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_강주희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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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농_인터뷰_강주희(1)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 서울 우장초 강주희


▲ 지난 8월 교육농 워크숍 포럼에서 코로나 재난 가운데서도 학생들과 학교 텃밭에서 관계를 짓던 사례를 발표하고 있는 강주희 교사.


교육농 두 번째 인터뷰, 서울의 강주희 교사. 그의 활동은 《교육농》 책자에서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의 큰아이 지후는 엄마아빠와 교육농 구력이 같다. 처음 교육농을 시작한 세 살 때부터 밭에서 뒹굴며 함께 공부해 왔으니. 4학년이 된 지금 외발수레도 거뜬히 운전하는 든든한 동료이다. 그 사이 둘째 서후도 태어나 함께하게 되었다. 덕분에 텃밭에 생기가 넘친다. 작물들이 지닌 생명력과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흙에서 어찌 그리 조화롭게 어우러지는지!_ 풀씨



 풀씨

지난해 학교를 옮겼어요. 낯선 곳(?)에서 학교 텃밭을 일구기가 어땠을까요? 전임지 학교에서 학교 텃밭을 일구기가 쉽지는 않았잖아요?


강주희


학교 이동은 언제나 낯설죠. 학교의 시스템은 똑같은데, 그 학교의 구성원들이 품고 있는 문화, 정서적인 분위기가 학교마다 참 다릅니다. 저처럼 학교에서 부적응을 하는(?) 교사들에게는 학교 이동이 적잖은 스트레스인데, 저는 대개 교실에 틀어박혀 아이들에게 몰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지난 학교에서 시작한 교육농 덕분에 이번에는 학교 운동장으로, 화단으로, 변두리 틈새 맹지(?)로 방황을 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해 4월, 이동 1달 만에 허브 몇 포기를 아이들과 심으며 척박한 화단을 나름 내 구역으로 선점하기도 했어요. 살피고 들여다보고 구경하면서 학교의 환경과 금세 가까워진 덕에 네 번째 이동만에 처음으로 불안정한 마음을 쉽게 가라앉힐 수 있었죠.


참 운이 좋게도 이번 학교에는 꽤 큰(아마 80평?) 학교 텃밭이 있어요. 막 이동한 교사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땅을 확보하기 위해 텃밭의 실세가 누구인지, 지속적인 관찰이 시작되었고 1학기만에 학교 텃밭은 학년별로 나뉘기는 하지만 저처럼 텃밭에 대한 집착을 가진 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그리고 2학기, 가을농사부터 학교 텃밭의 일부분을 우리 반의 이름으로 접수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선언은 주무관님들의 일을 덜어주는 효과를 주었고 환영받았어요. 새로운 학교에서의 텃밭 접수는 의외로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하지만 나를 텃밭 일을 하는 사람쯤으로 보는 시각에는 긴장되더라구요. 나는 텃밭을 하나의 수업 철학이자 기술, 무대로 생각하는 교사인데 학교 텃밭 관리를 효율적으로 돕는 인력으로 쓰려고 하니, 기분도 기분이지만 교사인 나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방해만 되더라구요.


 풀씨

현임지와 전임지 학교 텃밭을 비교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강주희


지난 학교는 아이들의 등하교의 동선에 텃밭이 위치했어요. 서울시-지역교육청 학교농장 사업으로 보도블럭을 걷어내고 자그마하게(교실의 1/3) 조성된 터였고, 누구나 한 번은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지요. 작물이 자라고 변하는 모습이 그대로 학교 구성원들에게 여실히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곳을 가꾸는 교사와 아이들에게 근사한 경험이에요. 뽐내고 싶은 공간을 뽐내지 않고도 뽐내는 경험이랄까요. 


동료 교사들은 제게 수고가 많다, 꽃이 피었더라, 토마토가 익어 가더라, 고추가 몇 개나 열렸는데 하나 땄다... 수인사 내지는 작물 소식을 나누게 되고 저와 함께 하는 우리 반 아이들은 우리가 직접 키운다 어깨가 으쓱하게 되는 경험과 ‘니네반 텃밭 짱이다’, ‘나도 토마토 먹어 봐도 돼?’ ‘이건 뭐야?’ 면서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잘난 척하며 으스대거나 뽐내는 즐거움이 필연인 위치였어요.


