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텃밭은 코로나 재난 가운데 교사와 학생들의 숨통을 틔워주었습니다.
조진희 조합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육농’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 봅니다.
그럼, 보실까요?^^

▲감자를 캐는 학생들. 코로나 재난은 체육활동 등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 가운데 실과시간 함께하는 텃밭활동은 학생들 마음에 무엇을 남겨 줄까.
"텃밭이라는 존재가 이른바 국영수 주지 과목 중심의
입시 경쟁 교육에서 쉬어 가는 곳이 아닐까 해요.
풀씨
동료 교사에게 학교 텃밭을 일구기를 권한다면 어떤 이유일까요?
조진희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텃밭이 갖는 교육적 확장성에 대해서 직접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실과나 과학 교육의 좁은 차원을 넘어 하얀 감자와 자주 감자를 보고 이원수 시인의 〈감자꽃〉 시를 감상하고 채소 부침개를 만들어 먹으면서 분수를 배우고, 목화솜을 만져 보면서 공정무역과 아동노동 착취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벼를 키우면서 벼꽃 시를 노래하고 낟알을 돌로 찧고 비비면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농사를 이해할 수도 있고요.
천왕초 1~2학년은 발도르프 수업을 접목한 융합 수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작물의 이름을 한글 닿소리 홀소리 교육에 활용해요. 몇 년 전에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1학년 선생님 한 분이 ‘호박’을 심으면 안 되냐고 물으시는 거예요(당시 저는 호박을 한 번도 재배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유를 물으니 ㄱ, ㄴ, ㄷ~ 닿소리를 배울 때 작물 이름을 활용하는데 ㅎ으로 시작하는 채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학교 텃밭 텃논과 교육과정을 연결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들이 아직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시도하고 있고 곧 공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텃밭은 나 자신에게도 힐링이 됩니다. 하루하루 변하는 텃밭에서 거닐거나 일을 하고 있으면 하루 종일 컴퓨터와 서류에 갇혀 지내는 교실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어제 물을 준 작물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며 출근길이 기대가 됩니다. 그렇게 아침에 텃밭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선생님들과 작물을 매개로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조금씩 수확한 상추를 가정으로 보내면서 어린이들의 가정에도 텃밭을 배달합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5학년 텃밭 옆의 자그마한 상자 텃밭에서 상추랑 고추를 길러서 점심을 드시기 때문에 퇴비나 씨앗, 모종을 그들과도 나눕니다.
도시에서 자연과 계절에 대한 감각을 잊고 살아가기 일쑤인데 몇 해 농사를 해 보니 이 감각이 무한 샘솟습니다. 무엇보다 텃밭에서 기른 작물을 어린이들과 함께 음식을 해 먹고, 나도 집에 가서 요리를 해 먹으면서 더 건강해졌습니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비건인의 삶을 지향하는 가치관도 생기게 됩니다.
교사는 끊임없이 자연과 세계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면서 그것을 학생들과 교육적으로 교류하는 직업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 정보 패키지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서핑하는 시간의 일부만 텃밭에 주시면 어떨까요? 자연은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확으로 되돌려 줍니다. 1만 원의 씨감자가 100만 원의 기부금이 되는 경험을 네모난 교실이나 교과서는 결코 줄 수 없어요.
건강한 몸을 위해 식이요법이나 PT를 헬스 트레이너에게 도움받는 것처럼 교육농협동조합에서 선생님의 ‘슬기로운 농사 생활’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동료 교사에게 학교 텃밭을 권하지는 못하겠다면 왜 그런가요?

다른 질문들이 매우 긴 답을 써야 하는 데 비해 이 질문은 간단하군요.
나이 들면서 무릎이 아파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좀 미련하게 텃밭 생활을 한 때문이고요, 요즘에는 적은 에너지로도 잘 가꿀 수 있는 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건강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내 자신이 성과를 빨리 많이 내야 한다는 욕심으로 조급해지고 지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관리자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와 눈치를 주고, 어린이들이 똥 냄새 나는 퇴비가 옷에 묻었다고 꽥꽥거리고 물 주다가 물장난으로 서로 싸우고…. 여러 가지 상황이 텃밭에서는 스펙터클하고도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집니다.
