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 54호 특집은 교육 현장에 존재하고 드러나는 계급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교육이 계급을 재생산하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문제를 논한다. 교사와 학생의 입장에서 경험을 중심으로 다루었는데, 이후에 교육과 불평등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18세 선거권이 통과된 이후 학교에서 변화해야 할 과제를 짚고 교사와 학생은 참정권과 정치, 선거에 대해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소개하는 글을 기획으로 게재했다. 리뷰 지면에서도 계급 문제와 시험/경쟁의 문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 비평하면서 특집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했다.
특집
교육과 불평등
소위 ‘조국 사태’가 촉발시킨 논의의 한 축이 입시 제도 또는 공정성의 문제였다면, 또 다른 한 축은 교육에서의 계급 불평등과 격차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교육》 54호는 교육 현장에 존재하는 계급 불평등의 현실을 드러내고,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장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했다.
홍세화는 교육이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계급 투쟁의 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을 통해 계급 상승의 기회를 얻으려는 각축장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교육이 계급 상승의 기회를 줄 수 없고 계급을 재생산하는 과정이 되었을 뿐인 현실도 지적한다. 그는 교육이 계급 재생산을 정당화하는 ‘상징 폭력’의 과정이 아니라, 계급 의식을 갖추고 비판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과정이 될 수는 없는가 묻는다.
서울 강북 지역 고교 교사인 류운하의 글 〈나만이라도 계급 재생산의 착실한 일꾼이 아니기를〉은 다양한 학교 현장을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경험해 본 바를 바탕으로 한다. 이 글은 학교에서 어떤 학생들이 배제당하고 ‘교육 불가능’의 상황에 놓이는지를 보여 준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의 출신 계급 사이에, 경험한 교육 환경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도 있다.경남 밀양 지역의 학생인 박경석(긁적)은 자신이 중·고등학교에서 경험한 계급 격차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학교교육이 어떻게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지 증언한다.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불평등의 양상은 다르겠으나, 그리 특별한 사례는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장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반복된 주장이다. 그러나 또한 이는 우리 사회가 직시하지 않고 있던, 그래서 해결되지도 않고 어쩌면 더욱 심화되어 온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이 우리 사회의 현실과, 계급의 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육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차례
8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특집 교육과 불평등
14 교육은 계급 투쟁의 장인가? | 홍세화 PDF 바로보기
25 나만이라도 계급 재생산의 착실한 일꾼이 아니기를 | 류운하 PDF
35 개천에 물고기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 박경석(긁적) PDF
기획 청소년 참정권 시대, 학교를 말하다
44 18세 선거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 미지 PDF 바로보기
55 선거권은 단지 어디를 찍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 조영선 PDF
- ‘교실의 정치화’ 가상 대담
기획 청년,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다 ②
71 나를 지키면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소정 PDF
- 춤과 페미니즘, 그리고 일
88 나살림, 서로살림, 지구살림 | 소연 PDF
- 살림이스트, 대안학교 교사의 삶
에세이
103 학생 자치는 학교의 자랑을 위한 게 아니다 | 하지 PDF
112 임종길의 그림일기 PDF
기고
116 고교 혁신의 어려움과 가능성 | 김영진 PDF
- 초짜 교사의 고교 혁신 도전기
125 더 나은 반복을 위한 기억 | 공현 PDF
- ‘8090 참교육운동/고등학생운동을 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마당’을 치르고
연재
나눔의 경제인류학
134 인류학적 상상력으로 경제를 보다 | 홍서연 PDF
영화와 아이들
145 아이들은 파시즘과 어떻게 대면하는가 | 김종구 PDF
- 〈마리포사〉(1999), 〈하얀 리본〉(2009)
리뷰
165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 내다 | 진냥 PDF
- 《아이들의 계급투쟁》
174 시험공화국의 슬픈 역사 | 정은균 PDF
- 《시험국민의 탄생》
183 학교 사회를 향한 장애학의 도전 | 윤상원 PDF
- 《장애학의 도전》
196 두 줄 새 책 PDF
198 주제가 있는 독서 PDF
200 어린이 책 나들이 PDF
책 속에서
한국의 교육 경쟁은 계층 상승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믿음을 주어 왔다. 하지만 그 믿음은 앞으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착시를 거쳐 허상으로 귀결될 것이며, 계층 세습의 경향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과거 유럽의 중세 사회에서 왕족-귀족-평민-농노의 신분 ‘질서’를 정당화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가령 ‘order’는 ‘질서’와 ‘명령’의 뜻을 함께 갖고 있다). 오늘날 교육은, 지배당하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네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잘못’ 탓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지배 세력에 복종하도록 이끈다.
