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2호] 새로운 기술, 새로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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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62호는 최근 더욱 가까이 다가온, 온라인 수업, 인공 지능, 빅 데이터 등 신기술에 의한 교육 혁신 주장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또한 60, 61호에 이어서 ‘키워드로 읽는 한국 교육 10년’에서 ‘미디어’, ‘혁신교육’, ‘고교 서열화’의 3개 키워드를 다룬다. 

‘기획’ 지면에서는 최근 제정된 제주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과 서울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둘러싼 쟁점을 짚고, 교육 현안에 대한 연재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돌아봄으로써 학생인권 문제와 학생인권조례가 계속 생생하게 진행 중인 사안임을 보여 준다. 미얀마 민주화 투쟁에 연대하는 학교 수업 사례 등 동시대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교육 현장의 노력들도 담았다.


특집

새로운 기술, 새로운 교육?


《오늘의 교육》 62호 특집은 ‘미래 교육’이라는 이름표를 단 담론 중에서도 기술 담론, 에듀테크와 온라인 원격 수업과 인공 지능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개시된 온라인 원격 수업은, 한층 더 신기술 도입에 의한 교육 변화의 가능성을 피부에 와 닿게 하였다. 오랫동안 기술이 교육을 혁신할 것이라고 또는 그 길로 가야 한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이제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고 곧 일어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속에 겪은 변화를 반면교사 삼아서 어떤 고민과 문제의식이 필요한지를 짚어 보려 한다.

강혜경의 글 〈교사에게 기술을 묻다〉는 교사들을 인터뷰하여, 학교 현장에서의 경험을 전하고 필요한 논의의 과제들을 정리한다. 교사들은 온라인 원격 수업이 실시되는 과정에서 학교에서 무엇이 중시되고 어떤 식으로 결정이 이루어졌는지를 증언하고 기술이 도입되고 적용되는 과정에서 제도와 환경, 과정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이어지는 김성보의 글도 온라인 원격 수업의 한계와 문제점에 집중했다. 그리고 과연 사기업의 인프라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수업이 공교육이라 할 수 있는지, 정보 인권과 보안의 문제는 해결 가능한지 등을 묻는다.

공현의 〈에듀테크는 로봇 교사의 꿈을 꾸는가〉는 에듀테크와 AI 교육에 긍정적인 입장을 살펴본다. 그러면서 교사의 노동에 대한 ‘대체’가 아닌 ‘보조’, ‘개별화 맞춤형 교육’ 등을 표방하는 에듀테크의 전망은 어떤 조건하에서 호소력을 가지는지 분석해 본다.

김광백은 장애학의 관점으로 기술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해소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그는 역사 속에서 산업 혁명과 ‘뉴노멀’의 도래가 새로운 차별과 배제의 기준을 초래했음을 지적하며, 새로운 기술만으로는 오히려 차별이 견고해질 거라고 예상한다.

마지막으로는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들의 좌담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문제의식을 간략히 정리해 본다. 앞으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면 어떤 점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지, 기술과 교육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기술은 중립적이고 사람이 쓰기 나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곤 한다. 하지만 핵발전이나 총기의 문제처럼 기술 자체가 사회와 환경을 바꾸는 효과를 가지기에, 기술의 사회적 성격은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이 말은 더 정확히는, 기술은 사람이 쓰기 나름‘이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 즉 우리는 기술에 휘둘리지 않고 기술의 사용 방식이나 도입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교육을 어떻게 바꿀지를 묻기 이전에, 우리가 어떤 교육을 만들기를 원하는지부터 다시 묻고 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차례



10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12  읽은 이야기 | 이선 PDF


특집  새로운 기술, 새로운 교육?

18  교사에게 기술을 묻다 | 강혜경 PDF 바로읽기1 바로읽기2

- 학교 현장에서 보는 기술 도입의 어제, 오늘, 내일 

50 이것은 공교육이라 할 수 없다 | 김성보 PDF 

- 온라인 수업 유감

61 에듀테크는 로봇 교사를 꿈꾸는가 | 공현 PDF 바로읽기

- ‘보조’와 ‘맞춤형’을 내세우는 에듀테크 담론

70 새로운 기술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 | 김광백 PDF 바로읽기

- 장애학의 관점에서 본 뉴노멀과 차별의 문제

83 기술은 교육을 바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 채효정, 진냥, 이윤승, 강석남 PDF 바로읽기

-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좌담


후속 | 키워드로 읽는 한국 교육 10년

101 미디어/ 미디어와 어린이·청소년 학습자, 교육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 김아미 PDF

