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 70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교육 정책이 경제 정책이라고 이야기될 때 그 내막은 무엇인지, 인재 공급론이 과연 현실적이고 적절한지를 논한다. 그러면서 산업 수요와 노동력 공급의 모델에 따른 자본주의적 교육관의 문제점을 다각도에서 보여 준다.
이어지는 대안교육 운동에서의 청년 교육·활동을 위한 모색을 소개하는 지상 중계 지면은 대안적인 교육과 삶의 방향을 폭넓게 고민하게 만든다. 교권 담론, 기후 위기, 국가교육위원회, 장애인 투쟁, 「소년법」 개정 논란 등 핫한 이슈를 다소 다르게 이야기하는 글들이 교육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사유를 풍부하게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한다.
특집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인가
한국 사회는 교육 정책을 상당 부분 경제 정책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시대에 맞춰 창의적 인재를 길러 내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학업 성취도와 국가 경쟁력을 연관시키는 생각도 교육의 이유와 목적을 시장과 산업에 복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각 개인의 차원에서도 조금 다른 의미로 교육은 경제적 문제다. 교육에 참여하고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주된 목적 자체가 고소득 직업을 얻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 인력을 공급하는 게 교육의 첫째 의무라고 했을 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하의 교육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해도 옳을 것이다.
《오늘의 교육》은 자본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교육 정책은 과연 경제 정책인지, 경제 정책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강석남은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이라는 말의 내막은 입학 정원을 조절하여 졸업생을 늘리면 산업의 인력 수요가 해결될 거라는 ‘공급 만능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때부터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공급 만능론이 왜 허구적인지, 어떻게 반복적으로 실패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직업계 교육 기관은 아무래도 산업 및 노동 시장의 수요-공급 논리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곳이다. 이윤승과 레빗의 글은 직업계 고등학교에서의 현실과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유행을 쫓아 특성화고가 교육과정과 간판을 바꾸는 것은 실제로는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 여기에는 어떻게든 신입생을 모으고 보려는 학교 측의 입장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윤승은 애초에 교육이 산업 수요를 따라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학교와 교육이 지켜야 할 선을 지워 버리진 않는지 묻는다. 레빗 또한 교육이 경제적 문제, 생계와 직결될 때 교육의 효율성을 따지게 되고 학교교육이 비효율적인 것이 되는 모순을 말한다.
진냥의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이지만 경제 정책이 아니다〉는 교육에서 경제 논리가 매우 앙상하고 협소하다고 말한다. 교육은 보편적 분배 정책의 의미로도, 큰 규모의 공공 경제(국가 재정)로서도 경제적 문제이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 논리가 거론되는 것은 ‘교원 구조 조정’이나 ‘인적 자원 개발’, 취업 연계 같은 장면밖에 없다.
교육 정책이 경제 정책이 아니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이 경제적 문제와 동떨어진 영역이라거나, 교육이 경제와 무관한 순수한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경제와 교육이 맺는 관계를 더 자세하게 질문하고, 어떤 관계가 더 바람직한지, 우리의 삶이 나아지려면 어떤 경제이고 어떤 교육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취업과 먹고사는 일을 교육, 정확히는 개인의 학업 성취에 맡겨 놓는 방식은 공정한가. 교육이 산업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농장이자 채굴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한가. 교육 정책이 경제 정책이고 교육부가 경제 부처라는 말이 실은 ‘자본에 복무하는 교육’을 의미한다면, 우리가 더 이상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될 일이다.
