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_김훈태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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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 김훈태 슈타이너인지학연구소 대표

 

글  원민


‘벚꽃 엔딩’을 예고하는 봄비 소식에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충남 서산행 아침 고속버스는 비교적 한산했다. 버스 전용 차로를 타고 시원스레 달리다 보니 신록으로 가득한 산과 들이 펼쳐진다. 이내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곡우를 일주일여 앞둔 4월 12일, 서산행 버스 안에서 단비를 만났다. 그야말로 호우시절好雨時節이다.


버스는 예상 시각보다 조금 일찍 서산에 도착했다. 시원스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그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큰 키에 우산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이가 보인다. ‘기린선생’ 김훈태 조합원이다. 활짝 웃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그에게서 봄기운이 묻어났다. 왜 아니랴, 약동하는 새봄처럼 지금 그의 집에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3월에 태어난 둘째 아이 덕분이다. 그는 갓난아이를 돌보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서산동부시장으로 이동했다. 바다가 가까운 지역이라서 그런지 초입부터 수산물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신선한 해산물이 그득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는 시장 2층에 있는 한 횟집에 자리했다. 2016년 《교사를 위한 인간학》을 출간하고 함께 축하했던 곳이어서 낯설지 않았다. 그와 친분이 있는 후덕한 인상의 사장님의 추천으로 제철인 도다리를 주문했다. 어릴 적에는 이맘때 ‘곡우사리’라고 불리는 조기를 많이 먹곤 했다. 살이 연하고 고소해 지금도 즐겨 먹는다. 아무튼 그날 도다리는 쫀득하고 탱탱하니 식감 좋고 맛있었다. 만남에 식도락이 빠지면 조금 심심한 것 같다. 그래서 조합원 인터뷰에서는 기회가 되면 짧게라도 음식 이야기를 덧붙일까 한다.

 

“일찍부터 평화보다도 폭력의 문제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 윤지형(2014), 《세상의 교사로 살다》, 240쪽.


김훈태 조합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장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교사를 그만둔 이력이 있다. 그는 일찍이 가슴 속에 평화를 향한 신념의 촛불을 밝혔고, 교사로서 그 따스한 빛을 나누는 삶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저는 초등학교와 발도르프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감옥이라는 큰 학교에서 인생 공부를 했었고요. 평화교육에 관심이 많아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했는데 어쩌다 보니 평화주의 신념이 생겼고,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와 함께 평화운동에 동참하다가 불교 신자임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걸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교육공동체 벗 10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A4 1쪽 프로젝트 - 교육공동체 벗을 만드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삶의 궤적을 소개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서산에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대표이자 독립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의 책 《교사를 위한 인간학》과 《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를 접한 이들은 저자 소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을 테다. 그럼에도 교사이자 ‘평화와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로서 그의 고민과 성찰이 궁금한 분들에겐 《세상의 교사로 살다》의 김훈태 편을 권해 드린다.

 

그에게 독립 연구자로서의 삶은 어떠한지 물었다.

 

생활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하지만 그만큼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고, 쉬는 날 없이 늘 일을 하게 된다. 요리와 설거지, 청소 등의 가사 일을 제외하면 계속 원고를 쓰고 책과 논문을 읽는다. 낮에는 강연이 잡혀 있는 경우가 많아 밤과 새벽 시간에 주로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한다.

 

학교를 떠난 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강연, 연수 등을 통해 현장 교사들과 만나고 있다. 그에게 최근 학교와 교사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또 현장의 고민과 질문에 대해 실제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번아웃 증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교사들이 수업보다 학생 갈등을 사법적으로 처리하는 데에 진을 빼고 있는 현상이 가장 우려된다. 다른 사회 영역처럼 학교도 사법적 정의에 내몰리고 있는 게 심각한 문제이다. 교사들은 교육적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데, 전혀 훈련받지 못한 학폭위 같은 일로 소진되는 게 안타깝다. 올바른 학교 기능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고, 이와 관련해서 우리의 교육철학을 새롭게 하는 일이 절실하다고 본다. 아주 본질적인 질문들을 다시 던지고 엄밀하게 접근하는 작업이 벌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 인간, 갈등, 삶, 행복, 평화에 대해 우리들 자신이 명확한 답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그의 현재 가장 큰 관심사이자 고민은 ‘인간다운 삶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교육과 사법 영역에서 인간적 비전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지’라고 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최근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합리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나 스스로부터 인간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가 늘 관심사이고, 학교 선생님들이 교실과 학교를 어떻게 인간적인 공간으로 재창조해 나갈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그에게 여전히 ‘폭력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지 물었다. 회복적 정의/생활 교육, 비폭력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 전문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이 잘 풀릴 때보다 힘들 때 그 본성이 잘 드러난다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폭력이라는 현상이 벌어지는 원인, 즉 폭력의 인과적 힘을 파악해야 평화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원하지만(심지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란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무책임함을 쉽게 비판하지만 책임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사람이다. 저마다 고유한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서 우리는 자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고, 또 자기 취약성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한다. 이런 모습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차린다면, 그리고 대화를 통해 서로 마음을 나누어 연결된다면 평화로 가는 길은 열린다고 본다. 물론 기득권층은 그런 사회를 원치 않을 테니 강력한 투쟁도 필요할 것이다.

 

관련해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  루돌프 슈타이너, 《사회 문제의 핵심》,  밝은누리, 2010.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회 문제의 핵심》이란 책을 추천하고 싶다. 슈타이너의 사회사상에 희망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회복적 정의나 비폭력 대화도 슈타이너의 인지학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종사자라면《발도르프 아동교육》, 《발도르프 교육예술》, 《신지학》 같은 슈타이너의 원전을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스스로의 교육철학을 세우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이재영 원장의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와 이기홍 교수의 《로이 바스카》라는 책도 각각 회복적 정의와 비판적 실재론에 관심을 갖고 입문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그도 최근 로이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 입문 강의를 엮은 책, 《자연적 필연성의 질서 – 친절한 비판적 실재론 입문》을 번역해 출간했다. 발도르프교육과 인지학은  비과학적이라는  의문과 비판에 대한 학자로서 반론이자 대응의 일환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  로이 바스카·게리 호크, 《자연적 필연성의 질서 - 친절한 비판적 실재론 입문》, 두번째테제 , 2021


비판적 실재론은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하고 있는 과학철학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우리의 경험 이면에 현상이 있고, 현상의 근원에 실재가 있다는 것이다. 로이 바스카는 우리가 여전히 경험주의 또는 실증주의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과학에 대한 오해이자, 철학적으로는 환원주의이다. 존재론 없이 인식론에 매몰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있음의 문제는 앎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앞으로 비판적 실재론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고, 교육 문제 역시 과학철학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이 상당히 많으리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로이 바스카와 루돌프 슈타이너의 사상이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고 생각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봄비는 종일 내렸다. 그와 함께한 한나절이 금세 지나가 버려 속절없이 떨어지는 벚꽃처럼 아쉽기만 했다. 그런데 개심사 왕벚꽃(겹벚꽃)은 지금이 개화기란다. 우리는 흰색, 연분홍, 진분홍, 청색, 적색 등 소담한 오색 왕벚꽃이 핀 개심사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물론 내년에. 코로나가 끝나고 새봄이 오면 벗들과 다 함께 개심사로 봄나들이를 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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