112 혁신교육/ 열린교육과 혁신교육, 교육 개혁 운동은 지속 가능한가? | 정용주 PDF 바로읽기

120 고교 서열화/ 탄생 자체가 비교육적인 자사고, 이제는 되돌려야 | 김형태 PDF


연재

한국 교직의 보편성과 특수성 ②

132 미국은 지금 ‘무능한 교사’와 전쟁 중, 한국은? | 이혁규 PDF


교육 현안 꺼내 보기 ⑤

149 학생인권조례는 무엇에 저항해 왔는가 | 진냥(희진) PDF

- 학생인권조례로 본 인권 제도화의 역사


기획 | 학생인권, 느리지만 뚜벅뚜벅

159 피하고 버티는 학교를 바꾸기 위한 집요함을 다짐한다 | 이윤승 PDF

- 서울시교육청 2기 학생인권종합계획, 진전된 것과 놓친 것들

168 반쪽짜리 첫걸음, 제주 학생인권조례 | 이건웅 PDF

- 제주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경험과 평가


에세이

175 타원 수업에서 지루함과 흥미로움의 변증법 | 박철호 PDF

- 고3 기하 수업 이야기

194 연대란 권력 없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움 | 양서영 PDF

- 미얀마 민주 항쟁 연대 수업 이야기


기고

203 교육 공위Interregnum의 시대를 넘어 ‘대안’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성 | 하태욱 PDF


리뷰

216 청소년, 법과 만나다 | 박씨 PDF

- 《나를 지키는 법, 내가 고치는 법》

225 학교가 ‘밭’이라는 교육관 | 공현 PDF

- 《은수저 Silver Spoon》


234 오늘, 읽기 | 최은숙, 공현, 하금철 PDF

238 내가 밀고 있는 단체  전쟁없는세상 | 김훈태 PDF 바로읽기



책 속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던 사항은 비민주적 절차의 문제였다. 절차상으로는 크게 잘못된 것이 없었다. 모든 학교에 일반화하기는 어렵긴 하나,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됐다. 교육부에서 코로나19 대응 지침이 공문의 형태로 내려오고, 그를 기반으로 학교 내에 관련 위원회의 논의 및 투표 등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학교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할 플랫폼 및 툴 등을 결정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민주적인 의사 결정의 과정은 아니었다.

- 본문 24쪽, 강혜경, 〈교사에게 기술을 묻다〉


근본적으로 교육 정보는 학교 밖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학교 밖에서는 매우 제한적으로 인증된 경우에만 허가된 정보에 접속이 가능해야 한다. 매우 위험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조차도 그런 이유 때문에 아직도 IE 브라우저로만 접속 가능하다(이건 칭찬이라기보다는 욕에 가깝다). 그런데 현재 온라인 수업의 정보들은 전부 민간 기업에 축적되고 있다. 심지어 구글은 외국 기업이고, 서울시교육청은 임시로 서울 전체 초·중·고가 하나의 도메인을 갖는 구글 클래스룸 서비스를 만들었다. 교육 정보의 양으로만 따져도 학교보다 구글 서버에 더 많은 양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 본문 59쪽, 김성보, 〈이것은 공교육이라 할 수 없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도입될 당시 교사단체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 주된 이유는 첫 번째로 학생과 교사의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 장기간 보관한다는 점 때문에 정보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NEIS에 정보 입력이나 관리 등에서 교사의 업무 과중화가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NEIS는 결국 정보 분산이나 수집 항목 축소 등의 개선을 거쳐 도입되었는데, 그럼에도 NEIS 업무를 떠안은 교사들의 과로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NEIS와 에듀테크에 대한 학교 현장에서의 온도 차이는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NEIS가 업무의 추가, 가중이었던 데 반해, 콘텐츠 제공 기업이나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등의 에듀테크는 교사에게 점점 더 많은 역할이 요구되던 상황에서 수업이나 여타 학생 관리 업무를 좀 더 수월하게 보조해 주는 방식으로 들어왔다.

- 본문 65-66쪽, 공현, 〈에듀테크는 로봇 교사를 꿈꾸는가〉


온라인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학교교육에서 소외되고 차별당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혁신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기술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축복이겠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재앙이 되고 있다. 뉴노멀 시대의 장애인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아니 사회적 약자가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치 중립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이윤만 좇는 흐름에 과감히 대항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술들이 약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뉴노멀이 되어야, 장애인이나 약자들이 사회적인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 아닐까? 

