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 48호는 지난 몇 년간 교육 현실의 변화를 촉구한 페미니즘 흐름을 결산하고자 했다. 페미니즘교육과 페미니스트 교사, 교육운동에서의 페미니즘, 대학 총여학생회 문제, 스쿨 미투 운동 등에 대해 정리하며 한 발 더 깊은 논의를 시도했다.
기고 지면에서는 드라마 〈SKY 캐슬〉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사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입장과 책임을 고민하는 글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진행된 ‘지리산청년활력기금’ 기본소득 실험에 대해 평가하는 보고서 등을 실었다. 리뷰 지면에서는 교육학에 관한 신간들과 더불어, 놀이운동과 놀이터에 대한 복합적인 논의를 소개하고 있다.
특집
교육의 페미니즘적 전환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중요한 화두로 부상한 이후,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학교교육에 관해서도 페미니즘운동은 중요한 쟁점과 해결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공격, 스쿨 미투 운동, 대학교 총여학생회 존폐 논란 등 다양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교육》 48호는 교육 내에서 논쟁과 변화의 최전선 중 하나로서 페미니즘을 다룬다.
최현희는 ‘페미니즘교육’을 위해 학교의 어떤 현실들을 짚어야 하는지 논한다. 소수의 페미니스트 교사에게 새로운 교육 실천을 기대하며 ‘좋은 교사’를 바라는 것을 넘어, 함께 학교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글이다.
김성애의 글은 전교조와 교사운동 내지는 교육운동에서 페미니즘을 중심에 두기 위해 성찰하고 실천한 경험에 터하고 있다. 왜 전교조 선거에서 페미니스트 후보로 출마했는지 그 배경을 소개하고, 교육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을 고민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새얀의 〈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와 가능성 사이〉는 최근 대학의 총여학생회 존폐 논란의 당사자 활동가로서 현상을 기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다. 대학교 학생 자치 지형 속에서 총여학생회와 페미니즘운동의 현실을 보여 준다.
좌담 기사 〈스쿨 미투는 학교가 평등하지 않다는 고발〉에서는 현재 스쿨 미투 관련 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와 여성 교사 등이 한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내 성폭력·성희롱의 원인, 스쿨 미투로 제기된 문제들의 다양한 양상, 학교 내의 권력관계, 제도적 대안과 근본적 반성 등을 오가며 이루어진 좌담을 통해 깊이 있는 논의를 담고자 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운동은 교육이 가지고 있는 여러 ‘적폐’, 문제점들을 고발하며 교육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 《오늘의 교육》 48호 특집을 통해 좀 더 명료하게 인식하고 실천과 연대를 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차례
8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특집 교육의 페미니즘적 전환
12 페미니스트 교사의 학교 고발 | 최현희 PDF
- ‘좋은 교사 담론’을 넘어서는 페미니스트 교사와 시민의 연대
25 교육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을 위하여 | 김성애 PDF
- 전교조 위원장 선거 최초의 페미니스트 후보로서의 경험과 도전기
37 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와 가능성 사이 | 최새얀 PDF
- 학생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
48 좌담 – 스쿨 미투는 학교가 평등하지 않다는 고발 | 두리번, 양지혜, 은선, 공현 PDF 바로보기
76 문구 자랑질 PDF
연재
인간의 교사를 돌아보다
78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관하여 | 윤지형 PDF
- 고갱에서 황지우로, 원효에서 임제로…… 왔다갔다 하며
기고
95 〈SKY 캐슬〉과 교육 불평등, 그리고 틈 | 김홍규 PDF
- 공교육 종사자들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122 지리산 작은 마을 기본소득 실험 이야기 | 김소연 PDF
에세이
138 나는 아직도 학교를 놓지 못한다 | 김지연 PDF
147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걸까? | 양영희 PDF
- 충북 괴산읍 청소년 카페 어스 탄생 이야기
리뷰
157 교육의 가장자리에서 교육학의 본질을 묻다 | 윤상혁 PDF
- 《교육학의 가장자리》
165 지속 가능한 놀이터를 위한 고민들 | 유닐 PDF
- 《마을이 함께 만드는 모험 놀이터》
178 깨워야 할 것은 학생들이 아닌 학교이다 | 공현 PDF 바로보기
-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187 두 줄 새 책 PDF
189 주제가 있는 독서 PDF
191 어린이 책 나들이 PDF
책 속에서
학교에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는 학교 밖의 외침은 계속해서 필요하고 학교와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교사가 서 있는 황폐하고 모순된 학교 현장에까지 페미니스트들의 날선 시선이 닿았으면 한다. 교사 개인이 순교자적인 교육 실천을 선도하는 것으로 학교는 변하지 않는다.
