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 59호 특집에서는 돌봄 정책에 관한 문제, 특히 돌봄과 교육 사이의 관계를 논한다. 돌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와중의 돌봄 문제, 초등 돌봄 교실 이슈 등의 현안에 접근한다. 독자들이 돌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정책과 현실을 읽어 낼 수 있도록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에세이와 기고 등의 지면에서는 낙태죄 개정안, 학교 안 성폭력, 코로나19, 징계권 삭제 등 교육과 청소년에 관련된 최근의 이슈들을 다루었다. 농촌 지역의 교원 인사나 사립 학교 관련 법령 개정,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문제 등 우리가 잊지 말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 역시 재조명했다.
특집
돌봄과 교육 사이
2020년 11월, 초등 돌봄 파업이 예고되었다. 코로나19 사태 속 돌봄의 부족이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그간 비가시화되어 온 돌봄의 문제가 대두한 와중에 학교에서는 돌봄의 책임을 교육 당국이 맡을지 지자체가 맡을지 등의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오늘의 교육》은 ‘돌봄과 교육 사이’라는 제하에 돌봄과 교육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한국 사회 돌봄 정책의 과제를 검토했다.
채효정은 ‘돌봄’과 ‘교육’의 분리와 위계의 역사를 점검하여, 사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돌봄을 간주하는 것이 어떻게 돌봄의 가치를 낮추었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돌봄의 사회화라고 말은 하지만 그 실상은 돌봄의 국가화 또는 시장화임을 지적하고, 돌봄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용주는 “교육은 돌봄이다”라며 돌봄이 가능한 공간에서 교육도 가능함을 말한다. 돌봄이 민주주의와 교육을 위한 중요한 주춧돌이자 가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학교에서 돌봄에 반발하는 것은 행정 체계와 업무 문제가 크다고 지적하며, 돌봄과 배움이 분리되지 않는 교육을 위한 원리를 이야기한다.
서상희는 현재 한국의 돌봄 체계 전반을 정리해 보고, 그동안 돌봄 정책과 체계에 존재했던 문제점들을 짚는다. ‘어린이·청소년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봄받을 권리’라는 관점에서 통합적 돌봄 정책, 좋은 노동, 교육 정책 등이 필요하다는 논의이다.
전국교육공무직노동조합의 배경미를 인터뷰한 기사는 돌봄의 공공성과 돌봄 노동의 위치를 고민케 한다. 돌봄 체계에 대해 추상적인 논의를 넘어 돌봄 전담사가 참여하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점을 보여 준다.
돌이켜 보면, 돌봄을 사적인 영역에서 꺼내 공론화하고 공적 문제로 다루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돌봄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와 돌봄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그러한 사회적 논의의 부족을 드러내 주고 있다. 돌봄을 교육의 영역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할지 우리는 더 많이 고민하고 대화하고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차례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읽은 이야기 PDF
특집 돌봄과 교육 사이
돌봄과 교육, 그 분리와 위계의 역사 | 채효정 PDF 바로읽기
교육은 돌봄이다 | 정용주 PDF 바로읽기
인권으로서의 어린이·청소년 돌봄 | 서상희 PDF 바로읽기
돌봄 교실 법안,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 | 진냥(희진) PDF
- 전국교육공무직노동조합 배경미 경남지부장 인터뷰
후속 | 교육은 빈곤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마들창조학교가 걸어온 길과 머무른 길 | 신원 PDF
- 청소년과 공동체, 학교와 빈곤, 지역과 주체성을 잇기
연중 기획 ‘공(公)’을 다시 묻다
2020년 사립 학교와 법 이야기 | 김민식 PDF
연재
교육 현안 꺼내 보기 ④
교원의 정치 기본권은 어쩌다 사라졌을까 | 진냥(희진) PDF 바로읽기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①
누구를 위해 ‘장애’ 명명은 존재하는가 | 윤상원 PDF
- 질문을 바꿔야 한다
영화와 아이들
영화는 ‘유년 시절’을 얼마만큼 흔들어 깨울 수 있을까 | 김종구 PDF
- 스티븐 스필버그의 〈E. T.〉
1980년대의 청소년들, 너무나 정치적이었던 ⑤
대학이냐, 노동 현장이냐? | 전누리 PDF
- 졸업 이후의 진로 선택과 진입 과정
에세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규칙도 허락도 아니다 | 피아 PDF
- 정부의 ‘낙태죄’ 개정 입법 예고안에 반대하며
정말 괜찮을까? | 안정선 PDF
- 코로나19가 내게 던진 숙제
기고
여자들의 힘을 빼는 사회에서, 힘 기르기 | 영실 PDF
-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열망하며
코로나19, 학생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었나 | 공현 PDF
