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사가 교육력이 세다 _ 초기 문해력 워크숍

교육공동체 벗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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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문해력 워크숍


행복한 교사가 교육력이 세다



정리 설원민



“교사가 생존을 말하는 시대라서 무언가를 함께해 보자는 말을 선뜻 건네기가 조심스럽다.” 

워크숍을 여는 박지희 교사의 말이 무거웠다. 시국이 이러하니 교사들이 모인 자리가 마냥 화기애애할 수 없었다. 그는 교육공동체 벗이 10여년 전 ‘교육 불가능의 시대’를 이야기했을 때, 솔직히 공감하지 못했는데 요즘 와서 교육 ‘불가능’을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문해력은 삶의 기술로서 꼭 갖춰야 할 능력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많은 사회 문제들, 가짜 뉴스라든지 이런 것들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도 문해력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봐요. 확증편향도 심하죠. 자기 생각과 같은 글만 읽고 다른 글은 읽지도 않아요. 그냥 자기가 갖고 있는 틀로만 해석해 버리는 삶을 살고 있어요. 이것은 큰 문제예요. 스스로 이해하고 해석하지 못하면 결국은 종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박지희 교사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공모 교장으로 서울 도봉초등학교(이하 도봉초)에 재직했다. 혁신학교인 도봉초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문해력을 통해 기초학력을 높이는 교육활동을 진행했다. 현재는 서울 상원초등학교에서 교과 전담 교사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8월 9일에 진행한 박지희 교사의 〈초기 문해력 워크숍〉 내용을 간추려 전한다. _편집자 주



저는 교장이 교육과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과정에 신경을 안 쓰면 학교는 제각각 돌아가고 교육과정이 안정되지 않아요. 당시 도봉초 학생들은 자존감이 낮고 학습 소외도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2019년에는 학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업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3학년 아이들 중에 글을 유창하게 못 읽는 친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어떤 아이가 “나 못 읽어요”라고 하니까 옆의 아이도 아무렇지 않게 “저도 못 읽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친구들이 못 읽으니까 부끄럽지 않았던 거예요.
저는 쓰기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글자를 쓰는 것과 글을 쓰는 것 두 가지가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둘 다 하지 않았던 거예요. 뭔가를 쓰라고 하니까 연필을 막 물어뜯고 “내가 왜 써야 해요!”라고 막 떼쓰는데 정말 암담했어요. 

가장 놀랐던 건 학생의 4분의 1 가량이 학업부진이라는 거였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교육과정이 문제지 학생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흔히 교사들은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을 맡으면 하소연을 하곤 해요. 그런데 어려운 아이들을 맡았으면 그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제시해야 돼요. 그게 맞춤형 교육과정이고 우리는 그 시작을 문해력이라고 봤어요.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2020년부터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진 거예요. 일단은 교육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을 추출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방식이 아니면 헛수고가 되잖아요. 

물론 교사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했어요. 다행히 좋은 교감 선생님이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2월에 학교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한 워크숍을 5일 동안 전일제로 진행했어요. 3일 동안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2일 동안은 학년별 논의를 했어요. 교사들이 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이 있어야 각 학년에서도 체계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교육과정은 매우 명료하게 짰어요. 모든 교사들의 머릿속에 나(우리)는 이걸 향해서 간다라는 명확한 목표를 세웠어요. 그게 바로 기초학력, 문화예술, 생태전환교육이었어요. 각각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상시적 활동과 프로젝트도 명확하게 정했어요. 



문해력은 기초학력의 토대


우리는 문해력을 글자나 글을 읽는 능력으로 생각해요. 글의 내용을 이해하고 주제를 파악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죠. 요즘에는 다양한 미디어와 데이터, 통계, 기사 같은 것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까지 문해력이라고 해요.
문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단계를 밟아야 해요. 문해력은 동심원 구조로 발달하기 때문이에요. 동심원은 돌멩이를 물에 딱 떨어뜨렸을 때 그 중심에서 사방으로 퍼지면서 만들어지잖아요? 그 중심이 바로 초기 문해력이에요. 물론 초기 문해력을 갖춘다고 해서 문해력이 저절로 확장되지는 않아요. 초기 문해력이 생기면 기초 문해력과 기능적인 문해력 등을 기르기 위해 순차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흔히 초기 문해력은 초등학교 1~2학년 때 완성된다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소릿값과 자소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 한글을 읽을 수 있는가 정도가 초기 문해력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사실은 어휘력과 유창성, 독해력까지 다섯 가지 측면 모두 있어야 돼요. 독해력도 아주 사실적인 독해가 가능해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3학년 학생이 글을 유창하게 못 읽는다든지 읽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초기 문해력이 부족한 거예요. 그 학생은 줄거리를 간추거나 설명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거죠. 

