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1호] 경쟁과 불평등에 맞서는 교육

《오늘의 교육》 71호는 자본주의 교육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자본주의 교육에 저항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평가했다. 우리가 비판하는 자본주의 교육이란 무엇인지, 경쟁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교육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지를 더 구체화하려는 시도이다. 기획과 연속 기획 지면에서는 최근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해 짚어 보며, 진보 교육감 및 ‘민주 진보 교육’에 대해 성찰하고 앞길을 모색했다. 또한 ‘이대남’ 담론 및 안티 페미니즘 현상에 대해 사회적·역사적으로 분석한 기고와 《보통 일베들의 시대》 리뷰 등에서는 젊은 세대의 보수화 및 사회적 혐오 현상 등에 대해 입체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특집
경쟁과 불평등에 맞서는 교육

《오늘의 교육》이 비판해 온 자본주의 교육이란 단지 직접적으로 시장 경제에 대한 내용을 가르치는 교육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교육은 자본주의적 질서와 체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자본주의적 인간관과 세계관에 근거한 교육, 자본주의에 맞는 삶과 인간 그리고 자본주의의 현실을 재생산하는 교육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교육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교육사회학과 계급 재생산 이론을 오늘날의 시대에 맞게 갱신하려는 시도이자, 자본주의의 영향력에 저항하는 교육적 실천을 모색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오늘의 교육》 이번 호는 자본주의 교육에 저항하는 시도들을 소개해 본다. 자본주의 교육에 맞서는 노력이 어떤 것들인지를 보여 줌으로써, 우리가 저항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더 명확히 드러내려는 것이다.
연혜원의 〈대학거부, 선언의 정치〉는 자본주의 교육의 특징 중 하나인 경쟁과 능력주의에 대한 저항인 대학거부운동을 다룬다. 그는 투명가방끈으로 대표되는 대학/입시거부가 교육사회학의 고전 《학교와 계급재생산》이 묘사한 노동 계급 재생산의 과정과 닮아 있음을 짚는다. 그럼에도 대학/입시거부가 계급의 재생산에 머물지 않는 이유를 ‘선언’을 통해 연대와 정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찾는다. 교육이 만드는 차별에 순응하지도, 그 안에서 성공을 추구하지도 않고, 그 실체를 간파하고 반항 이상의 저항의 정치를 만드는 것이 의미 있음을 역설한다.
진냥(희진)의 글은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교육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적경제교육에 대해 살펴본다. 지금의 경제교육은 시장주의적인 세계관과 인간관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는 시장주의를 총체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러한 관점과 문제의식이 희미해진 채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창업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교육으로 변질된다면 제대로 된 사회적경제교육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김형신의 〈자율성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다〉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왜 자율성이 더욱 화두가 되는지를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자율성은 민주시민교육이 중요하게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경제적 불평등을 불러오고 정당화하는 자본주의와 정치적 평등을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가 상충하기에, 민주시민교육을 충실히 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교육에 대한 저항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의 운동이나 정책으로 체제를 변혁하고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실천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나왔으며 어디로 향하고 누구와 연결될 것인지다. 교육을 바꾸기 위한 운동과 실천 들이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교육을 넘어서는 흐름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차례


10  읽은 이야기 | 여태전 PDF

특집 경쟁과 불평등에 맞서는 교육
15 대학거부, 선언의 정치 | 연혜원 PDF 바로 읽기
- 재생산을 넘기 위한 저항의 연대
25 사회적경제교육은 자본주의 교육의 대안일 수 있는가 | 진냥(희진) PDF 바로 읽기
38 자율성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 김형신 PDF 바로 읽기

기획 | 국가교육위원회, 무엇이 문제인가
49 국가교육위원회,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지만 | 김성천 PDF
- 국가교육위원회에 대한 기대와 문제점, 비판적 진단
56 국가교육위원회, 잘 안 될 것이다 | 홍인기 (온라인 비게재)
64 청소년이 실종된 국가교육위원회 | 김자유 PDF 바로 읽기

