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0호] 제도화, 가능성인가 족쇄인가

조회수 48


《오늘의 교육》은 50호 특집으로 교육운동의 현재를 점검하기 위해 교육운동과 제도 사이를 묻는다. 이에 더하여 화제가 되었던 계간지 《창비어린이》의 ‘혐오의 시대,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특집을 리뷰하면서 어린이·청소년 혐오에 대한 논의를 이어 나가고자 하였다. 또한 《교육농》, 《그런 자립은 없다》 등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한 새로운 실천들을 담은 단행본들을 돌아본다. 기고 지면에는 IB교육과정, 페미니즘과 교육 관련 도서 등 현재 추진 중인 정책과 우리 사회의 논의를 검토하는 글들을 싣는다.

 50호를 맞아 새 단장한 디자인으로 찾아가는 《오늘의 교육》이, 신선하고 예리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기를 기대해 본다.


특집

제도화, 가능성인가 족쇄인가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회는 50호를 맞이하여, 교육운동의 현재를 짚어 보려 한다. 편집위원회는 교육운동이 위축되거나, 적어도 답보 상태에 빠져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그 이유를 논의했다. 많은 문제들이 거론되었지만, 우선 그중 ‘운동과 제도 사이의 거리와 관계’를 주제로 선정해 ‘오늘의 교육 포럼’을 기획했다.

50호에서는 먼저 5월 11일에 열렸던 ‘교육운동, 왜 자꾸 작아지는가 - 운동과 제도 사이의 관계와 거리를 논하다’ 1차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전한다. 발제자가 발제문을 수정하거나 토론 후기를 덧붙여 준 글도 있고, 포럼에 대한 소회와 교육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아 쓴 글도 있다.

김태호의 글과 영실의 글은 혁신학교를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를 짚은 글이다. 경기도와 경상남도라는 두 지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입체적인 이야기를 보여 준다. 혁신학교가 학생 자치를 보장하고 활성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교육운동의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혁신학교가 입시와 행정적 성과 전시에 휘둘리고 있음이 지적되었고, 학교장 중심의 방식의 한계와 교육 불평등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이어지는 공현의 글은 포럼에서의 혁신학교에 대한 논의를 일부 소개하면서, 교육운동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진냥의 〈교육운동의 정치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다〉는 ‘오늘의 교육 포럼’에서 교육감 선거와 활동가의 공직 진출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토론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교육감 선거를 중심으로 교육운동을 고민하며, 교육운동이 선거를 치르면서 단절되고 있는 지점들을 지적한다.

정용주의 글은 ‘교육운동과 교육 행정의 병행 접근, 또는 병행 발전’이라는 문제의식으로 교육운동의 현실을 논한다. 정용주는 교육 행정과 제도의 실제를 분석하고 운동이 이에 포섭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다른 방식의 병행 발전 전략들이 나와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번 특집을 통해 교육운동에 대해 더 정교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촉발되기를 바란다. 다음 호에도 6월 포럼 내용을 바탕으로 교육운동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려 한다. 


차례


8  바라보다        최승훈 기자


특집  제도화, 가능성인가 족쇄인가

14 학생 자치에서 찾은 학교 변화의 가능성 영실

28 혁신학교운동과 교육 불평등 김태호

42 교육운동은 무엇인가?” 공현

- ‘오늘의 교육 포럼’ 혁신의 빛과 그림자를 돌아보며

50 교육운동의 정치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다 진냥

- ‘오늘의 교육 포럼’ 선거와 공직 참여가능성일까 족쇄일까를 돌아보며

60 활성화된 운동은 적절한 제도를 찾아야 한다 정용주

교육 행정과 교육운동의 병행 발전은 가능한가?

 

연재 

수업을 사는 교사

73 거름으로 다시 찾아올 발지’ 할매 박진환

교사 박지희

 

기고

93 IB교육과정은 우리 교육의 미래가 될 수 있는가 김봉석

대구시교육청 사례를 중심으로

108 Girls do not need a teacher, too 진냥

페미니즘 교육 관련 책을 살펴보고


116 문구 자랑질

 

리뷰

118 텃밭은 교실이 될 수 있을까? 이재광

《교육농》

129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치이즈

《창비어린이》 혐오의 시대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135 세월호 참사는 우리를 어떻게 바꿨나? 하승우

《세월호라는 기표》

145 청소년을 대하는 다른 방식은 가능한가 피아

《그런 자립은 없다》

 

151 두 줄 새 책

153 주제가 있는 독서

155 어린이 책 나들이


책 속에서 


제도적으로나마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 주니, 그간 지워져 왔던 목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점선이 아닌 실선의 모습으로 학교의 전면에 등장했다. 혁신학교가 학교 문화와 교육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나는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운동에의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다. 역량을 키운 학생들이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학교 문화를 차츰 바꾸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 본문 18-19쪽, 영실, 〈학생 자치에서 찾은 학교 변화의 가능성〉


여전히 별도의 교육 체제 없이 선발 중심의 입시 체제 내에서 운영하는 혁신학교운동은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엔 너무 소극적인 도전이었다. 지금은 혁신학교에 맞는 새로운 교육 체제와 학교를 상상하고 만들 때이다. 더 큰 교육 상상력이 필요하다. 학교장, 수업, 돌봄 중심의 혁신학교운동으로는 지금의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다.

