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9호] 지금, 돌봄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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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49호는 사립 유치원 사태 등으로 대두된 돌봄의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다. 또한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세월호 참사 이후의 교육에 대한 글들을 게재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기된 정책들의 잘못을 짚고, 세월호 참사를 교육의 문제로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영화와 노동과 청소년 등의 렌즈를 통해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를 사유하고자 했다.

이번 호부터는 박진환이 ‘수업을 사는 교사’ 연재를 시작한다. 교사의 삶과 수업을 연결시키며 들여다보는 작업을 통해 교사란 어떤 존재인지 독자들에게 소개하려는 연재이다.


특집

지금, 돌봄은 가능한가


사립 유치원 개학 연기 사태는 10년 전 누리교육과정 도입부터 예상된 사태였다. 국가가 도입하는 유아교육과정에 대해 유치원은 유아교육을 국유화하는 수순이라고 반발했었다. 학계에서도 이를 둘러싸고 토론회도 격렬히 열렸고 사립 유치원 경영자들은 분주하게 대책 회의를 열었다.

한두 해 동안 부침이 있었지만 누리교육과정은 누리교육과정에 드는 예산을 유치원들이 지원받게 되면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을 거치면서 유아교육과정과 유아교육 예산에서 국가의 역할은 커져 갔다. 커진 예산 규모를 가지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충돌도 여러 차례 있었다. 요약하자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최소한 10년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10년 전에도, 2019년 개학 연기 사태 때도 사회가 던지는 질문은 ‘맞벌이 가정은 누구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가’ 정도에 불과하다.

《오늘의 교육》 49호 특집의 글들은 더 나은 돌봄이 가능한 조건을 묻는다. 유정희의 글은 우선 지금의 학교가 배움의 과정에서 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돌봄에서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지 경계를 세우고 어떤 여건이 갖추어져야 하는지를 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궁수진은 정부가 예산의 규모는 늘려 왔지만, 그 예산 집행의 투명성이나 공공성을 갖추도록 하는 데는 미비했음을 지적한다. 돌봄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태욱 역시 돌봄에 관한 질적·내용적 제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며, 육아정의 사례를 통해 공동체와 참여를 통한 돌봄을 지향할 것을 제안한다.

돌봄과 양육에 대해 가장 널리 인용되는 문장은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조차도 부모 세대 중심의 입장에서, 누가 아이를 맡아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았다. 격월간지 한 호 특집만으로 그 대안을 제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그 다급함에 침식당하지 않고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돌봄과 양육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보다 나은 방향을 고민하자는 한 줄기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환기구가 《오늘의 교육》 49호 특집이 되길 바란다.


차례


8  바라보다        최승훈 기자


특집  지금, 돌봄은 가능한가

12  학교는 돌봄 가능한 곳인가                | 유정희

    - 돌봄에서 학교의 역할은 경계를 세우는 질문으로부터

27  재정만으로 돌봄의 공공성이 이뤄지진 않는다            | 남궁수진

    - 사립 유치원 사태와 돌봄 문제 현황 진단

36  ‘참여’와 ‘공동체’로 푸는 돌봄                | 하태욱

    - 보육의 질적 보장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과 공동체 지원


기획  세월호 이후를 사유하다

47  세월호 참사 이후, 빗나간 정책들                | 권혁이

56  교육, 참사를 마주하다                    | 김원석

    - 세월호 참사와 중립성이라는 함정

64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교육의 문제            | 공현

74  4.16 이후 엄마-되기                    | 김종구

    - 영화 〈미쓰백〉을 경유해서

91  꿈의 불멸                        | 정혜윤

    - 우리의 가장 좋은 모습과 가장 좋은 목소리가 남을 것이다

105 ‘착한 바보들’은 어떻게 되었나                | 배경내

    - 세월호 참사 5주기, 다시 청소년의 자리를 묻다


후속  교육의 페미니즘적 전환

117 총여학생회의 여성주의 정치, 민주주의의 프리즘        | 가온(이경은)


