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절망絶望하면서 절망切望한다
우리는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죽음, 세월호 참사 등 애도가 끝나지도 않은 자리에서 섣부른 봉합을 이야기하고 거짓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절망의 순간, 희망은 행복한 노래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희망이란 것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다. 파리 코뮌과 그것이 제압당하는 학살의 현장에서, 4.19의 거리에서, 5.18 광주 학살의 현장에서,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과 6.10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그 거리에서, 그리고 오늘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무덤에서 도대체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했느냐고 묻고 싶다. 오히려 매 시기 사람들은 ‘왜 이런 거지?’,‘이게 말이 되는 거야?’ 하는 의문을 지니고 헤매야 하는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균열에 발 딛고 서 있으며, 바닥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중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승리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가 이기고 있기에 정의에 관해 묻고, 허위로 뒤덮여 있기에 진실을 말하려고 싸운다. 운동은 늘 언제나 그 시대의 부정의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시대적 절망과 호흡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북돋고 연대한다.
비록 지금 우리에게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활동은 차곡차곡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승패, 지속 가능성, 희망의 있고 없음을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으로서 우리는 절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승패를 떠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들이다.
- 편집위원장 정용주
차례
4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특집 절망함, 잘 망함
5 우리는 절망絶望하면서 절망切望한다 / 정용주 PDF
8 입시 지도, 이 사기에 가까운 / ○○○ PDF
22 희망 고문 무한루프 / 김수현 PDF 바로보기
41 망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인지 우리의 인생인지 / 공현 PDF 바로보기
56 亡 忘 網 : 망할 망 잊을 망 그물 망 / 김환희 (비게재)
기획 1 교육과정, 청소년 이의 제기
67 캐릭터 키우기에서 벗어나기 / 치이즈 PDF
74 하지만 죽기 전에 가고 싶은 학교 / 밀루 PDF
기획 2 학교 민주주의 설계도 ③
82 그래서, ‘학생 사회’는 어떤 것인가? / 공현 PDF
92 민주시민교육을 그만두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다 / 호야 PDF 바로보기
기고
103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김종구 PDF
116 새로운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 김환희 (비게재)
135 발달장애인 공포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하금철 PDF
연재
152 교직, 마지막 1년 / 마지막 회 / 진수성찬 앞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 안준철 PDF
165 삶을 위한 수학교육 / 마지막 회 / 수학 수업을 어떻게 하지? / 조성실 PDF
187 모두를 위한 학교 행정 ② 교사는 국가 하기 나름? / 진냥 PDF
199 정용주의 교육학 담론 문제화하기, 정치화하기 / 마지막 회 / 미안하지만, 학교교육 안에서는 답이 없다PDF
에세이
211 어쩌다 홍성행 / 김지양 PDF
223 다시, 시를 만날 시간 / 이상대 PDF 바로보기
학생들 글
237 행복이란 무엇인가? / 한성여중 2학년 학생들 PDF
리뷰
244 새 책 나들이 PDF
246 잠깐 독서 PDF
248 주제가 있는 책_적정기술 / 김영주 PDF
책 속에서
‘노오력’과 ‘네 꿈을 펼쳐 봐’는 쌍생아이다. 사회구조를 은폐한 채, 개인의 개별성과 자율성에 대한 신화, 성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좇는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진보 교육도 그 잘못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존 교과 중심 경쟁에 대한 반발로 적성 교육, 체험 교육 담론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잘’해야 한다는 점에서 성공주의에 발 묶여 있다. 물론 애초 세속의 성공을 의도하고 의미하진 않았을 것이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왜곡되는 걸 막지 못했다. 공부를 못하건 아니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삶의 길, 삶을 건강히 영위할 수 있는 소양 키우기(넓은 의미의 공부)에 초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 20쪽, 〈입시 지도, 이 사기에 가까운〉, ○○○
겨우 몇 년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선 제자들의 재수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비평준화 시절 비선호 일반고라, 주변 지역(안양, 의왕) 고교와 관내에서 전문계고까지 모두 탈락한 학생들이 모이기에 빈곤과 중도 탈락이 문제였다. 수능은 응시하지만 수험생 할인을 위한 수험표가 필요했을 뿐 응시생도 매우 적고, 수능 점수를 활용하는 학생은 (거의) 못 봤다. 그런데 평준화 이후 큰길 하나 건너, 평균 성적과 소득이 조금 높아진 이 학교에선 잇단 재수 선언이 들려온다. 우리 학교만 그런가 싶어 주변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하나같이 늘었단다.
