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그날은 거기서 딱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좋은 경험에 다른 경험이 섞이는 것이 싫다기보다는 좋았던 기억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서겠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어젯밤 머리맡에 두고 잔 오늘의 교육 목차를 읽다가 에세이 〈고요한 전주에서 입양 ‘커밍아웃’하기〉라는 제목에 눈이 갔다. 앞에 실린 특집부터 읽다 보면 한참 뒤에 실린 에세이는 그냥 안 읽고 넘어가기 쉽다. 물론 나는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오늘의 교육만은 끝까지 토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쓴 이를 나는 최소한 두 달에 한 번은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의 공간에서 만나고 있다. 전주 〈오늘의 교육 읽기모임〉에서다. 이 읽기 모임을 순천에서 재미나게 하다가 전주로 이사 와서는 몇 번 못 하고 문을 닫고 말았었다. 참여자(주로 교사)들이 워낙 활동량이 많은 분들이라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가 않아서였다. 그 후 최은숙 샘이 해남에서 전주로 이사를 오면서 나와 둘이서만이라도 시작해 보자고 해서 지금에 이른 것인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글쓴이(서희는 필명인 줄 알았는데 글을 읽어 보니 입양 당시의 이름이다. 김서희)가 합류를 했다. 그 후 아주 자연스럽게 모임 날짜를 정하는 일부터 많은 일들이 그이의 일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이 흐르듯 정말 자연스럽게.
지금이 아침이라기에도 빠른 새벽 시간에 가깝지만 〈고요한 전주에서 입양 ‘커밍아웃’ 하기〉 이 글을 읽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접고 싶다. 글 내용도 그렇지만 글솜씨도 빼어나다. 꼭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일부분을 인용해서 소개하기가 어렵겠다. 주제에 관련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쓴 사회성이 강하면서도 내밀한 글이다. 에세이로서는 조금 긴 글에 해당하지만(나는 글이 빨리 끝나는 줄 알고 많이 아쉬웠는데 뒤에 글이 이어져서 좋았다) 사진을 찍어서 공유한다. 안 읽어보는 건 자유지만 내가 한 좋은 경험을 못 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만 짧게 덧붙이려고 한다. 내가 사립 특성화고 고3 여자반 담임을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현장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는데 교복을 입은 정선(가명)이 배가 좀 불룩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내 예감이 맞는 것 같아서 어느 날 조용히 불러내어 물었더니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임신한 것이 맞다고 했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너 내년이면 성인이잖아. 일 년 먼저 임신한 건데 어때? 아이 아빠는 좋은 사람이겠지? 아이를 낳으면 함께 키울 수 있겠니? 너희 두 사람이 약속만 해 준다면 선생님이 도와줄게. 어때, 아이 낳으면 잘 키우겠다는 약속할 수 있겠어?”
나는 교사로 재직 중에 허위서류를 작성한 사실을 이제야 공개 자백한다. 정선이를 지인의 상점에 허위 취업을 시켜 학교에 보고한 것이다. 비록 교사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엄연한 불법이긴 했지만 내가 교사로서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듬해였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아기를 안고 있는 정선이의 엄마와 정선이를 우연히 만났다. 딸 덕분에 일찍 할머니가 된 정선이 엄마는 나를 보자 손을 뜨겁게 잡아 주셨다. 물론 정선 엄마는 전에도 나랑 딸 위장 취업 공모에 가담했을 때부터 내 손을 뜨겁게 잡곤 했었다. 하지만 글쓴이의 생모처럼 그때 정선이가 고2였다면 이런 불법행위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음은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 국내 입양인’ 서희의 글 마지막 단락이다.
“동시에 청소년 인권을 외치는 이들이 청소년이 가진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을 함께 논했으면 좋겠다. 학생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외면받지 않는 사회, 학업을 이어 가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이길 바란다. 그리하여 생모가 어디에서 지내든 그저 어여삐 웃으며 지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193쪽)
아마도 동의가 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서희는 그 앞에 이렇게 썼다. 내가 뜨겁게 읽은 대목이다. 역시 동의가 안 되는 분도 계실 것이다. 특히 딸을 둔 부모님들에게는 조심스럽기까지 하지만 대화를 해 보자는 의미에서 공유한다.
“마찬가지로 청소년이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거품을 무는 사람도 내 말이 불편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피임을 잘했는데도 아이의 앞길이 망한 것처럼 군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을 향한 차별이 심하다. 그래서 나는 정체성을 밝힐 때마다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을 꼭 붙인다. 당신 눈앞에 있는 내가, 어쩌면 당신이 그토록 계도하고 싶었던 ‘고딩엄빠’의 자식이란 걸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 대목만 더 인용한다.
