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4호] 선택권이라는 함정 - 고교학점제, 체제를 강화할 것인가 변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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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64호는 고교 학점제를 중심 소재 삼아 교육 정책에서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논리, ‘교육 소비자’ 논리에 대해 논한다. 기획 지면에서는 여러 교육운동 주체들의 대학에 대한 인식과 주장을 나란히 실음으로써 대학과 이에 연관된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보여 주며, 교육농을 실천하는 교사들의 교류도 담았다. 

기고를 통해 최근 늘어난 투기 열풍에 대해 고교 경제교육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짚었다. 연재에서는 학교 내 학생 노동, 장애이해교육, 국가 교육과정 개정 절차와 교사의 역할 등 다양한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제언을 담았다.


특집
선택권이라는 함정
- 고교 학점제, 체제를 강화할 것인가 변혁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고교 학점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교 학점제가 도입되면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 모습이 꽤 달라지긴 할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겉모습의 변화에 그칠 것인가, 교육의 질을 변화시킬 것인가? 사실 고교 학점제 도입의 논리는 익숙하다.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교육》 이번 특집은 고교 학점제에 대한 경험과 의견을 소개하며 한 발 더 나아가 선택권의 논리를 뜯어 보았다. 그리고 고교 학점제를 둘러싼 지형을 더 넓고 깊게 살펴보려 했다.
장인하는 고교 학점제 하나만이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에듀테크 육성과 교원 정원 감축 및 교사 자격 유연화 등의 정책들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교 학점제가 교육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론 고교 학점제를 다양한 위치에서 바라본 교사들의 글을 모아 보았다. 이를 통해 고교 학점제가 간과하고 있는 점과 도입 취지의 비현실성을 이해할 수도 있고, 고교 학점제가 교육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제와 방향성이 요구되는지를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송민재와 강혜경의 글은 고교 학점제가 내세운 선택권의 논리가 학생들을 ‘소비자’로 위치시킨다고 지적한다. 송민재는 현재의 학교 현실에서 선택권의 보장이 형식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강혜경은 대학 수강 신청 제도를 통해 고교 학점제의 성격과 의미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다. 대학생들의 경험과 수강 신청 제도의 현실을 들여다보며 이러한 제도가 학생을 소비자로 호명하며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분석이다.
정용주는 고교 학점제가 기존 제도의 경로에 포섭되며 입시 경쟁 등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정용주는 고교 학점제가 가진 가능성과 의의를 탐구해 본다. 그리고 과연 고교 학점제에 의해 ‘대다수 학생이 대학과 상관없이 행복한 고등학교 시기를 보낼 수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천보선의 〈교육에서의 ‘선택’ 문제와 교육 공공성〉은 한국의 고교 학점제의 핵심은 ‘교과 선택’이라 파악한다. 그리고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논리를 전면화한 5.31 교육 개혁부터 이러한 논리와 교육 시장화가 어떻게 연결되어 왔는지,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 본다.
현재의 고등학교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입장을 떠나 많은 사람이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변화 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그 변화가 어떠한 변화인지, 무엇으로의 변화인지는 언제나 첨예한 쟁점일 수밖에 없다. 고교 학점제의 근간에 있는 선택권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돌아봄으로써, 교육의 변화 방향에 대해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차례


10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12 읽은 이야기 | 선미

특집 선택권이라는 함정
– 고교 학점제, 체제를 강화할 것인가 변혁할 것인가

20 교육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의 다른 이름 | 장인하
- 고교 학점제만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33 고교 학점제가 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 | 이명형, 양서영, 김석규
- 고교 학점제에 대한 교사들의 생각
54 학생이 소비자가 아닌 주체가 되는 교육 | 송민재
- ‘선택권 논리’를 넘어 학생인권 보장과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
62 소비자 주체로 호명되는 학생들 | 강혜경
- 대학 수강 신청으로 비춰 보는 고교 학점제
81 고교 학점제, 학생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 정용주
- 고교 학점제가 새로운 경로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소고
102 교육에서의 ‘선택’ 문제와 교육 공공성 | 천보선
- 교육 시장화 논리의 연장선에 있는 고교 학점제