- 〈코로나19 관련 학생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훈육”을 남기면 누구의 핑계로 쓰일까? | 이윤경 PDF
- 아동학대 근절, 징계권 삭제부터
그 많던 선생님은 다 어디 갔을까 | 오정오 PDF
- 지역에 맞는 교원 인사 정책을 요구한다
교육 현장 찾기
스스로 배우고 공간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곳 | 공현 PDF
-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와 학교 밖 청소년 프로그램 ‘나로 프로젝트’
리뷰
우린 시설 사이에서 만나야 한다 | 이윤승 PDF
- 《시설 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
두 줄 새 책 PDF
주제가 있는 독서 PDF
책 속에서
근대 세계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분명히 나누고, 가정과 사회가 분리되면서 돌봄과 교육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완전히 분리시켰다. 돌봄은 공식화된 노동 세계 바깥으로 추방되고 가정 속으로 은폐된다. 근대의 학교 제도는 배움의 장을 가정과 마을, 삶터와 일터로부터 ‘분리되어’ 국가 교육을 수행하는 ‘분리된 장소’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성별과 계급 모든 측면에서 분리의 장벽이 높았다. 교육은 남성의 특권이자 계급의 특권이었고, 돌봄은 여성의 의무이고 계급의 의무였다. 이어진 사회 혁명들이 차츰 교육의 평등권을 요구하며 프롤레타리아와 여성에게도 문을 열어 기회를 확장해 나갔지만 돌봄은 아니었다.
- 본문 21-22쪽, 채효정, 〈돌봄과 교육, 그 분리와 위계의 역사〉
돌봄은 모든 인간의 생애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돌봄 관계는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연대의 시발점이다. 돌봄 관계는 인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는 출발점이자 사회적 유대를 가능하게 하는 선결 조건이다.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와 상호 관심, 사회적 연결과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는 필수적인 주춧돌인 ‘함께 돌봄’이 없는 곳에서 배움 또한 불가능하다. 때문에 나딩스가 말한 것처럼 학교를, 생기 발랄함에 감사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면서 학생 개개인의 존재를 축복하는 돌봄의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본문 48쪽, 정용주, 〈교육은 돌봄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게 되었고, 정부는 ‘긴급 돌봄’ 운영을 통해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긴급 돌봄은 특별히 어디서 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돌봄 체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돌봄 인력을 구할 수도 없고, 그러한 시설과 자원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즉, 모든 시설 운영을 원칙적으로 중단하되, 부득이한 경우의 아이들만 시설에 모아서 돌보겠다는 것이 ‘긴급 돌봄’이다. 그렇기 때문에 ‘긴급 돌봄’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은 기존 돌봄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 본문 54-55쪽, 서상희, 〈인권으로서의 어린이·청소년 돌봄〉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지자체 이관’, ‘돌봄의 공공성 강화’라는 말들이 얼마나 추상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겉돌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돌봄 노동은 교사인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 돌봄과 관련되어 가장 큰 쟁점이 지자체 이관 유무인 것을 알고 있었고 관련해서 여러 번 토론도 했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남의 일이었던 것이다.
- 본문 72쪽, 진냥(희진), 〈돌봄 교실 법안,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
“우리 기관에서는 어렵지만 마들창조학교에는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지역의 어느 청소년 기관 실무자가 했던 말에서 공부방으로 남은 마들창조학교의 의의를 찾는다. 내가 마들창조학교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유기도 하다. 당사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스마트폰 사용을 함부로 금지하거나, 술·담배 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기. 청소년 간에 발생한 싸움을 억지로 화해시키지 않고 각자의 입장을 먼저 듣기. 동정심을 일으키며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고정하는 ’애들’, ‘우리 아이들’ 같은 언어 사용하지 않기.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교육을 위해 우리가 지켜온 지향이다.
