되고 학생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갈등을 조장한다. 관계 회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대해 필자는 전면 폐지를 포함한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희진은 학교폭력 대응의 사법화가 학생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제도는 형사법적 절차를 따르면서도 학생의 발달 특성과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변호사의 개입은 갈등을 법적 다툼으로 비화시키고 심의 과정에서도 증거와 절차만 중요시되며 학생의 개별 상황과 관계적 맥락은 삭제된다. 보호자의 의사가 학생의 의사보다 앞서며 학생의 참여권은 배제된다.
오승관은 학교폭력 사안을 교육적 맥락에서 다루려 한 실천을 공유한다. 공동체 생활협약과 삼자협약위원회를 바탕으로 한 대응 시도는, 폭력의 경중이나 진술의 완성도보다 사안을 둘러싼 전체 상황을 고려해 교육적 판단을 우선시하고, 절차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학교는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 자체가 교육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용주는 한국의 학교폭력 대응이 교육의 본질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의 사례를 들어 학교폭력은 공동체 전체가 예방과 회복에 함께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학교가 교육보다는 기록과 분류에 집중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병원에 비유해 “회복이 아닌 통제와 퇴출”에 가까운 방식이라 말한다. 학교는 관계와 배움의 회복을 지원해야 하며, 정서적 안정과 존중, 배움의 기쁨을 중심에 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좌담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하고자 학교와 법정을 비롯해 각 현장에서 노력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로 근무해 온 강물은, 접수된 사안을 교육지원청에서 지원하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으로 다뤘으나 그 과정에서도 교사가 소외되고 갈등이 해결되지 못했던 사례를 들며, 외주화를 멈추고 교사가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는지 질문한다. 사법 재판에서의 회복적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판사 임수희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물꼬를 터 주는 대화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조명하고, 아동 간 갈등이 사법으로 다뤄지는 것 자체가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비극의 씨앗이라고 강조한다. 갈등 조정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해 온 평화교육 활동가 박숙영, 반은기는 외부 전문가의 개입은 학교 구성원이 주체로 설 때에만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자리 잡기 위한 과제들을 짚는다.
「학교폭력예방법」 제정은 은폐, 축소되어 있던 학교 내 집단 괴롭힘, 서열 문화와 학생 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공적으로 대처하고자 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거의 방기했으며, 무엇보다 학생 개인에 대한 처벌과 낙인찍기가 거듭 강화되며 자치적 해결 가능성을 축소하고 사법적 개입을 보편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가운데 회복적 정의를 적용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이미 팽배한 사법 시장의 논리 등 걸림돌이 많다. 지금껏 응보적 정의를 위해 동원됐던 모든 자원을 재배열해야 될까 말까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고쳐 쓰지 말고 폐지하자.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탈선한 열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 학생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직면하고 해결 과정에 동행한다는 당연한 교육적 가치를 다시 지향하기 위해서.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서희
오늘의 교육을 열며
교육 불가능 시대의 교육은 다시 운동이 되어야 한다 | 편집위원회
특집│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안전하게 다툴 권리를 빼앗겼다 | 김성보
범죄는 형법으로, 갈등 조정은 다시 학교의 몫으로 | 이윤경
-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하는 제도적 대안
학교폭력 관련 법 속에서 아동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 김희진
- 처벌과 배상 중심 제도가 아동에게 끼치는 영향
교육적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 | 오승관
- 혁신학교 국사봉중의 학교폭력 사안 대응 사례를 중심으로
학교폭력 예방과 대응의 새로운 경로를 상상하기 | 정용주
- 법제화의 한계를 넘어 예방과 회복의 패러다임으로
[좌담] 학교 안 갈등 해결의 실마리, ‘대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 강물, 박숙영, 반은기, 임수희
- 오래된, 그러나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해법
기획│교육으로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
나의 ‘동료’ 시민을 어떻게 찾을까? | 하승우
교육화 시대의 교육 담론 | 이명훈
- ‘교육 구국론’과 ‘교육 망국론’을 넘어
시
조등, 오동꽃 / 시론詩論 | 이종암
빙하 장례식 / 두 마음 | 박일환
연재 |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 ⑤
섹스를 하는 누구나 성매개감염을 경험한다 | 공혜원
연재 | 교육복지 현장의 이야기 마지막 회
우리는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 | 발랑(신선웅)
- 구조적 변화와 모두의 연대
수업
수업의 변화를 이끄는 교사의 행위주체성 | 최은경
기고
‘어린’ 존재의 죽음과 애도에 서툰 학교 | 현유림
