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교육》 87호 특집은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도 민주적이지 못한 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짚는다. 절차로서가 아닌 삶의 방식이자 공동체의 원리로서 민주주의를 회복할 필요성을 제안하며, 학교가 다시 책임을 묻는 질문 앞에 서 있음을 상기시킨다.
기획에서는 리박스쿨과 극우 성교육이 훼손한 가치들, 장애 학생 아동학대 판결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톺아본다.
특집
‘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폭염 속에서,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 얼어붙은 세상에 민주주의의 온기를 지피고자 했던 광장의 시민들을 떠올린다. 계절이 바뀌듯 탄핵과 새로운 정부의 탄생은 그 간절함이 만들어 낸 역사의 순리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시민의 힘으로 쌓아 올린 제도와 권리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며,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삶 속에서 실현해야 할 실천임을 일깨운다.
학교도 이 질문에서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가르친다고 말하는 학교는 정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이었는가? 이번 특집은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도 민주적이지 못한 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짚는다. 절차로서가 아닌 삶의 방식이자 공동체의 원리로서 민주주의를 회복할 필요성을 제안하며, 학교가 다시 책임을 묻는 질문 앞에 서 있음을 상기시킨다.
채효정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민주주의의 의미와 실천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파이 나누기’ 토론 사례를 통해 민주주의는 단순한 절차나 좋은 대표 선출이 아니라, ‘민중이 주체가 되는 정치’임을 강조한다. 제도나 형식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성립하지 않으며, 민중 스스로가 권력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일상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조진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지를 조명한다. 교장의 재량에 집중된 권력 구조, 형식적인 회의와 비민주적 인사 시스템은 교사와 학생 모두의 자율성과 평등을 제약한다. 특히 소수자 교사와 학생 등은 가시화되지 못하고 쉽게 배제되며,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학교 문화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협력하는 민주주의 감각을 키우기 어렵게 만든다. 학교는 구성원 모두가 ‘몫’과 ‘목소리’를 지니고 참여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의 장이 될 수 있다.
김소형은 한국 사회와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차별금지법과 포괄적 성교육을 제안한다. 12.3 내란 이후 시민들이 가장 강하게 요구한 변화는 ‘차별 금지·성평등·소수자 권리’였으며, 이는 정치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특히 학교 현장은 혐오 표현, 성희롱, 성소수자 차별이 일상화된 공간이기에, 포괄적 성교육과 차별금지법이 함께 작동해야 학교가 민주주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혜정은 광장의 민주주의가 오늘날 학교에 던지는 질문에 주목한다. 광장의 주체였던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나중’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실현해야 할 삶의 방식으로 보았다. 그러나 학교는 능력주의 질서 속에서 학생을 고립된 개인으로 만들고, 연결과 연대를 감각하기 어렵게 한다. 입시 중심의 선형적 시간 속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는 유예된다. 학교 안에는 능력주의에 꼭 들어맞지 않는 다양한 몸들이 존재하며, 학교는 이들 모두가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지금 여기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기만 할 뿐, 실상은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데 그치고 있다. 회의는 있지만 결정권은 없고, 참여는 있지만 실질적 권한은 없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수직적 권력 구조, 능력주의 경쟁, 차별과 혐오의 방치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들을 조용히 무너뜨린다. 이런 형식적 민주주의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체화할 기회를 빼앗고, 결국 ‘민주주의는 말뿐인 것’이라는 냉소만을 남긴다. 이는 민주주의를 제도나 절차에 가두고 일상의 실천으로 확장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이제 학교는 민주주의의 ‘모의 연습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존재들이 실질적 권한과 존엄을 지닌 주체로 살아가는 공간, 갈등과 차이를 배움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의 현재는 민주주의는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 내는 것’임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다.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맹수용
