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알게 모르게 어루만져 주고 있어요_강주희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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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농_인터뷰_강주희(2)


 풀씨

학교 텃밭을 하면서 변화가 있을까요?

 강주희

대단히 큰 변화, 생명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많이 바지런해집니다. 부지런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텃밭을 하면서 부지런해졌어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땀을 흘리는 일이 덜 부담스럽고 고단함이 짜증스럽지가 않아요. 흙을 만지고 작물의 줄기를 세우면서 나를 만지고 나를 세웁니다.


내 아들에게 소리치고 감정을 소모한 일을 마주 보게 되기도 해요. 학교에서 민주적이지 못한 장면에 과하게 맞섰거나 반대로 맞서지 못했던 감정들을 쓰다듬게도 되고요. 문제로부터 거리 두기가 절로 됩니다. 그렇게 얻은 마음의 안정은 좋은 시나리오를 쓰게 되고 좋은 시나리오는 긍정적인 관계의 회복으로 돌아오더라고요.


 풀씨

나의 변화가 있을까요? 어떤 점일까요?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강주희

한번 상상해 보실래요? 만 5세인 둘째를 돌보기 위한 하루 2시간 자녀 돌봄 시간 사용을 제한하는 학교 관리자와 동학년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받는 날, 텃밭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작물을 돌보며 중얼거립니다. 일부는 흉 -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이었을 것이고 일부는 투덜거림 - 꼴값들을 한다, 일부는 복수 - 너희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겠어의 다짐. 사실 이런 말들을 소리 내지 않고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울릴 때는 엉키고 엉키기 마련인데, 작물 앞에서 소리를 내면 그 순간부터 일방향으로 나아가는 기분이랄까요.


이건 우스갯소린데 코로나 블루(코로나로 인해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 확인법이라고, 식물에게 말을 거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식물에게 말을 걸었을 때 식물이 대답을 하면 코로나 블루에 진입된 것이라면서요? 아직까지 텃밭의 작물들이 제게 대답을 해 준 적은 없지만 어쨌거나 텃밭은 제 삶을 알게 모르게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텃밭에서는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에요. 태양과 바람과 흔들리는 작물들, 날아오고 날아가는 벌, 나비와 새들까지 혼자 있고 싶은 내 마음을 존중해 주되 혼자가 아님을 알려줍니다.


텃밭은 10여 년 전부터 해 온 환경적인 수업 의제들을 구체화하고 실천할 수 있게 나를 지지해주고 있어요. (현재에 비해) 다소 추상적이고 분절적이었던 ‘지속 가능성’ 수업들이 텃밭에서 구체화되고 명료해져서 함께하는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응원과 동료성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텃밭에 나가는 시간만큼 동료 교사들과는 물리적으로 가까워지지 못하는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하죠(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싶을 때 텃밭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어 보임). 교사가 맨날 밭에만 나가 있는다거나 밭일하는 사람쯤으로 취급하는 뉘앙스를 던지는 동료, 선배들과는 더 이상 관계 진전이 없다는 것은 참 선명해서 좋아요.


관리자와의 관계는? 글쎄, 텃밭을 통해 좋아진 경험이 현재는 없습니다. 같이 농사짓는 관리자를 만나는 것도 두렵고요. 텃밭에서도 교장(!)을 하려는 분들은 아무래도 거북하지 않겠어요?


 풀씨

학생들의 변화가 있을까요? 어떤 점일까요?


강주희

텃밭 5년 내내 1학년들하고 보낸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어린아이일수록 내재된 생태적이고 생명 중심의 감수성이 교실 안에서 재단되지 않도록 해 줍니다. 안전사고나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1년 살이의 최대 목표인 1학년 교실에서 느끼는 아이들의 감정은 무엇일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줄을 서고 수업 중 딴짓하거나, 딴 곳을 보거나, 딴 소리가 금지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일희일비하다가 시시비비가 붙으면 안 되니 그림같이 앉아있기를 강조하는 건 과거의 1학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공중질서, 공동체의 안녕을 무시하려는 생각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건 있지도 않은 공동체를 위한 규율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거든요. 주객이 전도되어 공동체를 느끼지 못하는 교실에 대한 반성입니다.


