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글][코로나리포트] 교사 집단은 국민 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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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개학이 미뤄지면서 교사들을 놀고 먹는 집단으로 치는 시선에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개학이 미뤄지면서 처음 2주 정도는 여느 방학처럼 재택 근무를 했다. 2주 내내 재택 근무를 하는 건 아니고 이틀씩 4일 정도는 출근을 하였다. 그러면서 개학이 더 연장되면서는 정상 출근을 하였다.

처음 개학이 미뤄졌을 때 재택 근무를 하면서 외출이 꺼려졌다. 청와대에 교사들의 월급을 깎으라는 청원이 올라왔다든가 모 교육감이 급식종사자 등 출근이 이뤄지지 않아 급여가 지급되지 못 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언급을 하는 중에 ‘놀고 먹는 그룹’이라며 교사를 거론했다는 뉴스를 접하거나 재택근무를 쓰고 해외 여행을 간 교사에 대한 소문 등으로 인해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일을 못 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편해 보이는 교사들을 비난하는 사람들로 인해 화도 났고 위축되었고 주눅이 들었다. 교사 집단은 국민왕따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젠 재택근무를 하지 말고 출근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차라리 반가웠다. 정상 출근을 시작한 후 주말을 이용해 만난 친지들은 다들 ‘요새 출근 안 하지?’라고 물어와 그동안의 핍박(?)에 대한 설움이 단번에 솟구쳐 올라왔다. ‘무슨 말씀이세요. 정상 출근, 정상 근무하고 있어요. 아이들 학교 안 온다고 우리가 할 일이 없는 줄 아세요? 코로나 때문에 공문은 또 얼마나 쏟아지는데요.’

온라인 개학을 대비하여 쌍방향 수업을 위한 화상 수업 방법을 배우고 교육계획을 세우고 내가 맡고 있는 도서관 운영 계획을 세우고 하며 지내는 사이에 1학기 진도 계획과 평가 계획을 몇 번이나 수정했는지 모른다. 개학이 미뤄질 때마다 시험 시기를 수정을 해야했고 등교가 미뤄지면서 수행평가를 줄여야 했으며 지필고사와 수행평가의 반영비도 다시 조정해야 했다.

아이들은 등교하지 않고 교사들만 출근하다보니 우리 학교 교사들은 밥먹는 문제가 큰 문제가 되었다. 학교가 섬이다 보니 다리가 놓여 있지만 통근이 어려운 먼 거리라 이 지역이 집인 한 명을 제외한 모든 교사가 자기 집이 아닌 학교의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데 학교 급식실이 있어서인지 교사들의 숙소에는 취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각자의 숙소에 방 한 칸, 화장실 한 칸, 냉장고, TV, 옷장 등은 제공되었지만 부엌은 없는 관사여서 밥을 지어먹기에 여의치 않았다. 급식실의 영양사와 조리종사자들이 출근을 하고 있어서 점심 식사 제공이 가능한지 물었으나 ‘법’이 그렇지 않다며 밥을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이 우리 학교의 특수한 상황을 거론하며 ‘부탁’을 하였으나 단호했다. 출근하는 교사들의 급식과 관련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느 학교는 작은 학교여서 조리실은 없고 급식실만 설치하고 옆의 초등학교에서 점심을 가져와 먹던 학교였는데 처음에서 점심을 사 먹다가 초등 돌봄이 시작되면서 급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전에 근무했던 학교는 규모가 큰 학교여서 교직원만 70명 가량인데 영양사분이 밥해주는 걸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하면서 급식실에서 식사를 제공해준다고 했다. 집에서 출근을 하며 점심만 해결하면 되는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 중에는 급식을 제공해줄 수 없다고 하는 상황에 분개하며 개학하고 절대 학교 급식을 먹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법을 이야기해도 섭섭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서너 명씩 돌아가며 출근할 때에는 출근한 사람들끼리 나가서 밥을 사 먹었으나 전 교사가 출근하면서는 매번 밥을 사먹으러 다닌다는 것도 좀 애매했다. 아침은 건너뛰더라도 점심, 저녁을 모두 사 먹는 것은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다. 전체교사가 출근을 하게 되면서 식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영양사는 쌀과 김치는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여러 가지로 설왕설래한 끝에 학교 주변의 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가져다 급식실에서 먹고 각자 사용한 식판을 씻는 걸로 정리가 되었다.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지만 가족과 집을 두고 학교에 들어와 생활하며 근무하는 우리 학교 같은 상황에서는 식사의 문제도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다.

5월초 연휴를 보내면서 교육부는 5월 13일 개학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1주일 간격으로 학년별 순차적인 개학을 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그런데 그 공문에 우리의 주의를 끄는 내용이 있었다. 초중학교의 경우 6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는 전교생이 동시에 등교해도 된다는 내용을 두고 우리는 고민을 했다. 우리 학교는 고등학교이지만 전교생이 50명인 소규모 학교이니 동시에 등교해도 되지 않을까? 

