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기후정의파업 참가 후기

교육공동체 벗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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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기후정의파업 참가 후기


풀씨


우리가 세상을 떠난 뒤 어린이와 청소년이 직면할지 모를 매우 파괴적인 영향에 대비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려면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법의 역할 모델이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협력해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불확실성과 복잡성에 반응하는 방법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철 지나고 부적절한 해결책을 취해서 아는 척 하거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는 대신에, 우리는 그 다음 중요한 단계로 갈 용기를 발견할 수 있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에 관한 공개되고 진실한 대화를 제안한다.

- 《심층 적응》, 282쪽


교육공동체 벗과 교육농협동조합은 기후정의동맹 단체 회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조합원들과 함께 동맹에서 제안한 지난해 924기후정의집회에 이어 이번 414기후정의파업, 그리고 이후에 있을 집회에도 참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단체의 참여와는 별개로 내 개인의 인식은 부족하여 기후 ‘변화’에서 ‘위기’, 그리고 ‘정의’라는 것에 이르는 그 과정 어디쯤에 있을지 모르겠다. 알겠다고도 못하겠고 모르겠다고도 못하겠고.

어느 사건이 나의 일이 되는 경로는 다양할 것이다. 가령 내게는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는 상상도 못했던 거대한 해일의 모습을 통해서 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런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사람들을 초청해도 되는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직접 만나는 건 괜찮은가? 그들이 보내준 면티를 구입해서 입거나 목화씨를 만지고 심어도 안전한가?’

남들의 생각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는 것. 불행은 사건 자체보다도 그것으로부터 심겨진 ‘인식’에서 비롯한다. 그 인식이 그 다음 행동을 결정함으로서 색깔을 갖는다. 사람들은 후쿠시마 사람들을 초청해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면티를 입고 목화씨를 심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인식은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위와 같은 책의 구절을 빌어서 414기후정의파업 참가 동기를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참가 이야기는 사진으로 말씀드린다. 

맨 뒤엔 채효정 편집위원장의 참가 후기(페이스북)를 붙였다.


세종종합청사 남측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집회 장소로 걷는 중 멀리 

‘414 기후정의파업, 함께 살기 위해 멈춰!’

대형 현수막을 배경으로 한 집회 무대가 보인다.

폐현수막을 이용해 하고 싶은 말을 썼다. 가방이나 모자에 부착하긴 좋은데, 잘 보이지 않는 단점. 

평등하고 존엄하게 우리는 살고 싶다 - 집회의 묘미 중 하나는 뜻하지 않았던 반가운 만남. 

다양한 형태로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아 왔다.

산자부 담벼락에 리본도 묶고 한마디씩!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같은 건물에 있었어!

이런 걸 내걸어 혼란을 부추긴 단체도

개념을 빼앗아가려는 이들.


많은 분들이 많은 말들을 담아왔다. 

414기후정의파업 관련 기사들 중에 소상하게 정리한 글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의 글이다. >>> 글 보기


아래는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의 페이스북 글이다. 




나의 414 기후정의파업 후기 (1)


채효정


1. 시작


414 기후파업 사진과 후기가 많이 올라온다. 사진을 볼 때마다 현장에서 느낀 벅차고 뭉클했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난다. 사진 속에도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저장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한 번씩 꺼내 보고 싶다.  그런 날이었다. 2박3일 일정의 강행군을 마치고 밤 늦게 체력이 완전 방전된 상태로 인제로 돌아왔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가뿐했다. 죽은 듯이 잠들었고, 간간히 꿈을 꿨는데 꿈 속에서도 데모를 했다. 바닷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숲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껴안고, 고속도로를 수많은 사람들이 점거하고, 도시 곳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춤추고 뛰어다니는. 


예전에 강사투쟁 할 때, 이기고 진 걸 어떻게 아느냐는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준 선생님이 있다. 집회나 협상이 끝나고 나서 돌아갈 때, 그게 저절로 알아지더라고. 이긴 날은 그날 하루라도 발 뻗고 자고, 진 날은 웅크리고 잔다고. 그런데 그게 꼭 뭘 따내거나, 구체적인 성과가 있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면, 지든 이기든 후련했다. 하지만 이게 될까, 하고 주춤거리고,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머리만 굴리다가 준비한 것도 제대로 못하고 할 말도 못하고 나오면 그게 자꾸 따라와서 분하고, 억울하고, 답답함이 남아 입을 더 꼭 다물게 되었다. 그런 날은 돌아오면 집에 있던 식구들도 얼굴을 보고 알았다. 어제는 어땠냐면 방실방실 웃으면서 후련하게 돌아왔다. 그렇게 오늘의 투쟁을 보자면, 오늘은 이겼다? 하지만, 졌다, 이겼다는 판단보다는 “오늘부터 1일”이라는 정록 집행위원장의 마지막 발언처럼, ‘시작했다!’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의 운동의 형식과 주체와 관성을 넘어서, 새롭게 도전하고 만들어가는, 어떤 새로운 흐름이, 운동이, 분명 시작되고 있었다. 난 그걸 봤고, 그게 중요했다. 그걸 잘 살리고 싶다.