- 본문 79-80쪽, 김광백, 〈새로운 기술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


온라인 원격 수업을 하면서 제일 재미없고 힘든 건 오로지 교과 관련 수업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학교에 와서 학생과 교사가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은 다 제거되어 있다. 동아리라든지 자치 활동이라든지. 우리 학교는 특성화고인데, 교육부나 사기업에서 열중하는 것은 대체로 수능 시험 보는 데 적합한 콘텐츠와 기술이다. 학생들이 다른 진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거라든지 사회관계에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라든지 그런 부분은 소홀하다. 교육부가 갖고 있는 교육이라는 가치가 대학 가는 것 말고 또 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AI가 도입되어도 교육이 아니라 학업, 교과 진도 나가고 시험 보기 위한 딱 거기까지만 할 것이다.

- 본문 99쪽, 채효정·진냥·이윤승·강석남, 〈기술은 교육을 바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학습자의 미디어 경험을 지원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필요성에 동감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학습자와 미디어를 연결시키는 교육을 계획하기 어려울 수 있다. 짐작건대 그 이유 중 하나는 미디어와 기술의 발전을 학습자와 교육자가 동시대에 함께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 지식의 영역은 교육자가 선행적으로 익히고 경험하며 전문가의 입장에서 학습자에게 전수하여 세대에서 세대로 지식과 공적 경험이 이어지게끔 하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 특히 미디어와 관련된 지식과 경험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하는 영역이 되고 있으며, 미디어와 기술의 변화 속도는 매번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 본문 110-111쪽, 김아미, 〈미디어와 어린이·청소년 학습자, 교육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학생인권조례는 경기 학생인권조례가 겪었던 프레임인 ‘친북좌파 이념 논쟁’에 대해 싸웠는가?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대해 싸워 왔는가? 둘 다 아니라 할 수 없다. 맞다. 학생인권조례는 ‘좌파’라는 딱지를 붙여 대는 그 프레임과도 싸웠고 성소수자 차별과도 맞붙어 왔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싸워 온 상대는 교육이 어린 사람들을 입맛대로 조형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대로 자라야 한다는 사회적 억압이 아닐까?

- 본문 156쪽, 진냥(희진), 〈학생인권조례는 무엇에 저항해 왔는가〉


처음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당선되고 얼마 후, “토론이 있는”이 주요 정책인 듯 공문에 자주 보였다. 한번은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 정책을 토론하자고 교육청에서 여러 교사를 모았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학교 내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하나 보다 기대하고 참여했는데 몇 번 회의를 가지더니 토론도 없이 모임이 없어졌다. “교복 입은 시민”이라는 말도 유행처럼 교육청에서 자주 썼는데 그 말은 어떻게 봐도 코믹하게 들렸다. 저 문구가 유행한 지 한참이 지나 진짜로 학생은 선거권도 가지게 되었는데, 학교 내에서는 ‘시민’은 지워지고 ‘교복’만 남아 매일 등교 지도와 교복 단속을 당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교육청과 교육감에 가진 기대가 한없이 낮아졌다.

- 본문 164-165, 이윤승, 〈피하고 버티는 학교를 바꾸기 위한 집요함을 다짐한다〉


근대 학교의 역사는 길게 잡아야 150년 정도이며 이는 분명히 근대적 산물이다. ‘대량 생산’이라는 경제적 체제와 ‘능력주의’라는 사회적 체제를 집약시킨 교육적 기관으로서 학교는 근대 사회를 만들어 내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 왔다. ‘학교 다님Schooling’으로써 얻게 되는 유형·무형·의도적·비의도적 산물들은 이 체제에 대한 수용과 순응을 양산해 왔다. 국가 주도의 획일적 교육과정에 대해 비판하면서 등장한 대안학교들이 학교 다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기De-Schooling보다는 다른 학교 다님Another-Schooling의 차원에 머물러 왔다는 비판 지점은 그래서 뼈아프다. 일부 대안학교 졸업생들로부터 대안교육이 ‘대안적 주입식 교육’이라 비판받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 본문 209-210쪽, 하태욱, 〈교육 공위Interregnum의 시대를 넘어 ‘대안’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성〉


왜 청소년을 위한 법을 만드는 과정에 청소년의 참여가 불가능한 걸까? 사회는 청소년이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이라며 청소년의 판단과 현재를 나중으로 미루거나 보호자(부모나 교사 등)에게 위임한다. 그러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약자의 입장을 대표할 수 없다면, 법이란 건 약자를 억압하는 도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법의 역사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 본문 223쪽, 박씨, 〈청소년, 법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