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통권 84호)


내란, 광장, 그리고 학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수십 년의 세월이 있는가 하면, 수십 년의 일들이 한번에 일어나는 몇 주가 있다.” 2024년 12월 3일 이후 한국 사회의 모습은 레닌의 이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비상계엄 선포’로 감행된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시도와 시민들의 저항, 광장에서 펼쳐지는 여러 연대와 도약, 극우 폭력의 현현 등 커다란 사건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닥쳐 온다. 12.3 내란 사태로 인해 우리 사회에 누적되어 온 문제점들이 표면화된 한편, 매주 열리는 광장에서는 민주주의를 지켜 내야 한다는 다짐이 공명한다. 한편에서는 교육의 실패 또는 성과를 논하는 말들이 넘쳐 난다.

《오늘의 교육》은 섣불리 교육의 미비를 탓하거나 후속 세대에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사회와 학교의 현실을 기록하고자 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더 폭넓고 깊게 이해함으로써, 비로소 사회와 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광장의 역동과 학교의 현실 사이의 교차와 소통 속에서 민주주의와 교육의 새 길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편집부


차례


읽은 이야기 | 최한나


오늘의 교육을 열며

광장은 언제, 어떻게 닫히는가 | 강석남


특집│내란, 광장, 그리고 학교

정치적 위기를 넘는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 채효정 

 - 12.3 내란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학교에 드리워진 계엄령을 걷어 내자 | 조영선

12.3 비상계엄 다음 날, 학교에서는 | 박노해, 김수현, 김홍규, 정유진

광장에도, 학교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수영


기획│기후 위기 교육이 직면해야 할 과제

에코포비아를 넘어 기후 시민 교육으로 | 조진희

 - 기후 돌봄의 주체로 세우는 ‘에코페다고지’를 상상하다

기후 위기와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 | 한윤정


기획│경계에 선 청소년들 – 중도입국 청소년과 교육의 과제

0점과 불법 어디쯤 해영과 건의 몫 | 한채민

‘학업에 무관심한 외국인 가정’의 속사정 | 나히드

 - 중도입국 아동의 초기 학교생활과 학교를 향한 바람


연속 기획│특수에서 보편으로

통합학급에서의 수업 참여와 평가 참여 권리에 대해  | 조경미

 - “엄마, 내가 배우지도 않은 걸 시험을 봐야 해요?”

학교는 지금 “모두”를 위한 수업과 평가를 할 수 있는가 | 김민진 

 - 모두 참여 수업과 평가로 살펴보는 통합교육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


무릎꽃 / 미리 말하랬잖아 | 이정록

첫눈 / 함양(咸陽) | 김천영


연재│장애학의 시선으로 본 학교와 교육 ②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과 차이를 배우는 교육 | 구윤숙