이는 초기 문해력이 이후 학습 능력을 좌우할 만큼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는 연구 결과와도 일치해요. 사실 그렇잖아요? 떠듬떠듬 읽고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데 추론적 독해나 비판적 독해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할 리 없는 거죠. 


지금까지 문해력의 수직적인 측면의 발달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수평적인 측면도 생각해 봐야 해요. 요즘 같은 경우는 수평적 문해력도 매우 중요해요. 문해력을 주로 국어과와 연결시키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미디어의 경우 글이 아닌 것들도 매우 많잖아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과학 시간에는 인과관계에 의한 주장과 근거를 구조화하고, 역사 시간에는 사료를 통해 사건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능력들을 키우게 돼죠. 4학년쯤 되면 과학이나 사회 교과를 싫어해 과학적인 언어 자체를 거부하는 학생들이 생기고요. 수학도 문제 자체를 해석하지 못해 풀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고요. 의식적으로라도 수평적 문해력을 키워주려는 교사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도봉초가 기초학력을 높이는 핵심을 문해력으로 본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고요.

희망적인 것은 문해력은 기회를 제공하면 언제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할 뿐인 거죠. 한글을 늦게 뗀 아이들도 기회를 계속 제공하면 언제 뒤처졌냐는 듯 잘 성장해요.



천천히 그리고 반복해서


도봉초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 학년에서 길러야 할 문해력의 구체적인 목표를 정했어요. 1학년 과정에서는 ‘최소한 한글은 읽을 수 있게 하자’는 식으로요. 학기 초에 2·3학년 선생님들이 “한글도 안 떼서 올려보내면 어떡해” 하며 한숨 쉬지 않게 말이죠. 물론 난독증 등 특별한 치료 과정이 필요한 경우는 예외로 두어야겠죠. 


우리의 한글 교육은 너무 급해요. 한 번에 음절표를 쫙 읽고 자음과 모음은 이렇게 결합하고 자음들 중에는 받침으로 쓰이는 것이 있다면서 받침의 음가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죠. 제가 노원초등학교 1학년 부장으로 있을 때 만든 책이 있어요. 한글 교육을 위해 노원초에서 자체 제작한 건데 여기저기서 필요하다고 좀 달라고 해서 나중에 출판까지 했어요. 그런데 의도치 않게 걱정이 생겼어요. 6월쯤 되니 책을 다 가르쳤다면서 다음 단계를 묻는 전화가 오는 거예요. 그때마다 “이 책은 그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해요. 물론 음절표 한 번 읽고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봐요. 저 같은 경우는 보통 ‘ㄱ’만 가지고도 일주일 정도 아이들과 놀 수 있거든요. 선생님들이 왜 초조해하면서 빨리빨리 가르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다른 모음이랑 결합하면 이런 소리를 내는구나 하고 찾아본다든지 수업을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빨리 끝내고 뭔가 재밌는 그림책도 읽어주고 신나는 놀이도 하게 해 주고 싶어서 자꾸 초조해하는 걸까요?


저학년들에게는 반복 학습이 굉장히 중요해요. 어제는 이해한 것 같은데 오늘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어제 ‘ㄱ’을 배웠다고 오늘 ‘ㄴ’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둘 다 모르게 돼요. 자음 하나도 반복적으로 배울 기회가 필요해요. 다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들은 안심하거든요. 그래서 반복적으로 천천히 가르치면서 소리를 많이 들려주고 눈으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해요. 영어를 처음 배울 때 A-Z까지 쭉 한 번 읽고 소리는 이렇고 단어는 이렇게 연결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배운다고 다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말을 하고 한글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는 소리를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또 정확하게 어떤 소리가 나는지, 자음과 모음은 어떻게 낱말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변형되고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다 배웠잖아요. 이게 1~2학년에서 필요한 것이라면, 3~4학년 때는 어휘를 확장하는 게 매우 중요해요. 코로나 이후로 가장 심각한 격차를 보이는 게 바로 문해력이에요. 여태껏 학교가 그 간극을 매워 왔던 거였어요. 그런데 학교가 닫히자 가정의 문해 환경에 따라 급격한 차이가 생겨 버린 거예요. 


