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3호] 정말로 인구가 문제인가


 《오늘의 교육》 63호는 교육에서 중대한 위기로 언급되는 인구 문제를 다루었다. ‘정말로 인구가 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인구와 교육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통념을 비판하고 다른 관점을 제안하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특집에 이어서는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의 교육권 실태와 교육 공공성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기고와 리뷰 지면의 부안 성추행 가해 교사 사망과 이어진 왜곡, 백래시를 지적한 글,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과 특수학교에 관해 더 생각해 볼 점을 짚은 글 등은 우리 사회가 귀기울여야 할 문제의식을 던진다. 웹툰, 게임 비평을 통해 동시대성과 교육의 의미를 고찰하는 엄기호와 학생들의 글도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 준다.


특집

정말로 인구가 문제인가


저출생과 그에 이어지는 고령화, 인구 감소는 미래 사회를 규정하는 조건이자 눈앞에 닥친 현실로 자주 거론된다. 학령 인구 감소에 맞춰 대학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때, 교육을 통해 저출생이나 지방 소멸을 극복하자고 할 때, 인구는 ‘미래 교육’에서 제법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오늘의 교육》 63호 특집에서는 ‘지금과 같은 인구 담론은 어디를 지향하는가?’, ‘교육 영역에서 인구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우리 사회의 인구에 관한 논의를 살피며, 다른 인식 틀과 지향을 제시한다.

채효정은 인구론이 정치적 문제를 자연적 현상인 것처럼 오인시키고, 탈정치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교육 정책이 학령 인구 감소론 등에 떠밀려 결정되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임과 동시에, 교육이 인구 담론을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는 촉구이기도 하다.

강석남의 글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학생 정원 정책을 살펴보며 학령 인구가 아니라 정책이 문제임을 지적한다. 학생 정원 정책은 자본의 수요에 맞춰 상대적으로 과잉한 노동력을 공급하려는 의도로 결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인구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항으로 문제를 파악할 것이 아니라, 교육의 사회 경제적 의미와 정부 정책 등을 아울러 봐야 함을 보여 준다.

나영의 〈인구교육이 말하지 않는 것들〉은, ‘인구교육’의 사례를 통해 교육이 인구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인구교육은 출산, 결혼, 가족 등에 대한 인식을 바꿈으로써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교육 목표인데, 이러한 관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구가 아니라 권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글이다.

특집에 이어지는 ‘지역을 배반하는 교육’ 기획에는 인구 감소로 통폐합되고 없어지는 학교들과 농어촌 지역의 상황을 담았다. 학교 통폐합과 교육권 박탈을 겪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는 정말로 저출생과 인구 감소가 문제인지, 아니면 지역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역성을 잃은 교육을 바꾸어야 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저출생 현상은 한국 사회가 ‘새로운 아이가 태어날 수 없는 사회’임을 보여 주는 증상으로, 분명 고민과 대책이 요구된다. 하지만 인구 문제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들은 역설적이게도 문제의 실체를 가린다. 교육·사회 제도가 다양한 삶의 결들을 지우고 사람들을 단지 머릿수로 ‘인구화’할수록, 정치적 모순을 가리고 탈정치화할수록, 인구로 표출되는 불평등과 불균형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오늘의 교육》에 담은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의 인구 문제에 대한 논의가 너무 얄팍한 것은 아닌지 성찰하고, 특히 교육 영역에서 인구 문제란 무엇이고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차례


10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12 읽은 이야기 | 이성희 PDF

 

특집 정말로 인구가 문제인가

20 인구, 정치, 교육 | 채효정 PDF 바로 읽기

40 인구가 아니라 정책이 문제다 | 강석남 PDF 바로 읽기

- 한국 교육 제도는 ‘인구’와 어떻게 만나 왔는가

56 인구교육이 말하지 않는 것들 | 나영 PDF 바로 읽기

 

기획 | 지역을 배반하는 교육

67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 최은숙 PDF

- 지역 작은 학교의 교육권 실태

79 떠나게 하는 교육, 내보내는 교육을 성찰하다 | 황민호 PDF 바로 읽기

  

기획 | 교육 공공성을 다시 생각하다

95 교육에서 공공성과 민주성의 의미 | 김원석 PDF

105 생색내기와 난개발식 입법을 넘어 | 오동석 PDF 바로 읽기

- 교육 공공성을 위한 개헌과 입법의 과제

 

연재 

한국 교직의 보편성과 특수성 ③

116 교사와 교사 교육의 제도적 기반에 대하여 | 이혁규 PDF

 

