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한 운동
공현
민주화운동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할까?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부정적 용법은 치워 두고라도) 대개는 민주주의라는 거시적인 정치 체제를 위한 운동으로 생각하거나 옛날 역사 속의 운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주로 같이 떠오르는 것이 ‘독재 타도’나 ‘대통령 직선제’ 같은 것이라, 더더욱 일상이나 구체적 권리와는 관련성이 적어 보인다.
그런데 민주화, 민주주의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민(民)이 사회의, 나라의 주인(主)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리고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표자나 공직자를 선출하는 투표를 통해서이든, 직접 의견을 발언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통해서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렇게 보면 비민주적인 상태 ― 독재의 문제란 바로 사람들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참정권 운동이란 표현은 주로 여성 참정권, 흑인 참정권, 노동자 참정권, 청소년 참정권 등 소수자 집단의 경우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는 가장 격렬한 참정권 운동 중 하나는 바로 시민혁명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서 민주화운동은 ‘전 국민의 참정권’을 쟁취하려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권이 그렇듯이 참정권의 보장은 다른 인권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독재정권은 사람들의 참정권 행사를 억압하기 위해서 언론을 검열하고 사람들을 잡아 가둬야 했다.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라는 격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참정권을 갖지 못하여 국가 권력에게 실질적 힘을 행사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기본적 생명과 신체조차 존중받지 못했다. 함부로 짓밟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민주화운동은 국가의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5.18 광주 항쟁이 그러했고, 1987년 6월 투쟁은 박종철 사망 사건에서부터, 1991년 5월 투쟁은 강경대 사망 사건에서부터 촉발되었다. 이는 국가가 저지른 ‘부정의를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달리 보면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외친 것이었다.
근대 이후 정초된 민주주의는 기본적인 인권으로부터 연역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 자기 삶의 주인이며 자기 결정권을 가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함께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국가를 세우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체/국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공동 결정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구체적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참정권이다. 다만 과연 실질적 민주주의의 달성이 단지 선거권·피선거권 같은 다분히 형식적인 권리만으로 가능한지는 논쟁거리다. 민주화운동도 참정권 운동도 모두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우리가 함께 이 사회의 공동 주인이 되고 싶다는 보편적 뜻의 발로이다.
고등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의 일부로서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주체가 되었던 운동을 ‘고등학생운동’이라고 부른다. 고등학생운동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출현하여, 1989년 전교조 출범을 계기로 대중적으로 분출하였고, 1990년대 중반에 소멸했다. 고등학생운동이라는 이름은 당시 대학생들의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던 ‘학생운동’이라는 말에 대응하여 다수가 고등학생이었던 운동 주체들이 스스로 명명했던 것이다. 지역과 단체의 여러 차이를 다소 무시하고 도식화해서 설명하면, 고등학생운동은 1980년대 중반 조직적 움직임이 시작되어 1987년 6월 투쟁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싹텄으며, 1988년 직선제 학생회 투쟁 등을 거쳐 1989년 전교조에 연대하며 전국적 투쟁을 전개했고, 1991년에는 5월 투쟁과 분신 정국에도 고등학생운동의 활동과 고등학생운동 출신 열사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에는 전면에 나섰던 많은 운동 주체들이 징계와 탄압을 당하였고 ‘청소년단체 샘 사건’(1994년) 등 공안 탄압을 겪고 사회 환경이 변화해 가는 와중에 고등학생운동도 점차 축소되어 갔다.
역사적으로 중·고등학생들의 정치·사회 참여 자체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등학생운동과 같은 전국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로 중·고등학생들의 운동이 이어졌던 것은 이 시대가 유일하다. 연인원 5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되는 1989년 전교조 출범 연대 투쟁이나 1991년 김철수 열사의 분신 투쟁 그리고 이어지는 광주 지역 청소년들의 투쟁 등은 현시점에서 돌아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 배경에는 1980년대라는 특수한 시대상, 5.18 광주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이념에 기반하여 강력하게 형성된 반독재투쟁, 대학생운동을 위시한 변혁운동이 있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생운동의 이례적인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에 더 주목한다. 당시 고등학생운동은 독재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참교육을 외쳤는데, 학교 또는 지역에서 대중적으로 벌였던 투쟁의 의제들을 살펴보면 ‘자주적 학생회’, ‘두발 규제 반대’, ‘교복 부활 반대’, ‘보충수업·야간자율학습 철폐’, ‘체벌·성추행 교사 해임 요구’, ‘입시 경쟁 교육 비판’ 등이었다. 대부분이 현재의 청소년인권운동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덧붙여서 고등학생운동 중에는 1991년~1992년에 총선을 앞두고 ‘고등학생 정치 활동 쟁취’를 내걸고 선거권 연령 하향 등을 주장하는 활동이 기획되기도 했다.
