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교육》 89호 특집은 ‘이런 게 민주주의구나’ 하고 느낀 순간, 민주주의에 필요한 역량 또는 태도를 익힌 과정,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한 기억, 혹은 반면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민주주의를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과 언어로 감각하고 가능성과 조건을 톺아보기 위해서다.
기획에서는 영화 〈3학년 2학기〉를 계기로 주목받고 있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졸업생들의 현실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번 호부터 학교 텃밭의 철학과 지향을 좋은 교육과 좋은 삶으로 연결해 고민하는 ‘교육농(農)’ 연재를 시작한다.
특집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겉모습과 형식만 있는 ‘민주주의 흉내’, 지식만 가르치는 죽은 민주주의교육, 반민주적인 방식과 문화 속에 간판만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학교 등……. 지금 우리 사회의 앙상한 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비판의 논의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알게 될까? 사람들이 어떤 장면과 경험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게 되는지 둘러보면, 새로운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교육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교육》에서는 ‘이런 게 민주주의구나’ 하고 느낀 순간, ‘나에게 민주주의는 이것이다’ 하는 경험과 깨달음, 민주주의에 필요한 역량 또는 태도를 익힌 과정,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한 기억, 혹은 반면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민주주의를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과 언어로 감각하고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조건을 톺아보기 위해서다.
이윤승은 올해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주력하여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한 1년을 돌아보며,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참여한 모습이 민주적인 학교가 아닐까 한다. 여전히 폭력적인 학교 현실을 묘사하며 끝나는 한 편의 콩트 같은 글이 학교 민주주의의 복합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최보근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밤에 국회로 달려갔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날 국회 앞에 모여 불법 계엄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이들 중 다수는 이미 거리에서 투쟁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노동자, 장애인 투쟁에 연대하면서 경험하고 달라진 점, 거리에서 함께 만들어 가며 체험한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김지연의 〈동그라미 안에서〉는, 초등학교 학급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의 한 방법인 ‘서클 대화’를 꾸준히 하는 이야기다. 때로는 일상생활을 나누고, 때로는 갈등을 해결하는 서클 대화. 둥글게 앉아 모두가 모두를 들으며 공론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은 경험에 기반하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공현은 학교의 형식적인 자치 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럼에도 고등학교 만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형식을 벗어난 민주주의를 익힌 경험을 전한다. 졸업한 뒤 인권단체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을 직접 설계하고 시도한 경험담을 통해 민주주의의 조건에 대한 단상을 말한다.
하승우는 지방의회를 방청하고 행정과 의정을 감시한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묻는다. 시민사회단체 등의 문화는 얼마나 민주적인지, 어떻게 우리 내부의 일상의 민주주의를 강화할지 고민을 던진다.
치리는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단체에서 활동하며 장벽에 부딪혔던 일을 꺼내놓는다. 서로 다른 언어의 장벽, 불평등한 권력관계 등의 조건 위에서 약자들과 소수자들에게 민주주의란 어떻게 가능할지 논한다.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과 노력, 거리와 광장에서의 투쟁에서 배운 것, 지자체에서 행정을 감시하고 참여하며 느낀 점 등 이번 《오늘의 교육》 특집은 다양한 현장, 다양한 층위에서 민주주의를 조명한다. 다채롭고 입체적인 사유와 통찰이 담긴 글들은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당신에게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함께 공유하고 익혀 나갈 수 있을까.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백호영