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의 ○○○ 민주주의 | 양서영
특집│‘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다시 만들어야 할 새로운 민주주의 | 채효정
- 12.3 이후의 민주주의 교육과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제언
몫/목소리가 소멸된 학교, 모두가 돌보는 민주주의로 | 조진희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차별금지법과 성평등 교육 | 김소형
학교 능력주의의 시간과 유예되는 민주주의 | 이혜정
기획│리박스쿨과 극우 성교육이 훼손한 가치들
리박스쿨 사태, ‘교육의 중립성 위반’이 문제가 아니다 | 진냥(희진)
- 교육의 민주성과 돌봄·온라인의 취약성을 돌아보자
학교로 들어오는 극우 성교육 | 장병순
성차별적 성교육에 민원을 넣자, 소장을 받았다 | 백소윤
기획│장애 학생 아동학대 판결이 말하지 않는 것
우리는 학생을 중심에 놓고 있는가 | 이수현
- 갈등을 조장하는 사회와 사라지는 장애 학생의 권리
장애 아동 아동학대 문제, 교육의 본령을 떠올리자 | 백선영
- 공교육 과정에서의 자녀 아동학대 경험에 대한 양육자 실태 조사
시
문학 시간 / 건이의 편지 | 김은숙
거리 조율 / 감식 | 이중현
기고
학교에서도 언론의 자유가 꽃피려면 | 문성호
- 서울 은평 지역 청소년 언론 〈토끼풀〉의 이야기
에세이
고요한 전주에서 입양 ‘커밍아웃’하기 | 서희
씨앗을 살리는 여행 | 윤상혁
- 〈느티나무 아래〉 공동체 상영회를 마치고
리뷰
사과하고 고백할 용기를 낼 때 | 진선
- 《노키즈존 한국 사회》
광장이 불타오른 뒤 막이 내리고 | 지수
- 《광장 이후》, 《광장의 역설》
오늘 읽기 | 공현
세 줄 새 책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책 | 조현민
책 속에서
지금도 다르게 시작할 수 있다. 오랫동안 정체되었던 민주주의 운동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 거대한 시위만 ‘실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상에서 부당한 것 하나라도 바꾸어 내는 사소한 저항과 실천들을 계속 찾아내고 실행해 보자. 작은 소동을 일으키고 사건들을 쌓아 가자. (……) 필요한 것은 평소에 ‘일상의 민주주의 연습’을 하는 것이다. 스콧은 그와 같은 일상적 저항 습관을 기르는 일을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라고도 했다. 민주주의 근육 키우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위기, 생태 위기가 시시각각 심화되고 있지만 이것을 해결할 새로운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시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근육을 만들어 가자. 12.3 이전의 낡은 정치, 가짜 민주주의로 돌아가지 말고, 12,3 이후의 민주주의 교육과 운동을 새롭게 고민하고 만들어 가자.
- 본문 51~52쪽, , 〈다시 만들어야 할 새로운 민주주의〉
회의실에서 혼자 떠드는 사람, 회의실에 오지 않는 사람, 회의실에서 나간 사람, 휴대폰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평등한 발언권과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다리고, 목소리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학교민주주의는 몫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여 그들이 느끼는 소외와 비통함을, 내 목소리가 우리 공동체에 한몫했다는 정치적 효능감으로 바꾸는 것이다. 몫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서로 목소리를 내면서 합의와 동의를 향해 갈 때 불화와 불일치는 필수적이며, 그러한 과정이 쌓여야 민주주의 근육을 튼튼하게 기를 수 있다.
- 본문 67쪽, 조진희, 〈몫/목소리가 소멸된 학교, 모두가 돌보는 민주주의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자리(Human rights)에 성별을 비롯해 장애·출신 국가·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등으로 분리와 배제 같은 차별적 행위는 들어올 수 없다. 페미니즘 백래시 발언인 “너(선생님) 페미야?”와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 발언인 “너(선생님) 게이야?”는 페미니스트와 게이를 멸칭으로 사용한다. 학교 및 직장과 같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 발화와 글은 정치적 사상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이중적(복합적) 차별,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분리와 배제 및 낙인 효과를 지닌 혐오의 발언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언은 민주적 규범에 대한 반대와 배타주의 관점이 강조되는 극우주의 언어와 닿아 있다.