과연 그럴까. 교육과정평가원의 10년치 수능 응시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재학생 대비 졸업생의 비율이 입시 제도가 큰 폭으로 바뀌었던 2008학년도3)를 제외하곤 재수생 비율이 21~23%(약 13만 명)로 비슷했다. 문제는 재수가 철저히 계급적이라는 점이었다.
- 24~25쪽, 〈희망 고문 무한루프〉, 김수현
1990년대에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현재를 진단하며, “우리가 하는 일은 시체(실패)로 강을 메워서 건너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청소년운동에서 우리가 하는 일도 그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청소년운동은 수많은 시체로 강을 메워 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시체란 때로는 단체였고 활동이었고 활동가들의 생명이나 인생이었다. 언제쯤 되면 시체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강을 메워 갈 수 있을까?
- 55쪽, 〈망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인지 우리의 인생인지〉, 공현
난민 문제는 국가 인종주의의 주체로서 국가를 상정하는 근대 체계의 한계이며, 민족적 인종주의를 숭상하는 우파들이 쉽게 혐오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화약고이다. 한국 사회는 유럽의 난민 문제를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취급한다. 아니, 미디어를 통해 오히려 확실하게 주입받는다. ‘난민은 언제 IS로 돌변할지 모르는 위험한 타자들’이다. 타자는 일종의 병균이다. 대형마트의 시식 코너 도우미들의 투명 위생 마스크를 연상해 보자. 타액이 음식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한 이 도구는 자본주의적 공간에서 타자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타액으로 상징되는 타자는 나의 신체적-심리적 안위를 해칠 수 있는 잠재적 병균들이다. 반면, 타자가 나의 면역 체계 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타자의 이질성을 멸균시킨 공간, 위험성이 소독된 공간이 바로 자본주의적 유토피아다.
- 63~64쪽, 〈亡 忘 網 : 망할 망 잊을 망 그물 망〉, 김환희
어른들이 학생들의 머릿속에 무엇을 집어넣을지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예 중 하나는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다. 이는 국정인지, 검인정인지의 문제보다 학생들에게 어떤 역사적 지식을 집어넣을지의 문제였다. 찬성하는 쪽은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랑스러움을 주입하려 했고, 반대하는 쪽은 학생들이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반대하는 쪽,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 나온 방안이 대안 교과서였다. 국가가 서술하는 지식이 아니라 더 옳고 바른 자신들이 서술한 지식을 주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역사 교과서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학생의 주체성에 대한고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교육이 여전히 ‘부족한 학생들에게 지식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교육은 시혜적인 성격이 강해진다. 하지만 시혜적인 교육은 교사와 학생을 모두 지치게 할 뿐이다.
- 70~71쪽, 〈캐릭터 키우기에서 벗어나기〉, 치이즈
중학교 3학년, 사회 시간이었다. 재생 에너지에 대해 배우는데, 교과서에서는 ‘조력 발전’의 한 예로 시화호를 들고 있었다. 방조제를 쌓아 바닷물을 막고, 군데군데 뚫린 수로에 발전기를 달아 바닷물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럼 지나다니는 물고기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교사는 “다 죽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더 궁금한 건 과학 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시화호가 엄청난 환경 오염을 일으킨, 크게 실패한 간척 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꽤 나중의 일이었다. 4대강 사업을 다룬 심층 기사를 우연히 읽고 나서 준설, 간척 등 환경 정비 사업의 폐해에 대해 더 찾아보면서였다.