5~6학년 때는 어휘의 정교성을 기를 필요가 있어요. 사실 어른들도 맞춤법을 틀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5학년에게 ‘부모님이 짠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주제로 글을 쓰게 했더니, 한 학생이 질문했어요. “아빠 머리가 세는 게, ‘ㅔ/ㅐ’ 중에 뭐예요?” 그래서 제가 “아빠 머리가 새기 시작하면 큰일이야. 응급실에 가야 돼. 다만 세기 시작하면 좀 슬프지만 다행인 거고”라고 말해 줬어요. 이 밖에 비유적인 표현이라든지 관용적 표현, 문학적 장치를 읽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문학 작품을 제대로 읽을 수 없어요. 그리고 5학년 때까지는 선생님과 ‘함께 읽기’였다면, 6학년 때는 ‘혼자 읽기’를 해 보는 것도 필요해요. ‘온작품 읽기’를 통해 ‘인물이 추구하는 가치’ 등을 혼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해요.



학습도 정서가 안정돼야


학습도 정서가 기반이 돼야 가능해요. 학습 정서라고 하는데 그 밑바탕은 안정감이에요. 불안한 아이들은 제대로 된 배움이 불가능해요. 불안감은 사람을 잠식해 버리잖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불안 지수가 높아요. 그 불안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 봤어요. 저는 아이들의 개별적 존재감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봐요. 아이들에게는 자신을 온전히 바라봐 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일찍부터 어린이집 등에 맡겨져요. 저는 이게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들의 기저에는 너무너무 큰 불안감이 존재해요. 1학년 아이들이 많이들 하는 말이 있어요. “선생님, 나 좀 봐 봐요! 나 좀 봐 봐요!” “선생님, 요케 해요? 요케 해요?” 다 할 줄 알면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느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선생님들은 “왜 그래?” 하며 친절하게 답하지만 그 아이가 교사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키고 싶어 하는 걸 다 알잖아요. 더 어린아이들은 좀 더 과감하게 관심을 유도하는 행동을 하고요. 친밀감을 느끼고 애정하는 대상을 독차지하고 싶은 거예요.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정작 아이들에게는 한 명의 어른이 절실한 상황이에요. 이런 결핍이 충족되지 못하니까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점점 더 미성숙해지는 거예요. 이목을 집중시키는 장난을 무한 반복하게 되고요. 그런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아무것도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초기에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계속해서 수업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해력과 학습 격차는 더 커지고 그만큼 교실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는 거죠.  


제가 많이 인용하는 책이 《눈물빵》인데, 전형적인 학습 소외에 관한 책이에요. 주인공인 생쥐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다 손을 들고 있는데 생쥐 혼자만 책을 펼치고 얼굴을 숨겨요.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슬펐어요. 생쥐는 쉬는 시간에 아무도 없는 창고에 들어가서 눈물을 흘려요. 펑펑 울어요. 손수건이 다 젖도록 펑펑 우는데도 눈물이 안 멈춰서 갖고 있던 식빵 테두리로 눈물을 훔치는 거예요. 눈물에 젖은 식빵 테두리를 천정의 뚫린 구멍으로 던지자 새들이 짭짤하고 맛있다고 해요. 그렇게 마음껏 실컷 운 생쥐가 후련한 마음으로 교실로 돌아가는 회복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에요. 


그런데 저는 생쥐가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울고 돌아갔는데 ‘아무것도 못하겠어’ 하고 또 절망하면 어떡해 하고 말이죠. 아이들이 사실은 생쥐 같은 상황이어서 공부 시간에 튀는 행동을 하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고요. 저는 많은 아이들이 학습 소외와 불안감에 사로잡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배움은 정서적인 부분도 함께 가야 해요. 책을 읽는 행위는 치유적인 부분도 분명 있어요. 그런데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하면 치유되는 경험을 하기 어려워요. 어휘를 모르면 상황 이입이 쉽지 않거든요. 동일시라든지 카타르시스라든지 통찰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일어나지 않는 거죠. 