기획 | 교육운동에서 대학이란
115 대학이 모두의 권리가 될 수 있을까 | 공현
- 청소년인권운동 또는 대학입시거부운동이 보는 대학
124 대학교육 개혁, 왜 어떻게 해야 하나 | 신경진
- 학부모운동에서 말하는 대학의 변화 방향
136 대학교육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 박은경
- 교육운동이 지향하는 대학의 공공성
142 대안학교와 대안적 진로 | 현병호

후속 | 정말로 인구가 문제인가
152 학령 인구 감소와 교사 수급 정책 | 박남기

기획 | 교육농, 학교 텃밭 경험을 나누다
169 우리는 교사 농부입니다 | 지문희, 오도, 방효신, 강주희, 박진교, 김경희

인터뷰 |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박준범 대변인
189 함께해야만 할 수 있는 것들 | 이윤승

연재  

교육 현안 꺼내 보기 ⑦
200 이것은 왜 노동이 아닌가 | 진냥
- 학교 안의 일하는 학생들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⑤
217 누구를 위해 ‘장애이해교육’은 존재하는가 | 윤상원
- 동정은 필요 없다

한국 교직의 보편성과 특수성 ④
228 국가 교육과정 개정 방식의 문제와 교사의 새로운 역할 | 이혁규

기고
262 불평등한 자산 분배에 저항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하여 | 박윤성
- ‘빚내서라도 투자하기’가 유행인 시대, 경제교육의 과제
272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속도전이 불안하다 | 김성원

에세이
284 국가로부터 버림받았으나 그래도 | 구자숙
- 소성리 사드 반대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

리뷰
296 진보주의 교육과 교육의 진보 | 정은균
- 《진보주의 교육운동사》
305 혁명가의 발성법 | 서한영교
- 《먼지의 말》

317 오늘, 읽기 | 채효정, 공현
321 내가 밀고 있는 단체 따비에 | 최경미



책 속에서



다교과·다과목 수업, 기간제 교사·강사 등 비정규직 확대, 순회 교사 확대 등이 개별적으로 추진되었다면, 아마 많은 반발에 부딪혔을 것이다. 각각의 정책을 도입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노동 유연화 정책이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고교 학점제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준다. ‘학생의 선택권 보장’이라는 마법 같은 언설은 이 정책들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든다.

- 본문 30쪽, 장인하, 〈교육 시장화와 교원 구조 조정의 다른 이름〉

현재의 학교교육을 떠받치고 있는 능력주의, 자기 계발주의, 전문가주의, 국가 독점주의가 과연 교육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다른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 평생 학습권, 풀뿌리 자치주의로 고교 학점제를 실현할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다. 나는 공교육이 노동 시장에 인력을 공급하는 것보다 자신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진 민주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본문 50쪽, 이명형·양서영·김석규, 〈고교 학점제가 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


많은 선택권이 곧 주체적인 역량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는 생산에서 유리된 존재로, 이미 주어진 것들을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소비자에게 허용된 저항은 불매운동뿐인데, 이 역시 개별화된 소비자는 불가하다. 대학의 사례 속에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선택권과 정보들을 주었을 때, 학생들은 점차로 개별화되었다. 고교 학점제 역시 모든 구성 요소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미명하에, 원자화로 흐르고 있다. 교실 단위, 학급 단위, 학년 단위의 해체는 정박할 수 있는 시각과 장소 없이 와해된 시공간에서 각각이 가진 자원과 능력을 활용하여 길을 찾아 나가라는 요청이다.