- 본문 39쪽, 김태호, 〈혁신학교운동과 교육 불평등〉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가령 좀 새로운 철학과 방식을 가지고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가나 혁신적인 방법으로 임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노동운동가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사명감을 가지고 산림이나 바다를 깨끗이 관리하거나 청소를 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나 전문가를 환경운동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런데 교육운동에 관해서는, 교육적 실천을 하는 것이 곧 운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듯이, 특정한 지향과 방식으로 수업을 하거나 학교를 운영하는 것을 교육운동이라고 부른다.

- 본문 44-45쪽, 공현, 〈“교육운동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당선 이후 교육감의 행보에, 교육청으로 대거 들어가는 활동가와 교사들을 보며 그들의 신념에 큰 기대를 품습니다. 하지만 정작 청이나 관으로 입성한 시민사회단체 출신들은 최명선 님의 지적처럼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성을 잃습니다. 행정적 의사 결정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청과 관은 다양한 집단들 사이에서 무색무취의 존재처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과거의 이력이 어떠하든 교육청에 들어오면 교육청 사람이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의 자리에 맞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육의 정치는 단절되다 못해 조각납니다. 그놈의 정치적 중립!!!!

- 본문 56쪽, 진냥, 〈교육운동의 정치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다〉


물론 나는 교사들의 교육청 진출을 비판하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 ‘정치적 기회 구조’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과 함께 좋은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아니라 승진에 대한 욕망이라 할지라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한 선택이 교육 개혁을 진전시키는 데 기여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관료제를 기반으로 한 순환 보직 체계에서 사람이 수혈되는 방식이 교육 개혁에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본문 70-71쪽, 정용주, 〈활성화된 운동은 적절한 제도를 찾아야 한다〉


그는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읽기 기능을 익히고 다독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아이들이 기꺼이 책 속 인물들의 자리에 서 보게 하는 것이라고. 그런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독서라고. 그것을 연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업이라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읽고 인정하고 타인의 감정까지 이해하며 성장해 간다고. 그는 수업이라는 시공간에서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되살리고 길러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여기고 있었다.

- 본문 79쪽, 박진환, 〈거름으로 다시 찾아올 ‘발지’ 할매〉


IB교육과정 도입이 교육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 교육 정책 전환과 개혁이 동반되지 않는 IB교육과정 도입이 효과를 볼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따라서 일부 학교만 혜택을 보는 IB교육과정의 시범 도입이 아닌 전면적인 공교육 체제의 혁신과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내신 절대 평가, 객관식 수능 폐지, 논·서술형 수능 절대 평가 도입, 교육과정 대강화, 교과서 자유 발행제, 교사별 평가 도입 등 법적, 제도적 개혁 없이 IB교육과정만 일부 학교에 도입한다면 교육감들의 개혁 시늉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있다.

- 본문 101쪽, 김봉석, 〈IB교육과정은 우리 교육의 미래가 될 수 있는가〉


페미니즘 교육 도서에는 당연하게도 어린이와 청소년이 겪는 성차별·성폭력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많았다.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설명하는 조였다. “~한 거예요. 이건 ~라고 할 수 있어요” 하며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마치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단 한 번도 성폭력이나 성차별을 겪어 본 적 없는 사람인 것처럼. 이건 어린이·청소년의 삶의 이야기인데 말이다. ‘맨스플레인’이 아닌 ‘어른플레인’이랄까.

- 본문 113쪽, 진냥, 〈Girls do not need a teacher, too〉


교과서 서술이나 성취 기준에 근거하여 대부분의 교사는 교실 창가에 화분을 들이거나 학교의 빈 자투리땅에 삽을 꽂는다. 때론 더 나아가 옥상 정원을 꾸미거나 텃밭을 만들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가르쳐야 할 주제였기에 삽질을 하고 두둑을 만들었다. 하지만 텃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상상 이상으로 풍부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현상들이 관찰되고 만들어질 수 있다.

- 본문 121-122쪽, 이재광, 〈텃밭은 교실이 될 수 있을까?〉


어린이 시절의 경험을 서사가 아닌 이미지로 기억할 때, 어린이의 경험은 더욱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은 울고 소리 지르는 현실의 어린이가 아닌, 화면 속에서 ‘귀여움’을 판매하는 어린이 크리에이터에 열광한다. 노키즈존과 같이 어린이를 배제하는 사회적 기제는 구체적인 개별성을 가진 어린이를 사회에 드러나지 못하게 한다. 어린이의 귀여운 모습을 SNS에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만큼, 사회는 귀엽지 않은 어린이를 처벌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안한다.

- 본문 131쪽, 치이즈,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세월호가 한국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가만히 있지 말아라’가 아니라 ‘이대로 가라앉지는 말자’일지 모르겠다. 살아가고자 몸부림쳤던 희생자들이 유가족의 의지가 되고, 그 의지의 꿈틀거림이 한국 사회의 촛불을 밝혔듯이, 그냥 이대로 가라앉지는 말자는.

- 본문 143쪽, 하승우, 〈세월호 참사는 우리를 어떻게 바꿨나?〉


내가 가 본 어떤 자립 시설도 청소년에게 도전할 기회를 주지 않고 도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 자립은 수많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익숙지 않은 집안일을 계속 하게끔 격려하는 것과 칼이나 불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요리를 금지해 버리는 것은 분명 아주 다른 방식이었다. 그리고 사실 청소년에게서 자기 삶을 살고 도전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 본문 149-150쪽, 피아, 〈청소년을 대하는 다른 방식은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