- 본문 76쪽, 신원, 〈마들창조학교과 걸어온 길과 머무른 길〉
교장은 자신을 파면한 학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보통은 자기가 몸담았던, 더군다나 자기를 교장으로 발탁한 학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걸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민사 소송에서 학교 측은 소송의 주체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 파면이 정당했다는 증거도 제출하지 않고, 재판에 불성실하게 임하며 기타 해태 행위를 지속한다.
- 본문 92쪽, 김민식, 〈2020년, 사립 학교와 법 이야기〉
공무원에게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조항은 사람의 권리가 아니다. 교사 그리고 교직원들로 하여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조성하고 유지할 책무를 가지게 한 것이다. 이러한 〈헌법〉 개정에 따라 1963년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이 개정되었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에 대한 형사 처벌이 정해진다. 교사 및 공무원의 정당 가입이 금지되고 정치 행위가 전면적으로 제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다.
- 본문 99쪽, 진냥(희진), 〈교원의 정치 기본권은 어쩌다 사라졌을까〉
장애라 명명된 학생을 향한 분리와 배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책임이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서 특수 교사를 향한 그들의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고생이 많지?’에서 ‘내가 무얼 할까?’로 말이다. 일반 학교 구조는 역사적으로 장애라 명명된 학생들을 배제한 채 교수-학습 환경을 구축해 왔다. 그렇게 구축된 교수-학습 체계 속에서 오랫동안 배제된 학생들의 출현은 학교 교육 환경 및 수업 문화 전반에 대한 리모델링을 요구한다.
- 본문 118쪽, 윤상원, 〈누구를 위해 ‘장애’ 명명은 존재하는가〉
최근에는 텔레그램을 통한 아동 청소년 성 착취물 공유에‘도’ 교사들이 가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교사들 중에서 안 나오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교대와 사범대의 남학생 단톡방에서는 동료 여학생에 대한 성폭력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그들이 교사로 ‘양성’되는 동안 성평등교육은 없거나 몇 시간 형식적으로 진행될 뿐이고, 그렇게 해서 교사가 된다 한들 성평등 연수는 여전히 ‘형식적으로 채워야 할’ 무언가이다.
- 본문 181쪽, 영실, 〈여자들의 힘을 빼는 사회에서, 힘 기르기〉
하나는 학생들을 방역에 동참하는 주체로 보기보다는 강압적 수단을 사용하여 통제·관리할 대상으로 보는 문제이다. 학생들은 “바이러스보다는 낫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이러스를 전파할 운반자들처럼 취급되”었다. 이는 학생들의 인권, 주체성을 경시하는 학교의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른 하나는 학교 시설과 교육 환경의 열악함이다. 코로나19 이후로 학급당 학생 수 문제가 재차 공론화되었듯이, 밀집도가 지나치게 높고 각종 시설이 부족한 학교 환경에서 방역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비인간적인 수준의 통제가 가해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 본문 189쪽, 공현, 〈코로나19, 학생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었나〉
농촌의 잦은 인사 이동은 학교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마다 많은 교사가 학교를 떠나면, 학교 특성에 맞는 비전을 세우고 교육 운영 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교육은 연계성과 지속성이 꼭 필요한 법인데, 교사들이 계속 떠나면 교육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머무르지 않으면 학교 혁신의 노하우는 축적되지 못하고, 사람이 바뀔 때마다 다람쥐 쳇바퀴마냥 비슷한 갈등과 시행착오를 되풀이합니다. 학교 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의 경험을 축적해 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중심을 잡고 버티지 않으면 다 부질없는 짓이 될 수 있습니다.