- 76쪽, 〈하지만 죽기 전에 가고 싶은 학교〉, 밀루
많은 비청소년들이 학교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싶어 한다. 민주주의는 유보해 두었다가 보강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지금 - 여기에서 각 주체들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실천적인 것임에도. 청소년에게 어떤 장을 마련해 주면 그들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청소년은 언제나 지금 - 여기의 주체, 시민으로서 존재하지만 비청소년이 그들을 비주체, 교육의 대상으로서 인식하고 있는데도.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사회를 개탄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가장 적은 권한을 가진 학생의 인권에는 무심하면서도.
- 98쪽, <민주시민교육을 그만두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다>, 호야
이에나가의 교과서 재판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 재판이 끝날 즈음 이미 세상은, 일본의 교육 현실은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은 부등교不登校와 히키코모리, 혹은 이지메로 세상에 대해, (우파든 좌파든지 간에) 꼰대들의 교육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었고, 일본의 교육은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우파 정권과 국가를 상대로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바로 세우는 일에 일본의 일본교직원조합, 진보 진영이 몰두할 때(이른바 공교육 정상화), 아이들은 그런 학교를 버린 것이다. 아이들의, 학교의 그 무기력함을 치유하기 위해 이번에는 풀뿌리 우파가 나선 것이다.
- 114쪽,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김종구
이미 아이들의 주의력은 교실에 오기 전에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학생들을 어떻게 수업에 집중시켜야 할까? 자극적인 매체에 맞서서 더 자극적인 잔기술을 쓰는 교수법을 이용할 것인가? 아이들은 서로의 주의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주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그로’9)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유형의 반항아, 일명 ‘관심종자’가 학교에서 늘어나는 이유이다. 교사는 이러한 종류의 학생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그들을 경증이나 중증의 ADHD로 분류하고 그 정도가 심하면 부모에게 알려 병원 치료를 받게끔 하는 것에서 그 이해를 위한 탐구를 중단한다.
- 121쪽, 〈새로운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김환희
우리는 절망絶望하면서 절망切望한다
우리는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죽음, 세월호 참사 등 애도가 끝나지도 않은 자리에서 섣부른 봉합을 이야기하고 거짓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절망의 순간, 희망은 행복한 노래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희망이란 것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다. 파리 코뮌과 그것이 제압당하는 학살의 현장에서, 4.19의 거리에서, 5.18 광주 학살의 현장에서,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과 6.10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그 거리에서, 그리고 오늘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무덤에서 도대체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했느냐고 묻고 싶다. 오히려 매 시기 사람들은 ‘왜 이런 거지?’,‘이게 말이 되는 거야?’ 하는 의문을 지니고 헤매야 하는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균열에 발 딛고 서 있으며, 바닥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중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승리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가 이기고 있기에 정의에 관해 묻고, 허위로 뒤덮여 있기에 진실을 말하려고 싸운다. 운동은 늘 언제나 그 시대의 부정의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시대적 절망과 호흡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북돋고 연대한다.
비록 지금 우리에게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활동은 차곡차곡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승패, 지속 가능성, 희망의 있고 없음을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으로서 우리는 절망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승패를 떠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들이다.