한 선생님이 상추를 심고서 잘 자라라고 퇴비를 바로 주었는데 며칠 안 지나 상추가 타들어 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퇴비 주고는 2주 후에 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농사 기술은 퇴비 비닐봉지에도 큰 글씨로 ‘주의할 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냥 귀동냥해서 따라 하는 농사라 이런 실수를 하게 되는데 한 번 낙담한 것은 다시는 잊지 않게 되기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른 공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작물 심어 놓고 봄여름 지나 보시고, 또 작물 심고 가을 겨울 나 보는 1년의 시간만 우선 경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학교나 학급의 운영이 1년의 사이클로 돌아가듯이 농사도 같습니다.
그리고 잘되었다면 계속해 보시고 안 되었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교육농 구성원들과 상의해 주세요. 저는 이 좋은 농사를 이제 내 인생에서 몇 번밖에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농사를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더 많이 경험해서 퇴임 후에 기술적인 면이나 철학적인 면에서 더 자유롭고 풍성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교 텃밭을 일구는 데 주의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매뉴얼이나 기술에만 중심을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검색하여 잘 키우고 수확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자라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작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결과물을 요리 및 생활과 연계하는 것에 중점을 두셨으면 합니다.
첫해에는 작물을 가까이하면서 애정을 가지고 익숙해지는 것에 주안점을 두시고 두 해 세 해 하시면서 교육과 연계를 슬슬 고민하시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농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연수 자료나 교육공동체 벗의 단행본 책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선생님이 채소와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텃밭을 하면서 채소나 작물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는데요, 근래에 이런 경험을 했어요.
요리 재료로 산 파프리카를 매번 씻으면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곤 했는데요, 지난 2월에는 파프리카를 씻다가 ‘어, 씨가 제법 많이 나오네. 잘 말려서 한 번 심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씨를 잘 말려서 화분에 심어 교실에 두었더니 2주 정도 지나서 싹이 나더라고요(아마 어린이들이 있었으면 이 모든 과정을 관찰했을 텐데요…). 모종을 텃밭에 옮겨 심었는데 그게 글쎄 너무 잘 자라는 거예요.
몇 년 동안 교육농을 해도 집에서 먹는 채소에서 채종하여 모종을 만드는 것에 무심했는데 너무 재미나고 신기했어요. 지난해 남겨 둔 완두콩 10개도 잘 말려서 올해 심었는데 다른 작물이 자라기도 전에 가장 먼저 텃밭에 싱그러운 초록을 안겨 준 귀염둥이가 되었죠.
요즘에는 비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래서 가볍게 읽은 《아무튼, 비건》이라는 채식 입문서가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어요. 해가 갈수록 텃밭이 주는 삶의 변화는 심오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천천히 비건인의 삶으로 옮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더라고요.
어린이들도 지식보다 작물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이나 기술보다도 어린이들이 작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잘 보살피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하는 데에는 요리만 한 것이 없습니다. 상추 삼겹살 파티도 하시고 비빔밥도 해 먹고 야채전도 만들고 나누면서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작물과 요리를 연계하도록 도움을 주세요!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인용된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요리는 문화와 자연의 주요한 매개자”라고 했어요.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저마다 다른 요리가 창작됩니다. 요리를 통해 자연이 문화로 변형되며 요리라는 창작 활동을 통해 어린이들은 문화 예술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텃밭을 하실 때에는 요리와 접목 가능한 실과 교과가 있는 5~6학년을 맡으셔서 다양한 활동과 실험을 해 보셨으면 해요.

학교 텃밭을 일구는 데 도움받을 곳(사람, 단체, 책, 영상) 추천 부탁드립니다.