- 본문 24쪽, 최현희, “페미니스트 교사의 학교 고발”
기존의 교육운동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지금까지 인간화 교육, 민주시민교육의 주체를 누구로 상정하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여성은 시민, 인간의 범주에서 삭제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은 이를 정당화하는, 다시 말해 성별,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성 장치였다. 형식적 성평등, 절차의 성적 정의에조차 훨씬 미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학생들이 겪는 문제는 학생 일반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본문 31쪽, 김성애, “교육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을 위하여”
총여 투쟁의 주요 쟁점이 ‘민주주의’였던 것은 비단 성균관대만이 아니었다. 동국대와 연세대에서도 ‘총투표로 재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만이 민주주의의 전부’라는 논리로 총투표가 시행되었고, 소수자 정치를 대표하는 총여는 그렇게 다수결의 논리에 의해 사라졌다. 성차별 구조가 이미 일반화된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은 애초부터 소수자 정치를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통찰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총투표를 비판하며 성성어디가 및 동국대 총여, 연세대 총여는 기꺼이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 본문 42쪽, 최새얀, “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와 가능성 사이”
교사가 수업 중에 재미있는 농담으로 학생들 잠 깨운다는 명목으로 음담패설을 해도 학생이 불편하다고 말 못 하는 게 학교다. 교실에서뿐만 아니라 교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배 교사와 후배 교사 사이, 교장·교감과 교사 사이도 그렇다. 권력관계의 문제다. 그런데 이런 걸 참을 줄 아는 것, 할 말을 하지 않을 줄 아는 것이 사회생활이라고 하잖나. 그런 사람으로 키워 내는 게 학교이고.
- 본문 56쪽, 두리번·양지혜·은선·공현, “스쿨 미투는 학교가 평등하지 않다는 고발”
전쟁과 학살을 되풀이해 온 인간의 역사, 저 참혹한 통고의 현장을 목도한 시인의, 도道와 혁명의 회통을 꿈꾸는 절박하고도 곡진한 심정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러나 황지우도 말했듯 ‘화엄’과 ‘다스 카피탈’을 ‘포괄’하는 그런 ‘테제 혹은 공안’은 애초 불가능한 것이다. 선, 일체유심조, 만법유식의 진실은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은 분리된 둘을 하나로 통합 내지 포괄하는 게 아니라 궁극의 ‘화엄’ 세상과 현실의 ‘다스 카피탈’이 본래 하나임을 깨닫는 길 이외엔 어떤 다른 길도 없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 본문 92쪽, 윤지형,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관하여”
사교육이 교육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학생들을 입시 경쟁으로 더욱 내모는 작용을 하고 있다면 학교나 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은 당연히 이 문제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도덕적 결벽주의나 순결주의라고 주장하며 비난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지만 자신들은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잘못된 구조’를 애써 외면하며 개인의 선택으로 돌리는 것이다.