- 편집위원장 정용주
차례
4 바라보다 / 최승훈 기자 PDF
특집 절망함, 잘 망함
5 우리는 절망絶望하면서 절망切望한다 / 정용주 PDF
8 입시 지도, 이 사기에 가까운 / ○○○ PDF
22 희망 고문 무한루프 / 김수현 PDF 바로보기
41 망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인지 우리의 인생인지 / 공현 PDF 바로보기
56 亡 忘 網 : 망할 망 잊을 망 그물 망 / 김환희 (비게재)
기획 1 교육과정, 청소년 이의 제기
67 캐릭터 키우기에서 벗어나기 / 치이즈 PDF
74 하지만 죽기 전에 가고 싶은 학교 / 밀루 PDF
기획 2 학교 민주주의 설계도 ③
82 그래서, ‘학생 사회’는 어떤 것인가? / 공현 PDF
92 민주시민교육을 그만두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다 / 호야 PDF 바로보기
기고
103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김종구 PDF
116 새로운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 김환희 (비게재)
135 발달장애인 공포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하금철 PDF
연재
152 교직, 마지막 1년 / 마지막 회 / 진수성찬 앞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 안준철 PDF
165 삶을 위한 수학교육 / 마지막 회 / 수학 수업을 어떻게 하지? / 조성실 PDF
187 모두를 위한 학교 행정 ② 교사는 국가 하기 나름? / 진냥 PDF
199 정용주의 교육학 담론 문제화하기, 정치화하기 / 마지막 회 / 미안하지만, 학교교육 안에서는 답이 없다PDF
에세이
211 어쩌다 홍성행 / 김지양 PDF
223 다시, 시를 만날 시간 / 이상대 PDF 바로보기
학생들 글
237 행복이란 무엇인가? / 한성여중 2학년 학생들 PDF
리뷰
244 새 책 나들이 PDF
246 잠깐 독서 PDF
248 주제가 있는 책_적정기술 / 김영주 PDF
책 속에서
‘노오력’과 ‘네 꿈을 펼쳐 봐’는 쌍생아이다. 사회구조를 은폐한 채, 개인의 개별성과 자율성에 대한 신화, 성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좇는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진보 교육도 그 잘못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존 교과 중심 경쟁에 대한 반발로 적성 교육, 체험 교육 담론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잘’해야 한다는 점에서 성공주의에 발 묶여 있다. 물론 애초 세속의 성공을 의도하고 의미하진 않았을 것이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왜곡되는 걸 막지 못했다. 공부를 못하건 아니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삶의 길, 삶을 건강히 영위할 수 있는 소양 키우기(넓은 의미의 공부)에 초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 20쪽, 〈입시 지도, 이 사기에 가까운〉, ○○○
겨우 몇 년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선 제자들의 재수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비평준화 시절 비선호 일반고라, 주변 지역(안양, 의왕) 고교와 관내에서 전문계고까지 모두 탈락한 학생들이 모이기에 빈곤과 중도 탈락이 문제였다. 수능은 응시하지만 수험생 할인을 위한 수험표가 필요했을 뿐 응시생도 매우 적고, 수능 점수를 활용하는 학생은 (거의) 못 봤다. 그런데 평준화 이후 큰길 하나 건너, 평균 성적과 소득이 조금 높아진 이 학교에선 잇단 재수 선언이 들려온다. 우리 학교만 그런가 싶어 주변 고등학교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하나같이 늘었단다.
과연 그럴까. 교육과정평가원의 10년치 수능 응시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재학생 대비 졸업생의 비율이 입시 제도가 큰 폭으로 바뀌었던 2008학년도3)를 제외하곤 재수생 비율이 21~23%(약 13만 명)로 비슷했다. 문제는 재수가 철저히 계급적이라는 점이었다.
- 24~25쪽, 〈희망 고문 무한루프〉, 김수현
1990년대에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현재를 진단하며, “우리가 하는 일은 시체(실패)로 강을 메워서 건너가는 일”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청소년운동에서 우리가 하는 일도 그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청소년운동은 수많은 시체로 강을 메워 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 시체란 때로는 단체였고 활동이었고 활동가들의 생명이나 인생이었다. 언제쯤 되면 시체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강을 메워 갈 수 있을까?
- 55쪽, 〈망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인지 우리의 인생인지〉, 공현
난민 문제는 국가 인종주의의 주체로서 국가를 상정하는 근대 체계의 한계이며, 민족적 인종주의를 숭상하는 우파들이 쉽게 혐오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화약고이다. 한국 사회는 유럽의 난민 문제를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취급한다. 아니, 미디어를 통해 오히려 확실하게 주입받는다. ‘난민은 언제 IS로 돌변할지 모르는 위험한 타자들’이다. 타자는 일종의 병균이다. 대형마트의 시식 코너 도우미들의 투명 위생 마스크를 연상해 보자. 타액이 음식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한 이 도구는 자본주의적 공간에서 타자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타액으로 상징되는 타자는 나의 신체적-심리적 안위를 해칠 수 있는 잠재적 병균들이다. 반면, 타자가 나의 면역 체계 내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타자의 이질성을 멸균시킨 공간, 위험성이 소독된 공간이 바로 자본주의적 유토피아다.
