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12월호(통권 83호)
누구의, 어떤 위기인가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의 힘듦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정부의 정책도 대체로 ‘교권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학교 현장의 힘듦을 지원하려는 대책이 바로 ‘위기학생 지원’에 관련된 정책들이다. 현재 국회에도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에 관한 법률안’과 ‘학생맞춤통합지원법안’ 등이 발의되어 있다. 학교생활이나 교육 활동에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 정서적·행동적 측면에서 문제를 겪는 ‘위기학생’들이 많아지는 것을 핵심 문제로 보고, 체계적 지원을 위한 법과 시스템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나온 정책들이 과연 충분하고 대안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금쪽이 지원법’이라는 명칭이 단적으로 보여 주듯, ‘학생이 처한 위기 상황과 어려움’이 아니라 ‘학교에 위기를 불러오는 학생들’을 향하고 있지는 않는가. 학생의 취약함과 어려움을 살피고 지원하는 학교의 중요한 역할을 다른 어딘가로 떠넘기는 결과를 낳지는 않을까. 《오늘의 교육》은 이런 의문과 경각심을 품고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 정책과 법안들을 살펴보며,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정책의 한계와 학교 현장의 온도 차를 짚어 본다.
- 편집부
차례
오늘의 교육을 열며
특별 기획│또 한 명의 교사의 죽음 앞에서
기획│유보통합, 더는 미룰 수 없다
기획│성 착취 허위 영상물 사태에 부쳐
- 인터뷰 |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 제작자 팀데이터스택 백○○ 학생
연속 기획│특수에서 보편으로
시
통합교육, 장애학이 학교에 건넨 “판도라의 상자” | 구윤숙
임신과 출산이 아닌 ‘나’를 위한 질과 자궁 알기 | 나영
기고
리뷰
어린이를 존중하는 일, 세상 모든 존중으로 나아가는 일
내가 밀고 있는 단체
책 속에서
이 법안들이 제안되고 논의되는 맥락이 위기 상황에 놓인 학생들이 사회의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고 우리 사회는 응답할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 이 법안이 가져올 미래를 낙관하기 힘든 이유다.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이른바 ‘금쪽이법’으로 불리고 있고, 학생맞춤통합지원법안을 발의한 백승아 의원은 교원단체들과 함께 학생의 교실 분리 지도를 법제화하는 ‘생활지도법’(「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통과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이 낙인과 분리의 대상으로만 상정될 때, 그 지원은 사람의 권리로서가 아니라 위기 관리 정책에불과한 것이 된다.
- 본문 36쪽, 배경내, 〈문제는 눈동자다, 더 큰 문제는 돈이다〉
현재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에서도 위기학생의 선정부터 지원 과정에서 보호자 동의까지 모두 학교장의 역할이 강조되어 있다. 아무리 통합 지원 체계 구축을 강조한다 한들, 학교장이 소극적이거나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통합 지원’이라는 이름이 유명무실하다. 위기학생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 교장, 교감이 나서서 책임을 나누어 맡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일 때 독박 교실의 불안이 줄고 닫힌 교실이 열려 위기학생을 위한 통합적인 지원이 작동할 수 있다.
- 본문 52쪽, 전세란, 〈교사의 위기와 학생의 위기는 겹쳐 있다〉
사실 어느 수업이든 관찰자 입장에서 보면 교사의 적절하지 않은 대응이나 수정하면 더 좋을 법한 수업 계획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실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생활과 수업을 이어 가야 하는 교사는 설정을 바꾸면 바로 출력 행동이 바뀌는 로봇이 아닌 오롯한 사람이다. 따라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 교사인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기억하는 것이 먼저다. 이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려움에 처한 교사를 지원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 본문 69~70쪽, 최은주, 〈진짜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정치적이고 관계적인 접근을 통해 배우는 것은 학생만이 아니다. 실제 내가 그렇듯 교사는 교실 속에서 온전하고 완벽한 한 인간으로 존재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고수하자면 권위를 지키는 것에 매달리게 되고, 오히려 교실 속에서 나로 존재할 수 없다. 나는 나의 불완전성도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어야 학교가 오히려 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로 보이는 교사 또한 정서행동 문제로 판단될 수 있는 정신적/신체적 상태일 수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로부터 잃는 것이 많을까, 얻는 것이 많을까? 나는 학생들에게 화를 지혜롭게 표현하고 푸는 방법을 가르치는 날에는 막막하기 짝이 없다. 평소에 화를 꾹 인내하고, 그러다 그 눌러 놨던 분노가 자해로 표출되는 나는 아직 학생들에게 고백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교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 본문 83~84쪽, 세모, 〈위기의 재해석〉
그동안 우리는 교육의 핵심을 효과적인 교과 학습 지도에 두고, 바람직한 사회적 행동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할 것으로 기대해 왔다. 학기 초 올바른 행동을 몇 차례 이야기하는 것, 문제 행동이 일어난 이후 학생의 행동을 교정해 주는 것은 충분한 예방적 지도가 아니다. 학문적 연구나 실천을 바탕으로 한 생활지도 전략을 학교 내에서 실천하며, 이를 통해 모든 학생이 안전하고 긍정적인 학습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예방적 접근은 단순한 일회성의 노력이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실천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예방적 생활지도는 학생들에게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회적, 정서적 기술을 배우도록 할 수 있다. 그 결과 문제 행동의 유형이나 빈도, 강도를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다.