     교육 현안 꺼내 보기 ⑥

134 사립 학교를 공립화하는 게 해결일까? | 진냥(희진) PDF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④

144 누구를 위해 ‘개별화’교육계획은 존재하는가 | 윤상원 PDF

- 고립을 넘어서기 위한 조건들

 

에세이

158 ‘농’의 편에 서서 | 하승수 PDF 바로 읽기

- ‘공익법률센터 농본’을 만든 이유

 

기고

170 침묵의 4년, 다시 말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 박슬기 PDF 바로 읽기

- 부안 성추행 가해 교사 사망 사건 그 후

184 세계유산 군함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 김종구 PDF

200 1991년 5월 속에는 고등학생운동이 있었다 | 빈둥 PDF

- 고등학생운동 열사 재현과 애도의 정치

214 코로나19, 청소년의 삶으로 다시 읽기 | 이하영, 권민경, 최유경 PDF

 

특별 기획

229 미디어를 통해 시대와 만나는 교실 | 엄기호, 이정민, 박도은, 신수지 PDF

 

리뷰

270 ‘학교 가는 길’ 위에서 던지는 질문들 | 하금철 PDF 바로 읽기

- 〈학교 가는 길〉

284 어떻게 하면 멸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이수종 PDF

- 《인간의 종말》, 《내일 지구 – 과학교사 김추령의 기후위기 이야기》

293 “데모는 뭐하러 가여?” | 김정래 PDF

- 《지금은 없는 시민》

 

305 오늘, 읽기 | 석영, 김수현, 공현  PDF

309 내가 밀고 있는 단체 마중, 기찻길옆 작은학교 | 홍세화, 이진주 PDF



책 속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이 야기한 양극화 속에서, 소수의 특권적 삶과 그 삶을 떠받치는 잉여화된 다수, 도시 젠트리피케이션과 농촌 공동화,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은 동시 진행 중이다. 한쪽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과 인구가 몰리고, 다른 한쪽은 텅텅 비어 가고 있다. 현재의 인구 절벽론과 지방 소멸론 같은 인구 담론이 만들어 내는 관점은 이런 인구 잉여화와 이동성에 대한 정치 사회적 해석을 가로막고, 유출과 유입, 감소와 증대 간의 숫자로 치환된 양적 문제로 접근하게 만든다.

- 본문 29-30쪽, 채효정, 〈인구, 정치, 교육〉


 상대적 과잉 교육은 교육 제도가 학생 정원의 규모를 상정할 때 학령 인구가 아니라 노동 시장에서 자본의 수요에 그 준거점을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학생 정원에 있어 학령 인구는 학생 정원의 최대치이자, 노동 시장으로 상대적인 과잉 공급의 정도가 안정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에 위협이 되지 않을 규모를 상정하는 근거로만 기능해 왔다. 학령 인구의 어느 정도 비율을 학생 정원으로 상정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적정한지, 민주적인지, 때로는 정의로운지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 본문 51-52쪽, 강석남, 〈인구가 아니라 정책이 문제다〉


 인구는 특정한 나라, 지역에 사는 사람의 수를 뜻한다. 정의로만 보면 그저 객관적인 지표일 뿐인 것 같지만 실제 인구 정책에서 고려하는 인구가 누구인지를 보면 한 사회의 중요한 인구 집단으로 고려될 자격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령 저출산 정책에서 고려하는 인구는 누구인가. 아무리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라고 해도 출산율 제고를 위해 중요하게 고려되는 집단은 한국 국적을 지닌 한국인이자 비장애인, 시스젠더인 사람이며 언제나 이성애를 전제로 한다.

- 본문 59-60쪽, 나영, 〈인구교육이 말하지 않는 것들〉


지역의 학교를 살려 내고 아이들의 교육권을 지키는 데에는 시민들의 의지와 역량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을 효율성을 가장한 경제 문제로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 본다. ‘고작 20명 남짓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유지하고 교사를 배치하고 억대의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교육과 관련한 중요 문제들을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 본문 77쪽, 최은숙,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농촌의 교육 문화 공간 인프라와 서비스 인프라는 열악하기 그지없으며, 농촌 학교에서도 농업, 농촌, 지역을 잘 모르는 도시, 서울, 글로벌 중심의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생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통폐합의 압박은 거세다. 사면초가 형국이다. 기대고 비빌 만한 언덕 자체가 없다. 학생 수는 줄고, 통합해야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 앞에 선택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통합하는 순간, 그나마 지역과 끈이 있었던 학교는 지역과 유리되고 더욱더 섬이 된다. 지역성이 거세되고 이질적인 존재로 남는 것이다.