연재  

인간의 교사를 돌아보다

129 “간다고? 정말 갈 곳이 있긴 있단 거야……?”            | 윤지형

     - 어쩌다 보니 ‘어린 왕자’와 나누게 된 이야기 단막 3장

수업을 사는 교사

171 평등한 세상을 지향했던 놀이 수학 산복이            | 박진환

     - 교사 조성실


189 문구 자랑질


기고

190 경남 학생인권조례안, 어떻게 수정되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 이글

205 ‘교권’은 도피를 욕망하고, 원한을 강화한다            | 비비새시(고영주)


리뷰

214 예비 교사가 되어 다시 만난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        | 김민결

     - 《삐딱할 용기》

223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 여름

     - 〈가버나움〉


231 두 줄 새 책

233 주제가 있는 독서

235 어린이 책 나들이


책 속에서 


‘돌봄’을 위한 사회 인프라의 중요한 일부분으로서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돌봄’의 본질적인 모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 방향이 우선 설정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교육 또는 배움의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본질적인 ‘돌봄’은 배움의 과정에서 소외됨 없이 아동이 신체적·정서적·지적·사회적으로 충분히 발달할 수 있도록 차이를 인정하고, 기다려 주고, 배려하는 것이다. 모든 학생에게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배움의 모든 과정에 ‘돌봄’을 바탕으로 두어야 하는 것이다.

- 본문 16-17쪽, 유정희, “학교는 돌봄 가능한 곳인가”


교육 당국이 감추고 싶었던 것이 과연 비리 유치원들의 ‘이름’뿐이었을까? 교육 당국이 엉성한 감시 체계로 사적 영역에 끌려왔다는 사실, 유치원 감사의 균일한 기준조차 없이 수조 원의 나랏돈이, 아울러 국가의 보육 책임도 방기해 왔다는 것이 교육 당국이 진짜 감추고 싶은 실상이 아니었을까?

- 본문 31쪽, 남궁수진, “재정만으로 돌봄의 공공성이 이뤄지진 않는다”


여전히 정책은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와중에 보육과 교육의 내용은 논의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대학 입시 개편에서부터 보육 기회 보장까지 논의의 초점은 어떤 제도를 만들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우리가 어떤 보육과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을 길러 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생략되고 언제 논의되었던 적은 있나 싶은 아련함만 남았다. 이런 경향은 심지어 최근의 마을(교육)공동체 논의에서도 반복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다. 선언과 정책 속에 실제 공동체와 그 지향,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은 온데간데없고 예산과 지원금, 행정과 실적만 남는다.

- 본문 41-42쪽, 하태욱, “‘참여’와 ‘공동체’로 푸는 돌봄”


세월호 참사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의혹들이 한둘이 아니다. 단지 안전에 대한 의식이, 교육이 부족해서 일어난 참사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서명에 참여하고 노란 리본을 달았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학살’이라고 명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월호 참사가 단순 안전사고가 아니라면, 그에 대한 대책이 안전교육이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 본문 50쪽, 권혁이, “세월호 참사 이후, 빗나간 정책들”


부서진 세계는 우리 모두의 세계이기도 하다. 참사를 개인적 고통에만 머무르게 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것은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사유되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함께 버텨 온 부서진 세계의 문을 닫고 새로이 살아갈 세계를 향한 문을 열 수 있다. 특히 학교교육은 참사에 대한 공동체적 개입을 수행해야 한다. 학교야말로 부서진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시민들이 모여 다가올 세계의 모습에 대한 고민과 배움 그리고 변화를 상시적으로 추구하는 ‘공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 본문 62쪽, 김원석, “교육, 참사를 마주하다”


두 사람 모두 세월호가 ‘사건’이 될 수 있도록 한 운동의 발화 지점을 이야기하는 걸 잊었다. 그 불씨는 세월호의 엄마들이었다. 이들은 세상과 맞서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보통 이데올로기로서의 모성은 사회 질서 앞에, 권력 앞에 멈추는데 이들의 투쟁은 자격 없는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데까지 멈추는 법이 없었다. 바다 밑에 잠들어 있던 세월호를 기어이 끌어올린 것도 이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엄마들은 세월호 사건 이후 상처받은 자들의, 혹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냈는데, 말 그대로 그건 코뮌이었고, 코이노니아(교회)였다.

