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편지
학교와 마을 학교를 넘나들며 ‘자유’를 갈망하다
반갑습니다. 벗 7기 이사회 이사 오정오입니다. 저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충북 옥천에 와서 산 지는 15년쯤 됩니다. 이제 지역에 아는 사람도 제법 많아져서, 어쩔 땐 고향 사람처럼 행세하곤 합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마을 사람들이랑 마을 학교를 하나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마을 학교를 만드는 과정은 참 재미났습니다. ‘학교’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곳이었지, 우리가 만들어서 다닌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기 어려운 곳인데, 어찌어찌 학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진짜는 아니고 ‘법외’ 학교라 아무것도 없는, 말만 ‘학교’인 학교입니다. 칠판도 운동장도, 심지어 교과서와 교사도 없는 학교입니다. 딸랑 교실처럼 모이는 마을 카페 하나랑, 마음과 돈을 모아 주는 마을 주민과 청년 몇이 다인 학교입니다.
그런데 이 ‘없음’이 저는 참 좋습니다. 없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눈 감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학교가 있는데, 교장도 없고 교육청도 없습니다. 공문도 없고 잡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온갖 컨설팅과 매뉴얼, 체크리스트도 없습니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도 없고, 교실과 교실을 가르는 벽도 없습니다. 학교 계획서나 교육과정도 없으니, 일과표도 없고 평가도 경쟁도 없습니다. 이쯤이면 해방구 아닌가요?
공교육 역사는 200년쯤 된다고 합니다. 19세기 초 독일이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패전하고 국가적 위기에 처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무교육 제도를 만듭니다. 말 잘 듣는 국민을 길러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뜻이었겠지요. 우리나라 역시 국가 주도로 국민교육 체제를 확립합니다. 학교의 설립과 운영, 교육 내용의 선정과 조직, 교사의 자격 등 그 모두를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하게 됩니다. 그 수단은 강력한 제재와 의무가 뒤따르는 ‘법’이었습니다. 국가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교육을 통제하자, 교육은 곧 공교육(학교)이 됩니다. 교사인 저 역시 학교가 교육의 전부였습니다. 마을 학교를 만나기 전까지.
이제는 ‘학교’가 교육의 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사실 ‘학교學校’는 건물이지요. 학교 건물을 벗어나 마을에서 또 다른 교육을 봅니다. 마을 학교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물었습니다. 그것으로 마을 학교의 ‘교과’를 만들었지요.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아닌가요? 아무튼 그래서 여행, 카페, 춤, 패션, 요리, 축제, 인턴십, 라디오, 신문 등이 마을 학교 교육과정이 됩니다. 일과표도 종소리도 없으니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만큼 합니다. 학기도 학년도 졸업도 없으니 내키는 대로 해 보기도 합니다. 전국 곳곳을 여행하고, 카페를 직접 창업하기도 하고, 축제와 공연도 하고, 라디오 프로그램도 제작하여 송출합니다. 사회적협동조합도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마을 곳곳에서 인턴십을 하며 어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학교가 제가 다니는 ‘학교’보다 더 재미납니다.
국가교육 사상의 시초는 프랑스 혁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육은 교회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종교로부터 교육의 자유를 찾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을 구상한 사람이 콩도르세인데, 그는 교육을 통해 권위나 편견에 흔들리는 않는 자유인을 기르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사회 진보를 이룬다고 믿은 겁니다. 그는 ‘가르치는 자유’와 ‘배우는 자유’를 자유롭게 행사하는 도구로 공교육을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근대 공교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배우는 자유’는 점차 사라지고 온통 ‘가르치는 자유’만 남게 됩니다. 이 ‘자유’마저 교사가 아니라 국가가 독점합니다. 국가는 교육과정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세세하게 정하고 강요합니다. 성취 기준이나 성취 수준이 대표적입니다(수능은 더 악질입니다). 이렇게 꼼꼼한 지침을 볼 때마다, 교사인 저는 ‘교사는 고등교육 기술자’인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그들이 정해 준 대로 가르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을 학교를 지켜보면서, 이제는 국가로부터 ‘가르치는 자유’를 학교나 교사가 되찾아 와야겠구나, ‘가르치는 자유’를 우리가 가져오는 만큼, ‘배우는 자유’를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줄 방안도 고민해야겠구나 다짐합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들도 함께 고민해 주세요.