도교육청에 문의전화를 했다. 소규모 학교 동시 등교는 초중학교에 한해 온 공문이니 우리 학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좀 더 가능성을 알아보고 싶었다. 꽉 막힌 그들의 태도가 답답했다. 그래서 직접 교육부에 문의 전화를 했다. 교무부장과 교감이 번갈아 통화를 했다. 통화를 끝낸 교감은 매우 못 마땅한 표정이었다. 동시 등교를 하려면 3학년 등교할 때 같이 등교하면 안 되고 맨 마지막에 등교하는 1학년 등교일에 맞추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도교육청이건 교육부건 개별 학교의 특수성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 태도에 우리는 분개했다. 

지금 많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어서 학교에 가기를 바라는데 3학년을 1학년에 맞춰 등교하라고 하면 가만 있겠느냐, 이건 하지 말라는 말보다 고약하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가장 형편없는 데가 교육부다. 결국 기승전대입의 등교를 하는 거 아니냐 학생들을 언제까지고 집에 있으라 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조금 고민의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은 3학년부터 개학하고 공문의 내용대로 1주씩 차이를 두고 순차적으로 등교하는 걸로 정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학생들 등교가 다가오니 공문도 쏟아졌다. 비접촉 체온계를 교실마다 하나씩 준비해라, 열화상 카메라를 보낼테니 학교 현관에 설치해라, 학생수 계산하여 마스크 사 놔라, 교실마다 손소독제, 체온계, 뿌리는 소독제 등등을 비치해라, 교실 책상은 횡, 열은 각각 몇 줄이고 간격은 몇 미터인지 보고해라, 기숙사입구에도 체온계 준비해라, 학생들 학교 올 때 부모들은 기숙사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해라, 대구에서 오는 학생은 이제 2주 격리하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 수업 병행하는지 안 하는지 보고해라, 학생들 등교는 학년별 혹은 반별로 번갈아 시키는지도 보고해라, - 우리 학교는 한두 명을 제외한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고 학생 수도 적어서 온라인 수업 병행은 필요가 없었고 번갈아 가며 등교하는 건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복도에서는 일방 통행만 시켜라, - 1층은 오른쪽으로만, 2층은 왼쪽으로만, 3층은 오른쪽으로만 이런 식으로 통행하게 해서 접촉을 줄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건물은 계단이 중앙과 건물의 한쪽 끝에만 있고 다른 쪽 끝은 화장실로 막혀 있어서 층별로 일방통행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 하는 구조인 것이다. 학교 설립 목적에서부터 건물 구조에 이르기까지 많은 상황이 특수한 우리 학교에서는 개별 학교의 특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공문이나 지시 내용으로 피로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등교를 하는 걸로 가닥을 잡아가면서 학교는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해졌다. 학생들이 등교를 해서 함께 생활하게 되면 ‘아이고 저 웬수들’ 하는 탄식이 나오게 되지만 예년보다 두 달이 넘게 지나서 나올 학생들을 기다리는 우리는 은근히 설렜다. 어느 초등 선생님이 공유해 준 학생의 그림일기가 있었다. 거기에는 엄마를 눈도 치켜올라가고 이도 뾰족하고 호랑이 발톱 같은 손톱을 달고 화가 난 모습으로 그리고 아마도 아이 자신인 듯 웅크리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그려져 있었다. 일기 내용은 엄마가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는 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이혼이 늘어간다는 뉴스도 있었고 ‘세 아들을 두고 재택근무하는 엄마’라는 제목의 사진도 돌아다니는 것도 보았다. 사진 속에서 엄마는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데 그 옆 방바닥에 남편과 아들 둘이 입에는 재갈을 물리고 손발이 묶인 채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접하다 보니 오랜만에 학교에 오는 학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주고 싶어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 환영 선물을 준비했다. ‘오메~ 느그들이 와야 학교는 봄이여야! 언능 와라, 기다렸다’, ‘아따! 눈이 빠지게 기다렸어야. 학교는 느그들이 와야 봄이랑께’ 이런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두 개 주문해서 학교 현관과 체육관 앞에 걸었다. 또 등교 첫날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작은 꽃다발과 간식을 준비했다. 3학년 등교일부터 1주일 간격으로 학년별 학생 수에 맞춰서 배달해 주도록 이야기를 했다.

또한 투명 칸막이를 검색해 봤다. 8천 원에서 3만 원까지 몇 가지 종류가 있었다. 역시 3만 원 짜리가 가장 좋아보였지만 학교 예산 문제로 저렴한 걸로 주문을 했다. 그런데 전국에서 주문이 몰려들어 1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던 중 학부모의 민원 전화가 학교로 왔다. 학생들이 곧 등교를 하는데 교실에 칸막이가 준비되었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말투에서 받는 느낌이 고압적이어서 또 한 번 맘을 상했다.



새로운나 최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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