고등학생운동에서 이런 문제들은 학생의 인권 문제이면서 군사주의·권위주의적인 정치-교육의 문제였으며, 그 종합적인 해결책은 ‘민주화’였다. 이는 독재 타도와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나, 앞서 검토했듯이 민주화의 궁극적인 의미는 우리가 자기 자신의 삶과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고등학생운동 집회 현장을 기록한 사진 중에는 “직선제 학생회로 입시경쟁 끝장내자”라는 피켓 문구가 찍힌 것도 하다. 얼핏 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 문구는, 학생들이 자치 기구를 통해 학교를, 나아가 교육 제도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 곧 교육 개혁의 길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고등학생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일부로서 사회의 민주화와 학교의 민주화를 모두 이야기했다. ‘학교의 민주화’는 학생이 (그리고 ‘참교육을 하는 교사들’도) 교육의 주체라는 선언이었으면서, 나아가서는 학생들이 학교와 교육의 주인이 됨으로써 불의와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포부였다.
청소년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을 단지 직선제 등 특정한 선거 제도를 얻어 내기 위한 것이거나 특정한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사회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운동으로 이해한다면, 오늘날 존재하는 수많은 운동들 역시 민주화운동의 부분 집합이며 발전형이다. 청소년인권운동은 민주화운동의 계승자이자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민주화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이후로, 청소년인권운동은 우리 사회가 실현해 내고 체험한 민주주의를 일상의 공간, 학교 등에서도 이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 ‘청소년들은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에 있다’ 등의 구호와 함께 청소년 참정권 운동,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운동을 제기했다. 그보다 조금 전, 2000년대에 선거권 연령 하향 등의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했던 한 활동가는 그 당시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표현했던 바 있다. “우리 세대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 이 말은 어째서 1980년대 고등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섰는지, 학교를 민주화하고 참교육을 실현하자고 외쳤는지를 함축하며, 현재의 청소년인권운동의 문제의식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달성한 성과는 제한적이더라도 그 운동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과 메시지는 ‘선거권 연령 몇 살’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현대의 민주화운동가로서 우리들은 정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과 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권리(主權)를 행사하고 있는지를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무력감을 느끼지 않아야 민주주의이다”라는 말도 있는데, 단적으로 말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기만 한다면 체제 자체를 뒤집고 바꾸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입시 경쟁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를 바꿀 수 있는 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 대부분은 교육 체제나 학교의 질서를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학교에, 교육에, 사회에, 청소년의 삶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운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은 다음 행사의 발제문입니다.
[집담회] 2024, 학교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일시 : 2024년 6월 1일 오후 3시
장소 : 광주YMCA
삶과 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한 운동
공현
민주화운동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할까?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부정적 용법은 치워 두고라도) 대개는 민주주의라는 거시적인 정치 체제를 위한 운동으로 생각하거나 옛날 역사 속의 운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주로 같이 떠오르는 것이 ‘독재 타도’나 ‘대통령 직선제’ 같은 것이라, 더더욱 일상이나 구체적 권리와는 관련성이 적어 보인다.
그런데 민주화, 민주주의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민(民)이 사회의, 나라의 주인(主)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리고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표자나 공직자를 선출하는 투표를 통해서이든, 직접 의견을 발언하고 토론하는 활동을 통해서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렇게 보면 비민주적인 상태 ― 독재의 문제란 바로 사람들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참정권 운동이란 표현은 주로 여성 참정권, 흑인 참정권, 노동자 참정권, 청소년 참정권 등 소수자 집단의 경우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는 가장 격렬한 참정권 운동 중 하나는 바로 시민혁명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서 민주화운동은 ‘전 국민의 참정권’을 쟁취하려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권이 그렇듯이 참정권의 보장은 다른 인권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독재정권은 사람들의 참정권 행사를 억압하기 위해서 언론을 검열하고 사람들을 잡아 가둬야 했다.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라는 격언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참정권을 갖지 못하여 국가 권력에게 실질적 힘을 행사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기본적 생명과 신체조차 존중받지 못했다. 함부로 짓밟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 민주화운동은 국가의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었다. 5.18 광주 항쟁이 그러했고, 1987년 6월 투쟁은 박종철 사망 사건에서부터, 1991년 5월 투쟁은 강경대 사망 사건에서부터 촉발되었다. 이는 국가가 저지른 ‘부정의를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달리 보면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외친 것이었다.
근대 이후 정초된 민주주의는 기본적인 인권으로부터 연역된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 자기 삶의 주인이며 자기 결정권을 가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함께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고 국가를 세우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체/국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공동 결정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구체적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참정권이다. 다만 과연 실질적 민주주의의 달성이 단지 선거권·피선거권 같은 다분히 형식적인 권리만으로 가능한지는 논쟁거리다. 민주화운동도 참정권 운동도 모두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우리가 함께 이 사회의 공동 주인이 되고 싶다는 보편적 뜻의 발로이다.
