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편지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치유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7기 이사회에 함께하고 있는 김훈태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다가 우연히 발도르프학교에서도 교사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슈타이너사상연구소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구 주제는 발도르프 교육과 회복적 생활교육이고,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부족한 실력으로 책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이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깊이 병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병이 들었는데 병들었다는 자각이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사들이 아무리 호소해도 듣지 않던 사회가, 재직 중 사망하는 교사가 매년 100명이 넘고 그중 상당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어도 눈여겨보지 않던 사회가, 한 선생님이 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교사들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사들에게 학교는 지옥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의 가해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부 훈령이 나온 뒤로 학교는 온갖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뇌관인 입시 문제가 걸리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교폭력 사안을 무효화하려는 학부모의 고발과 행정심판 등으로 학교는 교육 기관이 아닌 사법 기관처럼 변했습니다. 꼭 생활기록부 문제만이 아니어도 모든 갈등 사안이 사법 절차와 똑같이 학교폭력위원회에서 다뤄지면서 학교의 사법화는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동학대처벌법이 강화되면서 그 대상이 교사들에게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교사도 교실에서 아동을 때리거나 차별해서는 안 되겠지만 무분별한 신고로 정상적인 교육 행위가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게 문제입니다. 학교폭력 사안에 불만을 품은 부모나 소위 ‘진상’이라 불리는 일부 부모에게 아동학대 신고는 일종의 무기가 되어 교사들을 협박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학교폭력 개념이 지나치게 확장되어 사소한 다툼까지 신고가 되는 것처럼 교사의 정당한 훈육도 정서적 학대라며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일이 늘었습니다. 신고를 당한 교사는 직위가 해제되고 홀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실제 기소율은 1.5%에 지나지 않고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적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지요.
안타깝게도 학생들에게 학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옥 같았습니다. 입시 교육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학생에 대한 관심과 존중은 늘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성적을 올린다는 명분으로 가혹한 체벌이 만연했고,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이 대폭 줄었지만 학생들이 받는 학업 스트레스는 여전히 어마어마합니다.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017년 7.7명에서 2020년 11.1명으로 44% 늘었습니다. 모든 게 학업이나 학교 탓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열악한 수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생의 인권 수준이 올라간다고 해서 교사의 인권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인권 수준이 심각하게 떨어진 것은 학생이나 부모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에 맞지 않는 잘못된 법과 제도 때문입니다.
이번 《오늘의 교육》 75호를 읽으며 다음 호에서는 교권 침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교사의 입장에서 쓴 글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좀 더 따뜻한 시선에서 지금 교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결책은 무엇일지 알고 싶습니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사회에 있다고 봅니다. 사회가 병들었기 때문에 학교가 지옥처럼 된 것이지, 몇몇 빌런(악당)에 의해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심각한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나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일부 부모 역시 마음이 병든 존재라고 봅니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치유일 것입니다. 병든 사회, 병든 개인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알고 싶습니다.
교육공동체 벗 7기 이사회 이사
김훈태
이사회 편지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치유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7기 이사회에 함께하고 있는 김훈태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다가 우연히 발도르프학교에서도 교사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슈타이너사상연구소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구 주제는 발도르프 교육과 회복적 생활교육이고,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부족한 실력으로 책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이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깊이 병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병이 들었는데 병들었다는 자각이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사들이 아무리 호소해도 듣지 않던 사회가, 재직 중 사망하는 교사가 매년 100명이 넘고 그중 상당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어도 눈여겨보지 않던 사회가, 한 선생님이 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교사들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사들에게 학교는 지옥 같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학교폭력을 저지른 학생의 가해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부 훈령이 나온 뒤로 학교는 온갖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뇌관인 입시 문제가 걸리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교폭력 사안을 무효화하려는 학부모의 고발과 행정심판 등으로 학교는 교육 기관이 아닌 사법 기관처럼 변했습니다. 꼭 생활기록부 문제만이 아니어도 모든 갈등 사안이 사법 절차와 똑같이 학교폭력위원회에서 다뤄지면서 학교의 사법화는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동학대처벌법이 강화되면서 그 대상이 교사들에게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교사도 교실에서 아동을 때리거나 차별해서는 안 되겠지만 무분별한 신고로 정상적인 교육 행위가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게 문제입니다. 학교폭력 사안에 불만을 품은 부모나 소위 ‘진상’이라 불리는 일부 부모에게 아동학대 신고는 일종의 무기가 되어 교사들을 협박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학교폭력 개념이 지나치게 확장되어 사소한 다툼까지 신고가 되는 것처럼 교사의 정당한 훈육도 정서적 학대라며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일이 늘었습니다. 신고를 당한 교사는 직위가 해제되고 홀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실제 기소율은 1.5%에 지나지 않고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극히 적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교사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지요.
안타깝게도 학생들에게 학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옥 같았습니다. 입시 교육이 지배하는 학교에서 학생에 대한 관심과 존중은 늘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성적을 올린다는 명분으로 가혹한 체벌이 만연했고,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이 대폭 줄었지만 학생들이 받는 학업 스트레스는 여전히 어마어마합니다.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017년 7.7명에서 2020년 11.1명으로 44% 늘었습니다. 모든 게 학업이나 학교 탓은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열악한 수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생의 인권 수준이 올라간다고 해서 교사의 인권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교사의 인권 수준이 심각하게 떨어진 것은 학생이나 부모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에 맞지 않는 잘못된 법과 제도 때문입니다.
이번 《오늘의 교육》 75호를 읽으며 다음 호에서는 교권 침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교사의 입장에서 쓴 글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좀 더 따뜻한 시선에서 지금 교사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결책은 무엇일지 알고 싶습니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은 사회에 있다고 봅니다. 사회가 병들었기 때문에 학교가 지옥처럼 된 것이지, 몇몇 빌런(악당)에 의해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심각한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나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일부 부모 역시 마음이 병든 존재라고 봅니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치유일 것입니다. 병든 사회, 병든 개인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알고 싶습니다.
교육공동체 벗 7기 이사회 이사
김훈태