가정에서 소리 내어 읽어주기


도봉초는 기본적으로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책을 읽어줬어요. ‘선생님이 읽어 주는 책’이라는 과정을 통해 저학년에서는 매일 그림책 한 권을 읽어주고, 중·고학년에서는 소리 내어 읽어주기 방식으로 ‘온작품 읽기’ 수업을 했어요.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원격 수업을 하게 됐어요. 저는 이때 시행착오도 먼저 겪을 겸 정규 수업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줬어요. 매일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1시간 동안 1~4학년에게 그림책을 읽어줬죠. 그러다 보니 여름방학이 오는 거예요. 방학에는 수업을 안 하니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방학 동안에도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그림책을 읽어주기로 했어요. 모든 학년을 대상으로요. 방학 독서 캠프를 연 거예요. 처음에는 저 혼자 읽었는데 중간에 교사들이 결합했어요. 젊은 선생님들은 영어를 잘하니까 영어 그림책도 읽어줬는데 아주 난리가 났어요. 저 혼자 할 때는 100명 남짓 참여했는데,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니까 150~160명이 들어오는 거예요. 평소 찾아볼 수 없었던 6학년들도 많이 들어오고요. 한편으론 배신감(?)도 느꼈지만, ‘소리 내어 읽어주기’가 어떤 건지 제대로 홍보할 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가정에서도 ‘소리 내어 읽어주기’ 문화를 만들고 확산시킬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정의 문해 환경은 아이의 문해력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아마 무턱대고 했으면 엄마들이 반대했을 것 같아요. 부모들에게는 아이와 1:1로 만나는 시간을 강조했어요.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오롯이 자기만을 위해 시간을 내주는 경험이 정서적으로 필요하다고 말이죠. 저는 부모들이 아이들이 점점 커갈수록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데도 아무 문제없이 잘 성장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공부도 정서가 안정돼야 가능하다고 했어요. 학교에서는 날마다 책을 읽어줘도 안 되는 게 1:1의 관계예요. 가정에서는 이 모든 게 가능하잖아요.  


그렇게 2022년에 1학년을 대상으로 ‘가정에서 소리 내어 읽어주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신청한 학생들에게 매주 학교에서 엄선한 그림책을 나눠주고, 가정에서는 매일 10분이라도 소리 내어 읽어주도록 요청했지요. 15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젝트라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읽기 점검판’과 ‘내가 해냄’ 스티커도 제작해서 나눠줬어요. 교장인 저도 학부모들을 독려하기 위해 어떻게 읽어주는 게 더 효과적인지 등을 담은 ‘안내 편지’를 매주 써 보냈어요. 1학년 교사들의 짐을 덜어주고 학교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점을 주지시키기 위해서였어요. 


매일 일정한 시간에 그림책을 소리 내서 읽어주고, 일주일 동안 반복해서 읽어주도록 요구했어요. 엄마들은 쉬운 그림책을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종종 묻곤 해요. 저학년들은 반복 학습을 통해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글자가 익숙해지면 자신감이 생겨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읽게 되고 책의 내용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프로젝트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어서 문해력 테스트도 했어요. 자음과 모음 읽기, 읽기 유창성, 받아쓰기 4개 항목을 테스트하는 거예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전반기에 개별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그러고는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시 테스트를 진행해 비교해 보았어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이들의 문해력이 확연히 높아진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담임 선생님의 수업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자음/모음 읽기는 차치하고서도 읽기 유창성 같은 항목도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받아쓰기를 전혀 못하던 아이가 10개를 다 쓰게 된 경우도 있었어요. 15주 동안 아이들의 문해력이 발달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학부모들도 테스트 결과를 육안으로 확인하고는 놀라워하며 굉장한 자극을 받았어요. 그래서 1학기에 진행한 프로젝트 신청자는 1학년 총 60명 중 50명이었는데, 학부모 만족도가 높아 2학기 때는 60명 전원이 참여하게 됐어요. 또 2학년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2학년까지 프로젝트를 확대해서 운영했고요. 



가정의 회복과 치유


의외의 효과도 나타났어요. 책을 읽어 주던 엄마들이 감동과 자기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돌이켜 보면 학부모 세대도 엄선된 좋은 책을 읽을 기회가 많이 없었으니까요. 교사들도 학생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 울컥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엄마들이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거죠. 힐링의 시간이었다며 좋은 책을 소개시켜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어요. 