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는 무엇을 놓쳐 버린 것일까 | 채효정
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함께 만드는 즐거운 학급, 이런 게 민주주의 아닐까 | 이윤승
거리에 나서 비로소 주인이 되다 | 최보근
동그라미 안에서 | 김지연
민주주의를 자치하며 배웠습니다 | 공현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민주적일까 | 하승우
- 지방의회에서 단체 문화까지,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언제 나의 ‘말’이 되는가 | 치리
기획 | 3학년 2학기, 공백과 비틀거림의 시간
현장실습생을 응원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내일을 응원하는 일 | 오성훈
대학 대신 일터로 향하는 청소년들이 바라본 학교와 사회 | 신수연
현장실습 청소년과 비경제활동 청년의 불안정한 삶 | 박내현
후속│‘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교사가 허락하는 민주주의’의 한계 | 여름
-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일의 어려움
학생들의 극우화? | 조영선
- 후퇴하고 있는 학교 민주주의
학교 민주주의, 학교의 주민들이 모두 인정받는 연대 | 성열관
시
윤 내과 / 목적지 | 이장근
잎사귀 / 얼떨결 | 김은영
연재 | 교육농 - 좋은 교육과 좋은 삶을 위하여 ①
느림의 힘, 관계의 복원 | 정용주
- 텃밭과 함께하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
기고
핀란드의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 이혁규
‘학원 밤 12시 조례’, 청소년은 기계가 아니다 | 수영
에세이
삶의 나침반을 어떻게 놓아야 할지 깊이 사색하는 시간이 되길 | 전희식
- 고 김인봉 선생님을 추모하며
리뷰
서로 공명하고 연결되는 ‘가치’에 더 주목해야 | 전세란
- 《인공지능이 가르칠 수 있다는 착각》
성노동자의 관점으로 부채 읽기 | 유원
-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
불순한 어린이에게 스며들기 | 이은진
- 《불순한 어린이들》
중요한 걸 중요하게 여기기 | 박일환
- 《말더듬이 선생님》
218 오늘 읽기 | 공현
220 세 줄 새 책
224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책 | 조현민
책 속에서
그날 들었던 ‘닥치는 대로’와 ‘악착같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박혀 빠지질 않는다.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악착같이 돈만 벌어야 하는 삶이 좋은 삶이 아니란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와, 이를 위해서는 좋은 노동이 필요하며, 그것이 어떤 노동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해 본 적이 없는데, 노동의 공론장은 비참한 사고로 가득 차 있다. 노동하는 법 - 노동조합 활동을 포함하여 – 에 대해 알지 못하고, 좋은 노동과 좋은 삶의 조건이 와해해 버린 곳에서 노동은 오직 돈 버는 수단이 되고, 노동에 대한 계급적 긍지와 사회적 규범이 무력한 곳에서는 ‘닥치는 대로’만이 남는다. ‘살만한 삶’을 살 가능성이 봉쇄되고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비난하고 계몽할 수 있을까. 빚지는 청년들을 ‘소비의 욕망’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 본문 15쪽, 채효정, 〈우리는 무엇을 놓쳐 버린 것일까〉
민주적인 절차와 협의, 선거와 자치 활동에 더 신경을 썼던 예전의 학급보다, 안전과 건강만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올해 학급에서 더 민주적인 환경이 만들어졌다.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정했고, 참여는 자유로웠고 꽤 자발적이었다. 학급 회의 시간이 아니어도 급히 정해야 할 것들은 조회나 종례 시간에 짬을 내어 학급 임원들이 회의를 진행해서 정했고 왜 종례 시간이 늦어지냐고 불만을 가지는 때도 없었다. 지하철 시간이 촉박한 학생은 일찍 갈 수 있었고 대신 다른 학생이 회의 내용을 단체 대화방에 올려 줘 동의 여부는 나중에 말해 줘도 됐다. 회의를 한 번만 해서 그 시간에 다 정하기보다는, 여러 번 회의를 할 것이었기에 그래도 괜찮았다.
- 본문 25~26쪽, 이윤승, 〈함께 만든 즐거운 학급, 이런 게 민주주의 아닐까〉
혹자는 양복 입은 사람들이, 고상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조곤조곤한 말투로 대화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라고 여긴다. 약자들이 정부와 기업과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고 압력을 가하려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대화가 아니라 굴복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미안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상한 테이블에 앉을 기회도 없다. 운이 좋아 고상한 테이블에 앉아도 그것이 대화가 되는 자리라고 할 수 없다.