체험 혹은 모험 | 김지용
- 현장체험학습, 불가피한 위험을 감수할 용기 필요
딥페이크 성폭력과 일상의 민주주의 투쟁 | 수수
에세이
아이들과 함께 농사지은 시간, 변화가 필요해 | 배이슬
- 진안 생태 텃밭 수업 6년을 돌아보며
리뷰
진짜,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 | 김환영
- 《우리는 왜 그림을 못 그리게 되었을까》
생명과 안전은 민주주의와 함께 간다 | 간우연
-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재난 이후, 사회》
오늘 읽기 | 공현
세 줄 새 책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책 | 조현민
책 속에서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학교에서 학생 간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다면, 학생들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이룰 수 있는 교육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분리하고 차단한다. 갈등이 발생하면 관련 학생을 공동체에서 분리시켜 법적 기구에서 처리한다. 학생들은 안전하게 다투면서 발달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 본문 28쪽, 김성보, 〈안전하게 다툴 권리를 빼앗겼다〉
초등 저학년 학교폭력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베프였던 두 남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접수되어 심의위에 출석했다. 급식실에서 준우(가명)는 머리를 한 대 맞았다고 했고 현수(가명)는 때린 기억이 없다고 했다. 같은 반인 두 학생은 심의위가 열리기까지 4개월간 교실 맨 앞자리와 맨 뒷자리, 각각 다른 모둠 식으로 분리가 되었다. 두 학생 모두 심의위원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보호자의 중간 전달 역할이 필요했다. 준우는 본인의 기억을 말하기보다는 엄마가 “네가 그때 그랬잖아” 하고 다그치면 앵무새처럼 반복해 답변했다. 현수는 거의 모든 질문에 “엄마, 뭐라고 해야 돼?”라고 되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현수가 울먹이면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 나 준우랑 언제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어?”
- 본문 44쪽, 이윤경, 〈범죄는 형법으로, 갈등 조정은 다시 학교의 몫으로〉
학교폭력의 책임을 학생과 그 보호자의 탓으로 넘기는 것은 교육은 물론 아동 보호에 대한 공적인 책임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에서 사법 외적인 절차를 상상하고 실천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가장 기초적인 예방부터,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방법, 사과를 수용하고 나를 존중하는 방법, 서로 함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 가는 과정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이고, 학교를 통한 공교육은 모든 아동의 권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 본문 70~71쪽, 김희진, 〈학교폭력 관련 법 속에서 아동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학교폭력에서의 ‘교육적 맥락’이란 갈등 경험과 해결 경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에 비추어 볼 때, 학교폭력을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성인들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면, 학생들의 관계 회복, 공동체성 회복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혹은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갈등을 겪고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교사·보호자와 같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잘 해결하는 그 경험 자체가 바로 교육적 맥락을 지키는 것이지 않을까?
- 본문 80쪽, 오승관, 〈교육적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
병원을 떠올려 보자. 병원이란 단순히 질병을 기록하고 환자를 분류하는 곳이 아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회복을 위해 찾는 곳이며, 환자는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통해 건강을 되찾는다. 그러나 만약 병원이 증상을 기록하고, 환자를 분류한 뒤, 중증도에 따라 퇴출하거나 법적 조치를 내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어떻게 될까? 치료와 회복의 과정이 사라지고, 병원은 관리와 통제의 공간으로 변질된다.
오늘날의 학교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학교는 본래 학생들이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관계 속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 하지만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점점 더 기록과 분류 시스템에 가까워지고 있다. (……) 마치 병원이 환자를 질병 코드로만 바라보고, 개별적인 치료와 회복 과정을 배제하는 것과 같다. 학교폭력 대응의 핵심에는 가르침과 배움이 아닌 평가와 기록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 본문 90~91쪽, 정용주, 〈학교폭력 예방과 대응의 새로운 경로를 상상하기〉
문제는 매뉴얼대로 절차를 밟아도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34건 중 갈등이 해결된 사례는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 건들도 있다. 사안이 발생한 후 이뤄지는 절차는 관할 기구 또는 담당자별로 분자화되어 있고, 학생의 갈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는 어른이 한 명도 없다. 갈등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결과를 맞이해도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 거기서 오는 절망감이 컸다.
