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0호] 돌봄 사회로의 전환과 교육의 과제


                                                           


 《오늘의 교육》 80호 특집은 늘봄학교의 현황과 문제점을 살피고, 정책과 제도가 놓치고 있는 돌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본다. 돌봄을 바라보는 교육 주체들, 특히 교사들의 인식을 분석하고 돌봄의 제도화 과정에서 수반될 문제점도 짚어 본다. 또한 고(故) 홍세화 선생을 추모하며 교육운동가, 언론인, 진보 정당 활동가로서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자취를 돌아보고, 그 가치와 실천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할지 고민해 본다.




특집

돌봄 사회로의 전환과 교육의 과제


코로나19 이후 돌봄이 사회적 의제로 공론화되었고, 학교는 그 책임 소재와 주체를 두고 한 차례 내홍을 겪었다. 2024년 상반기, 정부의 무리한 돌봄학교 정책 추진으로 인해 ‘돌봄’은 다시 교육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에 《오늘의 교육》은 늘봄학교의 현황과 문제점을 살피고, 정책과 제도가 놓치고 있는 돌봄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본다. 또한 돌봄을 바라보는 교육 주체들, 특히 교사들의 인식을 분석하고 돌봄의 제도화 과정에서 수반될 문제점을 짚어 본다.

서우철은 늘봄학교가 시행되면서 부족한 인력과 공간 문제 등으로 혼란한 학교의 현실을 호소한다. 돌봄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학교로만 떠넘기기 말고, 교육청과 지역 사회 등이 분담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지역 자원을 활용해 ‘돌봄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드는 등 대안과 정책도 제시한다.

김중미는 기찻길옆작은학교의 사례를 통해, 어린이를 단지 ‘돌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볼 것을 제안하며 ‘어린이의 행복’과 ‘관계성’에 주목한다. 단지 어린이들을 ‘맡아 주는’ 정책이 아니라, 믿을 만한 어른들과의 관계와 또래 집단과의 놀이 속에서 성장의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돌봄을 추구할 것을 말한다.

장인하는 돌봄을 지자체에 이관하고 교육과 돌봄을 분리하려는 학교와 교사(단체)들의 입장을 차별적 사회 구조와 제약 조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정체성 노동(identity work)’으로 분석한다.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구호의 이면에 젠더화된 돌봄을 배제하고 전문직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집단적 행위 전략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오히려 국가의 통제를 강화할 위험성과 주체들 간의 분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한다.

백영경은 돌봄의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짚는다. 돌봄이 단순히 ‘서비스’로 이해되면 교육과 돌봄 사이의 위계가 공고화되고, 돌봄 노동자들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돌봄과 교육에 대한 논의 역시 퇴색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돌봄에 대한 더 폭넓고 치열한 정치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 특집은 늘봄학교 도입 논란을 계기 삼아 학교와 돌봄의 관계를 더 심층적으로 살피고자 했다. 전 사회적으로 여러 영역에서 돌봄이 화두가 되고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돌봄에 대한 요구는 국가 책임 강화와 교육·돌봄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교육 영역에서는 학교 안에 갇혔고, 프로그램의 외주화·시장화 경향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교육에서의 돌봄의 가치를 재정의하고 돌봄 사회로의 전환에서 교육의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강성규

오늘의 교육을 열며

학생인권이 부딪혀 온 ‘유리장벽’ | 공현

 

특집│돌봄 사회로의 전환과 교육의 과제

늘봄학교를 통해 본 돌봄의 현실 | 서우철

우리가 아는 돌봄, 우리가 하고자 하는 돌봄 | 김중미

교사는 전문직을 꿈꾸는가? | 장인하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돌봄과 교육 | 백영경

 

기획│홍세화 선생을 추모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채효정

홍세화는 다시없는 언론인이었다 | 안영춘

긴장하고 갈등하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고결함’ | 김민하

 

기획│대학, 유학생, 돈벌이

이주배경 학생 인권 침해 사건이 대학에 던지는 질문 | 문성웅

학생을 ‘돈’으로만 본 결과, 강제 출국과 강제 노동(비공개) | 이준희

 

후속│이주배경 학생과 함께하는 학교

용기, 연대, 저항 | 한채민

갈등을 만남의 기회로 삼다 | 서경

공존을 위한 만남과 연결 | 이정은

 