- 본문 110쪽, 김홍규, “〈SKY 캐슬〉과 교육 불평등, 그리고 틈”
청년기금을 받고 있는 혜원은 청년기금을 ‘생필품’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으면 좋겠다, 생활에 필수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바람이 반영된 표현으로, 그녀는 청년기금을 받게 되어 ‘너무너무 자유로웠다’고 얘기했다. 공부 모임을 할 때 필요한 책을 살 수 있는 것, 그림을 그리기 위한 종이를 살 수 있는 것, 나아가 일만 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걸 시작할 수 있는 것, 손님이 왔을 때 대접을 할 수 있는 것 등 일상에서 금전적 제약으로 움츠러들었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 본문 126쪽, 김소연, “지리산 작은 마을 기본소득 실험 이야기”
내가 만났던 교사들, 그리고 교육계를 보며 정책 제안이 교사들을 참 불편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구나, 이루어지기가 불가능하겠구나 싶었다. 교사는 교육과정, 수업 차시, 교과목이라는 구조에 익숙하다. 교육 기관들은 모든 일을 교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문화예술의 가치를 행정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본문 145쪽, 김지연, “나는 아직도 학교를 놓지 못한다”
교육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교사가 학교교육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국가교육과정으로 표상되는 국가 권력에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반역이자 정치적 중립 위배로 규정되어 온 것이다. 한편 이는 국가 권력이 작동하지 않는 기타 모든 영역에서 교육 행정 및 학교공동체 활동에 대한 비협조로 일관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 본문 162-163쪽, 윤상혁, “교육의 가장자리에서 교육학의 본질을 묻다”
놀이터를 고민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놀이’의 근본이다. 놀이터에서 몰입하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흐뭇하며 마음이 좋다. ‘놀이터’라는 단어 역시 즐거움과 자율성의 의미를 모두 대변해 주는 마법의 단어로 쓰이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놀이를 마냥 가볍게만 생각해 온 것이 아닌지, 놀이를 하는 당사자들보다는 ‘기획’ 혹은 ‘디자인’하는 이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처럼 공간을 이야기하기 전에 ‘놀이’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면 놀이터 역시 그것을 ‘짓는’ 성인들이 주체가 될 우려가 있다.
- 본문 169쪽, 유닐, “지속 가능한 놀이터를 위한 고민들”
저자는 “수업 거부 현상을 학생 훈육의 문제(학교 책임론)나 학생들의 태도 문제(학생 책임론)로 논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본문 71쪽)고자 한다. 또한 “메리토크라시 체제의 일부로 오직 선별 기능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학습권을 박탈당한 피해자로서, 무기력한 학생들”(본문 324쪽)을 보고자 한다. 나는, “깨워야 할 대상은 ‘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학교의 사회적 규범과 기존의 관행”(본문 163쪽)이라고 외치며 문제의 초점을 학생이 아닌 학교와 사회로 이동시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 본문 182쪽, 공현, “깨워야 할 것은 학생들이 아닌 학교이다”
《오늘의 교육》 48호는 지난 몇 년간 교육 현실의 변화를 촉구한 페미니즘 흐름을 결산하고자 했다. 페미니즘교육과 페미니스트 교사, 교육운동에서의 페미니즘, 대학 총여학생회 문제, 스쿨 미투 운동 등에 대해 정리하며 한 발 더 깊은 논의를 시도했다.
기고 지면에서는 드라마 〈SKY 캐슬〉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사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입장과 책임을 고민하는 글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진행된 ‘지리산청년활력기금’ 기본소득 실험에 대해 평가하는 보고서 등을 실었다. 리뷰 지면에서는 교육학에 관한 신간들과 더불어, 놀이운동과 놀이터에 대한 복합적인 논의를 소개하고 있다.
특집
교육의 페미니즘적 전환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중요한 화두로 부상한 이후,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학교교육에 관해서도 페미니즘운동은 중요한 쟁점과 해결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공격, 스쿨 미투 운동, 대학교 총여학생회 존폐 논란 등 다양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교육》 48호는 교육 내에서 논쟁과 변화의 최전선 중 하나로서 페미니즘을 다룬다.
최현희는 ‘페미니즘교육’을 위해 학교의 어떤 현실들을 짚어야 하는지 논한다. 소수의 페미니스트 교사에게 새로운 교육 실천을 기대하며 ‘좋은 교사’를 바라는 것을 넘어, 함께 학교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글이다.
김성애의 글은 전교조와 교사운동 내지는 교육운동에서 페미니즘을 중심에 두기 위해 성찰하고 실천한 경험에 터하고 있다. 왜 전교조 선거에서 페미니스트 후보로 출마했는지 그 배경을 소개하고, 교육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을 고민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새얀의 〈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와 가능성 사이〉는 최근 대학의 총여학생회 존폐 논란의 당사자 활동가로서 현상을 기록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다. 대학교 학생 자치 지형 속에서 총여학생회와 페미니즘운동의 현실을 보여 준다.
좌담 기사 〈스쿨 미투는 학교가 평등하지 않다는 고발〉에서는 현재 스쿨 미투 관련 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와 여성 교사 등이 한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교 내 성폭력·성희롱의 원인, 스쿨 미투로 제기된 문제들의 다양한 양상, 학교 내의 권력관계, 제도적 대안과 근본적 반성 등을 오가며 이루어진 좌담을 통해 깊이 있는 논의를 담고자 했다.