음, 무엇보다 저랑 친해지시면 되는데요~(하하하) 저뿐만 아니라 10여 년의 교육농 노하우를 가진 교사들이 교육농협동조합에는 항상 대기 중입니다. 무엇보다 교육농 밴드에 가입하셔서 구경도 하시고 소식도 나누면서 시작하시면 좋겠네요. 눈팅만 하셔도 눈 호강할 수 있는 SNS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학교와 지역의 텃밭과 텃논을 매개로 하여 만난 초중고 교사, 학부모, 시민들이 모여서 만들었고요, 매일매일 어떤 소식들이 올라오나 글과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텃밭인으로서 큰 즐거움입니다.
오늘(2020년 6월 14일 기준) 보니 벌써 91명이 되었네요. 선생님의 가입으로 100명을 돌파하기를 기대해 봅니다(이 초대 링크 주소를 클릭하여 가입하세요).
https://band.us/n/ada339A7j2tbp
교육농협동조합은 학교 텃밭 텃논을 공부하는 교사와 활동가들이 모여서 만든 교육농 연구와 실천 그리고 나눔의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입니다. 정식 협동조합은 아니라서 활동에 크게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고요, 다만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월 1회 1만 원의 회비를 내고 있습니다. 이 돈은 교육농협동조합의 총회를 비롯한 다양한 만남과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되고 있고요, 매년 총회에서 예산과 결산을 공개하고 인준받고 있습니다.
책 소개는 너무 많으면 부담이 되실 터이니, 세 권 정도 소개해 드릴게요.
먼저 《교육농 - 우리 학교에 논과 밭이 있어요》(교육농협동조합 엮음, 교육공동체 벗)을 제일 먼저 보시고 텃밭에 대한 상상력과 정보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다음으로는 《식물의 힘 -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스티븐 리츠 저, 여문책)으로, 테드 강연으로도 유명한 미국 고등학교 선생님이 식물 재배를 통해서 학생들의 진로와 삶을 바꾼 이야기를 통해 교육농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세 번째는 앞에서도 소개드렸던 《아무튼, 비건》(김한민 저, 위고)인데, 불편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육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건드려 주면서도 실천 가능한 채식 생활을 안내하고 있어요.

끝으로 현재 코로나 재난으로 학교 텃밭에 어떤 영향(변화)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앞으로도 코로나 상황이 이어진다면 학교 텃밭 일구기를 어떠한 방향으로 바꾸어야 할까요?

이제야 마지막 질문에 이르렀네요(휴~ 힘든 원고 작업이었던만큼 여러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코로나 재난은 위기이자 기회가 되었어요.
위기인 측면은 어린이들과 함께 활동해야 할 텃밭 활동을 교사들이 이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어린이들은 꾸러미로 상추 모종을 집에서 가꾸고 수확했으며, 씨앗 나누기 등의 활동으로 만족해야 했어요. 지금은 1주일에 하루라도 나오기 때문에 이어 간 보람을 크게 느끼고 있어요.
천왕초는 여러 선생님들이 텃밭 활동의 교육적 가치와 의미에 공감을 해 주어서 새로 오신 선생님들도 함께해 주셨어요. 특히 젊은 선생님들은 하나하나 물어 가며 따라 하고 또 배우면서 봄이라는 계절을 지나왔는데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보람을 느껴요.
그러나 작물이 자라고 변화하는 모습을 어린이들이 온라인 동영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가 온라인 콘텐츠로 만들었어요. 매주 1편의 학교와 마을 텃밭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렸고요, 작물 가꾸기 부분에서는 감자, 토마토, 목화 3편의 작물 역사 이야기 동영상을 만들었어요.(필요하신 분은 이메일을 알려 주시면 보내드릴게요!)
이렇게나마 매주 텃밭 소식과 작물 이야기를 어린이들과 한 덕분인지 등교한 어린이들이 텃밭 활동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고 또 관심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어린이들이 학교에 나온 첫날 작물을 소개하고 이름표를 만들고 텃밭을 배경으로 등교 기념 촬영도 했답니다. 싱그러운 초록 식물들을 배경으로 찍은 마스크 쓴 사진은 아주 오래 기억될 거 같아요!