후속│법화사회와 교육

사법의 시각으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 강물

법은 사회적 관성에 따라 흐른다 | 새시비비

 

후속│4.16 10주기,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

아픔을 빨리 묻자는 사회에서, 기억교실을 봄 | 강유진

재난의 기억 공간에서 무지한 스승을 만날 수 있을까 | 권은비

 

돌의 얼굴 / 결핍 / 나무, 나무들 | 안준철

백합 / 마늘종을 뽑다가 / 고욤나무 | 임덕연

 

연재│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 - 프롤로그

섹스를 발음해 보세요 | 나영정(타리)

 

연재│청소년의 시좌에서 - 교육복지 현장의 이야기 ②

전혀 다른 목소리, 학부모와 청소년 | 발랑(신선웅)

 

연재│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⑥

뜻밖에서 | 서한영교

 

연재│대학생운동 인터뷰 – 대학의 위기와 대학 안의 운동 ⑥

2024년 노학연대의 고군분투와 쟁점들 | 강석남

[인터뷰]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김태현 대표

 

수업

학생들과 상상하는 평화 통일 | 정지영

 

에세이

‘인서울’만이 전부라는 세상과 싸울 수 있게 너의 삶을 말해 줘 | 신현아

 

리뷰

아이로부터 출발하라, 그리고 교사를 세워라 | 진영준

《초기 문해력 수업의 스펙트럼》

 

오늘 읽기 

가르침의 재발견 | 공현

모두 참여 수업(중등편) | 이진주


세 줄 새 책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책 | 조현민

밤티 마을 마리네 집, 09:47

 

내가 밀고 있는 단체

월간광장| 임경환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 느린



책 속에서



우리 학교와 달리 30학급이 넘는 큰 학교의 경우 공간 문제로 대혼란이 일어났다. 늘봄학교는 학교의 준비 상황과 관계없이 진행되다 보니 교실 수급 문제가 심각하다. 인근 50학급 규모의 학교에서는 기존 돌봄 교실 4학급에 늘봄학교 4학급을 추가로 개설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남는 교실이 없었다. 정규 수업 교실도 부족해서 특별실을 없애는 마당에 늘봄학교 교실을 만들어야 하니 학교는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큰 학교들은 할 수 없이 수업이 빨리 끝나는 저학년 교실을 늘봄학교 교실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저학년 학생들과 담임 교사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을 비워 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담임 교사들의 경우 학생들을 보내고 수업 결과를 채점하거나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자기 교실에서 쫓겨나 연구실에서 밀린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교사들이 이런 상황을 불만 없이 받아들이겠는가?

- 본문 28~29쪽, 서우철, 〈늘봄학교를 통해 본 돌봄의 현실〉

 

두렵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소통이 안 되는 보호자와 아이 문제로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애쓰고, 여러 센터와 소통한다. 무엇보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아이의 몸짓에서 아이가 말로 하지 못하는 아픔과 슬픔, 욕구를 읽으려 애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돌봄은 그저 어린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생명을 가진 역동적인 존재이며 사회적 존재임을 잊지 않고, 어른이자 이모·삼촌인 우리가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성장의 모든 순간에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방 안에서도 넘어지고, 다치고, 아프고, 흔들릴 것이다. 그때마다 곁에 있는 어른이 손을 내밀어 준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고, 실천하는 돌봄은 그런 것이다.

- 본문 48~39쪽, 김중미, 〈우리가 아는 돌봄, 우리가 하고자 하는 돌봄〉

 

오늘날 교사들의 전문직화 전략은 젠더화된 돌봄과 젠더화된 교직이라는 사회적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돌봄 노동은 여성들의 일이기 때문에 그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주로 여성들이 하는 일은 (사실은 어떤 노동에나 포함되어 있는) 돌봄적 특성이 부각되고 따라서 전문적이지 못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과 동전의 양면이다. 이에 따라 교사들은, 특히나 젠더화된 양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전문직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교육의 전문성 인정과 교육과 돌봄의 위계화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돌봄은 교육이 아니다”라는 교사들의 구호는 돌봄 노동과 교직의 젠더화라는 성차별적 사회 구조가 교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는 상황 속에서, 교사들이 전문직 정체성을 구축하여 이에 대응하고자 하는 집단적 행위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본문 60쪽, 장인하, 〈교사는 전문직을 꿈꾸는가?〉 