- 본문 32~33쪽, 최보근, 〈거리에 나서 비로소 주인이 되다〉
모두가 감정을 털어놓고 난 뒤에는 이 갈등을 해결하고 교실에 다시 평화를 가져올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보통 특별한 해결 방법은 없고 그냥 사과하고 다음부터는 조심하자는 것이 전부다. “먼저 사과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라고 물으면 보통 처음에 제일 씩씩거리며 분해하던 아이가 제일 먼저 손을 든다. 오늘의 경우에는 정민이었다. 여전히 눈에 눈물이 맺혀 있지만 이번에는 미안해서 그렇다고 한다. 서클의 신비한 점 중 하나다. 몇 차례 사과가 오가고 있으면 사건과 별로 상관없는 아이가 갑자기 자기도 사과하고 싶은 게 있다고 손을 들기도 한다. 몇 달 전의 일인데 생각해 보니 미안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몇 달 전 일을 사과받고 싶다고 손을 드는 아이도 있다. 그럼 지목받는 아이는 사과를 하고. 싸움은 하나인데 사과하는 아이들은 많기도 하다. 이어지는 사과를 따라 평화도 빙글빙글 돌아간다.
- 본문 39쪽, 김지연, 〈동그라미 안에서〉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수평적인 관계의 개성 강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고픈 일을 제안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역할을 분담해 협업하고 성과를 추구하는 과정을 겪어 봤다. 물론 일이 다 잘된 것은 아니었다. (……) 계획한 것 중 반 이상은 실패와 시행착오로 남는 활동이었지만, 성과와 상관없이 함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나중에야 나는 그런 관계와 활동이 곧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별다른 형식 없이 이루어지던 회의, 결정한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고 점검하던 과정 모두가 말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중심에 있던 것은, 내 생각에는 회의나 투표 같은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아무 이유 없이 둘러앉아 있는 ‘잉여로운’ 시간이었다.
- 본문 44~45쪽, 공현, 〈민주주의를 자치하며 배웠습니다〉
우리의 단체 문화는 또 얼마나 민주적일까? 조직 내 민주주의는 구성원을 서로 존중하자는 매너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사실 민주주의는 차이와 갈등을 통해 발전하는데,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공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느 순간 서로 말을 아끼는 것이 존중이고 민주주의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구성원들 간의 평등은 필요하지만 개별적인 차이를 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만큼 책임을 지면서 차이를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기계적인 평등이 주장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는 듯하다.
- 본문 55~56쪽, 하승우,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민주적일까〉
‘동등한 자리’라는 것은 사실은 개념적인 것이고, 현실에서 우리는 대체로 동등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등해져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자거나 약자일 수밖에 없고, 자기가 ‘왜’ 기존의 사람들과 동등한지를 열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이해받지 못한 채로 민주주의의 장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민주주의라는 장 안에 비집고 들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 질러야 한다. 자세한 언어를 가진, 자기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비명 지르는 사람이 없는 ‘장’에서 민주주의는 기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 그 자체가 아니라, 이해를 하기 위한 시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로소 민주주의는 유효해지는 것이다.
- 본문 62쪽, 치리, 〈민주주의는 언제 나의 ‘말’이 되는가〉
나는 종종 생각한다. 지금 현장에서 땀 흘리며 실습 중인 이 학생들이 불과 몇 달 뒤면 우리의 동료가 된다는 사실을. 이들은 내년이면 정식 노동자가 되고,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낼 것이다. 그 세금은 다시 국가의 재정이 되고, 그 재정은 동년배 청년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도 쓰일 것이다. 한 교실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19세들이,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 옆에서 묵묵히 기술을 가르치는 선배 노동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한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가장 실제적인 연대다. 청소년 노동자가 비를 맞고 서 있을 때 옆에서 우산을 들어 주는 그 마음이야말로, 산업과 지역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는 토대다.