- 본문 74쪽, 김소형,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차별급지법과 성평등 교육〉
학교 현장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교실과 학교를 만들어 가려는 실천들은 지금 여기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평등한 교실은 어떤 신체성과 시간성도 환대받는 공간이다. 모두가 평등한 교실에서는 다양한 몸들이 나름의 속도와 방식으로 움직이고 살아도 배제되지 않고 배울 수 있으며, 여기서 학생들은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세계’를 경험한다. 이것은 학교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교실이 바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며, 이 공간에서 낯설고 다른 몸들이 펼쳐 내는 움직임과 감각은 새로운 학교의 질서와 가능성, 나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 본문 94쪽, 이혜정, 〈학교 능력주의의 시간과 유예되는 민주주의〉
리박스쿨이 얼마나 문제적이고 극우 세력이 얼마나 보기 흉하고 우스꽝스러운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민주적인 교육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우리는 보다 집중해야 한다. 학습자에게 순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식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는 선거 참여, 시민단체 활동, 지역 사회 봉사 등 다양한 시민 참여 방식을 교육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학생들이 수동적인 제도 순응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회 참여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으로 교육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리박스쿨과 같은 사례를 다시 초래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 본문 103~104쪽, 진냥(희진), 〈리박스쿨 사태, ‘교육의 중립성 위반’이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학교에 틈입한 극우 교육은 역사 왜곡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들어와 있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역사 왜곡과는 달리 교묘하고 은밀하고 꾸준하게 공교육 활동을 방해한 것은 극우 개신교 성교육이었다. 극우 개신교 성교육 단체는 지금도 반동성애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핵심으로 한 금욕주의 성교육을 전국적으로 촘촘하게 수행하고 있다. 금욕주의 성교육은 교육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반동성애, 반차별금지법이라는 타자 혐오적 극우 정치 활동의 다른 모습이다. 성은 무엇보다 정치적인 쟁점이자 이슈이며, 성교육은 젠더 질서, 성소수자, 가족, 제도, 인권 등 사회의 규범과 가치와 연결되는 내용을 다루므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즉 포괄적 성교육을 할 것인지 금욕주의적 종교적 성교육을 할 것인지는 정치적 종교적 이념에 따라 달라지며, 이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펼쳐지는 곳이 성교육 현장이다.
- 본문 110~111쪽, 장병순, 〈학교로 들어온 극우 성교육〉
나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의 몸과 관련한 경험에 대해 더 많이 편히 이야기할 기회를 우리가 가질 수 있었다면, 자기 선택의 보람이나 실수로 배운 것과 잃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기회를 가졌다면, 누군가 선을 넘었을 땐 소리칠 수도 있고 자신을 돌보며 다시 경계를 세울 수도 있다고 배웠다면, 피해자 자신이 스스로를 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보는 우리의 시선도 매번 같진 않을 거라고 말이다. 유난히 자주 반복되는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피해자를 탓하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우리,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우리가 피해자가 그 일을 겪게 되는 원인, 약점이다. 그 일을 겪은 이의 곁에 설 용기, 그의 곁에서 일상 회복을 함께 할 이를 위한 성교육이 필요하다..
- 본문 135쪽, 백소윤, 〈성차별적 성교육에 민원을 넣자, 소장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프레임화된 이야기 구조 속에서 학생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학생이 어려움이나 문제를 가지게 되었는지 배경과 원인은 모두 삭제된 채 자극적인 결과만 남는다. 교육과 보호를 받아야 할 학생이 오히려 엄청난 언론의 폭력에 노출된다. 대중은 언론이 사건을 소비하는 방식을 따라간다. 사건 이후 미성년인 학생이 지금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학생은 그저 갈등을 증명하는 배경이자, 어느 쪽을 옹호하기 위한 장치처럼 다뤄진다.
- 본문 146~147쪽, 이수현, 〈우리는 학생을 중심에 놓고 있는가〉
자녀의 학대를 경험한 양육자들 중에는 물론 본보기 삼을 만한 해결 과정을 겪으며 피해가 회복된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자녀의 장애로 인한 특수한 어려움이, 학대를 당하거나 학대가 은폐되기 쉬운 조건이 됨을 체감하고 있었다. 사건 당시에는 미처 대처를 못 하고 나중에야 인지하게 된 케이스도 많았다. 계속 봐야 할 교사와 학교 구성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한층 더 어려웠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태반이 학대 사실 자체에 대한 인정부터 벽에 부딪혀 해결 과정 내내 고통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조사 등의 과정에서 진술 조력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녀의 장애가 고려되지 않아 공적인 해결 과정에 대한 기대 자체가 꺾인 경험과 억울함,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토로했다. 더욱이 교권을 거론하면서 학대를 훈육이었다고 주장할 때, 구조적 해결 자체가 막히는 데 대한 무력감을 호소했다.