이처럼 페미니즘운동은 교육이 가지고 있는 여러 ‘적폐’, 문제점들을 고발하며 교육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 《오늘의 교육》 48호 특집을 통해 좀 더 명료하게 인식하고 실천과 연대를 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차례
8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특집 교육의 페미니즘적 전환
12 페미니스트 교사의 학교 고발 | 최현희 PDF
- ‘좋은 교사 담론’을 넘어서는 페미니스트 교사와 시민의 연대
25 교육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을 위하여 | 김성애 PDF
- 전교조 위원장 선거 최초의 페미니스트 후보로서의 경험과 도전기
37 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와 가능성 사이 | 최새얀 PDF
- 학생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
48 좌담 – 스쿨 미투는 학교가 평등하지 않다는 고발 | 두리번, 양지혜, 은선, 공현 PDF 바로보기
76 문구 자랑질 PDF
연재
인간의 교사를 돌아보다
78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관하여 | 윤지형 PDF
- 고갱에서 황지우로, 원효에서 임제로…… 왔다갔다 하며
기고
95 〈SKY 캐슬〉과 교육 불평등, 그리고 틈 | 김홍규 PDF
- 공교육 종사자들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122 지리산 작은 마을 기본소득 실험 이야기 | 김소연 PDF
에세이
138 나는 아직도 학교를 놓지 못한다 | 김지연 PDF
147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걸까? | 양영희 PDF
- 충북 괴산읍 청소년 카페 어스 탄생 이야기
리뷰
157 교육의 가장자리에서 교육학의 본질을 묻다 | 윤상혁 PDF
- 《교육학의 가장자리》
165 지속 가능한 놀이터를 위한 고민들 | 유닐 PDF
- 《마을이 함께 만드는 모험 놀이터》
178 깨워야 할 것은 학생들이 아닌 학교이다 | 공현 PDF 바로보기
-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187 두 줄 새 책 PDF
189 주제가 있는 독서 PDF
191 어린이 책 나들이 PDF
책 속에서
학교에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는 학교 밖의 외침은 계속해서 필요하고 학교와 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교사가 서 있는 황폐하고 모순된 학교 현장에까지 페미니스트들의 날선 시선이 닿았으면 한다. 교사 개인이 순교자적인 교육 실천을 선도하는 것으로 학교는 변하지 않는다.
- 본문 24쪽, 최현희, “페미니스트 교사의 학교 고발”
기존의 교육운동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지금까지 인간화 교육, 민주시민교육의 주체를 누구로 상정하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여성은 시민, 인간의 범주에서 삭제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은 이를 정당화하는, 다시 말해 성별, 성차별을 재생산하는 성 장치였다. 형식적 성평등, 절차의 성적 정의에조차 훨씬 미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학생들이 겪는 문제는 학생 일반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본문 31쪽, 김성애, “교육운동의 페미니즘적 전환을 위하여”
총여 투쟁의 주요 쟁점이 ‘민주주의’였던 것은 비단 성균관대만이 아니었다. 동국대와 연세대에서도 ‘총투표로 재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만이 민주주의의 전부’라는 논리로 총투표가 시행되었고, 소수자 정치를 대표하는 총여는 그렇게 다수결의 논리에 의해 사라졌다. 성차별 구조가 이미 일반화된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은 애초부터 소수자 정치를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통찰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총투표를 비판하며 성성어디가 및 동국대 총여, 연세대 총여는 기꺼이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 본문 42쪽, 최새얀, “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와 가능성 사이”
교사가 수업 중에 재미있는 농담으로 학생들 잠 깨운다는 명목으로 음담패설을 해도 학생이 불편하다고 말 못 하는 게 학교다. 교실에서뿐만 아니라 교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배 교사와 후배 교사 사이, 교장·교감과 교사 사이도 그렇다. 권력관계의 문제다. 그런데 이런 걸 참을 줄 아는 것, 할 말을 하지 않을 줄 아는 것이 사회생활이라고 하잖나. 그런 사람으로 키워 내는 게 학교이고.