- 63~64쪽, 〈亡 忘 網 : 망할 망 잊을 망 그물 망〉, 김환희
어른들이 학생들의 머릿속에 무엇을 집어넣을지에 대해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예 중 하나는 이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다. 이는 국정인지, 검인정인지의 문제보다 학생들에게 어떤 역사적 지식을 집어넣을지의 문제였다. 찬성하는 쪽은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랑스러움을 주입하려 했고, 반대하는 쪽은 학생들이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반대하는 쪽,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 나온 방안이 대안 교과서였다. 국가가 서술하는 지식이 아니라 더 옳고 바른 자신들이 서술한 지식을 주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역사 교과서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학생의 주체성에 대한고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교육이 여전히 ‘부족한 학생들에게 지식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교육은 시혜적인 성격이 강해진다. 하지만 시혜적인 교육은 교사와 학생을 모두 지치게 할 뿐이다.
- 70~71쪽, 〈캐릭터 키우기에서 벗어나기〉, 치이즈
중학교 3학년, 사회 시간이었다. 재생 에너지에 대해 배우는데, 교과서에서는 ‘조력 발전’의 한 예로 시화호를 들고 있었다. 방조제를 쌓아 바닷물을 막고, 군데군데 뚫린 수로에 발전기를 달아 바닷물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럼 지나다니는 물고기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교사는 “다 죽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더 궁금한 건 과학 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시화호가 엄청난 환경 오염을 일으킨, 크게 실패한 간척 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꽤 나중의 일이었다. 4대강 사업을 다룬 심층 기사를 우연히 읽고 나서 준설, 간척 등 환경 정비 사업의 폐해에 대해 더 찾아보면서였다.
- 76쪽, 〈하지만 죽기 전에 가고 싶은 학교〉, 밀루
많은 비청소년들이 학교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싶어 한다. 민주주의는 유보해 두었다가 보강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지금 - 여기에서 각 주체들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실천적인 것임에도. 청소년에게 어떤 장을 마련해 주면 그들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청소년은 언제나 지금 - 여기의 주체, 시민으로서 존재하지만 비청소년이 그들을 비주체, 교육의 대상으로서 인식하고 있는데도. 민주주의가 짓밟히는 사회를 개탄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가장 적은 권한을 가진 학생의 인권에는 무심하면서도.
- 98쪽, <민주시민교육을 그만두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다>, 호야
이에나가의 교과서 재판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 재판이 끝날 즈음 이미 세상은, 일본의 교육 현실은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은 부등교不登校와 히키코모리, 혹은 이지메로 세상에 대해, (우파든 좌파든지 간에) 꼰대들의 교육에 대해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었고, 일본의 교육은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우파 정권과 국가를 상대로 교과서와 교육과정을 바로 세우는 일에 일본의 일본교직원조합, 진보 진영이 몰두할 때(이른바 공교육 정상화), 아이들은 그런 학교를 버린 것이다. 아이들의, 학교의 그 무기력함을 치유하기 위해 이번에는 풀뿌리 우파가 나선 것이다.
- 114쪽,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김종구
이미 아이들의 주의력은 교실에 오기 전에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학생들을 어떻게 수업에 집중시켜야 할까? 자극적인 매체에 맞서서 더 자극적인 잔기술을 쓰는 교수법을 이용할 것인가? 아이들은 서로의 주의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주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어그로’9)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부산하게 돌아다니며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내뱉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유형의 반항아, 일명 ‘관심종자’가 학교에서 늘어나는 이유이다. 교사는 이러한 종류의 학생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그들을 경증이나 중증의 ADHD로 분류하고 그 정도가 심하면 부모에게 알려 병원 치료를 받게끔 하는 것에서 그 이해를 위한 탐구를 중단한다.
- 121쪽, 〈새로운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김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