- 본문 74~75쪽, 오성훈, 〈현장실습생을 응원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내일을 응원하는 일〉
일부 언론은 “대기업 아니면 가지 않으려는 특성화고 학생들”이라는 식으로 보도하며, 학생들의 잘못 때문에 취업이 안 되는 양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특성화고노조가 2025년 상반기 학생 50여 명을 인터뷰했을 때, 학생들은 ‘첫 일터에 바라는 점’으로 이렇게 답했다. “처음 일하고 배우는 거니까 친절하게 알려 주면 좋겠어요.” “너무 혼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가치가 인정되는 곳이요.” “워라밸이 지켜지면 좋겠어요.” “그래도 최저임금보다는 많아야죠.”
그런데 지금 제공되는 일자리들은 이 기본적 요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소·벤처기업이더라도 괜찮은 곳이면, 평소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들까지 한 학급이 통째로 지원할 정도라는 조합원의 이야기가 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대기업만 가고 싶어 해서’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 본문 81~82쪽, 신수연, 〈대학 대신 일터로 향하는 청소년들이 바라본 문제점〉
현장실습에 대한 불만족, 혹은 현장실습 이후 본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고졸 청년에게 주어지는 질 낮은 일자리나 차별 경험들이 고졸 청년들에게 ‘더 이상 일하기 어려운 장벽’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동네노동권찾기가 2017년경부터 만나 왔던 고졸 청년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8년부터 7년간 고등학교 졸업 후 일 경험을 들어 보면 꾸준히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해 본 청년은 매우 드물었다. 남성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일단 군대를 가는 경우가 많고, 여성 청년들은 고민 끝에 대학에 뒤늦게 진학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하던 카페나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 전공과는 무관한 단기 물류, 건설 노동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취업을 해서도 ‘아직 젊은데 왜 대학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듣기도 했다.
- 본문 90쪽, 박내현, 〈현장실습 청소년과 비경제활동 청년의 불안정한 삶〉
불만이 쌓인 가운데 누군가 외친 “우리 교장실에 시위하러 가자!” 한마디에 분위기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교장실에 누가 갈지, 가서 어떤 말을 할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고, 결국 한 명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작성해서 같이 교장실에 찾아갔다. 놀란 교장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과 의논한 뒤 나를 찾아와 “아무래도 학생들이 한 게 아닌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여름 선생님이 애들을 시킨 것 아니냐’라는 말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어진 말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아무래도 학부모님이 학생을 통해 민원을 제기하시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본문 99쪽, 여름, 〈‘교사가 허락하는 민주주의’의 한계〉
교사와 토론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말한 학생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막혀 있다. 그러니 왜곡된 생각이 세상에 드러나도 수정되는 과정이 일어날 수 없다. 그저 의견을 표현해야 하는 시간에는 소극적으로 쓰고, 다시 자신의 생각의 토양이 되는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쇠퇴와 함께 학교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쇠퇴해 온 것과도 연관이 있다.
- 본문 106~107쪽, 조영선, 〈학생들의 극우화?〉
취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강인함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협력과 돌봄의 감각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텃밭의 새싹은 홀로 자라지 않습니다. 햇빛과 물, 흙과 미생물, 그리고 학생의 손길 속에서만 살아남습니다. 학생은 이를 통해 버티는 것이란 혼자의 완강함이 아니라, 서로 기대고 연결되며 살아가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취약함은 숨겨야 할 결핍이 아니라, 공동체적 돌봄을 촉진하는 토대가 됩니다. 교육은 이러한 취약성을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공간이 될 때 진정한 전환을 이끌 수 있습니다.
- 본문 136쪽, 정용주, 〈느림의 힘, 관계의 복원〉
《오늘의 교육》 89호 특집은 ‘이런 게 민주주의구나’ 하고 느낀 순간, 민주주의에 필요한 역량 또는 태도를 익힌 과정,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한 기억, 혹은 반면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민주주의를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과 언어로 감각하고 가능성과 조건을 톺아보기 위해서다.