- 본문 89-90쪽, 김종구, “4.16 이후 엄마-되기”


‘가만히 있으라’가 품은 정치적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면, 희생된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저 ‘아이들’이어서가 아니라 누구도 그렇게 버림받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마음이었다면,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가 보태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정말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여전히 믿는다면, 청소년의 사회적 자리를 묻지 않을 수 없다.

- 본문 116쪽, 배경내, “‘착한 바보들’은 어떻게 되었나”


지배적 힘이 남성을 통해 전수되는 가부장제하에서 ‘대표성’은 항상 남성의 모습을 지닌다. 대표하는 위치에 있기에 남성이 더 적합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대표해야 하는 것이 남성들의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총여학생회는 그러한 ‘대표성’과 불화하며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자신의 힘의 기반을 또 다른 대표성에 뒀기에 애초부터 긴장을 내재하고 있었다. 여성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며 단일한 억압 속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설명을 경유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 쉬운 언어로 손쉽게 ‘다수’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험이 대표되다 보면 그 안에서도 약자의 경험은 대표되지 않고 사라진다.

- 본문 121-122쪽, 가온(이경은), “총여학생회의 여성주의 정치, 민주주의의 프리즘”


“사회적 정의라는 것은, 교실에서 수학을 못하고 소질이 없는 학생이 사회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고 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기본소득처럼 기본적으로 배려받아야 하고 권리로서 보장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놀이나 이야기 속에서, 조작 활동에서, 특히 조작 활동에서 학생을 따라오게 하는 것이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수학 시간은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고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죠.”

- 본문 184쪽, 박진환, “평등한 세상을 지향했던 놀이 수학 산복이”


내가 수정된 학생인권조례를 보며 모욕감을 느낀 까닭은 여기에 있다. 내가 그동안 겪었던 폭력을 학생인권조례의 이름으로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폭력이 가능하게끔 가능성을 열어 두는 일은, 청소년기를 살아가는 내 몸에 대한 모욕이자, 청소년들의 몸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몸은 ‘교육’을 위해서라면 인권 침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단서를 주렁주렁 달고, 어른들이 허락하고 합의한 만큼만 인권을 누리라는 말을 되풀이한 이번 조례안 수정은 그 자체로도 반인권적이다.

- 본문 201쪽, 이글, “경남 학생인권조례안, 어떻게 수정되었으며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이 추락한다고 말하는 교사들은, 학생인권을 보장하면서 민주적으로 교육할 자유가 주는 불안감을 잊기 위해, 신자유주의적인 교육 정책에 의해 교육 수요자들에게 권력의 일부가 돌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잊기 위해, 일부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교사들을 위로해 주는 척하며 표를 얻어 내려 하는 선동에 쉽게 자신을 맡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본문 210쪽, 비비새시(고영주), “‘교권’은 도피를 욕망하고, 원한을 강화한다”


막상 예비 교사가 되어 보니 교사들의 자기 계발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교육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뿐만 아니라 실습에서도 지도안과 수업 계획이 완벽히 짜여 있는 수업을 원하고, 실습 특강 때는 독서 토론, 체육 교과, 행정 실무를 완벽히 마스터한 선생님이 나오셔서 교사가 되면 이런 것도 배울 수 있다며 즐겁게 설명하신다. 정말 교사는 저렇게 완벽해져야 하는 걸까?

- 본문 219-220쪽, 김민결, “예비 교사가 되어 다시 만난 〈불온한 교사 양성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