- 본문 77쪽, 강혜경, 〈소비자 주체로 호명되는 학생들〉


다양한 선택 과목을 개설하고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거나 학교 밖의 경험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고교 학점제가 새로운 경로를 구축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더 나아가 대입 제도 개선, 평가 방식 개선, 교육과정의 자율화, 지역 불평등 해소 방안 마련, 교원 양성 및 자격 체제 개편 등까지 고려한 연계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새로운 경로를 구축하기는 어렵다. 고교 교육은 입시 교육이고 입시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라기보다 노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말이 되어 공부하면서 모두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의적인 기업가가 되는 판타지를 가지지만, 게임에서 지면 제2의 김용균이 되어야 하는 사회에서, 노동 시장의 구조적 차별을 해결하지 않고 고교 학점제가 구현하려는 새로운 경로를 구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본문 90-91쪽, 정용주, 〈고교 학점제, 학생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유례없는 형태의 ‘교과 선택 전면화’를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면서까지 추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다음의 몇 가지 요소들이 얽혀 있다고 여겨진다. 하나는 현 정부의 정치적 알리바이이다. 현 정부는 대학 서열 해소라는 근본적 개혁을 회피하면서 거의 유일한 교육 개혁 구호로 ‘고교 학점제’를 제시해 왔다. 그들로서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잔존 시장주의자들의 이념적 ‘아집’도 한몫한다고 생각된다.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는 쇠퇴했지만 시장주의적 관료들과 학자들은 지금도 상당한 정책 개입력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소비자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고교 학점제를 통해 ‘교과 선택 전면화’를 완성하려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일부 자유주의자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과 ‘선택’에 대한 낭만적 태도이다. 이들은 수십 년 전의 교육관으로 오늘의 교육을 바라보면서 ‘선택’을 ‘억압’의 반대, ‘자유’의 확대로 본다.

- 본문 111쪽, 천보선, 〈교육에서의 ‘선택’ 문제와 교육 공공성〉

 

대학교육을 보편적 권리로 만드는 운동은 이렇게 대학을 상품이나 보상으로 보는 인식과 맞서 싸우는 일부터 시작한다. 개인의 구매력이나 경쟁 결과에 따라 가질 수 있거나 없는 선별적 기회나 신분증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이나 보편적 권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대학을 사적인 교육 상품(商品)이나 경주의 상품(賞品)으로 보는 이러한 관점이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결정짓고 있고, 대학뿐만 아니라 교육 체제 전반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투명가방끈이나 청소년인권운동이 초·중·고 과정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이 보편적 교육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 본문 123쪽, 공현, 〈대학이 모두의 권리가 될 수 있을까〉

공교육은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어느 한쪽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며, 양쪽의 요구와 이해가 충돌하는 가운데 어떤 지점에서 절충된 결과이다. 그 절충 지점은 힘의 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지배 계급은 훈련된 양질의 노동력이 필요하며, 피지배 계급은 권리의 확장 또는 평등한 권리 실현을 위해 동등한 지식과 교양이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공교육은 피지배 계급의 이해와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지배 계급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 본문 139-140쪽, 박은경, 〈대학교육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학교 내 학생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학교에서 학생의 기여를 축소하거나 삭제하는 정치적 결과로 이어진다. 학교 자치를 강조하면서도 학생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당위성이나 ‘걔네한테도 물어봐야지’와 같은 시혜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학생은 학교에서 무언가를 얻어만 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학생들이 학교에서 일하고 생산하고 기여하는 주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감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본문 215쪽, 진냥, 〈이것은 왜 노동이 아닌가〉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타고 온종일 학교 이곳저곳을 다니는 지체 장애 체험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은 두 다리로 걷지 못한다는 것이 매우 힘든 일임을 절감한다.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는 지체 장애로 명명된 친구 개인에 대한 불쌍함과 측은함은 배가 된다. 다른 한편,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몸을 갖고 태어난 자신에 대해 감사한 마음에 빠지기도 한다. 지체 장애는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인의 비극이며, 오히려 타인의 비극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안도감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 본문 225쪽, 윤상원, 〈누구를 위해 ‘장애이해교육’은 존재하는가〉

자산 관리에 대한 교육에서 중요한 점은 ‘가치’ 투자에 대해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를 가르칠 때 단순히 수요와 공급, 수익성과 위험성 등 표면적인 내용만을 가르치면 학생들은 이익 극대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된다. 경제에서는 개인을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로, 기업을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로 단순화하여 본다. 이런 관점에서 피상적으로만 접할 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합리적이기만 한 개인’처럼 되어 간다. 개인과 기업은 이익 말고도 여러 가치를 고려하여 행동한다. 자산 관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경제와 금융 자산에는 소유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 본문 267쪽, 박윤성, 〈불평등한 자산 분배에 저항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하여〉

현 정부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지나치게 빠르게, ‘속도전’으로 추진하고 있다. 백년지대계인 교육 사업을 코로나19 시기에 대응한 경제 정책의 일부인 한국판 뉴딜 사업에 포함시킨 것이다. 교육 사업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돈을 푸는 경제 사업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 본문 274쪽, 김성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속도전이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