- 본문 19쪽, 홍세화, 〈교육은 계급 투쟁의 장인가?〉
한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 주지 않고, 상처 입히고, 똑똑하거나 바보 같거나 자존감을 낮추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들’은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이 사회 전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의 차이를 느낄 때마다 교육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교육을 마주한다. 누군가에게는 좌절을, 누군가에게는 도전 정신을 심어 주는 교육이 과연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 본문 27쪽, 류운하, 〈나만이라도 계급 재생산의 착실한 일꾼이 아니기를〉
교사들은 늘 폭력적이었다. 대놓고 ‘가난한 것들’이라는 표현을 하며 무시하는 일이 일쑤였다. 가난한 것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시험 기간만 되면 어김없이 “너희는 시골 촌놈들이니 시내 학교에 진학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 것이냐”며 다그쳤다.
- 본문 37-38쪽, 박경석(긁적), 〈개천에 물고기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학교는 비정치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무엇보다 정치적인 주장이다. 수많은 학생들을 무한 입시 경쟁 교육으로 내몰고, 불확실한 미래를 볼모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게 만드는,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 학생들의 의견 따위는 전혀 듣지 않는 지금의 학교는 이미 지극히 정치적인 공간이다. 만 18세 선거권은, 그리고 청소년 참정권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행동에 나설 용기를 부여함으로써 반反학생인권적인 기존 학교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지렛대이다.
- 본문 46쪽, 미지, 〈18세 선거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저는 이번 계기가 그냥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행위를 넘어 내 삶의 문제가 이 사회, 정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그리고 법을 바꾸는 것이 이 세상의 룰을 바꾸는 것인 만큼 그저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룰을 바꾸는 주체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길 바라요. 그래야지 비합리적인 룰에 대해서 굴복하지 않을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 본문 70쪽, 조영선, 〈선거권은 단지 어디를 찍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과학자 조천호 님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얘기하셨고, ‘광범위하고 심각한 위험을 막아 내기 위해서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가 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미 1℃가량 올랐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0.5℃가 남았으며, 그렇게 되기까지 8년 남짓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얘기를 듣고 있던 볍씨 청소년 과정 한 친구가 말했다. “그러면 10년 안에 나 죽어야겠네.”
- 본문 93쪽, 소연, 〈나살림, 서로살림, 지구살림〉
내가 학생회를 하며 바라본 학교는 학생 자치에 우호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학생 자치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그런 기만적인 태도에 우리의 행동이 이용당하는 것을 느낄 때면 학생회의 위치를 계속 의심해야 했다. 학생회는 학생의 권리를 대변해야 하는 곳인가, 행사를 기획하여 학교의 위세를 높여 주는 곳인가. 그런 의심이 들 때마다 행동을 주저하게 되었다. 학교를 바꾸고자 했던 나의 마음은 학교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는 데 집중하게 되어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
- 본문 111쪽, 하지, 〈학생 자치는 학교의 자랑을 위한 게 아니다〉
수능이 가까워 올수록 교사들의 자아 분열은 심해진다. 수능이 필요한 학생 몇몇만 놓고 수업을 하면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하는 학종파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고, 학종파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도하면 정시파 학생들이 소외된다. 각종 음악, 체육, 문학 등 실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마땅한 지원을 받기 힘들어 학교 밖 학원으로 나돈다. 학교에서 실기 준비가 안 되니 학원 가는 거라며 조퇴시켜 달라고 하는 학생들과 출결을 가지고 씨름한다. 가장 눈에 밟히는 건 대학 비진학 학생들이다.
- 본문 121쪽, 김영진, 〈고교 혁신의 어려움과 가능성〉
패널 중 1명은 고등학생운동이 왜 지금은 잘 기억되고 회자되지 않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고등학생운동이 실패담으로, 학대당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러 패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 건, 고등학생운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쟁했지만 그만큼 많이 두들겨 맞았고, 경찰에게 미행을 당했고, 학교에서는 근신부터 퇴학까지 골고루 당했으며, 교사, 부모, 교육청 장학사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당했던 경험이었다. 그런 조건에서 많은 것을 할 수도 없었고, 탄압과 폭력의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았다는 말이었다.