 - 장애 : 자본주의가 버리고 민주주의가 가둔


연재│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성교육이되 ④

삶의 경험이 공유되고 반영되는 트랜지션 | 최예훈

 - 의료 차별과 무지의 장벽을 넘어


수업

민원으로 시작된, 탄핵 너머의 다시 만날 세계를 상상하는 ‘민주주의 특별 수업’ | 김기훈


기고

‘충암파’라는 명명에 대한 질문들 | 최성용


에세이

다르지만 함께하는, 다시 만난 우리 | 김찬, 이준원

 - 광장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이야기

나는 왜 참전 군인을 만나는가 | 석미화


리뷰

학교에 진짜, 먼저 필요한 법

《생활지도에 갇힌 학교 – 통제와 처벌, 분리의 벽을 넘어》 | 레빗


오늘 읽기 | 공현

세 줄 새 책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책 | 조현민


내가 밀고 있는 단체

《월간 옥이네》 | 오정오

김용균재단 | 지니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공동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만드는 것이고, 우리가 그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광장에서 함께 부르는 〈다시 만난 세계〉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세계의 질서를 다른 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남태령 광장에서 조금 맛보았던 것이라면, 그 경험이 우발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돌아온 일상의 정치로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더디더라도 그물을 엮어 가듯이 그 경험들을 조금씩 촘촘히 엮어 가며 우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것, 무너지는 세상에서 존엄을 잃고 불안해하며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극우의 덫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동료 시민의 연대의 안전망에 걸리도록 하는 것,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그 경로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 본문 39쪽, 채효정, 〈정치적 위기를 넘는 우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남태령과 광화문, 한남동에서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공개된 자리에서 자신의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두려움 없이 소개하고, 다른 약한 존재에게 연대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길을 여는 이러한 원리가 일상에서도 통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모습이 광장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취약성을 가진 사람도 그 취약성을 이유로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게 해야 한다. 학생인권법과 차별금지법은 자신의 취약성으로 인해 학생들이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그래야 일상의 공간에 똬리를 틀고 있는 ‘구조적 윤석열들’이 없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학교에서 힘 있는 존재가 다른 존재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킬 수 있게 되는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나는 광장에서 이런 학교를 꿈꾼다.

-­ 본문 57쪽, 조영선, 〈학교에 드리워진 계엄령을 걷어 내자〉


대표적으로 ‘폭력의 위험성을 가르치기 위해 폭력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부분이다. ‘김선생님법’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는 조항은 ‘친구가 때리면 같이 때린다’이다. 다행히 해당 조항으로 인해 학생들 간의 신체 폭력이 발생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교사에 의해 폭력이 허용되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또한 직접적인 신체 폭력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이후에 학생들이 사용한 언어는 다분히 폭력적이다. 김 선생님 반 학생들이 만든 ‘우리반법’에는 ‘선생님은 우리한테 맞아야 한다’거나 ‘선생님은 바보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학생들이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 억압에 따라 발생한 부정적 감정을 그저 분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본문 62쪽, 박노해,  “학생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12.3 비상계엄 다음 날, 학교에서는〉


준이와 태수는 □반의 여론을 주도했다. 준이는 내가 파란색 니트를 입고 온 날, 물었다. “선생님, 민주당 지지자예요? 저번에 대통령 ◯◯◯ 뽑았죠?”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감정을 폭주시키는 걸 아무렇지 않게 하는 준이식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사상 검증용 질문도 종종 했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말을 흐리면 “김일성 XXX”를 해 보라고 다그쳤다. 준이의 호의는 계속됐다. 막말을 하는 □반 애들에게 “야, 도덕 선생님, 민주주의자야. 그만해!” 그럼 넌 반민주주의자냐, 따져 묻고 싶어도 애매해서 그냥 넘어갔다. 준이는 계엄을 재밌어했는데, ‘또라이 짓’이기 때문이란다. 계엄 이후 준이는 더 이상 나의 사상을 검증하려 하거나 ‘민주주의자’라고 칭하지 않았다.  

-­ 본문 69쪽, 김수현,  “비상계엄 후 학교는”, 〈12.3 비상계엄 다음 날, 학교에서는〉


집회에 들고 갔었다는 아담한 깃발이 교실 뒤 사물함 위에 놓여 있었다. 깃발에는 ‘세특 밀린 고등학생들 연합’이라고 적혀 있었다. 쉬는 시간 깃발에 쓸 문구를 논의하던 몇몇이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

(……) 

대다수 언론은 내란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극소수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의과대학 입시 기사를 쏟아 냈다. 내란 주범들이 장악하려고 했던 신문사와 방송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작 대학 입시가 현실로 닥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달랐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학벌 카스트에서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 시간을 사회를 위해 기꺼이 내놓았다. ‘세특 밀린 고등학생들’이라는 문구는 그래서 그 어떤 구호보다 강렬하다.

-­ 본문 74~75쪽, 김홍규,  “빠르고 용감한 학생들, 아무 일 없는 듯 굴러가는 학교”,

 〈12.3 비상계엄 다음 날, 학교에서는〉


교실은 사회 현안 등 사안이 있을 때마다 서로를 두고 “1찍이다”, “2찍이다” 하며 놀리곤 했다. 하지만 계엄 수업에서는 ‘찍소리’가 없었다. 되려 탄핵 정국이 지속될수록 교실은 극단적 유대감에 대한 객관화와 비판의 시선을 얻게 되었다. 학생들은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극우주의자들의 이기심과 부정의를 눈으로 확인하며 진짜 자유와 나라의 모습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 본문 82쪽, 정유진,  “12.3 비상계엄 사태와 민주주의 수업 단상”,