- 본문 95쪽, 김지영,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꽃 자라는 환경도 살펴보아야 한다〉
특수교육 상황은 늘 보편적이지 않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도 없다. 학교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없는 학부모는 아이의 달라진 표정, 태도 모든 것이 걱정일 테다. 특수교육대상 학생 지도 경험이 부족한 일반 학급 담임 교사는 특수 교사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교육청, 학교가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특히 교육청은 학교가 요청하지 않더라도, 과원 학급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서 학교에 제시하여 과원 학급으로 생기는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안전한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재미나게 배우고 행복하게 성장하도록 교육청이 학교보다 한발 앞에서 움직여야 한다.
- 본문 106쪽, 김정희, 〈너무 늦은 만남〉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교육 시스템이 가진 ‘특수’와 ‘일반’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의 틀이다. 장애 학생을 ‘특별한’ 존재로 구분 짓는 순간, 그들에 대한 교육적 책임은 특수 교사에게 전가된다. 이는 단순한 업무 분장의 문제를 넘어선다. 일반 교사들은 ‘우리는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 학생 교육에 거리를 두고, 학부모들은 특수 교사에게 모든 기대와 불만을 쏟아 낸다. 관리자는 특수학급의 사안에 대해서는 중재를 꺼리고 특수학급 업무를 책임지는 부서도 학교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특수 교사는 교육자이자 상담가, 행정가, 때로는 돌봄 제공자의 역할까지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 본문 117쪽, 김헌용, 〈통합교육의 실패〉
반백 년간 방치되어 온 영유아의 교육과 보육, 그로 인해서 맡길 곳을 찾아 헤매야 하는 학부모, 정부 지원 없이 오로지 부모의 부담으로 연명해 왔던 시설들, 공립 시설보다 민간 시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태, 게다가 최저임금에 휴가·휴직도 없이 일하는 교사들……. 이런 것들이 모여서 결국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을 만들었다. 이제 국가의 명맥조차 이어 가기 어려운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고 그마저도 해마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 중이다. 이처럼 상황은 급박한데, 교사의 자격, 연령 분리, 재정 협상, 입법 연기 등에 관한 논쟁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몰려오는 거대한 해일 앞에서 조개를 줍고 있는 형국이다.
- 본문 145쪽, 송대헌, 〈미뤄지는 유보통합, 다가오는 국가 소멸〉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관계성이다.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은 입장 시에 인증 절차로 여러 가지를 요구했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지인 능욕’이었다. 텔레그램방 구성원 모두를 공범자로 만드는 절차이기도 했다. 지인 능욕으로 가입 인증을 하는 사례는 오래전부터 일베나 일부 커뮤니티에도 있었고 그때에도 교사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 합성물은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용자’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허위 영상물 사태에서는 이것이 일부 ‘용자’들의 행위가 아니라 다수가 되고 입장 조건이 된 것이다. 즉 이번 사태의 핵심 중 하나는 관계의 전복, 혹은 관계에 대한 폭력적 ‘찢어발김’, 친밀한 관계의 폭력이다.
- 본문 198쪽, 진냥(희진), 〈지금 중요한 건 교육이 아니야!〉
학생을 서열화하여 사회적 지위를 배분하는 학교에 장애 학생이 들어왔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장의 반응은 “학교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통합이 좋은 건 다 알지만 과밀 학급에 교사의 수업과 업무가 과중한 상황에 통합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학교 입장에서 통합교육은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아름다운 판도라처럼 좋아 보이긴 하는데 받아들였다가는 숨겨 두었던 온갖 문제들이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 257쪽, 구윤숙, 〈통합교육, 장애학이 학교에 건넨 “판도라의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