- 본문 128쪽, 공현, 〈더 나은 반복을 위한 기억〉
자연을 느껴 보자, 자연은 지식의 보고다, 라는 말은 당시의 구체제 교육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신의 계시인 성서와 그 메시지를 요약한 교리를 암기하고, 다시 그걸 입으로 되뇌이는 게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생각했던 구체제의 교육. 그 속에서 훈육된 몸으로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의 본성, 즉 내가 뭘 원하고 바라는지조차 알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이 어쩌면 ‘나비’로도 충분한 이유는, 이 영화는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아이들을 기르고 싶어 했던 한 공화주의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본문 149-150쪽, 김종구, 〈아이들은 파시즘과 어떻게 대면하는가〉
이경숙이 보기에 우리가 시험에 집착하고 시험이 난개발된 사회적 배경에는 시험을 손쉬운 통제 장치로 사용해 왔던 역사와, 시험을 통해 출세 기회를 넓혔던 민간의 욕망이 뒤엉켜 있다. 무엇보다 시험은 국가(권력)가 인민을 통제하기 위해 설계한 통치 장치였다.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과거 제도는 개방성과 자율성이라는 명분에 힘입어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과거 시험은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국가에 복속시켰다. 이경숙은 이를 “느슨하지만 강력한 정신적 통치 방식”이라고 명명했다.
- 본문 178쪽, 정은균, 〈시험공화국의 슬픈 역사〉
강당에서 교육 활동이 있는 날이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홀로 교실에 남겨져 자습을 하곤 했다. 강당이 별관 2층에 위치해 있었음에도 그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장에게 별관 엘리베이터 설치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예산 부족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 설치 비용에 맞먹는 예산이 성적 상위 1% 학생들을 위한 쾌적한 독서실 증축 공사를 위해 지출되었다.
- 본문 188쪽, 윤상원, 〈학교 사회를 향한 장애학의 도전〉
《오늘의 교육》 54호 특집은 교육 현장에 존재하고 드러나는 계급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교육이 계급을 재생산하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문제를 논한다. 교사와 학생의 입장에서 경험을 중심으로 다루었는데, 이후에 교육과 불평등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18세 선거권이 통과된 이후 학교에서 변화해야 할 과제를 짚고 교사와 학생은 참정권과 정치, 선거에 대해 어떻게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 소개하는 글을 기획으로 게재했다. 리뷰 지면에서도 계급 문제와 시험/경쟁의 문제,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 비평하면서 특집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했다.
특집
교육과 불평등
소위 ‘조국 사태’가 촉발시킨 논의의 한 축이 입시 제도 또는 공정성의 문제였다면, 또 다른 한 축은 교육에서의 계급 불평등과 격차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교육》 54호는 교육 현장에 존재하는 계급 불평등의 현실을 드러내고,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장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했다.
홍세화는 교육이 마르크스주의자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계급 투쟁의 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을 통해 계급 상승의 기회를 얻으려는 각축장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이제는 교육이 계급 상승의 기회를 줄 수 없고 계급을 재생산하는 과정이 되었을 뿐인 현실도 지적한다. 그는 교육이 계급 재생산을 정당화하는 ‘상징 폭력’의 과정이 아니라, 계급 의식을 갖추고 비판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과정이 될 수는 없는가 묻는다.