기획에서는 영화 〈3학년 2학기〉를 계기로 주목받고 있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과 졸업생들의 현실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번 호부터 학교 텃밭의 철학과 지향을 좋은 교육과 좋은 삶으로 연결해 고민하는 ‘교육농(農)’ 연재를 시작한다.
특집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겉모습과 형식만 있는 ‘민주주의 흉내’, 지식만 가르치는 죽은 민주주의교육, 반민주적인 방식과 문화 속에 간판만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학교 등……. 지금 우리 사회의 앙상한 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비판의 논의를 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알게 될까? 사람들이 어떤 장면과 경험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게 되는지 둘러보면, 새로운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교육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교육》에서는 ‘이런 게 민주주의구나’ 하고 느낀 순간, ‘나에게 민주주의는 이것이다’ 하는 경험과 깨달음, 민주주의에 필요한 역량 또는 태도를 익힌 과정,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한 기억, 혹은 반면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민주주의를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과 언어로 감각하고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조건을 톺아보기 위해서다.
이윤승은 올해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주력하여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한 1년을 돌아보며,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참여한 모습이 민주적인 학교가 아닐까 한다. 여전히 폭력적인 학교 현실을 묘사하며 끝나는 한 편의 콩트 같은 글이 학교 민주주의의 복합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최보근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밤에 국회로 달려갔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날 국회 앞에 모여 불법 계엄에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지킨 이들 중 다수는 이미 거리에서 투쟁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노동자, 장애인 투쟁에 연대하면서 경험하고 달라진 점, 거리에서 함께 만들어 가며 체험한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김지연의 〈동그라미 안에서〉는, 초등학교 학급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의 한 방법인 ‘서클 대화’를 꾸준히 하는 이야기다. 때로는 일상생활을 나누고, 때로는 갈등을 해결하는 서클 대화. 둥글게 앉아 모두가 모두를 들으며 공론을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은 경험에 기반하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공현은 학교의 형식적인 자치 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럼에도 고등학교 만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형식을 벗어난 민주주의를 익힌 경험을 전한다. 졸업한 뒤 인권단체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을 직접 설계하고 시도한 경험담을 통해 민주주의의 조건에 대한 단상을 말한다.
하승우는 지방의회를 방청하고 행정과 의정을 감시한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묻는다. 시민사회단체 등의 문화는 얼마나 민주적인지, 어떻게 우리 내부의 일상의 민주주의를 강화할지 고민을 던진다.
치리는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 단체에서 활동하며 장벽에 부딪혔던 일을 꺼내놓는다. 서로 다른 언어의 장벽, 불평등한 권력관계 등의 조건 위에서 약자들과 소수자들에게 민주주의란 어떻게 가능할지 논한다.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과 노력, 거리와 광장에서의 투쟁에서 배운 것, 지자체에서 행정을 감시하고 참여하며 느낀 점 등 이번 《오늘의 교육》 특집은 다양한 현장, 다양한 층위에서 민주주의를 조명한다. 다채롭고 입체적인 사유와 통찰이 담긴 글들은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당신에게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함께 공유하고 익혀 나갈 수 있을까.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백호영