 

과연 한국 사회에서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나는 일단 돌봄 노동자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서 “양질의 돌봄 노동을 확보”하자는 식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돌봄 노동자가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임금 수준을 올리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한다고 해서 필요한 돌봄을 모두 돌봄 노동자에게 맡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취약성에 대한 논의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몸을 가진 인간들은 누구나 태어나서 나이 들어 가고, 앓다가 죽기도 하는 그런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잘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일들이 모두의 삶에서 중심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적 존엄을 잃지 않고서도 그럴 만한 시간과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사회가 돌봄 중심 사회로의 대전환이 추구하는 지향점이어야 한다. 그 방향은 현재의 경쟁적 시간 결핍 사회, 인간과 생태가 모두 이윤으로 추출되는 사회를 그대로 살아가면서, 유지되지 않는 삶을 돌봄 노동자의 노동으로 메우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 본문 74~75쪽, 백영경,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돌봄과 교육〉

 

그의 삶에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하면, ‘이제 그런 사람은 없구나’가 아니라, 그런 삶을 닮으려 노력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어딜 가든 기회가 닿는 대로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 가입과 《오늘의 교육》 구독을 권유하고, 기후정의동맹 후원을 부탁하고, 녹색당 당원 가입을 권하고, 체제전환운동을 소개한다.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에서 ‘조직가가 되자’고 동지들과 약속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홍세화로부터 배운 것을 ‘그 사람은 그랬다’로 끝내지 않고 나도 그래 보겠다고 실천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요즘 나에게는 홍세화의 수많은 물음이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어 주는 선배로 계속 있어 주면 좋겠다. ‘이성으로 비관해도 의지로 낙관하자’고 말하던 동지로 계속 희망과 용기를 주면 좋겠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길이기에 우리가 가야 한다’고 말하던 벗으로 계속 우리와 함께 걸어가 주면 좋겠다.

- 본문 92쪽, 채효정,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결국 이런 구조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유학생은 사라진다. 이는 이주 노동자가 겪는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한국 사회는 그들을 단순히 값싼 노동력으로 생각하고 데려왔지만, 이 땅에 온 이들은 살아 숨쉬는 인간이었다. 유학생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꿈이 있고 때로는 방황도 하지만, 재정을 충당하기 위한 ‘도구’와 미등록 체류를 막아야 할 ‘예비 범죄자’ 두 가지로 한국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사이 인권 침해는 물론 유학생 교육의 토대마저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본문 123쪽, 이준희, 〈학생을 ‘돈’으로만 본 결과, 강제 출국과 강제 노동〉

 

선주민 학생들은 이주배경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때로 이주배경 학생들이 있는 곳에서도 ‘우리 동네는 ○○ 때문에 집값이 안 오른다’, ‘◯◯ 거리를 지날 때 무섭다’는 이야길 하거나, 혐오표현을 장난이나 농담으로 사용했다. 교사인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교육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견인하는 것은 아니다. 안 하느니만 못한 교육도 있다. 나의 첫 다문화교육 수업이 그랬던 것 같다. 첫 수업에서 나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줄이자는 선주민 교사의 수업이 오히려 편견을 강화하거나 당사자 학생을 타자화할 수 있다는 지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 본문 136쪽, 한채민, 〈용기, 연대, 저항〉

 

한국 사회가 대형 참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였다. J 또한 생존 학생들, 유가족을 보며 자신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며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회와 학교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아픔을 오롯이 혼자 견뎌 내야 했던 J는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어른들에게 “지금 너희가 처한 상황은 괜찮지 않다”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다고 했다. 급히 묻어 두었던 세월호 참사의 기억은 여전히 들여다보기 힘든 숙제, 알 수 없는 눈물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세월호 관련 책, 기사, 영상은 보지 못하고, 기억교실은 가까워서 오히려 발걸음하기 힘든 공간이 되었다.

- 본문 220~221쪽, 강유진, 〈아픔을 빨리 묻자는 사회에서, 기억교실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