 〈12.3 비상계엄 다음 날, 학교에서는〉


학생인권 후퇴 흐름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그 흐름을 주도한 것이 현재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고 법원을 테러하는 등 극우적 폭력을 벌이고 있는 세력이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은 일상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더욱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때이다. 현 22대 국회에서 발의되어 있는 학생인권법안의 내용을 뜯어 보면 학생의 정치적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간 학생인권법은 주로 학생의 신체의 자유나 사생활의 자유 등 사적 자유를 보장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선언하는 부분이 관심을 받아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학생인권법에 담긴 표현의 자유나 자치에 관한 권리, 참여할 권리 등의 의의를 인식하고 이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이런 권리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학생인권법의 제정을 통해 광장에도, 학교에도 민주주의를 들여와야 할 때다.

-­ 본문 97~98쪽, 수영, 〈광장에도, 학교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기후 재난 때문에 사고 싶은 것도 못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가고 싶은 곳도 못 가면서 짜증 나고 불안하며 우울한 개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억울한 세대. 그 세대에겐 미안하지만, 이제 인간-비인간 지구 타자들은 서로 먹고 먹히며 관계를 맺어 가는 반려자라는 인식론의 전환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불쌍한 북극곰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비인간 존재로 친족 개념을 확장하고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 것이다.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이며 비인간과 물질은 주인에게 복종하는 노예일 뿐이라는 위계적 이분법은 버려야 할 낡은 세계관이다.

-­ 본문 109쪽, 조진희, 〈에코포비아를 넘어 기후 시민 교육으로〉


기후 위기는 전 지구적 문제이지만 그 대응은 지역마다 주어진 과제이다. 점점 나빠지는 기후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회복하는 정도는 공동체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학생들은 지역 사회의 생태 복원이나 자원 순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수동적인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대도시에도 자연과 생명이 살아 숨 쉰다. 옥상에서 채소가 자라고 벌들이 꿀을 모은다. 햇빛 발전, 도시 농업 등 생산적인 활동은 기후 위기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자연을 관찰하며 생태계의 순환과 상호 의존성을 몸소 체험한다면 자신의 삶이 더 큰 생명의 흐름 속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본문 123~124쪽, 한윤정, 〈기후 위기와 함께 성장하는 아이들〉


앞으로는 해영, 건과 같은 이주배경 학생들을 더 많은 학교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이주배경 학생 개개인의 노력과 적응만을 기대해야 할까. 학교는 다양한 구성원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해야 한다. 학생 인권 감수성이 높은 통역 지원, 정서 및 심리 상담 지원처럼 이주배경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선주민만의, 오직 선주민에 의한, 선주민이 설계한 학교 체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하며 바뀌어야 하는 것은 선주민의 문화와 선주민의 시스템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다. 선주민도 괴로운 시스템이니 그대로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더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시스템에서 선주민은 시혜를 베푸는 자나 피해를 입는 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될 것이다.

-­ 본문 141~142쪽, 한채민, 〈0점과 불법 어디쯤 해영과 건의 몫〉


이번 일을 통해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최근 충북교육청은 홈페이지에 정치 편향 신고 게시판을 운영하다가 전교조 충북지부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문을 닫기도 했다. 어차피 잘 활용되지도 않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하는 건 어느 내란 우두머리식 화법이다. 점점 교사가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학교공동체에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목소리를 빼앗겼었고 교사도 목소리를 빼앗긴 존재가 되었다. 다시 말해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얻는 일은 교사만 기본권을 얻는 게 아니라 차별과 배제가 없는 학교와 사회로 크게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 자유, 평등, 인권, 다양성 존중 등’을 기준으로 함께 배우고 서로 돌보고 연대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 숙제가 생긴 셈인데, 지금부터 함께 기분 좋게 해결해 보자.

-­ 본문 230쪽, 김기훈, 〈민원으로 시작된, 탄핵 너머의 다시 만날 세계를 상상하는

 ‘민주주의 특별 수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