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는 무엇을 놓쳐 버린 것일까 | 채효정
특집 | 우리가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는 자리
함께 만드는 즐거운 학급, 이런 게 민주주의 아닐까 | 이윤승
거리에 나서 비로소 주인이 되다 | 최보근
동그라미 안에서 | 김지연
민주주의를 자치하며 배웠습니다 | 공현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민주적일까 | 하승우
- 지방의회에서 단체 문화까지, 우리 내부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언제 나의 ‘말’이 되는가 | 치리
기획 | 3학년 2학기, 공백과 비틀거림의 시간
현장실습생을 응원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내일을 응원하는 일 | 오성훈
대학 대신 일터로 향하는 청소년들이 바라본 학교와 사회 | 신수연
현장실습 청소년과 비경제활동 청년의 불안정한 삶 | 박내현
후속│‘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교사가 허락하는 민주주의’의 한계 | 여름
-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일의 어려움
학생들의 극우화? | 조영선
- 후퇴하고 있는 학교 민주주의
학교 민주주의, 학교의 주민들이 모두 인정받는 연대 | 성열관
시
윤 내과 / 목적지 | 이장근
잎사귀 / 얼떨결 | 김은영
연재 | 교육농 - 좋은 교육과 좋은 삶을 위하여 ①
느림의 힘, 관계의 복원 | 정용주
- 텃밭과 함께하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
기고
핀란드의 대학 입시 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 이혁규
‘학원 밤 12시 조례’, 청소년은 기계가 아니다 | 수영
에세이
삶의 나침반을 어떻게 놓아야 할지 깊이 사색하는 시간이 되길 | 전희식
- 고 김인봉 선생님을 추모하며
리뷰
서로 공명하고 연결되는 ‘가치’에 더 주목해야 | 전세란
- 《인공지능이 가르칠 수 있다는 착각》
성노동자의 관점으로 부채 읽기 | 유원
-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
불순한 어린이에게 스며들기 | 이은진
- 《불순한 어린이들》
중요한 걸 중요하게 여기기 | 박일환
- 《말더듬이 선생님》
218 오늘 읽기 | 공현
220 세 줄 새 책
224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책 | 조현민
책 속에서
그날 들었던 ‘닥치는 대로’와 ‘악착같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박혀 빠지질 않는다. 닥치는 대로 일하고 악착같이 돈만 벌어야 하는 삶이 좋은 삶이 아니란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와, 이를 위해서는 좋은 노동이 필요하며, 그것이 어떤 노동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해 본 적이 없는데, 노동의 공론장은 비참한 사고로 가득 차 있다. 노동하는 법 - 노동조합 활동을 포함하여 – 에 대해 알지 못하고, 좋은 노동과 좋은 삶의 조건이 와해해 버린 곳에서 노동은 오직 돈 버는 수단이 되고, 노동에 대한 계급적 긍지와 사회적 규범이 무력한 곳에서는 ‘닥치는 대로’만이 남는다. ‘살만한 삶’을 살 가능성이 봉쇄되고 있는 이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비난하고 계몽할 수 있을까. 빚지는 청년들을 ‘소비의 욕망’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 본문 15쪽, 채효정, 〈우리는 무엇을 놓쳐 버린 것일까〉
민주적인 절차와 협의, 선거와 자치 활동에 더 신경을 썼던 예전의 학급보다, 안전과 건강만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올해 학급에서 더 민주적인 환경이 만들어졌다.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고 인정했고, 참여는 자유로웠고 꽤 자발적이었다. 학급 회의 시간이 아니어도 급히 정해야 할 것들은 조회나 종례 시간에 짬을 내어 학급 임원들이 회의를 진행해서 정했고 왜 종례 시간이 늦어지냐고 불만을 가지는 때도 없었다. 지하철 시간이 촉박한 학생은 일찍 갈 수 있었고 대신 다른 학생이 회의 내용을 단체 대화방에 올려 줘 동의 여부는 나중에 말해 줘도 됐다. 회의를 한 번만 해서 그 시간에 다 정하기보다는, 여러 번 회의를 할 것이었기에 그래도 괜찮았다.
- 본문 25~26쪽, 이윤승, 〈함께 만든 즐거운 학급, 이런 게 민주주의 아닐까〉
혹자는 양복 입은 사람들이, 고상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조곤조곤한 말투로 대화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라고 여긴다. 약자들이 정부와 기업과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고 압력을 가하려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다. 대화가 아니라 굴복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미안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상한 테이블에 앉을 기회도 없다. 운이 좋아 고상한 테이블에 앉아도 그것이 대화가 되는 자리라고 할 수 없다.
