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오늘의 교육》 편집 기조 및 총회 자료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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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오늘의 교육》 편집 기조





절멸 앞에 선 교육

 

지금 인류는 문명을 붕괴시킬 수 있는 세 가지 절멸의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그 세 개의 폭탄은 기후, 핵(전쟁), 금융이다. 이 세 가지 위기는 역사상 최고조를 향해 치닫고 있으며, 현재 각 분야 전문가들은 위기가 언제 어디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임계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예견한다. 팬데믹도, 우크라이나 전쟁도 서막일 뿐이다. 이 위기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축적과 팽창이라는 자본주의 역사 발전의 과정에서 자라 나온 것이다. 현재의 위기 국면이 이전 역사에서 겪었던 위기들과 질적으로 다른 것은 문명의 붕괴와 인류의 절멸, 그리고 지구생태계에도 복구 불가능한 거대한 충격을 가져올 만큼의 전대미문의 위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운동의 담론과 실천은 여전히 각 부문과 영역별 의제와 정책에 매몰되어 전체 방향을 놓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운동의 담론과 실천도 교실과 학교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범위를 확장한다고 해도 전통적인 교육 담론장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의 시간은 학사 일정에 따라 정해진 진도를 나가고, 시험을 보고, 입시를 준비하고, 각종 역량을 개발하고, 취업과 진로교육에 매진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다는 듯, 학교의 시간은 교육과정을 절대적으로 엄수한다. ‘45페이지를 펴라’, ‘중간고사를 준비해라’, ‘희망 진로와 학과를 적어 내라’ - 이런 분절된 시간의 연속 안에서 교육은 우리 앞에 닥친 절멸의 시간을 보여 주지 않는다. 절멸 앞에서도 교육은 여전히 ‘교실 밖으로 나가지 마라’, ‘가만히 있으라’를 가르친다. 교사들은 주식과 부동산을 이야기하며 각자도생의 시간을 살아가기 급급하고, 교육 행정과 정책은 작금의 위기를 초래한 경쟁과 성장, 능력주의 및 불평등을 더욱 심화하는 정책들을 쏟아 내며 절멸의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

 

 

거대한 반동과 반격의 시대

 

이와 함께 또한 우리는 역사적으로 거대한 반동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교육에 닥친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경쟁주의 교육을 설계하고 추진했던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귀환은 자신이 시작했던 것을 완성할 자가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이어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공교육을 시장과 자본으로 넘기는 교육 정책의 주요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교육 정책의 이행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민영화(사유화)와 자유화(시장화)를 추진하기 위한 조건은 진보교육운동과 사회운동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던 이명박 정권 당시보다 더 나은 상황이다. 이것은 단지 극우 보수 정권의 집권이라는 차원에서 볼 문제만은 아니다.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더라도 반동의 세기는 계속될 것이다. 현재의 ‘반동’은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공격하면서 사회의 폐허 위에 시장의 지배를 수립하고자 한 신자유주의적 백래시로부터 시작된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80년대부터 본격화된 서구 신자유주의 반동이 대처,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권과 결탁한 반동기였다면, 9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세계화와 금융화를 기반으로 2000년대부터 본격화한 두 번째 신자유주의 반동기는 진보를 표방해 온 자유주의 정치 세력이 주도하였다.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된 첫 번째 신자유주의 반동이 사민주의와 복지 국가에 대한 전후 30년간의 합의 체제를 무너뜨렸다면, 두 번째 반동기는 서구에서 발명된 신자유주의 기술을 전 세계로 파급시키며 각국의 혁명을 좌초시키고 사회 개혁을 향한 발걸음을 저지시켰다. 한국에서는 이 두 번째 역사의 반동기에 신자유주의 지배 체제가 수립되었고, 87년 민주화 운동이 만들어 낸 민주주의적 합의를 기술적으로 무력화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편으로는 IMF 쇼크로 인해, 다른 한편으로는 반독재 자유주의 세력이 진보를 참칭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하였기 때문에, 자유주의 정치의 노동 계급에 대한 배신과 전 세계적으로 쇄도하고 있던 이 자유주의 반동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군부 집권기 ‘독재 대 반독재’ 전선은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 ‘자본 대 반자본’ 전선으로 제대로 재구축되지 못한 채 진보 정치 사회운동의 전선은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라는 왜곡된 구도에 갇혀 버렸고, 이 왜곡된 전선과 구도 속에서 87년 이후 한국 사회 변혁 운동은 질곡에 빠지고 말았다. 그 결과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기후 위기, 전쟁 위기, 식량 위기의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대한 공격은 날로 거세지고 있는 반면 그것을 저지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주체와 역량은 그 어느 때보다 축소되어 있는 상태다.

 

 

저항의 교육학으로 해방의 길을

 

하지만 거대한 반동의 시기는 또한 거대한 민중의 반격을 불러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혁명과 반혁명은 늘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다. 200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 공세가 치솟을 때 전 세계적으로 저항의 불꽃도 활활 타올랐다. 자본주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정반대의 실천이 자본의 반동과 민중의 반격이란 형태로 동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금도 바로 그런 시기다. 이와 같은 시기에, ‘교육 불가능성’은 교육의 내부적 붕괴로 인한 불가능성과 외부적 붕괴로 인한 불가능성이라는 이중의 불가능성에 봉착해 있다. 그러나 이 불가능성은 역설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다. 독재 교육을 받고서도 민주주의를 염원하며 반독재 투쟁의 주체로 자라난 이들이 있듯이, 자본주의 속에서 태어나고 교육받고 자랐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이들, 지난 30년간 인간성을 철저히 파괴한 신자유주의의 포화를 맞고서도, 그렇게 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불가능성 속에서 그런 존재가 태어나고 있다는 것, 그것이 교육 불가능의 역설적 희망이다.

 

사유와 실천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 거대한 스케일의 위기에 봉착할 때 우리는 당혹감과 무력감에 빠진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어떤 시대이며 어떤 세계인지에 대한 정세 판단과 인식이 없이는, 개별 정책에 대한 개별 대응은 방향을 상실한 채 국지적이고 방법론적인 대응과 대안 제시로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난 몇 년간 《오늘의 교육》은 ‘근본과 총체’를 잃지 않는 교육 담론을 목표로 삼아 왔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교육 혁명의 담론으로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은 우리가 겪고 있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 만큼이나 거대한 기획이어야 한다. 큰 틀의 방향성이 내용적이고 실천적인 구체성을 가지려면 이제는 보다 근본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정치적 교육 실천을 모색해야 한다. 거대한 것이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미시적 사건들을 역사적 과정들과 함께 연결하고, 변방으로부터 중심을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오늘의 교육》은 2022년 ‘자본주의 교육 비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항 담론으로서 ‘반자본주의 교육’을 더욱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다. 교육의 위기를 넘어선 문명적 생태적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교육을 통한 해방의 길’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과 물음을 부단히 던지며, 현재의 세계를 해석하는 것뿐만 아니라 변혁할 수 있는 ‘해방의 교육학’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 편집위원장 채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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