이번 학교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학교 건물 뒤에 위치하고 있어요. 주차장이었는데 새 건물에 지하주차장이 생겨 텃밭으로 전환한 모양이에요. (불현 듯, 당시 맥락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텃밭을 조성하기로 결정한 당대 학교장님,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80평 정도 제법 큰 부지에 오래된 스프링클러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 넓은 땅을 두 분의 주무관님께서 삽 두 자루로 경운+멀칭 작업을 하십니다. 준비된 텃밭에 희망 학년이나 학급이 식재를 하면 아이들이 주로 찾아와 물을 주며 살피지요. 거의 매일같이 나가 본 텃밭에는 아이들이 늘 한가득이었지만 교사들은 만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지난해 1년의 모습인데, 올해는 코로나 19로 아이들 대신 선생님들이 자주, 많이 보입니다. 등교 수업이 없는 날 아침, 혹은 점심시간 산책을 하면서 꼭 발걸음을 하는 선생님들이 꽤 여러 분이고요, 저와 텃밭 앞에서 작물에 대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선생님들이 조금 늘었습니다. 학교 뒤에 있는 텃밭이라 선생님들이 관심이 있어도 발걸음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여겼는데, 어쩌면 텃밭의 위치보다 삶의 여유가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학교 밭에는 30년 된 나무가 두 그루가 있어 웃거름을 꾸준히 신경 써 주어야 하고 볕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한여름 텃밭 휴식과 늦가을 낙엽이 주는 운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나무들이 밭 한가득 떨군 낙엽은 한겨울에도 작물이 싹을 틔워 주고 밭을 건강하게 해 주어 제게는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지였다는 추억이 있습니다. 그늘 한 조각 없는 지금 학교 텃밭의 쨍한 한낮에는 그 나무들이 생각납니다. 


지금의 학교 텃밭은 봄~초가을 사이에는 건물의 그늘이 제법 짧아서 작물이 잘 자랍니다. 나무 그늘이 있던 지난 학교에서는 상춧잎이 연하고 부드러웠는데 여기선 손바닥만하고 두껍습니다. 햇볕의 역할을 새삼 깨닫고 있죠. 《가이아의 정원》이란 책에서 나무가 있는 텃밭+정원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릎을 치게 된 (지난 학교의 두 나무가 자리한) 텃밭의 미기후와 생태적 순환을 섬세하게 관찰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만큼 동일 작물이 줄지어 늘어선 넓디넓은 이 텃밭이 사막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풀씨

지난 번 학교 방문 때 맛있는 허브차를 내놓았잖아요? 아주 예쁜 여러 가지 허브들이 모여 있는 텃밭도 보았구요. 이렇게 허브들을 많이 키우는 이유가 있나요? 이 허브들은 학생들과 어떤 활동으로 나누게 되나요?


강주희


허브들은 다른 작물들에 비해 상당히 직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어요. 키가 낮고 온통 초록 풀인데 향기로 먼저 우리를 매료시킵니다. 텃밭에 관심과 흥미를 이끄는 데 탁월한 작물인 것 같아요. 향기를 아는 순간부터 그 향기를 맡기 위해 텃밭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멈춰서 행복해합니다. 


또, 민트류는 꺾꽂이로 쉽게 뿌리를 내립니다. 당당한 한 포기로 독립시킬 수 있죠. 그 점 덕분에 씨앗에서 싹을 틔우는 것처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요. 매년 4월의 씨앗 나눔에 이어 5월 푸른 허브 꺾꽂이 나눔은 아이들과 저를 특별하게 연결해주는 HUB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음료(차/ 무알콜 모히또)와 열을 가하지 않는 조리(카나페, 페스토)로 바로 먹을 수 있어요. 단순한 과정이지만 만족감과 보람을 만끽할 수 있어요. 딸기나 토마토처럼 열매처럼요. 허브 활용은 텃밭 수업을 굉장히 풍성하게 만들어줘요.


지난해 홍동 교육농 농사학림서 만난 타이바질, 시나몬바질, 레몬바질은 똑같은 ‘바질’인데 서로 다른 향을 진하게 발산해서 허브의 매력에 한층 더 몰입하게 만들어 주었죠. 애플민트, 스피아민트, 페퍼민트, 로즈마리로 시작된 허브 키우기가 라벤더 2종류(잉글리쉬/ 피나타), 레몬밤, 레몬버베나, 레몬타임, 타임, 바질, 레몬바질, 시나몬바질, 타이바질, 체리세이지, 구문초와 딜, 고수까지 다양해졌어요. 이따금씩 수업과 연계하여 허브를 활용해서 비누를 만들고 방향제를 만들기도 하면서 허브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지고 있어요.


 풀씨

전임지에서는 고독한(?) 텃밭 농부였어요. 현임지 학교에서는 어떤가요? 함께할 분들이 있나요?


강주희


아직까지는 나홀로 농부인 셈인데요, 보안관 선생님 한 분이 아이들 없이 텃밭 울타리 만들고 밭 경운하는 걸 보시더니 아버지처럼 이것저것 챙겨 주시고 계셔요. 온라인 수업 준비나 등교 수업으로 며칠 바쁘게 지내고 밭에 나가 보면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스냅피(완두콩 종류)들의 지주를 묶어 놓으시거나 장맛비에 기울어진 작물들에 끈을 둘러 바로 서게 해 놓으셔요. 매 시간, 농삿일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렁각시 한 분 생겨 흥이 납니다.