- 본문 156~157쪽, 백선영, 〈장애 아동 아동학대 문제, 교육의 본령을 떠올리자〉
《오늘의 교육》 87호 특집은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도 민주적이지 못한 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짚는다. 절차로서가 아닌 삶의 방식이자 공동체의 원리로서 민주주의를 회복할 필요성을 제안하며, 학교가 다시 책임을 묻는 질문 앞에 서 있음을 상기시킨다.
기획에서는 리박스쿨과 극우 성교육이 훼손한 가치들, 장애 학생 아동학대 판결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톺아본다.
특집
‘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폭염 속에서,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 얼어붙은 세상에 민주주의의 온기를 지피고자 했던 광장의 시민들을 떠올린다. 계절이 바뀌듯 탄핵과 새로운 정부의 탄생은 그 간절함이 만들어 낸 역사의 순리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시민의 힘으로 쌓아 올린 제도와 권리가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며,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삶 속에서 실현해야 할 실천임을 일깨운다.
학교도 이 질문에서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가르친다고 말하는 학교는 정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간이었는가? 이번 특집은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도 민주적이지 못한 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짚는다. 절차로서가 아닌 삶의 방식이자 공동체의 원리로서 민주주의를 회복할 필요성을 제안하며, 학교가 다시 책임을 묻는 질문 앞에 서 있음을 상기시킨다.
채효정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민주주의의 의미와 실천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파이 나누기’ 토론 사례를 통해 민주주의는 단순한 절차나 좋은 대표 선출이 아니라, ‘민중이 주체가 되는 정치’임을 강조한다. 제도나 형식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성립하지 않으며, 민중 스스로가 권력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일상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조진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지를 조명한다. 교장의 재량에 집중된 권력 구조, 형식적인 회의와 비민주적 인사 시스템은 교사와 학생 모두의 자율성과 평등을 제약한다. 특히 소수자 교사와 학생 등은 가시화되지 못하고 쉽게 배제되며,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학교 문화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협력하는 민주주의 감각을 키우기 어렵게 만든다. 학교는 구성원 모두가 ‘몫’과 ‘목소리’를 지니고 참여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의 장이 될 수 있다.
김소형은 한국 사회와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차별금지법과 포괄적 성교육을 제안한다. 12.3 내란 이후 시민들이 가장 강하게 요구한 변화는 ‘차별 금지·성평등·소수자 권리’였으며, 이는 정치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특히 학교 현장은 혐오 표현, 성희롱, 성소수자 차별이 일상화된 공간이기에, 포괄적 성교육과 차별금지법이 함께 작동해야 학교가 민주주의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혜정은 광장의 민주주의가 오늘날 학교에 던지는 질문에 주목한다. 광장의 주체였던 청년들은 민주주의를 ‘나중’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실현해야 할 삶의 방식으로 보았다. 그러나 학교는 능력주의 질서 속에서 학생을 고립된 개인으로 만들고, 연결과 연대를 감각하기 어렵게 한다. 입시 중심의 선형적 시간 속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는 유예된다. 학교 안에는 능력주의에 꼭 들어맞지 않는 다양한 몸들이 존재하며, 학교는 이들 모두가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지금 여기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기만 할 뿐, 실상은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데 그치고 있다. 회의는 있지만 결정권은 없고, 참여는 있지만 실질적 권한은 없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수직적 권력 구조, 능력주의 경쟁, 차별과 혐오의 방치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들을 조용히 무너뜨린다. 이런 형식적 민주주의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진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체화할 기회를 빼앗고, 결국 ‘민주주의는 말뿐인 것’이라는 냉소만을 남긴다. 이는 민주주의를 제도나 절차에 가두고 일상의 실천으로 확장하지 못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한계이기도 하다. 이제 학교는 민주주의의 ‘모의 연습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존재들이 실질적 권한과 존엄을 지닌 주체로 살아가는 공간, 갈등과 차이를 배움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의 현재는 민주주의는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 내는 것’임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다.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맹수용