- 본문 95~96쪽, 강물, 〈[좌담] 학교 안 갈등 해결의 실마리, ‘대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한 아이가 제대로 말할 기회를 갖느냐, 보호자가 사건에 대해 누군가 충분히 들어 주는 경험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차이이다. 나는 이런 점을 개선·보완해서 ‘제발 법원에만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원으로 오게 되면 서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극단으로 향할 수밖에 없으며 이겨도 이기지 못한 상황이 된다. 학교에서의 문제는 학교 안에서의 자율적인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학교에서 일어난 문제가 법원에 오는 것 자체가 비극의 씨앗이고, 그럴 때 아동이 절차적으로 학대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본문 101쪽, 임수희, 〈[좌담] 학교 안 갈등 해결의 실마리, ‘대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일방적인 교육보다 대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공통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식’은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각과 배경지식인데, 지금은 그 상식이 무너졌다.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언어, 해석의 기준, 가치 지향,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는데,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을 통해 인식과 세계관의 차이를 바로잡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지금 우리는 세계를 새롭게 이름 지으며 서로의 공통성을 찾아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 본문 113쪽, 하승우, 〈나의 ‘동료’ 시민을 어떻게 찾을까?〉
교육은 사회 변화에 필요한 조건일 뿐 충분한 조건이라 할 수 없다. 개인, 교육,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무시하고, 광범위한 사회 문제의 책임을 교육에 따져 묻는 건 엉뚱한 일이다. 교육 비판이란 무엇보다 본연의 가치에 비추어 교육을 음미하고 평가하는 작업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교육화의 흐름에서 벗어나 교육의 역할 및 한계를 분명히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 교육의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청산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부모, 교사, 교육학자들에게서 자주 터져 나오는 역설이야말로 교육화의 핵심 요건이다.
- 본문 128~129쪽, 이명훈, 〈교육화 시대의 교육 담론〉
진정으로 모두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를 위해서는 성매개감염 예방보다 감염 이후의 심리적, 신체적 안녕을 잘 나눌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 위험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한국 사회의 상황에서는 예방조차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맡겨져 있다. 권리를 특권으로 만들지 않고 평등한 관계를 중심으로 역량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지원, 예방부터 대처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정보와 교육이 필요하다.
- 본문 148~149쪽, 공혜원, 〈섹스를 하는 누구나 성매개감염을 경험한다〉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애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사건을 기억하고, 피해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겪는 폭력과 차별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을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나 가정,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어린이가 겪는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진지하게 다루는 문화가 필요하다. (……) 또한, 애도의 과정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어린이들이 슬픔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는 법을 익히게 해야 한다.
- 본문 190쪽, 현유림, 〈‘어린’ 존재의 죽음과 애도에 서툰 학교〉
안전에 대한 극단적 집착이 낳는 최대 역설은 무사안일주의다. 학생과 학부모가 안전의 포로가 되어 안전 제일주의를 학교에 요구하기 시작하면 교육부에서 학교 관리자로 이어지는 관료들은 학생 안전을 명목으로 현장체험학습을 포함한 교육 활동에 하나에서 열까지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무딘 반응보다는 과잉 반응이 더 낫고 규제가 적은 것보다 많은 게 책임을 피하기에 좋다. 신중이라는 명분이 시도할 용기를 꺾는다. 부모의 과잉보호와 학교의 안전에 대한 과잉 집착으로 아이들은 소소한 도전과 위험을 경험할 수많은 기회를 놓친다. 그런데 바로 그 도전과 위험이야말로, 그 소소한 역경들이야말로 아이들이 단단하게 성장하는 밑거름이다.
- 본문 200쪽, 김지용, 〈체험 혹은 모험〉
《오늘의 교육》 85호 특집은 「학교폭력예방법」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학생 간 갈등을 학교 밖 법적 절차에 맡기면서 교육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잃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가는 현실을 짚는다. 기획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와 그 해법을 모두 교육에서 찾으려고 하는 교육의 역설을 고민해 본다.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다룬 기고에서는 학교와 교육에 부재한 애도의 윤리를 성찰한다.