지난 학교에서 말벗 삼아 주시던 선배 교사와 과학 자료실 담당 교사, 보안관님처럼 이번 학교에서도 기사님들, 여사님들까지 말벗 스펙트럼은 넓어졌어요. 올봄 처음으로 키운 탐스러운 튤립들 덕에 교감 선생님하고도 농사와 생태에 대한 연결고리가 생겼습니다.


또 코로나19로 학교 교육과정 학년 동아리와 교원학습공동체 활동을 생태로 전환하면서 동학년의 지지도 받고 있답니다. 살짝 후배인 학년부장님은 같이 풀도 매고 밑거름 주면서 열무밭을 만드는 데 함께했고, 우리 학년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 열무씨를 뿌렸죠.


학년 공통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예산을 쓰고 강사 지원을 하는 덕에 온 학년이 모두 참여했던 과거의 학년 텃밭 체험 수업, 형식적인 생태교육과정 운영(생태보단 아이들 질서관리에 치중되어 있어요)보다는 진일보되었어요. 이건 제 역량이라기보다 코로나 19로 인해 환경의 제약이 심화된 상황에서 생태에 대한 선생님들의 공감과 이해 덕분이 아닌가 해요.*어떤 공감과 이해일까요?


 풀씨

여러 종류의 씨앗을 갈무리하고 나누어 주고 있는데요. 채종하고 갈무리하기가 어떤가요? 쉽게 할 수 있나요?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을까요?


강주희


학교 텃밭 농사 3, 4년 정도 되니 기본 작물- 쌈채류, 방울토마토나 고추 등을 키우고 돌보는 것이 순조로워졌어요. 그러니 새로운 작물을 자꾸 심고 싶은 거예요.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 매년 지원해 주는 비슷한 작물에서 벗어나고도 싶었고요. 개인적인 지출을 마다 않고 모종을 사 심기도 했는데 잘 자라는 게 몇 안 되고 부실해지면 그게 그렇게 속이 상하고 아까운 거예요. 그런 걸 두 세번 반복하다 보니 자꾸만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웠어요.


제가 아주 오래 전에 단감을 먹고 뱉은 씨 세 알을 심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씨 하나가 싹을 틔우고 풀이 되어 자라다가 목질화가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놀란 적이 있거든요. 그때 생각이 떠올라서 급식서 나오는 과일 씨(그게 F1이건 말건)부터 챙기기 시작했어요. 가을 농사 끝나고 꽃을 보려고 애지중지 남겨 둔 배추와 무가 다음 해 봄에 씨앗 주머니를 매다는 것을 보고 또 한 움큼. 우리 지역 교육청에서 씨앗 나눔을 한다고 해서 거기를 쫓아가서 무조건 얻어놓고.


그렇게 시작했는데,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어디를 가면 꽃이든 작물이든 줄기가 말라비틀어졌다 싶음 씨가 있나 없나 들여다보게 되고 그러더라구요. 훔치듯 몰래 거둔 씨도 있고 여름 휴가철에 일하는 아줌마들한테 농사짓는 교사라고 애들하고 심고 싶다며 얻은 씨(대파 씨, 민들레씨)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씨앗 종류가 늘었는데, 봄이나 가을 되면 학교서 모종을 구입해 주니 잘 쓰지를 못했어요. 한가득 자산이 늘어나는 기쁨도 잠시, 여러 해 동안 씨앗을 쓰지 못하는 부담감이 오는 찰나 코로나19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올해 많은 씨앗들이 모종으로 방출되었습니다.


채종은 쉽지 않아요. 바질처럼 야물고 단단하게 씨주머니를 매달고 있는 작물도 있지만 라벤더처럼 씨주머니는 보이는데 씨앗은 진즉 탈출해버리는 작물도 있어요. 토마토나 고추, 호박, 파프리카처럼 빤히 보이는 열매도 있지만 꽃양귀비나 카모마일처럼 포자 같은 씨앗도 있어요. 씨앗주머니가 맺혔구나... 싶어서 알맞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 깜빡하고 뒤늦게 빈 주머니만 확인하기도 하고 잘 맺힌 씨들을 채종할 채비 없이 마주했다가 맨손에서 뒤죽박죽 섞여서 이게 무슨 씬지, 아직도 분간 못하는 씨앗들도 있어요.


휴지건, 종이에건, 씨앗을 털었다 싶으면 빈 요구르트병(학교 급식으로 적당한 크기의 요구르트가 나오면 잘 씻어서 말려둬요)에 담고 뚜껑없이 놔 둡니다. 채종 날짜나 식물의 이름 정도 적어놔야지 생각만 하고 애들하고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한 달 후에 이게 뭐였지? 합니다. 전문적이지 못하고 욕망만 앞세운 주먹구구식 채종이죠.


제가 채종하는 방법은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먹거리 작물일지라도 꽃까지 보는 것, 꽃이 있는 곳은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면 정원박람회나 도시농업박람회 같은 곳에 방문하는 것(무료 나눔이 쏠쏠합니다). 교육농 협동조합 회원 선생님들께 씨앗 나눔 받는 것. (씨앗 나눔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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