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3호] 공정은 평등을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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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53호 특집은 소위 ‘조국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서 전개된 입시와 공정 담론을 다루었다. 입시 제도에 관한 우리 사회의 욕망과 논의 방식들, 한국에서 공교육과 시험/평가의 문제, 학벌없는사회 운동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차원에서 입시 교육의 문제점과 극복할 길을 모색했다.

‘교육 정치’에 대한 논의도 지난 호에 이어 학교 내부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전개해 보았다. 또한 보통 요구받는 길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성 청년들의 이야기를 기획 지면으로 담아 보았다.


특집

공정은 평등을 향하는가 - 입시와 학벌을 넘는 길


작년 8월이었다. 대학 입시 제도에 관한 공론 조사를 진행하고 나서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입 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것이. 《오늘의 교육》도 47호에서 입시 경쟁의 문제를 특집 주제로 다루었다. 그로부터 딱 1년이 지난 8월이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가 내정되고 그 자식의 입시 과정에 문제가 제기된 것이.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입시 제도 개편을 추진했다. 1년 전 거창했던 공론 조사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다시 한 번 입시 문제를 이야기하려 한다. 이번에는 입시 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쟁의 구도를 살펴보고, 입시 경쟁과 학벌주의를 넘어설 길을 찾아보려 하였다.

김종구는 조국 사태 이후 전개된 논의를 보며 숙명여고의 시험 부정 사건과 드라마 〈SKY 캐슬〉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를 움직이는 욕망을 지적한다. 성현석은 과거 ‘3불’ 논쟁이나 입학 사정관 제도 논쟁, 그리고 미국식 입시에 관한 이야길 담은 책 등을 돌아보며 지겹게 반복되는 입시 논쟁의 현주소를 짚는다. 고등학생들과 대학입시거부자들의 짧은 말들을 모은 꼭지는 입시 문제의 한복판에서 당사자로서의 감정과 통찰을 담고 있다.

이경숙의 〈학교의 배신〉은 학교교육 제도와 시험/평가, 그리고 능력주의와 사회적 차별 등 문제의 현실과 역사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에 대한 관점과 상상을 제공한다.

채효정은 2016년 학벌없는사회 해산 선언문을 비판하며 ‘과연 학벌은 끝났는가’를 묻는다. 이 글은 운동에 대한 반성이며 동시에 이후 반학벌운동의 방향성과 방식에 대한 모색이기도 하다.

《오늘의 교육》 53호 특집은 1년 전 47호 특집과 함께 읽어 봐도 좋을 것이다. 독자들에게 입시 경쟁과 대학 서열화, 학벌주의 등의 문제를 여러 차원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차례


바라보다    최승훈 기자

 

특집 공정은 평등을 향하는가 – 입시와 학벌을 넘는 길

14 조국 사태 이후, 교육 불평등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김종구

SKY 캐슬〉과 숙명여고 소동을 우회하여

28 입시 논쟁다들 아는 이야기    성현석

공정한 경쟁이 평등을 보장하는가

38 공정함이 말하지 않는 것들    서정인서울 일반고 3학년 학생 4피아

- ‘조국 사태를 마주하는 고등학생대학입시거부자 들의 이야기

46 학교의 배신    이경숙

평가 만능 서열 사회에서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71 학벌은 끝났는가   채효정

- ‘학벌없는사회’ 잘못한 판단다시 시작해야 할 운동

 

98 임종길의 그림일기

 

후속 교육 정치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102 학교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정은균

교직 사회의 미시 정치를 중심으로

116 자치보다 먼저정치 가능한 학교   공현

 

기획 청년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다

123 노래하는 미장이   화경

나는 장인이 될 수 있을까

136 당신은 나를 싫어할지 모르지만나는 당신에게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강민진(쥬리)

학교로부터 도망쳐 나온 뒤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148 저도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홍아

 

기고

159 학교생활기록부는 이력서가 아니다   이윤승

165 전쟁과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길   석미화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현황과 진상 규명 노력

 

연재 

나눔의 경제인류학

178 모두가 참여하는 나눔 여행   홍서연

영화와 아이들

202 공동체와 파시즘그리고 이물로서의 아이들   김종구

〈빌리지〉(2004), 〈더 헌트〉(2012)

수업을 사는 교사

214 낭만과 예술 꿈꾸며 사는 행복한 코숙이   박진환

강승숙 교사

 

리뷰

238 아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시간 이진영

《교사와 부모 사이》

246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미국 교사의 투쟁사 고미령

《교사 전쟁》

 

262 두 줄 새 책


264 주제가 있는 독서


266 어린이 책 나들이


책 속에서 


한국 사회가 관심을 가지는 (교육) 불평등은 이런 데 있는 것 같지 않다. 한국 사회는 ‘계층과 지역에 따라 명문 대학 진학률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졌는가’라는 불평등에만 온통 관심이 가 있고, 이것을 시정하는 데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 어느 계층이, 어느 지역이 서울대에 아이들을 몇 명 보내고 있는가가 교육 불평등 논의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본문 25-26쪽, 김종구, 〈조국 사태 이후, 교육 불평등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1980년대에 대학을 나온 이들은 큰 틀에서 상위 계층, 기득권층에 가깝다. 이들은 자신들이 넓은 의미의 기득권층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기득권에 진입한 첫 관문, 즉 1980년대 학력고사를 미화한다. 공정한 절차를 거쳐 기득권에 진입했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기득권층이 외치는 공정한 경쟁은 늘 의심해야 한다.

