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글]인터뷰 _ 오래된 과거,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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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래된 과거, 오래된 미래

- 배이상헌 중등 교사/광주교육연구소 소장

 

글  원민

 


궁금해할 겁니다. 왜 학생 열사에게 가느냐고요. 저는 한편에선 교사의 맘으로 가고, 다른 한편으론 학생, 청소년의 맘으로 갑니다. 사실은 후자가 먼저랍니다. 어제 전교조위원장은 김철수 열사에 대한 추모사를 보내면서 ‘당신이 스승이고 교육 동지’라고 고백하시더군요. 귀하고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겐 청소년운동, 고등학생운동의 벗이요, 동지랍니다. 저는 억압적 교육 환경에 맞서 싸우는 벗들에게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것이 저의 중·고 시절 바람이었고, 미처 할 바를 다하지 못하고 떠밀려 나온 후 지금까지 숙제로 느끼는 ‘오래된 과거, 오래된 미래’랍니다.


대학 시절 교육학과에 속하면서 미처 못한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싶었고, 군에 다녀온 후 복학하여 몸과 맘으로 품은 일이 중·고등학생운동을 지원하는 것이었답니다. 오래된 일이죠. 그리고 저는 민망스럽게도 아직 그 맘을 떠나 본 적이 없습니다. 제겐 참교육운동 이전에 청소년의 생존권운동이요, 해방운동입니다. 그리고 청소년, 아동이 해방되어야 비로소 인간의 해방도 제 개념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교사의 도덕적 책무가 아니며, 교사의 참교육, 학교혁신 타령이 아니랍니다. 굳이 말하자면 교육노동운동에서도 소수자운동 같기만 합니다.

언제 차분히 이런 제 맘을 더 깊이 고백하고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허락될지 모르겠습니다.

 - 〈6월 6일 아침 김수경 열사를 만나러 가는 길 마음 단상과 장면들〉,  원시인배이, 벗 카페



지난 5월 15일 토요일에 광주 다녀왔다. 교육공동체 벗은 2013년부터 매년 5월이면 광주에 간다. 그때마다 항상 망월동 묘역을 안내해 준 이는 배이상헌 조합원이었다. 지난해부터는 이사회를 광주에서 하고 있다. 이날도 오후 2시에 망월동에 모여 참배 행사를 가졌다. 김철수 열사의 묘소 앞에서 배이상헌 조합원이 열사가 유언으로 남긴 녹을 파일을 들려주었다. 분신으로 인해 숨 한 번 쉬기조차 힘든 가운데 의지를 담아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열사의 육성을 듣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국 현대사에서 1991년은 이른바 ‘분신 정국’으로 기억된다. 군사정권의 폭거에 항거하며 13명의 학생, 청년, 노동자들이 잇따라 분신했고 또 의문사를 당했기 때문이다. 김철수 열사는 당시 전남 보성고 3학년으로 학생회 주체 5.18 기념행사 도중 분신했다. 그는 온몸에 불이 붙은 가운데 친구들과 동료 학생들에게 “너희들 이렇게 잘못된 교육 계속 받을래?” 하고 외쳤다고 한다.


광주교육연구소는 6월 2일, 1991년 열사 투쟁 30주기를 기념하며 ‘김철수 열사 정신 계승 초정 강좌’를 진행했다. 중등 교사이자 광주교육연구소 소장인 배이상헌 조합원이 주축이 되어 마련한 행사였다. 그에게 ‘학생 열사’ 사업이 갖는 의미와 의의에 대해 물었다. 이 자리에는 공현도 함께해 청소년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신구新舊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배이상헌  큰 욕심은 내지 않고 있다. 세밀한 후속 사업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 일단 학생 열사 사업을 광주교육연구소 사업 속에 포함시키고 싶다. 연구소 회원들에게 학생 열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현 단계의 포인트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학생 열사 관련해서 책무감을 갖고 움직이자 여러 회원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학생 열사 사업이라고 하면, 역사적인 싸움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청소년운동과 학생자치운동을 교육운동의 중심으로 세우는 것과 연결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직접적으로 학생자치나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면 편할 텐데 왜 열사를 들먹이냐고 하더라. 