- 본문 32~33쪽, 최보근, 〈거리에 나서 비로소 주인이 되다〉
모두가 감정을 털어놓고 난 뒤에는 이 갈등을 해결하고 교실에 다시 평화를 가져올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보통 특별한 해결 방법은 없고 그냥 사과하고 다음부터는 조심하자는 것이 전부다. “먼저 사과하고 싶은 친구가 있나요?”라고 물으면 보통 처음에 제일 씩씩거리며 분해하던 아이가 제일 먼저 손을 든다. 오늘의 경우에는 정민이었다. 여전히 눈에 눈물이 맺혀 있지만 이번에는 미안해서 그렇다고 한다. 서클의 신비한 점 중 하나다. 몇 차례 사과가 오가고 있으면 사건과 별로 상관없는 아이가 갑자기 자기도 사과하고 싶은 게 있다고 손을 들기도 한다. 몇 달 전의 일인데 생각해 보니 미안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몇 달 전 일을 사과받고 싶다고 손을 드는 아이도 있다. 그럼 지목받는 아이는 사과를 하고. 싸움은 하나인데 사과하는 아이들은 많기도 하다. 이어지는 사과를 따라 평화도 빙글빙글 돌아간다.
- 본문 39쪽, 김지연, 〈동그라미 안에서〉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수평적인 관계의 개성 강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하고픈 일을 제안하고, 합의를 만들어 나가고, 역할을 분담해 협업하고 성과를 추구하는 과정을 겪어 봤다. 물론 일이 다 잘된 것은 아니었다. (……) 계획한 것 중 반 이상은 실패와 시행착오로 남는 활동이었지만, 성과와 상관없이 함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나중에야 나는 그런 관계와 활동이 곧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별다른 형식 없이 이루어지던 회의, 결정한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역할을 나누고 협력하고 점검하던 과정 모두가 말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중심에 있던 것은, 내 생각에는 회의나 투표 같은 것이 아니라,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아무 이유 없이 둘러앉아 있는 ‘잉여로운’ 시간이었다.
- 본문 44~45쪽, 공현, 〈민주주의를 자치하며 배웠습니다〉
우리의 단체 문화는 또 얼마나 민주적일까? 조직 내 민주주의는 구성원을 서로 존중하자는 매너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사실 민주주의는 차이와 갈등을 통해 발전하는데,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거나 공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느 순간 서로 말을 아끼는 것이 존중이고 민주주의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구성원들 간의 평등은 필요하지만 개별적인 차이를 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만큼 책임을 지면서 차이를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기계적인 평등이 주장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고 있는 듯하다.
- 본문 55~56쪽, 하승우, 〈우리의 민주주의는 정말 민주적일까〉
‘동등한 자리’라는 것은 사실은 개념적인 것이고, 현실에서 우리는 대체로 동등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등해져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자거나 약자일 수밖에 없고, 자기가 ‘왜’ 기존의 사람들과 동등한지를 열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이해받지 못한 채로 민주주의의 장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민주주의라는 장 안에 비집고 들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 질러야 한다. 자세한 언어를 가진, 자기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비명 지르는 사람이 없는 ‘장’에서 민주주의는 기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는 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 그 자체가 아니라, 이해를 하기 위한 시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로소 민주주의는 유효해지는 것이다.
- 본문 62쪽, 치리, 〈민주주의는 언제 나의 ‘말’이 되는가〉
나는 종종 생각한다. 지금 현장에서 땀 흘리며 실습 중인 이 학생들이 불과 몇 달 뒤면 우리의 동료가 된다는 사실을. 이들은 내년이면 정식 노동자가 되고,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낼 것이다. 그 세금은 다시 국가의 재정이 되고, 그 재정은 동년배 청년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도 쓰일 것이다. 한 교실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19세들이,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 옆에서 묵묵히 기술을 가르치는 선배 노동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한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가장 실제적인 연대다. 청소년 노동자가 비를 맞고 서 있을 때 옆에서 우산을 들어 주는 그 마음이야말로, 산업과 지역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는 토대다.