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의 ○○○ 민주주의 | 양서영
특집│‘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다시 만들어야 할 새로운 민주주의 | 채효정
- 12.3 이후의 민주주의 교육과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제언
몫/목소리가 소멸된 학교, 모두가 돌보는 민주주의로 | 조진희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차별금지법과 성평등 교육 | 김소형
학교 능력주의의 시간과 유예되는 민주주의 | 이혜정
기획│리박스쿨과 극우 성교육이 훼손한 가치들
리박스쿨 사태, ‘교육의 중립성 위반’이 문제가 아니다 | 진냥(희진)
- 교육의 민주성과 돌봄·온라인의 취약성을 돌아보자
학교로 들어오는 극우 성교육 | 장병순
성차별적 성교육에 민원을 넣자, 소장을 받았다 | 백소윤
기획│장애 학생 아동학대 판결이 말하지 않는 것
우리는 학생을 중심에 놓고 있는가 | 이수현
- 갈등을 조장하는 사회와 사라지는 장애 학생의 권리
장애 아동 아동학대 문제, 교육의 본령을 떠올리자 | 백선영
- 공교육 과정에서의 자녀 아동학대 경험에 대한 양육자 실태 조사
시
문학 시간 / 건이의 편지 | 김은숙
거리 조율 / 감식 | 이중현
기고
학교에서도 언론의 자유가 꽃피려면 | 문성호
- 서울 은평 지역 청소년 언론 〈토끼풀〉의 이야기
에세이
고요한 전주에서 입양 ‘커밍아웃’하기 | 서희
씨앗을 살리는 여행 | 윤상혁
- 〈느티나무 아래〉 공동체 상영회를 마치고
리뷰
사과하고 고백할 용기를 낼 때 | 진선
- 《노키즈존 한국 사회》
광장이 불타오른 뒤 막이 내리고 | 지수
- 《광장 이후》, 《광장의 역설》
오늘 읽기 | 공현
세 줄 새 책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책 | 조현민
책 속에서
지금도 다르게 시작할 수 있다. 오랫동안 정체되었던 민주주의 운동을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 거대한 시위만 ‘실천’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상에서 부당한 것 하나라도 바꾸어 내는 사소한 저항과 실천들을 계속 찾아내고 실행해 보자. 작은 소동을 일으키고 사건들을 쌓아 가자. (……) 필요한 것은 평소에 ‘일상의 민주주의 연습’을 하는 것이다. 스콧은 그와 같은 일상적 저항 습관을 기르는 일을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라고도 했다. 민주주의 근육 키우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위기, 생태 위기가 시시각각 심화되고 있지만 이것을 해결할 새로운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 시간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근육을 만들어 가자. 12.3 이전의 낡은 정치, 가짜 민주주의로 돌아가지 말고, 12,3 이후의 민주주의 교육과 운동을 새롭게 고민하고 만들어 가자.
- 본문 51~52쪽, , 〈다시 만들어야 할 새로운 민주주의〉
회의실에서 혼자 떠드는 사람, 회의실에 오지 않는 사람, 회의실에서 나간 사람, 휴대폰만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평등한 발언권과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다리고, 목소리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학교민주주의는 몫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여 그들이 느끼는 소외와 비통함을, 내 목소리가 우리 공동체에 한몫했다는 정치적 효능감으로 바꾸는 것이다. 몫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서로 목소리를 내면서 합의와 동의를 향해 갈 때 불화와 불일치는 필수적이며, 그러한 과정이 쌓여야 민주주의 근육을 튼튼하게 기를 수 있다.
- 본문 67쪽, 조진희, 〈몫/목소리가 소멸된 학교, 모두가 돌보는 민주주의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자리(Human rights)에 성별을 비롯해 장애·출신 국가·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등으로 분리와 배제 같은 차별적 행위는 들어올 수 없다. 페미니즘 백래시 발언인 “너(선생님) 페미야?”와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 발언인 “너(선생님) 게이야?”는 페미니스트와 게이를 멸칭으로 사용한다. 학교 및 직장과 같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이 발화와 글은 정치적 사상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이중적(복합적) 차별,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분리와 배제 및 낙인 효과를 지닌 혐오의 발언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언은 민주적 규범에 대한 반대와 배타주의 관점이 강조되는 극우주의 언어와 닿아 있다.