그런데 열사는 목적의식이 높은 활동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김철수 열사는 한 개인이 아니다. 그의 이상처럼 학생들 스스로 교육운동을 활발하게 꽃피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열사 사업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학생자치를 이야기하면 교사들은 프로그램으로 접근한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학생자치의 정치적인 상호작용과 권력적 지향 같은 개념은 상실된다. 프로그램으로만 소개되고 활용, 소비되어 버리는 거다.


정치성에 대한 교사들의 방어기제도 문제다. 학생들이 교사의 통제를 벗어날까 봐 두려워한다. 우리에게는 반항과 저항운동이 갖고 있는 교육적 의미에 대한 검토가 굉장히 미흡하다.


교육과정 계획서를 만들 때 교사들만의 교육과정 계획서가 아니라 학생회와 여러 학생 그룹들이 자신들만의 교육 목표를 만들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연말에 이들이 함께 평가도 하고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불만도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적 과정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교사들이 세운 계획과 목표의 수혜자로서 앉아만 있어선 안 된다. 학생들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교육 목표와 이해, 방법의 선택,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들이 학생자치와 교육 활동의 맥락으로 들어와야 한다.


 




청소년운동 활동가로서 공현은 열사 기념 사업이 현재 학생자치나 청소년운동에 시사하는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를 집필하면서 청소년운동의 역사와 인물들을 정리한 경험을 통해 그 맥락을 짚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공현  일단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열사뿐만 아니라 고등학생운동의 사례를 연결하는 게 지금 청소년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경험과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시간, 다른 환경에서 했던 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그것이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해 줄 수도 있지만,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동질감 또한 우리 운동의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그런 동질감이 운동의 자원이 되면, 열사들의 존재와 고등학생운동의 경험이 지금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불만에 정당성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운동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청소년기가 짧아 당사자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데 시간적 제약이 있다는 점이다. 또 의식화와 훈련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불만과 의문이 정당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열사 사업은 청소년 활동가들의 고민과 요구에 근거와 정당성을 제공해 주어 의미 있는 것 같다. 부수적으로는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당시에 청소년 열사들의 투쟁을 환기시켜 현재 청소년운동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내고 싶다.


 




배이상헌  1990년대 후반 중고등학생운동의 가장 큰 고민은 지속 가능성이었다. 내가 교사가 된 이유는 전술적 선택이었다. 중고등학생운동의 지원자가 되기 위한 전술적 선택지가 교사라는 직업과 맞닿은 거다.


당시 후배 동지들과 청소년운동을 할 때 공교육은 곧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일부는 확신하고 있었다. 나 또한 탈학교 청소년들이 더 많아질 테니 밖에서 틈새 전략을 세워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너무 단선적이고 왜소한 분석과 전략이었다. 학교 안을 바라보는 시각도 현실 순응적이었다.


전교조도 학교를 바꾸는 데 학생을 중심에 두지 못했다. 항상 교과운동이나 교육 정치 권력을 붙잡기 위한 운동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대다수가 그랬다. 극소수 교사들만이 학생과 청소년을 중심에 두고 사고했다. 그래서 정말 게릴라처럼 활동했다. 지금은 전부터 그랬으니 더 실망할 일도 없겠거니 싶다.


다만 교육과정에 대한 원리와 학교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 여러 가지 청소년운동의 공간을 넓히고 확장하는 일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싶다. 그 부분에 집중해서 공격 지점을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 담론도 제대로 진행시키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소비하기만 했다. 그래서 구체적인 맥락을 짚어 가며 접근하려고 한다.

 

두 사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비는 잔뜩 맞았는데 목은 타들어 가는 상황이구나 싶었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중고등학생운동과 교육운동이 해결하지 못한 오랜 난제와 현재 청소년운동의 당면한 과제를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이다.

배이상헌과 공현 등 신구新舊 운동가들이 지금처럼 씨줄과 날줄이 되어 청소년운동, 학생자치운동의 지형을 더 촘촘하고 단단하게 결속해 계획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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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상헌 조합원은 이후 벗 다음 카페에 관련 행사들을 하나하나 공유해 주었다. 공현 또한 지난 2일에 진행된 ‘김철수 열사 정신 계승 초청 강좌’와 25일에 진행될 ‘91년 열사투쟁 재조명 학술 심포지엄’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참고 자료 링크]

*불길 속 고교생의 외침 “왜 로보트 교육 받아야 하나”  _ 정경호

*1991년 5월 투쟁에 대한 세대론적 접근  _  양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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