이런 피드백은 어디서 받았느냐고요? 제가 패들렛을 운영하면서 가정에서 책을 읽어주는 사진이나 감상을 올릴 수 있도록 요청했거든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도 했는데 가정의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 거예요. 일단은 가정의 독서 환경이 조성되었고, 함께 모이는 시간이 늘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도 많아졌다는 거예요. 아빠들은 자신이 책을 읽어주기로 한 날에는 집에 일찍 들어오고요. 사실 사랑하는 아이에게 5분도 안 걸리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대요.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오롯이 자기에게만 집중해 주는 시간을 함께하면서 정서적으로 충만해졌고요.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면, 패들렛에 올라오는 사진과 후기에 경쟁적인 감성이 조금 보인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자녀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사진과 후기를 올리는 경쟁이라면 좋은 거 아닐까요? 



불행한 학교에 교육이 존재할 수 있을까


부모들이 패들렛에서 많이 했던 말이 있었어요. “우리 아이가 이렇게 못 읽는 줄 몰랐어요.”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가 소리를 내서 글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거죠. 글이 좀 많은 그림책들은 더 심각했고요. 엄마가 몇 번을 읽어 줘는데도 아이는 술술 읽지를 못 하니 그제서야 엄마가 자기 아이의 현실을 파악하게 되는 거죠. 이런 면에서 보면 학교에서 부모 연수를 많이 시키는데 그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어요.


제가 도봉초에 남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가정에서 소리 내어 읽어주기’를 확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전 학년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다시 교사로 돌아가 학생들과 수업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됐어요. 교육청에서 절대 안 된대요. ‘가정에서 소리 내어 읽어주기’도 문해력 차원에서 서울시교육청 정책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지만 피드백이 없어요. 


저는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감동하고 자기 성찰도 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어요. 학생과 학부모, 교사까지 함께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불행한 학교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문해력도 문해력이지만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모색하고 싶었어요. 


이혁규 교수의 책을 보다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어요. 저 아이는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하지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학교에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교사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너무 괴롭다는 거예요. 사실 그렇잖아요. 대학교 정도야 어느 정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지만 초중고는 대부분 자기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다니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뒤에 두 배나 많은 수의 학부모들이 있고, 평가하는 동료들이 있어요. 상황이 이러하니 교사들이 기본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연대가 간절히 필요한 시점이에요. 이제는 학교가 교사들한테도 돌봄과 배움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성장이 교사들한테도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학교가 너무 개인화돼 버려서 돌봄이 없는 거예요.


저는 모든 성장 과정에는 거울이 필요하고 생각해요. 교사도 엄마(학부모)도 거울이 되는 존재가 필요해요. 내 모습을 비춰 볼 수 있는 존재.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사실은 내 모습을 자꾸 비춰 보는 거죠. 그런데 가장 좋은 거울은 사람이에요. 내 행동들을 그대로 되비쳐 줄, 객관화시켜 줄 그런 사람. 그래서 학교에 다시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 확신을 도봉초에서 가질 수 있었어요. 


앞서 말했다시피 도봉초는 굉장히 어려운 학교였어요. 그런데 2022년이 되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거예요. 교사들끼리 MT를 가서 밤새 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선배 교사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학교 와서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정말 행복했다.” 그래서 “왜요?” 하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시더라고요. 교직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활동들을 참 많이 했는데 누구한테도 “선생님, 그 활동 너무 좋아요. 따라할래요”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대요. 그런데 도봉초에서는 당신이 무언가를 하면 “그거 어떻게 해요. 따라해도 돼요?”라고 묻는 교사들이 많아 너무 행복했다는 거예요. 그분 말씀이 참 명언이다 싶었어요. 힘들다고 해서 모두 불행한 건 아니구나. 힘들지만 서로 격려해 주고 함께하면 행복할 수 있구나 싶었죠. 그래서 교원학습공동체와 같은 모임들도 굉장히 잘 돌아갔어요. 물론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요구하기도 굉장히 조심스럽긴 해요.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행복한 교사가 가장 큰 교육력을 갖는다고 생각해요. 교육력은 어디서 올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내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인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다독이고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소리 내어 읽어주기’ 같은 활동들을 가정에 자꾸 퍼뜨리면서 함께 건강해지지 않으면 당면한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봐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이야기 마치겠습니다._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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