- 본문 34쪽, 성현석, 〈입시 논쟁, 다들 아는 이야기〉


정시냐 수시냐, 수능이냐 아니냐 이런 언론 기사나 뉴스를 보면 늘 위화감이 든다. 그 논의 속에는 학생들의 생활은 없는 것 같다. ‘공정해야만 하는, 신성한 교육’이 결국 학생들을 줄 세우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가 없는지 모르겠다. 입시 제도나 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떻게 학생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 본문 44쪽, 서정인·서울 일반고 3학년 학생 4인·피아, 〈‘공정함’이 말하지 않는 것들〉


학교를 다닐수록, 교육을 받을수록 많은 학생들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차별과 모욕의 딱지를 덕지덕지 달게 되고, 학습 동기를 상실하며, ‘있는 집 아이 유학 가듯, 없는 집 아이는 가출하며’ 배움과 거리가 멀어진다. 학교를 다닐수록 지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충만해지는 게 아니라 공부를 못하고 싫어하는 학생, 학교에서 선생과 학교와 불화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 대학에 가서는 안 되는, 가더라도 공부를 방해하거나 무력화시키는 무지와 결핍의 존재로 불린다. 무지라는 낙인과 더불어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으로 밀려 들어가게 된다.

- 본문 49쪽, 이경숙, 〈학교의 배신〉


중상위층의 계급 세습에서 학벌은 여전히 중요하고 독점적인 가치를 지니는 자본이다. 올해 5월 미국에서 뇌물 액수가 무려 75억 원에 달하는 스탠퍼드대 부정 입학을 포함하여, 뇌물 총액 규모가 2500만 달러, 연루자가 33명에 이르는 초대형 대학 입시 비리 사건이 터졌다. “자본 앞에 학벌이 힘을 못 쓰는 사회”가 부분적으로만 맞을 뿐이며 자본과 결합하는 학벌이 계급 재생산 및 지배 권력 강화에 필수적임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지금 ‘학벌과 자본의 결합’은, 지식 정보 사회라고 불리는 ‘지식-자본주의’ 사회에서 중간 계급에게 가장 유리하고 이상적인 형태의 권력 획득 수단이다.

- 본문 91쪽, 채효정, 〈‘학벌’은 끝났는가〉


파울루 프레이리가 “교장은 교장실에 앉아서 교사가 교실에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거나 엿듣는 방법으로 통제한다”라고 꼬집은 것은 단지 교장 권력의 비대함에 대한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 교장직이 갖는 현실적인 권한의 크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에 가깝다. 프레이리는 교장이 20명이나 50명이나 100명이나 되는 교사들을 한꺼번에 감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사들이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런 한편으로 자기 자신이 언제 어느 때라도 교장에게 감시당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안다고 보았다.

- 본문 109-110쪽, 정은균, 〈학교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리가 ‘교육 자치’라는 기치로 가리키고자 하는 변화는, 단지 중앙 정부의 권한 이양이나 불개입, 정치적 상황(정권의 교체라든지)으로부터의 자율성만으로 실현될 수 없다. 평등한 교육 정치가 학교 현장에서부터 전면적으로 활성화되어야만 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한 제도와 사회 변화가 선행해야 한다. 이미 학생들은 거의 모든 단계에서 ‘교육 정치’에 개입하고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자치는 민주주의를 배신하는 담론이 될 위험이 있다.

- 본문 121쪽, 공현, 〈자치보다 먼저, 정치 가능한 학교〉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다면 삶이 더 아름답고 풍성하다고들 얘기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기술 하나쯤 다룰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악기 하나를 연습하기 시작하면 다른 악기들과의 앙상블이 보이고 음악 자체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처럼 모두가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삶의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닌,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삶의 기술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가진 것으로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 갖고 있는 기술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지요.

- 본문 135쪽, 화경, 〈노래하는 미장이〉


이미 교과 점수가 높은데도 또 교과세부특기사항 한 줄의 기록을 더 가지고 싶은 것은 욕망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일 것이다. 실제도 대학에서 그 한 줄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도 있는 그 한 줄을 부탁하는 마음은 인간의 욕심으로 볼 수는 없다. 나에 대한 평가를 하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어떻게 평가할지도 모르는 상황. 이에 더해 평가 자료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그 상황이 불러온 결과라고 봐야 한다.

- 본문 162쪽, 이윤승, 〈학교생활기록부는 이력서가 아니다〉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이유는 1차적으로는 공동체의 결속을 꾀하기 위한 것이지만, 아이들의 훈육/교육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공동체의 외부자, 타자다. 이미 어른들은 다 알고 있어서 신기할 것도 없는 바깥세상이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동체에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그들이 공동체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이라는 행위’와 ‘학교라는 장치’는 그들의 질문을 봉쇄하거나 그들의 질문과 호기심을 공동체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 넣기(혹은 포섭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 본문 203-204쪽, 김종구, 〈공동체와 파시즘, 그리고 이물로서의 아이들〉


우리 집에서는 내가 ‘엄마’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여성’이라는 포지션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만 하면 논쟁과 갈등이 벌어진다. 여전히 이런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계속 다양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어 가 보겠지만, 우리 사회가 더 성평등한 사회가 될수록 아들들과의 대화도 더 진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좋은 양육을 위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자(본문 144쪽)는 이야기를 ‘좋은 대화를 위해 좋은 세상을 만드는 노력을 하자’는 말로 조금 바꾸어 본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 대화와 일상을 통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서로 배우는 관계가 되도록 계속 노력해 보겠다.

- 본문 244쪽, 이진영, 〈아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