2. 과정


함께 갔던 교육공동체 벗의 진주샘한테 그랬다. 나는 집회에 오면 다른 무엇보다, 이 힘을 몸으로 느끼는 것, 이게 참 좋아요.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갔던 이들에게도, 이 기운으로 한 달은 살겠다고, 웃으면서 이제 또 이 기세로  한 달은 살겠다고, 5월에도 하고, 6월에도 하고, 7월에도 하면 좋겠다고, 하다가, 그러면 조직위 집행위가 죽어날랑가요... 하고 말하며 웃었다. 그러다가 또 진지하게 생각도 했다. 못할 것도 없지. 조직위도 집행위도 번갈아가며 하면 되지, 부산에서 할 때는 부산경남 단체와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고, 강원에서 할 때는 강원이 앞장서고... 그런 식으로 말이다. 처음이 힘들지, 두 번 세 번이야 할 수록 쉬워진다. 노하우가 축적되니까. 그만큼 힘도 많이 받았고, 함께 싸우고 있는 이들에 대한 믿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유가 뭘까. 이 집회가 주최측이 준비하고 대중이 참여하는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지난 몇달 간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함께 준비해 온 과정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어제의 집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따로 또 같이 연습하며 준비해 온 합창을 합을 맞춰 올린 실황 공연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집회가 ‘이벤트성’으로 되는 것은 그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참가자들은 당일 참가하는 것 말고는 할 것이 별로 없다. 그동안 관성적 대중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과 피로감과 불만을 느낀 것은 그런 이유다. 414파업은 어땠나. 지역을 연결하고, 현장을 연결하고, 흩어져 있던 운동과 단체를 연결하면서, 사람들을 부르고 만나고 설득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조직, 홍보, 간담회, 수다장 등 수많은 토론과 논쟁의 과정이 있었고, 그 과정에 사람들이 점점 주체가 되어 갔다. 할 수 있는 만큼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조직에서, 지역에서, 조직 담당자가 되고, 홍보 담당자가 되고, 지역 담당자가 됐다. 나도 합창의 한 목소리를 맡았고, 모자이크 그림의 한 조각이 됐다. 그렇게 마지막에는 다 같이 준비한 무대에 함께 오르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던, 그 ‘과정’이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도 몰랐던 주체를 발견하고, 자신도 몰랐던 역량을 발휘했다. 대규모 집회 조직 경험은 주체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운동의 역량을 키우며,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3. 전략


그래서 나에게 이번 집회는 새로울 것 없이 새로운 것들이 많았다. 924때처럼,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서 들고온 손피켓은  ‘획일적으로 형식화된 집회 양식’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집회의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외 낙서하기, 풀칠하기, 담장에 벽보 붙이기, 리본으로 묶기, 냄비에 꽹과리, 호루라기, 부부젤라 등 각종 소란시위 도구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지, 대오의 정체를 한 눈에 보여주는 깃발들, 정부청사를 둘러싸고 드러누웠던 다이인과 농협 건물 옥상에서 펼쳤던 ‘우리가 대안이다’ 대형 플래카드까지, 순간순간 잊지 못할 이벤트들이 하나의 거대한 ‘소동시위’를 완성했다. 집회가 활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어떤 이벤트를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준비한 이들의  고민이 느껴졌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액션을 보면서도 ‘아, 저런 것도 좋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직접 행동의 구체적 방식도 많이 배웠다. 시위는 서로가 거울이 되어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는 서로 배움의 장이며,  다양한 시위의 기술을 현장에서 체득하고 적용할 수 있는 직접행동 시민교육의 장이다. 