서울 강북 지역 고교 교사인 류운하의 글 〈나만이라도 계급 재생산의 착실한 일꾼이 아니기를〉은 다양한 학교 현장을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경험해 본 바를 바탕으로 한다. 이 글은 학교에서 어떤 학생들이 배제당하고 ‘교육 불가능’의 상황에 놓이는지를 보여 준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의 출신 계급 사이에, 경험한 교육 환경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도 있다.경남 밀양 지역의 학생인 박경석(긁적)은 자신이 중·고등학교에서 경험한 계급 격차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학교교육이 어떻게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지 증언한다.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불평등의 양상은 다르겠으나, 그리 특별한 사례는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장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반복된 주장이다. 그러나 또한 이는 우리 사회가 직시하지 않고 있던, 그래서 해결되지도 않고 어쩌면 더욱 심화되어 온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이 우리 사회의 현실과, 계급의 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육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차례
8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특집 교육과 불평등
14 교육은 계급 투쟁의 장인가? | 홍세화 PDF 바로보기
25 나만이라도 계급 재생산의 착실한 일꾼이 아니기를 | 류운하 PDF
35 개천에 물고기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 박경석(긁적) PDF
기획 청소년 참정권 시대, 학교를 말하다
44 18세 선거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 미지 PDF 바로보기
55 선거권은 단지 어디를 찍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 조영선 PDF
- ‘교실의 정치화’ 가상 대담
기획 청년,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다 ②
71 나를 지키면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소정 PDF
- 춤과 페미니즘, 그리고 일
88 나살림, 서로살림, 지구살림 | 소연 PDF
- 살림이스트, 대안학교 교사의 삶
에세이
103 학생 자치는 학교의 자랑을 위한 게 아니다 | 하지 PDF
112 임종길의 그림일기 PDF
기고
116 고교 혁신의 어려움과 가능성 | 김영진 PDF
- 초짜 교사의 고교 혁신 도전기
125 더 나은 반복을 위한 기억 | 공현 PDF
- ‘8090 참교육운동/고등학생운동을 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마당’을 치르고
연재
나눔의 경제인류학
134 인류학적 상상력으로 경제를 보다 | 홍서연 PDF
영화와 아이들
145 아이들은 파시즘과 어떻게 대면하는가 | 김종구 PDF
- 〈마리포사〉(1999), 〈하얀 리본〉(2009)
리뷰
165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 내다 | 진냥 PDF
- 《아이들의 계급투쟁》
174 시험공화국의 슬픈 역사 | 정은균 PDF
- 《시험국민의 탄생》
183 학교 사회를 향한 장애학의 도전 | 윤상원 PDF
- 《장애학의 도전》
196 두 줄 새 책 PDF
198 주제가 있는 독서 PDF
200 어린이 책 나들이 PDF
책 속에서
한국의 교육 경쟁은 계층 상승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믿음을 주어 왔다. 하지만 그 믿음은 앞으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착시를 거쳐 허상으로 귀결될 것이며, 계층 세습의 경향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과거 유럽의 중세 사회에서 왕족-귀족-평민-농노의 신분 ‘질서’를 정당화했던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가령 ‘order’는 ‘질서’와 ‘명령’의 뜻을 함께 갖고 있다). 오늘날 교육은, 지배당하는 대중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를 ‘네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잘못’ 탓으로 돌리게 함으로써 지배 세력에 복종하도록 이끈다.
- 본문 19쪽, 홍세화, 〈교육은 계급 투쟁의 장인가?〉
한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 주지 않고, 상처 입히고, 똑똑하거나 바보 같거나 자존감을 낮추는 ‘그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본다. ‘그들’은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이 사회 전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의 차이를 느낄 때마다 교육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교육을 마주한다. 누군가에게는 좌절을, 누군가에게는 도전 정신을 심어 주는 교육이 과연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 본문 27쪽, 류운하, 〈나만이라도 계급 재생산의 착실한 일꾼이 아니기를〉
교사들은 늘 폭력적이었다. 대놓고 ‘가난한 것들’이라는 표현을 하며 무시하는 일이 일쑤였다. 가난한 것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시험 기간만 되면 어김없이 “너희는 시골 촌놈들이니 시내 학교에 진학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언제까지 우물 안 개구리로 살 것이냐”며 다그쳤다.
- 본문 37-38쪽, 박경석(긁적), 〈개천에 물고기가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학교는 비정치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무엇보다 정치적인 주장이다. 수많은 학생들을 무한 입시 경쟁 교육으로 내몰고, 불확실한 미래를 볼모로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게 만드는,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 학생들의 의견 따위는 전혀 듣지 않는 지금의 학교는 이미 지극히 정치적인 공간이다. 만 18세 선거권은, 그리고 청소년 참정권은 학생들이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행동에 나설 용기를 부여함으로써 반反학생인권적인 기존 학교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지렛대이다.
- 본문 46쪽, 미지, 〈18세 선거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저는 이번 계기가 그냥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행위를 넘어 내 삶의 문제가 이 사회, 정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그리고 법을 바꾸는 것이 이 세상의 룰을 바꾸는 것인 만큼 그저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룰을 바꾸는 주체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길 바라요. 그래야지 비합리적인 룰에 대해서 굴복하지 않을 수 있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 본문 70쪽, 조영선, 〈선거권은 단지 어디를 찍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과학자 조천호 님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얘기하셨고, ‘광범위하고 심각한 위험을 막아 내기 위해서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1.5℃가 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미 1℃가량 올랐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0.5℃가 남았으며, 그렇게 되기까지 8년 남짓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얘기를 듣고 있던 볍씨 청소년 과정 한 친구가 말했다. “그러면 10년 안에 나 죽어야겠네.”