고등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의 일부로서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주체가 되었던 운동을 ‘고등학생운동’이라고 부른다. 고등학생운동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출현하여, 1989년 전교조 출범을 계기로 대중적으로 분출하였고, 1990년대 중반에 소멸했다. 고등학생운동이라는 이름은 당시 대학생들의 운동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던 ‘학생운동’이라는 말에 대응하여 다수가 고등학생이었던 운동 주체들이 스스로 명명했던 것이다. 지역과 단체의 여러 차이를 다소 무시하고 도식화해서 설명하면, 고등학생운동은 1980년대 중반 조직적 움직임이 시작되어 1987년 6월 투쟁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싹텄으며, 1988년 직선제 학생회 투쟁 등을 거쳐 1989년 전교조에 연대하며 전국적 투쟁을 전개했고, 1991년에는 5월 투쟁과 분신 정국에도 고등학생운동의 활동과 고등학생운동 출신 열사들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에는 전면에 나섰던 많은 운동 주체들이 징계와 탄압을 당하였고 ‘청소년단체 샘 사건’(1994년) 등 공안 탄압을 겪고 사회 환경이 변화해 가는 와중에 고등학생운동도 점차 축소되어 갔다.
역사적으로 중·고등학생들의 정치·사회 참여 자체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등학생운동과 같은 전국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로 중·고등학생들의 운동이 이어졌던 것은 이 시대가 유일하다. 연인원 5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되는 1989년 전교조 출범 연대 투쟁이나 1991년 김철수 열사의 분신 투쟁 그리고 이어지는 광주 지역 청소년들의 투쟁 등은 현시점에서 돌아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을 정도다. 그 배경에는 1980년대라는 특수한 시대상, 5.18 광주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이념에 기반하여 강력하게 형성된 반독재투쟁, 대학생운동을 위시한 변혁운동이 있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생운동의 이례적인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에 더 주목한다. 당시 고등학생운동은 독재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참교육을 외쳤는데, 학교 또는 지역에서 대중적으로 벌였던 투쟁의 의제들을 살펴보면 ‘자주적 학생회’, ‘두발 규제 반대’, ‘교복 부활 반대’, ‘보충수업·야간자율학습 철폐’, ‘체벌·성추행 교사 해임 요구’, ‘입시 경쟁 교육 비판’ 등이었다. 대부분이 현재의 청소년인권운동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덧붙여서 고등학생운동 중에는 1991년~1992년에 총선을 앞두고 ‘고등학생 정치 활동 쟁취’를 내걸고 선거권 연령 하향 등을 주장하는 활동이 기획되기도 했다.
고등학생운동에서 이런 문제들은 학생의 인권 문제이면서 군사주의·권위주의적인 정치-교육의 문제였으며, 그 종합적인 해결책은 ‘민주화’였다. 이는 독재 타도와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나, 앞서 검토했듯이 민주화의 궁극적인 의미는 우리가 자기 자신의 삶과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고등학생운동 집회 현장을 기록한 사진 중에는 “직선제 학생회로 입시경쟁 끝장내자”라는 피켓 문구가 찍힌 것도 하다. 얼핏 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 문구는, 학생들이 자치 기구를 통해 학교를, 나아가 교육 제도 자체를 민주화하는 것이 곧 교육 개혁의 길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고등학생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일부로서 사회의 민주화와 학교의 민주화를 모두 이야기했다. ‘학교의 민주화’는 학생이 (그리고 ‘참교육을 하는 교사들’도) 교육의 주체라는 선언이었으면서, 나아가서는 학생들이 학교와 교육의 주인이 됨으로써 불의와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포부였다.
청소년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을 단지 직선제 등 특정한 선거 제도를 얻어 내기 위한 것이거나 특정한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사회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운동으로 이해한다면, 오늘날 존재하는 수많은 운동들 역시 민주화운동의 부분 집합이며 발전형이다. 청소년인권운동은 민주화운동의 계승자이자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민주화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이후로, 청소년인권운동은 우리 사회가 실현해 내고 체험한 민주주의를 일상의 공간, 학교 등에서도 이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다’, ‘청소년들은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에 있다’ 등의 구호와 함께 청소년 참정권 운동,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운동을 제기했다. 그보다 조금 전, 2000년대에 선거권 연령 하향 등의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했던 한 활동가는 그 당시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표현했던 바 있다. “우리 세대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 이 말은 어째서 1980년대 고등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섰는지, 학교를 민주화하고 참교육을 실현하자고 외쳤는지를 함축하며, 현재의 청소년인권운동의 문제의식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달성한 성과는 제한적이더라도 그 운동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과 메시지는 ‘선거권 연령 몇 살’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현대의 민주화운동가로서 우리들은 정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과 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권리(主權)를 행사하고 있는지를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무력감을 느끼지 않아야 민주주의이다”라는 말도 있는데, 단적으로 말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기만 한다면 체제 자체를 뒤집고 바꾸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입시 경쟁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를 바꿀 수 있는 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 대부분은 교육 체제나 학교의 질서를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학교에, 교육에, 사회에, 청소년의 삶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운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은 다음 행사의 발제문입니다.
[집담회] 2024, 학교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일시 : 2024년 6월 1일 오후 3시
장소 : 광주YM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