지상 중계 | 발달 장애와 마을 포럼
71 사회 안에 ‘자리’를 만드는 노동 | 김유미 PDF
- 노들장애인야학 권리중심 일자리
81 “이것도 노동이다” | 소형민 PDF
- 피플퍼스트와 노동 이야기
91 우린 마을에서 놀며 일한다 | 최경화 PDF
- 사부작 청년들의 일과 마을살이
97 안심하고 일하자! 안심하고 살자! | 조윤식 PDF
- 사람이야기의 관계가 있는 일자리 만들기

연속 기획 | 변방에서 온 편지 – 전남 완도
106 농촌 유학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경험자의 이야기 | 이명희(마리) PDF
- 어딘가에 산다는 것은 그곳에 애정을 갖는다는 것

연속 기획 | 민주 진보 교육의 시효
125 민주 진보 교육은 교육감의 것인 적이 없다 | 김진 PDF 바로 읽기
135 막을 내리는 진보 교육감 시대, 어떻게 해야 하나 | 염정수 PDF
- 진보 교육감 12년에 대한 평가와 성찰

연재
몸을 살리는 교육 ②
144 놀이는 젠더를 모른다 | 변화의월담 PDF

함께 보는 교육 연구 ⑤
165 지금도 학교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충분히 부족한 곳이다 | 이선미 PDF

에세이
175 시류에 역행하기, 그 좌절과 희망의 단상 | 이대길 PDF
186 나는 학생을 구원할 수 없다 | 여름 PDF

기고

191 우리의 ‘after’를 위해 | 〈애프터 미투〉 프로젝트 팀 PDF
- 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를 만들고 상영하고 이야기하기까지
203 ‘이대남’,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최성용 PDF
- 누적된 억울함과 불신 위의 청년 세대

리뷰
218 실패한 세대론과 혐오의 시대를 읽어 내기 | 김건수 PDF
- 《보통 일베들의 시대》
229 ‘난잡한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중 | 림보 PDF
- 《가족을 구성할 권리》
237 먼저 울고 있는 아이들의 말을 듣자 | 오은선 PDF
-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244 오늘, 읽기 | 공현 PDF
248 내가 밀고 있는 단체 노들장애인야학 | 설원민 PDF



책 속에서


폴 윌리스가 기술한 ‘싸나이’들과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이 학교라는 체제에 저항하는 행위를 통해 각각의 사회에서 기존의 계층에 가까스로 머물거나 도리어 계층 하락을 겪는 과정을 보면, 둘은 같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두 집단의 성격과 미래는 명확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두 집단이 달라지는 지점은 개인적인 삶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의 차원이다. 선언이 이 차이를 가능하게 한다.

- 본문 22쪽, 연혜원, 〈대학거부, 선언의 정치〉


사회적 기업에 소속된 노동자가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을까? 사회적 경제의 원리나 가치를 배우지 않고 이루어지는 사회적 경제 기업 만들기 교육이 자본주의의 창업교육이랑 구별될 수 있을까? 기업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그 기업의 운영이 사회적 경제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사회적 기업이라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변질된 사회적경제교육에서 여전히 인간은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개인일 뿐이다.

- 본문 35쪽, 진냥(희진), 〈사회적경제교육은 자본주의 교육의 대안일 수 있는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민주 시민의 속성 또는 민주시민교육의 목적으로서 자율성을 기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나의 역할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살펴보는 일은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둘 사이에는 태생적인 모순이 있는 것 같다. 정치적 ‘평등’을 근본 가치로 삼는 정치와 ‘불평등’을 불러오는 경제 체제가 현실에서는 공존하고 있다. 나는 민주시민교육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것이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이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게 돕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 본문 42쪽, 김형신, 〈자율성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2022년 처음으로 임명된 1기 국가교육위원회 위원들을 살펴보면 여당 추천 인사 3명과 대통령 추천 인사 5명, 차관, 시·도지사 추천 위원 1명을 합치면 위원장을 포함해서 모두 10명이 친정부 성향의 인사이다. 대학이나 전문 대학을 대표하는 위원들도 보수 성향을 가지기 쉽다. 우리나라에 사립 대학이 더 많기 때문이다. 대학을 대표하는 2명과 보수 성향을 가지는 교원단체 1명을 포함하면 3명의 보수 성향 위원이 있다.
여소야대(與小野大)에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다수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21명 위원 중 13명이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보수 성향의 교육 정책이 채택될 가능성이 절대적이다.