씨앗을 심고 작물을 키우는 행위는 작은 궁금증이 튀어나오고 이야기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점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텃밭 활동이기도 합니다. 연필 하나 떨어뜨리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교실에서나 전달되는 말소리가 아이들 귀에 들리기나 하겠습니까, 해와 구름과 빛나는 초록 잎사귀가 살랑거리며 손짓하는 야외에서 팔다리를 묶어 줄 책걸상 없이 나(교사)를 보게 하는 일이 어디 쉬울까요. 그래도 텃밭 주변 온통 흥미롭고 흥분이 되는 것들 투성이인 이 장소에서도 선생님이 신이 나면 아이들도 선생님을 흥미롭게 여기는 듯해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교실 속에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만의 질서가 있습니다. 글씨를 깨끗하게 쓰고 수학을 잘하고, 그림을 그린다든가 독후감을 써도 비슷비슷 잘 해내는 그룹들. 저학년에서는 이 그룹이 놀이도 주도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교실 속에서 잘 이행되는 아젠다가 텃밭에서는 깨져요. 더러워야 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 - 곤충이 튀어나온다거나 모기나 벌이 웽웽거리는 공간에서 활약하는 주인공들이 달라지죠. 텃밭에서는 벌레에 질겁하는 녀석을 앙숙이던 짝궁이 의연하게 처리해 주고 교실 수업에서는 앉은 자세, 집중 시간, 글씨 모양 등 따위로 구박을 받던 녀석이 지주를 척척 뽑아내어 한 자리에 차근차근 정리해 놓는 우등생이 됩니다.


물론 교실에서 과업을 야무지게 해내는 아이들이 텃밭에서도 야무지게 해내기도 하지만 교실에서의 무게 중심과 텃밭에서의 무게 중심은 분명 달라요. 일단 교사에게 던지는 질문의 횟수만으로도 확인되죠(교실에서 말 한마디 없던 친구가 탄성을 지르고 교사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한 번 더 움직이기를 원하죠). 교과 과업을 성실하게 해내는 친구들 역시 텃밭 과업도 성실하게 해내지만 성실함을 넘어 감탄이나 감동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을 관찰할 수 있어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나 생태적 환경에 대한 감각적인 반응이 가슴보다 머리(지식과 정보)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찰나, 세련되지 않아도 부지불식 간에 튀어나오는 감탄사를 지닌 아이들, 행동의 언어로 뛰어드는 친구들을 넘어서지 못해요.


아이들에게 텃밭은 어떤 공간일까, 글쎄요. 매년 묻는 텃밭 활동 어땠나, 물어보면 힘들었다 절반, 재미있었다 절반이에요. ‘재미있었다’로 묶이는 1학년 아이들의 감정이 

‘교실 밖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일단 마음에 든다’

‘내가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다’

‘변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자꾸 보게 된다’

‘어쩐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는 고학년(5, 6학년 동아리 친구들의 소감)의 그것과 비슷하겠지요?


 풀씨


동료 교사에게 학교 텃밭을 일구기를 권한다면 어떤 점에서 권할 수 있을까요?


강주희

지난해 서울시 지원 학교 텃밭 홍보 영상을 찍는다길래 저도 카메라 앞에 선 적이 있어요. 그때도 비슷한 질문이 있었는데 힐링, 아이들과의 관계 회복, 일상에서의 일탈, 소확행, 실천하는 교육을 이야기 했었죠.


일단 나의 힐링. 손과 발을 움직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머리로 가는 에너지를 줄인다는 것을 의미해요. 머리로 가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운동도 하고 산책을 한다지만 저는 텃밭을 권하고 싶어요. 우리 교사들은 학교 안에서라면 쉽게 땅을 구할 수 있잖아요. 이런 vip티켓을 모른 체할 수는 없죠. 몇 걸음만 내딛으면 되는 곳에 나만의 땅이 있다는 것은 정말 두근거리는 경험이예요. 제겐 그런 공간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 뜻대로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다는 시작부터가 힐링이었어요. 학교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텃밭을 하라!