- 본문 56쪽, 두리번·양지혜·은선·공현, “스쿨 미투는 학교가 평등하지 않다는 고발”
전쟁과 학살을 되풀이해 온 인간의 역사, 저 참혹한 통고의 현장을 목도한 시인의, 도道와 혁명의 회통을 꿈꾸는 절박하고도 곡진한 심정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러나 황지우도 말했듯 ‘화엄’과 ‘다스 카피탈’을 ‘포괄’하는 그런 ‘테제 혹은 공안’은 애초 불가능한 것이다. 선, 일체유심조, 만법유식의 진실은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은 분리된 둘을 하나로 통합 내지 포괄하는 게 아니라 궁극의 ‘화엄’ 세상과 현실의 ‘다스 카피탈’이 본래 하나임을 깨닫는 길 이외엔 어떤 다른 길도 없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 본문 92쪽, 윤지형, “‘우리는 어디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관하여”
사교육이 교육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으며, 학생들을 입시 경쟁으로 더욱 내모는 작용을 하고 있다면 학교나 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은 당연히 이 문제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도덕적 결벽주의나 순결주의라고 주장하며 비난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지만 자신들은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잘못된 구조’를 애써 외면하며 개인의 선택으로 돌리는 것이다.
- 본문 110쪽, 김홍규, “〈SKY 캐슬〉과 교육 불평등, 그리고 틈”
청년기금을 받고 있는 혜원은 청년기금을 ‘생필품’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으면 좋겠다, 생활에 필수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바람이 반영된 표현으로, 그녀는 청년기금을 받게 되어 ‘너무너무 자유로웠다’고 얘기했다. 공부 모임을 할 때 필요한 책을 살 수 있는 것, 그림을 그리기 위한 종이를 살 수 있는 것, 나아가 일만 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걸 시작할 수 있는 것, 손님이 왔을 때 대접을 할 수 있는 것 등 일상에서 금전적 제약으로 움츠러들었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 본문 126쪽, 김소연, “지리산 작은 마을 기본소득 실험 이야기”
내가 만났던 교사들, 그리고 교육계를 보며 정책 제안이 교사들을 참 불편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구나, 이루어지기가 불가능하겠구나 싶었다. 교사는 교육과정, 수업 차시, 교과목이라는 구조에 익숙하다. 교육 기관들은 모든 일을 교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교사들의 역량 강화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문화예술의 가치를 행정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 본문 145쪽, 김지연, “나는 아직도 학교를 놓지 못한다”
교육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교사가 학교교육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국가교육과정으로 표상되는 국가 권력에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반역이자 정치적 중립 위배로 규정되어 온 것이다. 한편 이는 국가 권력이 작동하지 않는 기타 모든 영역에서 교육 행정 및 학교공동체 활동에 대한 비협조로 일관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 본문 162-163쪽, 윤상혁, “교육의 가장자리에서 교육학의 본질을 묻다”
놀이터를 고민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놀이’의 근본이다. 놀이터에서 몰입하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흐뭇하며 마음이 좋다. ‘놀이터’라는 단어 역시 즐거움과 자율성의 의미를 모두 대변해 주는 마법의 단어로 쓰이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놀이를 마냥 가볍게만 생각해 온 것이 아닌지, 놀이를 하는 당사자들보다는 ‘기획’ 혹은 ‘디자인’하는 이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처럼 공간을 이야기하기 전에 ‘놀이’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면 놀이터 역시 그것을 ‘짓는’ 성인들이 주체가 될 우려가 있다.
- 본문 169쪽, 유닐, “지속 가능한 놀이터를 위한 고민들”
저자는 “수업 거부 현상을 학생 훈육의 문제(학교 책임론)나 학생들의 태도 문제(학생 책임론)로 논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본문 71쪽)고자 한다. 또한 “메리토크라시 체제의 일부로 오직 선별 기능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학습권을 박탈당한 피해자로서, 무기력한 학생들”(본문 324쪽)을 보고자 한다. 나는, “깨워야 할 대상은 ‘자는 학생들’이 아니라 학교의 사회적 규범과 기존의 관행”(본문 163쪽)이라고 외치며 문제의 초점을 학생이 아닌 학교와 사회로 이동시키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 본문 182쪽, 공현, “깨워야 할 것은 학생들이 아닌 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