- 본문 74쪽, 김소형,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차별급지법과 성평등 교육〉
학교 현장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교실과 학교를 만들어 가려는 실천들은 지금 여기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평등한 교실은 어떤 신체성과 시간성도 환대받는 공간이다. 모두가 평등한 교실에서는 다양한 몸들이 나름의 속도와 방식으로 움직이고 살아도 배제되지 않고 배울 수 있으며, 여기서 학생들은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세계’를 경험한다. 이것은 학교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교실이 바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공간이며, 이 공간에서 낯설고 다른 몸들이 펼쳐 내는 움직임과 감각은 새로운 학교의 질서와 가능성, 나아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 본문 94쪽, 이혜정, 〈학교 능력주의의 시간과 유예되는 민주주의〉
리박스쿨이 얼마나 문제적이고 극우 세력이 얼마나 보기 흉하고 우스꽝스러운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민주적인 교육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우리는 보다 집중해야 한다. 학습자에게 순응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식하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는 선거 참여, 시민단체 활동, 지역 사회 봉사 등 다양한 시민 참여 방식을 교육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포함한다. 학생들이 수동적인 제도 순응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회 참여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교육으로 교육 체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리박스쿨과 같은 사례를 다시 초래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 본문 103~104쪽, 진냥(희진), 〈리박스쿨 사태, ‘교육의 중립성 위반’이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학교에 틈입한 극우 교육은 역사 왜곡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들어와 있었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역사 왜곡과는 달리 교묘하고 은밀하고 꾸준하게 공교육 활동을 방해한 것은 극우 개신교 성교육이었다. 극우 개신교 성교육 단체는 지금도 반동성애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핵심으로 한 금욕주의 성교육을 전국적으로 촘촘하게 수행하고 있다. 금욕주의 성교육은 교육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사실상 반동성애, 반차별금지법이라는 타자 혐오적 극우 정치 활동의 다른 모습이다. 성은 무엇보다 정치적인 쟁점이자 이슈이며, 성교육은 젠더 질서, 성소수자, 가족, 제도, 인권 등 사회의 규범과 가치와 연결되는 내용을 다루므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즉 포괄적 성교육을 할 것인지 금욕주의적 종교적 성교육을 할 것인지는 정치적 종교적 이념에 따라 달라지며, 이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펼쳐지는 곳이 성교육 현장이다.
- 본문 110~111쪽, 장병순, 〈학교로 들어온 극우 성교육〉
나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나의 몸과 관련한 경험에 대해 더 많이 편히 이야기할 기회를 우리가 가질 수 있었다면, 자기 선택의 보람이나 실수로 배운 것과 잃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기회를 가졌다면, 누군가 선을 넘었을 땐 소리칠 수도 있고 자신을 돌보며 다시 경계를 세울 수도 있다고 배웠다면, 피해자 자신이 스스로를 보는 시선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보는 우리의 시선도 매번 같진 않을 거라고 말이다. 유난히 자주 반복되는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피해자를 탓하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우리,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우리가 피해자가 그 일을 겪게 되는 원인, 약점이다. 그 일을 겪은 이의 곁에 설 용기, 그의 곁에서 일상 회복을 함께 할 이를 위한 성교육이 필요하다..
- 본문 135쪽, 백소윤, 〈성차별적 성교육에 민원을 넣자, 소장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프레임화된 이야기 구조 속에서 학생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학생이 어려움이나 문제를 가지게 되었는지 배경과 원인은 모두 삭제된 채 자극적인 결과만 남는다. 교육과 보호를 받아야 할 학생이 오히려 엄청난 언론의 폭력에 노출된다. 대중은 언론이 사건을 소비하는 방식을 따라간다. 사건 이후 미성년인 학생이 지금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학생은 그저 갈등을 증명하는 배경이자, 어느 쪽을 옹호하기 위한 장치처럼 다뤄진다.
- 본문 146~147쪽, 이수현, 〈우리는 학생을 중심에 놓고 있는가〉
자녀의 학대를 경험한 양육자들 중에는 물론 본보기 삼을 만한 해결 과정을 겪으며 피해가 회복된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자녀의 장애로 인한 특수한 어려움이, 학대를 당하거나 학대가 은폐되기 쉬운 조건이 됨을 체감하고 있었다. 사건 당시에는 미처 대처를 못 하고 나중에야 인지하게 된 케이스도 많았다. 계속 봐야 할 교사와 학교 구성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한층 더 어려웠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태반이 학대 사실 자체에 대한 인정부터 벽에 부딪혀 해결 과정 내내 고통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조사 등의 과정에서 진술 조력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녀의 장애가 고려되지 않아 공적인 해결 과정에 대한 기대 자체가 꺾인 경험과 억울함,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토로했다. 더욱이 교권을 거론하면서 학대를 훈육이었다고 주장할 때, 구조적 해결 자체가 막히는 데 대한 무력감을 호소했다.
- 본문 156~157쪽, 백선영, 〈장애 아동 아동학대 문제, 교육의 본령을 떠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