“연민으로 연대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저 국내 입양인이기 때문에 외롭거나 슬펐던 적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 내가 불쌍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옛말에도 업둥이를 키우면 집에 복이 온댔다. 그러니 당신들이 원하는 ‘수퍼’한 이미지를 덧입을 생각은 없다. 오히려 〈엄마 찾아 삼만리〉의 서사를 기대한 이들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리고 싶었다.”(191쪽)
>>>김서희 글 보기
어떤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그날은 거기서 딱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좋은 경험에 다른 경험이 섞이는 것이 싫다기보다는 좋았던 기억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서겠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어젯밤 머리맡에 두고 잔 오늘의 교육 목차를 읽다가 에세이 〈고요한 전주에서 입양 ‘커밍아웃’하기〉라는 제목에 눈이 갔다. 앞에 실린 특집부터 읽다 보면 한참 뒤에 실린 에세이는 그냥 안 읽고 넘어가기 쉽다. 물론 나는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오늘의 교육만은 끝까지 토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쓴 이를 나는 최소한 두 달에 한 번은 가상 공간이 아닌 현실의 공간에서 만나고 있다. 전주 〈오늘의 교육 읽기모임〉에서다. 이 읽기 모임을 순천에서 재미나게 하다가 전주로 이사 와서는 몇 번 못 하고 문을 닫고 말았었다. 참여자(주로 교사)들이 워낙 활동량이 많은 분들이라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가 않아서였다. 그 후 최은숙 샘이 해남에서 전주로 이사를 오면서 나와 둘이서만이라도 시작해 보자고 해서 지금에 이른 것인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글쓴이(서희는 필명인 줄 알았는데 글을 읽어 보니 입양 당시의 이름이다. 김서희)가 합류를 했다. 그 후 아주 자연스럽게 모임 날짜를 정하는 일부터 많은 일들이 그이의 일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이 흐르듯 정말 자연스럽게.
지금이 아침이라기에도 빠른 새벽 시간에 가깝지만 〈고요한 전주에서 입양 ‘커밍아웃’ 하기〉 이 글을 읽는 것으로 오늘 하루를 접고 싶다. 글 내용도 그렇지만 글솜씨도 빼어나다. 꼭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일부분을 인용해서 소개하기가 어렵겠다. 주제에 관련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쓴 사회성이 강하면서도 내밀한 글이다. 에세이로서는 조금 긴 글에 해당하지만(나는 글이 빨리 끝나는 줄 알고 많이 아쉬웠는데 뒤에 글이 이어져서 좋았다) 사진을 찍어서 공유한다. 안 읽어보는 건 자유지만 내가 한 좋은 경험을 못 하게 될 것이다.
한 가지만 짧게 덧붙이려고 한다. 내가 사립 특성화고 고3 여자반 담임을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현장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는데 교복을 입은 정선(가명)이 배가 좀 불룩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내 예감이 맞는 것 같아서 어느 날 조용히 불러내어 물었더니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임신한 것이 맞다고 했다.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너 내년이면 성인이잖아. 일 년 먼저 임신한 건데 어때? 아이 아빠는 좋은 사람이겠지? 아이를 낳으면 함께 키울 수 있겠니? 너희 두 사람이 약속만 해 준다면 선생님이 도와줄게. 어때, 아이 낳으면 잘 키우겠다는 약속할 수 있겠어?”
나는 교사로 재직 중에 허위서류를 작성한 사실을 이제야 공개 자백한다. 정선이를 지인의 상점에 허위 취업을 시켜 학교에 보고한 것이다. 비록 교사가 저질러서는 안 되는 엄연한 불법이긴 했지만 내가 교사로서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듬해였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아기를 안고 있는 정선이의 엄마와 정선이를 우연히 만났다. 딸 덕분에 일찍 할머니가 된 정선이 엄마는 나를 보자 손을 뜨겁게 잡아 주셨다. 물론 정선 엄마는 전에도 나랑 딸 위장 취업 공모에 가담했을 때부터 내 손을 뜨겁게 잡곤 했었다. 하지만 글쓴이의 생모처럼 그때 정선이가 고2였다면 이런 불법행위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음은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 국내 입양인’ 서희의 글 마지막 단락이다.
“동시에 청소년 인권을 외치는 이들이 청소년이 가진 성적 권리와 재생산권을 함께 논했으면 좋겠다. 학생이 임신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외면받지 않는 사회, 학업을 이어 가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 누구나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이길 바란다. 그리하여 생모가 어디에서 지내든 그저 어여삐 웃으며 지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193쪽)
아마도 동의가 되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서희는 그 앞에 이렇게 썼다. 내가 뜨겁게 읽은 대목이다. 역시 동의가 안 되는 분도 계실 것이다. 특히 딸을 둔 부모님들에게는 조심스럽기까지 하지만 대화를 해 보자는 의미에서 공유한다.
“마찬가지로 청소년이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거품을 무는 사람도 내 말이 불편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피임을 잘했는데도 아이의 앞길이 망한 것처럼 군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을 향한 차별이 심하다. 그래서 나는 정체성을 밝힐 때마다 ‘청소년 미혼 부모에게서 태어난’을 꼭 붙인다. 당신 눈앞에 있는 내가, 어쩌면 당신이 그토록 계도하고 싶었던 ‘고딩엄빠’의 자식이란 걸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 대목만 더 인용한다.
“연민으로 연대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그저 국내 입양인이기 때문에 외롭거나 슬펐던 적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 내가 불쌍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옛말에도 업둥이를 키우면 집에 복이 온댔다. 그러니 당신들이 원하는 ‘수퍼’한 이미지를 덧입을 생각은 없다. 오히려 〈엄마 찾아 삼만리〉의 서사를 기대한 이들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리고 싶었다.”(191쪽)
>>>김서희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