앞서 말했듯 텃밭이라는 무대에서 교사에게 드러나는 아이들의 스타일은 교실 속 그것과 또 달라요. 말이 없던 녀석의 입이 열리고 어느 순간이건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아 늘 투닥투닥 시끄럽던 녀석이 꽃을 보고 입을 헤- 벌리고 황홀경에 빠지는 순수함을 들킵니다. 수업 중에 늘 부산스럽고 교사에 집중하지 못해 저 녀석을 어떡하누... 걱정되던 녀석이 작물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고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채고 재빨리 저와 친구들에게 소문을 냅니다. 여차하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어서 부모님을 소환시키던 녀석과 반대로 뭐든 의욕이 없어 소극적이고 무기력해 보이던 녀석이 무거운 상토와 퇴비 봉지를 끙끙거리며 옮겨주곤 해냈다며 승리의 미소를 보이지요. 교실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이는 이 아이들 앞에서 교사는 고민이 되던 아이들을 다룰 치트키 하나를 획득하는 셈이 됩니다. “이야~ 너 대단하구나~” “와~ 진짜 굉장해!” “네 덕분에 큰 도움이 됐어” 이런 말들(을 일부러 해 주려고 애를 써야 하는 아이들에게)이 자동 발사되면서 아이들을 무장해제 시켜 주니 저는 텃밭을 안 나갈 수가 없어요.


저는 꽤 오랫동안 ‘지속가능발전교육(ESD Education for Sustainabel Development)’에 깊이 매료되어 있어요. 소위 세계시민교육이나 환경교육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상당히 진보적이고 혁신적이며 전 지구적인 목표,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중심에 두고 있어서 보다 선명하게 교육과정과 수업을 설계할 수도 있고요. 17개의 SDGs들에 접근하는 수업을 설계하다 보면 가슴이 설레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야망(?)에 흥분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텃밭이 함께 하니 보다 실천적이고 행동이 가능한 수업이 됩니다. 교실 속에서의 가르침을 직접 구현해 본다는 자신을 향한 자존감도 선물해 주더군요. ‘지구를 살리자’고 텃밭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에요.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고 지구를 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텃밭 농사를 짓다 보니 지구의 문제들, 소위 환경과 (농사로부터 발화되는) 사회, 경제적 문제들을 현실적인 문제로 접근할 수 있고 더 촘촘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만큼 생생한 언어로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그만큼 제 언어의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니 어떻게 텃밭 농사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풀씨

동료 교사에게 학교 텃밭을 권하지는 못하겠다면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강주희

학교 텃밭을 권하고 싶지만 권하지 못하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해요. 땀, 냄새, 벌레, 자외선과 기미. 애초에 이런 것들이 걱정되는 분들은 오지 않으시는 것이 좋으니까요. 텃밭의 건강한 열매만을 소유하려거나 아름다운 정원만을 누리려거든 텃밭 농사는 꿈만 꾸시는 것이 좋겠어요.


실제로 제가 만난 많은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은 이 두 가지를 찬양하며 저를 응원합니다만 교육농과 교사 농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주어지지 않으면 저를 그저 밭일을 해주는? 학교의 교재원을 관리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시더라구요.


반대로 텃밭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경험이나 스토리에 매료되어 잠시 텃밭에 들어오시는 동료들도 위의 현실적인 장벽에 먼저 놀라십니다. 학교의 농사는 교사의 할 일이 아니라는 확고한 생각을 지니신 분이나 잘 기른 푸성귀는 마트에서 사먹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을 지니신 분은 더더욱 권하기가 어려워요.


삶의 전환, 그것이 바탕이 되거나 텃밭에서 삶이 전환되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이거 뭔가 거창한데 모기에 물려서 팔과 다리에 붉은 자욱을 새기는 일, 쪼그려 앉아 허리와 무릎이 뻐근해지는 일, 적당한 때에 비가 오고 적당한 때에 볕이 뜨거워질 때가 반가워지는 일상이랄까요), 학교 텃밭은 권유하기가 힘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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