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10월호(통권 88호)


청소년 자살, 사회적 타살


《오늘의 교육》 88호 특집은 ‘청소년 자살’의 원인인 한국 사회와 상담과 치료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과 제도의 문제를 짚는다. 청소년 자살은 결코 갑작스럽거나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쌓여 온 구조적 압력의 결과이며,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불가피한 귀결에 가깝다. 따라서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실패로 보아야 한다.

후속/기획에서는 학교 민주주의를 위한 구성원들의 제언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의 현실과 정주 대책을 다룬다.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김광백

 

오늘의 교육을 열며

우리는 어떤 청소년을 마주하고 있는가? 또는 마주하고 싶은가? | 이민정

 

특집│소년 자살, 사회적 타살

청소년 자살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 이민아

청소년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 | 발랑(신선웅)

- 교육·사회복지 현장에서의 경험을 반영하여

있지만 없는 죽음,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 소라

개인화된 책임, 시장화된 해법 | 문호진

-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의 의료화

 

후속│‘민주주의 흉내’를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로

학교 민주주의는 학부모에게도 작동하는가 | 이윤경

‘너희가 만든 규칙’이라는 말의 함정 | 최유경

- ‘대안’을 넘어 ‘민주주의’의 학교로

통합교육과 민주주의, 서로 돕자! | 정예현

학교 자치와 느린 민주주의 | 정용주

- 여백·숙의·공동 실천으로 다시 짓는 학교 민주주의

 

기획│존재를 부정당한 아이들,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

태어난 순간부터 차별받는 아이들 | 김진

- 미등록 이주 아동의 인권 : 보편적 출생등록과 이주구금 문제를 중심으로

돌봄과 교육은 ‘운’과 ‘재량’의 영역이 아니다 | 강다영

- 보육과 교육의 사각지대,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

미등록에서 등록으로, 등록에서 정주로 | 김사강

-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을 위한 체류 자격 부여 정책과 개선 방안

 

모든 것 / 전 생애 | 김영춘

백호의 말 / 이 시대의 댓빵을 기다리며 | 나종입

 

기고

외국에선 모두 청소년 스마트폰 금지한다는 오해 | 새시비비

- 스마트폰·소셜 미디어 규제, 해외 사례들은 금지 일색이 아니다

  

리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김지용

- 《멈추지 못하는 학교》

‘특수에서 보편으로’ 가는 길 위에서 특수교육의 자리를 묻다 | 양여경

- 《특수에서 보편으로》,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희망 없는 시대, 교육의 응답 | 윤양수

- 《민주주의 위기 시대, 교육의 응답》

 

오늘 읽기 | 공현

세 줄 새 책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책 | 조현민




책 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느슨하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유연성,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 교육 경쟁에 들어가는 시기를 가능한 한 늦추고 과도한 경쟁과 성취 중심의 환경을 개선해야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 청소년에게 숨 쉴 만한 여유를 주는 사회, 자율성을 주어 자신의 생활과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선행되어야 좌절 후에도 다시 희망을 생각하고, 높은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이 숨 쉴 수 있고 적절한 수준의 자율성을 가질 수 있는 환경,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무한 경쟁 속에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청소년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근접 원인뿐 아니라 근본 원인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개입이 간절하다.

­- 본문 32~34쪽, 이민아, 〈청소년 자살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자칫 결석을 반항이나 게으름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날 어린이·청소년의 결석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생활이 무너졌고, 사회적 관계망을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요즘 등교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 대다수는 극심한 불안과 우울, 가족 갈등, 또래 관계의 단절, 학업 실패, 학교폭력의 경험 등 복합적 요인을 갖고 있다. 이 상황들이 어린이·청소년을 학교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결석은 곧 그 모든 고통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균열과 같다.

­- 본문 36쪽, 발랑(신선웅), 〈청소년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자해 문제에 대처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통계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는 단 한 건도 진행된 적이 없다. 기초적인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띵동을 비롯한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민간의 영역에서 묵묵히 보고서를 낼 뿐이다.

-­ 본문 52~53쪽, 소라, 〈있지만 없는 죽음,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이러한 프레임은 곧 학생 자살 사건을 둘러싼 행정 언어에도 동일하게 반영되었다. 지난 7월, 한 입시 학원 건물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 직후 정근식 교육감은 게시한 페이스북 글에서 “이번 참극은 과열 경쟁과 일부 학원의 마케팅이 부추긴 일”이라고만 규정하고, 스스로의 책임으로 귀속될 여지가 있는 공교육 내의 문제에 대한 언급은 일절 피했다. 문제의 원인을 철저히 외부에만 둔 채, 그의 글이 제시하는 대응의 방식은 “합동 점검”, “학원 연수 강화”, “입법 촉구” 등 실행 가능한 정무적 리스트로만 구성되었다. 이는 실제 제도 설계보다는 정치적 대응을 위한 브랜딩형 발화에 가까웠다. 구조적 문제를 의료화된 언어로 포장한 후, 해결책은 개별 주체(학원, 부모)의 ‘연수’와 ‘관리’로 환원시키는 방식이었다.