- 본문 82쪽, 황민호, 〈떠나게 하는 교육, 내보내는 지역을 성찰하다〉

 

이제 학교가 공공성을 지닌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더 명확하게 그려 볼 수 있다. 그것은 학교가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수많은 측면과 관점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이 때가 되면 학교라는 공간에 모여 함께 교육을 받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낯선 이들 그리고 낯선 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다른 말로 “차이에 대한 참여”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동시에 공동의 세계를 구축할 힘을 얻는다.

- 본문 99쪽, 김원석, 〈교육에서 공공성과 민주성의 의미〉


일반적 경향에 비추어 보면 교사와 교사 교육에 관한 법령과 제도 또한 대중의 상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적 통념과 깊이 관계 맺고 있다. 나는 이런 사회적 통념을 크게 두 가지로 파악한다. 하나는 “가르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다”라는 통념이다. 다른 하나는 “학교급이 낮아질수록 가르치는 전문성이 덜 필요하다”라는 통념이다.

- 본문 128쪽, 이혁규, 〈교사와 교사 교육의 제도적 기반에 대하여〉


본 사건에는 여전히 성추행 ‘의혹’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며, 마치 양측의 주장에 따라 사실이 대립되는 것처럼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 송 교사가 얼마나 ‘좋은 교사’였는지, 학생들이 얼마나 ‘철없는 존재’인지 강조하는 발화들이 덧붙어, 개인적 잣대로 사건을 판단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가해자의 의도가 어땠는지, 송 교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따라 사실이 달라질 수는 없다. ‘교육 목적의 신체 접촉’인지 아닌지의 여부나, 피해 학생들의 감정 변화 역시 사실을 바꿀 수 없다. 명백히 확인된 사실은 동의 없는 신체 접촉과 체벌이 있었다는 것이다. 만지는 사람과 견디는 사람이 있었다.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은 학교 내에서 교사의 위계로 발생한 폭력이었다. 이 ‘사실’이야말로 본 사건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어야 한다.

- 본문 176쪽, 박슬기, 〈침묵의 4년, 다시 말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 속 청소년들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헤아려지지 않은 채 충분히 애도되지 못했다. 정부 당국과 학교 등은 청소년의 자살에 ‘성적 비관’ 등의 프레임을 씌워 자살 원인을 개인의 의지 부족과 나약함으로 간주하고 죽음을 왜곡하고 호도했다. 김수경이 교사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투신한 이후 신문, 텔레비전 등에서는 열사의 죽음을 성적 비관 자살로 보도하며 교사의 폭언과 폭행을 은폐했고, 학교는 열사에 대해 성격과 정신에 문제가 있었다며 폄훼했다.

- 본문 201-202쪽, 빈둥, 〈1991년 5월 속에는 고등학생운동이 있었다〉

 

웹툰을 읽거나 게임을 하는 ‘실천적 행위’를 통해서는 동시대성을 응시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이것은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말초적인 재미에 몰입하게 하고 시대에 대한 ‘인상’을 주는 정도에 그치는 것일까? 그래서 미디어 리터러시라는 말이 함의하는 것처럼 그 미디어의 교묘한 책략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 속임수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전부일까? 혹은 그 미디어를 다루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그 콘텐츠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동시대성’을 접하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강의실/교실은 학생들이 콘텐츠 소비를 통해 접하는 동시대성에 대한 이야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 본문 234쪽, 엄기호·이정민·박도은·신수지, 〈미디어를 통해 시대와 만나는 교실〉


특수학교는 통합 교육 환경의 부재로 인해 일반 학교에서 밀려난 장애 학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는 곳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부모들이 갖는 교육적 기대와 욕구도 위축되어, 특수학교가 그저 낮 시간에 아이를 맡아 주는 기계적인 돌봄 기능만이라도 잘해 주길 바라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장애 학생의 부모들이 무릎까지 꿇어 가며 특수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것을 마치 그들의 순수한 교육 수요를 표출한 것인 양 오해해서는 안 된다. 냉정히 말해서 ‘무릎 호소’는 자녀 돌봄 압박에 대한 현실적 두려움과 절박함을 표출한 것이지, 교육적 욕구의 표출은 아니었다.

- 본문 279-280쪽, 하금철, 〈‘학교 가는 길’ 위에서 던지는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