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몰랐어요_조진희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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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농 인터뷰


“텃밭과 작물을 

어린이 청소년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할지 

더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 조진희 서울 천왕초


“교육농협동조합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순환에 가치를 두며 하늘과 땅에 기대어 더불어 즐겁게 농사짓고 오늘의 삶과 교육을 생태적으로 전환한다.”

교육농협동조합은 위와 같은 목적으로 교육공동체벗에서도 힘을 보태 2014년에 창립했습니다. 지난 2019년엔 조합원들의 실천 활동을 모아 《교육농 – 우리 학교에 논과 밭이 있어요》 책자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교육농 현장의 실천과 생각을 기록하는 일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진행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주인공은 조진희 조합원입니다. 서울의 천왕초에서 학교 텃밭을 일구고 있으며 학교 텃밭을 인근 공원으로 확장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활동은 《교육농》 책자에서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지요. 인터뷰 내용은 분량 압박으로 몇 회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_ 풀씨


▲학생과 모종 꾸러미를 나누는 조진희 조합원. 

코로나 재난이 연출한, 그나마 숨통이 되는 풍경...






 풀씨

처음 학교 텃밭을 시작할 분들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질문지입니다. 번거롭더라도 이야기를 잘 들려주세요.^^

 조진희

올해 초에 교육농협동조합 총회에서 풀씨기언이 교육농 조합원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적극 밀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첫 인터뷰이가 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더구나 인터뷰라는 게 질문에 대한 답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얘기를 나누는 것(국어사전 정의)”인데 막걸리나 커피 한 잔도 없이 질문 리스트를 열 개도 넘게 보내는 것은, 교육농적인(!) 감성이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더구나 20년도 더 넘은 풀씨와 나의 인연(나는 풀씨를 20대 후반에 만났고 그는 내가 초등 《우리교육》새내기 기자였을 때 사수였습니다)에 이건 참 인정머리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인터뷰의 값어치를 이 정도로 생각하는 인터뷰어 풀씨에게 쓴소리를 한마디 날리면서 아래 질문에 답을 해 보려고 합니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다면 순전히 저의 의도가 아닌 풀씨의 게으름임을 독자들께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언제부터 학교 텃밭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요?

학교 텃밭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이었습니다. 물론 딸애가 어린 시절 서울 구로구 동네 텃밭 5평을 빌려 소소하게 주말에 소일거리 삼아 했던 것까지 하면 10여 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시 한 동네에서 사회운동과 아이쿱생협 조합원 활동을 하는 또래 부모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 소모임의 일환으로 텃밭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상추씨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어떻게 심는지도 잘 몰랐던 그 시절 어깨너머로 텃밭 선배들에게 하나둘 배우며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 주던 시절에는 내가 이렇게 농사에 푹 빠질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아이에게 생태적인 놀이 환경과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준다는 육아의 일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개 도시인들은 지금도 이렇게 텃밭을 시작하고 나누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2011년 서울형 혁신학교로 개교한 천왕초는 생태 친화적이고 마을 친화적인 사업의 일환으로 상자 텃밭을 만들었고 이를 5~6학년이 실과+창체 교육과정으로 운영했습니다. 초기의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하나둘 휴직하거나 전출하고 2014년 6학년 부장을 맡았던 저는 이전의 성공적인 텃밭 운영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배우면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육농협동조합의 연수와 워크숍을 참여하였고 여러 학교 선생님과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텃밭을 맡은 선생님들이 다른 학교로 가시면 교장 선생님이나 주무관에게 다시 돌아가던가 아니면 사라지는 데 비해 천왕초는 아주 운이 좋았던 거죠.


 

직접 학교 텃밭을 시작한 때는 언제인가요?

 

학교 일을 하다 보면 어떤 일에 애정이 가지 않고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보니 푹 빠지는 일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텃밭이 그런 일이었어요.

처음 1~2년은 새로운 것을 알고 익숙해지기 위해 큰 에너지를 써야 하지만 이게 반복이 되면 사계절의 패턴을 알게 되고 또 덜 힘이 듭니다.

학교 텃밭은 대규모 전업농이 아니라 학교에서 작은 땅이나 화분을 일구고 이것을 수업 및 생활교육과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성보다는 교육적 활용이 더 큰 노동입니다.

음악을 잘 배우기 위해 방음 시설이 있고 악기가 있는 음악실에 가고, 목공을 배우기 위해 나무와 톱이 있는 목공실에 가듯이 식물을 기르면서 교육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텃밭이 반드시 필요해요.