특집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수차례 개정을 거치며 누더기가 된 「학교폭력예방법」은 본래 의도와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져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사소한 다툼도 징계와 분쟁으로 이어지며, 교사는 조사와 보고의 부담 속에 교육적 개입의 여지를 잃는다. 학생은 사과 대신 자기변호가 우선이고, 보호자는 맞신고와 소송에 나선다. 학교는 분쟁을 접수하고 분리와 배제를 실행하는 사법 시장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교육공동체 벗은 2025년 2월 ‘학교와 폭력’ 연속 포럼의 첫 번째 자리를 열어, 「학교폭력예방법」의 폐해를 공유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이번 《오늘의 교육》 특집은 그 연장선에서 문제투성이 법과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해 본다.
김성보는 생활부장으로서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법이 학생 간 갈등을 법적인 사안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학생은 관계 속에서 성장할 기회를 잃고, 교사는 교육적으로 개입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과 맞물려 강화되었으며, 학교가 교육공동체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윤경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으로서 경험한 현실을 통해, 「학교폭력예방법」이 학생과 학부모를 제도적 위협 속에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사안의 상당수는 일상적인 갈등이지만 ‘감금’이나 ‘강요’ 같은 형사 범죄로 분류되고 학생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갈등을 조장한다. 관계 회복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대해 필자는 전면 폐지를 포함한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희진은 학교폭력 대응의 사법화가 학생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제도는 형사법적 절차를 따르면서도 학생의 발달 특성과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변호사의 개입은 갈등을 법적 다툼으로 비화시키고 심의 과정에서도 증거와 절차만 중요시되며 학생의 개별 상황과 관계적 맥락은 삭제된다. 보호자의 의사가 학생의 의사보다 앞서며 학생의 참여권은 배제된다.
오승관은 학교폭력 사안을 교육적 맥락에서 다루려 한 실천을 공유한다. 공동체 생활협약과 삼자협약위원회를 바탕으로 한 대응 시도는, 폭력의 경중이나 진술의 완성도보다 사안을 둘러싼 전체 상황을 고려해 교육적 판단을 우선시하고, 절차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학교는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며,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 자체가 교육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용주는 한국의 학교폭력 대응이 교육의 본질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의 사례를 들어 학교폭력은 공동체 전체가 예방과 회복에 함께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학교가 교육보다는 기록과 분류에 집중한다고 지적하며, 이를 병원에 비유해 “회복이 아닌 통제와 퇴출”에 가까운 방식이라 말한다. 학교는 관계와 배움의 회복을 지원해야 하며, 정서적 안정과 존중, 배움의 기쁨을 중심에 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좌담에서는 학교폭력 사안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하고자 학교와 법정을 비롯해 각 현장에서 노력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로 근무해 온 강물은, 접수된 사안을 교육지원청에서 지원하는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으로 다뤘으나 그 과정에서도 교사가 소외되고 갈등이 해결되지 못했던 사례를 들며, 외주화를 멈추고 교사가 주체가 되어야 하지 않는지 질문한다. 사법 재판에서의 회복적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판사 임수희는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물꼬를 터 주는 대화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조명하고, 아동 간 갈등이 사법으로 다뤄지는 것 자체가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비극의 씨앗이라고 강조한다. 갈등 조정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해 온 평화교육 활동가 박숙영, 반은기는 외부 전문가의 개입은 학교 구성원이 주체로 설 때에만 의미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이 내실 있게 자리 잡기 위한 과제들을 짚는다.