집회와 시위는 다양한 성격과 형식이 있고 그에 따른 다양한 전략을 필요로 한다. 결사적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워야 할 때도 있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누구와 싸워야 할지 전선을 만들면서 참여자들의 힘과 의지를 결집시켜야 할 때도 있다. 금요일 세종시에 모인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했을까. 담을 넘었어야 했을까, 돌을 던져야 했을까. 좀 더 위협적인 대오가 되어야 했을까. 시위 전략은 시간과 장소, 이슈와 정세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세종’이란 공간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성채에서 나오지 않는 관료들을 상대로 어떻게 싸울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싸우면서 우리가 무력감에 빠지지 않고 기세를 높일 수 있는지 생각했을 때, 이런 ‘소동시위’는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4. 기세


‘소동(소란)시위’는 민중이 대대로 사용했던, 지배자들을 불쾌하게 만들면서 약자의 힘을 과시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그 안에서 맘껏 춤추고, 노래하고, 억눌렸던 언어와 몸짓을 맘껏 분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2016년 촛불시위 때는 그걸 못해 집에 오면 잠을 못잤다. 질서와 안전을 외치며 참가자들을 통제하는 지도부와 엉덩이 붙이고 얌전히 앉아 있다가 폴리스 라인을 따라 가서 금지선 앞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하는 ‘자발적 복종’이 시민의식으로 포장되고, 더 나아가려는 대중의 의지를 안에서 먼저 꺾어버리는 ‘가두리 집회’가, 그들에겐 안전하나 노동자, 여성, 장애인, 빈자와 소수자에겐 점점 안전하지 않게 되어가던 집회 현장이, 나에겐 모욕의 경험이었다. 광장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그들이 ‘승리의 몫’을 가지고 광장을 떠날 때 여기 남을 사람들이 다시 고립되고 추방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건물에 스티커를 붙이다 “나중에 그거 떼려면 청소노동자들이 고생한다, 그러지 마시라”는 충고도 들었다. 심지어 경찰 차벽에 꽃을 달아주며, 시위대를 막느라 고생하는 경찰을 위로해 주는 도착적 시민의식도 발호했다. 그런 분위기가 점점 대세가 되어갔다. 인제에서 서울까지 혁명의 스펙타클 구경하느라 드는 관람과 뒤풀이 비용이 점점 아까워졌다. 자본과 권력 그리고 시민사회 내부 공모자들의 협상과 거래가 ‘거리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죽이는지 보았다. 그때 촛불은 날마다 이겼다는데, 나는 날마다 졌다. 시간이 갈수록 촛불이 횃불이 되지 못하고 꺼져가는 걸 보려니, 서울을 갔다 오면 홧병이 났다. 


어제 우리가 폴리스 라인을 따라 행진한 것도 외양상으로는 똑같아 보일지 모른다. 위압감을 주는 거대한 건물과 높은 벽, 가로막힌 문은 압도적이었고 그 앞에서 우리는 굴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굴욕은 외부의 적들에 의해 주어진 것이지 촛불시위 때처럼 함께 싸우고 있다 생각한 이들로부터 내부에서 강제된 압력 - 이 정도에서 멈추는 게 적당하다는 자제 요청은 아니었다. 적들이 준 굴욕감은 분노에 불을 지피지만 동지(?)의 제재는 우리의 의지를 싸늘히 식게 만든다. 그래서 더 나쁘다. 전자는 투쟁의 동기가 될 수 있지만 후자는 불신과 회의를 낳기 때문이다. 그걸 구분했으면 한다. 어제도 우리는 폴리스 라인을 따라 행진했지만, 그뿐은 아니었다. 그동안 자발적으로 금지한 것들을 넘은 시도도 많이 했고, 할 수 있을까, 해도 될까 했던 행동들을 스스로 허가하면서 자신을 해방시켰다. “환경운동 단체들이 환경을 훼손하는 시위를 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그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반응이다. 기후운동을 환경운동의 틀에 가두는 외부의 편견과 내부의 한계를 모두 깨트리는 계기가 됐다. 


나는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유머스러움과 해방감이 좋았다. 코메디의 어원도 소란시위와 결합된 소동극(komoidia)이다. 적어도 어제 함께 싸운 이들이 서로를 향해 전달하던 신호에 ‘이 정도면 됐다’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래, 이게 되는구나’, ‘그래, 이제 시작이다’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래, 우린 이제 시작했을 뿐이야, 기다려라’ 그런 마음으로 돌아왔다. 물론 이 정도로 안 된다는  절실함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시위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운동의 기세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제의 시위는 기후운동의 중요한 기세를 만들어 냈다. 지금은 그 기세로 기후운동의 주도권과 방향 전환의 분기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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