교실이나 복도 창가에 화분을 기르거나 잘 가꾸어진 화단이 아닌 매일 만나고 보살피고 소통하는 텃밭은 모든 학교에 있어야 하는 특별실인 셈이죠.

선생님들이 나의 상담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연수를 듣거나 대학원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물을 잘 못 기르거나 작물과 교육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모를 경우에는 인터넷을 뒤지거나 포기해 버립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신의 몸을 생장시키고 자손을 번식하기 위해 존재하는 작물과 호흡해야 하는 일인데 그냥저냥 되는 대로 책이나 인터넷으로만 섭렵하는 것은 큰 한계가 있습니다.

학교 텃밭을 여러 해 하면서 내가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교육적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열 알의 씨감자가 100여 개의 감자가 되는 것처럼 말이죠.


 

혼자서 시작했나요? 혹은 누구와 함께 시작했나요?

 

2014년 얼치기 농부 교사였던 나를 믿고 따라 주는 6학년 동료들 가운데에는 교육농협동조합 김이은 조합원(김 선생은 서울 지역 대장동 농사학림의 정예 멤버로 작물과 음식을 콜라보 하는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나와 함께 천왕초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습니다)이 있었습니다. 김 선생은 교육농뿐만 아니라 힘든 6학년 교육과정 운영에서도 천군만마였어요.

김 선생을 빼고는 다 농사를 잘 모르는 후배 교사들이었어요. 학교 텃밭 운영에 마음 맞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분들이 학년이 바뀌어도 텃밭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 주시고 연중 운영되는 학교 텃밭을 학교 구성원들도 함께 겪습니다.

천왕초 텃밭은 학교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요. 즉 텃밭을 지나치지 않으면 출퇴근과 등하교를 할 수 없으며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수다를 하려고 밖으로 나오면 바로 텃밭이 있습니다.

학교가 너무 좁기 때문에 들고 나는 보도블록에 상자를 놓은 것이 이런 좋은 결과를 가져온 거죠. 학교 텃밭의 입지 또한 구성원들의 유무형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또한 5~6학년 실과 교육과정으로 학교 텃밭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학교 교육과정에 명시하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연말에 학년을 정할 때 5~6학년 담임이 되면 텃밭 농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서 그 학년을 선택합니다.

이에 더하여 천왕초 4학년은 텃논을 해야 합니다. 이것 또한 학교 교육과정에 녹아들어 있는데 상자 텃논은 모를 심고 그냥 방치하는 형식적인 교육으로 흐를 수도 있어서 지나해부터는 생태 마을교사들의 전문적인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봄에 모를 심고, 여름에 논생물을 관찰하고 가을에 수확을 하고 요리를 해 먹는 사이클의 마을 협력 프로그램은 홍성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함께 교육농을 배운 학부모들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천왕초 텃밭 텃논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의 주요 요인은 시스템화였습니다. 즉 교육과정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 지난해 5학년을 같이했던 선생님들 가운데 올해 두 분이 또 함께하시는데, 우리 셋이 함께 텃밭을 하니 새로 오신 일곱 분의 선생님들도 자연스럽게 텃밭을 하면서 풍성한 한 해가 되고 있습니다.(흐뭇)

 

  

혹시 주말농장 혹은 농사의 경험이 있다면 학교 텃밭이 그것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저는 학교 텃밭에 더해서 주말에는 교육농 조합원들과 주말, 월말 농장 프로그램인 농사학림 교류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에너지로 그렇게 싸돌아 다녔나 생각이 드는데,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학구열을 받쳐 준 것이 농사를 하면서 얻는 힐링의 경험이었습니다.

주말농장에서는 학교에서 할 수 없는 더 많은 작물이나 실험을 할 수 있었어요. 10여 년 전 구로에서 소꿉놀이처럼 하던 주말농장이 아니라 충남 홍성, 경기 여주, 서울 남태령, 경기 광명 등에서 베테랑 선배들과 함께 교류하는 경험은 농사 이론이나 실천 면에서 큰 성장을 가져다주었어요.

육체적인 힘듦을 선후배 교사들과의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채워 주는 격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농사 체질이 되었다고 할까요? 요즘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구글 프로그램이 익숙하지 않았다가 자꾸 계속하다 보니 이제 온전히 내 것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이죠.