-­ 본문 66쪽, 문호진, 〈개인화된 책임, 시장화된 해법〉

 

학부모 참여가 형식에 그치는 이유는 교육계에 만연한 폐쇄적·수직적 학교 문화, 위계와 차별, 학부모에 대한 불신, 행정 편의주의, 여전히 학부모 활동을 자기 자녀만을 위한 ‘치맛바람’으로 보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적 인식 등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학부모를 불편해하고 피하고 싶어 하던 교사들에게 서이초 사건은 도화선이 되었다. 그 후 2년 동안 학교에는 학부모를 전담하는 민원 대응팀이 생겼고, 예약 없이는 학교를 방문할 수 없게 되었으며, 수업 공개와 교원평가, 체험학습도 교사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 되었다. 학부모가 뽑은 교육감이 학부모를 고발하는 제도가 생겼고, 급기야 전북 전주의 한 학부모를 대응하는 일이 교육계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 모든 교원단체가 총집결해 단결 투쟁을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 본문 79~80쪽, 이윤경, 〈학교 민주주의는 학부모에게도 작동하는가〉

 

학교는 학생들이 전자기기나 일반 음식 규제에 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라치면 ‘학교의 가치에 동의하는 서약서를 쓰고 들어오지 않았느냐’, ‘대안적 가치에 반대하는 거냐’는 요지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을 도리어 문제화해 왔다. 게다가 앞서도 말했듯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교사들이 규칙에 대해 가장 많이 한 말은 ‘너희가 만든 규칙이니 너희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규칙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결국 규칙이 생기고 유지되는 구조적 배경은 지운 채 표면적 책임만을 묻는 방식이기도 했다. 규제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과정에서 개입되는 권력관계는 묵인한 채, 학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가족’회의에서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은 민주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규제이므로 ‘너희가 만들었다’며 규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얼마나 허구적인가? 이러한 논리는 학교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질서가 되어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의 규제에 동의하고, 더 나아가 주장하게 만들었다.

-­ 본문 89~90쪽, 최유경, 〈‘너희가 만든 규칙’이라는 말의 함정〉

 

침해받는 학습권은 뭘까? 아마 교과 지식 습득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일 테다. 예를 들어 보자. 오늘 수학 시간에 분모가 다른 분수의 덧셈에 대해 배워야 하는데, 친구들의 웅성거림이 ‘소음 자극’이 되어 괴로움을 표현하는 학생이 있다. 교사가 내용 설명을 멈추고 그 학생의 자기표현에 귀 기울이고, 소통을 시도하느라 수업 시간이 흘러간다. 이런 순간, 학생들은 자기들과 다른 자극 수용과 표현 방법을 가진 친구와 어떻게 소통하며 이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지, 교사를 보면서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순간의 ‘배움’은 ‘침해당하는 학습권’과 다르다고, 덜 가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배움이야말로 우리가 ‘학교’라는 제도에서 기대하는 배움이 아니었을까?

-­ 본문 97쪽, 정예현, 〈통합교육과 민주주의, 서로 돕자!〉

 

내가 가장 염려하는 학교 민주주의의 걸림돌은 갈등의 제거 본능이다. 갈등을 관리의 실패로만 보는 문화에서는 갈등이 음지로 숨어 독하게 자란다. 갈등을 조정 절차로만 끝내면 배움의 재료가 사라진다. 사실·감정·판단·요구의 구분, 당사자·제삼자의 서사, 규범 점검과 대안 설계를 학습 루프로 묶을 때 학교 민주주의는 깊어진다. 갈등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기술을 공유하는 일이다. 갈등을 수업화하지 않는 한 학교는 늘 외양만 평온한 조직으로 남는다.

-­ 본문 112쪽, 정용주, 〈학교 자치와 느린 민주주의〉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출생등록 제도를 관장하는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대한민국 ‘국민’의 출생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 국적 아동은 출생의 등록과 증명이 불가능하다. 이는 곧 아동의 법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난민이나 미등록 체류자의 자녀는 박해를 가한 본국 정부의 공관에 출생 신고를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한국 정부가 미등록 체류자의 감소를 위해 인력 송출국에 협조를 요구하면서, 해당 국가 공관에서 출생 신고 시 체류 자격 여부를 확인하거나 귀국을 종용하는 등의 불이익을 주는 일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병원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신고되지 않은 6,000여 명의 아동 중 약 4,000명이 외국인 아동이었고, 이들은 정부의 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된 바 있다. 이는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아동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존재를 부정당하는 현실을 보여 준다.

-­ 본문 117~118쪽, 김진, 〈태어난 순간부터 차별받는 아이들〉

 

현장에서는 입학 이후에도 수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스쿨뱅킹 계좌 개설, 각종 지원금 신청, 대회 참가나 온라인 학습 플랫폼 이용 등에서 신분·서류 문제로 배제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굣길에 자녀가 실종돼 보호자가 경찰에 연락했다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는 사건도 있었고, 학교 내 학대 의심 상황에 문제 제기를 하자, 학교는 진상 규명보다는 “비자가 있어야 학교에 다닐 수 있다”며 오히려 가정을 압박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육권 보장이 법적으로 명시되지 않고 누군가의 허락과 관용 또는 헌신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아이와 가정은 늘 불안 속에 놓입니다.

-­ 본문 131~132쪽, 강다영, 〈돌봄과 교육은 ‘운’과 ‘재량’의 영역이 아니다〉

 

취업·정주 방안으로 이제 한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들이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일까. 이들이 정주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들이 대학에 다니기 위해서는 유학 체류 자격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이때 2000만 원의 ‘잔고 증명’이 필요하다. 또, 성인이 되면 부모가 출국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체류 자격을 받는 터라 대학교 1, 2학년 때쯤 부모가 출국하게 되는데, 그러면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외국인이라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신청 자격은 되지 않고, 시간제 취업은 주 20시간만 허용되며, 휴학을 하면 체류 자격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유학생 체류관리 지침 때문에 학교를 잠시 쉬면서 돈을 모으는 것도 불가능하다. 실제로 부모가 출국한 뒤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끼니를 거르거나 노숙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 본문 138~139쪽, 김사강, 〈미등록에서 등록으로, 등록에서 정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