차례
10 읽은 이야기 | 정명옥 PDF
특집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인가
16 “교육부는 경제 부처”라는 ‘공급 만능론’의 허상 | 강석남 PDF 바로 읽기
34 간판 바꿔 달기를 반복하는 특성화고의 현실 | 이윤승 PDF 바로 읽기
43 교육에서 효율성을 따지는 비효율성 | 레빗 PDF 바로 읽기
49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이지만 경제 정책이 아니다 | 진냥(희진) PDF 바로 읽기
지상 중계 | ‘대안교육 운동’의 대안을 묻다
61 ‘대안대학’에서 ‘활동연구학교’로의 전환 | 강정석 PDF
- ‘대안대학 지순협’의 경험을 돌아보며
81 청년들의 대안적 배움의 공간을 꿈꾸며 | 채상병 PDF
- 부산온배움터의 문제의식과 소망
99 우리는 청년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 이희경 PDF
- 문탁네트워크의 사례를 중심으로
115 청년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기 | 양희창 PDF
- 마을 작업장 학교 만들기
연속 기획 | 변방에서 온 편지 – 충남 홍성, 경북 상주
131 어떻게 ‘학교’는 시작되는가? | 정민철 PDF
- 마을에 만든 ‘농장’, 어쩌면 ‘학교’에 대하여
150 ‘변방’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실험 | 이동철 PDF
- 내서중학교와 낙운중학교의 서사를 중심으로
연속 기획 | 동물과 함께 삶, 배움
167 계속 나로 살아가기 위해 | 민서 PDF
- 채식을 시작하고 대안 급식을 제안한 이유
연재
몸을 살리는 교육 ①
176 느끼는 몸의 교육학 | 변화의월담 PDF
함께 보는 교육 연구 ④
196 교권 담론 그리고 ‘여’교사 담론 | 이선미 PDF
나의 프로젝트 수업 ②
206 기후 위기 프로젝트 | 정용주 PDF
기고
223 ‘관리’와 ‘버림’만 있는 학교를 넘어 | 일움 PDF
- 학교교육으로 잘살 수 없을 것 같아 거부한 사람의 단상
230 조희연 교육감님께 | 정용주 PDF
- 국가교육위원회 출범과 새로운 교육 정책의 시간
에세이
243 당신의 걱정처럼 힘들지만은 않습니다 | 임지은 PDF
- 청각장애 교사, 발달장애 학생들 앞에 서다
255 우아하게 약자를 혐오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 김형성 PDF
269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올 청소년들 | 서현숙 PDF
- 어른의 책임, 사회의 역할
280 지구와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 | 배이슬 PDF 바로 읽기
- 마령초등학교와 함께하는 학교의 생태적 전환
리뷰
294 반대하기를 넘어 주인이 될 결심 | 공현 PDF 바로 읽기
-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302 오늘, 읽기 | 공현 PDF
306 내가 밀고 있는 단체 부산교육연구소 | 원성만 PDF
책 속에서
공급 만능론은 산업과 교육 부문을 연결짓는 예비 노동자로서 학생·졸업생들의 입장, 특히 노동 시장의 조건은 철저히 무시한다고 가정해야만 성립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졸업이 곧 취업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예비 노동자인 학생들이 실제 노동자로서 산업 부문에 진출해야 정원 확대 정책의 효과가 실현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산업 수요 충족을 표방하는 교육 정책들은 정작 학생들의 이해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원 확대에 따라 노동 시장에 예비 노동자의 공급이 증가하면서 필연적으로 변화할 노동 시장의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신 국가 경쟁력, 사회 성장의 원동력, 선진국 도약 등의 수식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 본문 21-22쪽, 강석남, 〈“교육부는 경제 부처”라는 ‘공급 만능론’의 허상〉
실업계고가 전문계고로, 전문계고가 특성화고로 바뀌던 시점에 많은 교사가 꽤 힘들게 버티거나 그만두었다. 부기를 가르치던 교사가 컴퓨터 수업을 해야 했고, 회계를 가르치던 교사가 토익 영어를 가르쳐야 했다. 더 심한 경우엔 전산을 수업하던 교사가 영상 제작을 가르치게 되었고, 무역을 가르치던 교사가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서 사진 수업을 하기 위해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버티면서 자신의 교과를 버리고 새로운 교과에 적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변화가 너무 빠르고 빈번하다.
- 본문 38쪽, 이윤승, 〈간판 바꿔 달기를 반복하는 특성화고의 현실〉
학교를 다니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지?’ 혹은 ‘정말 비효율적이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을 종종 마주했다.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고 명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압박한다. 더 통제하고, 더 고생시키고, 더 요구해야 학교는 만족한다. 여기서 또 ‘효율성’이 등장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압박해야 취업률을 높이고 명성을 유지한다. 취업률과 명성을 확보해야 학교에도 돈이 모인다. 학교는 학생들이 통제당하고 고생하고 요구당해야 효율적이다. 우리가 비효율적인 교육을 받는 건 그게 학교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본문 46-47쪽, 레빗, 〈교육에서 효율성을 따지는 비효율성〉
교육에서 경제적 논리는 종종 간과된다. 그러다가 학교 통폐합이나 교원 감축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에만 경제성의 논리를 내세운다. 2000년대 초 교원 구조 조정이 있을 때 등장했던 ‘고경력 교사 1명이 명예퇴직하면 신규 교사 2명이 들어올 수 있다’라는 말도 그랬다. 단순히 급여만 비교한 논리였다. 출생률이 낮아지면서 교사 수가 남기 때문에 교원 정원을 감축한다는데, 실제로 교사 수가 남는지에 관한 데이터조차 정부는 내놓지 않는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법으로 정한 교사 정원 수를 채우지 못하는 학교가 무수한데 대체 어디서 얼마만큼의 교사가 남는다는 건지, 정부는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학교 통폐합에서도 작은 학교 하나를 폐교할 때 나타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해 정부는 효율성도 공평성도 측정하지 않는다.