- 본문 210쪽, 오정오, 〈그 많던 선생님은 다 어디 갔을까〉
《오늘의 교육》 59호 특집에서는 돌봄 정책에 관한 문제, 특히 돌봄과 교육 사이의 관계를 논한다. 돌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와중의 돌봄 문제, 초등 돌봄 교실 이슈 등의 현안에 접근한다. 독자들이 돌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정책과 현실을 읽어 낼 수 있도록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에세이와 기고 등의 지면에서는 낙태죄 개정안, 학교 안 성폭력, 코로나19, 징계권 삭제 등 교육과 청소년에 관련된 최근의 이슈들을 다루었다. 농촌 지역의 교원 인사나 사립 학교 관련 법령 개정,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문제 등 우리가 잊지 말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 역시 재조명했다.
특집
돌봄과 교육 사이
2020년 11월, 초등 돌봄 파업이 예고되었다. 코로나19 사태 속 돌봄의 부족이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다. 그간 비가시화되어 온 돌봄의 문제가 대두한 와중에 학교에서는 돌봄의 책임을 교육 당국이 맡을지 지자체가 맡을지 등의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오늘의 교육》은 ‘돌봄과 교육 사이’라는 제하에 돌봄과 교육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한국 사회 돌봄 정책의 과제를 검토했다.
채효정은 ‘돌봄’과 ‘교육’의 분리와 위계의 역사를 점검하여, 사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돌봄을 간주하는 것이 어떻게 돌봄의 가치를 낮추었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돌봄의 사회화라고 말은 하지만 그 실상은 돌봄의 국가화 또는 시장화임을 지적하고, 돌봄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용주는 “교육은 돌봄이다”라며 돌봄이 가능한 공간에서 교육도 가능함을 말한다. 돌봄이 민주주의와 교육을 위한 중요한 주춧돌이자 가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학교에서 돌봄에 반발하는 것은 행정 체계와 업무 문제가 크다고 지적하며, 돌봄과 배움이 분리되지 않는 교육을 위한 원리를 이야기한다.
서상희는 현재 한국의 돌봄 체계 전반을 정리해 보고, 그동안 돌봄 정책과 체계에 존재했던 문제점들을 짚는다. ‘어린이·청소년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봄받을 권리’라는 관점에서 통합적 돌봄 정책, 좋은 노동, 교육 정책 등이 필요하다는 논의이다.
전국교육공무직노동조합의 배경미를 인터뷰한 기사는 돌봄의 공공성과 돌봄 노동의 위치를 고민케 한다. 돌봄 체계에 대해 추상적인 논의를 넘어 돌봄 전담사가 참여하는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점을 보여 준다.
돌이켜 보면, 돌봄을 사적인 영역에서 꺼내 공론화하고 공적 문제로 다루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돌봄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와 돌봄 정책을 둘러싼 갈등은 그러한 사회적 논의의 부족을 드러내 주고 있다. 돌봄을 교육의 영역에서는 어떻게 이해하고 함께할지 우리는 더 많이 고민하고 대화하고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차례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읽은 이야기 PDF
특집 돌봄과 교육 사이
돌봄과 교육, 그 분리와 위계의 역사 | 채효정 PDF 바로읽기
교육은 돌봄이다 | 정용주 PDF 바로읽기
인권으로서의 어린이·청소년 돌봄 | 서상희 PDF 바로읽기
돌봄 교실 법안,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 | 진냥(희진) PDF
- 전국교육공무직노동조합 배경미 경남지부장 인터뷰
후속 | 교육은 빈곤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마들창조학교가 걸어온 길과 머무른 길 | 신원 PDF
- 청소년과 공동체, 학교와 빈곤, 지역과 주체성을 잇기
연중 기획 ‘공(公)’을 다시 묻다
2020년 사립 학교와 법 이야기 | 김민식 PDF
연재
교육 현안 꺼내 보기 ④
교원의 정치 기본권은 어쩌다 사라졌을까 | 진냥(희진) PDF 바로읽기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①
누구를 위해 ‘장애’ 명명은 존재하는가 | 윤상원 PDF
- 질문을 바꿔야 한다
영화와 아이들
영화는 ‘유년 시절’을 얼마만큼 흔들어 깨울 수 있을까 | 김종구 PDF
- 스티븐 스필버그의 〈E. T.〉
1980년대의 청소년들, 너무나 정치적이었던 ⑤
대학이냐, 노동 현장이냐? | 전누리 PDF
- 졸업 이후의 진로 선택과 진입 과정
에세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규칙도 허락도 아니다 | 피아 PDF
- 정부의 ‘낙태죄’ 개정 입법 예고안에 반대하며
정말 괜찮을까? | 안정선 PDF
- 코로나19가 내게 던진 숙제
기고
여자들의 힘을 빼는 사회에서, 힘 기르기 | 영실 PDF
-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열망하며
코로나19, 학생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었나 | 공현 PDF