- 본문 74~75쪽, 오성훈, 〈현장실습생을 응원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내일을 응원하는 일〉
일부 언론은 “대기업 아니면 가지 않으려는 특성화고 학생들”이라는 식으로 보도하며, 학생들의 잘못 때문에 취업이 안 되는 양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특성화고노조가 2025년 상반기 학생 50여 명을 인터뷰했을 때, 학생들은 ‘첫 일터에 바라는 점’으로 이렇게 답했다. “처음 일하고 배우는 거니까 친절하게 알려 주면 좋겠어요.” “너무 혼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 가치가 인정되는 곳이요.” “워라밸이 지켜지면 좋겠어요.” “그래도 최저임금보다는 많아야죠.”
그런데 지금 제공되는 일자리들은 이 기본적 요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소·벤처기업이더라도 괜찮은 곳이면, 평소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학생들까지 한 학급이 통째로 지원할 정도라는 조합원의 이야기가 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대기업만 가고 싶어 해서’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 본문 81~82쪽, 신수연, 〈대학 대신 일터로 향하는 청소년들이 바라본 문제점〉
현장실습에 대한 불만족, 혹은 현장실습 이후 본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고졸 청년에게 주어지는 질 낮은 일자리나 차별 경험들이 고졸 청년들에게 ‘더 이상 일하기 어려운 장벽’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동네노동권찾기가 2017년경부터 만나 왔던 고졸 청년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8년부터 7년간 고등학교 졸업 후 일 경험을 들어 보면 꾸준히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해 본 청년은 매우 드물었다. 남성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일단 군대를 가는 경우가 많고, 여성 청년들은 고민 끝에 대학에 뒤늦게 진학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하던 카페나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 전공과는 무관한 단기 물류, 건설 노동을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취업을 해서도 ‘아직 젊은데 왜 대학에 가지 않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듣기도 했다.
- 본문 90쪽, 박내현, 〈현장실습 청소년과 비경제활동 청년의 불안정한 삶〉
불만이 쌓인 가운데 누군가 외친 “우리 교장실에 시위하러 가자!” 한마디에 분위기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교장실에 누가 갈지, 가서 어떤 말을 할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고, 결국 한 명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작성해서 같이 교장실에 찾아갔다. 놀란 교장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과 의논한 뒤 나를 찾아와 “아무래도 학생들이 한 게 아닌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여름 선생님이 애들을 시킨 것 아니냐’라는 말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어진 말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아무래도 학부모님이 학생을 통해 민원을 제기하시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본문 99쪽, 여름, 〈‘교사가 허락하는 민주주의’의 한계〉
교사와 토론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말한 학생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막혀 있다. 그러니 왜곡된 생각이 세상에 드러나도 수정되는 과정이 일어날 수 없다. 그저 의견을 표현해야 하는 시간에는 소극적으로 쓰고, 다시 자신의 생각의 토양이 되는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쇠퇴와 함께 학교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쇠퇴해 온 것과도 연관이 있다.
- 본문 106~107쪽, 조영선, 〈학생들의 극우화?〉
취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강인함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협력과 돌봄의 감각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텃밭의 새싹은 홀로 자라지 않습니다. 햇빛과 물, 흙과 미생물, 그리고 학생의 손길 속에서만 살아남습니다. 학생은 이를 통해 버티는 것이란 혼자의 완강함이 아니라, 서로 기대고 연결되며 살아가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취약함은 숨겨야 할 결핍이 아니라, 공동체적 돌봄을 촉진하는 토대가 됩니다. 교육은 이러한 취약성을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공간이 될 때 진정한 전환을 이끌 수 있습니다.
- 본문 136쪽, 정용주, 〈느림의 힘, 관계의 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