바느질이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 생활에 필요한 기술이라고 할 때 농사 또한 매우 중요한 생활의 기술이에요. 자본주의 사회 대안의 하나로 적정기술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접하면서 내가 농사라는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이 참 뿌듯하더라고요. 더구나 농사는 음식이라는 것으로 하루 세 끼니를 접하기 때문에 교육에도 더욱 친숙하게 접목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주말농장을 접고 오로지 학교 텃밭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힘에 부치는 것도 있지만 선생님, 어린이들과 더 잘 교류하기 위해서는 학교 텃밭에 더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학교와 마을이 같은 저로서는 주말에도 학교 텃밭을 갈 수도 있지만, 월~금에 충분히 텃밭을 돌보고 교류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지 않습니다.

주말농장은 교육적인 장소라기보다는 실험실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주말농장에는 어린이들이 없잖아요.(당연하지만요~)

학교 텃밭은 존재 자체가 교육적이에요. 내가 혼자 구글 드라이브에 올려놓은 자료는 이후를 위해 아카이브 해 놓은 것일 뿐 어린이들에게 보여지지 않잖아요? 공유를 설정해야 비로소 교사들과 어린이들이 시청할 수 있는 것처럼, 학교 텃밭의 가장 큰 요소는 교육적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해요. 그런 의미에서 학교 구성원들과의 교류가 없는 혼자만의 텃밭(예를 들어 교장님의 텃밭, 주무관님의 텃밭)은 경관에 그칠 뿐이죠.

 

 

학교 텃밭을 하면서 변화가 있을까요?

 

가장 큰 변화는 교사로서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깊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식물과 동물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충조차도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렁이를 징그럽게 생각하던 어린이들이 텃밭에서 지렁이를 흔하게 보면서 생각과 태도가 바뀌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지렁이는 농사에 도움을 많이 주기 때문에 법에 의해서도 가축으로 분류됩니다. 손으로 만지면 화상을 입기 때문에 조심해서 보살펴야 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배우면 지렁이를 징그럽게 생각하고 함부로 했던 어린이들이 지렁이를 다르게 봅니다.

개인적으로 10년 전부터 반려 동물과 살고 있기도 한데요, 동식물과의 교감을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줄 수 있는 곳은 학교 텃밭이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개구리가 낳은 알이 뒷다리가 생기고 변화하는 모습을 하루하루 다르게 텃논은 제공해 줍니다. 교실 안에서 키우면 애써 기른 개구리가 어느 날 집을 나갈까 봐 걱정되지만, 텃논에서 키우면 그 사라진 개구리가 다시 알을 낳으러 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민달팽이가 배춧잎을 갉아 먹고 초록색 배설물을 여기저기 발생시킨 것을 보고 더러운 똥이 아니라 텃밭의 생명체가 우리와 같이 배추를 나눠 먹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다음으로 변화는 내가 가르치는 내용에 자신감과 깊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올해 감자 키우기에 대해서 10만큼 가르쳤다면 그다음 해에는 20이 되고 또 그다음 해에는 30이 됩니다. 지금은 ‘감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실과뿐만 아니라 국어, 사회, 미술, 체육 등을 연계하여 가르칠 수도 있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3월에 감자 심고 6월에 수확해서 요리 만들면 끝이었거든요.

감자의 역사에서 차별과 편견을 배우게 되고 또 컬러 감자로 요리하면서 미적 감각을 익히는 등의 융합 수업의 경험은 교과서의 틀에서 벗어나 제재와 교과를 넘나들면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습니다.

물론 텃밭 작물뿐만 아니라 다른 제재도 깊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 그렇게 될 수 있겠지만,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작물과 열매를 통해 세계시민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기까지 합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인간관계가 넓어집니다. 천왕초에서 교무혁신부장을 두 번 하면서 5학년 실과 텃밭 교육을 했을 때 변하는 텃밭 모습이나 활동을 하루 생활 이야기 형태로 동료들에게 보내서 수업에 활용하시거나 감상하시라고 말씀드리면 느낌이나 생각을 답장으로 보내 주십니다. 답답한 교무실에 앉아 하루 내내 컴퓨터를 보고 있더라도 선생님들과 텃밭과 랜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실과 시간에 감자전이나 배추전을 부쳐서 교직원들과 나누면 무슨 잔칫날 같이 되는데 “5학년들이 감자, 배추 수확했냐? 나도 물 많이 주었다!”고 하시면서 보안관 선생님도 한마디 해 주십니다. 텃밭에서 잡초를 뽑거나 물을 주고 있으면 텃밭이나 농사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은 추억담이나 자신의 농사 경험 이야기를, 잘 모르시는 분은 작물을 매개로 서로 친해집니다.