- 〈코로나19 관련 학생인권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훈육”을 남기면 누구의 핑계로 쓰일까? | 이윤경 PDF
- 아동학대 근절, 징계권 삭제부터
그 많던 선생님은 다 어디 갔을까 | 오정오 PDF
- 지역에 맞는 교원 인사 정책을 요구한다
교육 현장 찾기
스스로 배우고 공간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곳 | 공현 PDF
-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와 학교 밖 청소년 프로그램 ‘나로 프로젝트’
리뷰
우린 시설 사이에서 만나야 한다 | 이윤승 PDF
- 《시설 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
두 줄 새 책 PDF
주제가 있는 독서 PDF
책 속에서
근대 세계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경계를 분명히 나누고, 가정과 사회가 분리되면서 돌봄과 교육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으로 완전히 분리시켰다. 돌봄은 공식화된 노동 세계 바깥으로 추방되고 가정 속으로 은폐된다. 근대의 학교 제도는 배움의 장을 가정과 마을, 삶터와 일터로부터 ‘분리되어’ 국가 교육을 수행하는 ‘분리된 장소’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성별과 계급 모든 측면에서 분리의 장벽이 높았다. 교육은 남성의 특권이자 계급의 특권이었고, 돌봄은 여성의 의무이고 계급의 의무였다. 이어진 사회 혁명들이 차츰 교육의 평등권을 요구하며 프롤레타리아와 여성에게도 문을 열어 기회를 확장해 나갔지만 돌봄은 아니었다.
- 본문 21-22쪽, 채효정, 〈돌봄과 교육, 그 분리와 위계의 역사〉
돌봄은 모든 인간의 생애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돌봄 관계는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연대의 시발점이다. 돌봄 관계는 인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는 출발점이자 사회적 유대를 가능하게 하는 선결 조건이다. 사회 구성원 사이의 신뢰와 상호 관심, 사회적 연결과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는 필수적인 주춧돌인 ‘함께 돌봄’이 없는 곳에서 배움 또한 불가능하다. 때문에 나딩스가 말한 것처럼 학교를, 생기 발랄함에 감사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면서 학생 개개인의 존재를 축복하는 돌봄의 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본문 48쪽, 정용주, 〈교육은 돌봄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게 되었고, 정부는 ‘긴급 돌봄’ 운영을 통해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긴급 돌봄은 특별히 어디서 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돌봄 체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돌봄 인력을 구할 수도 없고, 그러한 시설과 자원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즉, 모든 시설 운영을 원칙적으로 중단하되, 부득이한 경우의 아이들만 시설에 모아서 돌보겠다는 것이 ‘긴급 돌봄’이다. 그렇기 때문에 ‘긴급 돌봄’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은 기존 돌봄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 본문 54-55쪽, 서상희, 〈인권으로서의 어린이·청소년 돌봄〉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지자체 이관’, ‘돌봄의 공공성 강화’라는 말들이 얼마나 추상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겉돌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돌봄 노동은 교사인 나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 돌봄과 관련되어 가장 큰 쟁점이 지자체 이관 유무인 것을 알고 있었고 관련해서 여러 번 토론도 했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남의 일이었던 것이다.
- 본문 72쪽, 진냥(희진), 〈돌봄 교실 법안,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
“우리 기관에서는 어렵지만 마들창조학교에는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지역의 어느 청소년 기관 실무자가 했던 말에서 공부방으로 남은 마들창조학교의 의의를 찾는다. 내가 마들창조학교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유기도 하다. 당사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스마트폰 사용을 함부로 금지하거나, 술·담배 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기. 청소년 간에 발생한 싸움을 억지로 화해시키지 않고 각자의 입장을 먼저 듣기. 동정심을 일으키며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고정하는 ’애들’, ‘우리 아이들’ 같은 언어 사용하지 않기.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교육을 위해 우리가 지켜온 지향이다.