작물은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에너지가 결합되고 응축된 결과물이에요. 그 결과물에 요리라는 문화적인 활동을 가미하면 어린이 청소년들의 삶의 한 부분인 식생활과 바로 연결이 되지요.
코로나 상황에서도 자연의 힘에 기대어서 씨앗과 모종을 심고 가꾸면 교실 안에서만 활동하지 않고 ‘텃밭’이라는, 코로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특별한 교실이 생기는 거라고 봐요.
운동장, 강당, 과학실, 컴퓨터실, 미술실 등 모든 특별실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교육청이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텃밭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고 생각해요.
텃밭에서 나는 작물 특히 허브를 수확하여 물꽂이 하여 교실과 복도 곳곳에 놓아 두고 어린이들이 보고 냄새 맡을 수 있게 해 두었어요. 비록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조금은 향기가 나지 않을까요?
“마스크 쓰고 있기 힘들거나 숨 쉬기 힘들면 복도에 잠깐 나가서 마스크 벗고 쉬고 오세요”라고 수시로 말하는데요, 텃밭이라는 존재가 이른바 국영수 주지 과목 중심의 입시 경쟁 교육에서 쉬어 가는 곳이 아닐까 해요.
온라인 수업으로 국영수 수업의 격차가 너무 커진다는 우려가 많아 상당수의 학교에서 이 과목들 중심으로 등교 수업을 하게 되는데, 몇 분 정도라도 텃밭에 나가서 작물을 관찰하고 물을 주는 활동은 어린이들에게 자유와 책임 그리고 돌봄의 가치를 몸으로 접할 수 있는 오히려 더 가치 있는 활동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처음 텃밭을 하는 선생님들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텃밭을 잘 가꾸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교사들은 어떻게 어린이 청소년들과 텃밭과 작물을 교육활동과 그들의 삶과 연결할지를 더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교육농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면서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학교 텃밭은 코로나 재난 가운데 교사와 학생들의 숨통을 틔워주었습니다.
조진희 조합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육농’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 봅니다.
그럼, 보실까요?^^
▲감자를 캐는 학생들. 코로나 재난은 체육활동 등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 가운데 실과시간 함께하는 텃밭활동은 학생들 마음에 무엇을 남겨 줄까.
"텃밭이라는 존재가 이른바 국영수 주지 과목 중심의
입시 경쟁 교육에서 쉬어 가는 곳이 아닐까 해요.
동료 교사에게 학교 텃밭을 일구기를 권한다면 어떤 이유일까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텃밭이 갖는 교육적 확장성에 대해서 직접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실과나 과학 교육의 좁은 차원을 넘어 하얀 감자와 자주 감자를 보고 이원수 시인의 〈감자꽃〉 시를 감상하고 채소 부침개를 만들어 먹으면서 분수를 배우고, 목화솜을 만져 보면서 공정무역과 아동노동 착취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벼를 키우면서 벼꽃 시를 노래하고 낟알을 돌로 찧고 비비면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농사를 이해할 수도 있고요.
천왕초 1~2학년은 발도르프 수업을 접목한 융합 수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작물의 이름을 한글 닿소리 홀소리 교육에 활용해요. 몇 년 전에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1학년 선생님 한 분이 ‘호박’을 심으면 안 되냐고 물으시는 거예요(당시 저는 호박을 한 번도 재배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유를 물으니 ㄱ, ㄴ, ㄷ~ 닿소리를 배울 때 작물 이름을 활용하는데 ㅎ으로 시작하는 채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학교 텃밭 텃논과 교육과정을 연결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들이 아직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있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시도하고 있고 곧 공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텃밭은 나 자신에게도 힐링이 됩니다. 하루하루 변하는 텃밭에서 거닐거나 일을 하고 있으면 하루 종일 컴퓨터와 서류에 갇혀 지내는 교실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어제 물을 준 작물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며 출근길이 기대가 됩니다. 그렇게 아침에 텃밭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선생님들과 작물을 매개로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조금씩 수확한 상추를 가정으로 보내면서 어린이들의 가정에도 텃밭을 배달합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5학년 텃밭 옆의 자그마한 상자 텃밭에서 상추랑 고추를 길러서 점심을 드시기 때문에 퇴비나 씨앗, 모종을 그들과도 나눕니다.
