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까지 급히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하루 연가를 냈다. 그래서 딸냄의 온라인 수업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딸냄은 아이패드를 들여다보았다.) 1교시는 국어 시간. 첫 출발은 좋다. “아빠 아침이 오는 이유가 뭔지 알아? 별들이 밤새 까만 밤을 다 먹어 버렸대. 웃기지?”
2.
2교시는 수학 시간. “친구들이 그러는데 여기 나오는 선생님 목소리가 아빠랑 똑같대.” 진짜 내가 들어도 똑같다! (선생님 목소리가 참 멋지시네) 근데 수학이 어렵긴한가 보다. 혼자 힘으로 하다가 안 되는지 나한테 물어보는데 나눗셈 문제다. 과제를 모두 해결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힘드니까 중간 중간에 딴 짓(?)도 했을 것이다)
3.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어.” 요즘 딸냄이 종종 하는 말이다. 원격 수업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지켜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이건 시스템을 개선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 하다. 훌륭한 온라인 수업을 보면 동료 교사나 학부모는 감탄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아니, 이런 것 말고도 아이들이 세상에서 감탄할 것들은 널려 있다. 그런 걸 보지 못하고 스마트패드만 바라봐야 하는 세상은 정말 스마트하지 못하다.
4.
딸냄이 심은 강낭콩이 하루 사이에 확 자랐다. 아침에도 깜짝 놀랐는데 저녁에 보니 더 놀랍다. “옆에 지켜보고 있으면 자라는 게 보일 정도인데?” “그치 아빠. 근데 선생님이 식물 앞에서 ‘다 자라면 맛있게 먹어야지’ 이런 말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 딸냄의 국어 교과서에 <내 맘처럼>이라는 시가 나온다.
내 맘처럼 / 최종득
교실에서
강낭콩을 키운다.
아무도 모르게
내 강낭콩 화분을
영주 화분 옆에 뒀다.
조금씩 조금씩
줄기가 뻗더니
영주 거랑 내 거랑
서로 엉켰다.
이대로
칭칭 엉켜 있으면
참 좋겠다
5.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친구들과 칭칭 엉켜 붙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도 거리를 두고 한다는 딸냄의 이야기를 들으며 “멸종 위기종 청소년”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세월호 이후의 교육’이라는 반성적 논의들이 있었다.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보며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아이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동안 우리는 도대체 어떤 교훈을 얻은 걸까.
오래된미래 윤상혁
1.
오늘까지 급히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하루 연가를 냈다. 그래서 딸냄의 온라인 수업을 살펴볼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딸냄은 아이패드를 들여다보았다.) 1교시는 국어 시간. 첫 출발은 좋다. “아빠 아침이 오는 이유가 뭔지 알아? 별들이 밤새 까만 밤을 다 먹어 버렸대. 웃기지?”
2.
2교시는 수학 시간. “친구들이 그러는데 여기 나오는 선생님 목소리가 아빠랑 똑같대.” 진짜 내가 들어도 똑같다! (선생님 목소리가 참 멋지시네) 근데 수학이 어렵긴한가 보다. 혼자 힘으로 하다가 안 되는지 나한테 물어보는데 나눗셈 문제다. 과제를 모두 해결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힘드니까 중간 중간에 딴 짓(?)도 했을 것이다)
3.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어.” 요즘 딸냄이 종종 하는 말이다. 원격 수업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지켜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이건 시스템을 개선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 하다. 훌륭한 온라인 수업을 보면 동료 교사나 학부모는 감탄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아니, 이런 것 말고도 아이들이 세상에서 감탄할 것들은 널려 있다. 그런 걸 보지 못하고 스마트패드만 바라봐야 하는 세상은 정말 스마트하지 못하다.
4.
딸냄이 심은 강낭콩이 하루 사이에 확 자랐다. 아침에도 깜짝 놀랐는데 저녁에 보니 더 놀랍다. “옆에 지켜보고 있으면 자라는 게 보일 정도인데?” “그치 아빠. 근데 선생님이 식물 앞에서 ‘다 자라면 맛있게 먹어야지’ 이런 말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 딸냄의 국어 교과서에 <내 맘처럼>이라는 시가 나온다.
내 맘처럼 / 최종득
교실에서
강낭콩을 키운다.
아무도 모르게
내 강낭콩 화분을
영주 화분 옆에 뒀다.
조금씩 조금씩
줄기가 뻗더니
영주 거랑 내 거랑
서로 엉켰다.
이대로
칭칭 엉켜 있으면
참 좋겠다
5.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친구들과 칭칭 엉켜 붙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도 거리를 두고 한다는 딸냄의 이야기를 들으며 “멸종 위기종 청소년”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세월호 이후의 교육’이라는 반성적 논의들이 있었다. 마스크를 쓴 아이들을 보며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아이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동안 우리는 도대체 어떤 교훈을 얻은 걸까.
오래된미래 윤상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