- 본문 52쪽, 진냥(희진),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이지만 경제 정책이 아니다〉
간디를 비롯해 지난 20년 고등 대안교육의 역사는, 중등 대안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결국 대학을 가느냐 아니면 곧바로 사회로 진출하느냐’ 두 갈래 선택 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까 고민하며 곳곳에서 대안대학을 설립하고 작게나마 청년공동체를 만들어 거대한 대학 시스템 속에서 틈새를 찾으려고 했던 노력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청년들의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이나 교육 철학의 빈곤으로 대부분 살아남지 못하고 겨우 몇 배움터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바, 이제는 새롭게 청년 배움터를 시도하려는 풋풋한 이들과 함께, 진정한 연대를 통한 대안적인 청년 대학을 만들어 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 본문 117쪽, 양희창, 〈청년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기〉
학생 자치를 통해 학교 행사를 학생들이 한다고 해서 교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행사나 활동을 학교의 입장과 조율해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오히려 일이 더 늘었다. 솔직히 경험이 많은 교사들이 하면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하게 되면 행사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교사들은 더 집중하여 지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행사를 학생들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에 교사들은 학생들을 관찰한다. 수업에서 볼 수 없었던 학생들의 생각과 모습을 보면서 교사는 학생들을 더 깊게 이해한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수업이 진행되니 더 알찬 수업이 된다..
- 본문 155-156쪽, 이동철, 〈‘변방’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실험〉
아이가 학교를 가게 되면 해내야 하는 첫 적응 역시 의자에 앉아 40~50분을 버티는 일이다. 본인의 권위를 과시하는 맥락이 아니라 교사의 권위와 통제에 순응하는 차원에서 꼿꼿하게 앉아 있기를 강요받는다. 가만히 하중을 감당하기보다는 수시로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는 일에 적합한 척추가 이 고정된 자세를 쉽게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교사의 관심과 인정, 최소한의 대우를 받으려면 의자에 앉아 주어진 과제를 해내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다면 몸의 자연스런 반응을 억누를 수밖에. 오전부터 시작해서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오랜 시간 의자에 바르게 앉아 있는 것에 적응하는 것은 곧 몸의 느낌을 단절시키는 연습이기도 하다.
- 본문 184-185쪽, 변화의월담, 〈느끼는 몸의 교육학〉
여기서 교사의 교육권은 교사의 수업에 관한 권리이자, 학교라는 일터에서 ‘성별’ 등을 이유로 침해당하지 않아야 할 노동자로서의 권리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권 담론은 교사의 성별, 나이, 지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학생인권이나 노동권 등과 함께 고민되고 있지도 못하다. 교권이 마치 학생인권과 대립되는 것처럼, 교사의 성별, 나이, 지위 등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다루어지는 현재의 교권 담론이 변화해야 우리는 진정한 교육권을 위한 논의를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204쪽, 이선미, 〈교권 담론 그리고 ‘여’교사 담론〉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력을 위해 행정이 봉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닌 행정의 정치적 중립은 어떻게 구현되는 것인가? 다시 말해 ‘정치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과 양립할 수 있는가?’를 말입니다.
이 모순을 선출된 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기존의 행정 조직으로부터도 떨어져 나오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 국가교육위원회 모델입니다. 정치적 책임과 행정의 견제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심화시키는 상보적 관계의 회복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거나 헌정 체제의 변화라는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일종의 회피를 한 것이지요.했다.
- 본문 238쪽, 정용주, 〈조희연 교육감님께〉
소수자는 배려받아야 할 존재이지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학생의 목소리를 읽으며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소수자성이, 소수자의 권리가 정치 쟁점화될 때 교사는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레 움츠러들게 된다. 내 발언이 학생에게 정치적 메시지로 수용되는 순간, 바람직한 삶과 가치를 위한 논의는 거세되고 그 빈자리엔 공허하고 허무한 논란만이 남기 때문이다. 이번 경험이 그랬고, 그런 상황을 수도 없이 접했다. 그래서 소수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건 늘 조심스럽다.