지금은 휴직을 하셨지만 새로 오신 특수학급 선생님은 그러시더군요. 학생들이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학교 텃밭을 같이 하면서 다른 존재를 잘 보살피고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인성적으로 매우 좋아졌다고요. 퇴임이 얼마 안 남은 무뚝뚝한 행정실 주무관님은 양파 농사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은 퇴직하면 양파밭에서 일당 받는 일을 할 거라며 뜻밖의 인생 설계 이야기도 나눠 주십니다.

텃밭을 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가진 씨앗들을 가져다주시고, 나무 그늘에 퍼질러 앉아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있으면 거들면서 수다를 함께 떨기도 합니다. 올해는 교무행정 선생님이 금화규 꽃씨를, 행정실 차석님이 해바라기 씨를 많이 주어 교육농 조합원들과도 풍성하게 나누었죠.

농사를 전혀 모르거나 식물 기르기를 잘 못하는 분들도 “선생님, 저도 뭐 심고 싶은데 씨앗 있으세요?”라며 다가옵니다. 올해는 루꼴라 씨와 레몬밤 모종을 여러 선생님과 나눴습니다. 토마토 순을 따서 다시 심으면 또 자란다는 것을 알려주자 무슨 마술을 보는 듯이 눈이 동그래지고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합니다.

밥이나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것이 유일한 교류였던 교직원들과의 관계가 다른 차원으로 확장이 됩니다. 심지어 유치원에 손주를 데리러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이야기를 건네면서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은 텃밭을 하면서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인간관계입니다.

어쩌면 사람은 나만 챙기면서 사는 것보다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고 그들을 아끼고 살피면서 오히려 자신의 정서와 감정도 동반하여 성숙하는 것은 아닐까요?

2019년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에서 발표한 거트 비에스타 교수는 “성숙은 세계의 중심에 자신을 두지 않고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인데 도전에 직면할 때 자신의 욕망만 선택할지 다른 세계를 고려할지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동식물과의 만남과 관계는 자신의 욕망에만 중심을 두지 않고 세계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학교 텃밭에서 식물을 가꾸고 사육장에서 동물을 기르고 돌보는 교육은 실과나 과학이라는 교과 하나를 잘 가르치는 것을 넘어섭니다. 동식물을 돌보기 위해 다양한 노동을 하고 도구를 쓰는 활동은 어린이들을 보다 민주적인 시민으로 성숙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프로그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까지는 감자를 수확하여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에 그친 교육활동이었다면 2019년에는 감자 요리를 만들어 모금을 하고 사회와 도덕 시간에 배운 ‘인권’과 접목하여 지구촌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기부하는 ‘감자 인권 페스티벌’을 했습니다. 이런 경험은 어린이들에게나 선생님들에게나 매우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텃밭의 메리골드 꽃을 수확하여 꽃차를 만들고 이것을 마을 축제에서 팔아 모금을 하여 어려운 친구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했던 활동도 텃밭 동아리 학생들에게는 가슴 뿌듯한 시민교육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이가 있는데요, 제가 가르친 학생은 아니었지만 매일 수업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경계선 지능 장애가 있어 중간놀이시간에는 온 학교를 방황하고 다녀서 선생님들이 찾아다니고 방송하고 그랬거든요. 그 어린이가 언젠가부터는 텃밭에 와서 물을 주고 물을 가지고 찰방찰방 놀이를 해서 교감 선생님께서 그 아이가 사라지면 텃밭에서 찾곤 하였습니다.

텃밭은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풀을 뽑고 물을 주어야 하는 고된 노동의 공간일 수도 있지만 애정을 가지고 돌보고 작물과 도구를 가지고 놀고 싶은 어린이들에게는 훌륭한 놀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교사 자신의 가치관과 잣대로만 텃밭을 볼 것이 아니라 이것의 교육적 의미와 가치가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는 확장성과 장소성을 가진 텃밭의 특징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나 서울시교육청이 퇴임 교사의 이모작살이나 실업자 일자리 창출을 위해 텃밭 도움이를 보내 주는 시스템을 정비하여 학교 텃밭을 가꾸고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농부 교사를 양성해서 배치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먼 미래의 꿈일 수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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