「학교폭력예방법」 제정은 은폐, 축소되어 있던 학교 내 집단 괴롭힘, 서열 문화와 학생 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공적으로 대처하고자 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거의 방기했으며, 무엇보다 학생 개인에 대한 처벌과 낙인찍기가 거듭 강화되며 자치적 해결 가능성을 축소하고 사법적 개입을 보편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가운데 회복적 정의를 적용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이미 팽배한 사법 시장의 논리 등 걸림돌이 많다. 지금껏 응보적 정의를 위해 동원됐던 모든 자원을 재배열해야 될까 말까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고쳐 쓰지 말고 폐지하자.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탈선한 열차를 멈춰 세우기 위해서, 학생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직면하고 해결 과정에 동행한다는 당연한 교육적 가치를 다시 지향하기 위해서.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서희
오늘의 교육을 열며
교육 불가능 시대의 교육은 다시 운동이 되어야 한다 | 편집위원회
특집│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폭력
안전하게 다툴 권리를 빼앗겼다 | 김성보
범죄는 형법으로, 갈등 조정은 다시 학교의 몫으로 | 이윤경
-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하는 제도적 대안
학교폭력 관련 법 속에서 아동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 김희진
- 처벌과 배상 중심 제도가 아동에게 끼치는 영향
교육적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 | 오승관
- 혁신학교 국사봉중의 학교폭력 사안 대응 사례를 중심으로
학교폭력 예방과 대응의 새로운 경로를 상상하기 | 정용주
- 법제화의 한계를 넘어 예방과 회복의 패러다임으로
[좌담] 학교 안 갈등 해결의 실마리, ‘대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 강물, 박숙영, 반은기, 임수희
- 오래된, 그러나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해법
기획│교육으로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
나의 ‘동료’ 시민을 어떻게 찾을까? | 하승우
교육화 시대의 교육 담론 | 이명훈
- ‘교육 구국론’과 ‘교육 망국론’을 넘어
시
조등, 오동꽃 / 시론詩論 | 이종암
빙하 장례식 / 두 마음 | 박일환
연재 |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 ⑤
섹스를 하는 누구나 성매개감염을 경험한다 | 공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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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함께 존재할 것인가 | 발랑(신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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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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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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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아이들과 함께 농사지은 시간, 변화가 필요해 | 배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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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학교에서 학생 간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다면, 학생들이 비약적으로 발달을 이룰 수 있는 교육 기회의 장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생들을 분리하고 차단한다. 갈등이 발생하면 관련 학생을 공동체에서 분리시켜 법적 기구에서 처리한다. 학생들은 안전하게 다투면서 발달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 본문 28쪽, 김성보, 〈안전하게 다툴 권리를 빼앗겼다〉
초등 저학년 학교폭력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베프였던 두 남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접수되어 심의위에 출석했다. 급식실에서 준우(가명)는 머리를 한 대 맞았다고 했고 현수(가명)는 때린 기억이 없다고 했다. 같은 반인 두 학생은 심의위가 열리기까지 4개월간 교실 맨 앞자리와 맨 뒷자리, 각각 다른 모둠 식으로 분리가 되었다. 두 학생 모두 심의위원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보호자의 중간 전달 역할이 필요했다. 준우는 본인의 기억을 말하기보다는 엄마가 “네가 그때 그랬잖아” 하고 다그치면 앵무새처럼 반복해 답변했다. 현수는 거의 모든 질문에 “엄마, 뭐라고 해야 돼?”라고 되물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현수가 울먹이면서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 나 준우랑 언제 다시 친하게 지낼 수 있어?”
- 본문 44쪽, 이윤경, 〈범죄는 형법으로, 갈등 조정은 다시 학교의 몫으로〉
학교폭력의 책임을 학생과 그 보호자의 탓으로 넘기는 것은 교육은 물론 아동 보호에 대한 공적인 책임을 외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에서 사법 외적인 절차를 상상하고 실천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가장 기초적인 예방부터,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방법, 사과를 수용하고 나를 존중하는 방법, 서로 함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 가는 과정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이고, 학교를 통한 공교육은 모든 아동의 권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 본문 70~71쪽, 김희진, 〈학교폭력 관련 법 속에서 아동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
학교폭력에서의 ‘교육적 맥락’이란 갈등 경험과 해결 경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에 비추어 볼 때, 학교폭력을 예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성인들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면, 학생들의 관계 회복, 공동체성 회복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혹은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갈등을 겪고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교사·보호자와 같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잘 해결하는 그 경험 자체가 바로 교육적 맥락을 지키는 것이지 않을까?
- 본문 80쪽, 오승관, 〈교육적 맥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
병원을 떠올려 보자. 병원이란 단순히 질병을 기록하고 환자를 분류하는 곳이 아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이 회복을 위해 찾는 곳이며, 환자는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통해 건강을 되찾는다. 그러나 만약 병원이 증상을 기록하고, 환자를 분류한 뒤, 중증도에 따라 퇴출하거나 법적 조치를 내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어떻게 될까? 치료와 회복의 과정이 사라지고, 병원은 관리와 통제의 공간으로 변질된다.