- 본문 265쪽, 김형성, 〈우아하게 약자를 혐오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오늘의 교육》 70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교육 정책이 경제 정책이라고 이야기될 때 그 내막은 무엇인지, 인재 공급론이 과연 현실적이고 적절한지를 논한다. 그러면서 산업 수요와 노동력 공급의 모델에 따른 자본주의적 교육관의 문제점을 다각도에서 보여 준다.
이어지는 대안교육 운동에서의 청년 교육·활동을 위한 모색을 소개하는 지상 중계 지면은 대안적인 교육과 삶의 방향을 폭넓게 고민하게 만든다. 교권 담론, 기후 위기, 국가교육위원회, 장애인 투쟁, 「소년법」 개정 논란 등 핫한 이슈를 다소 다르게 이야기하는 글들이 교육 문제에 대한 독자들의 사유를 풍부하게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한다.
특집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인가
한국 사회는 교육 정책을 상당 부분 경제 정책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시대에 맞춰 창의적 인재를 길러 내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학업 성취도와 국가 경쟁력을 연관시키는 생각도 교육의 이유와 목적을 시장과 산업에 복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각 개인의 차원에서도 조금 다른 의미로 교육은 경제적 문제다. 교육에 참여하고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주된 목적 자체가 고소득 직업을 얻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 인력을 공급하는 게 교육의 첫째 의무라고 했을 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하의 교육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해도 옳을 것이다.
《오늘의 교육》은 자본주의 교육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교육 정책은 과연 경제 정책인지, 경제 정책이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강석남은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이라는 말의 내막은 입학 정원을 조절하여 졸업생을 늘리면 산업의 인력 수요가 해결될 거라는 ‘공급 만능론’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때부터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공급 만능론이 왜 허구적인지, 어떻게 반복적으로 실패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직업계 교육 기관은 아무래도 산업 및 노동 시장의 수요-공급 논리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곳이다. 이윤승과 레빗의 글은 직업계 고등학교에서의 현실과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유행을 쫓아 특성화고가 교육과정과 간판을 바꾸는 것은 실제로는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 여기에는 어떻게든 신입생을 모으고 보려는 학교 측의 입장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윤승은 애초에 교육이 산업 수요를 따라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학교와 교육이 지켜야 할 선을 지워 버리진 않는지 묻는다. 레빗 또한 교육이 경제적 문제, 생계와 직결될 때 교육의 효율성을 따지게 되고 학교교육이 비효율적인 것이 되는 모순을 말한다.
진냥의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이지만 경제 정책이 아니다〉는 교육에서 경제 논리가 매우 앙상하고 협소하다고 말한다. 교육은 보편적 분배 정책의 의미로도, 큰 규모의 공공 경제(국가 재정)로서도 경제적 문제이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 논리가 거론되는 것은 ‘교원 구조 조정’이나 ‘인적 자원 개발’, 취업 연계 같은 장면밖에 없다.
교육 정책이 경제 정책이 아니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이 경제적 문제와 동떨어진 영역이라거나, 교육이 경제와 무관한 순수한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경제와 교육이 맺는 관계를 더 자세하게 질문하고, 어떤 관계가 더 바람직한지, 우리의 삶이 나아지려면 어떤 경제이고 어떤 교육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취업과 먹고사는 일을 교육, 정확히는 개인의 학업 성취에 맡겨 놓는 방식은 공정한가. 교육이 산업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농장이자 채굴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한가. 교육 정책이 경제 정책이고 교육부가 경제 부처라는 말이 실은 ‘자본에 복무하는 교육’을 의미한다면, 우리가 더 이상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될 일이다.