교육공동체 벗 7기 이사회 이사
오정오
이사회 편지
학교와 마을 학교를 넘나들며 ‘자유’를 갈망하다
반갑습니다. 벗 7기 이사회 이사 오정오입니다. 저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충북 옥천에 와서 산 지는 15년쯤 됩니다. 이제 지역에 아는 사람도 제법 많아져서, 어쩔 땐 고향 사람처럼 행세하곤 합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마을 사람들이랑 마을 학교를 하나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마을 학교를 만드는 과정은 참 재미났습니다. ‘학교’는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곳이었지, 우리가 만들어서 다닌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기 어려운 곳인데, 어찌어찌 학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진짜는 아니고 ‘법외’ 학교라 아무것도 없는, 말만 ‘학교’인 학교입니다. 칠판도 운동장도, 심지어 교과서와 교사도 없는 학교입니다. 딸랑 교실처럼 모이는 마을 카페 하나랑, 마음과 돈을 모아 주는 마을 주민과 청년 몇이 다인 학교입니다.
그런데 이 ‘없음’이 저는 참 좋습니다. 없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눈 감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학교가 있는데, 교장도 없고 교육청도 없습니다. 공문도 없고 잡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온갖 컨설팅과 매뉴얼, 체크리스트도 없습니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도 없고, 교실과 교실을 가르는 벽도 없습니다. 학교 계획서나 교육과정도 없으니, 일과표도 없고 평가도 경쟁도 없습니다. 이쯤이면 해방구 아닌가요?
공교육 역사는 200년쯤 된다고 합니다. 19세기 초 독일이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패전하고 국가적 위기에 처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무교육 제도를 만듭니다. 말 잘 듣는 국민을 길러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뜻이었겠지요. 우리나라 역시 국가 주도로 국민교육 체제를 확립합니다. 학교의 설립과 운영, 교육 내용의 선정과 조직, 교사의 자격 등 그 모두를 국가가 관리하고 통제하게 됩니다. 그 수단은 강력한 제재와 의무가 뒤따르는 ‘법’이었습니다. 국가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교육을 통제하자, 교육은 곧 공교육(학교)이 됩니다. 교사인 저 역시 학교가 교육의 전부였습니다. 마을 학교를 만나기 전까지.
이제는 ‘학교’가 교육의 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사실 ‘학교學校’는 건물이지요. 학교 건물을 벗어나 마을에서 또 다른 교육을 봅니다. 마을 학교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물었습니다. 그것으로 마을 학교의 ‘교과’를 만들었지요.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아닌가요? 아무튼 그래서 여행, 카페, 춤, 패션, 요리, 축제, 인턴십, 라디오, 신문 등이 마을 학교 교육과정이 됩니다. 일과표도 종소리도 없으니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만큼 합니다. 학기도 학년도 졸업도 없으니 내키는 대로 해 보기도 합니다. 전국 곳곳을 여행하고, 카페를 직접 창업하기도 하고, 축제와 공연도 하고, 라디오 프로그램도 제작하여 송출합니다. 사회적협동조합도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마을 곳곳에서 인턴십을 하며 어른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학교가 제가 다니는 ‘학교’보다 더 재미납니다.
국가교육 사상의 시초는 프랑스 혁명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육은 교회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종교로부터 교육의 자유를 찾고자 한 것입니다. 이것을 구상한 사람이 콩도르세인데, 그는 교육을 통해 권위나 편견에 흔들리는 않는 자유인을 기르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사회 진보를 이룬다고 믿은 겁니다. 그는 ‘가르치는 자유’와 ‘배우는 자유’를 자유롭게 행사하는 도구로 공교육을 구상했습니다. 그런데 근대 공교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배우는 자유’는 점차 사라지고 온통 ‘가르치는 자유’만 남게 됩니다. 이 ‘자유’마저 교사가 아니라 국가가 독점합니다. 국가는 교육과정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세세하게 정하고 강요합니다. 성취 기준이나 성취 수준이 대표적입니다(수능은 더 악질입니다). 이렇게 꼼꼼한 지침을 볼 때마다, 교사인 저는 ‘교사는 고등교육 기술자’인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그들이 정해 준 대로 가르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을 학교를 지켜보면서, 이제는 국가로부터 ‘가르치는 자유’를 학교나 교사가 되찾아 와야겠구나, ‘가르치는 자유’를 우리가 가져오는 만큼, ‘배우는 자유’를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줄 방안도 고민해야겠구나 다짐합니다.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들도 함께 고민해 주세요.
교육공동체 벗 7기 이사회 이사
오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