- 본문 93쪽, 소연, 〈나살림, 서로살림, 지구살림〉
내가 학생회를 하며 바라본 학교는 학생 자치에 우호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학생 자치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그런 기만적인 태도에 우리의 행동이 이용당하는 것을 느낄 때면 학생회의 위치를 계속 의심해야 했다. 학생회는 학생의 권리를 대변해야 하는 곳인가, 행사를 기획하여 학교의 위세를 높여 주는 곳인가. 그런 의심이 들 때마다 행동을 주저하게 되었다. 학교를 바꾸고자 했던 나의 마음은 학교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는 데 집중하게 되어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
- 본문 111쪽, 하지, 〈학생 자치는 학교의 자랑을 위한 게 아니다〉
수능이 가까워 올수록 교사들의 자아 분열은 심해진다. 수능이 필요한 학생 몇몇만 놓고 수업을 하면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하는 학종파 학생들에게 방해가 되고, 학종파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도하면 정시파 학생들이 소외된다. 각종 음악, 체육, 문학 등 실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마땅한 지원을 받기 힘들어 학교 밖 학원으로 나돈다. 학교에서 실기 준비가 안 되니 학원 가는 거라며 조퇴시켜 달라고 하는 학생들과 출결을 가지고 씨름한다. 가장 눈에 밟히는 건 대학 비진학 학생들이다.
- 본문 121쪽, 김영진, 〈고교 혁신의 어려움과 가능성〉
패널 중 1명은 고등학생운동이 왜 지금은 잘 기억되고 회자되지 않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고등학생운동이 실패담으로, 학대당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러 패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 건, 고등학생운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쟁했지만 그만큼 많이 두들겨 맞았고, 경찰에게 미행을 당했고, 학교에서는 근신부터 퇴학까지 골고루 당했으며, 교사, 부모, 교육청 장학사에 의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당했던 경험이었다. 그런 조건에서 많은 것을 할 수도 없었고, 탄압과 폭력의 기억이 더 강하게 남았다는 말이었다.
- 본문 128쪽, 공현, 〈더 나은 반복을 위한 기억〉
자연을 느껴 보자, 자연은 지식의 보고다, 라는 말은 당시의 구체제 교육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신의 계시인 성서와 그 메시지를 요약한 교리를 암기하고, 다시 그걸 입으로 되뇌이는 게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생각했던 구체제의 교육. 그 속에서 훈육된 몸으로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자연의 일부분인 인간의 본성, 즉 내가 뭘 원하고 바라는지조차 알 수 없다. 영화의 제목이 어쩌면 ‘나비’로도 충분한 이유는, 이 영화는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아이들을 기르고 싶어 했던 한 공화주의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본문 149-150쪽, 김종구, 〈아이들은 파시즘과 어떻게 대면하는가〉
이경숙이 보기에 우리가 시험에 집착하고 시험이 난개발된 사회적 배경에는 시험을 손쉬운 통제 장치로 사용해 왔던 역사와, 시험을 통해 출세 기회를 넓혔던 민간의 욕망이 뒤엉켜 있다. 무엇보다 시험은 국가(권력)가 인민을 통제하기 위해 설계한 통치 장치였다.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과거 제도는 개방성과 자율성이라는 명분에 힘입어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과거 시험은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국가에 복속시켰다. 이경숙은 이를 “느슨하지만 강력한 정신적 통치 방식”이라고 명명했다.
- 본문 178쪽, 정은균, 〈시험공화국의 슬픈 역사〉
강당에서 교육 활동이 있는 날이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홀로 교실에 남겨져 자습을 하곤 했다. 강당이 별관 2층에 위치해 있었음에도 그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장에게 별관 엘리베이터 설치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예산 부족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 설치 비용에 맞먹는 예산이 성적 상위 1% 학생들을 위한 쾌적한 독서실 증축 공사를 위해 지출되었다.
- 본문 188쪽, 윤상원, 〈학교 사회를 향한 장애학의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