차례
10 읽은 이야기 | 정명옥 PDF
특집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인가
16 “교육부는 경제 부처”라는 ‘공급 만능론’의 허상 | 강석남 PDF 바로 읽기
34 간판 바꿔 달기를 반복하는 특성화고의 현실 | 이윤승 PDF 바로 읽기
43 교육에서 효율성을 따지는 비효율성 | 레빗 PDF 바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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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중계 | ‘대안교육 운동’의 대안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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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우리는 청년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 이희경 PDF
- 문탁네트워크의 사례를 중심으로
115 청년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기 | 양희창 PDF
- 마을 작업장 학교 만들기
연속 기획 | 변방에서 온 편지 – 충남 홍성, 경북 상주
131 어떻게 ‘학교’는 시작되는가? | 정민철 PDF
- 마을에 만든 ‘농장’, 어쩌면 ‘학교’에 대하여
150 ‘변방’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실험 | 이동철 PDF
- 내서중학교와 낙운중학교의 서사를 중심으로
연속 기획 | 동물과 함께 삶, 배움
167 계속 나로 살아가기 위해 | 민서 PDF
- 채식을 시작하고 대안 급식을 제안한 이유
연재
몸을 살리는 교육 ①
176 느끼는 몸의 교육학 | 변화의월담 PDF
함께 보는 교육 연구 ④
196 교권 담론 그리고 ‘여’교사 담론 | 이선미 PDF
나의 프로젝트 수업 ②
206 기후 위기 프로젝트 | 정용주 PDF
기고
223 ‘관리’와 ‘버림’만 있는 학교를 넘어 | 일움 PDF
- 학교교육으로 잘살 수 없을 것 같아 거부한 사람의 단상
230 조희연 교육감님께 | 정용주 PDF
- 국가교육위원회 출범과 새로운 교육 정책의 시간
에세이
243 당신의 걱정처럼 힘들지만은 않습니다 | 임지은 PDF
- 청각장애 교사, 발달장애 학생들 앞에 서다
255 우아하게 약자를 혐오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 김형성 PDF
269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올 청소년들 | 서현숙 PDF
- 어른의 책임, 사회의 역할
280 지구와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 | 배이슬 PDF 바로 읽기
- 마령초등학교와 함께하는 학교의 생태적 전환
리뷰
294 반대하기를 넘어 주인이 될 결심 | 공현 PDF 바로 읽기
-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302 오늘, 읽기 | 공현 PDF
306 내가 밀고 있는 단체 부산교육연구소 | 원성만 PDF
책 속에서
공급 만능론은 산업과 교육 부문을 연결짓는 예비 노동자로서 학생·졸업생들의 입장, 특히 노동 시장의 조건은 철저히 무시한다고 가정해야만 성립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졸업이 곧 취업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예비 노동자인 학생들이 실제 노동자로서 산업 부문에 진출해야 정원 확대 정책의 효과가 실현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산업 수요 충족을 표방하는 교육 정책들은 정작 학생들의 이해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원 확대에 따라 노동 시장에 예비 노동자의 공급이 증가하면서 필연적으로 변화할 노동 시장의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신 국가 경쟁력, 사회 성장의 원동력, 선진국 도약 등의 수식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 본문 21-22쪽, 강석남, 〈“교육부는 경제 부처”라는 ‘공급 만능론’의 허상〉
실업계고가 전문계고로, 전문계고가 특성화고로 바뀌던 시점에 많은 교사가 꽤 힘들게 버티거나 그만두었다. 부기를 가르치던 교사가 컴퓨터 수업을 해야 했고, 회계를 가르치던 교사가 토익 영어를 가르쳐야 했다. 더 심한 경우엔 전산을 수업하던 교사가 영상 제작을 가르치게 되었고, 무역을 가르치던 교사가 독학으로 사진을 배워서 사진 수업을 하기 위해 교과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버티면서 자신의 교과를 버리고 새로운 교과에 적응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은 변화가 너무 빠르고 빈번하다.
- 본문 38쪽, 이윤승, 〈간판 바꿔 달기를 반복하는 특성화고의 현실〉
학교를 다니면서 ‘왜 이렇게까지 하지?’ 혹은 ‘정말 비효율적이다’라고 생각되는 순간을 종종 마주했다.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고 명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압박한다. 더 통제하고, 더 고생시키고, 더 요구해야 학교는 만족한다. 여기서 또 ‘효율성’이 등장한다. 학교는 학생들을 압박해야 취업률을 높이고 명성을 유지한다. 취업률과 명성을 확보해야 학교에도 돈이 모인다. 학교는 학생들이 통제당하고 고생하고 요구당해야 효율적이다. 우리가 비효율적인 교육을 받는 건 그게 학교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본문 46-47쪽, 레빗, 〈교육에서 효율성을 따지는 비효율성〉
교육에서 경제적 논리는 종종 간과된다. 그러다가 학교 통폐합이나 교원 감축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에만 경제성의 논리를 내세운다. 2000년대 초 교원 구조 조정이 있을 때 등장했던 ‘고경력 교사 1명이 명예퇴직하면 신규 교사 2명이 들어올 수 있다’라는 말도 그랬다. 단순히 급여만 비교한 논리였다. 출생률이 낮아지면서 교사 수가 남기 때문에 교원 정원을 감축한다는데, 실제로 교사 수가 남는지에 관한 데이터조차 정부는 내놓지 않는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법으로 정한 교사 정원 수를 채우지 못하는 학교가 무수한데 대체 어디서 얼마만큼의 교사가 남는다는 건지, 정부는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학교 통폐합에서도 작은 학교 하나를 폐교할 때 나타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해 정부는 효율성도 공평성도 측정하지 않는다.