도시에서 자연과 계절에 대한 감각을 잊고 살아가기 일쑤인데 몇 해 농사를 해 보니 이 감각이 무한 샘솟습니다. 무엇보다 텃밭에서 기른 작물을 어린이들과 함께 음식을 해 먹고, 나도 집에 가서 요리를 해 먹으면서 더 건강해졌습니다.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비건인의 삶을 지향하는 가치관도 생기게 됩니다.
교사는 끊임없이 자연과 세계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면서 그것을 학생들과 교육적으로 교류하는 직업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 정보 패키지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서핑하는 시간의 일부만 텃밭에 주시면 어떨까요? 자연은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확으로 되돌려 줍니다. 1만 원의 씨감자가 100만 원의 기부금이 되는 경험을 네모난 교실이나 교과서는 결코 줄 수 없어요.
건강한 몸을 위해 식이요법이나 PT를 헬스 트레이너에게 도움받는 것처럼 교육농협동조합에서 선생님의 ‘슬기로운 농사 생활’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동료 교사에게 학교 텃밭을 권하지는 못하겠다면 왜 그런가요?
다른 질문들이 매우 긴 답을 써야 하는 데 비해 이 질문은 간단하군요.
나이 들면서 무릎이 아파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좀 미련하게 텃밭 생활을 한 때문이고요, 요즘에는 적은 에너지로도 잘 가꿀 수 있는 도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건강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내 자신이 성과를 빨리 많이 내야 한다는 욕심으로 조급해지고 지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관리자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와 눈치를 주고, 어린이들이 똥 냄새 나는 퇴비가 옷에 묻었다고 꽥꽥거리고 물 주다가 물장난으로 서로 싸우고…. 여러 가지 상황이 텃밭에서는 스펙터클하고도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집니다.
한 선생님이 상추를 심고서 잘 자라라고 퇴비를 바로 주었는데 며칠 안 지나 상추가 타들어 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퇴비 주고는 2주 후에 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농사 기술은 퇴비 비닐봉지에도 큰 글씨로 ‘주의할 점’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냥 귀동냥해서 따라 하는 농사라 이런 실수를 하게 되는데 한 번 낙담한 것은 다시는 잊지 않게 되기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른 공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작물 심어 놓고 봄여름 지나 보시고, 또 작물 심고 가을 겨울 나 보는 1년의 시간만 우선 경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학교나 학급의 운영이 1년의 사이클로 돌아가듯이 농사도 같습니다.
그리고 잘되었다면 계속해 보시고 안 되었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교육농 구성원들과 상의해 주세요. 저는 이 좋은 농사를 이제 내 인생에서 몇 번밖에 못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농사를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더 많이 경험해서 퇴임 후에 기술적인 면이나 철학적인 면에서 더 자유롭고 풍성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교 텃밭을 일구는 데 주의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매뉴얼이나 기술에만 중심을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가지 정보를 검색하여 잘 키우고 수확하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자라는 것을 관찰하면서 그 작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결과물을 요리 및 생활과 연계하는 것에 중점을 두셨으면 합니다.
첫해에는 작물을 가까이하면서 애정을 가지고 익숙해지는 것에 주안점을 두시고 두 해 세 해 하시면서 교육과 연계를 슬슬 고민하시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농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연수 자료나 교육공동체 벗의 단행본 책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선생님이 채소와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텃밭을 하면서 채소나 작물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는데요, 근래에 이런 경험을 했어요.