- 본문 59쪽, 홍인기, 〈국가교육위원회, 잘 안 될 것이다〉


교육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청소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보면 우리 교육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번에도 ‘청소년 배제’라는 기성 질서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행법은 국가교육위원회에 청소년(단, 초·중·고 재학생으로 한정)과 청년을 묶어 총 2명의 위원을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청소년 1석, 청년 1석 배정을 고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국회 추천 과정에서는 이 2석을 모두 대학생으로 채워 버렸다. 게다가 위원 구성을 살펴보면, 전·현직 교수, 대학생 등 대학의 이해를 대표하는 사람이 전체 위원 21명 중 11명으로 53%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대학’교육위원회라고 부를 만하다.

- 본문 65쪽, 김자유, 〈청소년이 실종된 국가교육위원회〉

발달장애인이 지역에서 일상을 누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비장애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지역에 편안히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일하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문화·예술을 누리는 삶. 안타깝게도 발달장애인에겐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누려 한다. 최소한의 의존으로 일상이 가능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지역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지금처럼 개인 간의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노동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면,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인 노동에서 누군가는 차별받고 배제될 거다.

- 본문 92쪽, 최경화, 〈우린 마을에서 놀며 일한다〉

이전 김상곤 교육감의 공약부터 최근 ‘진보’ 교육감 후보까지 공약들을 보자면, 앞서 이야기한 대표 정책들을 제외하고는 보수와 진보 후보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가장 가까이 치러진 2022년 선거에서는 공약만 봐선 누가 보수이고 누가 진보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입시 경쟁 교육이라는 거대한 틈바구니에서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고, 진보 교육감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껍데기는 민주당이냐 국민의힘이냐를 가르는 정도의 의미 이외에 아무런 뜻을 지니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본문 132쪽, 김진, 〈민주 진보 교육은 교육감의 것인 적이 없다〉

우리 수업의 문제는 젠더에 앞서, 학생들이 중요하지 않은 수업을 꾸린다는 것이었다. 수업의 중심은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몸이 아닌, 선생님의 몸, 혹은 선생님이 선망하는 몸이다. 한국 선생님들은 대개 ‘강한’ 몸, ‘능숙한’ 몸을 선망한다. ‘즐겁게 움직이는’ 몸, ‘나의 고유함을 잘 아는’ 몸, ‘창의적으로 놀이하는’ 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몸, ‘섬세하고 사려 깊은’ 몸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다. 선생님은 최대한 잘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 하고,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우열의 기준이 명확하다.

- 본문 154쪽, 변화의월담, 〈놀이는 젠더를 모른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학교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교육부의 이번 발표는 더욱 답답하게 느껴진다. 최소한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는 생각하지 않고, ‘성소수자’가 교육과정에 포함되니 마니 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것은 학생들이 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태다.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것은 성소수자 학생들이 피해를 입을 때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성소수자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 학교는 폭력을 방치하고 오히려 피해 학생이 피해 사실을 숨기게 하여 피해 정도가 더 심각해지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 본문 167-168쪽, 이선미, 〈지금도 학교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충분히 부족한 곳이다〉

학교는 여전히 기계적 공평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무엇을 갖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강박에 자신을 스스로 몰아친다. 실패해도 괜찮고, 또다시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말은 귓가에만 공허하게 맴돌 뿐 그들의 삶을 움직일 만한 울림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지금 무엇을 소유하지 않아도, 지금 어떤 자리에 오르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으며, 혹 실패해도 다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장치 말이다.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어 그 무게가 천근만근 어깨를 누르고 압박하는 삶을 가볍게 할 그런 장치 말이다.

- 본문 181쪽, 이대길, 〈시류에 역행하기, 그 좌절과 희망의 단상〉

‘이대남’은 갑작스레 출현한 것이 아니라 가깝게는 외환 위기 전후, 멀게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두께를 지니고 있다. 이는 곧 그들의 굴절되고 뒤틀린 억울함이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폭력과 부정의의 역사적 결과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비극적인 것은 애도되지 못한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국가의 적극적 무책임으로 인한 참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교사들의 말을 듣지 않고 불신감을 강하게 드러낸다는 보고가 많았다. 그 청소년들이 현재의 ‘이대남’이 되고 ‘이대녀’가 되었다.

- 본문 214-215쪽, 최성용, 〈‘이대남’,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