- 본문 52쪽, 진냥(희진), 〈교육 정책은 경제 정책이지만 경제 정책이 아니다〉
간디를 비롯해 지난 20년 고등 대안교육의 역사는, 중등 대안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결국 대학을 가느냐 아니면 곧바로 사회로 진출하느냐’ 두 갈래 선택 외에 다른 대안은 없을까 고민하며 곳곳에서 대안대학을 설립하고 작게나마 청년공동체를 만들어 거대한 대학 시스템 속에서 틈새를 찾으려고 했던 노력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청년들의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이나 교육 철학의 빈곤으로 대부분 살아남지 못하고 겨우 몇 배움터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바, 이제는 새롭게 청년 배움터를 시도하려는 풋풋한 이들과 함께, 진정한 연대를 통한 대안적인 청년 대학을 만들어 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 본문 117쪽, 양희창, 〈청년들과 함께 일하고 배우기〉
학생 자치를 통해 학교 행사를 학생들이 한다고 해서 교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행사나 활동을 학교의 입장과 조율해야 하고 스스로 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오히려 일이 더 늘었다. 솔직히 경험이 많은 교사들이 하면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하게 되면 행사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교사들은 더 집중하여 지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행사를 학생들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에 교사들은 학생들을 관찰한다. 수업에서 볼 수 없었던 학생들의 생각과 모습을 보면서 교사는 학생들을 더 깊게 이해한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수업이 진행되니 더 알찬 수업이 된다..
- 본문 155-156쪽, 이동철, 〈‘변방’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실험〉
아이가 학교를 가게 되면 해내야 하는 첫 적응 역시 의자에 앉아 40~50분을 버티는 일이다. 본인의 권위를 과시하는 맥락이 아니라 교사의 권위와 통제에 순응하는 차원에서 꼿꼿하게 앉아 있기를 강요받는다. 가만히 하중을 감당하기보다는 수시로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는 일에 적합한 척추가 이 고정된 자세를 쉽게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교사의 관심과 인정, 최소한의 대우를 받으려면 의자에 앉아 주어진 과제를 해내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다면 몸의 자연스런 반응을 억누를 수밖에. 오전부터 시작해서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오랜 시간 의자에 바르게 앉아 있는 것에 적응하는 것은 곧 몸의 느낌을 단절시키는 연습이기도 하다.
- 본문 184-185쪽, 변화의월담, 〈느끼는 몸의 교육학〉
여기서 교사의 교육권은 교사의 수업에 관한 권리이자, 학교라는 일터에서 ‘성별’ 등을 이유로 침해당하지 않아야 할 노동자로서의 권리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권 담론은 교사의 성별, 나이, 지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학생인권이나 노동권 등과 함께 고민되고 있지도 못하다. 교권이 마치 학생인권과 대립되는 것처럼, 교사의 성별, 나이, 지위 등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다루어지는 현재의 교권 담론이 변화해야 우리는 진정한 교육권을 위한 논의를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204쪽, 이선미, 〈교권 담론 그리고 ‘여’교사 담론〉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력을 위해 행정이 봉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닌 행정의 정치적 중립은 어떻게 구현되는 것인가? 다시 말해 ‘정치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어떻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과 양립할 수 있는가?’를 말입니다.
이 모순을 선출된 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기존의 행정 조직으로부터도 떨어져 나오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 국가교육위원회 모델입니다. 정치적 책임과 행정의 견제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심화시키는 상보적 관계의 회복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거나 헌정 체제의 변화라는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일종의 회피를 한 것이지요.했다.
- 본문 238쪽, 정용주, 〈조희연 교육감님께〉
소수자는 배려받아야 할 존재이지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학생의 목소리를 읽으며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소수자성이, 소수자의 권리가 정치 쟁점화될 때 교사는 난처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레 움츠러들게 된다. 내 발언이 학생에게 정치적 메시지로 수용되는 순간, 바람직한 삶과 가치를 위한 논의는 거세되고 그 빈자리엔 공허하고 허무한 논란만이 남기 때문이다. 이번 경험이 그랬고, 그런 상황을 수도 없이 접했다. 그래서 소수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건 늘 조심스럽다.
- 본문 265쪽, 김형성, 〈우아하게 약자를 혐오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