요리 재료로 산 파프리카를 매번 씻으면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곤 했는데요, 지난 2월에는 파프리카를 씻다가 ‘어, 씨가 제법 많이 나오네. 잘 말려서 한 번 심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씨를 잘 말려서 화분에 심어 교실에 두었더니 2주 정도 지나서 싹이 나더라고요(아마 어린이들이 있었으면 이 모든 과정을 관찰했을 텐데요…). 모종을 텃밭에 옮겨 심었는데 그게 글쎄 너무 잘 자라는 거예요.
몇 년 동안 교육농을 해도 집에서 먹는 채소에서 채종하여 모종을 만드는 것에 무심했는데 너무 재미나고 신기했어요. 지난해 남겨 둔 완두콩 10개도 잘 말려서 올해 심었는데 다른 작물이 자라기도 전에 가장 먼저 텃밭에 싱그러운 초록을 안겨 준 귀염둥이가 되었죠.
요즘에는 비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래서 가볍게 읽은 《아무튼, 비건》이라는 채식 입문서가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어요. 해가 갈수록 텃밭이 주는 삶의 변화는 심오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천천히 비건인의 삶으로 옮아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더라고요.
어린이들도 지식보다 작물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이나 기술보다도 어린이들이 작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잘 보살피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하는 데에는 요리만 한 것이 없습니다. 상추 삼겹살 파티도 하시고 비빔밥도 해 먹고 야채전도 만들고 나누면서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작물과 요리를 연계하도록 도움을 주세요!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인용된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요리는 문화와 자연의 주요한 매개자”라고 했어요.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저마다 다른 요리가 창작됩니다. 요리를 통해 자연이 문화로 변형되며 요리라는 창작 활동을 통해 어린이들은 문화 예술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텃밭을 하실 때에는 요리와 접목 가능한 실과 교과가 있는 5~6학년을 맡으셔서 다양한 활동과 실험을 해 보셨으면 해요.
학교 텃밭을 일구는 데 도움받을 곳(사람, 단체, 책, 영상) 추천 부탁드립니다.
음, 무엇보다 저랑 친해지시면 되는데요~(하하하) 저뿐만 아니라 10여 년의 교육농 노하우를 가진 교사들이 교육농협동조합에는 항상 대기 중입니다. 무엇보다 교육농 밴드에 가입하셔서 구경도 하시고 소식도 나누면서 시작하시면 좋겠네요. 눈팅만 하셔도 눈 호강할 수 있는 SNS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학교와 지역의 텃밭과 텃논을 매개로 하여 만난 초중고 교사, 학부모, 시민들이 모여서 만들었고요, 매일매일 어떤 소식들이 올라오나 글과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텃밭인으로서 큰 즐거움입니다.
오늘(2020년 6월 14일 기준) 보니 벌써 91명이 되었네요. 선생님의 가입으로 100명을 돌파하기를 기대해 봅니다(이 초대 링크 주소를 클릭하여 가입하세요).
https://band.us/n/ada339A7j2tbp
교육농협동조합은 학교 텃밭 텃논을 공부하는 교사와 활동가들이 모여서 만든 교육농 연구와 실천 그리고 나눔의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입니다. 정식 협동조합은 아니라서 활동에 크게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고요, 다만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 월 1회 1만 원의 회비를 내고 있습니다. 이 돈은 교육농협동조합의 총회를 비롯한 다양한 만남과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되고 있고요, 매년 총회에서 예산과 결산을 공개하고 인준받고 있습니다.
책 소개는 너무 많으면 부담이 되실 터이니, 세 권 정도 소개해 드릴게요.
먼저 《교육농 - 우리 학교에 논과 밭이 있어요》(교육농협동조합 엮음, 교육공동체 벗)을 제일 먼저 보시고 텃밭에 대한 상상력과 정보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다음으로는 《식물의 힘 -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스티븐 리츠 저, 여문책)으로, 테드 강연으로도 유명한 미국 고등학교 선생님이 식물 재배를 통해서 학생들의 진로와 삶을 바꾼 이야기를 통해 교육농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세 번째는 앞에서도 소개드렸던 《아무튼, 비건》(김한민 저, 위고)인데, 불편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육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건드려 주면서도 실천 가능한 채식 생활을 안내하고 있어요.