오늘날의 학교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학교는 본래 학생들이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관계 속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 하지만 학교폭력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점점 더 기록과 분류 시스템에 가까워지고 있다. (……) 마치 병원이 환자를 질병 코드로만 바라보고, 개별적인 치료와 회복 과정을 배제하는 것과 같다. 학교폭력 대응의 핵심에는 가르침과 배움이 아닌 평가와 기록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 본문 90~91쪽, 정용주, 〈학교폭력 예방과 대응의 새로운 경로를 상상하기〉
문제는 매뉴얼대로 절차를 밟아도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34건 중 갈등이 해결된 사례는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 건들도 있다. 사안이 발생한 후 이뤄지는 절차는 관할 기구 또는 담당자별로 분자화되어 있고, 학생의 갈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는 어른이 한 명도 없다. 갈등이 전혀 해결되지 않은 결과를 맞이해도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 거기서 오는 절망감이 컸다.
- 본문 95~96쪽, 강물, 〈[좌담] 학교 안 갈등 해결의 실마리, ‘대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한 아이가 제대로 말할 기회를 갖느냐, 보호자가 사건에 대해 누군가 충분히 들어 주는 경험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차이이다. 나는 이런 점을 개선·보완해서 ‘제발 법원에만 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원으로 오게 되면 서로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극단으로 향할 수밖에 없으며 이겨도 이기지 못한 상황이 된다. 학교에서의 문제는 학교 안에서의 자율적인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학교에서 일어난 문제가 법원에 오는 것 자체가 비극의 씨앗이고, 그럴 때 아동이 절차적으로 학대를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본문 101쪽, 임수희, 〈[좌담] 학교 안 갈등 해결의 실마리, ‘대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일방적인 교육보다 대화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공통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상식’은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각과 배경지식인데, 지금은 그 상식이 무너졌다.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언어, 해석의 기준, 가치 지향,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는데,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을 통해 인식과 세계관의 차이를 바로잡겠다는 발상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지금 우리는 세계를 새롭게 이름 지으며 서로의 공통성을 찾아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 본문 113쪽, 하승우, 〈나의 ‘동료’ 시민을 어떻게 찾을까?〉
교육은 사회 변화에 필요한 조건일 뿐 충분한 조건이라 할 수 없다. 개인, 교육,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무시하고, 광범위한 사회 문제의 책임을 교육에 따져 묻는 건 엉뚱한 일이다. 교육 비판이란 무엇보다 본연의 가치에 비추어 교육을 음미하고 평가하는 작업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교육화의 흐름에서 벗어나 교육의 역할 및 한계를 분명히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 교육의 적폐를 청산하고 개혁을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청산과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는 부모, 교사, 교육학자들에게서 자주 터져 나오는 역설이야말로 교육화의 핵심 요건이다.
- 본문 128~129쪽, 이명훈, 〈교육화 시대의 교육 담론〉
진정으로 모두에게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를 위해서는 성매개감염 예방보다 감염 이후의 심리적, 신체적 안녕을 잘 나눌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 위험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도움을 요청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한국 사회의 상황에서는 예방조차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맡겨져 있다. 권리를 특권으로 만들지 않고 평등한 관계를 중심으로 역량을 키워 나가기 위해서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지원, 예방부터 대처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정보와 교육이 필요하다.
- 본문 148~149쪽, 공혜원, 〈섹스를 하는 누구나 성매개감염을 경험한다〉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을 애도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사건을 기억하고, 피해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겪는 폭력과 차별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들을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나 가정,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어린이가 겪는 감정의 깊이를 이해하고, 그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진지하게 다루는 문화가 필요하다. (……) 또한, 애도의 과정을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어린이들이 슬픔을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루는 법을 익히게 해야 한다.
- 본문 190쪽, 현유림, 〈‘어린’ 존재의 죽음과 애도에 서툰 학교〉
안전에 대한 극단적 집착이 낳는 최대 역설은 무사안일주의다. 학생과 학부모가 안전의 포로가 되어 안전 제일주의를 학교에 요구하기 시작하면 교육부에서 학교 관리자로 이어지는 관료들은 학생 안전을 명목으로 현장체험학습을 포함한 교육 활동에 하나에서 열까지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무딘 반응보다는 과잉 반응이 더 낫고 규제가 적은 것보다 많은 게 책임을 피하기에 좋다. 신중이라는 명분이 시도할 용기를 꺾는다. 부모의 과잉보호와 학교의 안전에 대한 과잉 집착으로 아이들은 소소한 도전과 위험을 경험할 수많은 기회를 놓친다. 그런데 바로 그 도전과 위험이야말로, 그 소소한 역경들이야말로 아이들이 단단하게 성장하는 밑거름이다.
- 본문 200쪽, 김지용, 〈체험 혹은 모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