- 본문 76쪽, 신원, 〈마들창조학교과 걸어온 길과 머무른 길〉
교장은 자신을 파면한 학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보통은 자기가 몸담았던, 더군다나 자기를 교장으로 발탁한 학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걸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민사 소송에서 학교 측은 소송의 주체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나도 하지 않는다. 파면이 정당했다는 증거도 제출하지 않고, 재판에 불성실하게 임하며 기타 해태 행위를 지속한다.
- 본문 92쪽, 김민식, 〈2020년, 사립 학교와 법 이야기〉
공무원에게 중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조항은 사람의 권리가 아니다. 교사 그리고 교직원들로 하여금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조성하고 유지할 책무를 가지게 한 것이다. 이러한 〈헌법〉 개정에 따라 1963년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이 개정되었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위반에 대한 형사 처벌이 정해진다. 교사 및 공무원의 정당 가입이 금지되고 정치 행위가 전면적으로 제한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다.
- 본문 99쪽, 진냥(희진), 〈교원의 정치 기본권은 어쩌다 사라졌을까〉
장애라 명명된 학생을 향한 분리와 배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책임이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서 특수 교사를 향한 그들의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고생이 많지?’에서 ‘내가 무얼 할까?’로 말이다. 일반 학교 구조는 역사적으로 장애라 명명된 학생들을 배제한 채 교수-학습 환경을 구축해 왔다. 그렇게 구축된 교수-학습 체계 속에서 오랫동안 배제된 학생들의 출현은 학교 교육 환경 및 수업 문화 전반에 대한 리모델링을 요구한다.
- 본문 118쪽, 윤상원, 〈누구를 위해 ‘장애’ 명명은 존재하는가〉
최근에는 텔레그램을 통한 아동 청소년 성 착취물 공유에‘도’ 교사들이 가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교사들 중에서 안 나오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교대와 사범대의 남학생 단톡방에서는 동료 여학생에 대한 성폭력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그들이 교사로 ‘양성’되는 동안 성평등교육은 없거나 몇 시간 형식적으로 진행될 뿐이고, 그렇게 해서 교사가 된다 한들 성평등 연수는 여전히 ‘형식적으로 채워야 할’ 무언가이다.
- 본문 181쪽, 영실, 〈여자들의 힘을 빼는 사회에서, 힘 기르기〉
하나는 학생들을 방역에 동참하는 주체로 보기보다는 강압적 수단을 사용하여 통제·관리할 대상으로 보는 문제이다. 학생들은 “바이러스보다는 낫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이러스를 전파할 운반자들처럼 취급되”었다. 이는 학생들의 인권, 주체성을 경시하는 학교의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른 하나는 학교 시설과 교육 환경의 열악함이다. 코로나19 이후로 학급당 학생 수 문제가 재차 공론화되었듯이, 밀집도가 지나치게 높고 각종 시설이 부족한 학교 환경에서 방역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비인간적인 수준의 통제가 가해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 본문 189쪽, 공현, 〈코로나19, 학생들에게 학교는 어떤 곳이었나〉
농촌의 잦은 인사 이동은 학교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해마다 많은 교사가 학교를 떠나면, 학교 특성에 맞는 비전을 세우고 교육 운영 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교육은 연계성과 지속성이 꼭 필요한 법인데, 교사들이 계속 떠나면 교육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머무르지 않으면 학교 혁신의 노하우는 축적되지 못하고, 사람이 바뀔 때마다 다람쥐 쳇바퀴마냥 비슷한 갈등과 시행착오를 되풀이합니다. 학교 문화를 만든다는 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의 경험을 축적해 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중심을 잡고 버티지 않으면 다 부질없는 짓이 될 수 있습니다.
- 본문 210쪽, 오정오, 〈그 많던 선생님은 다 어디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