끝으로 현재 코로나 재난으로 학교 텃밭에 어떤 영향(변화)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앞으로도 코로나 상황이 이어진다면 학교 텃밭 일구기를 어떠한 방향으로 바꾸어야 할까요?
이제야 마지막 질문에 이르렀네요(휴~ 힘든 원고 작업이었던만큼 여러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코로나 재난은 위기이자 기회가 되었어요.
위기인 측면은 어린이들과 함께 활동해야 할 텃밭 활동을 교사들이 이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어린이들은 꾸러미로 상추 모종을 집에서 가꾸고 수확했으며, 씨앗 나누기 등의 활동으로 만족해야 했어요. 지금은 1주일에 하루라도 나오기 때문에 이어 간 보람을 크게 느끼고 있어요.
천왕초는 여러 선생님들이 텃밭 활동의 교육적 가치와 의미에 공감을 해 주어서 새로 오신 선생님들도 함께해 주셨어요. 특히 젊은 선생님들은 하나하나 물어 가며 따라 하고 또 배우면서 봄이라는 계절을 지나왔는데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보람을 느껴요.
그러나 작물이 자라고 변화하는 모습을 어린이들이 온라인 동영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가 온라인 콘텐츠로 만들었어요. 매주 1편의 학교와 마을 텃밭 모습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렸고요, 작물 가꾸기 부분에서는 감자, 토마토, 목화 3편의 작물 역사 이야기 동영상을 만들었어요.(필요하신 분은 이메일을 알려 주시면 보내드릴게요!)
이렇게나마 매주 텃밭 소식과 작물 이야기를 어린이들과 한 덕분인지 등교한 어린이들이 텃밭 활동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고 또 관심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어린이들이 학교에 나온 첫날 작물을 소개하고 이름표를 만들고 텃밭을 배경으로 등교 기념 촬영도 했답니다. 싱그러운 초록 식물들을 배경으로 찍은 마스크 쓴 사진은 아주 오래 기억될 거 같아요!
작물은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에너지가 결합되고 응축된 결과물이에요. 그 결과물에 요리라는 문화적인 활동을 가미하면 어린이 청소년들의 삶의 한 부분인 식생활과 바로 연결이 되지요.
코로나 상황에서도 자연의 힘에 기대어서 씨앗과 모종을 심고 가꾸면 교실 안에서만 활동하지 않고 ‘텃밭’이라는, 코로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특별한 교실이 생기는 거라고 봐요.
운동장, 강당, 과학실, 컴퓨터실, 미술실 등 모든 특별실을 공유하지 못하도록 교육청이 지침을 내렸기 때문에 텃밭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커졌다고 생각해요.
텃밭에서 나는 작물 특히 허브를 수확하여 물꽂이 하여 교실과 복도 곳곳에 놓아 두고 어린이들이 보고 냄새 맡을 수 있게 해 두었어요. 비록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조금은 향기가 나지 않을까요?
“마스크 쓰고 있기 힘들거나 숨 쉬기 힘들면 복도에 잠깐 나가서 마스크 벗고 쉬고 오세요”라고 수시로 말하는데요, 텃밭이라는 존재가 이른바 국영수 주지 과목 중심의 입시 경쟁 교육에서 쉬어 가는 곳이 아닐까 해요.
온라인 수업으로 국영수 수업의 격차가 너무 커진다는 우려가 많아 상당수의 학교에서 이 과목들 중심으로 등교 수업을 하게 되는데, 몇 분 정도라도 텃밭에 나가서 작물을 관찰하고 물을 주는 활동은 어린이들에게 자유와 책임 그리고 돌봄의 가치를 몸으로 접할 수 있는 오히려 더 가치 있는 활동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처음 텃밭을 하는 선생님들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텃밭을 잘 가꾸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교사들은 어떻게 어린이 청소년들과 텃밭과 작물을 교육활동과 그들의 삶과 연결할지를 더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교육농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면서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